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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성적 묘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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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 이면.




“읏…”


하은이 신음을 흘린다.


“아… 읏…”


빛이라고는 블라인드 사이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바깥의 방 뿐. 


하은과 그녀의 파트너가 얽혀든다. 파트너가 그녀를 뒤쪽에서부터 안은 채로 행위에 몰두 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흥분과 긴장으로 팽팽하게 휘어 있었다. 그가 한쪽 팔로는 그녀의 몸을 비스듬히 안고, 다른 쪽으로는 그녀의 목을 지그시 조른다. 몽롱함과 함께 몸 전체로 주입되는 듯한 쾌락. 그녀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라고는 다리 정도다. 그것마저도 그의 다리에 걸려 있기에 사실상 자유를 박탈당한 셈이다. 그녀가 그에게 맞추거나 하는 행위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아… 으….”


“아무 소리도 내지마.”


그가 강압적으로 명령한다. 하은이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킨다. 그러나 숨소리는 숨길수가 없다. 빠르게 움직이던 그가 천천히 허리를 늦춘다.


“아무 소리도 내지 말랬지.”


“죄송해요…”


그녀가 가냘프게 말한다. 전혀 평소의 그녀답지 않다. 그가 그녀의 목을 살짝 조르며 속삭이듯 말한다.


“그렇지. 말 잘듣네.”


다시 빨라지는 그의 움직임. 하은이 자신이 어떤 처지가 되어있는지를 온몸으로 느낀다. 철저하게 수동적인 관계. 그녀를 인형으로 대체하더라도 체온 정도를 빼고는 전혀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 생각에 더욱 흥분하는 그녀. 그리고 그 상황에 몰입하기 위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됐어.”


그가 하은을 거칠게 다뤄 그의 몸 위에 앉힌다. 


“해.”


하은이 살짝 허리를 흔들기 시작한다. 살끼리의 마찰음과 미끈거리는 소리, 희미하게 비릿한 향. 밀려오면서도 철저하게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쾌감. 



그래서, 그는 좋은 사람이다.


하은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없어지는 것.


스스로의 일을 결정할 힘도, 권한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래야할 필요와 책임마저 없어진다.


그러한 것을 전부 잊고, 스스로가 쾌락, 그리고 쾌락의 기구가 되어 이 순간에만 몰두하는것.


모두 포기 하-




자아의 망실, 소셜 컨디셔닝, 의체, 주어진 목적, 명령, 질서, 규칙, 상급자, 복종, 기계 속의 영혼.




-하은의 머릿속을 유니언에서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그녀가 움직임을 멈춘다. 


“제대로 안해?”


남자가 몰아붙인다. 그녀의 허리를 잡고, 팔을 뻗어 목을 살짝 조른다. 하은이 그의 배에 손을 얹고 움직이지만, 아까 같지 않다. 


어딘가 어색한 순간이 흐른 뒤, 그가 하은의 허리를 부드럽게 잡고는 속삭이듯 말한다.


“그만해도 돼요.”


하은이 천천히 멈춘다. 잠시 두 사람의 시간이 어둠 속에서 멈춘다. 그녀가 서서히 입을 연다.


“미안해요.”


하은이 메마른 목소리로 사과한다.


“뭐 그런걸 가지고 미안해하고 그래요. 이리 와요.”


그가 몸을 일으켜 하은을 안아준다. 단련된 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진심이 느껴진다. 무얼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그녀가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평범하게 지냈으면 조금은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생각 했는지는 모르지만, 잊어버려요. 오늘은 안해도 되니까.”


하은이 살짝 허리를 들어 그를 빼낸다. 그리고서는 가만히 그에게 몸을 맡긴다. 천천히 머리 속에서 괴로운 상념들이 사라져 간다. 어쩌면 우 노인의 말대로 언제까지 혼자일 수는, 그리고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할 수는 없는걸까. 그녀가 그런 생각까지 떨쳐버리고 잠시동안 텅 빈 감각에 빠져든다. 그녀의 몸을 따뜻함이 감싸온다.




직원이 20, 30명 정도 있을 법한 중소기업 사무실. 화려한 사무실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봐줄 만한 사무실이다. 만약에 진압장비를 입고 도저히 한국 경찰, 아니, 군마저 운용하지 못할 것 같은 화기들을 들고 무릎 꿇고 있는 직원들을 겨누고 있는 모습만 없다면.


