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 배신자.




하은이 포털 사이트의 뉴스를 천천히 넘기며 생각한다. 



횟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패턴도 다르다.



기억이 완벽하게 명확하지는 않지만 웨더스 소령의 지휘 하에 있었던 AP-5는 사살보다는 억제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뱀파이어가 장악한 삼합회도 내버려두었고, AP-5 아말감에 소속되어 있을 때 만나본적은 없지만 아마도 웨더스 소령은 우 노인의 존재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녀가 수행했던 임무는 괴물들간의 역학관계에 조차 큰 파장을 일으킬 존재들, ‘리얼리티 테러리스트’ 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을 만한 괴물에게만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아말감의 목적은 그게 아니다. 이번 아말감은 아예 초자연체들을 싸그리 색출해서 불태워버리는 게 목적인 것 같았다. 


반강제적 합병, 압수수색, 용의자 체포, 강력범죄, 폭발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취, 지반 붕괴, 갑작스런 폭우 등의 키워드가 하은의 눈 앞을 계속해서 스쳐지나간다. 뻔하다. 트래디션의 영향력 하에 있는 회사나 조직을 무력화 시키기 위한 공작과 전투로 인한 부수적인 피해겠지.


예전의 AP-5 아말감이 이렇게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예산과 한정된 자원 때문이었다. 계몽된 요원 중 전투 병력은 겨우 두셋. 그러나 하은이 맡아왔던 수술칼의 역할보다는 화염방사기에 가까운 것이 지금의 AP-5 아말감의 모습이다. 훨씬 파괴적이지만 ‘연료’가 소모되는 병기. 수많은 클론 병사, 디바이스, 기억소거제, 언론 조작을 위한 예산 등 어마어마한 자원이 필요할텐데. 어떻게 그런 재원을 확보했는지, 아니, 누가 왜 그런 재원을 지원해주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애초에 그럴만한 가치도 없을텐데.




오랫동안 쓰이지 않아 폐건물이 된지 오래인 모습의 낡은 병원 건물. 병원 부지 자체는 꽤나 넓어서 주거지와도 떨어져있지만 부지는 부서진 건물, 폐기된 의료기구, 흉가 매니아들이 남겨놓은 낙서 등으로 엉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이 병원 부지에 불청객들이 방문한 모양이었다.


“아~ 그럼 폭파할게요!”


유키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동시에 폭약을 가득 실은 덤프 트럭이 건물로 돌진한다. 정면의 벽을 산산조각 내고 안으로 진입한 덤프트럭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킨다. 아래쪽으로 폭발력이 집중되게 설계된, 계몽 과학의 산실은 아닐지라도 편린 정도는 되는 단순한 수법. 동시에 지반 아래로 침투한 굴착형 드론들 역시 폭발을 일으킨다.


철근이 휘고, 콘크리트가 조각난다. 건물 전체의 지반이 무너지며 아래쪽부터 붕괴하기 시작하는 폐건물. 산산조각난 유리창들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바스라지고 가는 조각이 되어 허공에 날린다.


“좀 카운트 다운이라도 하고 해라.”


핀잔을 주는 정우재 감독관. 그러나 유키와 그녀가 지휘하는 부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너지는 건물을 각종 화기로 겨눈다.


“나온다!”


유키의 외침과 함께 무너지는 건물 사이를 뚫고 세 사람의 형상이 날아오른다. 마치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차림의 그들. 그들 주위에서 현실 그 자체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박살난 유리창은 살을 베는게 아니라 그냥 조각나서 떨어지고, 콘크리트 가루는 지나치게 빠르게 흩어진다. 공중에 뜬 그들은 마치 중력과 시간의 영향을 적게 받기라도하는 듯 약간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손대고 있지 않은데도 분명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위반하는 움직임으로 파편들이 부딪히고 바람의 방향마저도 지나치게 단순해진다.


