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 세 클론 이야기, 셋.



레콘키스타 작전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은 과거가 된 언젠가.

“영혼의 근사값을 계산할 수 있다면, 계산 알고리즘에 따른 오차는 얼마나 되는가?”

“…”

하은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녀의 앞에서 류 국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는다.

“요원. 자네는 무엇인가?”

“AP-5 아말감 보조 요원, UID 43252003, 노하은입니다.”

“그렇지 않다.”

류 국장이 그녀의 말에 대답한다.

“자네는 무엇인가?”

“…AP-5 아말감 보조 요원, UID 43252003, 노하은입니다.”

똑같은 대답이 계속된다. 하은의 수척한 모습이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 드러난다.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로 힘없이 바싹 마른 입술을 다문다.

“정말 그런가?”

류 국장이 묻는다. 하은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절대적인 수면과 영양 부족. 이미 일반인이라면 한계에 달할 정도다. 강도 높은 훈련과 AP-5 아말감에 있었을 때의 신체 관리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정신을 잃은지 오래 였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자네는 아직 이 심문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 같군.”

류 국장이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철제 의자를 당겨와 그녀의 앞에 놓는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앉지 않고 그 뒤에서 하은을 내려다볼 뿐이다.

“…전 이게 심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맞네. 아직 총명함을 잃지는 않았군.”

“…”

하은이 힘겹게 숨을 내쉰다.

“그렇다면 묻겠네. 현실교란자들은 무엇인가?”

하은이 고개를 떨군다. 고개를 들 힘 조차 다 떨어진 탓이다.

“…현실 교란자 뿐만 아니라, 모든 현실 교란종은…”

하은이 마른 입술을 연다.

“…풀어내야 할 문제입니다. 그들은 세상이 풀어내지 못한, 그리고 이해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그렇군.”

류 국장이 잠시 그녀를 내려다본다. 하은은 심지어 묶여 있지도 않았다. 구속이 풀린 것은 굉장히 오래되었다. 그러나 구속이 풀려 있어도 탈진 상태인 그녀가 이 방에서 탈출하기는 힘들 것이다. 탈출은 고사하고 류 국장을 지나가지도 못할 것이다.

“그것이 자네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군.”

류 국장이 조용히 말을 이어간다.

“자네의 UID, 소속, 그리고 이름을 지금 당장 잊어버린다고 가정해보지. 그 뿐만 아니라 모든 공식적 기록에서도 삭제하고 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자네의 이해 방식은 그대로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자네의 양 팔이 방금 제거되었다고 생각해보지. 그렇다고 해서 자네의 이해 방식은 바뀌지 않겠지, 그렇지 않은가?”

하은이 고개를 끄덕인다. 서서히 움직이는 그녀의 눈동자. 이 방에는 공기의 흐름이라고는 전혀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시각적 자극은 단조로운 불빛 뿐. 소리는 하은 자신이 내는 소리와 류 국장의 말 딱 두 가지 뿐이다. 감각의 박탈이 아닌 자극의 박탈. 그 와중에도 정신을 잃지않으려고 노력하는 하은.

“나는 스스로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이해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네. 예를 들어서 누군가 자네의 기억을 모조리 헤집어 놓는다고 하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네가 똑같은 이해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처음에는 혼란이 있겠지만 본인 뿐만 아니라 타인들 역시 자네를 비슷한 사람으로 인식할 걸세. 행동의 방식은 이해의 방식을 따르니까.”

하은이 그의 말에 집중한다.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네가 기억은 온전히 유지하고 이해의 방식만 바뀐다고 가정하면, 스스로가 기억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걸세. 그 순간부터 자네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거지.”

잠시, 방 안에 침묵이 흐른다.

“그렇다면 묻지.”

하은이 다시 한번 간신히 고개를 들어올린다.

