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 예언.
“으우…”
그 소리에 하은이 본능적으로 긴장한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있던 여학생이 갑자기 늑대인간으로 변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녀가 끙끙대며 일어나지만 현기증이 나는지 휘청이며 침대 옆의 벽에 기댄다. 그녀가 눈을 굴리며 방 안을 살펴본다. 딱 한 사람이 살기에 알맞은 원룸. 고소한 냄새가 난다.
“안녕.”
그녀를 향해 가볍게 인사하는 하은. 여학생이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의 눈 속에서 본능적인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인간의 것이 아니라, 처음 만나보는 또 다른 동물, 아니, 자기보다 더 위험한 존재를 경계하는 늑대의 눈빛이다. 그녀가 경계하는 표정으로 물러 나려 한다. 하은이 몸을 돌려 막 식히기 시작한 죽을 그릇에 떠서 쟁반에 놓는다. 능숙한 동작으로 침대용 테이블을 한손으로 펼치고 그 위에 쟁반을 둔다. 곧이어 한눈에 보기에도 맛있을 것 같은 전복죽이 그녀 앞에 놓여진다.
“먹어.”
사실 늑대인간들이 뭘 먹어야하는지는 잘 모른다. 현실교란종 중에서는 뱀파이어처럼 피가 주식인 종도 있고 아무것도 안먹어도 되는 프랑켄슈타인 같은 종류도 있다. 단순히 인간처럼 생겼다고 해서 죽을 해주는건 꽤나 나이브한 행동이다. 애초에 유니언에서는 늑대인간과 상대하는 법을 가르치지 늑대인간이 죽을 먹을 수 있는가 아닌가 따위는 가르치지 않으니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여학생은 허겁지겁 죽을 먹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기묘한 광경이다. 하은은 김인혁이 싸우는 걸 본적이 있다. 비록 수적열세 및 기습으로 인해 당하긴 했지만 그의 전투력 자체는 어마어마했다. 거기에 그가 사람들과 멀쩡하게 교류하는 것을 본다면 그는 늑대인간 중에서도 사회적인 -아마도, 지나치게 사회적인- 타입일 것이다. 그점을 고려하면 늑대인간의 강력함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 존재 중 하나가 자신의 원룸에서 전복죽을 먹고 있다는건 기묘한 일이었다.
그녀가 재빠르게 전복죽을 해치운다. 꽤나 배고팠던 모양이다. 아마 늑대인간으로 변신한 것과 더불어 평소에 보육원에서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이겠지.
“그래, 세연아. 맛있니?”
“네…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어요?”
“교복에서 봤지.”
정확히는 다 찢어져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하은이 수거해와야 했던 교복을 말하는 것이지만. 하은은 그 짧은 시간에도 이세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학생이 현장에 있었다는 흔적을 모두 지워버렸다. 아마 그곳에 남겨진 불량학생들은 공사 현장을 제대로 망친 죄로 단단히 혼날 것이다. 물론 그 아이들이 상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적절한 ‘조작’ 도 잊지 않았다.
지나치게 큰 친절을 베풀고 있다는 듯한 느낌. 그러나 지금 세연을 보호하고 김인혁에게 인계하면 그들에게 빚을 하나 만들어둘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그들은 빚진걸 참고 사는 성격의 생물은 아니니까.
허겁지겁 먹고 나자 이제서야 정신이 좀 돌아온듯 세연이 멍하니 하은을 바라본다. 그녀의 기억이 부분적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항상 억눌려산 자의 소심함과 억누를 수 없는 투쟁의 본능, 극명하게 상충최는 두가지 감정이 휘몰아친다. 동시에 흐릿한 기억 속에서 격렬한 폭력의 순간들이 떠올라온다. 폭발하는 분노와 살육의 욕구. 철저하게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 가운데서도 전혀 겁내지 않고 서있던 하은의 모습이 흐릿하게 새겨진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기억이 아닌, 동물로서의 경계 본능이었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벽으로 물러선다. 덕분에 전복죽이 엎어질뻔 한다. 하은이 테이블을 잡으며 죽이 쏟아지지 않게 한다. 거리가 가까워진 두 사람. 세연이 더욱 벽에 바싹 붙으며 험악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늑대 같다.