현실을 조작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들의 현실이 주위에 덮어씌워지며 현실이 만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예상대로 머로더가 되기 일보 직전이네!”


유키가 즐겁게 외치며 양쪽 팔 사이에 낀 M-AIM-14 대인 유도탄을 발사한다. RPG-7 탄두의 반밖에 안되는 크기지만 그 날카로운 형상과 유도능력은 어디에서나 유효하며, 컨센서스에도 합치하는 병기다. 그 중 하나가 메이지 한명에게 날아든다. 그가 등 뒤에서 거대한 일본도를 꺼내 초인적인 속도로 휘두른다. 마치 만화에서 나오는 것 처럼, 미사일을 8등분 해버리는 그. 분명 파편이 튀어 그를 산산조각 내야 하지만 그를 감싸고 있는 만화의 법칙Ward이 파편을 모조리 빗겨낸다. 그가 공중에서 한바퀴 돌며 -물론 철저하게 물리법칙을 위배하는 동작이다- 그대로 일본도를 유키를 향해 내려 꽂는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유치하다 유치해!”


유키가 그의 검을 그대로 받아낸다. 그녀의 손 끝에서 현실의 왜곡과 그에 저항하는 프리미움이 부딪힌다. 그녀의 인공 피부가 주름잡히고 오그라들며 그 안의 프리미움 골격을 드러낸다. 서보모터가 비명지르고 금속 골격이 일본도와 마찰하며 날카로운 금속음을 만들어낸다.


“뭐해!”


그녀의 지휘 아닌 지휘에 임시 엄폐물 뒤에 대기하던 타격부대의 화기가 탄환을 쑫아낸다. 할로포인트 탄이기에 유키의 외장 장갑은 전혀 뚫지 못하지만 일본도를 든 메이지의 몸에는 그대로 박힌다. 유키가 피를 토하는 그를 땅으로 내려치고 머리를 밟아버린다.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부러지며 그가 즉사한다.


그의 이름을 비명지르며 메이지 중 한명이 그들을 향해 불덩이를 내쏜다. 폭발음과 함께 엄폐물과 타격대원들이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그녀를 향해 유키의 통제 하에 있는 초소형 드론들이 달려든다.


“어라?”


신경 회로가 과도한 연산을 처리하느라 그녀의 운동제어계가 무너진다. 살짝 휘청이는 그녀를 향해 보라색의 광선이 뻗어온다. 그녀의 목덜미를 관통하는 광선. 유키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드론의 조종에 집중한다. 마치 벌떼 같은 드론들의 움직임. 그녀가 불덩어리와 번개를 내쏘지만 파리채로 말벌떼를 잡을수는 없는 일이다. 그녀의 몸에 드론들이 들이박으며 자폭한다. 그녀는 팔다리가 하나씩 없어진 채로 그대로 추락해 고깃덩어리가 된다. 


“안돼!”


마지막으로 남은 자가 외친다. 그는 이미 대원들 사이를 누비며 10명 이상의 대원들을 무력화시킨 상태였다. 마치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빠르고 과장된 무술. 그는 총알을 모조리 피해내고 -그 중 몇개는 아예 ‘튕겨’내고 있었다- 대응이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대원들을 척살하고 있었다. 그의 정권에 방탄복을 입고 있던 대원이 피를 토하며 즉사한다. 그가 복수하려는 듯 지휘 차량으로 달려든다.


“하압!”


그의 기합과 함께 주먹이 지휘 차량에게 내질러진다. 그의 손 끝에서 현실의 법칙이 뒤틀리며 지휘 차량이 반토박난다. 앞부분이 떨어져나가 대원 중 둘을 덮쳐 육편을 내는 와중에도 그 안에서 전혀 당황하지 않은 표정으로 누군가가 걸어나온다.


“아, 진짜. 또 수선 맡겨야겠네. 새로 살 수도 없고.”


