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 세 클론 이야기, 넷.



데이빗 몰레티가 보고서를 읽으며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W-4 시리즈의 최근 로트의 처리 결정을 알리는 보고서다. 네판디의 영향을 고려할 때 추가적으로 발생할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계몽된 클론은 모두 폐기, 그렇지 않은 클론들은 신경 패턴을 리셋한 이후 제일 소모율이 높은 임무에 투입되어 재활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보고서의 내용 자체도 우울한데다가, 몰레티는 후배들 때문에 W 프로젝트에 다시 말려든 것이 그다지 탐탁치 않았다. MSF-44 아말감의 일원이 된 후 나이에 걸맞지 않게 현장에 뛰게 된 그였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도 프로젝트 고문으로 앉아있는 것보다는 그쪽이 나았다. 오랜만에 아말감 컨스트럭트로 돌아가기 위해 그가 비서에게 연락해 전용기의 스케쥴을 조정하라고 연락한다.

[그레인저. 복귀하겠습니다.]

그가 핸드폰을 꺼내 전용 네트워크에 메시지를 띄운다. 그에게는 두뇌 임플란트 같은 것은 없기에 네트워크를 이용하기 위해 통신기나 뇌파 스캐너가 달린 안경 등의 디바이스를 이용해야 한다. 그가 답변을 기다리며 복귀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하아.”

깊은 한숨을 쉬는 그레인저.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하은의 기억에서 추출한 ‘예언’의 장면.

에페메라 작전.

갑자기 나타난 이시야마의 위치, 더 중요하게는 그의 목적.

마지막으로 제일 골치가 아픈 사항인 오리지널의 하은의 존재. 자신의 클론을 보고 싶다는 그녀의 요청은 도저히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클론일까, 하는 의심에 그녀가 사용했던 수술용의 장갑을 가져와 내부에 묻은 지문과 세포를 통해 유전자 검사도 완료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최소한 유전적으로는 완벽한 동일인이었다.

그녀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녀와 거래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시야마의 생체 무기를 해체할 수 있는 그녀의 노하우, 더 중요하게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필요했다. 막 이시야마를 추적하기 시작한 자신들보다는 몇 달 동안이나 그를 추적해온 그녀의 정보와 노하우가 더 믿을 만 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녀의 결정을 재촉하듯 에이다가 연락해온다.

[진. 그래서 어떻게 할겁니까?]

[역시 대화하게 해줘야 될 것 같아요. 그녀의 정보가 필요하니까요. 최대한 오래 저희와 협력하게 유도 해야죠.]

[알겠습니다. 그 전에, 안 좋은 소식입니다. 이시야마의 흔적이 또 발견되었습니다.]

[알았어요. 하은씨를 또 데려가도록 해야겠네요.]



“좋은 아침입니다, 감독관님.”

하은이 천연덕스럽게 소파에 앉아있는 상태로 말을 건넨다. 그녀는 속옷만을 입은 채 TV까지 틀어 놓고 아침을 먹고 있었다. 아침은 세이프하우스의 창고에서 꺼낸 MRE였다. 한달정도 먹어도 변비가 걸리지 않는데다가, 영양과다가 거부반응Rejection을 불러올 수 있는 바이오모드를 장착한 요원들을 위해 첨가물에 따라 염분 및 칼로리까지 조절할 수 있는 MRE다. 혹자는 계몽 과학적인 전투식량이라는 농담을 하곤 했지만, 실제로는 그냥 단가가 엄청나게 높은 전투식량에 불과했다.

“옷은 왜-“

그레인저가 물으려다가 그만둔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옷 한 벌로 여기에 온 거니까. 잔근육과 선명하지는 않아도 분명히 드러나 있는 복근이 그녀가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훈련시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세탁이 막 끝나서요.”

TV에서는 민감한 국제관계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별일 없다는 듯이 아침을 먹고 있는 그녀였지만 그 와중에도 시시각각 채널을 바꾸며 자막을 읽고 뉴스를 경청한다. 특히 사고와 관련된 내용을 중점적으로 훑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시선을 TV 자막에 고정시킨 채 묻는다.

