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난 악성향 캐릭터를 어떻게 굴렸나
모두가 좋아하는 발암썰 같은 건 아니고, 재미있게 플레이했던 거. 전에 턀갤에도 몇 번 썰 푼 적 있는, 악성향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플레이했던 희소한 경험담이기도 하다.
5년 쯤 전에 세션에서 구인 올라온 거 보고 신청했고, 본 플레이 들어가기 전에 여러 날에 걸쳐 mirc에 모여 배경 세계 설정이랑(‘중세 판타지 세계’이긴 한데 오크나 고블린 같은 건 없고, 엘프나 드워프도 없고, 마스터의 오리지널 이종족과 몬스터가 자주 등장하는... 비교적 근대적인 판타지 세계였음) 서로의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음. 그 과정에서 서로 잘 맞물리도록 캐릭터를 좀 고치는 등의 사전 작업을 충분히 해서, 플레이는 잘 진행됐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성공적인 플레이였음. 내가 플레이했던 캐릭터 위주로 썰을 좀 풀어볼까 함.
일단 배경 세계 설정은 이렇고(편의 상 당시 마스터가 올린 구인 글 링크)
http://sessionrpg.cafe24.com/bbs/102712
플레이 전에 나온 pc들은 대략 이러했음.
1)베테랑:기회주의적이고 탐욕스런 소시오패스. 정복자이며 사기꾼이며 정치가. 남캐.
넵 내가 굴린 PC. 원래 제국의 한미한 귀족 가문의 3형제 중 막내였는데, 두 형들에게 밀려서 가문 내에서 좀 겉도는 위치였다가 배경 설정에 나온 항구도시의 총독이 바다 건너 신대륙에서 잘 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10대 중반의 나이로 가문을 떠나 이민선단에 탑승, 항구 도시에 정착해 모험가 생활을 시작했다는 설정.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화려한 경력을 보유한 자수성가 모험가(플레이 시작 시점에서는 41세). 이전부터 항구도시와 주변 원주민 부족 간의 갈등을 성공적으로 중재하는 등의 전력이 있었고, 지옥화산의 분화 당시 크게 활약한 영웅으로써 상당한 명성을 갖고 있음(다른 파티원들과 어딜 가면 NPC 경비병들이 막아서다가 내 캐릭터를 알아보고 인사하고, 내 캐릭터가 ‘내 동료들일세, 신원은 내가 보장하지’ 등으로 말하면 그냥 통과시켜 주는 등... 마스터가 이런 쪽으로 꽤 신경을 써 줬음). 그러나 본인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하고, 항구도시가 제국에서 독립해 필모어 왕국이 되자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줄을 대려고 시도하는 상태.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료들을 은근히 장기말 취급한다’ ‘냉혹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어서, 파티원 모집에 애를 먹고 있는 중.
2)성전사:사도(D&D로 치면 아시마르 비슷한 거)로 태어나 엘리트로 길러져 주변의 부담감 속에 살아온 성전사. 능력은 있지만 높은 기대치에 시달려 살아와 뚜렷한 정신적 성장을 이루진 못함. 여캐.
3)검객:불우하고 비극적인 성장배경에서 도망쳐온 칼잡이. 백수건달에 난봉꾼이지만 칼솜씨는 뛰어나다. 남캐.
4)야만용사:개척민과 역사를 같이하는 아슬란의 네데르(D&D로 치면 게나시에 해당하는 오리지널 종족. 흙 네데르, 빙정석 네데르 등의 세부 구분이 있음). 개척민들과 메실(가족 비슷한 정서적 공동체)을 이루고 싶어하지만 이종족이자 이방인으로 겉도는 생활을 해온 방관자. 여캐.
5)사제:아름답고 뛰어난 사제지만 도덕과 교리, 신념에 얽메인 외곬수 사제. 여캐.
보통 악성향 캐릭터는 라그나가 되기 쉽고, 당시 플레이 준비 과정에서 다른 팀원들도 그걸 좀 걱정했는데(물론 라그나 운운은 턀갤에서 시작한 밈이지만 ‘대체로 선한 성향의 파티에 혼자 악한 캐릭터가 있을 때 생기기 쉬운 말썽들’에 대해선 다들 이해가 있었거든) 나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야기 내에서 캐릭터가 원하는 것’과 ‘플레이어로서 내가 원하는 것’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나 자신이 내 캐릭터를 적당한 선에서 제어하겠다고 약속하고 플레이 시작함.
