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링크


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은 인적이라고는 별로 없는 2층을 거닐고 있었다. 참으로 기묘한 곳이었다. 제대로 만들어진 방이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각각 높낮이가 다른 나무 칸막이들이 나름의 방을 이루고 있었다. 어떤 방에는 수천, 수백장의 종이들이 기둥과 나란히 쌓아져 있었고, 어떤 방은 화려한 금빛 자수가 잔뜩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방은 말 그대로 귀신이라도 나올법한 모습이었다.


“100년전만에도 2층도 잔뜩 차있었는데, 험한 시절을 겪으면서 많이 비었구랴.”


“일제시대 말인가요?”


“아무렴.”


“그래서, 당신들을 뭐라고 부르면 되죠? 신선?”


그가 대답하려는 차에, 예령과 예랑 둘이 무릎꿇고 글씨연습을 하는 방을 지나가는 우 노인.


“예끼, 이놈들아!”


지팡이가 빠른 속도로 예령, 예랑 둘의 이마를 친다. 


“요령 부릴게냐, 또?”


“아… 아야얏…”


이곳은 청학동 예절학교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다시 단정한 모습으로 -아니면, 단정한척 하려는 모습으로- 앉아 서예를 연습하기 시작한다.


“좀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겠구려. 우리들은 인귀, 또는 만귀라 하오. 이 아이들은 숨이 돌아온지Second Breath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이라오. 우리는 백魄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수련해야한다오. 그렇지 않으면 짐승만도 못한 괴물이 되고 말지.”


천녀유혼이라던가, 하는 이름이 생각나는 이야기다. 


“백이라는 건 뭐죠?”


“우리 모두 자기만의 악마가 있지 않소?”


두 사람이 다시 걷기 시작한다. 1층에서부터 부드러운 음악이 들려온다.


“집착이나 욕망, 아니면 원념 같은 것으로만 이루어진 악마가 마음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시오. 우리는 근본적으로 시체에 붙은 원혼 같은 거라오. 악에 씌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소?”


“그렇게는 안보이시는데요.”


“허허. 날 과대평가하시는구료. 뭐, 가끔은 도움이 될때도 있다오. 소저도 귀신을 부리는 몸이니 알고 계시지 않소이까?”


“귀신을 부리다니요?”


“...그래, 귀신이라는 단어는 좀 모욕적이겠구만. 신령Spirit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 저 아이들과 싸울때가 기억나지 않으시오?”


물론 기억하지 못할리가 없다. 무희의 형상. 하은의 몸을 인도하여 예랑과 예령의 춤을 맞받아칠 수 있게 했던 무언가. 예전에도 그런 것을 본적이 있었다. 막 늑대인간으로 각성한 소녀의 손에 나타났던… 색연필의 정령, 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것.


“거기에 원래 붙어다니는 신령The Man도 있고.”


하은은 대답하지 않는다.


“원래 그런 것이오. 이 세계의 모든 것에는 각자의 섭리를 관장하는 신령Spirit이 붙어있기 마련이지. 이곳 같은 장소에서는 그런 것들이 건너오기 쉽고. 한번 해보시겠소?”


그렇게 말하며 우 노인이 널찍한 소매에서 열쇠를 하나 꺼내 하은에게 넘겨준다. 낡은 돌로된 열쇠. 그녀가 그것을 받아들자마자 우 노인이 손을 흔든다. 차르륵, 하는 나무문의 소리와 함께 텅 빈 공간의 어딘가에서부터 나무 칸막이들이 몰려온다. 순식간에 칸막이들이 긴 복도를 이룬다. 우 노인의 모습이 그 칸막이들 사이로 사라진다. 복도를 이룬 칸막이들이 일사불란하게 반대편으로 회전한다. 순식간에 칸막이들 사이의 틈이 메워지고, 나무 칸막이들은 나무 벽이 된다.


“...”


