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세 클론 이야기, 여섯.
“예언을 해석한다고? 당신이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탈리아가 경계하며 말한다.
“글쎄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레인저 요원의 해석을 전달하는 것 뿐이죠.”
물론, 반 정도는 거짓말이다. 주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조합해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고, 거기에 더해 상대방과 호혜적인 관계를 수립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 – 다시 말해 세일즈의 기본에 충실한 태도. 입 안이 바싹 마르는 느낌을 받는 몰레티였지만, 그는 시종일관 미소 지은 표정을 유지한다. 세일즈에서는 잘못을 하더라도 클라이언트를 잃는 정도지만 지금은 목숨이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프라빈이 탈리아와 시선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감사합니다.”
몰레티가 침을 삼킨다. 그레인저는 유니언 내에서 거의 ‘이단’으로 취급될 만큼 현실교란자들 사이에서 온건파로 알려져 있었다. 유니언의 요원으로서는 불리한 점이지만, 최소한 이런 경우에는 그녀의 이름을 대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몰레티가 품에서 작은 직육면체의 물체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는다. 소형 홀로그램 재생기다. 그것이 푸른 빛을 뿜기 시작한다. 홀로그램 재생기가 하은의 기억을 재생하기 시작한다. 탈리아가 그것을 보고 약간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그녀가 스스로 그려낸 그림으로 시선을 옮긴다. 매체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 동일한 기억, 그리고 동일한 예언에 관한 것이다.
“이미 열 번은 더 본 예언이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디테일을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몰레티가 홀로그램 투영기와 싱크된 장갑을 끼고 손을 살짝 돌리자 홀로그램의 재생 속도가 급격히 늦춰진다. 그가 한쪽 주먹을 쥐자 아예 화면이 정지한다. 그가 다른 쪽 손을 당기자 그에 맞춰서 홀로그램이 커진다. 네 사람은 마치 예언의 장면 한 가운데 있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몰레티가 그렇게 생각하며 홀로그램의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테크노크라트와 트래디션 메이지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보는 것 자체는 똑같다. 이야기보다 그림이 낫고, 그림보다 오감을 동시에 자극하는 홀로그램이나 마법적인 매체가 더 낫다.
“저 벽에 있는 것이 보이십니까?”
탈리아가 끄덕인다. 벽에 그려진 심볼과 문자들이다. 탈리아가 그린 그림에도 있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그레인저 요원이 이 심볼들을 해석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습니다. 뜻을 해석하는 것 까진 실패했지만 확실한 건, 이 문자들이 뱀파이어의 것이라는 겁니다. 구버전의 데이터베이스까지 모두 뒤진 모양이더군요.”
“그럼 더 확실하군. 뱀파이어와 관계가 있는 것이...”
탈리아가 말을 멈추더니 표정을 찡그리며 하은에게 다가간다. 그녀의 손이 허공에서 빛나는 단검을 그려낸다. 순식간에 실체화된 단검을 쥔 탈리아가 하은의 어깨를 베어낸다. 외피가 벗겨지고, 그 밑에서 의체 파츠가 드러난다.
“…데미안!”
그녀의 옆의 공간이 갑자기 검은 기운에 물든다. 보고만 있어도 나른한 기분이 드는 새까만 균열이 생겨나 점점 커진다. 그 안에서 졸린 듯한 얼굴을 한 데미안이 상체를 내민다.
“탈리아. 무슨 일이죠?”
“네 예언에 잘못된 점은 없겠지?”
“아뇨. 언제나 그렇듯이, 없습니다.”
데미안이 단언한다. 그의 예언은 틀리지 않는다. 그들이 막지 않으면, 반드시 언젠가 일어나는 일이다.
“…기계덩어리, 그리고 뱀파이어와 관계 있는 힘이라.”
분명 이 예언은 뱀파이어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앞에 있는 하은은 기계부품과 강화된 유기조직으로 이뤄진 몸을 가지고 있다. 피가 아니라 유압액이 혈관에 흐르고, 심장 대신 소형 제네레이터가 전신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계인 것이다. 다시 말해 하은이 이 예언에 나오는 것은, 마치 고래가 사막에서 헤엄치거나 낙타가 심해를 걸어 다니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레인저는 어디있지?”