수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불만에 가득한 말과 함께 정우재 감독관이 그와 대치한다. 현실교란자가 망설이지 않고 달려든다. 왼쪽, 오른쪽, 육안으로는 포착 할 수 없을 속도로 땅을 박차며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그. 그의 주먹이 감독관을 향해 뻗어온다. 


“흡!”


감독관의 기합과 함께 그의 주먹이 잡힌다. 놀람의 표정. 주먹을 빼내며 공중으로 뛰어올라 연달아 올려차기 세번. 그러나 작용과 반작용을 무시한 영화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킥은 완벽한 타이밍으로 블로킹된다. 착지하며 돌려차기. 근접에서의 삼연각, 거리를 벌리며 발차기를 지르지만 역시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가슴께에서 척, 하는 소리와 함께 잡아내는 정우재.


“어… 어떻게?”


경악과 공포의 물음. 


정우재 감독관이 쓴 VDAS에서 시시각각 패턴을 바꾸는 다양한 색의 도형이 그 답이다. 인류가 생산한 수많은 영상물과 그림에서 상황에 맞는 무술 패턴을 추출해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프로시져, 무술의 ‘크라우드펀딩’ 버젼Crowdfunded Combat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이 메이지가 기상천외한 무술을 구사하는 자 -예를 들어 SoE의 섀도우 미니스트리의 일원같은- 였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철저히 영화적인 술법을 구사하고 있는 탓에, 그의 움직임은 완벽히 읽힐 뿐만 아니라 예측되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예 그가 따라하고 있는 영화의 컷신을 분석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매트릭스, 1999년 작. 네오와 모피어스의 대련 장면이군.”


그가 비웃듯이 말한다.


“어떻- 컥!”


대답 대신 그의 다리를 끌어당긴 정우재 감독관의 프리미움 너클이 얼굴에 내려쳐진다. 그를 보호하던 행운과 믿을 수 없는 우연의 결계가 박살난다. 살점이 튀고 뼈가 부러진다. 대원들을 농략하던 그였지만 초자연적 속도와 보호가 없어진 상태에서는 그저 맨몸의 인간에 불과했다.


“끝이군.”


그렇게 싱겁게, 세명의 현실 교란자들은 제압되었다. 그의 옆으로 유키가 다가온다. 그녀가 피부가 벗겨진 손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아으으… 약간 아프다. 좀 무리했나봐.”


그 뿐만이 아니다. 목 부분의 손상이 아마도 신경계를 건드린 모양인지 새끼 손가락이 간헐적으로 기계적인 경련을 일으킨다.


“...정비 받아야 될것 같은데. 저번처럼 미루다가 사고내지 말고.”


“으… 알았어.. 그치만 업무가 이렇게 많은데…”


“여유를 내봐야지.”


그가 담담하게 말한다. 사실, 그들의 스케쥴은 한달이나 걸리는 정밀검사를 끼워넣기에는 너무 빡빡하다. 최전방 돌격대장을 맡고 있는 유키가 빠지면 고위험도의 현실교란자들이 모조리 내빼고도 남을 시간이니까.


“아픈 거 싫은데…”


그녀가 투덜거리면서 손을 쥐었다 폈다하기를 반복한다.




조금 늦는군, 하고 생각하는 하은. 


PC방 실외기가 잔뜩 늘어선 골목. 바닥에는 아마도 중학생들이 피고 버린 담배꽁초가 가득했다. 그녀는 탈리아 본인이 아닌, 그녀와 협력했던 메이지들과 만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탈리아에게는 ‘담당 구역’ 같은 것이 없다. 생각해보면 하은을 죽이기 위해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은 한국부터 시작해 MSF 아말감의 저녁 식사 자리나 심지어 외딴 휴게소에도 습격해오지 않았는가? 그런 그녀가 한 군데에 계속 머물러 있을리가 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탈리아와는 달리, 그녀의 ‘친구’들은 정말 시간 관념이 없는 모양이다.