그 뿐만 아니라 사무실 안에서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 모양인지 책상이 뒤집어져 있고, 찬장이나 캐비넷은 제 자리에 있는 것이 없었다. 일부 집기는 아예 총격과 화염으로 인해 박살이 나있었다. 그것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이라면, 몸이 산산조각난 채로 널부러진 몇명의 직원 들일 것이다. 그들의 장기가 산산조각나 책상위를 더럽히고 있었고, 채 소화되지 않은 음식이나 오물 역시 이곳 저곳에서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대원들 사이로 정우재 감독관이 걸어들어온다. 그가 바로 무릎 꿇고 있는 자들 중 제일 좋은 옷을 입은 남자에게 다가가 권총을 겨눈다.


“진짜 개판이네.”


정우재 감독관이 경멸스럽다는 투로 말한다. 그가 겨누고 있는 묠니르 VI가 수갑이 채워진채 잔뜩 구타당한 남성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신디케이트 산하의 아지르 프로토타입 사가 제작한 묠니르 VI는 범용 개인 화기 시스템으로 제작된, 신디케이트 요원들이 무척이나 선호하는 무기다. 묠니르 V까지만 해도 보통의 권총보다 훨씬 크고 소음기를 따로 부착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천둥소리가 나는 무기였지만, 2018년이 된 지금은 약간 큰 정도의 권총에, 소음 기능이 기본으로 부착되어 나오는 무기가 되었다. 거기에 자이로젯 부터 니들러 탄까지 다양한 탄을 파츠 교환 없이 발사 가능하며, 토마스 II에나 달려나오면 나노팩토리 탄창까지 장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화려한 기능은 완벽하게 무력화된 현실교란자, 아니, 현실 테러리스트에게는 오버킬일 뿐이다. 그가 묠니르의 조정간을 움직여 폭발성 산탄에서 일반탄으로 전환한다.


“사, 살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가 터져나간다. 그의 수트에 피가 튄다. 겉보기에는 일반 양복과 똑같지만 실제로는 방탄 및 방검 기능이 있으며, 심지어 최신식 기술인 프리미움 나노 직조 안감을 대어 현실교란자들의 공격에서부터 제한적인 방어를 제공하는 물건이다.


“아, 미친.”


그가 욕설을 내뱉는다.


“새거 입고 있는걸 까먹었네.”


“아, 뭐야, 감독관.”


그 뒤에서 유키가 요원들을 밀어제끼며 들어와서는 불만에 가득찬 목소리로 항의한다. 성형외과에서 모델로 삼을법한 외모와 눈과 입을 과장한 화장. 전혀 전투 현장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오히려 조명이 어두운 곳에서 튀어보이기 위한 모습이라고 할까. 화장 뒤의 모습도 아마 인위적, 아니, 수학적으로 완벽한 얼굴에 가까울 것이다. 그녀가 큰 눈을 깜빡이며 묻는다.


“내 몫은 없어?”


“저번에 많이 죽였잖아.”


정우재가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진짜 개판이네. 저번에는 뱀파이어 삼합회에, 이 동네는 컬트 새끼들이 운영하는 제약회사도 있고. 마경이다, 마경.”


그가 압수된 물품이 잔뜩 쌓여있는 곳으로 다가가 약봉투 하나를 집어올린다. 


“보건당국한테 안 걸릴 현실교란적 성분으로 만든 마약성 진통제라… 진짜 가지가지 한다.”


그가 바닥에 봉투를 던진다. 


“전부 데려가.”


그 뒷처리도 일이다. 컬트 오브 엑스터시 소속의 현실 교란자는 방금 즉결처형해버렸지만, 그를 광적으로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면 그냥 생업에 종사한 것 뿐이기 때문에 기억을 지우고 재교육 한 후 사회에 복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아… 귀찮아.”


차라리 독고다이 식으로 유니언과 싸우는 자들이 훨씬 낫다. 이런 식으로 기업을 세우고 상품을 판매하거나 미디어를 통해 대중의 일상에 침투하는 자들은 정말 뒷처리하기가 까다롭다. 이 회사야 워낙 작고 시설을 재활용할 수 있기에 신디케이트가 인수할 수 있지만, 이 이상 사이즈의 회사면 그것도 꽤나 공들인 준비가 필요하다. 