그녀와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탈리아가 묻는다. 유타나토스는 유니언의 프로파간다와 달리 아무나 죽여대는 미친 자들이 아니다. 만약 이 예언의 이미지가 오독 될 가능성-매우 희귀한 일이지만-이 있다면 반드시 한 번 확인을 해야 한다.
“그게 문제입니다. 지금 그레인저 요원은 인질로 잡혀 있거든요.”
탈리아가 한쪽 눈을 치켜 뜬다.
“당신들이 찾고 있는 노하은에 의해서 말입니다. 이쪽에 있는 요원은 그녀의 클론입니다.”
“…”
잠시 회랑이 침묵 속에 빠진다. 탈리아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데미안에게 지시한다.
“데미안. 이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있겠어?”
“시도는 해보죠.”
그가 눈을 감는다. 마치 잠들 듯, 그의 온몸이 이완되며 축 처진다. 그의 몸은 현실세계에 남아있지만, 그의 정신은 나른한 꿈의 세계로 투영된다.
클론 쪽의 하은이 드리우고 있는 흔적.
데미안이 그 흔적을 훑는다.
“…!”
과연.
무엇인가 있다.
이 흔적을 만들어낸 근원이.
만약 일부러 찾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의 희미한 흔적이 있다.
데미안의 정신이 순식간에 엄청난 거리를 가로지른다. 그의 시야가 수천, 수만의 꿈을 훑는다. 그 중에 분명 이 흔적과 동일한 것이 있다. 데미안이 누군가의 꿈 앞에 멈춘다. 누군가가 작은 독방 안에 갇혀 있는 꿈을 꾸고 있다.
“이건…”
그것은, 하은이었다. 분명 그들과 함께 화랑에 있어야할 하은과 동일한 모습, 다시 말해 동일한 자아 이미지를 지닌 존재가 있는 것이다. 그녀는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마치 고문 받으며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느낌. 데미안이 그녀에게 다가간다.
갑자기, 그녀가 눈을 뜬다. 그녀가 데미안을 향해 손을 뻗어온다. 그녀의 손이 꿈의 경계를 찢어버리고 데미안의 목을 잡는다.
“컥!”
그의 놀라움이 경악으로 커진다. 그의 목을 잡고 있는 하은의 손에서부터 싸늘한 기운이 퍼져 나간다. 그 안에 담겨있는 순수한 공포와 고독이 데미안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한다. 그가 필사적으로 하은의 손을 잡아 떼어내려고 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다.
“쥐새끼가 훔쳐보네?”
그녀가 말하며 데미안의 눈을 들여다본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였지만, 그 목소리만은 악의에 가득 차 있었다.
“아…악몽…?”
그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짠다. 그를 감싸고 있는 따뜻하고, 나른한 기운이 점차 차갑고 뒤틀린 무엇인가로 변해간다. 그가 필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떼어내려 하지만 미동조차 없다. 데미안이 끔찍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의 움브라에 관한 이해는 데미안보다 훨씬 얕을지 몰라도 그것을 찢고, 뒤틀고, 파괴하는데 있어서는 그를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그녀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른 손을 뻗어 데미안의 얼굴을 잡는다.
“그 때 그 예언가네… 좀 아플거야?”
하은의 엄지가 데미안의 오른쪽 눈을 누르기 시작한다. 동시에 데미안의 두뇌에 끔찍한 이미지가 쑤셔 넣어진다.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폭력, 뒤틀린 욕망, 두서없이 내뱉 어지는 말도 안되는 생각들, 폭주하는 이미지와 자극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녀가 벌일 수많은 끔찍한 일들이 그의 두뇌에 강제로 새겨진다. 마치 평소에 그가 보는 예언처럼. 악의와 고통이 그의 머리를 단단히 죄어오는 느낌이다. 순수하게 정신적인 세계인 꿈에서는, 당연히 물리적인 방법이 아닌 이런 정신적인 방법이 훨씬 유효하다.
“아아악!”
