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보아라 나의 제자야. 그래, 오늘의 카일린도 수련은 없다. 뭔 눈을 멀뚱히 뜨고 있느냐. 카일린도를 그리 좋아하시는 분이 오늘따라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흠, 내 오늘 너에게 한 이야기를 해 주려 한다. 이것으로 너가 무언갈 깨닿길 바란다. 네가 오늘 여기 이 자리에서 들을 짧은 이야기는 너에게 100일의 수련 이상으로 널 강하게 해 줄수도 있다. 하하, 꼬리가 축 내려앉는 것이 보이는구나. 또 수련이냐고? 이 녀석, 내 누누히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의 삶은 연속된 수련이며 일어나는 모든 우연한 일이 너의 스승이 되어줄 거라고 말이다. 아직도 이리 깨닳음이 부족하니 언제야 제 몫을 할꼬?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다. 어허, 꼬리 흔들지 말아라. 눈에 별빛이 초롱초롱한게 왜 우리 부족인지 알 정도구나. 그래, 이건 내 이야기다. 내가 살아온 기록이다. 내 비록 여전히 부족하고 아둔하지만 내가 걸어온 발자국이 너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제법 된 이야기다. 그러고보니 벌써 백년 가까이 되었구나. 내가 아직 늑대였던 시절, 사냥으로 허기를 채우고 동굴에서 비를 피하던 시절이지. 나는 하늘의 높음을 알았지만 왜 별이 반짝이는지 알지못했다. 땅이 넓음을 알았지만 왜 무수히 많은 생명이 걷는지 몰랐었다. 내 기억속엔 부모가 없었고 아주 작은 새끼였던 시절부터 난 홀로 살았다. 누구도 내게 사냥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내게 숨는 법, 쫒는 법, 사냥하고 갈무리 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난폭하게 숨었고 어지럽게 달렸으며 고통스럽게 물어뜯었다. 굶주림만이 내가 언제나 함께하는 감각이었고 내 외의 다른 생들은 적 아니면 먹이였을 뿐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인간들을 아주 증오했다. 그들은 내가 먹을 식량을 먼저 채어갔고 내가 가까이 다가오면 나를 죽이려 들고 그들이 내게 가까이 다가오면 나를 잡으려 했다. 언제나 그들의 손과 목을 송곳니로 꿰뚫으며 아마 내 다리가 더이상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내가 목덜미를 물어뜯은 사슴처럼 될 때까지 영원히 그러리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밤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동안 먹지못해 굶주려 있었다. 입에 넣고 채울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좋았다. 그렇게 사방을 쏘다녔다. 그러던 중 길 하나를 발견했다. 길에서 사람 냄새가 나는 걸로 보아 나는 이 길 끝에 분명 먹음직스런 사냥감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길을 따라 올라갔다. 길은 산 끝까지 이어져 있었고 나는 지쳐갔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산을 올랐다. 산 위에는 작은 암자가 세워져 있었다. 거기서 인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지. 밤에도 빛나는 걸 보아 불을 피운 게 분명해 무서웠지만 그래도 나는 다가갔다. 그만큼 나는 절박했다. 


작은 암자 안에는 말라빠진 중 하나가 경을 읇고 있었다. 물론 나는 당시에 중이 무엇인지 경이 어떤 것인지 알지못했다. 단지 실망했다. 그 중은 너무 마르고 늙어서 질기고 냄새나며 먹을 것도 별로 없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짝 머뭇거린 찰나, 중은 뒤를 돌아 나를 보았다. 나의 싯누런 눈동자와 그의 검은 눈동자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그 늙고 병든 몸뚱아리 안에 움푹 들어간 무심한 눈동자엔 무수한 별이 떠 있었다. 그는 육체의 고통에서 벗어난 충만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 있어 그것은 공포였다. 응? 왜 무서웠냐고? 그것은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었단다. 당시의 나는 육신의 감각에 지배당한 짐승이었고 원초적인 쾌락과 고통만을 느끼고 갈구하며 살아왔었지. 그러나 그의 작은 머리엔 우주가 깃들어 있었고 본능과 감각 이상의 위대함이 만월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는 기가 죽어 꼬리를 내렸다. 목을 떨고 귀를 접었다. 