“자네가 말하는 대로 세상이 그러한 난해한 문제로 가득 찬 시험지라고 가정하지. 그렇다면 그 세상에서 자네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은의 눈이 희미한 조명속에서도 빛난다.

“-저는, 그 문제들의 답입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인저.”

W 시리즈 클론에 대한 정보 교환을 끝내며 몰레티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W 시리즈 클론의 사건은 이시야마가 엮여, 더 이상 W 시리즈 담당 위원회만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는 네판디 추적 임무로 전환되어 MSF 아말감에 배정되었다.

“몰레티. 혹시라도 이시야마 아즈마에 대한 정보나, W 시리즈 내부 감사 결과가 나오면 신속히 알려주셨으면 좋겠네요.”

“당연한 말씀을. 그럼.”

통화가 끊긴다. 간단한 상호 상황보고를 겸한 회의. W 시리즈의 문제는 이시야마의 소행인 것으로 잠정적으로 결론지어졌다. 이상 증상을 보이는 클론들은 철저한 검사 후, 아마도 상당수가 폐기될 것이다. 아주 잠시, 그 사실이 그레인저의 심정을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리석지 않다. 네판디의 소행이라면 뿌리부터 잘라내야 한다. 최소한 끝이 없는 파괴와 혼란에 미리 종지부를 찍어주는 셈이니까.

[진.]

복잡한 생각 가운데, 에이다의 통신이 도착한다.

[에이다. 의사 선생님이 도착했나보죠?]

이시야마가 하은에 끼얹은 물질은 에이팍의 수준에서 처리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위험한 생체 병기였다. 따라서 경험 많은 프로제니터가 필요했다. 의사 선생님이란 그녀가 개인적으로 불러들인 베테랑 프로제니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네.]

[알겠어요. 지금 내려가 볼게요.]



“그레인저 양!”

익숙한 얼굴의 여성이 다가와 그레인저를 껴안는다. 매끈한 피부, 한치의 흠 없이 완벽하게 조각된 듯한 외모, 매혹적인 미성. 부자연스러움과 자연스러움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듯한 모습의 소피아 라이언이 반가워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이젠 그레인저 감독관이에요, 닥터 소피아.”

“어머, 승진했네? 축하해요!”

그녀가 또 다시 그레인저를 껴안는다. 묘하게 사람과의 거리를 지키지 않는 그녀의 성격은 여전한 모양이었다.

“고, 고마워요. 급하게 불러서 미안해요. 저희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겨서.”

“네, 알았어요. 무슨 일이죠?”

“미리 말 못해줘서 미안해요. 이시야마의 무기에 저희 측 요원이 당했어요.”

갑자기 소피아의 얼굴이 진지해진다. 표정을 거의 찡그리다시피한 그녀가 심각한 목소리로 묻는다.

“지금 이시야마는 어디 있죠?”

“저희가 추적하는 중이에요.”

“당한 요원은?”

“노하은 요원이에요.”

“…!”

소피아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소피아가 그 이름을 듣는 것은 AP-5 아말감의 해제 후 처음이었다.

“그래서, 의료실은 어디죠?”

“의료실이 아니라 정비실로 가죠. 거기에 있으니까요.”

소피아의 표정이 더욱 미묘하게 변한다. 부상을 당한 요원이 ‘정비실’로 옮겨지는 경우는 그 요원이 의체로 몸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니까.

“의체를 사용하나보죠, 이제?”

두 사람이 정비실로 향한다.

“네. 그것도 최신식으로요.”

“자의로?”

“…아마 아닐 것 같네요.”

“어느정도 의체화된거죠?”

“두뇌만 빼고 전부 다, 라고 하면 맞을 거에요.”

그레인저가 약간 머뭇거리며 대답한다. 소피아가 혀를 찬다. 어느새 정비실에 도착한 그들이 안으로 들어간다.

“안녕하십니까, 소피아 요원님! 에이팍 소위입니다!”

“어머, 반가워요. 그리고 닥터 소피아라고 불러주세요.”