데미안의 비명이 날카로운 물결이 되어 퍼져 나간다. 그의 유체의 오른쪽 눈이 완전히 짓눌려 버린다. 그가 필사적으로 몸을, 아니, 정신을 그녀의 손아귀에서 빼낸다. 그가 스스로를 빼낸 것인지, 아니면 하은이 그냥 그를 놓아준 것인지는 알 수 없을 따름이었다. 꿈의 영역에서 스스로를 밀어내는 데미안을 보며 하은이 끔찍한 웃음을 짓는다.
“아악!”
그가 외마디비명과 함께 그의 몸이 있는 현실 세계로 튕겨 나온다. 꿈의 세계로 통하는 검은 통로가 닫히고, 그가 탈리아 옆에 쓰러진다.
“데미안!”
그녀가 데미안을 일으킨다. 경악과 공포로 가득차 있는 그의 눈이 심하게 떨리며 간신히 탈리아를 쳐다본다. 그가 탈리아를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 저들이 맞습니다. 똑같은 얼굴을 한… 원래의…”
탈리아가 됐다는 듯 끄덕인다. 그녀가 몰레티를 올려다본다.
“좋아. 당신들 말이 맞는 것 같군.”
“그렇습니다.”
몰레티가 끄덕인다. 탈리아가 손짓하자 프라빈이 즉시 하은의 목에서 단검을 거둔다.
“이 일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아닙니다.”
몰레티가 속으로 안도한다. 그레인저가 안배해 놓은 그대로 상황이 풀렸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오해가 풀렸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현재 저희 측이 그레인저 감독관을 구출하고 문제의… 대상을 사살하기 위한 작전을 수립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뇨. 안됩니다.”
데미안이 그들의 대화를 끊어버린다. 그는 오른쪽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당신들, 더 많은 사람이 죽기전에 그녀가 있는 곳을 통째로 날려버려야 합니다.”
“데미안?”
“탈리아. 지금의 우리로서는 그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잘해봐야 패러독스가 그녀를 삼킬 때까지 버텨 동귀어진 하는 정도일 겁니다. 당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단언한다. 탈리아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오른다.
“탈리아. 유타나토스에도…”
데미안이 눈의 고통 때문인지 제대로 말을 이어가지 못한다. 테크노크라시에 전술용 열핵폭탄과 양성자 폭탄이 있는 것처럼, 트래디션에도 영혼만을 빨아내 생명체를 전부 죽여버리는 주술과 작은 건물 하나를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날려버릴 수 있는 유물Wonder이 있다. 그런 방법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 다시 말해 데미안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싸워 그녀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
“데미안. 그건 내 독단으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야.”
데미안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의 시선이 몰레티를 향한다.
“…그렇다고 해도, 저희 측의 작전이 취소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탈리아가 끄덕인다. 그녀가 데미안을 바닥에 눕히고 일어난다. 그녀가 마치 선언하듯 말한다.
“그럼 우리의 대화는 여기까지로군. 혹시 우리가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 알려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녀가 허공에서 천천히 손을 휘젓는다. 그녀의 손 끝에서부터 공간이 점점 녹아 내리기 시작한다. 화랑 전체가, 마치 물감으로 그려진 그림이 녹아 내리는 것처럼 흘러내린다. 그 와중에서 멀쩡한 것은 하은과 몰레티 뿐. 몰레티가 아찔한 감각을 느끼며 기괴한 시각적 자극을 버텨낸다. 화랑의 나선형 복도가 그 형상을 잃으며 회색 덩어리가 되고, 그림들이 뭉개져 알아볼 수 없는 색깔의 패턴이 된다. 프라빈과 탈리아, 그리고 데미안의 형상도 알아 볼 수 없는 살색의 그림이 된다. 더 이상 형상과 형상의 경계를 알 수 없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
“…허.”
몰레티가 혀를 찬다. 그들은 어느새 화랑의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몰레티가 재빨리 화랑의 입구였던 낡은 건물의 문을 연다. 그 안은 어느새 낡은 잡동사니가 가득한 창고로 바뀌어 있었다.
“도로시, 괜찮습니까?”
몰레티가 막 일어선 하은에게 다가간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몰레티 요원님.”
