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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 도주.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이 당장 모든 초자연체를 말살시킬수 있는가, 하면 유니언의 고위층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만약 유니언이 수백년에 걸쳐서 모든 초자연체를 말살시킬 수 있는가, 라고 물으면 회의주의적인 몇몇을 제외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할 수 있다” 가 아니라 “할 수 있게 만들어야한다”의 의미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이 특정 도시에 존재하는 특정한 종의 초자연체를 말살시킬 수 있는가, 하고 물으면 유니언의 일원 뿐만 아니라 유니언의 실체에 대해 아는 자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상당한 비용이 들고, 희생자도 나오겠지만 분명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누구를 사냥하는가, 이다. 개인적인 복수와 달리 유니언의 우선순위는 실용적인 함수에 기반한다. 초자연체들이 자신의 영역을 벗어날 수록 그들을 추적하고 사냥하기도 쉬워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목표가 누가 될지는 자명한 일이다.


그것을 모르는, 아니, 알면서도 그 경계를 가로지르고자 하는 괴물들이 있다. 


“흐음.”


‘회장’이 자신의 작은 사무실 안을 거닌다. 정기적으로 그를 방문하고 목줄이 제대로 달려 있나 확인했던 웨더스 소령과 그의 부하들이 찾아온지는 무척이나 오래되었다. 첫 1년간은 혹시 함정을 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해서 오히려 몸을 더욱 사렸었다. 그러나 정말로 아무런 일이 없자, 마치 위험한 지역에 살짝 발을 들여놓는 육식동물 처럼 점점 원래라면 유니언의 제지가 있을만한 곳으로 그의 손길을 뻗어갔다. 지금까지 해온 것과는 달리 명확히 불법적인 사업을 벌이고, 날뛰는 뱀파이어들을 잡아죽이는 대신 굴복시켜 세를 확장한다. 어느새 그의 영역에 한해서라면  무협에 나올법한 망할 놈들의 귀신들Kuei-jin마저도 그를 견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경찰도 그가 통제하는 삼합회 지부를 견제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제 슬슬 그의 영역은 부산 차이나타운 밖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회장님. 차 준비됐습니다.”


그가 최고급 양복의 옷매무새를 가다 듬으며 방을 나선다. 오늘 그는 도시 전역의 뱀파이어들을 모아, 자신의 위치를 과시함과 동시에 스스로를 프린스Prince로 선포할 것이다. 한국에 최초로 제대로 된 뱀파이어들의 사회가 생기는 셈이였다.


“가지.”


그가 방을 나선다. 건물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외제차에 탑승한 그. 차가 부드럽게 출발한다. 그의 운전기사가 차를 몰기 시작한다. 그가 상념에 빠진다. 벌써 2세기가 넘게 살아온 그다. 다른 뱀파이어들과의 정쟁에서 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오랜 시간에 걸쳐 다시 기반을 구축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는 동안 그를 밀어냈던 혈족들은 자기들끼리 상잔을 벌여 -물론 대외적으로 그들의 죽음의 원인은 불명이지만- 모두 마지막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자는 결국 그 뿐이었다. 살아남은 자가 제일 강한자라고 했던가. 몇십년 이상의 인내가 드디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음?”


그가 문득 상념에서 벗어나 창문 밖을 본다. 평소와는 다른 길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를 호위하는 차량을 제외하고는 다른 차들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뭐야. 이쪽 길이 맞나?”


그러나 운전기사는 무심하게 운전을 계속한다.


“이쪽 길이 맞아?”


그가 다시 묻는다. 구울로 만들어놓은 그의 비서를 다그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하는 놈을 뽑았길래-


“예.”


운전기사가 태연히 말하며 그를 돌아본다. 너무나도 평범하게 생긴 그의 귀에는 스파이 영화에 나올법한 무선 이어셋이 꽂여 있었다. 평소에 보던 운전기사가 아님을, 그리고 그가 자신이 아닌 무선 통신 너머의 누군가에게 대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자마자 그가 핸들을 거칠게 꺾는다.


“끼이익-”


차가 뒤집히며 도로를 구른다. 벨트를 매고 있지 않았던 그가 차 안에서 마구 내동댕이쳐져진다. 마침내 뒤집힌채 멈춘 차. 그가 문을 박차다시피 하며 밖으로 뛰쳐나온다. 


“아악!”