그 중은 으레 인간들이 나를 보면 보여주던 그 어떤 감정도 보여주지 않았다. 공포, 혐오, 호기심, 증오, 그리고 지배욕. 그 무엇도 거기에 없었다. 그저 평온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그는 방 안의 광주리에서 쌀을 한그릇 퍼와 내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금 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 늙음 몸에서 나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청아하고 당당한 목소리였지. 나는 그 모습을 단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엔 달이 휘영청 떠 있었고 별싸라기들은 검은 하늘 저편까지 흩어져 저마다의 광채를 내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암자와 숲을 가볍게 휘감았고 벌레소리, 새소리와 경을 읽는 목소리가 잔잔하게 세계를 채우고 있었다. 더이상 나는 배고프지 않았다. 완벽한 세계가 있었고 그 완벽함은 내게 처음으로 감동이란 것을 주었다. 만상만물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던 그날 밤, 나는 변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나는 이따금 그의 암자에 들리고는 했다. 사냥을 위해서도, 잠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그가 경을 읽는 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저 눈을 감고 소리를 들으면 내 안이 충만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를 찾아갔고 그럴때마다 중은 나를 위해 물 한그릇을 준비해 놓거나 얼기설기 엮은 돗자리를 깔아둬 내가 편히 감상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신경쓰지 않는 듯 나를 등 뒤에 놓은채 경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나는 이 세계가 영원할 거라 믿었다.


어느날 밤, 늘 그렇듯 나는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경을 읇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난폭한 고함과 격앙한 목소리만이 있었다. 항급히 뛰어 올라가자 무장한 사냥꾼들이 중을 붙잡아 때리고 있었다. 나는 엄청난 분노에 휩싸였다. 나도 모르게, 아니 이건 사실이 아니구나. 나는 분명한 증오와 함께 중을 때리던 우악스런 손을 물었다. 그의 피가 입 안을 적시자 머릿속엔 더이상 완벽한 세계에 대한 감동이 아닌 오로지 짐승의 분노만이 있었다. 그의 비명소리가 귀를 때리자 주체할 수 없는 살육의 쾌감이 솟아올랐다. 그의 손을 물어뜯으려 했지만 내게 물린 사냥꾼의 동료가 나를 걷어차고 나를 밀어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고통, 분노, 증오, 파괴욕, 가학심, 슬픔 같은 감정들이 내 영혼과 정신을 잔인하게 뒤틀고 있었던 것이었지. 그들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날 후려치고 발로 걷어차고 칼로 찔러대었다. 나는 그때 죽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내게 무심한 눈길만을 던지던 그 중은 나를 감싸안았다. 내게 와야 할 모든 고통을 본인이 대신 받은 것이었다. 지팡이가 그를 치면 뼈가 부러졌고 발로 걷어차면 내장이 찢어졌다. 칼로 찌른 상처마다 피가 흘러나왔다. 그 때,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별을 담은 눈동자는 내가 한번도 경험 해 본 적이 없는 감정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제서야 그 감정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구나. 그것은 연민, 나를 불쌍히 어기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그 아름다운 빛이 잠시 유성처럼 반짝이다 검은 하늘 안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각성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냥꾼들의 시체는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당시 내 각성을 감지하고 찾아온 내 스승님의 말씀에 따르면 - 그래 네 사조이신 분 말이다 - 나는 중의 시체를 부여잡고 하염없이 달을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고 하셨다. 


그 이후로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도저히 터져나오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조그만 고통이나 자극에도 미쳐 날뛰었고 그 때마다 내 스승님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 둘 생겼다. 그럼에도 스승님은 나를 부모가 자식에게 그러듯 사랑하셨지만 도저히 나를 제지하지 못 하셨다. 나는 필시 힘겨운 학생이었을게다. 그렇게 어영부영 다시금 몇년이 지났다.


