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학원 다니려고 모아둔 돈이ㄹ-”
그러나 그 말은 무참하게 짓밟힌다. 고아라는 것은, 원래 그렇다.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서러움을 떠나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여러명의 여학생에게 둘러쌓여 채이고 구타당하는 그녀. 그 와중에도 품에 안은 봉투는 끝까지 지키려하지만 역부족이다.
“이, 이것만은-”
이미 쓰러진 그녀가 어깨를 채이며 말을 잇지 못한다. 그 다음은 배다. 배에 발길질이 꽂히자 신물이 올라온다. 동시에 몸에서 힘이 풀리며 어떻게든 품에 안고있던 돈봉투가 땅에 떨어진다. 그녀를 괴롭히던 학생중 한명이 봉투를 잽싸게 채간다.
“제.. 제발..”
그녀가 힘없이 말하지만 잔뜩 두들겨 맞은 탓에 말을 끝내는 것조차 힘겹다. 진작 줄것이지, 애비도 없는게, 라는 말들이 들려오지만 머리속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눈 앞이 팽팽 도는 것 같다.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쓰디 쓴 느낌, 억울함, 무력감-
“돌려..줘…”
그녀가 바닥을 기어 봉투를 가지고 있는 학생의 발목을 잡지만, 무참히 채일 뿐이다.
“제… 발…”
“아, 좀!”
누군가 짜증난다는 듯이 외치며 그녀를 다시 짓밟기 시작한다. 다른 학생들도 동조해 그녀를 구타한다. 그녀가 어떻게든 덜 맞기 위해 몸을 웅크린다. 고통, 계속 되는 고통, 하소연 할 수 없는 슬픔, 새장에 갇힌 듯한 느낌, 갈 곳 없는 답답함.
“꺼지라고!”
괴로움, 모멸감, 그리고 자괴감.
손을 뻗지만 또 다시 채일 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이제는 생존 본능만이 남아 있는 느낌.
절망, 공포, 미움, 그리고
분노.
그녀가 비명 지른다. 동시에 그녀의 몸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한다. 옷이 찢어지고, 피부가 가죽으로 변해간다. 비명은 순식간에 짐승의 괴성이 된다. 인간의 눈이 살기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담는다. 인간의 몸을 찢어발길 수 있는 손톱과 엄청난 근육. 동시에 방금까지만 해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던 학생들이 혼비백산하며 뒤로 물러난다. 그들 중 몇몇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 나머지는 공포에 질려Delirium 주저앉는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괴롭힘 당하던 학생은 온데간데 없고 늑대의 형상을 한 괴물만이 있을 뿐. 그것의 시선이 학생들, 아니, 적을 훝는다.
미치겠네.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하은이 상황을 대충 파악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알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가만히 놔뒀다가는 다섯명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은이 거의 뛰어내리다시피 계단과 사다리를 내려간다.
그래, 재밌긴 하겠다.
하은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짧은 생각. 그녀의 생각일까, 아니면 인형의 생각일까. 그것과 동시에 엄청난 후회가 밀려오지만 이미 이 일에 뛰어든 이상 그녀가 지체하지 않고 쇼핑백에서 술병을 꺼내 늑대인간 쪽으로 던진다.
“쨍그랑!”
바닥에서 깨지는 유리병. 알코올 냄새가 공기중을 채운다. 벌벌 떨면서 도망가는 학생들을 덮치려고 했던 늑대인간이 그 소리를 듣고 그녀에게 방향을 돌린다. 그 뿐만 아니다. 알코올의 강렬한 향기가 발달된 후각을 통해 늑대인간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들의 시선이 교차한다. 하은이 침묵을 지키며 늑대인간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녀가 한손을 들어 까딱인다.
그래, 이쪽을 보란 말야. 여기에서 내가 제일 위험하니까. 그렇지?
늑대인간이 본능에 따라 위험을 배제하고자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하은보다 몇배는 빠른 속도. 하은이 지체하지 않고 전속력으로 뛰어 체육관 문을 열어젖히며 뛰어든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긴다. 늑대인간이 밖에서 문을 내려치자 경첩이 찌그러진다. 늑대인간의 날카로운 손톱이 나무를 박살내며 뚫고 들어온다. 하은이 안쪽의 철문까지 닫고 잠근뒤 마지막으로 체육관 안쪽의 문까지 닫는다. 그러나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진짜 미치겠네.