원래, 트래디션 쪽과의 싸움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정말 재원이 넘쳐나지 않는 이상 -그리고 DA 이후, 그런 일은 보통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공세적인 포그롬은 너무 비용이 많이 들기에 당연히 기각이다. 그러나 테크노크라시가 장악하고 있는 영역으로 쑤셔들어오는 트래디션과의 싸움은 이야기가 다르다. 유니언의 병력이 티티파니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서 활약하기 힘든 것처럼 유니언이 장악하고 있는 곳 -지리적 위치 뿐만 아니라 정치 및 경제 분야- 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트래디션은 상대하기가 쉽다. 트래디션이 장악한 지역에서 컬트 오브 엑스터시가 운영하는 제약 회사를 박살내려면 법적, 경제적 재제도 쓸 수 없고, 오직 초과학 디바이스의 사용마저 제한되는 환경에서의 전투 뿐이지만 한국은 그런 환경과는 정 반대였다.


“공장 쪽은?”


“다 제압했어. 공백기 동안 세력을 열심히 불린 모양이네.”


“어. 매출도 고공행진에 주가도 300% 뛰었으니까.”


그가 대답하며 VDAS에 뜨는 체크리스트를 훑는다. 그가 짜증을 느낀다. 상부에서 내려온 목표보다는 대충 20% 정도 앞서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원래라면 주가가 뛰기전에 증거를 수집하고 이들을 일망타진할 타이밍을 더 빨리 정했어야 했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과 시간으로는 어쩔 수 없다. 덕분에 최상의 시나리오보다 예산을 2배나 더 쓰게 생겼다. 물론 평균적인 시나리오 보다는 예산을 30% 정도 절감했지만.


“에이, 진짜. 신디케이트 티를 그렇게 내야돼?”


“어.”


그가 귀찮다는 듯이 대답한다. 선글라스 모양의 VDAS를 통해 그에게 인수 합병을 위한 자금 운용이 승인되었다는 메시지가 전송된다. 그가 그나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이 회사의 현실교란적 요소는 제거되고, 대중에게 진정 이로운 약품을 공급하는 회사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ㅁ사, 갑작스런 피인수 사실 발표-


시중에서 구매 가능한 진통제와 다른 성분을-


보건 당국 승인에 주가가-


일부 약학 전문가, 우려를 표명-


대표 이사 사임에도 불구하고 피인수로 인해 주가는 안정적-




하은이 그 기사를 읽으며 이것이 새로운 AP-5 아말감의 행위임을 직감한다. 일반적인 인수 합병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빠르면서도 부드럽게 진행된다. 거기에 어떤 신호도 없는 상태에서 발표된 대표 이사의 사임과 피인수라는 큰 이슈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거의 인위적일 정도로 빠르게 안정화되었다. 금융 당국은 제약회사라는 민감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신속히 인수합병을 승인했고 관계 부서 역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그에 관한 뉴스는 신속히 다른 뉴스에 파묻혀 버린다.


너무 빠르고, 인위적이면서도, 그 정도가 적절해 별로 놀라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해야할까. 


아마도 트래디션 측에서 운영하는 회사를 습격한 것이겠지. 


하은이 핸드폰에서 뉴스 창을 닫으며 결정한다. 그녀 혼자서는 너무 미약한데다가 언제까지나 숨어다닐 수도 없는 일이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 바로 현실교란자, 아니, 이제는 그녀와 동류가 된 자들과 협력하기로 결심하는 그녀였다.





지하층 전체가 들썩이는 듯한 음악소리. 사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음악에 목소리가 묻히지 않기 위해 거의 고함에 가까운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알코올 향과 담배 냄새가 잔뜩 섞인 가운데에 이런 클럽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하은이다.


하은은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계속해서 클럽 안을 훑는다.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남자도 없다. 사실, 그녀가 여기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느낌이다.



저기있네.



하은의 인형Avatar이 속삭인다. 그녀의 시선에 들어오는 한 남성. 특별할 것 없어보이지만 하은은 AP-5 아말감 시절 봐두었던 자료를 통해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탈리아의 정보원이다. 하은이 그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붙잡는다. 그가 돌아서더니 하은의 손을 뿌리 친다.


“관심 없어요.”