“그럴 필요 없어. 아무것도 안할거니까.”
하은이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하며 뒤로 물러선다. 그러나 역효과다. 세연의 눈에 깃든 경계심이 더욱 심해진다.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된다. 조금 있으면 ‘두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늑대인간’으로 바뀔지도 몰랐다. 하은이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낀다.
그래, 늑대라는거지. 늑대 앞에서 아무것도 안해봐야 얕잡아보인다는건가?
하은이 주방에서 순식간에 부엌칼을 집어들어 겨눈다.
“아니면 지금 당장 죽여줄까? 늑대로 변하기전에 깔끔하게 잘라줄게.”
그녀가 위협적으로 말하며 세연의 목을 가리킨다. 그러자마자 그녀의 태도가 즉시 변한다. 험악한 표정이 사라지고 원래의 겁먹은 아이가 된다.
“죄...죄송해요…”
하은이 천천히 식칼을 내려놓는다. 다시 그녀가 친절한 말투로 돌아온다.
“어제 일은 기억나니?”
그녀의 표정이 다시 혼란스럽게 변한다.
“조… 조금…”
동시에 그녀가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이 된다.
“저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에요?”
“글쎄. 나도 몰라. 내 친구...들이 널 데리러 올거야. 그 사람들한테 배우면 돼.”
하은이 무심하게 대답한다.
“친구들이요?”
“그래.”
하은이 그녀에게 가방을 내민다.
“옷은 다 찢어졌어.”
그러나 옷보다는 가방이 더 중요하다는 듯 세연이 허겁지겁 가방을 받아든다. 그녀가 가방을 뒤지더니 돈 봉투를 꺼낸다.
“다행이다…”
하은이 그녀를 보며 씁쓸하게 미소짓는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아마 그 돈은 이제 필요 없을거야. 학교로 가거나 보육원으로 돌아갈 일도 없을걸.”
세연이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지만, 이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다. 이건 꿈이 아니다. 그녀는 이제 평범한 인간, 아니, 애초에 인간조차 아닌 무엇인가가 된 것이다. 갑자기 그녀가 머리를 부여잡는다.
“으…”
“괜찮니?”
그녀가 대답하지 않은채 허겁지겁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교과서와 필기 노트 사이로 스케치북과 몇가지 색의 색연필이 튀어나온다. 그녀가 거의 패닉에 가까운 표정으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한다. 스케치북이 빠르게 색으로 채워져간다. 하은이 그녀를 제지하려다가 위화감을 느끼고 그만둔다. 세연의 손에 들린 색연필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색연필이 아니다. 단색이어야할 색연필이 여러가지 색을 그려내고, 굳혀진 분말로 만들어진 것 같은 팔로 자신이 ‘가야할’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세연의 손톱이 색연필과 같은 색으로 물들어간다. 그녀가 순식간에 그림을 완성해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봐왔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비현실. 이것은 스스로의 시각과 이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섭리에 의한 비현실Static Magic이다. 그리고 그 섭리의 존재에 의해 태어나 그 섭리를 엮고 관리하는 존재Spirit들에 의한 것. 하은이 자신이 느끼는 위화감이 무엇인지 알아차린다. 분명 그 성격과 근원은 다를지라도 세연의 손을 인도하는 존재는 교관과 비슷한 존재다.
이젠 색연필의 정령이라도 나오는건가, 하고 하은이 거의 한숨을 쉴뻔한다. 그렇지만 그녀가 이 상황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인해 이런 순간이야말로 무시해서는 안될 일임을 알고 있었다. 믿느냐 마느냐를 떠나, 일어나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여기요.”