하은은 긴 나무 복도 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칸막이 세개 정도의 간격마다 옛 양식의 양쪽 여닫이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마다 걸려있는 낡은 자물쇠들. 각자 모양은 조금씩 다르다. 


하은이 문 하나로 다가가 열쇠를 꽂는다. 철컥, 하는 둔탁한 소리. 의외로 문은 쉽게 열린다. 그러나 그 안쪽에는 새까만 어둠 뿐이었다. 


“...?”


망설이는 하은. 그 망설임을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갑자기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가 꿈틀 거린다. 썩어가는 피부로 뒤덮힌 긴 팔이 뻗어온다. 마치 늪지를 떠올리게 하는 메스꺼운 녹색의 피부. 하은을 잡아채려는 바싹 마른 손과 손톱.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하은이 문을 닫아버린다. 걸쇠가 혼자 움직이고, 자물쇠가 잠긴다. 문 반대편에서 잠깐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이내 조용해진다. 하은이 고개를 돌려 복도의 양 끝을 바라본다. 잠시 걸어보지만 똑같은 광경의 복도만 계속될 뿐이다.



좋아, 시험이라 이거지.



하은이 천천히 열쇠를 내려다본다. 어느 문으로 나가야하는지는, 그 어떤 단서도 없다. 오직 이 열쇠만을 빼고는. 신령, 이라는 단어를 하은이 되뇐다. 질서의 정령이나 전기의 정령 뿐만 아니라 색연필의 정령이나 춤의 정령까지 있다면, 열쇠의 정령이 없을리가 없지 않은가?


방법은 똑같다. 모든 퍼즐과 문제에는 그에 맞는 이치가 있고, 세계의 경계Gauntlet 너머에는 그 이치와 섭리를 주관하는 존재가 있다. 그 존재의 필요, 그리고 그 존재를 부르는 자의 필요, 마지막으로 매개. 그 세가지에 의해 부름이 완성된다. 질서의 유지, 비현실적인 파괴의 필요, 그리고 하은 자신의 몸을 매개로 교관The Man이 발현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문을 열고 길을 찾아간다는 사명, 이곳에서 벗어나야한다는 목적, 그리고 열쇠.


하은의 손위에 놓인 열쇠가 일순간 빛나며 무엇인가가 강림한다. 그것이 그대로 금색의 그림이 되어 하은의 피부와 밀착한다. 열쇠 그 자체가 나침반이 되어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흔들린다. 하은이 열쇠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간다. 이윽고 그녀의 발걸음이 한 문 앞에 멈춘다. 그녀가 문쪽으로 손을 내밀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뭘 원해?”



하지만 하은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하은에게 길을 찾게 해주는 댓가는, 누군가 다른 자가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도와주는것. 그것이 누가 될지는 모를일이다. 


어느새 그림이 더 이상 그림이 아닌 열쇠로 다시 돌아와있었다. 하은이 자물쇠를 연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간단히 열리는 자물쇠. 걸쇠를 밀고 문을 연다. 그 순간 복도를 이루고 있던 수백개의 나무판자들이 서로 겹치며 접히기 시작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멀리서부터 무너지는 복도의 벽. 하은이 문을 다 열기도전에 복도그 자체가 사라져있었다. 마침내 문 그 자체까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얇은 나무조각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진다.


“호오…”


우 노인이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은은 원래 있었던 2층으로 나와있었다. 


“이렇게 빠르게 나오다니… 무례를 범한건 내 제자들이 아니라 나인 것 같구료.”


그가 고개를 숙인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원래는 조금 더 보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구랴.”


그의 말과 함께 그가 흰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린다. 잠시 당황한 하은. 


“옥룡이 있는 방의 문을 열러 가신 거에요.”


예령이 쪼르르 달려오며 말한다. 그에 질세라 예랑이 다른 쪽 방향에서 달려오며 덧붙인다.


“아까 보신건 그냥 파편이에요.”


“파편?”