“탈리아를 보고 싶은데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그가 하은을 무시하고 멀어진다. 그녀를 뒤로 한채로 시끄러운 음악과 스테이지 사이를 지난다. 화려한 조명이 그의 얼굴을 스치지만 그의 얼굴은 마치 빛을 거부하기라도 하듯이 불확실한 명암에 가려져 있었다. 그가 뒤를 돌아본다. 군중 속에 서있는 하은이 돌아서는 것이 보인다. 그가 핸드폰을 꺼내든다. 탈리아에게 그녀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화장실 근처를 지나는 좁은 복도를 지나 그가 뒷문으로 가는 통로에 들어선다. 코너를 돌아서자마자 하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를 가로막는다.


“뭐… 뭐에요, 어떻게?”


그가 황급히 뒤를 바라본다. 


어떻게?


그가 알기로는 이곳으로 오는 통로는 자신이 온 길 뿐인데-


“탈리아를 봤으면 하는데요.”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몰아붙이는 하은. 그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심기에 거슬렸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그가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하은이 그가 들고 있는 핸드폰을 본다. 아무리봐도 시중에서 판매되지 않는 종류다. 그가 맘편히 전화를 걸고 있는 것으로보아, 아마도 마법적인 보호가 걸려있는 핸드폰이겠지. 그가 돌아서서는 잠시 통화에 몰두한다. 전화를 끊자마자 그가 하은에게 일방적으로 고한다.


“탈리아가 찾아올겁니다. 그리고 절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조심하세요. 그런식으로 접촉하면 저희 둘 중 하나는 들킬겁니다.”


“누구한테요?”


그가 픽, 웃으며 말한다.


“누구긴요.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이죠. 요즘 새로 들어온 놈들이 완전 꼴통이라는데, 조심하세요.”


그가 하은을 지나쳐서 뒷문으로 나간다. 하은이 그 자리에 선 채 잠시 그 말을 곱씹는다.




“감독관!”


유키가 허겁지겁 달려와서 막 지휘통제실로 들어오는 정우재 감독관의 옆에 달라붙는다. 그는 막 오늘의 두 번째 에르고-콜라를 들이키고 있었다. 21세기 들어 에너지 드링크가 크게 유행하면서 프로제니터의 약학자Pharmacopoeists 들이 전지구적 규모의 임상실험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통해 현재의 에르고-콜라는 부작용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개량되었다. 다 마시자마자 졸음이 싹 가시고 활기가 돌아온다. 예전보다 더욱 개량된 AP-5 아말감의 중앙 감시 시스템이 주요 대도시를 감시하고, 주식시장 및 미디어에서 현실교란자의 영향을 탐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클론 오퍼레이터들이 손을 일반인의 몇배의 속도로 움직이며 감시 부대를 재배치하고 뉴스와 상부에서의 정보를 정리해 데이터베이스에 반영한다. 


정우재가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아, 제발 조심 좀 해라. 너한테 받히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전치 3주야.”


“아, 진짜. 꼭 그래야돼?”


“어. 그리고 가슴 좀 치워라. 무겁다.”


유키가 불만에 가득찬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고 하지만 그 전에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녀의 두뇌는 모니터보다 더 빠르게 AP-5 아말감의 정보를 전송받기에 그 누구보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거 발견됐나보다!”


“그거?”


“왜 그 배신자 있잖아?”


정우재가 즉각 지시한다.


“메인 스크린으로.”


클론 오퍼레이터가 감시 화상을 띄운다. 서울 한복판에서 잡힌 감시영상이었다. 예전에 뱀파이어를 놓쳤을때, 그녀의 ‘협력자’의 실루엣이 유키의 시각 메모리에 기록되었던 것이다. 그 실루엣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감시망을 펴고 있는 AP-5 아말감. 드디어 그녀가 걸려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감시영상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눌러쓴 모자에 마스크까지.


“허, 이거봐라.”


그가 혀를 찬다. 정말 교묘한 각도에서 이동하고 있는 그녀. 몸이 반정도 가려지거나, 지나가는 버스나 차, 아니면 행인 등을 이용해 최대한 감시를 피하고 있었다. 


“이거 지금 추적중이야?”


“어. 근데 지금 경로로 봐서는 길게 해봐야 한 20분이면 추적 끊길걸?”


“그래?”


그가 즉시 손짓하자 메인 스크린의 화면이 다른 감시장치로 전환된다. 마찬가지로 30초도 지나지 않아 스크린이 또 다른 장치로 전환됨과 함께 추적 대상의 흔적이 끊긴다. 주변의 모든 감시장비, 심지어 상공에 떠있는 초소형 하이퍼테크 드론까지 동시에 동원되어 그녀를 추적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마저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낮은 지붕 사이를 누비며 추적이 어려운 곳으로 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정우재 감독관이 낮은 소리로 말한다.