나는 스승님의 명을 따라 근처 산에서 발호하고 있는 대오공의 악의 씌인 마인들을 저지하기 위해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카일린도를 쓸 수 없었지만 타고난 힘과 기운이 좋아 큰 힘을 쓰지 않고도 어지간한 마인은 처리할 수 있었지. 하지만 내 머릿속은 언제나 수천 수만개의 부정적인 감정이 폭발하는 퍼졌다 사라짐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문득 나는 걷고 있는 길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배로 암자로 이어지는 그 길이었지. 나는 무심코 그 길을 따라 걸었다. 4개의 발이 아닌 두개의 다리로 말이다. 


암자에 도착하자 모든 것이 여전했다. 암자는 여전히 낡아 있었지만 어쨌든 서 있었고 하늘엔 아름다운달과 별이, 사방엔 부드러운 바람과 벌레소리, 새소리로 채워져 있었지. 하지만 무엇이 부족했는지 알겠느냐? 그래 바로 중의 경 읽는 소리였다. 중의 낭랑한 목소리대신 삭토가 바람에 구르는 소리만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완벽한 세계 또한 사라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왜 이 완벽했던 세계가 망가졌는지를. 


왜인 것 같으냐? 중이 죽어서? 글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구나. 경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방금 전 대답과 다를 게 없구나. 내가 거기서 얻은 깨달음은 이것이었다. 바로 힘, 힘의 부족함이었다. 내가 중을 지킬 수 없었기에, 그의 세계를, 그가 만들어 낸 조화를 유지할 힘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완벽한 세계가 무너지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내 분노에 함부러 사로잡히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분노는 오로지 나를 약하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보아라 제자야. 이 세상은 본디 조화로 가득하다. 만물의 존재함은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그 필요성이 서로 온전히 연결되어 작동할 때 세계는 진정으로 완전해진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증오로, 파괴적인 감정으로 다른 것들을 대하는 자들이 있다. 그것은 부조화다. 이 부조화는 완전한 균형의 조각을 부수어 연결된 모든 것들을 망쳐버리고야 만다. 부조화와 조화가 동등함이 조화로움이 아니다. 부조화가 없는 상태야 말로 조화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카일린도를 배우는 것이다. 분노와 의지가 균형을 이룰 때,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완전히 제어하고 만물을 받아들일 때 세상은 좀 더 서로 어우러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힘이 있다. 누군가는 그 힘을 공부하는데 사용하여 지혜를 탐구할 수 있다. 누군가는 그 힘으로 서로의 평화를 유지시킬 수 있겠지. 누군가는 은밀하게 그 힘으로 조화를 만들어 낼테고. 그리고 누군가는 공부한 지혜를 퍼트리며 서로를 가르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가장 큰 분노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들은 그 힘으로 부조화를 일으키는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는 붓글씨를 쓰지 않는다. 우리는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뛰어다니지 않는다.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파를 튕기며 경을 낭송하지 않는다. 우리는 금강저를 입에 물고 삿된 것들을 부순다. 우리는 파괴함으로서 생성한다. 난폭한 태풍이 몰아닥치면 나무는 으스러지고 바위는 깎여나가고 다양한 생물들이 죽을 것이다. 하지만 썩은 웅덩이엔 새 물이 채워지고 녹슨 대지에 양분이 스며든다. 언제나 우리는 태풍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그래, 재미없는 이야기를 듣느라 수고했다. 부디 이 이야기가 네게 도움이 되길 바라마. 뭐? 지금 피가 끓어서 당장 카일린도를 수련하고 싶다고? 녀석아, 안 그래도 내일 곡소리가 나게 해 줄테니 얼렁 잠에 들어라."



가능한 한 트라이브 북처럼 써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