“결정은 하셨습니까?”

“그래요. 요구를 들어줄 테니, 우릴 도와줘요.”

하은이 물을 마시며 끄덕인다.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세이프하우스에서 묵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숙박비와 식비를 아껴야 해서요.”

괴물과 네판디를 사냥하는 모든 자들이 풍족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하은의 ‘퇴직금’은 어마어마한 금액이겠지만, 무한정인 것은 아니니까. 그레인저가 납득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몇 번 대해보니 클론 쪽의 하은보다는 이쪽이 더 편하다. 무엇보다 이쪽은 인간적이니까.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시니컬 하지만 농담도 하는 모습은 다른 쪽의 하은에게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괜찮아요. 저희를 도와주는 한 이 정도 지원은 할 수 있죠. 그래서 말인데, 지금 당장 도와줄 일이 있어요.”

하은이 플라스틱 숟가락을 든 채 묻는다.

“또 이시야마인가요?”

“네.”

“가시죠.”

그녀가 MRE를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바로 건조기에서 옷을 꺼내 입고는 짐을 챙긴다. 쓰레기통 내부에서 즉시 쓰레기를 탈수 시키고 분쇄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마찬가지로 유사시 세이프하우스에서 나가지 않고 오래 버티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맘에 드네요. 좋은 집이에요. 다음에는 가구 쇼핑이라도 해와야겠네요.”

하은이 실없는 말을 하며 가방을 걸친다. 두 사람은 즉시 이시야마가 발견된 곳으로 향한다.



“-이건 생명공학Life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현상입니다. 오히려 차원과학에 가깝습니다.”

MSF-44 아말감 컨스트럭트의 분석실. 에이팍이 하은의 몸에 침투한 나노 바이러스의 첨단 분자를 다시 분석하며 말한다. 그는 최대한 빨리 결과를 내기 위해 어그 콜라Erg Cola -계몽 과학으로 만들어진 에너지 음료-를 마신 채 밤을 새워 분석을 마친 참이었다. 그 부작용인지 눈 밑에 거의 눈 크기만한 다크서클이 생겨나 있었다.

“차원과학…?”

아무리 소피아가 계몽과학의 대가라고 하더라도 차원과학에 있어서는 전혀 문외한이다. 대중들도 배울 수 있는 생명과학의 연장선상에 있는 생명 분야의 계몽과학과는 달리 차원과학 이론은 기초 내용을 배우기 위해 현대 물리학을 마스터하고 나서도 상당한 이론적 지식이 베이스가 되어야 하는 분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원과학이 없다면 이차원의 존재, 그리고 정령과 외계의 존재들을 다루는 현실 교란자에게 대응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보이드 엔지니어를 주축으로 차원과학에 소양이 있는 요원들을 길러내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다.

“네. 위상차원… 말하자면 현실의 수학적 그림자에 일종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하지만 이시야마는 차원과학에 대해 지식이 없을텐데…”

“진짜 이상한 건 그게 아닙니다. 위상차원 중에서도 무의식적 사고 패턴의 정보만 정사영 되는 공간에만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하자면…”

에이팍이 잠시 뒤통수를 긁는다.

“꿈의 정보가 투사되는 위상공간이라고 해야 될까요… 하여튼 그렇습니다. 제거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 정도의 희미한 흔적이라면 이차원의 존재를 전문적으로 추적하는 요원이나 계몽과학으로 추적할 수 있을 수준인데…”

그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 공범이 있다는 거군요.”

“네. 하지만 네판디간의 협력이 굉장히 잘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추적할 만한 단서는 못될 겁니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요원. 그레인저 양에게 알려야겠네.”



“그래서, 그의 목적에 대해 짐작가는 게 있나요?”

“글쎄요. 적당한 표적을 골라서 생체 폭탄을 설치하고 도망가는 패턴을 반복하는 것 밖에 못 봐서요.”