“아닙니다. 얼른 복귀하도록 하죠. 지금 아말감에는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하니-”
그가 갑자기 입을 막더니 구석으로 달려가 뭔가를 토해낸다. 역겨운 색의 Anti-G 용액을 전부 토해낸 그가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고중력의 영향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용액이기에 저궤도 셔틀 사용에는 반드시 필요했지만 토해낼 때 느껴지는 그 메스꺼움은 악몽에 가까웠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의체로 바꾸든가 해야겠군요.”
그가 회랑 안에서 볼썽사나운 꼴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수송기를 호출한다. 스타일을 구기긴 했지만, 어쨌든 그는 하은의 목숨을 구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멍청한 놈들.”
호텔 소파에 앉아 얕은 잠을 청하고 있던 오리지널 쪽의 하은이 눈을 뜬다.
“뭐, 하긴 어쩔 수 없네. 요즘은 뭐든지 자기 손으로 해야 하는 시대니까.”
그레인저는 피곤과 고통으로 인해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 하은이 그녀를 쳐다보며 잠깐 밖에 갔다 올 준비를 한다. 일부러 유니언의 감시망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려는 것이다. 그녀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려면 유니언의 시선을 끌어줄 필요가 있었다.
“몰레티 요원님.”
“반갑습니다.”
몰레티가 급하게 결성된 태스크포스의 지휘관과 악수한다. MSF-44 아말감은 전투능력을 상실한 상태이기에, 몰레티는 급히 관할 아말감 및 MSF-44 아말감의 공식적인 지휘 라인을 따라 태스크포스를 마련한 상태였다. 아이보리 타워가 군사 조직은 아니지만, 행정부의 수뇌라고 할 수 있는 위치이기에 간접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태스크포스의 작전 담당자들은 어떻게 요원을 인질로 잡고 있는 네판디를 사살할 것인가를 두고 작전을 짜고 있었다. 몰레티는 그쪽의 전문가는 아니었기에 중간에서 조율역에 불과했다. 막 복귀한 그를 맞아주는 지휘관이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한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 그녀가 머무르고 있는 호텔이 파악되었습니다. 잠깐이지만 저희 측의 감시망에 노출되었습니다. 지금 호텔의 인원들을 대피시키고 초기 진압반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휘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몰레티가 한숨을 쉰다. 아무리 단일 아말감이 해결하기 힘든 규모의 일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태스크포스를 반 억지로 구성한데다가 지휘관인 그레인저가 인질이 된 것은 아말감의 정치적 입지를 매우 위태롭게 하는 일이다. 그로서는 제발 일이 잘 풀리길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돌입 준비 완료.”
호텔 방 앞. 이미 유니언의 태스크포스가 호텔을 장악한 상태였다. 테러범 제압을 위한 준비라는 명목 하에 호텔 종업원들이 각 층을 직접 돌며 투숙객들을 대피시킨 상태. 테러범 제압이라는 명분은, 2000년대에는 정말 잘 통하는 명분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것은 준비 단계에만 해당할 뿐이다. 제압 자체는 전혀 쉬워진 것이 없으니까. 심지어 하은이 스파이 캠 유닛이 들어갈 수 있는 환풍구나 외부 단자 박스 등을 철저히 막아 놓았기에 내부 정탐도 쉽지가 않았다.
“돌입팀, 준비는?”
로비 바깥의 지휘차량에서 현장 지휘관이 묻는다.
“브리칭 준비 완료.”
지휘관이 객실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에 실패했다는 점에 불안함을 느낀다. 상대는 유니언의 전술을 알고 있는 현실교란자라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작전 개시.”
하은이 묵고 있는 방 앞에서 현실교란자 대응팀이 작전을 개시한다. 그 중 한 명이 문에 다가가 도어 브리칭 장비를 부착하려 한다. 기다란 금속 프레임 끝에 폭탄이 달려있는,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장비다.
“철컥.”
그 순간, 문이 열린다. 그 안에서 하은이 태연하게 나타난다.
“안녕하세요?”