“그럼 지금 당장 쫓아가야지.”




집으로 가는 것도 까다롭다.


하은은 AP-5 아말감 시절, 그리고 의체였을때 쑤셔넣어진 기억이 제대로이길 바라고 있었다. 감시장비를 따돌리기 위한 테크닉은 다행스럽게도 아직도 체화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 듯 했다. ATM부터 신호등까지 온갖 곳에 설치된 CCTV와 감시망을 피하는 것은 그렇게 큰 노력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완벽히 감시망을 피할 수 있는가, 를 생각하면 불안과 경계가 가시지 않는다. 어쨌든 서울을 걸어서만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니까. 덕분에 구형 버스를 타거나 감시망이 덜한 곳을 거쳐오느라 출퇴근 시간도 길어진 상태다.


그녀가 드디어 한적한 곳으로 들어선다. 긴장이 풀어진다. 이곳에서부터라면-


“찰칵!”


강렬한 불이 켜진다. 하은이 눈을 찡그리면서도 본능적으로 손을 올려 눈가를 가린다. 하은이 소리를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한다. 두 대의 차량. 인원은 10명 정도. 


“실례하겠습니다.”


밝은 빛을 등지고 누군가가 말한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그의 옆에 서있는 여성은 우스움을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


“아, 진짜. 감독관. 그냥 박살내면 안돼?”


“안돼. 거, 불좀 꺼 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밝은 불빛이 약해진다. 이제 거리를 비추는 형광등 불빛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들은 이미 문을 닫은지 오래된 상가 사이의 길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하은이 그들을 바라본다. 그때의 두 요원이다. 


추적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아무말도 안하네?”


정우재 감독관이 약간 비아냥대듯 말한다. 당연하다. 목소리를 녹음 당했다가는 다음 추적을 더 쉽게 해줄 뿐이니까. 그가 명령한다.


“잡아.”


AP-5 아말감의 진압부대가 그녀를 향해 총을 들어올리려 한다.


“!”



하은이 재빨리 그들 사이로 뛰어든다. 그녀의 움직임을 예상하지 못한 마취총탄이 전부 빗나간다. 하은이 한 대원의 팔을 올려차기로 가격한다. 손에서 떨어지는 마취총. 어느새 하은의 손에는 지문이 남지 않게 하려는 듯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그녀가 마취총을 공중에서 잡아채 자세를 낮추며 정확하게 두 명을 연달아 쏜다. 보호복 사이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간 마취탄이 그들을 혼수 상태로 몰아넣는다. 그녀의 등을 향해 대원들이 마취총을 발사하지만 그녀가 옆으로 돌아서며 휘둘러진 백에 박히고 만다. 놀라울 정도의 스피드로 그녀가 또 다른 대원에게 달려들다가 홱, 하고 몸을 숙이자 그녀를 노리던 탄이 그 대원의 목덜미에 박힌다. 


순식간에 세명의 대원을 처리한 그녀가 막 쓰러지기 시작한 대원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낸다. 그녀가 정우재를 향해 권총을 겨누-


“합!”


기합과 함께 그가 손날로 권총을 빗겨 낸다. 하은보다 크고 단련된 체구에서 오는 타격력. 화려한 체술 대신 권투의 잽으로 들어오는 그. 물론 리치가 하은보다 훨씬 길기에 하은 입장에서는 곤란해지는 공격이다. 거기에 템포가 빨라 약점을 노리기도 쉽지 않다. 빠른 스텝으로 뒤로 물러나는 하은. 하은이 백 안에서 나이프를 꺼낸다. 그녀의 손에서 휘둘러지는 나이프.


“흡..”


호흡을 조절하며 살짝 뒤로 물러서는 정우재 감독관. 훨씬 빠른 속도로 들어오는 하은의 공격을 하나도 빠짐없이 피해내는 그. 동작이 작은 공격은 오히려 방검 기능의 소매를 이용해 튕겨낸다. 로우 핸드 가드, 틈을 노려오는 잽. 발 기술 같은 것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더 민첩한 하은에게 전혀 유리함을 주지 않으려는 계산이다.