소피아가 기다리고 있던 에이팍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눈다.

“지금까지의 검사 데이터는 있나요?”

“네!”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에이팍이 미리 준비한 검사결과를 훑는다.

“어머, 소위. 벌써 이 정도 실력이면 어딜가도 성공하겠어요?”

“아닙니다!”

그가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의 보고서에는 여러가지 조기 증상 및 나노 바이러스가 감염시킨 부위와 전파 속도 등 그의 수준에서 알아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소피아가 그 보고서를 읽으며 정비용의 랙에 누워있는 하은에게 다가간다.

“하은씨. 오랜 만이에요.”

소피아가 본능적으로 그녀와 거리를 둔다. 소피아가 유니언 내에서 별 제재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부서를 옮겨 다니며 활동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오직 연구와 업무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소피아는 레콘키스타 작전 당시 현장에서 전혀 뛰지 않았기 때문에 AP-5 아말감의 해체의 여파도 별로 받지 않았다.

그런 그녀라도 하은과 관련된 비밀이 있다는 것 정도는 추론할 수 있었다. 부상을 당해 웨더스 소령의 마지막을 보지 못한 에이다와 애초에 아무것도 모르던 자신은 멀쩡히 내보냈지만, 웨더스와 백 사장은 아예 영영 사라져버렸다. 하은이 전신의체화가 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을 고려했을 때 하은과 너무 가까워 지는 것은 좋지 않다는, 베테랑으로서의 직감이 그녀가 거리를 두게 하고 있었다.

“닥터 소피아.”

“그렇게 불러줘서 고마워요. 보통 이 정도 지나면 까먹던데.”

소피아가 즉시 검사를 시작한다. 에이팍의 보고 사항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정도였기에 프로제니터 랩이 아닌 MSF-44 아말감에 있는 장비 만으로도 그녀의 검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역시 그 자의 소행이 맞는 것 같네요. 신경계를 숙주로 한 지효성 나노 바이러스라…”

예비 검사를 끝낸 소피아가 턱을 괸다. 심각한 표정의 그녀가 묻는다.

“요원, 지금 의체 내부 생체 부품의 가동률은 어느 정도인가요?”

“평시의 71% 정도입니다.”

“…이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거에요.”

“다른 의도?”

그 옆에서 지켜보던 그레인저가 묻는다.

“만약 그자가 자기의 안전까지 희생해 가면서 근접했는데도 이 정도 위력밖에 내지 못했다면 애초부터 살상이 목적이 아닌거죠. 물론 그가 사용 할 수 있는 최대 위력의 바이러스를 사용했어도 이 정도 의체를 파괴할 수는 없었을 거에요. 생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소피아가 다시 검사 장비에 눈을 가져다 댄다.

“소위, 여길 보세요.”

그녀가 검사 장비에 잡힌 이미지를 모니터에 띄운다.

“네. 약간의 변형이 가해져 있긴 하지만 표준 양식의 나노 바이러스 소체라고 판단됩니다.”

그가 즉시 대답한다. 이시야마 역시 계몽과학을 사용하는 자임을 감안하면, 분석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맞아요. 하지만 이걸 보세요.”

그녀가 검사 장비를 한쪽으로 치우고 모니터를 끌어와 삼차원 영상으로 띄운다.

“머리 쪽에 몰려 있는 첨예분자는 일반 나노 바이러스의 것과는 달라요. 첨예 분자가 무슨 역할을 하는 지는 알고 있나요?”

“바이러스가 공격하고자 하는 곳에 스스로를 고정시키는 기전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이걸 보세요.”

그녀가 첨예 분자를 확대한다. 확대하지 않았을 때는 그냥 뾰족한 가시처럼 보였던 것이 점점 복잡한 형상을 드러낸다.

“이게 뭐처럼 보이죠?”

“가시가 아니라… 안테나 같습니다.”