“네. 옥룡이라는 건 길을 잃은 자를 인도하는 물건이거든요. 엄청난 거에요!”


“맞아요! 어릴때 헤어진 자식도 순식간에 찾아줄 수 있고, 어떤 문제도 풀어버릴 수 있어요. 그리고 수천년된 유물 같은 것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물건이에요!”


“어… 그런데 조건이 있긴 해요. 스스로는 절대 알아낼 수 없는 길이어야 하거든요. 그건 좀 어렵네…”


예령이 우물쭈물하며 말을 이어간다. 그런 그녀에게 하은이 묻는다.


“그래서 모두가 그걸 가지고 싶어하는거고?”


“...어…네… 파편이라도 작동하는게 눈에 보이기만 하면요.”


“...일종의 저주죠… 뭐…”


“그래서 저희 녹궁에서 그걸 관리하고 있는거에요! 안쓰기만 하면 괜찮거든요! 굳이 쓰라고 유혹하거나 하는 물건도 아니에요!”


“엄청 강한 존재가 지키고 있거든요!”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들이 외부인과 이야기할 기회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옥룡을 지키고 있는게 뭔데?”


하은이 그 질문을 던지자 마자 그들의 표정이 얼어붙는다.


“마… 말하면 안돼요.”


예령의 말. 이미 창백한 그들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지는 것 같다. 


“마… 말하기 무서워요.”


예랑이 덧붙인다. 아무래도 신선 재목은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며 다시 물으려고 한다.


“녹궁에서 제일 강한 자가 지키고 있소.”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며 나타나는 흰색 연기. 그것이 사람의 형상으로 굳혀지며 우 노인의 모습이 된다.


“미안하오. 기다리게 했구려. 따라오시오.”


하은이 그를 따라간다. 2층 정 중앙에 어느새 엮인 나무들로 이루어진 계단이 있었다. 하은이 사방이 갑자기 조용해졌음을 깨닫는다. 1층에서도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묻기도 전에 3층으로 올라온 그들. 3층은 단촐했다.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컸던 2층과는 달리 이곳은 훨씬 작다. 단지 한옥식의 작은 방과 그 안으로 들어가는 여닫이 문이 있을 뿐.


“자, 들어가시오.”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요?”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하은이 약간 경계하는 투로 묻는다. 


“호오…”


하은의 말에 우 노인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소저께서는 갈 길을 잃은 것이 아니었소?”


“맞는 말이긴 해요. 하지만, 딱히 어딘가로 가야한다는 생각도 없어요.”


“그렇구먼.”


그가 말하며 방 앞으로 다가간다. 


“그럼, 일단 한번 보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소?”


하은이 대답하기도 전에 문을 여는 그. 여닫이 문안쪽에는 작은 단상이 하나, 그리고 그 위에 놓여져 있는 도장의 형상 뿐.


“그렇소이다. 옥룡은 원래 해인海印이라오. 원래는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던 것이, 지금은 그 힘을 잃어 방향을 가리켜주는 정도로 쇠약해졌지.”


하은이 묵묵히 그의 말을 듣는다. 그러나 왜 그녀에게 그것이 필요한지, 그리고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녀가 그것을 가지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도장이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다. 표면에서 수십개의 작은 도장 같은 모습이 돋아나기 시작하며 서서히 아까 하은이 보았던 용의 모습으로 변이한다. 용의 모습에서 멈추지 않고, 이번에는 매끄러운 구체의 모습으로 변하는 옥룡.


“...”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하은. 그녀의 눈 앞에서 벽옥의 형상이 스스로를 깎아내며 마치 나침반 같은 형상으로 변한다. 그것이 하은을 가리킨다.


“...!”



-저것을 가져야 한다.



그 생각이 하은의 머릿속을 옥죄어오는 듯 하다. 그녀가 발걸음을 내딛어, 방안으로 들어간다.


“확실하시오?”


“모르겠네요.”


