룰북만 봐서는 플레이 하기 힘들다는 거지.


팀 모으면 룰북 안 보고 오는 놈 많잖아? 뭐,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 팀에서 설명해주고 읽어줄 수도 있지. 근데 메이지는 룰북만 봐서는 플레이가 아주아주 힘들다. 니가 컬트 오브 엑스터시를 하겠다면 트래디션북은 물론이고 우파니샤드 같은 거라도 한 권 읽어야 대충 패러다임이랑 포커스 구성할 수 있음. 컬트 오브 엑스터시는 인도 베단타에 근간을 두고 감각적 자극을 통해 인식한계를 확장/초월하는 식으로 마법을 쓰는, 일종의 고행자들이거든? 근데 코어 룰북에는 얘가 대충 이렇다는 얘기만 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패러다임과 포커스로 마법을 쓰는지 안 나옴ㅋ 그러니까 코어 룰북만 갖고 플레이 하는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컬트 오브 엑스터시 하면 패러다임은 좆까고 걍 마약 맞으면 초능력 쓸 수 있는 이능력자 캐릭터 만들어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지.


그렇다 보니 플레이 한 번 해보자면 게임 외적으로 스스로 봐야 할 게 너무 많아진다. 예전에 Z모님은 메이지를 두고 '플레이 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영역'의 물건이라고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 말이 딱이다. 실제로 메이지 좀 오래 했다는 팀을 보면 대부분 실제로 존재하는 사상을 갖고 노는 식으로 플레이 하고, 그렇기에 어느 정도는 공부를 해가며 노는 걸 자주 봤다. 아예 자기 전공 맞춰서 캐릭터 짜는 사람도 꽤 봤고. 전기공학과 플레이어가 이터레이션-X 캐릭터를 만든다거나, 철학과가 컬트 오브 엑스터시 캐릭터를 만드는 것처럼. 룰북에서 게임에 맞게 간단화된 가이드라인을 못 주니까 따로 교양서를 찾아서 쳐봐야 함.


근데 시발 이걸 팀에서 챙겨줄 수 있겠냔 말이야. 당연히 힘들지. 그런 책 보라고 권하는 것도 솔직히 민망할 때가 있음. 걍 플레이 하러 온 사람한테 '아 ㅎㅎ 메이지 하러 오셨어요? 그럼 철학사 서적 한 권 기본으로 보시고, 님 트래디션에 맞는 이 기초교양서 두 권 보시는 게 좋겠네요' 할 수 있겠냐. 그러니까 결국 모르는 사람 대상으로 메이지 구인 안 하는 거고, 더 나아가면 아예 플레이를 안 하고 마는 거지. 아니면 뭐, 메이지 룰 가지고 메이지 아닌 플레이를 하거나. 나이트위저드 같은 거 하겠지.


그러니까 현학성 쩌는 메이지는 접어두고 뱀파이어나 웨어울프 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p.s.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첨언. 메이지에서 마법을 쓸 때는 '내 캐릭터가 어떤 사상적 믿음을 바탕으로, 어떤 원리에 의하여, 어떤 테크닉을 통해 마법을 쓰는지'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작은 불씨가 알아서 우연히 좆나 번져서 대재앙을 일으키게 하는 아주 간단한 주문 '와일드파이어'를 보자. 이건 수비학에 기반한 오컬트로 마법을 쓰는 오더 오브 헤르메스의 마법이다. 이 주문을 쓰기 위해서 마법사는 우선 화성을 상징하는 펜타클과 명왕성을 상징하는 펜타클을 교차시키고, 그 교차점에서 불을 피우며 안정성을 훼손하는 주문을 외워야 한다. 여기서 화성은 Forces를 상징하고 명왕성은 Entropy를 상징하며, 주문은 불이 온갖 우연에 의해 운명적으로 확산되도록 스-피어의 힘을 집중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기본적인 건 플레이 할 수록 생략하게 되지만, 어쨌든 이런 식으로 어떤 원리에 따른 행동으로 주문을 집중시키는지 설명해야 함. 당연히 그 연출에 따라 판정이 요구되기도 하고. 예컨대 아스탕가 요가로 마법을 쓰는 컬트 오브 엑스터시라면, 아사나, 프라나야마, 프라챠하라가 잘 이루어지는지 보기 위해 메디테이션 롤을 시키는 식. 물론 다른 식으로 마법 쓰면 메디테이션 롤은 피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이처럼 도구가 되는 이론, 물건, 행위가 없으면 어지간해서는 아예 마법 못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