세연이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그림을 건네준다. 그녀는 자신이 뭘 그렸는지도 모르는 듯 했다. 하은이 그림을 받아든다. 새까만 색의 왜곡된 인간의 형상. 그러나 그 머리만은 마치 늑대 같다. 이빨을 드러낸 그 형상이 두 사람을 쫓고 있었다.
“나가야겠다. 옷 입어.”
“네?”
“어서.”
하은이 옷장을 열고 사복을 던져준다. 다행히 두 사람의 사이즈는 대충 맞는 편이었다. 그녀도 옷을 갈아입는다.
“어디로 가요?”
“글쎄.”
하은이 방 한쪽에 걸려있는 스포츠 백팩을 둘러맨다. 순식간에 후드가 달린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은 하은. 지금보니 아예 똑같은 옷이다. 두 사람이 순식간에 밖으로 나선다. 이미 자정이 다된 시간. 길을 따라 가는 두 사람. 그 옆으로 지나가는 차. 꽤나 불안한 모습이다. 그들 앞에 차가 멈춰선다. 거기에서 취한 것 같은 사람이 내린다.
“툭.”
하은과 취한 운전자가 어깨를 부딪힌다.
“야! 제대로 안보고 다녀?”
“죄송합니다.”
하은이 고개를 꾸벅 숙인다. 뭐라고 욕하면서 비틀거리며 사라지는 취객. 하은이 무언가를 들어올린다. 차 키다.
“어…”
세연이 당황하며 키를 바라본다.
“훔친 거에요?”
“응.”
하은이 주위를 둘러본다. CCTV나 목격자는 없다. 하은이 차 문을 연다.
“타.”
“어…”
“타라니까.”
재촉하는 그녀. 세연의 얼굴에 내 인생이 어디로 가려는 거지, 라는 말이 쓰여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하은은 전혀 거리낌이 없다. 세연이 어쩔 수 없이 뒷좌석에 탄다. 하은이 다시 한번 거리를 확인한다. 갑자기 한 남자가 골목길의 코너를 돌아 나타난다.
“거기 아가씨.”
그들 앞에 나타난 남자가 위협적으로 말하며 하은을 부른다. 그의 목소리에는 마치 쇠를 긁는 듯한 소리가 섞여있었다. 본능적인 경계심을 돋구는 그 소리.
“뭐죠?”
그가 주광색의 가로등 아래로 걸어나오자 그의 형상이 똑똑히 보인다. 한쪽 턱이 완전히 짓물려 흰 뼈 사이로 고름이 새어나오고, 눈동자는 산업폐기물을 연상케하는 형광빛의 초록색으로 빛난다. 불균형하게 발달된 근육과 탄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피부. 잔뜩 해진 군복 바지와 마찬가지로 꽤나 오래된 듯한 티셔츠로는 그런 흉측한 모습을 가릴 수 없었다. 웜에 의해 타락한 가루우, 블랙 스파이럴 댄서다. 그가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물론,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아가씨. 찢어죽이기 전에 도망가는게 좋을거야. 거기 있는 애는 놔두고 말이야.”
그러나 하은은 물러서지 않는다.
“경찰 부르기 전에 꺼져요.”
“경찰?”
그가 비웃는다.
“부르시려면 부르시지.”
하은이 그림에 그려진 형상이 그임을 직감한다.
“...이 애를 데리고 가서 뭘 할거지?”
창백한 무모증의 늑대를 연상시키는 블랙 스파이럴 댄서가 씨익 웃는다. 찢겨나간 것인지 아니면 질병으로 파열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볼 사이로 회백색의 액체가 흘러내린다.
“뭘 하긴. 씨받이로 쓰는거지. 그 애가 낳아줘야할게 있거든.”
그렇게 말하는 순간 하은이 차 안으로 뛰어든다. 순식간에 엔진에 시동이 걸리고 하은이 엑셀을 밟는다. 차가 남자를 치고 거리를 질주한다.
“뭐, 뭐하시는-”
“너랑 같은 부류네.”
하은이 좁은 골목을 질주하며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기억 안나? 넌 덤프트럭에 몇번이나 치였는데도 멀쩡한데?”