 하은이 핸드폰을 꺼내서 다시 시간을 보는 순간. PC방 뒷문에서 껄렁껄렁한 옷을 입은, 기껏해야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 밖에 되어보이지 않는 남학생이 뛰어나온다. 그가 하은을 순식간에 훑어보더니 골목이 떠나가라 외친다.


“오~ 누님 멋있는거 ㅇㅈ? ㅇㅇㅈ~”


“...?”


하은이 순간 당황한다. ‘인정’도 아니고 ‘이응지읒’도 아니고 말 그대로 ‘ㅇㅈ’이라는 발음이 현실에서 가능Resonance 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첫 마디부터가 정말 다른 의미에서 현실교란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남학생. 거기에 차림마저도 독특하다. 등에는 매우 납작한 가방, 허리에는 여러개의 파우치. 파우치 안에든 스마트폰과 단말들은 전부 데이터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누님 쫓아다니는 테키 에바참치인거 인정하는 부분이죠 ㅋㅋ 우리 NWO 틀딱들도 ㅇㅈ하시죠? 네그렇습니다(NWO화이트수트) 옼ㅋㅋ화이트수트님도 앙 기무-”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괄호’가 아니라 ‘(   )’으로 발음되는 기묘한 현상을 일으키는 그의 뒤통수를 조금 더 키가 큰 남자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친다. 다행히 그는 훨씬 사리분별 있어보이는 인상의 성인이었다. 아마도 하은 자신과 비슷할만한 나이대의 그. 학생 쪽이 말 그대로의 불량아라면 이쪽은 젊은 IT 스타트업 창업자의 느낌이다.


“제발 쪽팔리는 짓좀 하지마라. 안녕하세요.”


그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하은도 인사를 돌려준다.


“노하은 씨죠? 건너건너 들었습니다. 배수현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나는 경기도 안양의 이준영이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뒤통수.


“경기도 안양에는 가본적도 없잖아.”


“그래도 이름은 맞는데…”


신나게 말하던 학생이 조용히 중얼거리며 반론하지만 수현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이쪽에 있는 놈은 이준영입니다.”


“노하은입니다.”


두 사람이 가볍게 악수를 나눈다. 준영도 어딘가 신난 표정으로 악수를 청한다. 하은의 손을 꽉 잡고 흔드는 준영. 수현이 바로 일로 넘어가자는 듯 그녀의 핸드폰을 가리킨다.


“일단 핸드폰부터.”


“핸드폰이요?”


“네. 놈들의 추적을 막아야죠.”


하은이 약간 경계하는 눈빛과 함께 핸드폰을 건네준다. 수현이 그것을 준영에게 건네주며 무언가를 지시한다.


“준영아.”


“넵.”


그가 핸드폰의 단자에 등에 맨 가방에서 뻗어나온 케이블을 꽂는다. 핸드폰의 화면에 주황색 글자들이 스크롤링 되기 시작한다. 하은이 그제서야 이들이 버추얼 어뎁트의 일원임을 깨닫는다. 


“프로텍트를 걸겁니다. 패시브하게 들어오는 감시는 전부 피할 수 있어요. 액티브한 추적은 못 막지만. 그런데...”


주황색 글씨들을 쳐다보고 있던 하은에게 스트레이트로 들어오는 질문.


“하은씨가 유니언에서 일했다는건, 사실입니까?”


오히려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는 건 하은이 아닌 준영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미리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네.”


거짓말해봐야 소용없겠지, 라는 생각에 바로 대답하는 하은. 준영이 조용히 중얼거린다.


“...으… 테키 놈들은 싫은데…”


“다 들린다, 준영아.”


작게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덧붙이는 하은.


“이제 그만둔지 오래에요.”


“뭐,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현재 한국에 들어와있는 놈들 가운데 저희와 은밀히 접촉하고 있는 자가 있거든요.”


“내통자가 있다구요?”