확실한지 아닌지도 모를정도로, 아니, 상관 없을 정도로 그 유혹은 강했다. 유혹 정도가 아니라 거의 주박에 가까운 수준. 



그런데… 


옥룡에 손을 뻗기전, 하은이 간신히 정신을 차린다. 그것은 아직도 하은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걸 지키고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도 없-”



녹궁에서 제일 강한 자.


예령과 예령이 제일 무서워 하는자.


목숨 만큼 소중한 것.


가져야 한다, 는 주박.



하은이 온 힘을 다해 옆으로 뛴다. 거대한 형상이 하은이 있었던 곳을 완전히 박살내버리고 옥룡을 삼킨다. 하은이 옆으로 구르며 우 노인의 모습을 본다.


민간 신앙에나 나올법한 괴물.


거대한 살덩어리로 변해있는 그. 목이 있어야할 곳에는 마치 칠성장어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흉측한 입이 뻥 뚫려있었다. 사람 열명은 한꺼번에 삼킬만한 크기의 입. 그 안쪽에 박힌 이빨에는 모두 일그러진 우 노인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이 뻗어오며 하은이 있는 곳을 덮친다. 하은이 다시 한번 뛰며 피한다.


우 노인의 형상이 점점 더 괴이하게 변해간다. 허리에서 5개의 관절을 지닌 팔이 수십개가 뻗어나와 그 몸을 지탱한다. 마른 그의 몸에서 새하얀 뼛조각들이 튀어나오며 몸을 덮는다. 팔과 다리였던 것은 거대하게 자라나 두개의 입을 가진 뱀의 형상이 된다. 뱀의 눈이 있어야 할 곳은 마치 민달팽이 눈 같은 것이 자라나 있었다. 


기괴하기 그지 없는 모습.


네개의 뱀머리가 입을 연다.


“가져갈 수 없다!”


원념, 집착, 욕망. 영혼의 부정적인 반쪽이 화한 삿된 귀신, 백魄의 모습. 


하은이 이 상황을 이해하는데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옥룡을 가져갈 사람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니다. 가져갈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지 못했던 것이지.


이 괴물이 가진 옥룡에 대한 집착은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우 노인이 평소에 그것을 억누르고 -다른 자들을 이곳에 데려올 수 있을 정도로-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


뱀머리들이 하은을 향해 끈적한 녹색 액체를 뿜어낸다. 하은이 그것을 피하며 우 노인이었던 것 옆을 스쳐지나간다. 점점 커지는 그 형상. 수십개의 다리가 그녀를 향해 뻗어온다. 하은이 그것들을 발로 차내며 계단을 굴러가다시피해서 내려온다. 하은을 쫓는 백. 그것의 원념을 지탱하지 못하는 듯 나무 계단이 박살나며 허공으로 사라져버린다. 칸막이 사이를 달려가는 하은. 그녀가 2층의 끝자락에 도달해서는 1층을 내려다본다.


역시.


1층에는 아무도 없다. 그냥 휘날리는 비단과 주인 없는 방석들이 있을 뿐. 우 노인은 문을 열러간 것이 아니었다. ‘부수적인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한 것이지.


“가져갈 수 없다!”


녹궁 안을 울리는 백의 원념 섞인 외침. 하은이 또 다시 옆으로 뛴다. 기다란 목이 그녀가 있었던 곳을 강타하며 기괴한 입 안으로 바닥과 난간을 통째로 삼킨다. 조각들이 날리며 1층의 비단들을 찢는다. 하은의 시선이 백의 가슴 부분, 정확히는 명치 부분이어야 할 곳을 향한다. 그곳에는 다시 벽옥의 형상으로 돌아온 옥룡이 박혀 있었다. 마치 벌레 갑각 사이에 구슬이 끼워져있는 듯한 모습이다.


“...”


하은이 두 발을 단단히 딛는다. 그녀가 손을 뻗어 오라는 듯이 까딱거린다.


“가져갈 수 없다!”