그레인저가 끄덕인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야 이시야마가 감시망에 잡힌 것이 이해가 간다. 주요 도시들의 공공시설에는 유니언의 감시자산이 상시 전개되어 있다. 중소 도시에는 CCTV 정도지만 장소에 따라서는 손잡이로 위장한 유전자 감식기, 체열 탐지기, 심지어 공간 왜곡 센서까지 동원해 모든 종류의 적대적 존재를 탐지하고 차단한다. 그러나 중소도시의 감시 자산으로는 언제든지 얼굴을 바꿀 수 있는 이시야마를 잡아내기에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당신의 정보원은 다른 방식으로 그를 추적하나 보죠?”

“네.”

하은이 짧게 대답하고는 장갑을 낀 손을 내민다. 두 사람은 저번과 비슷한 타입의 생체폭탄을 해체하고 있었다. 그레인저가 가방안으로 손을 뻗어 의료용 스테이플러를 건네 준다. 그녀의 가방에는 여유공간이 꽤나 많이 남아 있었다.

“가방이 꽤 크네요. 원래는 다른 것도 들고 다니나요?”

“네. 주로 속옷이나 여벌 옷이죠.”

하은이 시니컬하게 대답하며 생체 폭탄의 해체를 이어간다.

“얼굴을 드러내놓고, 거기에 큰 도시는 건드리지 않는다…라.”

그레인저가 그의 의도를 짐작한다.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 MSF-44 아말감을 도발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술래잡기라도 하듯이. 큰 도시를 건드리면 심포지움 단위의 추적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는다. 반면 MSF 아말감의 추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얼굴을 드러내 놓는다. 그가 MSF 아말감을 유인하고 있는 것은 명백했다. 문제는 그 이유였다.

“우리를 도발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뭐, 저야 추적하기 쉬우니까 좋습니다.”

가위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피범벅이 된 생체 폭탄의 해체가 끝난다. 하은이 도구들을 내려놓는다.

“끝났습니다.”

“고생했어요.”

그레인저가 피범벅이 되어있는 하은의 손을 바라본다. 꽤나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이번의 생체 폭탄은 예전보다 크기가 훨씬 컸다. 아마도 성인의 육체로 만든 것임이 분명했다.

“혹시 해체에 실패한 적도 있나요?”

“…”

하은이 대답하지 않는다. 그레인저는 더 묻지 않는다. 아마도 실패해서,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테러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레인저가 또 다른 의문점을 떠올린다. 지금의 테러행각은 MSF 아말감을 도발하는 것이라고 치고, 그 전에는 얼굴도 드러내지 않은데다가 MSF 아말감의 입장에서는 이시야마의 행방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이전의 동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혹시 이시야마가 당신을 유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그럼 좋죠. 가뜩이나 찾기도 어려운 인간인데 자기 위치로 절 불러들이고 있다면요.”

그녀가 시니컬하게 말하며 일어선다.

“물론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그의 동기는 지금 중요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지금은요. 어쨌든, 제 클론과는 언제 만나게 해주실거죠?”

그레인저가 끄덕이며 대답한다.

“지금요.”



당연한 일이지만 이제는 유니언의 일원이 아닌 오리지널 쪽의 하은을 컨스트럭트에 들이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적당한 도시 내의 카페 같은 곳도 안된다. 똑같은 얼굴의 두 사람이 카페에서 앉아 어색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꽤나 시선을 끌어 모으는 일이니까. 유니언의 요원들이 사용하는 회의 장소는 그녀가 류 국장의 시선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결국 교외 외곽의 한적한 휴게소 하나를 정비 명분으로 폐쇄하고, 그곳에서 만남을 시행하기로 했다. 클론 쪽의 하은은 단지 성능저하가 일어났을 뿐 움직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는 데다가 당장 나노 바이러스를 제거할 방법도 없기에 정비실에 계속 대기할 이유도 없었다.