의외의 정보를 접한 하은. 어쩌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요원이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AP-5 아말감의 사냥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 아예 그들의 작전을 무력화 시키는 것도 가능할지도. 그게 아니라면 라이벌 아말감이나 포그롬 반대파에서 심어놓은 스파이일수도 있었다. 유니언 내에서도 그런 식의 암투는 비일비재하니까. 그런 경우라면 주의해야 하지만 얻어낼 수 있는 이득은 더 클 것이다.


“네. 안 그래도 오늘 그쪽 정보로 도둑질좀 하려고요.”


그렇게 대답하며 수현이 씩 웃는다.




“여긴…”


하은이 말꼬리를 흐린다. 


주택 단지 사이의 작은 건물. 재개발이 되더라도 아마 제일 마지막에나 될 법한 골목 사이에 껴있는 이 건물은 공실이 된지 오래인 듯 했다. 아마도 부동산 업자들이 와서 보면 전혀 상업적 가치가 없는 건물이라고 단정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외형은 멀쩡했다. 녹슨 문을 열고 들어간다. 각종 집기만이 널려있는 방. 그 한 가운데에 지하로 내려가는 트랩 도어가 있다.


테크노크라시 측의 내통자가 제공한 정보로 찾아낸 이곳은 유니언의 세이프하우스다. 유니언의 공작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아말감마다 몇개씩 딸려오는 소규모 비밀 기지라고 할까. 


“잠깐만요.”


하은이 트랩 도어를 열려는 수현을 제지한다. 그녀가 거기에 연결된 얇은 선을 찾아낸다. 그 선을 따라가자 바닥에 파묻힌 장치 같은 것이 있었다.


“폭탄이네요.”


혹시 누군가가 이곳을 철거하거나 하면 가스 폭발로 위장된 폭발이 일어나 세이프하우스를 통채로 날려버리게 설계된 모양이었다. 수현이 조심스럽게 트랩 도어에서 손을 뗀다. 하마터면 아무것도 못해보고 세 사람 전부 숯덩이가 될 뻔 했다.


“역시, 실력 있으시네요. 준영아?”


“넵.”


준영이 재빨리 다가선다. 그가 허리춤에 맨 백에서 몇가지의 장비와 핸드폰을 닮은 기기를 꺼낸다. 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솜씨로 그가 폭탄으로 연결된 센서를 무력화 시킨다. 


“이런 기술은 어디서 배웠죠?”


“폭탄 해체 하는게 아니라 센서를 해체 하는거니까 해킹이랑 비슷하죠 뭐, 아마도요?”


센서가 무력화되자 그가 신난 표정으로 끄덕인다. 세 사람이 트랩 도어를 열고 내려간다. 하은이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벽의 조명 스위치를 올린다.


“와. 장난 아닌데요.”


수현이 감탄하듯 말한다. 그 안에는 몇명의 요원이 쓰기에는 차고 넘치는 장비가 저장되어 있었다. 하은이 안을 살핀다. 단순한 총기부터 컨센서스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하이퍼테크 무기도 있었고, 아마도 표준지휘체계를 그대로 넘겨받을 수 있을 만한 지휘통제시설도 갖추어져 있었다. 이곳의 보급 기준은 DA 이전에 맞춰져 있는듯 했다. DA때 망실된 유니언의 자산은 상당하다. 단순히 파괴된 것도 있지만, 아예 기록이 사라져버려 실전된 것도 상당수 있었다. 이 세이프 하우스는 그런 곳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추리해보는 하은.


“시간이 없으니 필요한것만 가져가죠.”


“ㅇㅇㅈ~”


퍽, 하는 소리가 다시 울린다. 그렇지만 그들의 동작은 신속하다. 세이프 하우스가 열렸으니, 그 시스템이  AP-5 아말감의 중앙관제 시스템과 자동으로 상호 체크를 시작할 것이다. AP-5 아말감이 이곳에 들이닥치는 것은 시간문제다. 


