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 세 클론 이야기, 일곱.
“몸은 좀 어떻습니까?”
에이다가 고개를 젓는다. 괜찮을리가 없다. 안 그래도 최근 수술에서 회복한지 얼마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비슷한 수준의 부상을 입은 것이다. 엄살 따위는 부리지 않는 그녀가 스스로의 상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좋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하은 요원은?”
“글쎄요.”
애매한 몰레티의 대답에 에이다가 끄덕인다. 그녀도 어렴풋이 하은의 의도를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에 정체성 위기라니. 요즘 애들이 그렇죠 뭐.”
몰레티가 병실 한쪽의 의자에 걸터앉는다.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합니다만.”
두 사람은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애초에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기도 했지만. 몰레티가 마치 기도하듯 말한다.
“그녀에게 맡겼으니Delegation, 잘 되길 바라는 수밖에요.”
에이다가 끄덕인다. 지금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으니까.
“부웅-“
하은이 탄 차량이 속도를 낸다. 그녀가 아말감 내부 통신망에 연결한다. 통신에는 약간의 잡음이 섞여 있었다.
[몰레티 요원님. 태스크포스의 데이터링크와 연결이 완료되었습니다.]
[혹시 그 건물에 들어 놓은 보험이 없나 검색해서 보내줄 테니, 태스크포스의 데이터링크에 공유할 수 있도록 해.]
[보험 말씀이십니까?]
[뭐 비밀 통로라던가… 혹시 진입할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지.]
[알겠습니다.]
태스크포스가 아직도 진입 계획을 짜고 있는 모양이었다. 신디케이트 소속의 회사가 지은 건물 중 상당수가 유니언 소속의 요원이 아니면 엑세스 할 수 없는 숨겨진 통로나 제어 기능을 가지고 있다. 비밀 통로가 EDE의 공격을 막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기습 공격에는 도움이 될 지도 몰랐다. 하은과는 관계 없는 이야기지만.
[그리고 현재 아말감의 지휘하에 있는 보조 부대의 지휘권도 작전 종료까지만 위임하도록 하지.]
[전달하겠습니다.]
[그레인저 감독관의 위치는 따로 파악된 것이 없나?]
[예. 아마도 대상과 같은 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내부의 CCTV나-]
하은이 연결을 종료한다. 몰레티가 자신이 무단 이탈을 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따로 호출하지 않는 다는 것은 그녀의 행위를 묵인하고 있다는 신호다. 어두운 도로를 뚫고 그녀가 쇼핑몰에 도착한다. 사방이 유니언의 지휘 하에 있는 경찰, 특수 부대 및 기자들로 가득하다.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곳에서 테러가 벌어졌으니 당연한 광경이다. 하지만 하은에게 있어서 쇼핑몰에 들어가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녀가 차에서 내린다.
장비를 점검한다. 기능부전의 의체. 그리고 권총 한 자루. 엉망인 준비 상태. 그러나 하은이 개의치 않고 발걸음을 옮긴다.
“…으…”
그레인저가 신음을 내며 깨어난다. 영양 부족과 부상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했다. 묶여 있는 것은 똑같지만, 장소는 다르다. 이번엔 침대가 아니라 사무실이었다. 사무실의 각종 서류철을 볼 때 아마 이곳은 쇼핑몰이나 대형 마트 같은 곳이라고 짐작하는 그레인저. 그녀의 양쪽 손은 의수의 카본 블레이드로 잘라낼 수 없게 교묘한 방식으로 기둥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사무용 의자에 앉아있는 오리지널 쪽의 하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일어났네요?”
“…”
“이제 곧 올거에요.”
어딘가 흥분한 듯한 목소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클론을 유인해 죽이려 하는 것이다.
그 광경의 모순.
어느 쪽이 진짜인가 하면 아마도 유니언의 기준으로는 이쪽일 것이다.
원래의 노하은과 물리학적 계속성을 유지하고, 기억 마저도 멀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이쪽이다. 진짜인 쪽이 스스로가 진짜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찌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그레인저가 말을 꺼낸다.
“당신은 누가 만들었죠?”
“…?”
그레인저의 힘없는 물음에 하은이 돌아본다.
“…당신의 생각은 누가 만들었냐, 그 말이에요.”