그가 꺼림칙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가 즉시 컨스트럭트의 전자전 센서를 체크한다. 표준 주파수 및 통신수단을 이용한 통신을 제외하고는 잡히는 것이 없다. 저렇게 작은 ‘안테나’가 뭔가 송수신 해봐야 매우 희미한 신호에 불과하겠지만.

“이 바이러스를 배양해서 해체해봐야 알 것 같아요. 소위, 좀 도와줄 수 있나요?”

“네. 알겠습니다.”

“그레인저 양, 미안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알겠어요. 어차피 저도 할 일이 있으니까. 서두르지 말고 확실하게만 해줘요.”

맡겨 두라는 듯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레인저가 정비실을 나선다. 에이다가 추적 자산을 이용해 이시야마의 꼬리를 잡기를 기다리는 동안, 중요한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즉시 MSF 아말감의 세이프하우스로 향한다.



“찰칵.”

그레인저가 문을 당긴다. 당황스럽게도 분명 잠겨 있어야 할 세이프하우스의 문은 열려 있었다.

“놀라셨습니까?”

하은이 구석에 기댄 채 묻는다. 유니언은 다수의 클론을 운용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클론은 여러가지 유전자를 조합해 만든 병기에 가깝지, 복제 인간이라는 본연의 뜻과는 약간 거리가 멀다. 말 그대로의 클론을 만나게 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꺼림칙한 기분을 억누르며 그레인저가 안으로 들어선다.

“조금요.”

“제 파일을 읽어 보셨으면 그렇게 놀라시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무슨 말이죠?”

“이시야마의 본거지에서 탈출할 때는 아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세이프 하우스에는 각종 도구가 상비되어 있지 않습니까? 문 하나 따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죠.”

그레인저가 끄덕인다. 애초에 감옥을 목적으로 설계된 것이 아닌 시설이기 때문에 당연했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건 어렵지만 그 반대는 아니니까. 아니나다를까 문 옆의 전자기기 패널이 열려 있었다. 하은이 문을 열기 위해 강제로 열고 조작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꼭 문을 열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요?”

“할 일이 없어서 연습이라도 좀 했죠.”

그레인저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부 CCTV 기록을 신경통신망으로 다운로드 받아 훑는다. 두뇌에 직접 들어오는 영상 기록에는 락을 해제하는 과정만 있을 뿐이었다.

“뭐, 좋아요. 정비 요청이라도 해야겠군요.”

그레인저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녀가 세이프 하우스의 창문 근처에 놓인 소파에 앉는다. 소파라고는 하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 방탄기능의 바리케이트로 재조립 할 수 있는 물건이다. 하은의 눈이 그레인저에게 향한다.

“그래서, 무엇부터 듣고 싶으시죠?”

“당신은 누구죠?”

“…전 AP-5 아말감 보조 요원, UID 43252003, 노하은입니다. 만년 보조 요원이라고 불러주셔도 되겠네요. 이제는 은퇴했지만.”

그레인저가 골치가 아파오는 것을 느낀다. 항상 기계 같고, 가끔은 너무 기계 같지 않아서 문제인 하은과 시니컬하게 한마디씩 덧붙이는 이쪽의 하은 둘 다 상대하기 편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레인저가 확인을 위해 아말감 내부 통신망으로 노먼을 호출한다.

[노먼. UID 43252003으로 검색해줘.]

[감독관님, 해당 UID는 저희 아말감의 노하은 요원입니다.]

그레인저가 고개를 젓는다.

“좋아요. 그럼 일단 제일 최근 일부터 물어보죠.”

“옛날 일부터 물어 보실 타입 같았는데, 제가 잘못 봤나 보네요.”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됐어요. 먼저 헬렌의 위치는 어떻게 알았죠?”

“이시야마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알았습니다.”

“이시야마를?”

“네.”

하은의 대답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좋아요. 그럼 당신이 ‘은퇴’했다는 건 무슨 말이죠?”