하은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홱, 하고 고개를 돌린다. 늑대인간을 잠시라도 묶어둘 수 있을만한 곳이라면-
“저쪽이네.”
하은의 인형Avatar이 속삭인다. 하은이 뛰어가 “창고” 라고 쓰인 매우 오래된 문 앞에 선다. 머리핀을 빼서 편 후 문 틈 사이에 집어넣고 위로 당기자 걸쇠가 풀리며 문이 열린다. 옛날에 지어진 건물의 문이라 이렇게 간단하게 열 수 있는 것이리라. 그 안은 온갖 쓰지 않는 구형 교보재를 넣어놓는 창고였다. 어찌나 빽빽히 쌓여있는지 하은의 작은 체구로도 안쪽으로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그녀가 창고 안에 쌓여있는 뜀틀, 공, 시상대, 커튼, 부러진 기구 등을 둘러본다.
하은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
-그녀에게는, 세가지의 방법Magic이 있다.
하나는 혼돈으로 가득찬 수수께끼와 퍼즐을 자아내는 것. 그곳에 들어선 자가 제대로 된 방법으로 수수께끼를 풀어내지 않고, 올바른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함정에 빠지게 된다. 다시 말해, 질서를 심지 못하는 자들은 그대로 창조의 혼돈을 뒤집어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은이 온몸의 힘을 동원해 필사적으로 기구들을 밀고 당긴다. 그녀의 머릿속에 얼기설기 그려진 설계대로 일련의 함정과 방해물들이 완성된다. 그 동작에는 한치의 망설임이나 오류도 없다. 거의 비현실적인 속도로 순식간에 바뀌는 기구들의 위치. 눈 깜짝할새에 매이는 매듭. 기구들을 치우고 나서야 바깥으로 이어진 창문이 드러난다. 하은이 재빨리 창문을 열고 뛰어나가려 한다.
“콰앙!”
늑대인간이 문을 부수고 들어온다. 그 시선 끝에 바깥쪽 벽의 작은 창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는 하은이 보인다. 늑대인간이 뛰어들자마자 낮은 뜀틀에 걸쳐진 판자를 밟는다. 그 반대편에 놓여져 있었던 무거운 기구들이 공중으로 날아 오르며 어깨와 얼굴에 부딪힌다. 하은이 그 모습을 보며 반대편의 창문으로 기어나간다. 늑대인간이 그녀를 잡기위해 돌진해 오지만 이번에는 그 사이에 놓은 기구 두개에 묶인 줄넘기 줄에 걸린다. 부러진 철봉 모양의 기구가 딸려오며 늑대인간의 다리를 강타한다. “나 홀로 집에”의 호러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
실질적인 피해는 없다. 하지만 확실히 시간을 벌수는 있다. 기구가 무너져 늑대인간 위에 쏟아지고 진로를 방해한다. 순식간에 기구들은 나뭇조각이 되고 찌그러진 쇳덩이가 되어 창고 안을 날아다닌다. 하은이 간신히 창문으로 탈출하자마자 늑대인간이 창문에 달려들어 팔을 뻗는다. 아슬아슬하게 리치에서 벗어난 그녀. 늑대인간이 분노의 괴성을 지른다.
늑대인간이 기구를 차며 체육관 밖으로 뛰쳐나온다. 하은의 모습을 찾는 그녀에게 보란듯, 갑자기 공사 현장에서 밝은 불이 켜진다. 자신을 향한 두 개의 불빛을 향해 늑대인간이 지체하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든다. 분노에 휩싸인 파괴의 질주.
“크오오!”
다른 하나는 주어진 문제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풀어’ 내는 것이다. 주위의 모든 사물을 살피고 그것을 이용하여 비상식적인 방법으로라도 목표를 달성하는 것.