아무도 없는 깜깜한 외곽도로 -대체 언제 여기까지 나왔는지 모를 영문이다-  에 그의 부하들의 비명이 울려퍼진다. 뱀파이어와 구울이 섞여있는, 나름대로의 정예 병력이지만 속절없이 당하고 있었다.


쐐애액-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그의 바로 뒤를 따르던 차가 말 그대로 두동강 난다. 그 안에 있던 그의 부하들이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다. 도로 양 옆에서 매복하고 있던 군인 복장의 병력이 튀어나온다. 일반적인 K2 소총이 아닌, 적외선 조준기부터 최첨단 악세사리를 모두 장착한 소총을 들고 있었다. 어떤 소총은 총탄이 아닌 그 크기에 걸맞지 않은 화염을 뿌리며 그의 부하들을 불태운다.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날아와 도저히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을 만한 화력을 퍼붓기 시작한다. 


단순히 칼이나 둔기를 가지고 싸우거나 하는 범죄조직끼리의 싸움이라면 당연히 뱀파이어가 있는 쪽이 훨신 유리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 이상이다. 그의 몸에 담긴 피가 빠르게 죽은 육신을 돌기 시작한다. 보통 인간의 몇배나되는 속도로 그가 제일 가까운 자에게 달려든다. 그를 향해 총탄이 쏟아부어지지만 일반적인 인간의 조준으로는 -그렇다고 해도 너무 아슬아슬하다- 그를 따라잡을 수 없다. 


“컥!”


그의 초월적인 완력이 목을 조이고, 던져버린다. 한명 더. 그리고 한명 더-


“!”


턱, 하는 소리와 함께 팔이 잡힌다. 마치 어른에게 잡힌 아기처럼 꿈쩍도 할 수가 없다. 위협적인 정장을 입은 여성. 그녀는 웃고 있었다. 팔을 움직여보려고 하지만 그 전에 그의 다리를 초록색의 플라즈마 불꽃이 덮친다.


“아악!”


화염과 열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워보였건만, 순식간에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의 내면에 억눌린 짐승이 튀어나오려하는 순간, 스윽, 하는 매끄러운 소리와 함께 잡혀있던 그의 팔이 바이브로블레이드에 의해 잘려나간다. 총격이 쏟아지며 그의 다른쪽 다리마저 날아간다.


“퍼억-”


고기주머니가 터지는 소리. 방금까지만 해도 그의 팔을 잡고 있던 여성이 휘두른 충격 증폭식 코일이 달린 너클이 그의 턱과 목을 반정도 날려버린다. 위풍당당했던 그는 어느새 사지가 잘려나가고 말조차 하지 못하는 미물로 전락해버렸다. 바닥에 엎어진 그의 머리를 그녀가 밟는다. 단단히 그의 머리를 고정시킨 그녀가 그의 양복을 뒤져 핸드폰을 꺼내며 주위의 클론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한다. 그녀가 핸드폰을 클론이 가져온 분석 기기에 넣는다. 다수의 통신망 및 통신사의 DB에 연결된 그 기기가 핸드폰 내부의 연락처 및 연락 빈도와 메시지 내용들을 모두 분석해 최우선 목표를 설정한다. 


“VP, 리스트 나왔어.”


“감사.”


한눈에 봐도 기껏해야 20 후반에서 30 초반밖에 되지 않을 남자가 다가오며 짧게, 마치 친구에게 말하듯 대답한다. 그의 이름은 정우재, 그를 보좌하는 여성 요원은 일본계인 요시자와 유키. AP-5 아말감의 공백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었던 상부에서 정치적 혼란이 잦아들자마자 배치한 새로운 AP-5 아말감의 요원들이다.


그들은 웨더스 소령 하의 AP-5 아말감과는 아주 달랐다. 부하의 희생을 꺼리는데다가 일반 아말감과 비교했을떄 상당히 적은 자원으로 고생했던 그와는 정 반대다. 적정 수준의 예산이 배정되어 있고, 정우재 감독관은 필요할 경우 이런 식의 대대적인 습격 작전을 벌이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쓰레기 같은 것들.”


그가 혀를 차며 ‘회장’의 모습을 내려다본다.


“감독관, 이건 어떻게 할까?”


“전부 죽여야지. 프로제니터한테 보낼 샘플 같은 소리는 이제 지긋지긋하다.”