그녀가 멍하니 그레인저를 쳐다본다. 그 질문을 이해한 듯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러나 이내 다시 미소 짓는 그녀.
“누구겠어요. 류 국장이지. 시간이 넘치면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해줄텐데.”
그레인저가 대답하지 않은 채 눈을 감는다.
예상하고 있었다. 거짓말일 확률도 생각해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정황상 그럴 확률은 사실상 없었다. 만약 이 모든 것을 꾸미고 있는 것이 류 국장이라면? 끔찍한 가능성이 그레인저의 생각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런 그녀를 뒤로 하고 하은이 사무실을 나선다.
“그럼 기다리고 있어요. 가짜랑 같이 사이 좋게 수술대에 눕혀드릴 테니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힌다. 어둠 속에서 그레인저가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또 다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만다.
“안녕?”
그녀의 오리지널이 2층 난간에 걸터앉아 인사한다. 하은이 그녀를 올려다본다. 쇼핑몰 곳곳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이유로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역시 왔네? 그것도 혼자 말야.”
오리지널이 냉소적으로 말한다.
“뭐… 당연히 오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말야. 새 이름도 있더라, 도로시?”
하은이 오리지널을 올려다본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절대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같은 것은 생김새 뿐. 그것도 아주 표면적인 외모 뿐이다.
기억.
이해의 방식.
욕구.
목표.
소속.
그리고 아마 곧 생사까지.
“!”
하은이 먼저 뛰어오른다. 기능부전이라 하더라도 그녀의 의체는 오리지널의 육체보다 훨씬 강인하다. 의체의 인공근육이 바닥을 차고, 그녀의 몸이 2층 난간으로 쇄도한다. 그러나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오리지널이 먼저 뒤쪽으로 덤블링해 그녀를 피한다.
“콰직!”
난간이 형편없는 모양으로 박살난다.
-딸깍.
“콰앙!”
하은이 폭발에 휩싸인다. 오리지널이 앉아있던 곳에 설치된 부비트랩이 폭발한 것이다. 호텔에서 유니언의 초기 대응팀을 죽이고 가져온 폭발물을 이용한 급조된 함정. 기둥 위에 숨어 폭발을 피한 그녀가 걸어 나오며 여유롭게 말한다.
“네 생각을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더 강한 육체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최대한 근접해 격투전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상식이다. 상대방이 현실교란자라 하더라도 격투전은 프리미움 피하 장갑과 최신형 의체를 지닌 하은에게 훨씬 유리하다.
그렇다면 하은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접근할 것을 역이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
폭염속에서 하은이 걸어 나온다. 수류탄 몇 개 분량의 폭발을 영거리에서 받아내고도 멀쩡할리가 없다. 그녀의 HUD가 관절부 및 충격흡수장치의 기능 이상을 알린다. 그러나 오리지널은 전혀 그녀의 사정을 봐줄 의향이 없는 듯 했다. 그것은 하은도 마찬가지다.
하은이 그녀에게 돌진해온다. 오리지널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허리춤에서 또 하나의 수류탄을 꺼내 하은에게 던진다. 하은의 내장 HUD가 정확히 수류탄의 위치를 포착한다. 거리와 폭발시간을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공격이다. 그녀가 즉시 가장 많은 피하 장갑이 집중된 팔로 얼굴의 정면을 가린다.
그러나, 폭발은 없다.
“가짜야, 그거.”
조롱하는 목소리. 스스로의 팔로 인해 시야가 가려진 하은의 사각으로 오리지널이 뛰어들어온다. 근접 거리에서 하은의 얼굴을 향해 기관단총 사격이 쏟아진다. 그러나 타격은 없다. 하은이 근접해온 그녀를 잡기위해 손을 뻗지만 약간의 차이로 빗나간다. 오리지널이 재빨리 다이브하듯 뛰어 또 다른 기둥 뒤로 숨는다.
“콰앙!”