공사장의 빛 역시 늑대인간을 향해 달려온다. 공사 현장에 남겨진 덤프트럭이다. 눈이 멀것 같은 밝기의 상향등을 비추어 늑대인간의 시야를 가리며 돌진해오는 트럭. 그 운전석에는 하은이 타고 있었다. 열쇠는 어떻게 구한 것일까. 사무소에서 훔쳐왔을 수도, 열선점화로 시동을 걸었을 수도 아니면 운전수가 깜빡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은 본인에게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그녀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트럭을 몰아간다. 그녀의 거침없는 운전에 덤프트럭이 그대로 늑대인간을 덮친다.
“콰앙!”
그대로 체육관 벽으로 늑대인간을 밀어붙이는 트럭. 벽이 함몰될 기세로 부딪힌다. 그 사이에 낀 늑대인간이 괴성을 지른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
몇번이나 부딪혔을까. 괴성이 사라지고 나서야 하은이 트럭에서 내린다. 트럭과 박살난 벽 사이에 낀 괴물에게 하은이 다가간다. 어깨에 아직도 찢어진 교복 조각이 걸려있는 늑대인간. 인간이라면 시체마저도 알아볼 수 없을만한 충격이지만 늑대인간은 그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피부가 터져나가고 근육이 파열된 상태지만 그 공포스러운 모습은 여전하다. 하은이 한숨을 쉬며 한 발자국 더 다가간다.
-!
“크오오!”
늑대인간이 비현실적인 괴력으로 트럭을 밀어내며 하은을 향해 팔을 뻗어온다. 하은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커진다. 그녀의 머리위에서 내려쳐지는 늑대인간의 손톱. 하은의 두뇌가 어떻게든 피할 방법을 찾는다. 그녀에게는 하이퍼테크 디바이스도, 괴물의 힘도 없다. 순간의 망설임 이후 그녀가 결론을 내린다.
주어진 힌트, 주어진 수단, 주어진 틀 내에서만 문제를 풀어야 하는 건 아니다. 지금의 하은은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를 풀 것도 없이 답지를 들춰보는 방법이 있으니까. 말하자면, 부정행위Vulgar Magic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오직 하나만이 정답이다. 늑대인간 이상의 파괴력.
하은의 뒤에서 교관The Man의 모습이 나타난다. 무신경한 그의 동작과 하은의 동작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녀의 손날이 자신을 내려치는 팔을 향해 휘둘러진다.
“퍼억-”
고기가 잔뜩 든 비닐봉투가 터지는 듯한 느낌. 늑대인간의 손목이 그대로 잘려나가 박살난 벽 틈 사이에 떨어진다. 그녀의 동작이 멈추지 않고 트럭과 벽 사이에 끼어있는 늑대인간의 옆구리를 친다. 단단한 피부와 살점이 찢겨져 나간다. 늑대인간이 이번에야말로 단말마와 함께 축 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속도로 회복해가는 상처.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Werewolf과 가까이서 싸우면 안돼요. 일이 틀어지면 바로 도망쳐요.
소피아의 오래전 충고를 떠올리는 하은. 그 말은 하나도 틀린데가 없었다. 이 속도로 덤프트럭에 치이면 웬만한 동물은 그대로 납작해 질 것이다. 그러나 이 늑대인간은 덤프트럭에 몇번이나 치이고, 불가사의한 힘을 담은 공격에 팔 하나가 날아가고 옆구리가 터지고 나서야 무력화 된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늑대인간은 상처를 회복하며 서서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방금까지의 모습이 무색하게 평범한 여학생의 모습이 드러난다. 트럭과 벽 틈 사이에서 빼내는 것이 어렵지 않을 정도로 작아진 체구.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지.”
하은이 주위를 둘러본다. 수를 세보니 그녀를 괴롭히던 학생들은 전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널부러져 있던가 멀찍이 도망가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냥 떠날 수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여기서 죽여야 하나.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겉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지고 만다. 하은이 결론을 내리고는 한숨을 쉬며 쇼핑백에서 옷을 꺼낸다.
