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쓴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5판의 밸런스 문제는 빌드질보다는 클래스 자체의 불균형이 훨씬 큼.

(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rpg&no=83681 )


같은 역할을 하는 다른 클래스에 비해 세션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 딱히 없거나, 아예 하위호환으로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음.

소위 '역할 중복'의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임.

D&D 전통의 강자인 클레릭과 위저드, 그리고 5판에서 새롭게 초강세로 떠오른 파이터와 바드를 제외하면 말이지.

그래서, 5판에서 클래스를 픽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될 내용을 적어보고자 함.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캐릭터와 역할군이 겹치는 지 체크하는 것.


D&D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PC 파티의 조합이 중요함.

단적으로, 3.5에서 힐러 사제나 전장제어 법사 중 하나가 없는 게임을 해 보면 절실히 느끼게 됨.

4판은 아예 클래스에 역할 구분이 되어 있음.

5판에서는 레인저 4명이나 로그 4명 같은 파티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힐링 서지 옵션룰이나 내보내는 적의 조절 같은 DM의 배려가 꽤 필요함.


그리고, 똑같은 역할군이 여러 명 있으면 서로 하는 행동이 비슷하기 때문에 비교되기 쉬움.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때 자신의 존재감을 강조하기 쉬운데, 다른 캐릭터와 역할이 겹칠 수록 그런 가능성이 줄어들게 되기도 하고.

예전에 5판 클래스별 역할을 따로 등급 매긴 글을 번역한 적 있었는데, 참고하면 도움이 될 지도?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rpg&no=71673 )




그래서, 위에서 적은 4가지 강클래스들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짤막하게 각각 이야기해보겠음.




- 바바리안


저레벨의 바바리안은 레이지 보너스와 상대적으로 높은 HP, 그리고 미디엄 아머 숙련이 있어서 파이터 못지않은 활약을 할 수 있다.

파이터가 안정적으로 강하다면 바바리안은 맷집과 공격력으로 밀어붙이는 클래스인데 저레벨에서는 이게 잘 먹히는 거.

레이지 횟수가 롱 레스트 회복에 적은 편이긴 하지만 저레벨은 약한 몹들과 싸워도 부담이 크기 때문에 전투 역시 많지는 않다.


그런데 바바리안을 제외한 다른 클래스들은 11레벨 즈음부터 강력한 능력들이 풀리지.

풀캐스터+워락은 6레벨 이상의 주문, 팔라딘은 평타+스마이트 피해 증가와 4레벨 이상의 주문,

파이터는 3회 공격, 몽크는 독면역에 내성 초강화에 더해 늘어나는 기풀, 로그는 스킬 강화와 추가 피트 슬롯, 지혜 내성 등...

그런데 바바리안은 잘 살펴보면 11레벨부터는 실속이 별로 없음.

릴렌트리스는 잡몹들이 짤짤이로 툭툭 쳐대면 금방 DC가 우주로 올라가버리고,

브루탈 크리티컬은 레클리스 어택빨로 크리뽕이 충만해질 지도 모르지만,

주사위를 2개씩 굴려도 크리는 잘 안 나오는데다 막상 크리티컬 넣었더니 오버킬이 되는 경우가 왕왕 보인다.

퍼시스턴트 레이지요? DM이 레이지를 끄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었다면 DM이 캐릭터 자체에 불만을 갖고 있으므로 별 의미 없다.

고HP나 언아머드 디펜스의 강점도 능력치 오르는 구간이 부족해서 충분히 활용하기 힘들고, 파이터가 있다면 더욱 빨리 따라잡힌다.


요약하자면, 바바리안은 11레벨 이상이 되면 급격하게 구려진다. 되도록이면 10레벨 안에서 끝나는 캠페인에서 쓰자.




- 드루이드


드루이드는 엄밀히 말하자면 '약한' 클래스는 절대 아니다.

단지 같은 디바인 풀캐스터인 클레릭과 비교했을 때 약해 보이는 것뿐이지.

그 이유는, 와일드 셰이프의 떡락 + 기존부터 클레릭보다 약간 나빴던 주문 풀 + 도메인에 비해 살짝 애매한 서클 능력들임.


그렇지만 와일드 셰이프는 비전투용(서클 오브 더 문의 경우에는 추가 HP의 개념도 가능)으로 사용할 수 있고,

주문 풀이나 서클 능력들도 찬찬히 살펴보면 약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나쁜 건 아니다.