그녀가 스쳐 지나가며 하은의 허리에 접착해 둔 수류탄이 터진다. 또 한번의 영거리에서의 직격. 그녀의 몸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진다. 첫번째의 수류탄이나, 기관단총 사격은 그녀의 시야를 가리기 위한 디코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쇼핑몰은 정말 멋진 곳이야. 안 그래? 생활용품점만 싹 쓸어도 점착 수류탄이라던가, 부비트랩 같은 걸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무릎을 꿇은 하은을 내려다보며 오리지널이 즐겁게 말한다. 하은이 천천히 일어난다. 오리지널이 탄창이 빈 기관단총을 바닥에 던진다. 입고 있던 집업 후드를 벗어 던지자 아무런 장식도 없는 민소매 트레이닝 복이 드러난다. 그 밑으로는 스포츠 레깅스와 아웃도어용의 유틸리티 벨트. 벨트에는 손전등을 비롯한 여러가지 잡다한 물건들이 꽂혀 있었다.
“자, 이제 아무런 무기도 없네? 아, 이것만 빼고 말야.”
오리지널이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든다. 하은이 그녀를 주시한다.
“왜? 안 싸우게? 항복은 안 받아 줄 건데?”
너무 무모했나, 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희생자의 수를 하나 더 늘리는 일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안 오네?”
오리지널이 다가온다.
“그럼 내가 가야지.”
하은이 경계하며 권총을 꺼내 든다. 조준이 정확히 오리지널의 이마에 맞춰지는 순간.
철컹-
쇳소리와 함께 쇼핑몰의 불이 모조리 꺼진다. 하은의 인공 시야가 어둠에 적응하기 위해 광증폭식 나이트 비전으로 자동으로 전환된다.
팟-
그러나 마치 그것을 예상한 듯 오리지널이 고강도의 UR 손전등을 그녀의 얼굴에 정면으로 비춘다. 나이트 비전의 광증폭 센서가 오버로드 되며 하은의 시야가 일순간 하얘진다. 하은이 시야를 일반 시야로 강제 전환한다. 그 시야 한가운데 길쭉한 드라이버의 모습이 들어온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안구에 드라이버가 박힌다. 프리미움 합금으로 제작된 안구 뒤쪽의 두개골을 뚫지는 못했지만 시야가 순식간에 흔들리고 신경계에 피드백이 온다. 전술망이 오류를 띄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하은이 드라이버를 들고 있던 오리지널의 손목을 잡아챈다. 시야를 빼앗기고 의체의 기능이 저하되어도 일단 붙잡은 이상 격투전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녀의 승리다. 하은이 손목을 끌어당긴다.
“…?”
그러나 그녀의 손에는 아무런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질척이는 액체가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손에 들려 있던 손전등이 떨어지는 소리가 겹친다.
“…아프네.”
거리를 벌린 오리지널이 중얼거린다. 그녀의 손에 들린 칼에서는 그녀의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스스로의 손을 잘라낸 것이다.
“너한테 잡히면 끝장이지. 안 그래?”
오리지널이 힘들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한테 잡혀도 항상 이런 식의 해결책이 있지.”
그녀가 거의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말한다. 하은이 그녀의 손을 던져버리고 그녀에게 돌진해온다.
“봐주는 거 없어, 이제.”
오리지널의 멀쩡한 팔을 핏빛 연기 같은 것이 감싼다. 그녀가 칼을 들어올린다. 하은이 바닥에 떨어진 손전등의 빛을 빌려 그녀의 머리를 조준한다. 연달아 발사되는 총알. 그러나 총탄은 그녀를 감싼 연기에 닿자마자 녹슬고 부스러져 조각난다. 총을 버린 하은이 그녀에게 뛰어든다.
“파직!”
스파크가 튄다.
오리지널이 휘두른 칼에 의체의 오른팔이 팔꿈치 밑으로 잘려 나간다. 아주 정확하게, 프리미움 피하 장갑이 장착되지 않은 관절부만을 노린 공격. 하은의 마음에 경악의 감정이 남아 있다면, 아마 지금 느끼는 기분이 그것일 것이다. 그녀가 거리를 벌린다. 이제 근접 격투에 들어가도 이길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다.
“아, 내가 안 알려줬나? 난 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아예 눈 앞에서 봤다고. 어디가 약점이고, 어디가 아닌지 잘 알고있지.”
“…”
하은이 자세를 바로잡는다.
“누가 날 만들었지?”
“당연히 류 국장이지.”
하은의 오리지널이 비웃듯 대답한다.
