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는 어떤 존재인가?
“이 TRPG 시스템 어때?” 라는 질문은 수많은 방법으로 답해볼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이 시스템을 통해 어떤 존재를 플레이하게 되는가” 입니다.
예를 들어 D&D는 던전을 돌파하고 드래곤의 목을 따는 중세 판타지적 영웅을 떠오르게 하며,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는 음울하고 섹시한 도시의 포식자, 그러나 내면의 야수성에 괴로워하고 인간과 괴물 사이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종잡지 못해 고뇌하는 뱀파이어를 내세우며,
CoC는 장엄하고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한낱 먼지에 불과한,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아둥바둥 하는 (그러나 아둥바둥 하는 먼지도 결국 먼지임) 탐사자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렇다면, 메이지를 통해 어떤 존재를 플레이 하게 될까요? M20의 서문에 나온 문장을 보도록 합시다.
<...간단히 말해, 메이지는 의지의 힘을 통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 자신의 힘에 각성한 이 존재들은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지극히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하는 행동들은 말 그대로 세상을 바꾸어 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힘에는 엄청난 자부심Pride, 광신Fanaticism, 그리고 타락이 함께합니다. 이러한 힘은 메이지를 다른 메이지와, 세상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으로 몰아붙입니다. 그들의 강대한 의지가 파괴의 힘으로 바뀌게 되죠.>
세상이 자신의 믿음과 의지에 의해 바뀐다.
이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메이지의 테마는 희망, 그리고 변화Hope and Transformation입니다. 현실에서 우리의 나약한 모습 - 주어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메이지는 “주어진 것”에 동의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동의할 수 없는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 아예 세상을 자신이 보는 방식으로 바꾸고자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거울의 방과 비슷합니다. 메이지가 자신의 모습을 현실에 반영시키면, 현실 역시 메이지에게 무언가 반영하곤 합니다. 따라서 메이지의 무드는 도전Defiance, 그리고 반영Reflection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하면서 벌써 머리가 지끈지끈 하시겠죠. 상상해봅시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유튜브를 보는데 “지구가 둥글다는 사람들.” 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있네요? 뭐지? 하면서 보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저명한 교수가 나와 -그 중 한명은 심지어 여러분의 은사입니다!- 복잡한 수식과 다이어그램을 그려가며 지구가 둥글 경우 발생하는 물리학적 모순과, 지구가 평평하지 않으면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청중들은 모두 끄덕입니다.
..???
뭐야, 이게 뭔데? 라고 생각하면서 찾아봅니다.
세상에, 하루 아침에 세계가 뒤집.. 아니 평평해졌습니다. 교과서는 지구의 평평함을 증명하는 경험칙과 여러가지 실험 내용을 서술하고 있고, 다큐멘터리에서는 “지구 구체설”을 주장하는 사이비 과학자 같은 사람들을 촬영하며 은연중에 그들을 비웃습니다.
..?? 아니 이게 어떻게 된거야 말도 안된다고!! 지구는 평평한게 아니라 둥글단 말이야!!!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고 엉망인 일입니까? 세상에, 지구가 평평하다니. 여러분이 직접 손을 들어 계산을 하고 관측 데이터를 제시해도 사람들은 조작된 결과라며 무시하고 여러분을 비웃습니다.
메이지가 보는 세계는 이렇습니다. 메이지의 눈에는 이 세계가 잘못되어 보입니다. 세계가 평평하다니요? 미친거 아닙니까? 세계는 둥글다고요! 둥글단 말이야!!!!!
그러나 여러분은 단순히 지구 구체설을 주장하는 사이비 과학자가 아닙니다.
각성하지 않은 사이비 과학자는 이 평평한 세계에서 바다 끝까지 배를 몰고가면 슉, 하고 떨어집니다. 으어어 ㅂㅂ안녕~ 하지만 여러분에게는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지구 가장자리로 가면 그냥 끝없는 폭포로 떨어질 뿐이지만, 여러분이 스스로 제작한 지도와 나름 계산한 항로로 배를 몰고 가면
지구의 반대편에서 튀어나옵니다!!! 말도 안돼!!! 라고 사람들이 비명 지르겠지요.
하지만 여러분의 눈에는 너무 당연합니다. 아니, 지구가 구체인데 당연히 그냥 반대편으로 스무스하게 항해하는거지 뭔… 바보 들인가? 이런 생각을 하겠죠. 물론 지도 제작하는건 좀 골치아팠지만.
잠시만 읽기를 멈추고 이 상황에 스스로를 이입해봅시다.
말이 됩니까?
세계가 구체인걸 나도 알고 나도 알고 그리고 나도 아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모르죠? 이 세상은 어딘가 잘못됐습니다!
이 세상을 바꿔야해!