그레인저와 오리지널 쪽의 하은이 탑승한 헬기가 주차장에 내려 앉는다. 임시로 폐쇄되었을 휴게소 한복판에는 당당하게 MSF 아말감의 차량이 주차된 상태로 에이다와 클론 쪽의 하은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정말 눈물 나는 만남의 장이 되겠군요.”

하은이 특유의 말투로 말하며 헬리콥터에서 내려 휴게소 뒤쪽으로 다가간다. 휴게소라면 하나씩 있는, 벤치와 의자, 그리고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 휴게공간. 그곳에서는 먼저 클론 쪽의 하은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마주친다.

“안녕.”

“…”

두 하은이 서로를 마주본다.

“놀란 기색도 없네.”

그러나 예상했다는 듯, 오리지널 쪽의 하은이 끄덕인다.

[감독관 님. 이 여성은 누구입니까?]

[요원, 우리가 원하는 건 그녀의 정보에요. 최대한 그녀와 협조적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해주겠어요?]

[알겠습니다. 들으실 수 있도록 이 대화를 자동으로 링크하겠습니다.]

그레인저는 일부러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에이다와 그레인저는 멀리서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 저희 쪽의 하은 요원에게 정신 오염에 가까운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만.”

“그 가능성도 생각해봤어요.”

그레인저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저는 저 두 사람에게 간섭하고 싶지 않네요. 우리가 그녀가 클론이라는 걸 알려준다고 해서 그녀가 그걸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런걸 받아들이라고 명령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레인저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스로에게 확신이 들지 않는지 말꼬리를 흐린다.

“알겠습니다. 이 대화의 내용은 발설하지 않도록 하죠.”

에이다는 반문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데이터 링크로 대화내용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한다.


“…”

두 하은이 서로를 마주본다. 그러나 클론 쪽의 하은은 무언가 말할 동기가 없었다. 대화를 주도하는 것은 당연히 오리지널 쪽이다.

“우리 두 사람이 닮았다는 건 사실 아무 의미 없는 일이야.”

오리지널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온 몸이 기계니까 네 쪽이 더 잘 알겠지. 정말 원하면 외형은 어떻게라도 바꿀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렇지?”

“당신은 뭐죠?”

“나?”

오리지널이 딱딱한 금속 의자에 앉는다.

“그것보다 네가 무엇인지 물어보는게 더 좋은 질문 아닐까? 이 대화에서 얻을 정보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가 더 적절하다고 보는데.”

두 사람이 서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하지만 그것도 좀 이상하네. 왜냐하면 넌 질문이 아니라 답을 찾는 사람, 아니, 답 그 자체니까. 최소한 네 생각에는 말이야. 지금도 그렇지?”

클론 쪽은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리지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한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네가 차가운 살인기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할거야. 유니언의 명령이 최선이고, 상급자가 명령을 내리면 따르는. 하지만 난 알고 있지. 소셜 컨디셔닝의 장막을 들춰내고 나면 넌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컨디셔닝을 거스르고 현실 교란자를 살려준다든가, 괴물들을 이해해보려는 노력 같은 걸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텐데?”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머로더가 되기 일보 직전인 텐을 살려준 적이 있었고, 카멜리아의 의도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해냈다. 당황스러움을 불러 일으킬만한 말에도 그녀는 전혀 표정의 변화를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그녀가 의체임이 너무나 잘 드러나고 있었다.

“당신은?”

그 말을 멈추려는 듯 클론 쪽이 반문한다.

“의외네. 한마디도 안 할 줄 알았는데. 나도 마찬가지겠지? 왜냐하면 네 생각은 원래 내 생각이었으니까. 우리는 둘 다… 스스로가 풀리지 않은 문제의 답이라고 생각하지. 오만하게도 말야.”

클론 쪽이 아주 살짝 반응을 보인다. 그녀는 지금의 대화에서 최소한 한쪽이 다른 쪽의 클론임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말야.”

오리지널 쪽이 조용히 말한다.