내 베테랑은 모험가 길드에서, 길드장과 언쟁을 하던 중.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거물이지만, 예의 ‘동료를 은근히 장기말 취급한다’는 평판이 있어서 길드장이 파티원을 매칭해주기 어려워서 곤란해하는 상태. 마침 후보로 꽤 실력 있는 칼잡이가 하나 있었는데, 여자한테 치근덕대다가 최근 모험가 길드에 등록한 신출내기 검객(PC)에게 개발렸다고 함. 베테랑은 그 검객에게 흥미가 동하고, 마침 경비대에서 일하고 있던 야만용사(PC)가 찾아와서는 그 검객이 지금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고 보고. 베테랑은 야만용사에게 그 검객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고, 야만용사는 ‘초원의 숫사자 같은 인간’이라고 평가함. 야만용사는 ‘게으르고 암사자를 여럿 끌고 다닐 정도로 여자를 밝히지만, 싸움과 사냥 실력이 뛰어나서 다른 숫자자와의 경쟁에 밀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그렇게 평가한 거였지만 베테랑은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영웅 행세하기 좋아하는 작자’라는 의미로 오해함(...) 그래도 관심이 생겨서, 한 번 검객을 만나보기로 결정하고는 야만용사와 함께 구치소로 이동.
한편, 게으르고 술과 여자 밝히지만 나름 정의감이 없지는 않은(...) 그 PC검객은 왠 칼잡이에게서 여자를 구해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칼잡이가 꽤 힘 있는 귀족 가문 자식이어서 구치소에 갇힌 상태. 그런데 전부터 친분이 있던 성전사(PC)가 검객을 빼내주러 옴. 성전사는 보석금을 내준 뒤 좀 더 건실하게 살아볼 생각 없냐고 잔소리를 시작하지만 검객은 유들유들하게 넘겨버림. 일단 성전사가 지불해준 보석금은 검객이 무슨 일이라도 해서 벌어 갚기로 함. 그 때 내 베테랑과 야만용사가 구치소에 도착.
베테랑은 모험가 길드에서 검객의 보석금을 내준다길래, 신원보증은 자신이 섬으로써 그를 끌어들이려던 참이었지만 한 발 앞서 성전사가 자기 명의로 검객을 빼낸 참이라 입장이 좀 뻘쭘해진 참. 검객의 향후 거취 결정에 대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성전사와 살짝 신경전. 하지만 막상 검객은 중년 아저씨인 베테랑보다 젊은 미녀인 성전사 쪽을 더 마음에 들어함. 결국 보석금은 모험가 조합에서 지불하고 검객은 일해서 그 보석금을 갚되, 마음의 빚은 성전사에게 있는 걸로 결정. 이 과정에서 베테랑은 검객이 난봉꾼 같은 겉보기와는 꽤 머리가 좋다는 걸 느끼고 호승심이 섞인 호감을 가짐. 검객 역시 베테랑이 안심하고 대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걸 느끼고 은근히 경계. 이하는 당시 로그(이름 부분은 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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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객:"아아...... 음...... 그러고 보니 (베테랑)씨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을 못받았네요. 유명한 모험가라는 건 알겠지만. 왜 면식도 없는 절 만나러 온 겁니까? 저 더러운 구치소까지. 그렇게 속 좋아 보이는 분도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라고 말하고 입꼬리를 올립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망자전쟁에도 참전하셨다면서?”
베테랑:느긋하게 쇼파에 몸을 기대면서 파이프를 피워 뭅니다. "이멜린이 조합장이 되기 전까지 알고 지내던 사이기도 했고, 나는 자랑할 것까지는 안되지만 조합 내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편일세. 모험가 노릇 하려면 치안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런데 왠 칼잡이가 귀족가 자제를 백주 대로에서 흠씬 두들겨 패보게, 게다가 그 칼잡이가 조합과도 연줄이 있다니, 이걸 방치하면 조합의 위신 문제가 있네. 마침 이멜린에겐 빚이 있겠다, 어느 정도 명성도 있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거지. 답변이 됐나?"
검객:"오호라...... 모험가 길드를 꽤나 아끼시는군요?"