“그...그게…”
우물쭈물 거리는 세연. 좁은 골목을 빠져나온 그녀가 차를 인적이 없는 곳으로 몰아간다. 아예 시 외곽으로 빠지는 도로로 향하는 그녀가 핸드폰을 들고 다시 링크드인에 들어간다. 그녀가 빠른 손놀림으로 인혁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도움 필요. N.HE.]
하은이 주위를 둘러본다.
도로를 달리고 있는 것은 이 차뿐. 하은이 백미러를 확인한다. 무엇인가 차를 쫓아오고 있었다. 마치 허공을 질주하는 듯한 뒤틀린 늑대를 닮은 새까만 형상. 처음엔 하나였던 것이 점차 그 수를 늘린다. 모두 다섯.
갑자기 그 중 하나가 질주하며 차 옆을 강타한다. 균형을 잃은 차가 흔들리기 시작하지만 하은이 아슬아슬하게 밸런스를 잡는다. 엑셀을 밟으며 그녀가 재빨리 메시지를 타이핑 한다.
[팀장님. 갑작스런 개인 사정으로 내일 연차 내겠습니다. 노하은 드림.]
동시에 늑대의 형상이 양쪽에서 차를 덮쳐온다. 브레이크. 프레임이 뒤틀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차가 아슬아슬하게 둘 사이를 빠져나온다. 하은이 뒷좌석의 세연을 바라본다. 짐덩어리를 달고 도망가는 것은 힘들것이다.
“세연아.”
“네?”
그녀가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지금부터 내 말 잘들어. 알았지?”
“부웅-”
엔진소리. 그러나 애초에 변변찮은 차종이기에 별로 속도가 나지 않는다. 마치 악몽속에서 덮쳐오는 듯한 형상. 새까만, 그러나 극도로 왜곡된 모습. 차 양쪽에서 때로는 늑대가 달리듯, 때로는 유령이 쫓아오듯하는 모습으로 추적하는 늑대떼. 그들을 따라 길 양옆의 가로등이 꺼진다. 질주하는 차량을 따라 차례차례로 꺼지는 찻길의 불빛. 이 길고 넓은 도로 위에 있는 것이라고는 그들 뿐이다.
외곽도로에서는 도저히 이들을 떨치지 못할거라고 느꼈는지 차가 출구로 빠진다. 교외지역으로 나온 차. 그러나 마치 노렸다는 듯이 형상중 하나가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차의 경로에 뛰어든다.
“끼이익-”
타이어의 마찰음과 함께 급하게 방향을 꺾는 차. 그러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채 미끄러지며 길에서 벗어나 한바퀴 돌더니 근처의 가로등에 박는다. 도로를 질주하던 검은 늑대의 형상들이 서서히 물질화되며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역겹고 뒤틀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천천히 차를 향해 다가가는 그들. 차의 조수석이 열리더니 트레이닝복의 후드를 눌러 쓴 누군가가 비틀거리며 걸어나온다. 패닉하고 있는 것인지 그녀가 허둥지둥 도망간다. 블랙 스파이럴 댄서들이 여유롭게 그들을 쫓는다. 효율적인 사냥이 아닌, 즐기는 사냥이 된 것이다.
이제야 시동이 걸린 차. 그러나 이미 그들을 쫓기에는 늦었다. 마치 망설이는 듯 어정쩡하게 움직이는 차량. 그러나 결국 그대로 출발하고 만다. 그들의 리더가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짓는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재밌는 여자였다. 자기들을 봐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걸로 봐서는 인간들 중에서도 특별한 권능을 휘두른다는 자Mage들이겠지. 그러나 지금 그들의 목적은 새끼 늑대지, 마술사가 아니다. 그가 입맛을 다시는듯한 표정을 짓는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서 벗어나 그가 어두컴컴한 그림자로 들어선다. 그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것은 인간이 아니라 흉측한 모습의 늑대다. 군데군데 털이 빠지고 깡마른 모습의 늑대는 멀리서보면 들개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그의 시야에 사냥감이 들어온다. 그녀는 인적이 없는 상가의 뒤편을 달리고 있었다. 그녀가 한 건물에 멈춰선다. 작은 문. 그녀가 좁은 문의 손잡이를 돌리지만 열리지 않는 듯 했다. 문을 등지고 돌아서는 그녀. 희미한 가로등 불빛속으로 다섯의 늑대인간들이 걸어온다.