“이유는?”
“글쎄. 널 지키기 위해서라는데? 아니, 나였나? 뭐 상관없지.”
“…”
“내가 보기엔 미친 게 아닐까 싶은데. 뭐 NWO의 어르신들이 다 그렇지 않겠어?”
오리지널이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온다. 하은이 한걸음 물러난다.
“왜. 이기지 못할 것 같아?”
그녀의 질문에 하은이 한걸음 더 물러선다. 그 말 그대로였다. 아까 손목을 잡혀준 게 일부러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거기에 현실교란적인 힘을 더한 지금은 절대 자신이 이길 것이라 장담할 수 없었다.
유일한 돌파구는 의체를 이용한 유효타. 단 한번만 적중시키면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원거리에서의 공격은 현실교란적인 수법에 의해 막힌다.
근거리에서 싸우는 것은 의체의 약점을 공략당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속도의 이점은 마찬가지로 현실교란적인 수단에 의해 상쇄된다.
패러독스가 그녀를 덮칠 때까지 기다린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데미안의 말처럼 운이 좋아봐야 동귀어진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네가 왜 못 이기는지 알려줄까?”
오리지널의 조롱하는 듯한 말.
“이번에는 힌트 따위가 없거든. 안 그래?”
오리지널이 손이 잘려 나간 팔을 들어올리며 말한다. 어느새 흘러나온 피가 마치 괴물의 혀 같은 형상을 한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잘 생각해보라고. 처음 괴물놈을 처치했을 때 맨손으로 갑각을 깨버렸잖아? 왜냐하면 웨더스 소령이 그 부분을 노렸을 거라는걸 알고 있으니까. 이시야마한테서 탈출할 때도 그랬지. 이 세상에 라디오랑 연필로 감옥에서 탈출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녀가 칼로 하은을 가리킨다.
“그렇지 않아?”
대답하지 않지만, 하은은 그녀의 말이 옳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유타나토스의 암살자를 상대로 비행기에서 탈출했을 때도, 머로더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던 텐을 진정시켰을 때도 그녀는 고난이도의 프로시져를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항상 실마리가 있었다. 몰레티의 충고, 텐 본인의 절규.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다.
\"알겠어? 넌 그러니까… 말하자면 부정행위자Cheater 같은 거라고. 안 그래?”
그녀가 비웃으며 말한다. 동시에 오리지널의 몸에 파괴적인 힘이 깃든다. 바닥에 떨어진 손전등의 빛에 그녀의 몸을 감싸기 시작한 붉은 기운이 드러난다. 공기중을 녹슨 철과 피의 냄새가 채우기 시작한다. 하은이 가용한 모든 에너지를 동체의 움직임에 집중시킨다. 그녀가 질주한다. 왼손이 고열로 달아오른다.
“그래! 죽으러 오라고!”
전혀 겁내지 않는 표정으로 외치는 오리지널. 그녀가 칼을 든 채 하은에게 달려든다. 하은의 HUD에 차원이상을 알리는 표시가 나타난다. 동시에 오리지널의 뒤편에 희미한 형상이 나타난다. 교관The Man과는 정 반대의 존재. 오리지널과 그 존재가 동시에 하은에게 손을 뻗는다. 공간, 그리고 거리의 개념, 모두가 동의하는 규칙 그 자체가 손 끝에서 무너진다.
가까워야 하는 것이 멀어지고, 멀어져야 하는 것이 가까워진다.
단단하게 묶인 분자 결합의 규칙 그 자체가 파괴된다.
가속도와 힘의 법칙이 뒤틀리고 그 영향이 그대로 하은을 덮친다.
“콰직!”
제대로 포착하지조차 못했다.
엄청난 충격. 그녀의 의체가 공중을 날아 옷가게 한편에 서있는 마네킹에 부딪힌다. 마네킹은 약간 흔들렸을 뿐, 멀쩡하다. 멀쩡하지 않은 것은 그 발치에 떨어진 하은이다. 하은의 센서가 복부 파츠가 1/3정도 날아갔음을 알린다. 보조 동력을 포함한 다수의 시스템이 기능을 중단한다. 그녀가 간신히 균형을 잡지만 그 뿐이다.