잘 찾아보면 힐은 물론이고 메즈기나 장거리 이동, 버프나 디버프, 전장제어기도 적절하게 갖추고 있거든.


그렇기 때문에 드루이드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드루이드 운용에 익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몽크


D&D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몽크에 대해 하는 가장 큰 착각은,

몽크로 파이터를 비롯한 다른 근접 클래스의 딜과 탱킹을 하기를 원한다는 거다.

잘라서 말하자면 이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퀴버링 팜 단 몽크면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그건 17레벨 능력이잖아?


몽크는 전방에서 적들과 투닥투닥하는 클래스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로그보다 더욱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 기동력을 살려서 상대 진형을 들쑤시고 위험한 적들을 제압하는 용도로 상정되어 있음.

물론 몽크 딜이 다른 클래스들에 비하면 나쁜 건 사실이어도,

맨손을 고집하지 않고 쿼터스태프나 돌팔매 같은 몽크 무기들에 눈을 돌리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몽크는 다른 클래스에 비해 물리적 피해 이외의 공격에 대한 저항이 훨씬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마법 능력을 쓰지만 체력은 빈약한 고위험군의 적들을 보다 더 쉽게 눕힐 수 있지. 마법사라던가 말임.


정리하면 드루이드와 마찬가지로 몽크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몽크 운용에 익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팔라딘


팔라딘을 얼핏 보면 파이터보다 약한데 주문도 클레릭보다 딸리다고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뒤집어서 생각했을 때 파이터보다 조금 깡스펙이 낮은 대신 클레릭의 역할을 채울 수 있고, 그 역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팔라딘은 마법 능력이 쉽게 빛을 보기 어려운 저레벨보다는 리소스에 여유가 생기고 다채로운 능력이 중요한 고레벨에 더욱 좋다.

그리고 보조 힐/캐스터로서도 역할을 하면서 폭발적인 화력을 원하는 타이밍에 뽑을 수 있다는 것도 강점.

하프캐스터라고는 하지만 오쓰 스펠을 포함한 팔라딘의 주문 풀은 우수하다.


힐러나 마법사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오래 가는 캠페인일 수록 팔라딘은 돋보인다.




- 레인저


...솔직히 말하자. PHB 레인저는 뭘 해도 구제불능이다.


페이버드 에너미와 내추럴 익스플로러를 적용하는 상황은 극도로 한정되어 있고,

그나마도 잘 안 쓰이거나 묻힐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다.

프라이미벌 어웨어니스는 스펠 슬롯을 잡아먹는데다 지속 시간도 구리다.

헌터 아키타입은 어중간한 능력들의 패키지고, 비스트 마스터는 자기 액션으로 동물을 움직여야 되는 극도로 비효율적인 구조다.


그렇다고 고레벨 능력으로 보상받느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고.

레인저 주문풀은 팔라딘보다 훨씬 암울하다. 헌터즈 마크와 스위프트 퀴버 믿고 달려야 되는 수준.

게다가 뜬금없이 스폰테니어스 캐스터가 되는 바람에 알고 있는 주문의 제약을 받는다. 팔라딘은 그대로면서 왜...?

화력? PHB 레인저 화력은 초반에만 반짝하고 그 뒤에는 로그한테도 밀린다. 정말로.


그러나 언어스드 아카나에서 나온 레인저 개정판과 XGE의 새로운 아키타입들은 이런 단점을 싸그리 정리해버렸다.

아래 글에 정리되어 있으니 이 글 참조.

(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rpg&no=66297 )


한줄요약: PHB 레인저는 하지마라. 레인저 하고 싶으면 UA 레인저를 써라.




- 로그


5판에서는, 스닉 어택을 꾸준히 넣을 수만 있다면 로그가 다른 클래스에 비해 DPR이 꿀리지 않는다.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JIrEV1RFv6yxWEdqG6zP3z-ZONDTacquGyqYj8G-CdE/ )

그리고 5판에서는 스닉 어택 조건이 지금까지보다 크게 완화되어 정말 스닉 어택 넣기가 쉬워졌다.

게다가 로그의 스킬 능력은 5판 클래스들 중 최상급이고, 생존능력도 제법 된다. 나중에는 지혜 내성까지 나옴.

그럼 왜 로그에 대한 불만이 나오는 것일까?