또 다시 울려 퍼지는 괴성. 그녀를 향해 뱀 머리들이 쇄도한다. 하은은 마치 춤추듯 뒤로 물러서며 피한다. 그녀의 움직임이 빠르게 무술이 아니라 춤으로 변해간다. 타격이 아니라 오직 상대의 합에 맞추어 피하기 위한 움직임. 거대한 아가리가 덮쳐오면 느리지만 확실한 페이스로 피하고, 수십의 팔이 뻗어오면 큰 동작으로 아예 이탈해버린다. 훨씬 빠르고 정확히 덮쳐오는 뱀머리들은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오직 그 움직임에 맞추어 유려하게 합을 맞출 뿐. 


분노와 원념 그 자체를 압축해 놓은 괴물이 하은을 통채로 삼켜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덤벼든다. 마침내 참을 수 없어진 것인지 그 괴물이 뱀머리와 아가리를 동시에 동원해 하은이 있는 곳을 덮친다. 나무 칸막이와 신비의 산물들이 덧없이 삼켜진다. 그러나 하은은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머리 중 하나 위로 뛰어오른다. 다시 한번 도약한 그녀가 길고 두꺼운 목을 타고 달린다. 괴성과 함께 휘둘러지는 목. 하은이 자연스럽게 그 힘을 타고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그녀의 시선이 2층을 훑는다.



서로 껴안고 벌벌 떨고 있는 예령과 예랑.



하은의 몸이 낙법과 함께 가법게 착지한다. 그녀가 즉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칸막이를 밀어버리고 도착한 그녀. 동시에 반대쪽에서 칸막이와 바닥을 박살내고 나타나는 우 노인의 백. 그녀를 향해 온 몸으로 밀어 붙이며 돌진해오는 그것. 하은은 피하는 대신, 예령과 예랑 쪽으로 뛰어든다. 하은이 그들을 벽으로 삼아 숨는다. 


그녀의 머릿속에 우노인의 말이 선명하게 스쳐지나간다.



-목숨만큼 아끼는 옥룡과, 목숨보다 아끼는 예령과 예랑.



네 마리의 뱀과 흉측한 아가리가 그들을 덮친다. 예령과 예랑이 비명을 지르며 웅크린다.


“...?”


그러나 그들이 한꺼번에 삼켜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 노인의 백이 순간적이지만, 그 움직임을 멈춘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하은이 뛰쳐나온다. 그녀의 몸이 하나의 섬광이 되어 괴이한 형상을 스친다.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 그녀의 몸이 백의 뒤에 나타난다.


그녀의 손에는 옥룡이 들려 있었다.


“그오오-”


약해지는 괴성. 백의 형상이 서서히 검은 연기가 되며 사라진다. 그 안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우 노인이 나타난다.


“사… 사부님!”


예령과 예랑이 달려간다. 우 노인은 흉측한 모습에서 원래의 수염이 성성한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상태였다.


“괜찮으십니까, 사부님!”


예랑이 소리지르며 우 노인의 몸을 흔든다. 그러나 그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사부님! 사부님!”


“사.. 사부님이 돌아가ㅅ-”



따악!



“아, 아야!”


조금 힘이 없지만, 그래도 아까와 같은 속도로 두 인귀의 이마를 강타하는 지팡이. 예령과 예랑의 신음소리가 동시에 울려퍼진다. 


“예끼, 이놈들아! 어딜 멀쩡한 사람을 보고 죽었다고 해!”


그가 몸을 곧게 세우며 일어난다. 하은의 손에 들린 옥룡이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한다. 완벽한 구체의 형상이 이내 현대적인 자물쇠와 그 고리에 달린 열쇠 모양의 목걸이로 변한다. 그 양쪽에서 얇은 목걸이 체인이 뻗어나와 하은의 목에 자연스럽게 걸쳐진다. 그와 동시에 하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가져야 한다’라는 생각이 잦아든다. 예령과 예랑의 말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없는 모양이었다.