“이제 알았어? 멋지게 풀어낼 수 있는 퍼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오리지널이 갑자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조용해진 쇼핑몰에 울린다.
“이 세상은 기껏해야 무너지고 있는 바벨탑에 불과하다고.”
그녀가 엉망이 된 옷가게를 헤치고는 동력계 이상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하은에게 다가온다.
“…유언이라도?”
그녀가 하은의 앞에 선다. 경멸과 조소의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오리지널.
끝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태라면 버티는 것 조차 불가능 할 것이다.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얼마나 더 싸울 수 있을까. 아까 같은 공격을 단 한번만 더 당하면 그때는 즉사다. 어떻게 해야하지.
어떻게.
“없나보네.”
오리지널이 천천히 칼을 들어올린다. 그 주위에, 모든 것을 풀어헤쳐 무로 돌리는 엔트로피의 힘이 깃든다.
죽음이 머지 않은 순간.
정말, 이상하리만큼 쓸데없는 질문이 떠오른다.
마네킹이 왜 넘어지지 않은거지?
“정말이야? 다시 생각해보라고. 확실히 전해줄테니까.”
그러나 하은은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스스로에게 황당할 정도로 쓸데 없는 질문을 던진다.
일반인이 부딪혀도 넘어지는 마네킹이, 바닥에 고정되었다고 해도 무거운 의체가 부딪혔는데 멀쩡히 서있을 수 있는 이유는…?
하은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린다. 그녀가 입을 연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몰레티와 노먼이 나누던 대화가 스쳐 지나간다.
[-혹시 그 건물에 들어 놓은 보험이 없나 검색해서 보내줄 테니, 태스크포스의 데이터링크에 공유할 수 있도록 해.]
[어떤 보험 말씀이십니까?]
[뭐 비밀 통로라던가… 혹시 진입할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지.]
하은의 시선이 마네킹의 발목으로 향한다. 몰레티 그룹, 이라는 글자가 산업용 폰트로 새겨져 있었다. 어쩌면 유언이 될 지도 모를 그녀의 말이 힘겹게 새어 나온다.
“…코드 M-44-B5.”
“뭐?”
그러나 오리지널의 질문에 대답하듯,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마네킹에서 금속성의 소리가 크게 울린다. 플라스틱 껍데기를 박살내고 인간형의 무엇인가가 뛰쳐나온다. 마치 인형 같은 모습을 한, 암살 및 침투용의 자율 로봇인 히트마크Hitmark다. 동시에 오리지널의 근처에 서있던 마네킹이 조각나며 그 안에 있던 또 다른 히트마크가 달려든다. 아마도 경량화 버전으로 리퍼비시된 히트마크가 신디케이트 측으로 넘겨져,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심어진 보험Hidden Feature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히트마크 두 기가 순식간에 오리지널의 양 팔을 단단히 잡는다.
“제기랄!”
오리지널이 소리지르자 그녀를 감싸고 있던 붉은 기운이 강력한 파동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순식간에 옷 가게 안의 옷들이 흐물흐물해지더니 고온에 노출된 것처럼 녹아버리고, 옷걸이들은 한순간에 조각나 형체를 잃는다. 건물 기둥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유리창이 박살나 사방으로 조각이 흩뿌려지며 바닥이 갈라진다.
“사라져!”
절규.
이 세계는 풀어낼 수도, 고칠 수도 없다는 확신. 그것이 영혼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리는 저주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히트마크를 감싼 프리미움 장갑이 순식간에 박살나고, 센서를 가리고 있던 렌즈가 조각난다. 아무리 경량형이라지만 웬만한 현실교란자도 쉽사리 저지할 수 없는 히트마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힘 앞에서는 무력하다.
만약 히트마크 둘 뿐이었다면 그랬겠지만.
“!”
하은이 전력을 다해 그녀에게 달려든다. 히트마크들은 증발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오리지널의 양 팔을 놓지 않는다. 그녀의 손이 묶인 틈을 타 하은이 달려들어 고열로 달아오른 의수로 그녀의 얼굴 반쪽을 단단히 잡는다. 그러나 오리지널의 피부와 뼈가 녹아 내리는 중에도 파괴 그 자체인 파동은 멈추지 않는다.
“죽여 버리겠어!”
