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상시플은 왜 망하는가?

 

 위에서 말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상시플이 마냥 나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그렇다면 상시플은 왜 망할 수밖에 없는가. 역설적으로, 그 원인은 상시플의 근본적인 구조에서 기인한다.

 


 1) 룰의 부적합성

 

 웬만한 RPG 룰북은 그 해석이 중의적이거나 밸런싱이 무너져있고, 그 빈틈을 룰을 굴리는 사람들에게 맡겨둔다. 세션을 하다가 문제가 터지면 너희들 알아서 하라고. 그런데 이 발상이 상시플에서도 통할까? 즉, 상시플에선 “밸런싱”과 “룰의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까?


  (1) 밸런싱


 당장에 13시대의 바바리안이 다른 클라스를 호구로 만들 정도로 흉악한 딜링으로 소문났고, 로그호라를 조금만 해봤더라면, 힐러직의 칸나기가 얼마나 일뽕 맞은 개캐인지 알 수 있다. 정기플에서는 마스터가 유연하게 그런 개캐를 금지하거나, 설령 하게 하더라도 적당히 밸런싱을 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나머지 플레이어의 동의를 구해서 딱 그 플레이어에게만 개캐를 하게 내버려둘 수 있다.

 

 하지만 상시플에선? 상시플은 적어도 정기플보다 구성원이 많다. 정기플보다 구성원이 적은 상시플은 있기 매우 어렵고, 그걸 상시플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팀의 구성원 모두에게 이런 개캐가 있어도 상관없지 않는가, 하고 말 꺼내기도 무서워진다. 즉, 마스터는 세션을 열었을 때, 올 수 있는 모든 캐릭터의 클라스의 경우수를 고려해야 하는, 말 그대로 룰 제작자와 다름없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게 과장일 수 있다.

 적어도 OP는 쳐내야 한다. 팀에 있는 모든 구성원에게 개캐를 허용한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개캐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너도나도 개캐를 만든다. 자연스럽게 밸런싱은 폭발하고, 룰북의 권장대로 만든 보스는 허무하게 박살난다. 마스터의 뒷골이 당길 수밖에 없다.

 

  (2) 룰의 해석


 그렇다면 던전 월드 같은, AWE 기반 룰 같은 서술 룰은 괜찮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당장에 상황파악 액션을 보자. 어떤 마스터는 PC가 쓱, 훑어만 본 걸로 상황파악 액션 롤을 허용할 수도 있지만, 어떤 마스터는 PC가 몇 분 이상 신중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그 묘사를 해야만 상황파악 액션 롤을 허용할 수도 있다.


 PL : “마스터, 저기 있는 다른 마스터 분은 이렇게 했어도 판정하게 해줬는데요?” 

 GM : “그건 그 마스터가 룰링한 거고, 여기선 제 방식대로 룰링합니다.”


 이처럼 액션의 해석과 적용은 사람마다 다르다. 정기플에선 그 합의가 쉽고 빠르다. 적어도 상시플보단. 상시플에선 무수한 사람과 그런 합의를 해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쉬운 일일지 당신의 상상에 맡긴다.

 

  (3) 소결

 

 밸런싱을 해결하기 위해, 또 룰의 해석을 일원화하기 위해 상시플 팀이 꺼내드는 수는 “홈 브류”다. 즉, 자기 팀에 맞게 데이터를 변형하고, 해석을 통일한다. 처음엔 그렇게 하나둘,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빌딩, OP가 나오고, 이런 해석이 된다면, 저런 해석도 되지 않느냐는, 그 다음 문제가 소시지마냥 주렁주렁 따라온다. 또 그걸 해결하기 위해 홈 브류를 만들고…. 어느샌가 원본 룰은 사라진다. 팀에 처음 들어온 뉴비는 묻는다. “어? 원래 룰북에선 데이터가 이렇지 않나요?”, “여긴 이렇게만 해석하는 건가요?”

 

 그렇다. 상시플은 어떤 룰을 고르건 간에, 한참 뺑이를 쳐야 한다.