하은이 원룸의 침대를 바라본다. 얌전하게 누워있는 중학생. 옷까지 다 찢어진 아이를 경찰이 출동하기 전에 데리고 나오는 것과 늑대인간과의 싸움 둘 중 어느쪽이 더 어려운 일인지 모를 일이었다. 백화점에 갔다온 덕분에 어떻게든 옷을 입혀, 학교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옮기고 나서야 만취했다고 둘러대고 택시를 태워 올 수 있었다. 술과 옷을 사온게 이런 방향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한숨을 쉬며 바닥에 걸터 앉는다. 얼떨결에 데려오기는 했지만 어떻게해야할지 모를 노릇이다. 지금이야 멀쩡하게 자고 있지만 언제 괴물로 변할지도 모르는 판이고. 유니언 소속이었다면 얼씨구나 하고 프로제니터가 데려가겠지만 지금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하은이 잠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꺼낸다. 링크트인에 들어가 적당한 가짜 아이디를 만들어 로그인 한 후, 이름을 검색한다.
[김인혁]
당연하지만 있다. 구인 구직, 그리고 프로페셔널들을 위한 SNS인 만큼 어느정도 위치에 올라있는, 그것도 홍콩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프로필이 올라와있기 마련이다. 유니언의 프론트라인 제약 회사에서 근무하는 성공적인 프로페셔널이자 늑대인간이라는 이중적인 인물. 그라면 하은에게 도움을 주고도 남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가 하은에게 빚지는 일일지도 모르지. 하은이 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연락바람. N.HE.]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갑자기 핸드폰의 화면이 새까매진다. 회색 노이즈가 화면을 채우더니 갑자기 통화 화면으로 전환된다. 마법이나 하이퍼테크가 아닌 늑대인간들만의 기상천외한 술법이다. 아마도 역추적을 방지하기 위함이겠지. 하은이 조용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노하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하은씨. 오랜만입니다.”
“네. 잘 지내셨나 보네요.”
“그럭저럭입니다. 홍콩은 공기가 안 좋기로 유명해서요.”
그가 여러가지 의미를 담아 말한다.
“어쨌든, 무슨일이죠? 상사분들이 지시한 거라도?”
“회사에선 잘렸어요.”
잠시 인혁이 당황한 듯 말을 잇지 못한다. 물론 두 사람은 서로가 속해있고 속해있었던 조직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회사’라는 명칭은 그 애매함을 지칭하기 위한 단어다. 그러나 세계 뒤에서 암약하는 거대 그림자 정부에서 해고된다는 상황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 인혁이 이내 아이러니하다는 투로 묻는다.
“평생 직장인 줄 알았는데요.”
‘평생 직장’이라는 말에는 담긴 꺼림칙한 의미. 하은이 전화 너머로 쓴 웃음을 짓는다. 하은이 상황을 설명한다. 지금 자신의 방에 늑대인간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꽤나 오래걸렸지만 인혁은 빠르게 상황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최초의 변신First Change를 겪는 가루우는 다른 가루우들이 지켜보고 있다가 무리에 소속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말 희귀한 경우 -사실 가루우의 적이 도처에 널려있음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과정이 방해받는 경우가 있다. 겁에 질린 새로운 가루우가 인도 받지 못한다면 어떤 난장판에 휘말릴지는 불보듯 뻔한 일. 그렇게 될 경우 문제가 얼마나 커질지는 무리Pack을 이끌고 있는 자라면 생각하기도 싫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적들이 꾸민 계획이로군요. 그 이상을 말씀드리기는 곤란하지만, 곧 그 친구를 회수해올 인원들을 보내도록 하죠. 적당히 사건을 덮을 인원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은 저희 영향력이 매우 약해서요.”
늑대인간보다 기업가나 장교에 어울리는 말투.
“상당히 드문 일인데… 많은 사상자가 나올뻔 했군요.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걸 아신거죠?”
“제가 알아낸 건 아닙니다만.”
인혁이 이해했다는 듯 대답한다. 그는 질서의 정령이 하은을 돕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뭔가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오늘 의외의 일이 많이 일어나는군요. 물어보시죠.”
하은이 머뭇거리며 묻는다.
“그때 말씀한 그…”
“정령 말입니까?”
늑대인간의 성격인지 아니면 성공한 프로페셔널로서의 성격인지 그가 막힘 없이 물어온다. 성공한 제약회사의 중진이 ‘정령’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네. 왜 하필 저죠?”