“여기까지 와서 시험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복수 정답인 문제는 원칙적으로 잘못된 문제인게 아니겠어?”

“잘못된 문제?”

“그렇지.”

두 사람의 대화가 갑자기 끊어진다. 아니, 오리지널 쪽이 잠시 말하는 것을 멈추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멀리서 폐쇄된 휴게소로 들어 가려다가 급하게 방향을 돌리는 차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개발되지 않은 도로 주위의 넓은 땅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간다. 오리지널 쪽의 클론이 천천히 입을 연다.


“-만약 문제가 잘못되었다면, 없애버려야지.”


“좋아요. 너무 짧은건 알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네요.”

갑자기 그레인저가 다가오며 두 사람의 대화를 중단시킨다.

“미안하지만 이시야마가 또 포착됐어요. 점점 간격이 짧아지는군요. 어서요.”

오리지널이 재빨리 의자에서 일어서서는 가방을 멘다.

“감독관님, 저는?”

“도로시는 대기하세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쪽의-”

그렇게 말하며 그레인저가 오리지널의 하은을 바라본다. 아직 두 사람의 앞에서 서로를 어떻게 지칭해야 할지 애매한 탓이었다.

“-노하우가 필요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차량을 통해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클론 쪽이 대답한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어딘가 망설이고 있는 듯 했다.

“감독관님.”

“네?”

“혹시 문제가 없다면 이곳에서 조금 더 있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요.”

단순한 허가 이상의 무언가를 말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떨치고 그레인저가 짧게 대답한다. 하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를 뒤로 하고 그레인저, 에이다, 그리고 오리지널이 헬리콥터를 타고 사라진다.



“사전에 잡아내서 다행입니다.”

하은이 조용히 말하며 그레인저를 따라간다. 그녀가 흰색의 복도 곳곳을 훑는다. 에이다는 10명 정도의 클론을 조종하며 외부를 감시하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들을 모두 수색하고 있었다. 그들은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위협적인 복장이 아닌 적당한 사복을 입고 있었다.

이번에는, 작은 병원이다.

이시야마가 들어오는 것은 CCTV에 잡혔지만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오는 것이 포착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만약 대피령을 내렸다가는 초기의 혼란속에서 그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에 일부러 민간인인 척 하고 조용히 수색하고 있었다.

[감독관님.]

[에이팍, 보고 하세요.]

[네. 병원의 전산 시스템을 교차 검증했습니다. 현재 수술실 중 하나가 아무런 수술이 잡혀 있지 않은데도 사용중인 것으로 나옵니다.]

수술실이라는 단어와 이시야마의 이름이 그레인저의 머리속에서 합쳐지며 메스꺼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레인저가 즉시 하은을 이끌고 수술실로 향한다.

“발견한겁니까?”

“네. 빨리요.”

두 사람이 전속력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다행히 수술실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 이중문의 첫번째 문을 그레인저가 걷어차듯 열고 뛰어들어간다.

“!”

그녀가 반사적으로 자신에게 내려쳐지는 거대한 근육 덩어리 팔을 피한다. 이시야마가 개조해서 만들어낸 것이 명백한 거대한 덩치의 생체병기, 바이오모프가 좁은 공간에서 두번째 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기습을 당한 그레인저의 균형이 무너진 틈을 타 그것이 다른 쪽 팔을 휘둘러온다. 팔 위에 나 있는 돌출된 뼈가 그녀의 몸을 정확히 양단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레인저가 의수로 그것을 막아내지만 그 충격에 한쪽 벽으로 밀려난다.

“일단 물러나서-“

“시간이 없습니다!”

하은이 순식간에 바이오모프의 앞으로 접근한다. 거대한 팔이 닿지 않는 사각에서 화앗, 하는 소리와 함께 하은의 주먹이 생체 병기의 복부를 꿰뚫는다. 메스꺼운 체액이 등 뒤로 터져 나오고, 시뻘건 근육이 찢기고 강화된 골격이 박살 난다. 그녀의 얼굴에 피가 튀고, 옷이 검붉게 물든다.