 

 2) 운영


 사람이 모이면 사회가 만들어지고, 사회는 규칙이 필요하다. 상시플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정기플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없거니와 단순한 예의, 매너로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상시플로 넘어오기만 하면 커진다. 마스터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를 들어보자. “마스터의 권한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즉, GM이 매직 아이템을 얼마나 뿌릴 수 있고, 보상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마스터는 플레이어를 골라갈 수 있는가?” “마스터는 팀이 제정한 홈 브류가 아닌, 자기만의 홈 브류를 만들 수 있는가?” 듣기만 해도 아찔한 문제다.

 

 상시플의 운영자, 혹은 관리자는 저런 질문을 마주한다. 정기플에서 문제될 수 없는 문제가 상시플에선 문제가 된다. 즉, 상시플의 운영자는 정기플보다 배 이상의 부담감을 안고 운영해야 한다. 합의 혹은 동의를 구해야 하는 사람도 많다. 피곤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런 피곤한 일에 누가 자원할까?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처벌이다. 지각, 결석을 같은 선상에 두고 주의나 경고를 줄 수 없고, 더블플레이는 더더욱 그렇다. 트롤링을 제재하고 싶어도, 그 트롤링이 무엇인지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다고 주의를 안 줄 수도 없다. 저런 문제를 일일이 규율하기 위해 규칙을 자세하고 복잡하게 만들면, 정작 적용할 때 골이 아프다. 그렇다고 규칙을 포괄적이고 일반적으로 만들어, 그때그때 적용하면, 적용할 때는 쉬워도 전례와 비교해서 형평성을 찾기 힘들다. 운영자가 독재하기 위한 오남용의 소지도 크다.

 

 RPG는 취미생활이다. 회사생활에서나 마주할 법한 저런 복잡한 문제를 왜 RPG를 하는데 고민해야 하는가? 운영자나 관리자는 저런 문제를 제쳐두거나, 하더라도 대충하는 게 자기 신상에 이롭다. 결국 누가 전문적으로 운영하기란 요원한 일이고, 팀 어디선가 문제가 계속 펑펑 터진다.


 

 3) 친목

 

 RPG는 친목게임이다. 친한 사람과 하거나, 사람과 친해지려고 한다. 처음 본 플레이어와는 어색할지라도, 계속 보다보면 익숙해지고 친해지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채팅방에서 그들과 떠드는 무리에 들어간다. 주제는 정기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에 있었던 세션에서 다른 캐릭터와 케미가 어떻고, 자기 캐릭터가 어땠는지 등, 정기플에서 쉽게 나올 법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신입에게 로그를 읽으라고 할 수도 없다. 자기 로그도 다시 읽기 힘든 판에, 남의 로그 읽기는 더욱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만한 열정을 요구할 만한 가치 또한 상시플엔 거의 없다.

 

 하지만 이조차 상시플에선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상시플엔 그 이야기를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같이 플을 하러 온 사람들은 자기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보고 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과 함께 플을 한다할지라도, 원래부터 구면인 사람들끼리 케미를 맞추지, 새로 온 자기하곤 케미를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친목이 친목질이 되는 순간이다. 즉, 상시플은 친목을 하러 온 RPG인데도 친목을 삼가야 하는 모순적인 구조다. 그렇지 않다면,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그들끼리만 아는 이야기만 돌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개방형 상시플, 즉 언제든지 신입이 들어올 수 있는 상시플에서 대두되는 문제다. 지인 추천, 혹은 기간 한정 등으로 신입 유입을 제한하는 폐쇄형 상시플에선 그나마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폐쇄형 상시플에서조차 신입을 1명씩 받는 게 아니라면, 신입을 담당하는 직책을 따로 마련해서, 신입에게 여태껏 진행한 팀의 스토리와 세계관, 주요 캐릭터를 대강이나마 설명해주거나 하는 등 대책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뉴비에게 붙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해줘야 하고, 그 뉴비는 언제든지 팀을 떠날 수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내가 되지 않길 바란다. 결국 상시플의 올드비는 뉴비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4) 세션의 퀄리티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세상 세션이 아니다.”