“역시, 감독관이랑 일하길 잘했다니까.”


그들은 언제 포그롬을 부활시켜도 이상하지 않은 강경론자들이다. 즉시 유키가 최우선 목표를 확인하고, 휘하 병력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한다. 지시를 마치자 마자, 그녀가 소형 화염 방사기를 들어 꿈틀거리는 회장의 몸에 조준한다. 




“감사합니다. 다음 분 계산 도와드릴게요.”


낭랑한 종업원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하은이 화장품 가게를 나선다. 핸드폰을 꺼낸다. 이어폰을 낀 채로 음악을 틀고 브라우저를 켠다. 포털사이트의 뉴스란에 들어가자 뭔가 심상치 않은 헤드라인이 보인다. 그녀가 있는 곳 근처에서 흉악범죄 용의자가 도주 중이라는 뉴스. 무슨 혐의인지 제대로 써놓지도 않고는 검문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는 내용의 뉴스다. 


하은이 ‘흉악범죄자’의 사진을 본다. 고혹적인 인상의 여인의 모습이 마치 스쳐지나가듯 찍혀 있었다. 하은이 그녀를 알아본다. 민려. 한때 하은, 아니, 하은의 오리지널이 도피할 때 도와주었던 뱀파이어다. 무슨 일을 저지른거야, 라는 생각이 들지만 곧바로 그 생각을 지워버린다. 그녀의 성격을 보았을 때 절대로 이 정도로 노출될만한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민려가 하는 일이 선을 넘어 가면무도회Masquerade를 위협하는 자들을 처단하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그 가능성은 하나 뿐. 누군가 그녀를 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뉴스와 공권력까지 동원해 뱀파이어를 쫓을 수 있을 만한 조직은 그녀가 알기로는 하나 뿐이었다. 




뭐야, 왜 연락을 안받지?


민려가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그녀는 막 서울에서 쓸데없이 이목을 끌고 있던 혈족들 몇을 적당히 ‘타일러’주고 오는 길이었다. 일을 끝마쳤음을 보고하기 위해 연락을 했지만 회장이 아무런 대답도 없다. 평소와 다르다. 아무리 늦어도 10분 내라면 답변을 해오는, 거의 편집증적인 성격인데 말이다.


별 상관 없지, 휴가라고 해두지 뭐.


그녀가 가볍게 생각하며 택시 기사에게 다른 곳으로 갈 것을 주문하려고 한다.


“어. 뭐여?”



택시 기사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는다. 도로 한복판에서 뜬금 없는 검문이 벌어지고 있었다.


“뭐여, 이 시간에?”


택시 기사가 툴툴거린다. 민려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실적올리기라도 되나보지. 차들이 검문을 거치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똑, 똑.”


창문을 두드리는 경관. 택시 기사가 불평하며 창문을 내린다.


“아, 꼭 서울 한복판에서 이래야겠수? 한번도 이런적이 없구만.”


“죄송합니다.”


경관이 사무적으로 말하며 차 안을 살핀다. 보아하니 단순한 음주운전 단속이 아닌 것 같다. 그때, 틀어놓고 있던 라디오에서 긴급 방송이 흘러나온다.


“-현재 용의자는 도주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현재 경찰 병력이 신속히 단속에 나섰다고 발표가 되었는데요, 서울 시민 여러분들은 혹시라도 극단적인 상황에 말려들지 않게 조심하셔야 겠-”


“거기, 뒤에 계신 여성분.”


경관이 허리를 숙인채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민려를 바라본다.


“왜요?”


그녀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대답한다. 


경관이 쓰고 있는 안경. 뭔가 이상하다. 그냥 안경과는 달리 테 옆에 마치 펜 형 카메라를 연상시키는 장치가 달려 있다. 그 카메라가 민려를 향한다. 아주 희미하게 그 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죄송하지만 내려주셔야겠습니다.”


경관이 위협적으로 말한다. 


“어이, 뭔 소리 하는-”


택시 기사가 말을 끝내기도전에 경관이 빠른 속도로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것이 권총임을 알아챈 민려가 거의 박차듯 뒷자석 문을 열고 뛰쳐나온다.


“이쪽이다!”