세 사람이 지문이 남지 않게 얇은 장갑을 낀다. 하은이 재빨리 가져가야할 물건을 골라내기 시작한다. 총기가 금지된 한국에서는 테크노크라시의 병력에 대응할 통상적인 수단을 입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용에 특별한 교육이나 정비가 필요하지 않은 총기나 소규모의 폭발물이 우선이다. 그 이외에 국지 재밍 장비, 전기 충격기, 스프레이 같은 물건을 챙긴다. 물론 그걸 담을만한 백팩 역시 세이프하우스의 한 구석에 얌전히 포장되어 있었다. 하은이 포장을 찢어 백팩에 물건들을 쑤셔넣는다.


한편 준영과 수현은 전자장비와 각종 터미널들 살피는데 여념이 없다. 준영이 파우치에서 데이터 케이블을 뽑아내여 터미널 여기저기에 꽂고서는 데이터를 모조리 다운로드하기 시작한다.


“형, 이거 좀 봐봐요.”


준영은 허리에 찬 3개의 파우치에 든 서브터미널을 경유해 세이프하우스의 정보를 살피고 있었다. 이곳을 통해 AP-5 아말감의 인트라넷에도 어느 정도 접근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그가 신나서는 정보와 접속 포인트를 모조리 긁어모은다.


“총보다 이게 더 유용하겠는데요?”


한참이나 터미널 조작에 몰두하는 두 사람. 그들의 손짓을 따라 엄청난 속도로 정보가 오간다. 하은이 필요한 물건을 다 챙겼을 무렵 준영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 형?”


준영의 말에 수현이 신속하게 핸드폰 화면에 뜬 4개의 영상을 확인한다. 하이재킹한 AP-5 아말감의 수동감시 회선이라 선명하지는 않지만 분명 경찰 병력 같은 자들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가죠.”


그들이 황급히 세이프하우스를 나선다. 준영이 폭탄을 리트리거링 시키자마자 그들이 낡은 건물에서 뛰쳐나간다. 준영이 양 손에 태블릿을 들고 인터셉트 해온 감시 영상들을 훑어보며 그들이 도망갈 루트를 실시간으로 프로그래밍 해내고 있었다. 하은이 그것을 보며 감탄한다. 유니언의 일원으로 교육받았으면 촉망받는 인재가 되었을 것이다.


“어라, 들켰나보네.”


어딘가 위기의식 없는 그의 말. 인터셉트를 탐지당한 것인지 준영이 양 손에 각각 들고 있는 태블릿에서 영상들이 사라진다. 이내 마지막 영상까지 사라지고, AP-5 아말감의 병력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져버렸다.


“어쩔 수 없지.”


수현이 블루투스 리시버를 끼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네. 접니다. 쫓기- 네.”


하은이 그가 ‘내통자’와 통화를 하고 있음을 눈치챈다. 그, 아니면 그녀는 그들이 추적받고 있음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전술 상황에 대해서까지 알고 있다면 잡무나 맡는 자는 아닐 것이다.


“이쪽이다.”


나지막한 그의 말. 분명 AP-5 아말감의 전술 정보를 이용해 그들의 탈출로를 알려주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들이 골목으로 뛰어들자마자 오던 길로 몇대의 차량이 지나간다. 그 움직임과 도통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창문. AP-5 아말감의 병력이 분명했다. 내통자의 정보가 없었으면 지금쯤 하은은 그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있을지도 몰랐다.


“가죠.”


수현의 재촉에 세 사람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숨이 차기 시작한 것은 준영이다.  운동보다는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온종일 시간을 쏟는 학생이 잘 뛰는게 더 이상하겠지만. 그는 헥헥 대면서도 하은에게 묻는다.


“누나 엄청 잘 뛰네요?”


“일이니까.”



그녀의 대답. 갑자기 수현이 멈춰서는 방향을 튼다. 


“이쪽이라네요.”


그들이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점점 더 인기척이 적어지고, 조용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내 그들이 골목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예상과는 달랐다.