그건 바로 바드 때문이다.

바드는 스킬이 로그와 동급인데다 카리스마 클래스라 주목받기 쉬운 대인 상황에서 약간 우위를 가진다.

게다가 매지컬 시크릿을 고려하면 위저드에 준하는 주문풀을 갖고 있다고 봐도 된다.

유일하게 딸리는 건 DPR이지만, 밸러 바드를 고르거나 부밍 블레이드/그린 플레임 블레이드가 풀려있으면 그리 나쁘지 않다.

로그 입장에서는 온갖 사기 주문을 펑펑 쓰는 로그가 또 하나 있는 셈이다. 박탈감이 들 수밖에.


그러니까 바드가 있으면 이 클래스의 픽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




- 소서러


소서러는 근본이 아케인 풀캐스터라 절대적인 성능은 결코 약하지 않다.

위저드와 주문풀이 많이 겹친다고 하지만, 위저드는 지능클래스고 소서러는 매력클래스라 최소한의 차별화가 가능하다.

메타매직이 과거처럼 피트로 아무나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크롤은 비매품이 되었기 때문에 위저드가 주문책을 마구잡이로 늘릴 수도 없으니...


그럼 왜 소서러가 까이냐구요? 이것도 다 바드 때문이다.

동일한 카리스마 풀캐스터 클래스인데, 구판의 '스펠슬롯이 많다'는 유일한 장점이 사실상 사라져버렸다.

소서리 포인트는 쥐꼬리만하고, 스펠노운은 적고, 스킬 숙련도 부족하고, 주문풀도 더 나쁘고...

로그는 DPR이라도 높지, 소서러는 완전히 바드의 하위호환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바드가 있으면 이 클래스의 픽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 (2)




- 워락


워락(또는 워록)은 이질적인 마법 체계인 팩트 매직과 미스틱 아카넘을 사용한다.

말이 이질적이지,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풀캐스터도 아니고 하프캐스터도 아니라는 어중간한 놈이라는 소리다.


그럼 워락은 어떻게 굴려야 하나?

워락은 크게 블레이드락과 톰락의 2가지 빌드로 나뉘어진다.

블레이드락과 톰락 모두, 팩트 매직은 다른 클래스의 숏레스트 능력, 미스틱 아카넘은 소서러의 6~9레벨 마법처럼 운용하면 된다.

체인도 있지 않느냐고? 패밀리어 스펙이 매우 구린데다 소환 특화는 세션에서 욕먹기 딱 좋은 계통이다.

자기 턴을 매번 길게 만들어서 다른 기다리는 사람과 DM을 지루하게 만들거든. 그냥 잊어버리자.


팩트 오브 더 블레이드를 쓰는 블레이드락(Bladelock)은 팔라딘과 비슷하게 굴리면 된다.

인보케이션으로 추가 공격이나 타격 시 발동하는 능력들을 제법 얻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라이트 아머 숙련이 있으므로, 피트 하나면 미디엄 아머와 방패 숙련을 딸 수도 있고,

원거리가 필요하면 엘드리치 블래스트를 쓰면 그만.

특히 XGE에서 새로 나온 패트론인 헥스블레이드와 매우 궁합이 잘 맞는다.


팩트 오브 더 톰을 쓰는 톰락(Tomelock)은 공격력보다는 다재다능함을 중시한 빌드다.

이 빌드에서는 리츄얼 캐스팅을 주는 Book of Ancient Secrets가 필수가 되는데,

보통 리츄얼 캐스팅은 자기 클래스의 주문만 가능하지만 이건 어느 클래스의 리츄얼이든 책에 기록하기만 하면 가져올 수 있다.

게다가 이 책은 위저드 주문책처럼 뺏기거나 사라질 염려가 적다. 의식으로 다시 만들어내면 안의 내용이 보존되어 있거든.

공격력은 캔트립으로 드루이드의 쉴레일리를 가져오거나 워락 주특기인 엘드리치 블래스트를 이용해서 커버한다.

그리고, 물리공격에 덜 투자하는 만큼 인보케이션으로 스킬이나 보조 능력을 강화할 여지가 더 생기게 되는 것도 강점.

이 빌드는 아케인 트릭스터 로그와 유사하지만, 데미지는 좀 낮아도 주문 능력이 더 강하다.


그러니까 바드가 있으면 이 클래스의 픽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