그러나 다시 한번 분노를 가라앉히고 생각해봅시다. 수없는 설전과 그 와중에 평정심을 잃어 싸움을 벌이는건 그냥 예사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거쳐야하는 과정, 엄청난 양의 미디어 대결, 지구평평론자들의 신변 위협, 기득권을 지키려는 교과서 저작자들… 그 모든 것과 싸워야하는 것이 여러분입니다. 현실을 바꾸는 것은 그만큼 어렵습니다. 사실,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하나씩 해봅시다. 손에 잡히는 것부터. 옆 동네 괴물 처리하기, 마법 하나 제대로 못써서 끙끙대는 동료 도와주기, 정령들의 부탁 들어주기 등등… 그것 조차 어려울 것 같나요?
하지만 괜찮아요! 희망을 가져요!
여러분은 이 망할 놈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배타고 세계일주”를 할 수 있는 존재, 메이지니까요!
어… 그래서 이걸로 뭘 해야되는데요?
;;
메이지를 플레이하고자 하는 스토리 텔러와 플레이어들이 맞닥뜨리는 제일 첫번째 문제는 이것입니다. (솔직히 다음편에 나올 두번째 문제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만…) 그래서, 이런 캐릭터로 뭘 할건데요? 지금 당장 움브라로 승천! 해서 하이퍼이코노믹스 실험 같은걸 할 순 없잖아요.
놀랍게도, 그냥 적당한 어반 판타지 스토리 훅을 가져다 대면 다 돌아가는게 메이지입니다.
테크노크라시에게 납치당한 친구 구하기.
뱀파이어가 된 가족이 보호를 요청해 오는 상황.
옆동네 메이지와의 나와바리 싸움.
하수도에 뭔가 있다고 도움을 요청해 오는 뉴욕의 정령(;).
우리 카발이 마법 쓰는 방식을 따라하는 오컬트 모임을 취재해서 비웃음으로 만들려는 유튜버 겁주기.
양자역학의 새 이론을 두고 벌어지는 프로파간다 대결.
등등…
저의 경험에 따르면, 메이지는 아주 넓은 범위의 소재를 커버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믿음에 따라 정해지는” 세계에서 무슨 일이 못 일어나겠습니까? 우주선을 타고 다니면서 외계인을 사냥하는 메이지와 유니콘을 타고 하수도에서 중세 마상시합을 하는 존재들이 공존하는 곳이 메이지 세계관입니다. 허허허허.
따라서, 메이지에게 있어서 무엇을 플레이하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메이지를 플레이할 때는 어떻게 플레이하냐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플레이해야하는가?
다시 한번 메이지가 어떤 존재인지 상기해봅시다.
메이지는 인식에 기반한 존재입니다. 그의 권능은 물론 의지에서 나오지만, 그 전에 그의 권능이 어떤 모습인가라는 점에 있어서, 메이지의 현실 인식 - 다시 말해 패러다임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메이지가 다른 어반 판타지와 가지는 차별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현실과 모순될 수도 있는 현실 인식을 가진 존재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리고 그 존재들은 다른 존재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는가?
물론 다른 어반 판타지 룰에도 이런 요소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핵심으로 두고 있는 룰은 메이지 뿐입니다 (아마도). 다시 말해, 메이지를 플레이할 때는 이야기의 진행에 있어서 당위성을 부여하는 요인인 현실 인식을 마음에 두고 플레이해야 합니다. 따라서, 메이지 플레이를 성립시키는 것은 서로 다른 인식을 지닌 존재인 PC들을 조율시키는 ST에게 무게가 쏠리지만, 플레이를 진행시키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무게가 쏠리게 됩니다.
스토리텔러가 던져주는 흥미로운 소재거리를 두고 (한계가 있는) 권능을 지닌, 그것도 나름의 색채와 사상, 그리고 고유한 인식으로 칠해진 지닌 권능을 가진 존재가 어떻게 -그리고 왜- 행동하는가, 에 염두를 두고 진행한다면 흥미로운 메이지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갈곳 없는 고아들이 살고 있는 고아원을 철거 하러 온 철거업자들을 생각해보세요. 원장님이 몇번이나 안된다고 막아보지만, 다음에는 정말 철거될 것 같습니다.
고아 중 막 각성한 아이가 그 상황을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이 세상은 어둠이 내려 앉은 옛 시대의 아름다운 잔재입니다. 모든 것에게는 존재 이유와 아름다움이 있으며, 누구에게나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신적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왜 싸우는걸까? 이 세상은 한꺼풀만 들추면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녀가 비오는 와중에 마당으로 나가 막 피어나고 있는 꽃을 몸으로 지켜줍니다.
다음날 고아원을 철거하러 온 아저씨들이 꽃 옆에서 배시시 웃고 있는 소녀를 봅니다. 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있습니다. 누가 키워준 것도 아니고, 어제 소녀가 몸으로 지켜준 것 밖에 없는데도요. 식물학자가 와서 검사하면 누가 비료를 주고 보살핀 것도 아닌데 이런식으로 꽃이 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겁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비슷한 일을 해봐야 아저씨들은 당장 콰콰쾅 하고 철거를 시작할겁니다.