당황스러운 광경에 모두가 순간 멈칫한다. 그러나 하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녀가 도어 브리칭 장비를 발로 찬다. 공중에서 반 바퀴 돈 브리칭 장비의 반대편을 손으로 잡은 그녀가 트리거를 당겨 팀원들 가운데서 폭발을 일으킨다.
“퍼엉!”
작은 규모의 폭발과 함께 팀원들이 뒤로 밀려난다. 하은의 손에 들린 칼이 간단하게 제일 앞에 서있던 자의 턱을 밑에서부터 관통한다. 정신을 차린 대원들의 사격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녀가 순식간에 칼을 휘두른다. 두번째, 세번째 희생양의 목이 피를 뿌리며 잘려 나간다. 사격이 시작되지만 아무런 쓸모가 없다. 하은이 작은 체구를 이용해 죽은 희생양들의 몸 뒤에 숨어 사격을 피하고는 목이 잘려 나간 몸뚱아리를 밀어붙이며 뒤로 뛴다. 간신히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온 그녀가 문을 닫는다. 하은이 태연하게 손에 들린 무엇인가를 바닥에 떨어트린다. 즉사한 대원들이 조끼에 달고 있던 수류탄에서 뺀 안전핀이다.
“콰앙!”
폭발음과 함께 문이 들썩인다. 대원들의 몸에 달려 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터진 것이라 문이 버틸 수 있을 정도지만, 좁은 복도에서 그 폭발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낸 대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은이 잠시 기다린 이후 문을 연다. 피와 살점, 그리고 매캐한 화약의 냄새가 방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아, 좋네.”
하은이 미소 짓는다. 그녀가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소형 헤드셋을 턱이 날아간 EC의 귀에서 때어내 착용한다.
“1팀, 상황을 보고하라. 1팀!”
“안녕하세요. 1팀입니다.”
하은이 조롱하듯 말한다.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지금 다 죽이러 갈게요. 걱정 마세요. 시체는 남겨드릴 테니까. 전할 메시지가 있거든요.”
헤드셋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밟아 박살내는 그녀. 통화 추적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듯,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한다. 이내 이시야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하은 양. 무슨 일인가?”
“몇시간 내에 그 쪽으로 갈 테니까, 준비나 해줘요.”
“알겠네. 이 백화점을 멋진 실험실로 만들도록 하지.”
통화가 끊긴다. 본래 숨어 다니기만 하는 네판디가 이렇게 공개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은 절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보통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공식적인 도발, 다른 하나는 원래 목적을 숨기기 위한 것. 하은이 미소 지으며 남은 인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기 위해 발을 옮긴다.
여느 날과 똑같은 백화점의 오후. 몰레티 그룹 소속의 유통업체 및 의상 업체가 다수 입점한 이곳은 오늘도 조용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4층에서 1층을 한참이나 내려다보고 있는 남성을 제외하면 말이다. 어딘가 광기가 느껴지는 그 노인은 캐리어 하나를 옆에 둔 채 똑같은 자세로 1층의 사람들을 훑고 있었다. 마침내 그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껴진 것인지 경비원 중 한 명이 그에게 다가온다.
“실례하겠습니다.”
“아, 젊은이.”
그가 돌아선다. 동양계의 노인이다. 경비원이 소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정중히 묻는다.
“실례지만, 찾는거라도-“
갑자기 노인의 주머니에서 핸드폰 소리가 울린다. 그가 약간 어색한 동작으로 전화를 받는다. 경비원이 짜증을 참으며 그가 통화를 끝내기를 기다린다.
“-알겠네. 이 백화점을 멋진 실험실로 만들도록 하지.”
그의 말과 함께 경비원이 뭔가 수상함을 감지한다. 만일을 대비에 노인을 제압하기 위한 준비를 한 그가 약간 위협적인 말투로 말한다.
“죄송하지만,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말씀 해주셔야겠습니다.”
“오, 젊은이. 내가 하려는 일은 말로 잘 표현이 되지 않아서 말야. 대신 보여주도록 하지.”