“자, 우리 귀여운 아가.”
메스꺼운 목소리와 함께 팩 리더가 말한다.
“순순히 따라올래, 아니면 팔다리를 다 잘라서 데려가줄까?”
그가 천천히 다가온다.
“둘다 싫은데요?”
도발적인 목소리. 그녀가 후드를 들어올린다. 그녀의 얼굴을 알아본 팩의 리더가 험악한 표정을 짓는다.
그 안에서 나타난 얼굴은 세연이 아니라 하은이다.
“뭐야, 어떻게 된거냐!”
그가 외친다.
“뭐긴 뭐야. 속은거지.”
그녀가 조롱하듯 말한다. 처음부터 차에서 내린건 하은이었다.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운전실력은 망설이고 있어서가 아니라 처음 운전해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한 트릭. 그러나 적절한 시기에, 알맞은 상황에서, 올바른 수단을 사용하면 깨어난 자Mage의 트릭은 그 무엇이라도 속여넘길 수 있는 것Magic이 된다. 속았다는 걸 깨달은 그가 포효한다. 밤하늘에 갈라진 괴성이 울려퍼진다.
“찢어 죽여주마!”
순식간에 그의 근육이 부풀어오른다. 역겨운 피부가 찢어지고 그 속에서 뒤틀린 늑대인간의 털가죽이 드러난다. 하은은 지체하지 않고 문을 연다. 물론, 아까 문이 잠긴 것 같은 모습도 속임수였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다.
“쾅!”
문이 닫히자 마자 밖에서 몰려드는 늑대인간들. 그러나 문이 너무 작기에 그들이 한번에 뚫고 올수는 없다. 아마 문을 뜯어내고 다시 사람 형태로 돌아와 들어오면 그만일 것이다. 그녀의 예상대로 문 밖에서 쿵쿵대는 소리가 들린다.
“좋아. 혹시 자물쇠의 정령 같은게 있다면 도와주면 좋겠는데.”
그녀가 시니컬하게 혼잣말을 하며 문 옆에 놓여있는 공구를 들어 경첩을 내려친다. 우습게도 경첩의 조인트가 찌그러지며 문이 잠기지 않았더라도 제대로 열리지 않을만한 모양새가 된다. 이제 늑대인간들이 들어오려면 아예 문 틀을 뜯어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지.
하은이 건물 안을 살펴본다. 자동차 정비소의 뒷문. 분명히 타고 달아날만한 차가 있을 것이다. 재빨리 몸을 돌려 복도를 뛰어가는 그녀.
“...”
멈춰선다.
정비소는 오랫동안 운영되지 않은 것인지 텅 비어있었다. 차 같은 것은 없었다. 먼지만 가득 쌓여있는 정비소 내부. 전면의 해치는 잠겨 있는 듯 했다. 나갈 곳이 없다. 뒤에서 문이 박살나며 방금까지만 해도 복도를 강타하고, 괴물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
하은이 바닥에 있는 해치를 발견한다. 오랫동안 쓰이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건대 아마 지하 창고로 내려가는 길인듯 했다. 그러나 그게 뭐든 지금은 중요한게 아니다. 그녀가 달려가 해치의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열려있었다. 정말로 오래된 것인지 손잡이가 떨어져나간다. 아슬아슬하게 닫힐뻔한 해치를 손으로 잡아당기는 하은. 바깥으로 열리는 구조이기에, 손잡이가 없으면 열수조차 없다.
“크오오!”