“...어…”


당황한듯한 준영의 말. 그러나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재빨리 얼굴을 해골 모양의 무늬가 그려진 마스크와 모자로 가린다. 수현 역시 마찬가지다. 하은은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해져버렸는지 이미 얼굴을 가린지 오래였다.


‘돌파구’라는 건 탈출구를 말하는게 아니라, AP-5 아말감의 지도부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정우재 감독관의 팔라딘과 그 뒤를 따르는 지휘차량. 지휘차량이라고 해봐야 평범한 밴 형태였지만 하은은 즉시 알아볼 수 있었다. 수십명의 추적 병력을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지휘할 수 있는 통합지휘시스템이 갖춰진 차량이다. 창문 하나 없는 건물 사이에 낀 좁은 골목. 밴의 바깥에서 무엇인가 지시하는 남자와 그의 옆에서 칭얼대는 듯한 여자 요원.


AP-5 아말감의 감독관과 그 부하. 이미 몇번이나 본 사이다.


“여기가 아닌-”


그들을 눈치챈 AP-5 아말감의 요원들이 그들을 바라본다. 순간 그들의 움직임이 멎는다. 어떻게 여기를 찾았지, 라는 당황스러움이 보이는 듯 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하은이 가방에서 꺼내든 소음 기관단총을 조준한다. 총구가 정우재 감독관을 향한다. 픽, 픽,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음속탄이 정확하게 그를 향해 발사된다. 그러나 살을 꿰뚫는 소리가 아닌,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날 뿐.


“감독관, 괜찮아?”


그가 끄덕인다. 그와 하은의 총구 사이에는 유키가 끼어들어 있었다. 희미한 탄흔이 그녀의 옷에 뚫린 구멍 사이로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찾았다. 쓰레기들.”


어딘가 들뜬 목소리와 함께 유키가 그들을 향해 달려온다. 인간의 몇배나 되는 속도. 하은의 머리를 날려버리려는 심산으로 그녀가 돌진한다. 하은에게는 그녀를 막을 방법이 없다. 섭리를 관장하는 존재Spirit를 불러내는 것을 제외하면. 그녀가 손을 들어올리는 순간.


“!?


유키가 바닥에 쓰러진다. 그녀의 한쪽 다리가 굽어진 채로 그대로 굳어있었다. 그녀가 일어나려 하지만 몸을 받치던 팔 역시 그대로 굳어버린다. 그녀가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바닥을 구르는 신세가 된다. 무슨 이유에선지 관절 구동계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ㅇㅈ? ㅇㅇㅈ~”


조롱하듯 들려오는 소리. 준영이 휘파람을 불며 스스로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세이프하우스에서 직통 회선으로 심어놓은 백도어로 유키의 의체를 해킹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정지 명령을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핵심 프로그램들을 닿는대로 지워버리고 있었다.


“인정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도망가자!”


그의 말과 함께 그들이 일제히 내뺀다. 멀리서 폭발음이 들려온다. 준영이 다시 작동 시켜 놓은 폭탄이 폭발하며 세이프하우스와 AP-5 아말감의 병력을 날려버린 모양이었다. 돌격대장과 부하들이 모조리 무력화 된 상황. 그 때의 혼란을 틈타 도주하는 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쫓기기 시작하면 잡히는건 시간 문제다. 도시 한복판에서 총격전을 벌이면 불리한 것은 당연히 하은 일행.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들이 수현의 리드를 따라 큰 길로 나온다. 인파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꽤나 있는 상점가다. 


“여기로 나오면-”


그러나 하은의 반론을 제지하듯 빠른 속도로 수현의 손가락이 태블릿 위를 달린다. 순식간에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각종 SNS에 이 근처에서 일어날 이벤트 -물론 수현이 미리 만들어놓은 템플릿에 의한 거지만-에 대한 정보, 맛집 리뷰, 세일 중인 가게에 대한 감상 등 다양한 게시물이 폭주하기 시작한다. 그 정보를 접한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하은 일행의 도주 경로 상에 몰려들기 시작한다. 마침 저녁 시간. 데이트 장소를 찾는 연인들, 놀러나온 친구들, 세일에 민감한 사람들이 거리를 채운다.