경관의 외침과 함께 순식간에 상황이 급변한다. 검문 중이던 경관들이 전부 민려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한다. 창백한 피부와 그에 대비되는 붉은 기의 화장, 거기에 검은 톤의 복장까지. 눈에 안띌래야 안띌수가 없다. 그녀가 엄청난 속도로 도망가기 시작한다. 한눈에 봐도 일반인을 훨씬 넘어선 민첩성과 속도. 지금 가면무도회의 규칙이 문제가 아니다.


“탕!”


멈춰선 차를 넘어서던 민려의 복부를 총탄이 꿰뚫는다. 



아프다.



고통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통 때문에 느려지거나 하지는 않는 것이 뱀파이어다. 이미 죽은 몸이기에 고통이 괴로움으로 직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총탄은 마치 불타는 듯한 고통을 전신에 퍼지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휘청이던 그녀가 필사적으로 균형을 잡으며 좁은 골목으로 달려간다. 생존에 대한 필사적인 욕구와 고통. 그녀가 야수성Beast을 억누르며 간신히 몸을 피한다. 그녀 뒤를 몇몇 경관, 아니, 경관으로 변장한 AP-5 아말감 휘하의 부대원들이 쫓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들은 별로 의욕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아니, 일부러 놔주고 있다고 해야할까.


총격으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거리 한복판에서 총을 쏘았던 경관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예, 감독관님.”


그가 몇가지 사항을 차분하게 보고한다. 김우재 감독관의 지시사항으로 민려는 사살이 아니라 포획 대상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예 자동차채로 날려버리던가 했을지도 모른다.


“지시하신 대로 상처만 입혔습니다. 예. 전용탄으로 한발 먹여줬습니다. 운이 좋으면 이 동네에 숨어있는 다른 흡혈귀 놈들한테 도망갈지도 모르죠. 네. 알겠습니다.”


일부러 놔준 이상 지금 당장 추적하기는 어렵겠지만 저런 꼴이 된 이상 뻔하다. 이미 마신 피를 다 소모하고 저 정도의 상처를, 그것도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면 자신을 보호해 줄 다른 뱀파이어에게 가게 될 것이다. 그 전에 민간인을 몇 살해할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이전 AP-5 아말감의 해체로 인해 예전의 정보망 다수가 망실되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감독관의 지시였다. 물론 그 지시사항에 불만을 가지는 자는 없다.


겁에 질린 민간인들을 경관들이 통제하기 시작하자 거리에 다시 질서가 돌아온다. 기자들이 몰려오기 전에 순식간에 검문 포인트가 철거된다. 근처의 기지국에 심어놓은 하이퍼테크로 프로그래밍 된 백도어들이 작동을 시작해 혹시라도 이 상황을 촬영한 영상이나 사진이 퍼지지 않게 조치를 취하기 시작한다. 저농도의 기억 소거제가 공기중에 살포된다. “초인적인 스피드를 지닌 여자가 총을 맞고 도망갔다”라는 기억을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범죄자가 경관에게 검문될 뻔 해 도망갔다” 정도로 희석시키는 화합물.


“내참.”


자신들의 기억도 소거되지 않게 경관으로 위장한 부대원들이 입에 방독면과 동일한 기능을 하는 디바이스를 문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펜을 옆으로 물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겠지만, 웬만한 방독면보다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다. 원래라면 코까지 막아야겠지만 저농도라면 의식적으로 입으로 숨을 쉬기만 하면 된다. 


어느새 아수라장이었던 거리가 천천히 원래 모습을 찾아간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신나는 구경 했다, 정도만의 기억을 가진채 제 갈길을 가기 시작한다. 어느새 AP-5 아말감의 요원들도 사라져있었다.




“...으.”


민려가 신음을 흘린다. 좁은 골목의 담장에 기대앉은 그녀가 배에 입은 상처를 살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다행스럽게도 검은 톤의 옷이기에 웬만해서는 티가 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흘린 피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갈증.



홍콩을 위시한 중국 쪽으로 탈출할 루트는 평소에도 몇개나 마련해 놓았다. 원래 그쪽 출신이기도 하고. 그러나 이런 몸 상태로는 탈출은 커녕 하루이틀도 못 갈것이다. 생각이 혼란스럽다. 집중하지 않으면 이성을 잃어버릴 것 같다. 그랬다가는 지나가는 사람을 덮칠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꼼짝없이 추적당해 죽는다. 


“안돼…”


그녀가 힘없이 중얼거린다. 어쩌면 이게 업보일까? 