뒤에서 울려오는 괴성. 하은이 망설이지 않고 그 안으로 뛰어든다. 계단이나 사다리가 있을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발판을 잃은 그녀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진다.
똑, 똑, 똑-
“...으.”
하은이 일어선다. 어깨부터 낙법도 쓰지 못하고 떨어진 것 같았다. 불에 덴듯한 느낌이 어깨부터 옆구리 위쪽까지 선하다.
“하.”
아무런 빛도 없는 방.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은이 한발자국 움직인다. 발자국 소리가 반사되는 소리로 바로 뒤에 벽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그녀가 벽에 기댄다. 여긴 어디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불이 켜진다. 상당히 오래된 조명인지 불규칙적으로 희미하게 깜빡거린다.
“아, 하은씨. 역시 제 시간에 도착하셨군요.”
깜빡이는 조명 아래 누군가 서있었다.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는 예전에 이중간첩들이 사용하던 아지트입니다. 마지막으로 쓰인지는 한 수십년 되었겠지만요.”
그들 머리 위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괴물들이 정비소 안을 뒤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소리가 잦아든다. 포기한 것이다.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하은. 그들이 이렇게 쉽게 포기할리가 없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녀석들이 쉽게 포기 하도록 일련의 트릭을 걸어놓았죠.”
그제서야 하은이 서있는 남성이 누군지 알아차린다. 날카로운 인상의 정장을 입은 남성.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지?”
“오, 이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당신들이 직접 절 지구에 데려다주지 않았습니까?”
그녀 앞에 서있는 것은 쓰렛널의 미친 음모론자, 에이전트Agent 소속의 퀸란 윌로우 1세였다. 하은이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다.
“그때의 수송선에 밀항해서 온건가?”
“오, 그렇죠. 역시 하은씨는 무척이나 영리합니다. 아직까지 유니언의 요원으로 남아있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요.”
하은이 등에 매인 가방을 손으로 만져본다. 그 안에는 충분히 흉기가 될만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거리를 보건대, 그가 권총을 등뒤에 숨기고 있다하더라도 하은이 그를 죽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원하는게 뭐지?”
“아니, 이런.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그가 고개를 저으며 서성인다. 하은이 꺼림칙한 기분을 억누른다. 그에게서는 아무런 살의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더 똑똑하신 줄 알았는데요. 지겹지도 않습니까, 이제? 언제까지 사람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그에 따라 행동할겁니까?”
그가 손을 비비며 말한다. 낡은 콘크리트 벽에 울리는 그의 말소리가 점점 더 음침해져간다.
“생각을 전환해야합니다! 생각을! 그 누가 이런 허름한 곳에 간첩들의 아지트가 있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우주 정거장을 점령하려는 시도가 사실은 제 밀항을 위한 쇼였다고 누가 눈치챘겠습니까? 자, 거꾸로 생각해야합니다. 한번 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하은이 벽에 기댄채 옆구리를 쥐고 이 기묘한 상황에 적응 하려 노력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한 은행원이었는데, 어느새 늑대인간으로 각성한 소녀를 도피시키고 괴물들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런 괴상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우주에서 온 음모론자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은은 그가 바라는 질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좋아. 그럼 당신이 내게 해줄 수 있는게 뭐지?”
퀸란이 깊은 미소를 짓는다. 그가 하은 앞으로 다가온다.
“역시. 쓸데 없는 짓을 하지는 않은 모양이군요.”
그가 씩 웃으며 손에 들린 주사기 같은 것을 들어올린다. 그녀가 체육관 옥상에서 발견한 늑대인간들에게 꽂혀있던 주사기와 동일한 종류다.
“이 일, 당신이 꾸민거야?”
“그렇죠. 아니, 이 쯤이면 제 스타일을 아시지 않습니까? 전 소소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을 크게 벌이는걸 좋아하죠. 당신을 테스트하기 위함이었는데 합격선 이상이니 무척이나 다행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서 끝이니까요. 그 소녀는 안전할겁니다. 괴물놈들도 물러갈거고요.”
