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한 RPGer을 입문시킨 적 있다.
우연히 웹게임을 통해 된 사람이었는데 글쓰던 사람이라고 해서 한번 떠본 게 반응이 좋았다
그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우리 팀에서 준비중이던 캠페인은 GURPS룰을 썼다.
하이파워 어반판타지 캠페인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시트 작성중에 던질 거라고 생각했다.
의외로 그는 꾸역꾸역 룰북을 읽으며 시트를 작성했다. 첫 시트를 짜는 데는 꼬박 사흘이 걸렸다.
대부분의 첫 GURPS시트가 그렇듯이, 그PC는 사람새끼가 아니었다.
그의 질문은 많았고, 의욕 있는 입문자에 신이 난 GM은 정성껏 답해주었다.
이내 그는 자신이 택한 장점들의 룰적 효과가 서술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게 되었다.
다시 사흘이 지나자 그의 PC는 흠잡을 데 없는 어반판타지 헌터가 되어 있었다.
총기와 폭발물 등의 현대무기를 능숙하게 다루고, 낚시 취미를 가진 청년이었다. 배경은 너무 길어서 따로 뽑아야 했다.
대부분은 사용하는 화기를 어디에 어떻게 보관하는지, 소모분을 어떻게 보급하는지, 자산은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불로소득과 연줄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선 PC를 캠페인 내에 실존하는 한명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많은 고민이 보였다.
그걸 읽은 다른 PL들의 배경도 길어졌다.
GM은 절망했다.
검수와 조율을 마치고 캠페인 첫날. PC들은 괴물의 본거지로 추론된, 시 외곽의 시대착오적인 대형 저택으로 찾아갔다.
저택 담장이 멀찍이 눈에 들어오는 근처의 야산에서, GM은 PL들에게 선언할 것을 물었다.
다양한 선언이 나왔다. 무기에 마법을 건다던가, 저택의 창문을 살핀다던가.
이윽고 입문자의 차례만이 남았고, 우리는 현대무기에 몰빵한 이 헌터가 무엇을 준비할지 기대했다.
그의 시트에는 다양한 총기와 폭발물, 심지어는 박격포도 적혀있었다.
다른 PL들의 눈치를 보며 시트를 점검하던 그가 마침내 첫 선언을 했다.
"쌍안경을 꺼내 담장의 높이를 어림잡아보고, 지도책을 꺼내 가장 가까운 도로까지의 거리를 확인해봅니다"
저택 외부 지도를 준비해두지 않은 GM은 다시 절망했다.
오늘 세션에서, 다른 PL이 가장 가까운 고가도로까지의 거리를 물었다.
어쩐지 그가 떠오르는 날이다.
겁스가 잘못 했네
차라리 벽면별 오르기 속도와 노면별 차량 속도 변화가 제시되어 있는 겁스라 다행이 아니었을까. 음. 어쩌면 그걸 읽어봤기 때문에 저런 선언을 한 것 같기도 하긴 해
겁스가 아니라면 룰적으론 의미 없는 묘사였을테니까 거야...
펑하려고 거리재는건가여
GM이 잘못했네
ㄴㄴ나중에 물어봤더니 담장을 넘는데 몇 턴이 걸릴지와,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한다면 여유시간이 얼마나 있을지 계산해보려 했다고 이야기함
이거 겁스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거잖아?
내외부를 오가는 헌밤이면 지도는 뭐 당연히 있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