비명 지르는 그녀. 그것이 두 사람 주위의 공간 그 자체를 찢어발긴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마치 깨진 퍼즐 조각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갈라져 나간다. 프리미움 외장이 완전히 찢겨 나간 히트마크들이 분자단위로 조각나 사라진다. 하은의 피하장갑은 간신히 그것을 버텨내지만 의체의 관절부는 그렇지 않다. 그녀의 한쪽 다리가 완전히 기능을 상실한다. 하은의 몸이 무너진다. 그녀에게서 간신히 벗어난 오리지널이 반쪽이 무너진 흉측한 얼굴로 외치며 칼을 빼든다.
“죽어! 죽으란-“
그녀가 말을 끝내지 못하고 피를 토한다. 그녀의 멀쩡한 팔에 공간을 찢고 있는 것과 동일한 무늬의 금이 간다. 그 무늬가 순식간에 손 끝에 도달한다. 칼을 이루고 있던 금속까지 침범한 그 무늬. 순식간에 칼이 깨져 나가며 그녀의 몸에 금속 조각이 박힌다.
패러독스Paradox. 현실의 억압.
아직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할 정도Quiet는 아니다. 그러나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하은이 기능이 남은 한쪽 다리로 뛰어 그녀와 엉켜든다. 동시에 또 다시 공간이 찢어지기 시작한다. 지지대를 잃은 바닥이 무너진다. 거의 농구장 크기만한 면적. 콘크리트, 철근, 그리고 조각난 바닥재가 섞인 잔해가 그들의 모습과 오리지널의 절규를 순식간에 지워버린다. 무너진 잔해가 바닥에 충돌하며 사방으로 파편을 튀긴다. 엄청난 양의 먼지가 피어 오른다.
이어지는 것은 침묵 뿐. 하은, 그리고 오리지널 그 어느 쪽도 잔해에서 일어서지 않는다. 뒤늦게 이변을 알아챈 태스크포스가 건물에 진입하는 소리만이 들릴 뿐.
“툭.”
누군가 줄을 끊는 소리에 그레인저가 깨어난다. 그 앞에 있는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탈리아?”
“몰레티란 자에게서 이야기는 들었어.”
“몰레티가…”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하지만 왜 유니언의 일원이 아니라 탈리아가 그녀를 구하러 온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힘겨운 목소리로 묻는다.
“왜 날 구하러 왔죠?”
“방금까지 두 사람의 싸움을 관찰하고 있었거든.”
그레인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탈리아가 태평하게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것은-
“그래. 아무래도 우리는 더 이상 노하은을 쫓을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오해로 인한 피해는 사과하지.”
“제게 하나 빚진 걸로 해두죠.”
“…흥. 네 부하는 살아있어. 빠르게 구해내는게 좋을거야.”
탈리아가 무심하게 말하고는 사무실 한 켠의 싸구려 그림으로 다가간다. 그녀가 마치 원래부터 그 그림의 일부분이었던 것처럼, 그림과 하나가 되어 사라진다. 그레인저가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아직 그녀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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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는 몸이 성치 않아 조금 짧습니다..
신디케이트는 실제로 신디케이트 소속 회사들이 만든 물품에 숨겨진 기능을 많이 넣어놓습니다. 자폭기능, 바리케이트, 건물의 비밀 통로, 비밀 창고, 고화력 업그레이드(?) 등등... 가이드 투 테크노크라시 Hidden Feature 참고!
히트마크 어쩼든 사람 아니었나 - dc App
마게추
아프다니 어쩔 수 없군. 몸조리 잘하고 낫는대로 팔편을 올리도록
마게 추
재밌었어요
히트마크는 로봇임 / 물론 인간을 베이스로 해서 만든 개체도 있음. 메이지 잡아다가 세뇌된 정신 베이스로 만든것도 있고 (아틀라스 시리즈. NWO 컨벤션북 엽편에 나옴. M20 에보면 ㅈ망했다고 한문장 나옴..)
20대 중반에 정체성 위기 - dc App
오리지널 하은의 패션이 엄청남 - dc App
I against i
왜 오리지널이 주인공 보장을 못 받는거죠
ㄴ 왜냐하면 분량에서 밀려서 주인공에서 밀려났기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