죽음의 순간에서 단지 살고 싶어서 뱀파이어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다. 뱀파이어가 되기 위해서는 죽어야함을 알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것만이 목적이었다. 



목이 마르다.



어느새 그녀는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예술가이자 뱀파이어 사회의 사냥꾼 중, 후자에 기울어진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더 기울어지기전에 이대로







나는


끝ㅌ나 ㄴ-




“아… 안돼…”


그녀가 간신히 정신을 다잡는다.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모습에 무척이나 놀랄지도 몰랐다. 언제나 고혹적이고 잔인한 그녀니까.


“안…”


그녀가 간신히 일어난다. 야수성을 억누르며 비틀거린다. 역시, 처음부터 뭔가 잘못된 거였어. 이래서는 안돼. 아니, 아냐. 원래 이러려고 했던걸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목이 마르다. 피가, 필요해. 지금 당장. 안 돼, 지금 그랬다가는… 지금, 지금 당장, 안




안돼. 참아야. 참아야 하느




억눌ㄹ   야







짤랑, 하는 소리가 들린다. 민려가 고개를 든다. 그녀 앞에 누군가 서있었다. 그녀의 주의를 끌기위해 흔들었던 열쇠고리. 시선이 옆으로 향한다. 익숙한, 그러나 본지 오래된 얼굴이다.


“...하은 아가씨.”


그녀를 내려다보는 하은.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저… 좀 도와줄 수 있어요?”


민려가 애원하듯 말한다. 당장이라도 갈망에 미쳐버릴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 하은이 한숨을 쉬는 듯 하지만, 민려는 눈치채지 못한다. 지금의 민려로서는 그녀의 표정이나 말보다는 피부 밑에서 박동하는 혈관, 그리고 그 안에 흐르는 붉고 따뜻한 피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발…”


하은이 그녀에게 손목을 내민다. 민려가 허겁지겁 달려들어 그녀의 손목을 쥔다. 그녀의 송곳니가 하은의 손목을 문다.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하고, 민려가 그 피를 핥는다.


“읏…”


하은이 신음을 낸다. 손목에서부터 올라오는 간지러운 느낌. 혈관을 타고 흐르는 쾌감.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 같다.


“아…”


신음을 흘리는 하은. 그녀가 손으로 입을 막는다. 손목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한 두 방울씩 바닥에 떨어진다. 민려는 그녀의 피에 취해 정신없이 그녀의 손목을 핥고 있었다. 붉은 피가 그녀의 입술 옆으로 새어나오고, 따뜻한 생혈이 그녀의 목으로 넘어간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은이 입을 연다.


“이제 그만.”


하은이 그녀를 밀어내다시피 한다. 민려가 간신히 스스로를 억제하며 그녀에게서 떨어진다. 이제서야 이성이 돌아온 그녀가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


“별로요.”


하은이 민려의 말을 자른다. 


“당신들, 쓸데 없이 영역을 늘리고 선을 넘었죠?”


민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제서야 그녀도 상황을 깨닫는다. 웨더스 소령과 그 부하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감시하는 시선이 완전히 사라졌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것 같네요. 전 어떻게 찾았죠?”


“뉴스에 떴던데요.”


하은이 별것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말한다. 그런 그녀를 보며 민려가 자신이 어떤 입장에 처해있는지를 실감한다. 이제 그녀가 돌아갈 곳은 없다. 아마 도시를 벗어나는 것 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밀항을 하려해도 거미줄처럼 깔린 CCTV와 경찰의 감시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시하는 유니언의 시선을 피해 서울을 벗어난다는 것은 단신의 뱀파이어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대다수의 초자연체에게도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와요.”


하은이 무심하게 말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민려가 그제서야 하은이 AP-5 아말감의 감시를 피해 그녀를 찾아왔던 일을 떠올린다. 민려로서는 쉽게 그녀를 따라갈 수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생존 자체가 불투명했던 그녀로서는 경계를 쉽사리 풀 수 없는 것이다.


“안와요? 난 상관없어요.”


그러나 민려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그녀가 조용히 하은을 따라간다.




“...그게 무슨 말이지?”


정우재 감독관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묻는다. 그 밑의 부하가 긴장한 표정으로 다시 보고한다.