“글쎄요. 그 전에 공식 기록에 저에 대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먼저 묻고 싶습니다.”

하은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반문한다. 그레인저가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해주기로 한다.

“제가 알기로는 작전 막바지에 큰 부상을 입은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이후에 의체로 개조되어 제가 지휘하는 아말감에 소속되었고. 그녀 본인의 기억과 개인 파일의 기록과는 좀 차이가 있더군요. 특히 개인사에서요. 딱히 캐묻지는 않았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하은이 마치 칼로 자르듯 날카롭게 말한다.

“그럼?”

“굳이 말하자면 해고당한거죠. 왜냐하면…”

그레인저가 그녀의 말을 기다리지만, 그녀는 말을 끝내지 않는다. 아니, 못 하는걸까. 굳이 말을 끝낼 것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그녀가 해고당한 것은, 그녀의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굳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돼요. 한가지 짚어 두고 싶은게 있는데 그 과정은 류 국장이 주도했나요?”

“주도한 정도가 아닙니다만. 거의 본인이 전담해서 실행했습니다.”

그레인저가 미간을 찌푸린다. 그가 전담했다는 것은, 곧 아무에게도 그 실상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는 뜻이다. 클론 쪽의 하은이 기억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

“이유는 알고 있나요?”

하은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시야마는 어떻게 추적했죠? 아니, 그 이전에 장비는 어떻게 구한거죠?”

“퇴직금으로요.”

혀를 차는 그레인저. 거의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그녀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유니언, 정확히는 각 아말감과 전투부대를 비롯한 모든 하부 조직은 당연히 은퇴 및 퇴직금이나 퇴직 연금에 관한 조항을 정해 놓고 있다. 물론 대다수의 경우 퇴직금을 본인이 받지 못한다. 퇴직이란, 상당수의 요원에게 있어서 죽음과 동의어였다.

“장비라고 해봐야 총기류와 여러가지 일반적인 도구 같은 것들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하은이 한쪽에 걸려 있는 그녀의 백팩을 가리킨다. 하이퍼테크에서 격리된 테크노크라트. 어떤 요원들이라면 그런 생각만 해도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손사래를 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전직 요원은 그런 상황에서도 이시야마를 추적해 왔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장비로 어떻게 이시야마를 추적했죠? 정보 수집은?”

“그레인저 요원님, 제 희미한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현실 교란자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정보를 얻은 경우가 꽤 되실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레인저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보조 요원으로 활동한 기간은 짧지만 저도 나름대로의 우군이 있습니다.”

“그 우군이란 어떤 자들이죠?”

“…지금 저를 해고한 회사 중역에게 업계 노하우를 통째로 넘겨 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겁니까?”

바로 날아오는 시니컬한 대답.

“음.”

그레인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말은 묘하게 들어맞는 데가 있었다. 더 이상 하은은 유니언의 요원이 아니다. 그들의 관계는 이제 잘 해봐야 협력 관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알았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게요. 대답해줘서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진.]

그레인저가 말을 멈춘다. 추출된 그녀의 기억에 대해 물어보려 하는 순간 에이다가 연락해온 것이었다.

[무슨 일이죠?]

[이시야마가 포착됐어요.]

말을 멈춘 그레인저를 본 하은이 묻는다.

“이시야마가 발견됐나보군요.”

그레인저가 대답하지 않은 채 일어난다.

“제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미안하지만 이건 우리 소관이에요.”

“제가 요원님 목숨을 구해드린 걸 잊으셨습니까? 절 데려가시면 웬만한 클론 병사 같은 것 보다는 훨씬 큰 도움이 되실 텐데요. 그리고-”

그녀가 문을 가리킨다. 조력자가 있다고는 했지만 혼자의 힘으로 이시야마를 추적하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처음보는 패널을 해체해 문을 열었다. 하은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더구나 지금 그녀의 클론이 정비 중임을 감안하면, 우군이 하나 더 있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

그레인저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하은이 자신의 장비가 든 백팩을 챙겨 그녀를 따라 나선다.