하은의 나이프가 휘둘러지는 순간, 그가 하은의 손목을 낚아챈다. 그의 체술은 특이하다. 반사적 기억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순간 순간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말 그대로 기계와 싸우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렇게 나쁘지는 않군.”


그의 짧은 평가. 하은이 손목을 비틀어 빼내고 그의 명치와 목을 노린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손을 옆으로 쳐내며 하은의 균형을 흔들고 그대로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다. 그가 처음 쓰는 발기술이다.


“초근접에서 급소, 그것도 횟수 위주의 공격 중시라. 하지만 하체의 방어가 부실한걸 보아 아마도 패치 전의 케이론 AI가 만든 스타일이로군.”


하은이 일어서며 그를 향해 낮은 발차기를 하지만 역시 피한다. 속도 차이를 고려해봤을 때, 말 그대로 예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녹화본을 분석해 봐야겠지만, 훈련 코스를 뛴지 2, 3년정도 되었을거고.”


그녀가 덤블링. 그러나 그 역시 알고 있었다는 듯이 회피한다. 하은이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즉시 이해한다. 그는 선글라스 형태의 VDAS를 통해 그녀의 움직임을 녹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분석하면, 어떤 훈련기관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수료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어도 범위는 좁힐 수 있을 것이다.


“내 참. 이래서야 녹화할게 아니면 VDAS도 전혀 필요 없겠는데?”


그 틈을 노리고 들어가는 하은. 그러나 역시 함정이었다. 그대로 다시 손목이 잡혀, 대응도 하기전에 바닥에 메쳐진다. 털썩, 하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배를 밟으려 그의 다리가 내려쳐진다. 간신히 굴러서 회피하지만 그는 전혀 틈을 주지 않는다. 위치와 무게를 살린 공격. 그녀가 다시 한번 구른 후 몸을 크게 휘두르며 뒤로 덤블링한다. 체구가 작은 그녀로써는 다리를 이용해 스스로를 보호하며 일어날 수 있는 테크닉이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랬다.


“컥!”


정면에서 공격해오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옆을 스쳐지나가며 그녀를 팔꿈치로 내리찍는다. 어깨 부분을 강타당한 그녀가 그대로 바닥에 충돌한다. 제대로 몸을 추스리지도 못한 그녀의 등을 그가 차버린다. 하은의 몸이 바닥에 끌리며 내동댕이쳐진다.


“죽어라.”


그가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낸다. 하은이 온 힘을 다해 코너로 뛰어든다. 그가 지체하지 않고 쫓아온다. 하은이 코너를 돌아서자, 쪽문 하나가 있다. 엄폐물 따위는 없는 좁고 긴 골목길. 하은이 그 손잡이를 잡는다.



하은이 섭리를 읽는다.



녹궁에서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면, 모든 퍼즐과 문제에는 나름의 섭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이성과 힌트에 의존해 문제를 풀어내는 대신, 그 섭리 자체를 속여 답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위험한 행위인 것은 안다.


교관The Man의 힘을 빌리거나, 다른 존재라도 충분히 공을 들이지 않으면 그대로 삼켜져 자멸할 수도 있는 지나치게 위험한 행위Vulgar Magic다. 


그러나 지금 하지 않으면 벌집이 되고 말 것이다.


손잡이에서 거대한 존재의 잔상을 느낀다. 도시, 그리고 건물의 길과 문을 관리하는 존재Umbrood. 교관보다는 약한 존재일지언정 그 힘은 그 존재가 관리하는 섭리에 관해서라면 절대적이다. 하은이 그것의 마음을 엿본다. 이 문이 원래 가야하는 곳이 아닌, 하은이 가고 싶은 곳이  어디있는지를 훔쳐보는 그녀.


질문이 답이 되고, 가려진 해답이 드러난다. 그녀의 의지가 현실에 덮어 씌워진다.


“철컥.”


문 손잡이를 당긴다. 그것은 원래의 건물이 아닌, 어딘가로 가는 문이 되어 있었다.


“!”


하은의 온 몸을 죄어오는 감각.



들켰다.



그 존재는 자신을 훔쳐보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관리하는 질서를 헝크러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은이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어둠속으로 뛰어든다. 그 뒤에서 문이 닫힌다.


“아악!”


그녀가 비명지른다. 그녀의 인내심으로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몰려온다. 몸 안쪽에서부터 수천개의 무딘 금속이 자신을 찢어오는 감각. 어둠 속에서 달려나가는 그녀. 그 속도에 비례해 말 그대로 칼바람이라고 할 만한 것이 그녀의 피부를 난도질 하는 느낌이다. 아니, 칼바람이나 무딘 금속 같은 것이 아니었다.