“정령들의 의도와 행위는 인간보다 한단계 위에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편견에서 자유로우면서도 그들만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죠. 정말로 인간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들은 편협한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다른가 보군요.”
하은이 전화 너머에서 말없이 끄덕인다.
하은은 “인류의 안위를 지킨다” 라던가, “질서를 유지한다” 등에는 사실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무엇인가 목표가 주어질 때 그것을 제일 효과적으로 이뤄낼 수단을 찾아내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제일 중립적으로 정령의 필요에 부합할 수 있는 자다.
“그렇겠죠. 고맙습니다.”
“아뇨. 감사는 이쪽에서. 그럼.”
전화가 끊어진다. 통화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이제는 이런 기묘한 상황에도 익숙하다. 그녀가 일어선다.
“탁.”
하은이 찬장 안쪽의 불을 켠다.
찬장 안쪽에는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퍼즐들이 가득하다. 하은이 그 중 하나를 뜯는다. 자물쇠 모양의 금속제 퍼즐. 서점 같은 곳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것. 그녀가 찬찬히 퍼즐을 돌려본다.
당기고, 풀어낸다. 눈으로만 봐도 알 수 있는 물리법칙 안에서만 움직여도 풀리는 퍼즐은 쉽기 그지없다. 처음 해보는 사람이라면 하루는 꼬박 걸릴만한 퍼즐이지만 하은에게는 쉽다. 고리 하나를 제끼고, 처음 볼때는 보이지 않을 궤적을 따라 고리를 꺼낸다. 찰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퍼즐이 풀린다.
질서.
하은의 손이 움직인다. 그녀의 손 안에서 퍼즐이 다시 조립된다. 분명 물리법칙을 따르는 것 같은데도 어딘가 비현실적인 구조. 얼핏 보기에는 간단하게 풀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하나의 고리를 당기면 예상치 못한 고리가 당겨져와 퍼즐이 풀리는 것을 방해한다. 분명 같은 부분을 똑같이 만졌는데도 다른 파츠가 딸려나온다. 아무리 풀고 싶어도, 각성하지 못한 자의 정신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괴상한 퍼즐. 그러나 그 안에는 분명 정제 되기만 하면 하나의 존재로 굳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창조의 혼돈.
하은이 퍼즐을 바닥에 떨어트린다. 견고한 금속이 무색하게 무거운 소리와 함께 퍼즐이 박살나 바닥에 흩어진다. 질서는 물론이고, 혼란마저 불가역한 무엇인가가 되어 사라진다.
그리고 파괴.
하은이 그 조각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침대에 걸터앉는다.
하은이 자신의 모순을 깨닫는다.
그녀는 어떻게 가야할 지는 알지만, 어디로 가야할 지는 모른다. 주어지는 것은 외부의 지시 뿐.
그 뿐만이 아니다.
하은이 멀쩡히 자고 있는 학생, 아니, 늑대인간을 내려다본다. 옷을 제외한 소지품, 특히 가방에 들어있는 여러가지 보육원 관련 문서를 대충 살펴본 결과 그녀가 고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곧 그녀에게는 ‘가족’이 생길 것이다. 그들이 좋은 가족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방향을 알려주고 같은 길을 걸어주는 누군가가 있어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하은에게는 아무도 없다.
생각.
그러나 역시다.
방향도, 소속도 없다.
그녀는 사전적인 의미에서도, 그리고 비유적인 의미에서도 고아Orphan일 뿐. 그 사실이 하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온다.
==
하은이는 사실 "현실교란자" 였던 것이다.
이쯤 보면 알겠지만 사실 하은이의 패러다임 및 인물상은 한국 입시생/고시생에서 따왔습니다. 앞으로 어디 소속 시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Orphan이란 다른 메이지 집단에 속하지 못할 패러다임을 지닌 메이지의 모임, 또는 그런 메이지들을 지칭합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도 사람 머리나 땅 위에 느낌표만 떠 있으면 가까이 가는 게이머 같군 - dc App
ㄴ 마쟈 슬픈 현대인의 자화상이란다 흑흑
Ooh,할로우 원, 드림스피커......이런데도 좋겠지만 사실 어디에 소속되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해요, 용병같은 존재 면 괜찮을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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