이번의 목표는 ‘소박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지경이다. 작은 도시의 시청. 이시야마가 짧은 시간동안 출입한 것이 CCTV에 포착된 것이다. 그레인저와 하은이 나란히 출입제한선을 지나친다. 한눈에 봐도 정부나 군 기관의 요원처럼 차려 입은 그레인저와 달리 하은은 잘 봐줘야 사복으로 위장한 요원 정도다. 거기에 백팩까지 보면 그냥 평범한 사회 초년생이나 졸업을 앞둔 대학생처럼 보였다. 이미 조작된 테러 예고를 빌미로 시청의 인원은 대피가 완료된 상태. 이번에도 이 도시를 관할권 안에 두고 있는 아말감의 협조를 얻어 내부를 수색하고 있는 중이다. 이시야마 본인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그가 이 시청에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딱 맞춰왔군요.”

“진. 수색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죠?”

에이다 역시 따로 출발해 미리 도착해 있는 상황이었다. 먼저 도착한 만큼 관할 아말감과 협조 관계를 조율하고 있는 것은 에이다였다. 그녀가 보고를 시작하려다가 하은을 보고 멈칫한다.

“하은 요원은 언제?”

“…설명하기 좀 복잡해요.”

에이다는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다.

“당신은…?”

“네, 요원님. 오랜만에 뵈어서 반갑지만 지금 훨씬 시급한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요.”

에이다가 잠시 할말을 찾다가 포기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이미 관할 아말감의 수색반이 그의 흔적을 찾고 있을 겁니다.”

“아뇨.”

하은이 고개를 흔들며 시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제가 입수한 정보가 맞다면 그는 아마 테러 목적으로 이곳에 왔을 겁니다.”

태연하게 말하는 그녀.

“테러 목적이요?”

[진. 이… 사람이 제가 생각하는 그 하은 요원이 맞습니까?]

[…아마도 맞을거에요.]

“네. 생체 폭탄 같은 걸 어딘가에 설치해 놨을 겁니다.”

에이다가 그레인저의 결정을 기다린다. 그레인저가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이 하은을 따라 즉시 시청으로 들어간다.

“굳이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그랬다가 폭탄이 터지면 끔찍하게 녹아 내리면서 나란히 죽게 될 겁니다.”

“자세한 묘사는 사양 할 게요.”

그레인저도 약간의 시니컬함을 담아 말한다.

[진, 신뢰할 수 있는 겁니까?]

[글쎄요.]

“아마 개별적으로 나뉘어서 수색하는게 좋을 겁니다. 에이다 요원님, 가능하면 수색반에게 상온을 유지할 수 있는 곳, 그 중에서도 사람이든 기계든 움직임이 적은 곳을 먼저 수색해 달라고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에이다가 관할 아말감의 요원에게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내부 통신망으로 그레인저와 이야기를 계속한다.

[진, 어떻게 된 일인지 얘기해 주셔야 합니다.]

[네. 일단은 폭탄부터 찾죠. 그리고 제가 공식적으로 아말감 인원들에게 전달하기 전 까지, 일단은 비밀로 해줘요.]

[알겠습니다. 서두르죠.]



“…이건…”

급속 배양기에서 나노 바이러스의 샘플을 확보한 소피아는 이미 상세 분석에 들어간 상태였다. 나노 바이러스 자체는 상당히 잘 만들어졌다는 것만 제외하면 특이한 점은 없었다. 문제는-

“이상한데요. 첨예 분자는 그렇다 치고 실제로 신경계 및 인공 신경에 작용 하는 독소가 사실상 없다시피한데… 어머, 고마워, 노먼.”

“물론입니다, 닥터 소피아.”