바이오모프가 육체를 지탱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진다. 그레인저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진다. 콘크리트 이상의 강도를 가지고 있을 바이오모프의 육체를 맨손으로 저렇게 파괴하다니.

물론 테크노크라시의 요원들 중 맨손으로 생체병기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 정확히 계산된 치명타를 먹이거나, 의학적 지식을 이용해 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지점을 타격하거나 하는 고도로 어려운 프로시져다. 절대로 단순한 힘을 이용해 상대를… 찢어 놓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그리고 그레인저의 의문에 대답하듯, 하은의 옆에서 아주 희미한 인간의 형상이 나타나 있었다. 정확히 하은과 똑같은 자세를 하고 있는 형상. 그것이 서서히 사라진다.

“왜 그러시죠? 현실교란자를 처음 본다는 표정인데.”

“…”

그레인저가 AP-5 아말감 시절의 하은의 기록을 떠올린다. 그녀의 행적에는 웨어랫과의 전투를 포함해 분명 외부의 도움The Man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런 종류의 도움일줄은 몰랐다.

“그건 뭐죠?”

“글쎄요. 옛날에 만났던 늑대인간은 정령이라고 부르던데. 옛날에 있었던 것The Man과는 반대의 종류지만요. 제가 보기에는… 글쎄요. 하나가 무너지면 그 다음 조각까지 떨어트려 버리는 부서진 퍼즐의 조각 중 하나라고 할까요.”

그녀가 심드렁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지금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지 않던가요?”

그녀의 말에 그레인저가 정신을 차린다. 그녀가 현실 교란자인 것은 지금 부차적인 문제다. 그레인저가 두번째의 이중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이시야마!”

“흐으음.”

이시야마가 수술용 마스크를 쓴 채로 그레인저를 쳐다본다. 그는 환자가 분명한 민간인을 ‘수술’하기 일보 직전인 것처럼 보였다.

“아. 손님이 오셨군.”

마스크 뒤에서 그의 꺼림칙한 미소가 보이는 듯 했다. 그레인저가 그의 이마에 나노 피스톨을 겨눈다. 조준용의 레이저가 그의 이마를 겨눈다.

“이미 다른 요원들이 이곳으로 달려오는 중이다. 저항은 무의미 해.”

그레인저가 경고하듯 말한다. 네판디에 대한 대응은 생포 후 NWO에게 넘기는 것Gilgul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물론 순순히 항복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내 팬들이 오셨는데, 아직 오늘의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군. 나도 늙었어. 다른 선물은 잘 받으셨나?”

“네가 설치한 폭탄들은 둘 다 우리들이 해체했다.”

그녀가 차분하게 조준을 유지하며 말한다.

“두 개?”

이시야마가 손에서 메스를 내려놓으며 반문한다.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군.”

“뭐?”

“내가 생체 폭탄을 설치한 건 겨우 한 번인데 말야. 그것도 아마 자네들이 해체한 모양이지? 그래서 좀 더 큰 선물을 주기 위해 이런 누추한 곳까지 행차 했네만.”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랬다. 하은을 볼 때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은이 처음으로 해체했던 폭탄은 유난히 작았다. 아이의 상체를 유용해서 만든 것. 그리고 그녀의 가방은 보통보다 살짝 큰 정도.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간 도구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안에 옷을 챙겨 다닌다는 것도, 뭔가 이상하다.


이시야마의 연속된 테러 행각에 대한 증인도, 그리고 그것을 해결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하은 뿐.


나노 바이러스에 결합된 차원과학, 다시 말하자면 영혼과 정령의 영혼의 영역. 바이오모프를 찢어버린 그녀의 옆에 나타난 ‘정령’.


그리고-



-만약 문제가 잘못되었다면, 없애버려야지.



푸욱.