섭리를 멋대로 휘두른 대가, 패러독스.


수천, 수만개의 열쇠들이 그녀에게 부딪히며 그녀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다. 그녀가 계속 달린다. 멈추었다가는 공간과 공간 사이의 어딘가에 갇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녀의 눈 앞에 희미한 빛이 나타난다. 그녀가 그 빛으로 달려가 뛰어든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그녀 뒤에서 작은 쪽문이 닫힌다. 숨을 쉴수가 없다. 희미해져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심호흡을 하려한다. 흐려진 시야가 천천히 밝아온다. 벽에 기대는 그녀. 집 근처의 골목이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곳. 간신히 일어난다. 그녀의 손바닥에 마치 달군 열쇠로 지진듯한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났다가, 서서히 사라진다.


이제서야 이해한다. 이해의 방식Paradigm이 현실을 어디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지.


몸 전체에 아직도 베이는 듯한 감각. 


살았다. 그것도 간신히.


그녀는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현실에 억압당하는 자가 어떤 느낌인지,


그리고 사냥감이 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깨달았다.




정우재 감독관이 문을 연다. 그 안에는 그냥 상가 안으로 이어지는 쪽문이다. 그 안으로 도망간 배신자의 모습은 당연하다는 듯이 보이지 않는다. 유키가 달려와 고개를 들이민다.


“뭐야, 도망갔어?”


“어.”


유키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정우재.


“아, 뭐야. 찢어죽일라고 했는데.”


“어차피 못잡았을거다.”


“진짜?”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묻는다.


“뭐 이런 식으로 도망갔겠지. 예상은 하고 있었어. 괜히 배신했겠어?”


그가 담담하게 말하며 권총을 홀스터에 꽂는다.


“그리고 호락호락한 상대도 아니고, 배짱도 있고 말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 몇번 몰아 붙이다보면 언젠간 그 한계가 오겠지. 외국으로 도망가주면 더 좋고.”


“공항에서 잡게?”


“뭐, 그래도 좋고.”


그가 약간 짜증나는 듯한 말투로 말한다.


“그래도 놓친건 짜증나네. 솔직히 잡을 수 있었는데.”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만약에 AP-5 아말감에 부임하기 전에 좀 더 상부에 정보를 요청했으면, 아니, 자신의 개인 시간에 정보를 수집했으면 이미 이 상황이 해결되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배신자에 대한 정보는 어딘가 있테니까. 그런 부류의 정보는 상당히 민감하기에 쉽게 찾을 수 없겠지만 어쨌든 더 나은 방법일 수도 있다. 


상부의 기준에는 충분하겠지만 자신의 기준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짜증이 난다. 그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모양이었다. 유키가 그걸 알아차리고 그의 팔을 잡아당긴다.


“에이, 뭘 또 그래 감독관. 얼른 돌아가서 맛있는거나 먹자.”


“...그래.”


그가 돌아선다. 그의 뒤에서 쪽문이 닫힌다.




오늘도 어두운 방. 언제나처럼이다. 서로의 신원을 밝히고 싶지 않기에 언제나 희미한 불빛만을 켜놓고 관계를 가진다. 하은의 몸이 달아오른다. 그녀의 허리를 잡고, 뒤에서 그녀를 물건 처럼 다루는 파트너. 그녀가 신음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하은을 잡아당긴다. 그가 하은을 붙들고 그녀를 찍어누른다. 그녀의 자세가 무너지고 침대에 엎어진 상태로 그의 몸에 깔린다. 강제로 그를 받아낼 수 밖에 없게 된 그녀. 이용당하는 느낌. 그녀의 신음이 점점 커진다.


그렇지만 오늘은 다른 점이 있다.


오늘은 아프다.


하은의 신음이 점점 쾌감에서 아픔으로 인한 것으로 변해간다. 


남자쪽이 컨트롤하고 있는 아픔이 아니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서, 그것이 그대로 몸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아픈 것이라고 할까. 그도 그것을 아는지 스스로를 억제하려고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다. 어느새 그들의 관계는 쾌락을 위한 가학, 피학이 아닌 단순한 몸부림이 되고 말았다. 


“제기랄.”