“...이제 옥룡은 내 손에서 떠나 소저의 손으로 갔구려. 내 소임을 다했소이다.”


그는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난쟁이들이 엉망이된 2층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박살난 칸막이들을 마치 종이처럼 접어 머리 위에 들어 옮기고, 파편들을 싹싹 쓸어담아 없앤다. 빗자루로도 쓸어담을 수 없을 만한 먼지들은 물로 닦아내고, 1층의 찢어진 비단들을 일사불란하게 교체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녹궁의 모습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어디에서부턴가 손님들이 다시 나타나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간다. 다시 1층에서 음악이 울려퍼진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미리 경고라도 해주시면 좋을텐데요.”


“미안하오. 하지만 나도 그런 식으로 물려받은 것이거든.”


전통이란, 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하은. 


“이제 옥룡이 녹궁을 떠났으니, 이곳은 말 그대로 주막밖에 되지 못하겠구려. 하지만 언제든지 환영이오. 숨어야 할 때나, 이 땅을 떠나야 할 때가 있으면 찾아오시구랴.”


그가 지팡이에 몸을 기댄채 공손하게 몸을 숙인다.


“으앙… 사부님, 그러면 이제 저희 녹궁의 자랑거리가 없어진거에요?”


따악!


여지없이 지팡이가 날아든다.


“예끼! 이놈들아! 너희들이 자랑거리가 되려고 하지는 못할망정!”


칭얼거리는 예랑과 예랑을 혼내는 우 노인. 하은이 이제 자신의 목걸이가 된 옥룡을 만지작거린다. 겨우 몇시간 만에 일어난 일들이, 전혀 실감이 되지 않았다. 




하은이 낡은 문을 나선다. 


녹궁으로 향하는 낡은 문에는 정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무언가 초자연적인 보호가 걸려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들어올린다.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갑자기 나침반이나 큐브로 변하는 일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하은이 이곳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전혀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가 작게 한숨을 쉰다. 혹시 꿈이라도 꾼 것이 아닐까,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돌담길을 걷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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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海印: 해인은 해인사의 유래에 관한 전설에서 등장하는 물건입니다. 전설마다 조금씩 다른데, 어떤 전설에서는 염라왕이, 어떤 전설에서는 용왕이 주는 나무 도장으로 등장합니다. 종이에 원하는 것을 쓰고 도장을 찍으면 (인주가 없어도 된다고..) 종이가 그 물건으로 둔갑하는 신묘한 물건입니다.


이 도장을 얻은 유생은 사사로운 이익이 아닌 만 백성을 구하기 위해 쓰기로 했고 그에 따라 건립된 사원이 해인사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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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 등장한 우 노인 및 예령 예랑은 인귀라 하여 '동양의 흡혈귀'라 불립니다. 현대의 인귀들은 대다수가 저승에 간 원혼들 중 강력한 원념을 지닌 것들이 시체에 붙어 부활한 것들입니다. 이들은 나름의 법도를 따라 스스로를 단련하며 깨달음을 얻어 신선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합니다.


이들은 피나 살에서 기를 얻으며, 동양 판타지에 나올만한 능력들을 사용합니다. 뱀파이어의 비스트와 비슷하게 백이라는 것이 있으며, 스스로를 단련하지 않으면 원념에 가득찬 괴물의 면모인 백에게 지배당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백을 해방해서 깽판치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 있는 인귀들의 사회는 녹궁이라고 하며, 동양으로 넘어오고자 하는 초자연체들이 중-일 간의 가교로 거치는 곳입니다.


참고작품: 황후화, 매트릭스2, 인셉션, SCP-184, 피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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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인귀고 나발이고 그냥 서양 세팅이 채고채고 진짜 인귀 넣어달랬던 사람들 마구 때릴것 ㅇㅇ


현실교란자인 하은이는 신속하게 "처리" 되어야 할것 ㅇㅇ


너무 괴로웠으니 다음 편은 텍섹텍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