 

  (1) 플레이어의 입장


 상시플의 장점을 보자. 플레이어의 가벼운 마인드가 그 장점이라고 했다. 플레이어의 관점에서, 가장 이득을 취하기 좋은 포지션은 “자캐딸”이다. 어떤 마스터, 어떤 플레이어와 같이 플을 하든 간에, 자캐딸만큼 확실하고 보장된 재미는 없다. 어차피 언제든지 훌쩍 떠날 수 있는 상시플이다. 자캐딸을 해서 욕을 먹는다할지라도, 수틀리면 떠나면 그만이다.

 

 정작 제대로 캐릭터를 짜오고, 다른 캐릭터와 협력해서 장면을 만들거나 재미를 찾으려는 플레이어는 욕을 본다. 물론 그런 플레이어에게도 탈출구는 열려있다. 자캐딸하는 플레이어에게 그런 피드백을 남기는 것도 꺼려진다. 어차피 바뀌기 어려운 것도 알뿐더러, 그런 피드백을 해줄 만큼 친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정상적인 플레이어는 상시플에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정기플을 찾는다.

 

 뉴비는 자캐딸하는 플레이어와 함께 플을 한다. 자캐딸이 꼴에 보기엔 자극적인 건 맞다. 뉴비는 “아, 저렇게 RP하는 게 괜찮은 RP구나!” 자캐딸이 정상적인 RP라고 학습한다. 뉴비가 똑같이 자캐딸 플레이어에게 물들여지고, 다른 사람과 협력, 협조하는 건 전혀 배우지 못한다.

 

 결국 상시플엔 자캐딸 플레이어가 주류가 된다.

 

  (2) 마스터의 입장


 자캐딸 플레이어를 상대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마스터링의 개념, 즉 세션을 어떻게 굴려야 하는지 아는 마스터는 십중팔구 손을 뗀다. 자캐딸 플레이어가 어떻게 세션을 조지는지 알기 때문이다. 어떤 스토리를 가져와도 그걸 자기 캐릭터를 부각하는데 열중할 뿐이며, NPC를 내보내도 자기를 위한 도구로만 사용한다. 다른 플레이어와 제대로 협력하지도 않고, 제각기 할 말만 하는데 이게 그 유명한 “집단적 독백”이다.

 

 무엇보다도, “유능한 마스터는 자기만의 플레이어 풀이 있다.” 실력 있는 마스터는 상시플에서 마스터링할 필요도 없이, 친하고 잘하는 플레이어를 불러 단편을 돌리는 걸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즉, 유능한 마스터인데도 상시플에서 마스터링하는 경우수가 3가지인데, 첫째는 상시플에서 마스터링을 처음 시작한 경우고, 둘째는 상시플에만 자기가 아는 플레이어가 있는 경우다. 셋째는 큰 사고를 쳐서 원래 있던 플레이어 풀을 모두 잃었을 경우다. 사실, 셋 다 유능하다고 보긴 어렵다.

 

 실력 없는 마스터는 어떨까? 자캐딸이 자캐딸이라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자기가 하는 세션을 진행하는데 급급해서 플레이어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대개의 플레이어는 마스터의 수고를 알기 때문에 피드백을 삼간다. 세션이 어디어디가 부족하고 미흡한지 지적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그 세션이 끝나고 탈출한다. 그걸 하나하나 지적해 줄만큼 의리는 없다. 자캐딸 친 플레이어는 어쨌건 자캐딸을 해서 재밌다. 마스터는 자기가 마스터링한 세션의 퀄리티를 알 수 없고, 플레이어들이 별 말 안하니 잘했다고 착각한다.




5. 상시플은 망해야 하는가?

 

 여기까지 상시플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봤다. 그렇다면 상시플은 망해야 할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 있는 상시플들이 영원하면 좋겠다. 나는 상시플이 고맙다. 

 상시플은 라그나에 특화된 봉인이다. 자캐딸 플레이어, 무능한 마스터, 온갖 라그나들이 상시플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다. 마치 파리지옥에 붙은 파리떼마냥. 

 특히 웬만한 상시플은 로그를 소중히 간직하고, 그 사람을 지켜본 수많은 사람이 있다. 상시플을 주로 즐겼던 사람과 세션할 때, 그 사람을 알아보는 좋은 팁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