그가 즐겁게 말하며 다가온다. 그가 선글라스를 벗는다.
“...”
그 안에는 썩어 가며 짓물러진 살점만이 있는 텅 빈 안구가 있었다. 진실을 보는데는, 눈 따위는 필요 없다고 역설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독히도 메스꺼운 그 광경.
하은이 그의 시선을 받아치듯 그를 쏘아본다. 눈이 없지만, 하은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는 보고 있다. 외면이 아닌, 마음과 생각을 꿰뚫어보려는 듯했다. 그가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물러난다.
“정말 훌륭한 요원감입니다. 당신은 많은 퍼즐조각들을 가지고 있죠. 그렇지 않습니까?”
“별로 부자는 아닌데.”
“유머 감각조차도 훌륭하시군요. 물론 중요한건 하은씨의 머리속에 있는 기억들이죠. 걱정 마십시오. 그런 훌륭한 퍼즐 조각들을 낭비하는건 예의가 아니죠. 그렇지 않습니까?”
수수께끼 같은 그의 말. 그러나 하은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의 패러다임 같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너무 많은 일에 휘말려왔다. 그 진상을 알지 못한채로. 단지 수동적이었을 뿐.
테크노크라틱 유니언, 이라는 이름.
그 조직에 휘말린 댓가는 이런 것이다. 인생의 한 부분이 통째로 자신과 단절되고, 예전에 자신이었던 것의 잔상과 함께 살아가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인가?
어쩌면 내가 원하는건 이렇게 평범하게 남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평범해지기는 늦었다.
그래, 나는…
알고 싶다.
“역시, 그렇지 않습니까?”
퀸란이 다시 썬글라스를 쓰며 조용히 말한다.
“...하지만 아직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방 안의 불이 깜빡인다. 딸깍, 딸깍, 하는 스파크 소리가 불안하게 방안에 울린다.
“그럼, 적당한 시간이 되면 보도록 하지요.”
조명이 깜빡인다. 한번, 두번, 그의 형상이 뒤로 돌아선다. 세번, 네-
“...?”
다시 한번 깜빡이는 조명. 그러나 퀸란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마치 땅으로 꺼지기라도 한 것처럼. 쌓인 먼지 위에는 발자국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처음부터 그가 그곳에 없었던것 같다.
“휴.”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하은. 그 아지트는 일련의 통로를 따라서 지금은 폐쇄된 하수도의 한 구간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은이 배낭 속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다행히 챙겨온 비상 물품 같은건 에너지바 하나를 빼면 쓸일이 없었다. 핸드폰이 연결되자마자 즉각 김인혁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네.”
“살아있었군요.”
“어떻게든 됐죠. 이세연인가 하는 학생은?”
“저희가 잘 회수했습니다. 덕분입니다. 그녀는… 아주 귀한 재능을 지니고 있는 아이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야밤의 추격전이 헛된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차도 원래 위치로 돌려놓았고, 도로쪽의 기록도 다 확인했습니다. 안심하셔도 될겁니다.”
“CCTV의 정령이라도 있나보죠?”
하은이 시니컬하게 농담을 던진다. 인혁이 전화 건너편에서 웃으며 받아친다.
“물론이죠. 철근 콘크리트의 정령을 만나고 나시면 별로 놀랄일도 없을 겁니다. 아, 안 그래도 세연양이 선물이 있다고 하는군요. 메시지를 확인하시면 될겁니다.”
“저한테 빚진거, 맞죠?”
“그렇습니다. 안타깝군요, 예전 회사에 아직 계셨다면 더 좋았었을텐데요.”
“제가 할말이죠.”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만약 유니언에 있었다면 구질구질하게 차를 훔친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스트라이크 팀을 불러 늑대인간들을 역으로 사냥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가 가진거라고는 온갖 잡기와 약간의 현실교란적 능력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금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럴 일 없길 바래요.”
전화가 끊어진다. 하은이 메시지를 확인한다. 그림 파일이 하나 첨부된 메시지.