그가 말하며 캐리어를 발로 찬다. 갑자기 캐리어가 열리고, 마치 밀가루 봉투가 터지듯 사방으로 흰색 물질이 폭발적으로 퍼져 나간다. 경비원이 순식간에 의식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진다. 쇼핑객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비명 지르기도 전에 수십명의 사람이 혼절하여 바닥으로 쓰러진다. 마치 도시를 훑는 역병처럼 흰 안개가 쇼핑몰의 복도를 훑고 지나간다. 안개에 휩싸인 사람들은 기침과 함께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이시야마가 몇 달 동안 준비한 급성 바이러스가 섞인 생물병기가 그들을 혼수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시야마 본인은 전혀 영향이 없다. 그가 즐거운 듯 말하며 복도를 걷는다.
“자, 다들 깊은 숨을 들이쉬시게. 걱정 말라고, 죽이려는 게 아냐. 한 3, 4일이면 몸 안에서 알아서 분해될 테니까.”
이 정도의 테러라면 유니언이 절대 눈치채지 못 할리 없다. 이시야마가 백화점의 모든 층으로 퍼져 나가는 생물병기를 감상하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익숙한 천장.
에이다가 천천히 눈을 뜬다. 몸에 부착된 각종 센서와 의료장비가 느껴진다. 그녀가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쉰다. 가슴에 입은 자상, 그리고 상당한 높이에서의 낙상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안전하게 회수되어 아직 살아있었다. 원래부터 그녀의 몸을 치료하는데 익숙한 소피아가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일반인보다 훨씬 강인한 그녀라도 정말로 위험했을지도 몰랐다. 그녀의 시야에 침대 옆의 간이 의자에 앉아 있는 누군가가 들어온다.
“…하은 요원? 윽…”
에이다가 몸을 일으키려다가 고통에 다시 눕는다. 에이다가 아무 말없이 앉아있는 그녀를 보며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감지한다. 어딘가 무력감이 느껴지는 하은의 모습.
“진은 어떻게 됐죠?”
“아직 납치당한 상태입니다. 현재 몰레티 요원님이 임시 감독관으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스크포스가 구성되었지만 현재까지는 성과가 없습니다.”
에이다가 끄덕인다. 이미 주력을 상실한 MSF-44 아말감 단독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문제가 커져버린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 병간호라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거고, 뭔가 물어볼 게 있나요?”
에이다가 천장을 쳐다보며 말한다. 하은이 그녀에게 직설적으로 묻는다.
“저는 클론입니까?”
에이다가 고개를 천천히 돌려 하은을 본다. 잠깐의 생각 뒤, 그녀가 대답한다. 일단은 비밀로 하겠다고 했지만, 여기까지 사태가 온 이상 숨겨봐야 이득 될 것이 없을 것이다.
“맞아요. 유전검사와 신경 복사 패턴을 에이팍 소위가 확인했다고 하더군요.”
하은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전신 의체 클론, 터미네이터를 떠올리게 하는 그 이미지에 전혀 맞지 앉을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신경 쓰이나요?”
“예.”
에이다가 다시 천장을 바라본다. 새하얀 의무실의 천장이 정신을 멍하게 한다. 하은의 머릿속에는 단순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질문들이 여럿 떠오르고 있었다. 평소라면 쉴 새 없는 임무 배정으로 인해 그런 생각을 할 만한 여유가 없겠지만 의체의 기능 부전으로 인해 아무런 임무가 없는 지금의 그녀로서는 생각이 폭주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스스로는 도저히 답을 낼 수가 없었다.
“…”
하은이 침묵을 지킨다. 에이다가 그런 그녀를 바라본다. 에이다도 클론이다.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수십명의 클론을 보며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가진 적도 있고, 자신의 생명이 오직 유니언의 의도에 의해 부여 받은 것이라는 점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적도 있다.
“걱정 할 것 없습니다.”
에이다가 조용히 대답한다.
“당신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보통 계몽된 인간을 복제한다고 해서 그 클론 역시 계몽되는 일은 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면…”
에이다가 말하는 것이 힘겨운지 숨을 삼킨다. 가슴 한가운데를 찔린 마당에 말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일 것이다. 그녀가 잠깐 말을 멈춘다.