홀로그램과 저소음 소형 드론을 통해 마치 진짜 집사처럼 커피를 배달하는 노먼. 그녀는 마치 노먼을 AI가 아닌 진짜 집사를 대하는 것처럼 친근하게 대하고 있었다. 소피아가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긴다.

“그렇다면 원래부터 파괴가 목적이 아니었다는 소린데. 노먼, 스펙트럴 필터를 차례대로 적용해 줄 수 있겠어?”

“네. 알겠습니다.”

노먼의 말과 동시에 홀로그램이 사라진다. 동시에 분석기에 연달아 다른 필터가 순차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다.

찰칵, 찰칵, 찰칵.

마치 사진이 찍히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분자 구조가 시시각각 색을 변화시킨다. 그와 동시에 센서가 잡아내는 바이러스의 모양도 조금씩 달라진다.

“잠깐. 노먼, 24번 필터로 전환해줘.”

“네, 알겠습니다.”

소피아가 분자구조를 자세히 관찰한다. 첨예 분자 중, 바깥으로 뻗어 나가며 갑자기 실에 꿴 구슬 같은 모양을 하는 구조를 가진 것들이 있다. 마치 허공에 점을 찍어 놓은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그런 형상은 불가능 하다. 아무것도 그 분자들을 이어 놓고 있지 않은데도 마치 이어진 것처럼 움직이는 모습.

“정말 모르겠는데… “

그녀가 허리에 손을 얹는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그녀는 계몽된 생명공학 분야의 대가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이 알아볼 수 없는 기술은 생명공학과는 관련이 없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노먼, 미안하지만 에이팍 소위를 좀 불러주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노먼이 즉시 대답하며 에이팍을 호출한다. 소피아가 더 깊은 생각에 빠진다.



“발견했습니다.”

무전기를 통해 하은이 무언가를 발견했음을 알린다.

“뭐죠?”

“폭탄입니다.”

그레인저가 발걸음을 돌린다. 하은이 알린 위치에 제일 가까운 것은 그녀였다. 문서 창고 중 하나. 그녀가 재빠르게 방에 들어선다.

하은은 무릎을 꿇은 상태로 해체에 몰두하고 있었다. 가슴부터 머리의 아래쪽 반까지 잘라낸 아이의 몸이 놓여있었다. 잘라낸 부분은 깔끔하게 피부로 덮여 있었다.  주기적으로 가슴께가 박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내부에서는 뒤틀린 계몽 과학으로 개조된 인공 장기들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말 그대로 인간으로 만든 폭탄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 작은 크기다. 아마도 초등학교조차 들어가지 않은 아이의 몸으로 만든 것이겠지. 하은의 옆에는 그녀의 다급함을 증언하듯 가방이 열린 채로 내팽겨쳐져 있었다.

“다행입니다. 아직 시간이 좀 있군요.”

하은이 수술용 장갑을 낀 손으로 메스를 집어든다.

“잠깐, 뭘 하는거죠?”

“폭탄이 있지 않습니까? 문제가 있으면-

하은이 고개를 끄덕인다.

“-풀어야죠.”

그렇게 태연하게 대답하며 메스를 박동하는 피부에 가져다 댄다. 그레인저가 그녀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는다.

“격리반이 오고있어요.”

“늦었습니다. 길어야 6분 내에 터질 겁니다.”

그녀가 단언한다.

“좋아요. 6분이면… 말한대로 충분하군요.”

그레인저가 혀를 내두르며 대답한다.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죠?”

“가방에서 제가 달라는 걸 꺼내 주시면 됩니다. 그쪽에 있는 핀셋부터.”

그레인저가 가방의 안주머니에 꽂혀 있는 핀셋을 꺼내 준다. 가방 안에는 권총 두 정과 몇 개의 탄창, 고가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와 수술 도구를 비롯한 같은 각종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소독을 할 필요는 없으니 다행이죠.”