베테랑:"신뢰로 엮인 관계라고 해두지." 웃으면서 담배 연기를 허공에 훅 뿜어내고, 와인 잔을 기울입니다
검객:"흠.......... 그러면 이번 일은 순전히 모험가 길드에 대한 호의로 하신 일이라는? 과연....... 알겠습니다. 뭐, (성전사)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모험가 길드에 누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라면서 뭔가 안심했다는 듯이 몸의 근육을 풉니다
성전사:"더 나아가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검객:"아~ 그러면 이제 일을 해야하나......... 뭔가 싫구만........." 게으름게으름
베테랑:"말했다시피 길드의 위신 문제도 있지. 그리고 길드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내 이름에도 누가 되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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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객은 대놓고 “이유가 그것 뿐이라면 굳이 나를 구하려고 구치소까지 오지 않았을 거 같은데, 나한테 원하는 게 뭡니까?”라고 질문. 베테랑은 그의 눈치 빠름과 당당한 태도에 호감을 느끼고 역시 솔직하게 “난 자네를 원하네. 자네의 검술, 그리고 나 정도 되는 사람 앞에서도 거리낌 없는 배짱. 그러면서도 필요하면 유들유들하게 그를 감출 수 있는 감각까지. 내 사람보는 눈은 제법 정확한 편이야. 나와 함께 사업을 해보지 않겠나? 돈, 미녀, 실컷 제공해주지. 내겐 그럴 수 있는 위치가 있어." 라고 대답. 옆에서 성전사는 “검객이 지금보다 견실하게 살 수 있다면 좋지만 가능하면 돈과 미녀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걸 배워주면 좋겠다”고 태클 넣지만 베테랑은 “물론 맞는 말씀이지만 그건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문제다, 신들도 스스로의 의지로 선을 이루는 게 더 고귀하다고 여기실 거다”라고 야부리를 텀. 아무튼 검객은 ㅇㅋ하고, 베테랑이 주도하는 모험 일에 뛰어들게 됨. 검객이 뭔가 성실하게 일을 한다면 도울 생각이던 성전사와 모험가 길드에서 검객의 사수 입장이던 야만전사도 자연스레 같이 함께 행동하기로 결정.
첫 세션은 이렇게 끝났다. 개인적으로는 보통 이런 장르에선 ‘여러분은 여관에 모였습니다’라는... 턀갤럼들은 다들 알 만한 관습적인 장면으로 시작해서, ‘얼른 파티 맺고 던전 까러 가야 한다’는 이야기 외적인 이유로 인해서 얼렁 뚱땅 친해졌다고 치고 넘어가는 것과는 달리 서로 은근히 거리 재고 주도권 다툼하는 걸로 시작해서 좋았음. 물론 그게 예상보다 길어지긴 했는데, 그 과정이 재미있어서 괜찮았어. 마스터도 첫 세션이어서 플레이어들이 각자 치고 싶은 대사 다 치게 일단 뒀지만 다음에 또 너무 늘어진다 싶으면 개입해서 당겨야겠다고 하더라고. 이후 이 플레이는 중간에 멤버 교체, 개인 사정으로 빠졌다가 다시 복귀 등을 거치면서 2년 정도 계속 진행됐다. 내 RPG 인생 18년에 걸쳐 가장 즐겁게 한 플레이 중 하나로 남아 있음.
이후 파티원들은 좀 떨어진 광산 지대에서 광부들이 계속해서 변사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내 베테랑 캐릭터 같은... 모험가 길드에서 VIP 취급 받는 고급 인력은 길드에서 자체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일감을 구해다가 전달해 줌. 고급 인력들은 그 중에서 내키는 걸 고를 수 있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떠남. 관심 있는 갤럼 있으면 그 이야기도 풀어보겠음ㅇㅇ 노잼이면 뭐 여기서 끝나는 거고. 밑에 어떤 갤럼이 겁스 던판 이야기는 없냐길래, 전에 재미있게 했던 게 기억났는데 하드 뒤져보니 마침 당시 로그가 남아 있더라고.
관련 옛날 글: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rpg&no=52095
겁.스.조.아
근데 설정보면 겁스 던판 기반인거 같은데 베테랑은 어디나온 템플릿이빈까?
ㄴ한국에 발매 안 된 던전판타지 로드아웃인가 하는 서플에 실려 있다고 함. 컨셉은 뭐든지 평균 이상 하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많은 경험을 두루 쌓은 잡캐. 기본적으로 특성치가 높고 디폴트 판정 페널티가 줄어드는 전용 능력이 있고... 등등. 정확히는 저 플레이할 때 당시에는 기사+도둑 템플릿으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베테랑으로 전환했는데 편의상 그냥 베테랑으로 썼음ㅇㅇ
차회 예고:광산에서 일하던 광부들을 노리는 수수께끼의 연쇄 살인마! 이틀 거리를 2시간 만에 주파하는, 사나이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거대 드릴을 탑재한 채굴머신! 배후에서 암약하는 악신을 숭배하는 사교도! 그리고 던판에서 추리극을 찍기 시작한 안락의자 탐정 PC들! 물론 별로 관심 없다면 안 쓸 수도 있습니다!
겁스 던판도 책 드럽게 많이 나오긴 했다. 역시 trpg는 던전물이면 반이상 먹고 가는구나 ㅋㅋ
겁스추 - dc App
올만이시네여 저 그때 저 사제했던 그 사람임. 잘 지내고 계십니까?
ㄴ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