지금의 에이다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그녀가 W 시리즈 클론 가운데 최초로 계몽된 개체여서가 아니다. 그녀는 클론임에도 불구하고 신뢰하는 친구이자 상사인 사람이 있고, 기계처럼 상부의 결정을 맹신하는 요원도 아니다. 그녀가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 것은, 그녀의 행동이 스스로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힘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면 됩니다.”
하은이 그녀의 말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은 이해가 가지 않을 겁니다.”
에이다가 힘겹게 말한다.
“말과 생각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소리 높여 스스로의 존재를, 스스로의 정체성을 외쳐보아야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설득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극복해야할 장애물을 스스로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넘어섰을 때 이해할 수 있겠죠.”
하은이 간신히 고개를 끄덕인다.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군요. 쉬어야겠습니다.”
에이다가 말꼬리를 흐린다.
“감사합니다. 에이다 요원님.”
하은이 감사의 인사와 함께 자리를 떠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의문은 단 한 점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세상에.”
몰레티가 얼굴을 찡그린다. 호텔에 숨어 있는 오리지널의 하은을 처치하기 위해 출동한 팀은 말 그대로 전멸했다. 초기 진압반은 물론이고 대기 중이던 예비 부대, 지휘부는 물론이요 그들을 돕던 일부 호텔 직원까지 상당수가 중상을 입거나 사망했다. 심지어 그들은 일반인으로 이루어진 부대도 아니었다. 계몽된 요원 및 EC로 이루어진 부대였기에 그 충격은 더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하은은 시체들에 칼로 글자들을 새겨, 메시지, 정확히는 이름을 남겨놓았다. 그 이미지를 전술 정보망을 통해 전달받은 몰레티가 그 이름을 읽는다.
Dorothy.
“도로시… 라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태스크포스의 지휘관이 묻는다. 그러나 몰레티가 고개를 젓는다.
“아뇨.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의 요구사항이 무엇이든, 협상의 여지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지휘관이 끄덕인다. 하은은 인질인 그레인저를 데리고 여유 있게 근처의 백화점으로 위치를 옮긴 상태였다. 오리지널의 하은이 시선을 끄는 동안, 이시야마가 백화점에서 생체병기를 이용해 테러를 저질렀다. 거기에 바이오모프까지 데리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위험성은 더욱 올라간 상태였다. 백화점이 방어에 유리한 지점은 아니지만 민간인이 사방에 쓰러져 있는 상황에서 함부로 공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 부탁합니다.”
“네. 맡겨주십시오.”
지휘관이 끄덕인다. 몰레티가 즉시 한쪽 귀에 헤드셋을 끼고 에이다를 호출한다.
“에이다.”
[네.]
에이다가 보낸 신경 통신망의 메시지가 합성음으로 재생된다.
“미안하지만, 혹시 그녀가 우리측 요원의 이명, 그러니까 ‘도로시’라는 이름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네. 진이 휴게소에서 둘을 만나게 했을 때 저희 측의 하은 요원을 한번 그 이름으로 지칭한 적이 있었습니다.]
“알겠습니다.”
몰레티가 이마를 부여잡는다. 아무리 전술 전문가가 아닌 그라도 그 메시지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클론 쪽의 하은을 보내라, 라는 말. 그것은 다시 말해 그녀와 수십, 수백의 민간인의 목숨을 교환하자는 의미와 마찬가지였다.
그가 고개를 흔든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다. 유니언이 그녀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버티고 있으면 몇 번 스트라이크 팀을 투입하고, 그러고도 제거에 실패하면 아예 건물을 부분적으로 폭파시키거나 하는 과격한 방식으로 그녀를 죽이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수십명이 희생되더라도 지금 그녀를 제거하지 않으면, 또 어디서 엄청난 파괴를 몰고올지 모르니까.
그렇다면 그 의미는 하나다.
오리지널 쪽의 하은은, 클론 쪽의 하은이 명령을 어기고서라도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몰레티가 고개를 젓는다. 하은을 전술 정보망에서 잠깐 격리시킬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고 있었다.
“도로시?”
“몰레티 요원님.”
지휘실을 나가던 몰레티가 하은과 마주친다. 그녀가 묻는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잘 모르겠군요. 아마 상당수의 전투부대를 투입해 제압 시도를 할 것 같습니다만.”