하은의 시니컬한 말과 함께 피부가 절개된다. 메스꺼운 적갈색 물질이 흘러나온다. 그 내부에는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부도와 전혀 맞지 않는 장기들이 들어 있었다. 하은이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핀셋을 받아 장기를 덮고 있는 막을 젖힌다.

“생체 폭탄도 그냥 폭탄처럼 폭발시켜 버릴 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그녀가 중얼거린다. 생체 폭탄은 일반 폭탄처럼 냉동하여 폭발을 지연시키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폭발을 지연시키려고 하면 내부의 균형이 무너져 규모는 작아지겠지만 어쨌든 폭발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단발성으로 끝나는 일반 폭탄과는 달리 생체 폭탄은 내부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배양되는 다양한 균을 퍼트리는 종류도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격리되지 않으면 안전한 곳으로 옮겨 일부러 폭발 시키는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

“두번째 주머니에 들어있는 스테이플러.”

하은의 지시에 따라 그레인저가 의료용 스테이플러를 넘겨준다. 그녀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폭탄을 ‘해체’한다. 메스꺼운 액체가 흐르는 혈관을 잘라내 봉합해버리고, 장기를 절제해 몸에서 떼어낸다. 해체 작업 보다는, 엉성한 수술 같다.

“이번은 쉽네요.”

하은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하며 마치 쪼그라든 폐 같은 장기를 들어내 바닥에 내려놓는다. 잘라낸 부분에서 찐득찐득한 액체가 흘러나온다.

“좋아요. 그럼-“

갑자기 팟,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액체가 거품처럼 부풀어오른다. 동시에 말 그대로의 인간폭탄이 경련하기 시작한다.

“어깨 쪽을 눌러주십시오!”

그녀의 말에 그레인저가 어깨 부분을 강하게 누른다. 그러나 작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고정이 되지 않는다. 하은이 작업을 계속 하기에는 경련이 너무 심했다. 그 모습을 본 그레인저가 즉시 의수에서 카본 블레이드를 꺼내 한쪽 어깨에 박아 넣는다. 간신히 고정된 몸을 찍어 누르며 하은이 내부에서 경련하고 있는 근육 몇 개를 거칠게 잘라 내버린다. 마치 팽팽히 당겨진 밧줄이 파열되듯 기분 나쁜 파열음과 함께 경련이 줄어든다.

하은의 손이 또 다시 바삐 움직인다. 그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레인저. 하은의 말 그대로 그녀의 동작은 폭탄을 해체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전선을 대신하는 혈관을 잘라내고, 해체 시도를 탐지하는 충격센서 대신 들어서 있는 촉각 기관을 태우거나 마비시켜 우회한다. 그 이후 뇌관의 역할을 하는 낭포를 고정시킨 채 그것에 연결된 신경과 근육을 하나씩 자르기 시작한다.

“…하나 남았네요.”

그녀가 섬세하게 마지막 신경 다발을 잘라버린다. 그 이후 작약의 역할을 하는, 액체로 출렁거리는 장기를 들어내 꺼내 놓는다.

“끝났나요?”

“네.”

하은이 긴장이 풀린 것인지 손에 들고 있던 의료용 포셉을 바닥에 떨어트린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뭐, 몇 번 해보니까 익숙하네요.”

그녀가 태연하게 말한다.

“몇 번이라니요?”

“이시야마를 추적하다 보니 몇 번 겪어서요. 이 정도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얼마나 됐죠?”

“글쎄요. 반년정도. 빨리 잡았으면 좋겠네요. 퇴직금도 다 떨어져가는데.”

그렇게 말하며 하은이 벽에 기댄다.

“그래서…”

그레인저도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주저 않는다. 그러나 하은에게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이 있었다.

“당신이 저희에게서 원하는 건 뭐죠? 이시야마를 추적하는 거야 공통의 관심사라는건 알았어요. 재취직이라도 하고 싶은가요?”

하은이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뇨.”

그녀가 그레인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제 클론과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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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는 ㅌㅅㅈㄱ물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