찢기는 감각. 불에 덴 것 같은 느낌이 몸을 훑고, 그 다음은 금속성의 전율이 전신을 마비시킨다. 무엇인가 비어 버리는 느낌. 그레인저가 자신이 날카로운 무엇인가에 찔렸다는 것을 깨닫자 마자 그녀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진다. 뒤쪽으로 천천히 넘어진 그녀가 상체를 벽에 기댄 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아, 이런. 내가 너무 뻔한 힌트를 줘버렸나?”

이시야마가 혀를 차며 마스크를 내린다.

하은이 손에 든 날카로운 나이프에서 피가 떨어진다.

“일 처리 좀 제대로 하시죠. 입만 다물고 있었으면 제가 아말감까지 내부까지 침투해서 좀 더 빨리 일을 처리할 수 있었는데요.”

그녀가 손에 든 나이프 만큼이나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허허. 늙은이에게서 뭘 기대하겠나? 미안하구만. 이런 일은 젊은 사람이 해야지. 그렇지 않나?”

하은이 맘에 들지 않는 다는 듯 한쪽 무릎을 꿇고 그레인저의 목에 칼날을 들이댄다. 그레인저의 의수가 위험을 감지하고 미칠 듯이 나노머신을 뿜어낸다. 등의 상처에서 순식간에 혈액이 응고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미 흘러나온 피로 인해 의식이 몽롱해진 상태였다.

“내가 이런 상처를 입으면 몇 분내에 과다출혈로 죽을 텐데.”

하은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그레인저의 복부에 다시 한번 나이프를 찔러 넣는다.

“컥!”

그녀가 비명과 함께 피를 뱉어낸다. 배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얼마 있지 않아 멎어버린다. 나노 머신이 그녀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래서, 이분이 그레인저 요원이 맞나?”

“감독관이라고 하던데요. 뭐, 상관없지만.”

“…좋은 재료야. 아주 사랑스러운 바이오모프가 되겠어.”

하은이 그 말을 듣자마자 이시야마에게 다가가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

“우선, 미끼로 쓰고요. 알겠나요?”

“물론이지. 우리의 장기적인 목적은 일치Nephandi하지만, 단기적인 목적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그레인저의 의식이 꺼져간다. 나노 바이러스가 그녀의 상태가 위중함을 감지하고 그녀를 가사상태에 빠트리려는 것이다. 그녀가 다시 한번 하은의 말을 곱씹는다.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단순히 하은에 관한 것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궁금증이, 이제 와서야 전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가 희미해져가는 신경망으로 노먼에게 마지막으로 몇가지 지시를 하기 시작한다. 간신히 지시를 끝낸 그녀의 의식이 어둠속으로 떨어진다.



“…”

몇시간이나 지났을까.

자신이 필요하다는 명령 같은 것은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 하은은 아직도 휴게소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분석하려 하지만, 전투적인 기능이나 전술적인 판단을 제외하고는 극단적으로 사고의 폭을 제한하는 SC-2 임플란트가 그녀의 생각을 가로 막고 있었다.

“난 뭐지?”

그녀가 혼잣말을 한다. 전신 의체의 클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

“난…”

그녀가 손을 움직인다. 가동 능력이 조금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녀의 의체는 일반인의 육체보다 훨씬 강하다. 발 옆의 돌 조각을 집어 올린다. 돌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간단히 부서진다.

“…”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의 요원으로서의 자신의 위치.

그러나, 그 이외의 것이 있는 걸까.

나는…

“그렇다.”

하은이 고개를 든다.

그 앞에는 기억에 없는, 그러나 이상하게도 익숙한 형상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만으로는 대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권위와 질서 그 자체를 형상하는 듯한 검은 선글라스와 양복, 인종을 알 수 없는 무표정의 얼굴, 하은보다 더욱 건조하고 감정 없는 목소리. 인간 사회의 질서, 압제, 그리고 보호라는 기묘한 개념들이 하나로 화한 그 무언가.

“경계하라.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

그녀의 앞에, 교관The Man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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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스토리 진행 간다

우리 모두 네판디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