하은이 살짝 고개를 흔든다. 데미안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 일을 했다 가는 인질은 물론이고 전투부대마저도 싸그리 쓸려 나갈 것이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녀는 충동적이지 않습니다. 분명 몇 번 정도는 유니언의 제압 부대를 막아낼 준비가 되어있을 겁니다.”
몰레티가 그녀에게서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그녀는 지금 상황에 대해 물어보려 온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도로시, 괜찮습니까?”
“… 방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맥락 없는 그녀의 말에 당황한다. 그러나, 서서히 그녀의 생각이 이해 가기 시작한다.
“임시 감독관으로서, 현재 전투 임무는 모두 태스크포스에 인계되어 있습니다. 무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좀 더 확실히 말하자면, 현재 MSF-44 아말감 전투요원의 임무는 철저한 정비에만 한정됩니다.”
몰레티가 거의 명령하듯 말한다. 명시적으로 그녀가 사살 및 구출 임무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그로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애초에 그녀를 임무에 보내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동일하니까.
“노하은 요원.”
몰레티가 하은을 본명으로 부른다. 그의 발음은 굉장히 어색했다.
“좀 연습해봤는데, 발음이 어떤지 모르겠군요.”
하은, 하은 하며 이름을 반복하는 몰레티.
“정확한 발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몰레티가 항복하듯 양손을 들어올린다.
“에이, 중국어까지는 좋은 발음이라고 칭찬도 들었는데… 늙었나봅니다.”
그가 하은을 내려다본다. 약간의 고민 끝에, 그가 하은의 질문에 대답한다.
“계몽과학의 힘 없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때도 많습니다. 사실, 그게 대부분이어야 하죠. 하지만 어떤 경우는 계몽과학보다는 스스로의 이해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의 방식에 철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은이 그 말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에이다의 말과 같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지 강한 믿음만으로는 세계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Paradigm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이해로 인한 것이 아닌, 그 이해에 기반함으로써만 가능한 행동Magick에 의해서요.”
몰레티가 말을 이어간다.
“현실교란자들이 쓰는 말 중 의지행사자Willworker라는 말이 있죠.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반 밖에 표현하지 못합니다. 방법을 찾을 수 없다면, 스스로의 이해 방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은이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는다.
“각성한 현실교란자가 되었든 계몽된 정신을 지닌 테크노크라트가 되었든, 그것만은 동일한 것 같더군요.”
그가 말을 멈춘다. 그러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젓는다.
“에이, 무시하셔도 됩니다. 노인네의 주책이니까요. 어쨌든 저는 에이다 요원에게 가봐야겠습니다. 여기서 제가 할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으니.”
그 말과 함께 몰레티가 의무실 쪽으로 걸어간다.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하은은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문득, 하은이 몰레티가 서 있던 자리에서 접힌 종이를 발견하고 줍는다. 그것을 편다.
[코드 M-44-B5]
“…”
하은이 전술 정보망에서 초기 진압팀의 사진을 다시 불러온다.
칼로 피부에 도로시, 라는 이름이 새겨진 시체들.
자신을 부르는 오리지널의 끔찍한 메시지.
탈리아가 그려낸 예언. 수십, 수백이 죽는다.
이해의 방식.
나는, 무엇, 누구인가 하는 의문.
그리고-
“준비는 되었는가?”
어딘가 익숙한, 감정 없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교관The Man이 그녀의 앞에 서있었다.
명백히 현실교란적인 이 상황에도 하은은 당황하지 않는다. 그녀가 살짝, 고개를 젓는다. 그녀는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거기에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임무 참여도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당연히 아말감의 무기고에서 장비를 반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기능 부전의 의체로 아무런 장비도 지니지 못한 채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야한다.
하은이 교관의 형상을 지나 복도를 걷는다.
가야한다. 그녀의 오리지널이 기다리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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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7회까지 이어지는 스토리 아크가 되어버렸다...
7회에 못 끝날거 같은데
두유 노- 노우- 하우- 응?
개추
10화는 찍을 듯
헌하은의 무시무시함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