“놓아주었던 RD의 흔적을 놓쳤습니다. 통상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통상감시란 유니언의 하이퍼테크 디바이스, 예를 들어 초소형 드론이나 트래커 바이러스 같은 것을 사용하는 대신 감시카메라, 은행 ATM의 CCTV -물론, 유니언의 시스템에 통합된 이상 더 이상 ‘폐쇄회로’가 아니지만-, 경찰력 등 일반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감시자산을 사용한 감시를 말한다. 사실 유니언의 감시망은 대부분 이런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서울 같은 대도시라면 하이퍼테크 디바이스를 사용한 감시에 필적하는 성공률을 자랑한다. 통계학적 불가항력의 효과를 고려하면 오히려 통상감시가 훨씬 유리하다는 다수의 보고도 있었다.


“그래서, 흡혈귀 따위가 우리의 감시망을 벗어났다?”


“그… 그렇습니다.”


부하가 거의 겁먹다시피한 표정으로 말한다. 신디케이트 출신인 정우재 감독관은 회사 -굳이 따지자면 대기업 전략팀- 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까칠한 상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찾게 되면 바로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한걸로 끝내지 않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안도한 부하가 재빨리 집무실을 나선다. 정우재 감독관이 홀로그램 스크린을 다시 켜고 업무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그는 까다로운 상사일지언정 절대로 불공평한 짓을 하지는 않는다. 그의 태도는 부하들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지,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함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부하들을 몰아치면서도 그것에 매몰되는 타입도 아니다. 감독관의 머릿속에는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었다. 수동감시로 그 흔적을 놓쳤다면, 그것도 서울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한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누군가가 그들의 목표가 탈출하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더 실력이 좋아졌네요.”


민려가 괴이한 자Mage들의 실력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였다. 대략 1시간 반정도 도보에만 의존해 걸어 도착한 곳은 하은의 집. 그 동안 그녀는 감시카메라가 있는 도로는 모조리 우회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있는 곳이라면 기막히게 돌아가는 길을 찾아 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있는지도 모를 법한 좁은 골목과 도시계획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통로. 그들은 심지어 오래된 터널의 보수용 통로를 통과하거나 동네 뒷산의 폐쇄된 길을  돌아가기도 했다.


“쓸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산책하면서 봐뒀죠.”


산책을 그런 곳으로 하는 사람도 있냐고 묻고 싶지만 민려가 입을 다문다. 


“그래서… 그때는 잘 도망갔나봐요?”


“글쎄요. 정확히 그렇지는 않네요. 결국 잡히긴 잡혔으니까.”


하은이 쇼핑백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이젠 상관 없어요. 저 퇴사했거든요.”


민려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퇴사도 할 수 있었어요?”


하은이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마치 칼로 자르는 듯한 날카로움을 담아 말한다. 


“그리고 전 당신이 아는 그 사람도 아니에요.”


“...무슨 말이에요 그게?”


민려가 다가온다. 그녀는 평소의 매혹적인 뱀파이어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그녀가 하은의 뒤로 돌아가서는 한손을 살짝 그녀의 허리에 얹는다. 반정도는 먹이를 찾는 포식자의, 반정도는 연심을 지닌 여성의 모습이다.


“머리 길어진거 빼고는 옛날이랑 똑같은데요? 말하는 것도 옛날이랑 똑같고, 그리고 아까 피도-”


“난 그 여자가 아니라니까!”


하은이 민려를 거칠게 밀어 낸다.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민려가 알고 있는 오리지널은, 하은이 이미 죽여버렸으니까. 기억은 있지만, 그것은 하은이 겪은 일은 아니다.


“그 여자는 내가 죽였어요. 난 클론이에요.”


민려가 할 말을 잃는다.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하은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건조대에 걸려있는 수건을 던져준다.


“씻어요.”


하은이 수건을 던져주면서 말한다. 민려가 약간 당황한듯한 표정으로 물러선다.


“미안해요.”


“그리고 하은 아가씨라고 부르지마요. 제 원본이랑 동일시 되는것 같아서 소름끼쳐요. 피 냄새 나니까 이제 들어가서 좀 씻어줄래요?”


하은이 그렇게 쏘아붙이고는 고개를 돌린다. 민려가 그녀의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화상자국을 알아차린다. 지금보니 그녀가 피를 빨았던 손목에도 큰 흉터가 나있다. 민려가 그녀에게 무엇인가 말하려하다가, 포기하고 욕실로 향한다. 대체 그녀가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민려로서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ii)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