[감사합니다.]
하은이 첨부된 이미지를 연다.
두 형상.
어깨 위에 악마가 앉아 있는 여성. 아마도 동양계. 그 밑에는 “업보”, 그리고 “복수”라고 쓰여있었다. 다른 하나는 용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형상. 그 위에 마치 중학생의 시험 대비용 필기노트처럼 빨간색의 별이 여러개가 쳐있었다. “중요! 꼭 기억할것!” 이라고 쓰여져 있는 글씨.
하은은 이 그림을 본적이 있었다. 바로 그녀의 목숨을 빼앗을 뻔 했던 데미안의 예언 속에서였다.
“...”
그녀가 핸드폰을 잠금 상태로 전환한다.
제발, 평범하게 살게 해줘.
그러나 하은의 마음 속 한켠에서 그녀의 욕망이 외친다. 알고 싶다, 라고.
===
모두 \"쓰렛널\"에 동참하면 만사가 평안할텐데....
==
댓글을 비롯하여 이곳저곳에서 NHE 크로니클을 읽고 계신 \"메이지 팬\" 여러분들이 공통적으로 큰 관심사를 보여준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29화에 등장한 피학 가학 이야기인데요
사실 저는 인물에 대해서 명확한 스탯이나 설정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캐릭터 시트가 없다는 얘기!
인물이 좀 많아지고 그래서 (+ 다시 등장할 인물도 꽤 있기 때문에) 이제 정리를 좀 해야할 것 같긴 한데..
주인공인 하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관이라던가 하는 핵심 장치만 빼고. 메이지에 능통하신 분이라면 편마다 스끠어 보유 여부도 막 바뀌는거 아셨을듯
하지만 하은의 취향에 대해서는 캐릭터를 만들때부터 명확하게 설정 해 놓았기 때문에 덧붙입니다. 19금이니 부담스러우면 스크롤..
하은은 극도의 피학 성향입니다. 다만 도구를 쓰는 것 같은 저열한 방식은 안좋아하고, 되도록이면 말과 육체만을 이용해서 자신을 철저하게 사물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취향입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하은이와 파트너였던 사람들은 영혼이 썩어간다고 할 정도로 가학적인 행위에 중독됩니다. 1년 정도 하면 정신과 상담이 필요할 정도. 하은 본인은 멀쩡함.
네판디가 된 오리지널 하은의 경우는 몇번의 관계만으로도 그런 행위에 완전히 사로잡혀 더욱 강렬한 행위를 갈구하게 되며, 위의 \'영혼이 썩어간다\'라는건 비유적인 표현이었지만 오리지널과 관계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영혼이 썩어서 결국 범죄자가 되거나 자해 성향을 가지게 되거나 포모리스러운 존재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런 피학 하은을 글로 조교하는 글쟁이야말로 가학 행위에 중독되어 영혼이 썩었다는 자기고백. 잘 읽었슴미다.
그래서 질서의 화신인 교관이 달라붙은 걸지도...
역시이건 레알로 레즈야소설이었다니까
동성 파트너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물화해야 좋아하는지 예시를 들어주센
민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질좋은 피주머니
닥터 소피아랑 류 국짱님 떡밥이 궁그매요
씨.받.이.
ㅡㅡㅡ 이상 124.194 제외 ㅌㅅ서들 목록... 두 사람 이야기는 나올거에요 한 .. 15화뒤에? ㅅㅂ;
뭔가 윌로우 대사에서 목요일이었던 남자 생각남
그러고 보니까 항상은 아니여도 주로 한국이 배경인데 쿠에이 진들은 안 나와여? 인귀 좋아하는데 역시 안 나올려나?
누가 인귀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면 넣을수도 있음 지식이 0임 지금은 히히
와 저 양반이 저기서 나오네.. 이제 또 시작이란 느낌 - dc App
오리지널 하은 포모리 성병 ㄷㄷ 마법 성병 - dc App
애를 낳게 한다니 어째서..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