그가 그것을 아는지 멈춘다. 그가 하은을 놓아준다. 온몸에서 긴장이 풀린 하은. 그녀를 내버려둔 채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 근처로 걸어간다. 그는 마치 두통에 시달리는 듯한 모습으로 이마에 손을 얹은채 서있었다.


“왜 그래요?”


그가 들릴듯 말듯한 한숨을 쉰다. 하은이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그의 등뒤에 다가간다. 안아주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의 등에 다가가 기대듯 한다. 원래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의 온몸은 인상적일 정도로 단련되어 있었다.


“일이 잘 안되네요.”


그가 담담하게, 그러나 속으로는 불만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 살짝 드러나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무슨 일이길래요?”


하은이 조용하게 물으며 그의 몸에 밀착한다. 서로의 온기가 전해진다.


“90% 정도밖에 성과가 안나서요.”


“그래요? 상사분들이 100%가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나봐요?”


“아뇨. 보통 80% 정도 성과가 날걸 기대하고 100%를 제시하는 사람들이라서요.”


“그럼 90%면 된거 아니에요?”


“...제가 95%가 아니면 만족을 못해서.”


하은이 등 뒤에서 살짝 끄덕인다.


그녀가 그의 몸 앞으로 돌아간다. 부드러운 동작으로 그의 하반신을 타고 내려가듯 무릎을 꿇는다. 그가 볼 수 있게, 팔을 등 뒤로 돌려 마치 묶여있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윽…”


그가 쾌감에 신음을 흘린다. 하은의 모습은 동등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자위를 위한 장난감 같다. 그녀 스스로가 그렇게 보이려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조용한 방에 미끈한 마찰음과 하은의 숨소리, 그리고 파트너의 신음만이 들리고 있었다. 그가 하은의 머리에 한쪽 손을 가져가 그녀의 머리를 움직여댄다. 하은도 그의 손길에 스스로의 몸을, 그리고 스스로의 자유를 그의 손에 맡긴다. 지금 이때만은 그녀가 책임질 것도, 찾아가야 할 것도 없다. 지금 이곳에는 그녀의 몸만이 존재할 뿐.


“...읍…”


그의 숨소리가 격해지더니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춘다. 하은이 살짝 몸을 뒤로 당긴다. 잠깐의 침묵. 그녀가 무릎을 꿇은채로 그를 올려다본다. 어둠속에서 그의 실루엣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삼키는 소리.


“...저번주보다 달아요.”


어둠속에서 그가 픽, 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식단 바꿨나봐요?”


“네. 고마워요.”


그녀가 그의 몸을 다시 타고 오른다. 그를 안아주는 하은.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진동과 함께 정우재의 스마트폰이 울린다. 하나에 몇만 달러 정도는 되는, 신디케이트의 요원들만이 지급되는 하이퍼테크 장비다. 그가 전화를 받는다.


“왜.”


“감독관, 뭐해? 재밌었어?”


들려오는 유키의 목소리. 그 가격에 걸맞게 선명 하기 그지없는 음성.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아, 뭐야.”


유키가 다 안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진짜 모를 거 같애? 그래서, 어떤 여자야?”


“몰라. 그쪽도 날 모르고. 불 끄고 하니까.”


“흥, 진짜. 어쨌든 빨리 돌아오기나 해. 폰으로 정보 전송받을 수 있지?”


“Ok.”


전화를 끊은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새로 지급받은 팔라딘에 탑승한다. 모양새는 시판되는 자동차와 동일하기에 누군가에게 의심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곧바로 부드럽게 팔라딘이 움직이며 모텔의 주차장을 나선다.




하은이 살짝 창문 밖을 내다본다. 원래라면 바깥쪽으로 창이 나있는 방은 별로 선호되는 방은 아니지만 일부러 이쪽으로 방을 잡은 것이다. 그녀가 입구쪽을 내려다본다. 그녀의 파트너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차에 탑승해서는 사라진다.


그녀가 그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그의 목소리, 그리고 그의 체형을 기억하고 있었다. 저쪽은 자신의 목소리를 전혀 모르기에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틀림 없었다. 그녀의 파트너는, 새로운 AP-5 아말감의 지휘관인 정우재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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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주신 ㅌㅊㅂㄴ님께 감사드립니다. 원래 쨍은 막장 드라마 물임 ㅎㅎ;;


짤은 커미션 나온거에여 (근데 저거 오리지널 하은이라 죽은; 사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