그러나 소녀는 다릅니다. 그녀는 깨어난 자니까요. 그녀의 모습에 항상 찌들어만 살았던 아저씨들의 마음에도 한송이 꽃이 피는 것 같습니다. 그 모습에 우물쭈물하던 그들은 내일은 꼭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가버립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찾아오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이런 방식이 모든 일에 통할까요?
아저씨들은 최소한 집에 가면 귀여운 애기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지켜야할 것이 있고, 누군가를 사랑합니다. 그랬기에 소녀와 그녀가 지키던 꽃의 모습에서 아름다움, 그리고 진정 중요한 것을 발견하고 물러간거겠죠.
이번에는 자신이 지키려고 했던 고아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합니다.
한번도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아름다움과 ‘진정으로 중요한 것’ 같은 말이 통할까요?
소녀가 자신의 현실 인식과 모순되는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그 현실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요? 아니, 돌파 할 수 있긴 한걸까요?
D20 모던이라면 얍 받아라 참 퍼슨 얍 받아라 이얍 도미네이트 퍼슨! 으로 이런 난관을 돌파할 수 있을테고, 솔직히 말하면 D20 모던에는 이런 주제를 등장시키기에는 좀 뻑적지근한 감이 있죠. 룰이 구리다는건 절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 그냥 적합하지가 않은 것 뿐입니다. 거기에 메이지는 이러한 드라마를 만드는 요소들을 아예 룰에 통합시켜 놓고 있습니다. 마치 뱀파이어가 휴매니티 스탯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요.
이러한 현실 인식과 모순의 주제 말고도, 현실 인식과 메이지 본인 사이에 일어나는 모순 역시 좋은 소재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메이지는 패러다임을 포함한 존재지, 패러다임 그 자체가 아니니까요. 무한한 순환의 바퀴를 돌리고자하는 유타나토스 메이지가, 자신의 동생이 미래의 언젠가 네판디가 될 것을 알게 된다면? 기술이야말로 유일한 진실이어야한다고 생각하는 테크노크랏 앞에, 언제나 그의 목표에 맞는 조언을 제시하는 정령 - 즉 현실 교란적 존재가 나타난다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거나 목표를 달성하거나 인간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지키는 것과, 자신의 현실인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다시 말해 승천- 것, 그 중에 무엇이 중요합니까?
이제 아셨을 겁니다.
메이지는 권능의 존재를 다루거나 비밀결사를 운영하는 게임이기 이전에, 개별 존재의 휴먼 드라마입니다. (플레이로 들어가면 “개별 메이지”에만 집중하는 것도 안 좋은 일입니다. 이건 다음편에..)
메이지의 룰은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데 방점을 두고 제작된 룰입니다. 예를 들어 패러독스는 현실 인식의 모순과 한계를 이야기에 넣기 위해, 그리고 개별 메이지가 스스로의 방식에 걸맞으면서도 교묘함을 담은 마법을 짜낼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우선 존재하는 것이고, 밸런스를 잡는 면은 메카닉적인 부분입니다. “트래디션 메이지들은 맨날 패러독스 처먹으니 빨리 멸종해야 할것 ㅋㅋ” 같은 소리를 하기 위함은 더욱더 아닙니다...
이런 손이 많이 가는 주제를 핵심으로 삼고 있기에, 국내 국외 가리지 않고 메이지는 하기 까다롭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좋은 룰이 어쩌다가 Maybe A Game Engine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그 개선 방안 + 플레이 팁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면책조항: 이 글은 단 한번도 메이지를 플레이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썼으며, 중간 중간 나오는 “경험에 의한” 어쩌고는 다 뇌피셜입니다. 아 맞다 그리고 답은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이고 트래디션 빨갱이는 전부 "소각"되어야함.
요새 올라오는 메이지 낚시글인 줄 알았는데 진지한거였네
추천 먹어라 얍!
근데 이 아이피... 메이지맨이니?
Neat
아이피가 마게맨이네.
그리고 다음편이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패러다임과 현실이 충돌하는데 패러다임을 우선해서 믿을 수 있다는것이 너무나 병신같고...
빵상할매 같은게 실례로 존재하는데 안될이유가
뭐이렇게 구구절절하냐. 할게 못됨. 한마디면 리뷰끝임.
내가 알기론 현실이 패러다임에 종속되어있고 메이지들은 그 패러다임에 일반인과는 비교도 안되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그게 되는 거 아닌가
너가 믿는 것들은 현실과 그리 잘 부합하냐?
근데 진짜 구구절절하다 안좋은 의미로...
여러분 메이지가 이렇게 해롭습니다.
좋아, 다음 플은 메이지를 돌려야겠어!
개추다 개추
가끔씩 정상으로 돌아오는 마게맨
대다네
좋은 글이다. 이해 쉽게 잘 썼네... - dc App
제발 다음편 좀;;;
다음편, 다음편,다음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