하은이 그 모습을 보며 놀란다. 테크노크라시의 초과학기술이나 허공에서 물건을 만들어내는 마법은 많이 보았지만, 이런 식으로 현실의 법칙을 휘는Magick 자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순식간에 몰려든 인파에 파묻혀 사라져버린다. 그들을 쫓던 AP-5 아말감의 요원들도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춘다. 추적이 힘들어진건 둘째치고, 전투가 벌어질 경우 이 정도 인파의 눈을 가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치겠네.”


골목 사이로 사라지는 요원들 가운데서 정우재 감독관이 짜증에 가득한 투덜거림을 내뱉는다. 그러나 아무리봐도 그들을 추적할 수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거기에, 지금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하아...하아…”


인파를 뚫고 나온 준영이 숨을 고른다. 주위 사람들이 세 사람을 이상한 눈길로 보지만 별 신경은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스크를 벗은 그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지만 더 이상 쫓아오는 기색은 없다.


“됐네.”


포기한 모양이다. 몰려드는 인파, 해킹 당한 요원, 자폭한 세이프하우스, 네트워크 교란 등이 겹쳐 그들을 추적하기에는 무리인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놈들에게 한방 먹여준 것이다. 하은이 혹시라도 챙겨온 총기가 드러나지 않게 가방을 단단히 닫으며 수현에게 칭찬의 말을 건넨다.


“꽤 괜찮은 트릭인데요?”


“뭐 서울이니까 되는거죠.”


수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 그가 블루투스 리시버를 만지작거리더니 통화를 계속 하기 시작한다. 약간 격앙된 것으로 보아, 그는 ‘돌파구’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근데 솔직히 좋은 기회긴 했어요.”


아직도 숨을 고르고 있는 준영이 아깝다는 듯이 말한다. 확실히 준비가 더 되어 있었으면 AP-5 아말감의 감독관 정도는 죽일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아뇨, 그다지.”


하은이 고개를 젓는다. AP-5 아말감과 몇번 조우 해본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감독관만을 죽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강경파인 감독관과 그의 부관을 둘 다 무력화 시키고, 무엇보다 AP-5 아말감에게 주어지는 지원 자체를 흔들어 버려야 한다. 당연하지만, 겨우 3명의 메이지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만약에 감독관만을 죽이는 것으로 충분했다면... 



하은이 예전의 밤을 떠올린다. 



총기가 아닌 무기로는 그에게 질 것이다. 기습을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니, 그 전에 이 정보를 이들에게 밝혀야 하나, 라는 고민이 먼저다. 



“하은씨.”


그런 생각을 하는 하은에게 수현이 블루투스 리시버를 건넨다. 그의 격양어린 항의는 별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다. 하은이 그것을 받아 귀에 낀다. 변조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확실히 변조 패턴이 일반적으로 시행되는 변조와는 다르다. 높낮이 뿐만 아니라 화이트노이즈나 미세한 파장 변조를 통해 깔끔하게 목소리를 전달하면서도 동시에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하은씨.”


“...반갑습니다.”


그녀가 말한다. 그의 말은 느리고, 신중하고, 무엇보다 조심스러웠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인지 ‘그녀’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채널을 통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유니언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갖은 수단을 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비교적 자유롭게 연락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말감 기지가 아니라 다른 곳에 파견을 나와있는 것이 분명했다.


“앞으로의 협력에 앞서 말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오늘의 행동은 협력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위험했는데요.”


“감독관을 암살할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만.”


하은이 자신의 의견을 설명한다. 그녀의 의견을 경청하더니, 그가 잠깐의 생각 끝에 대답한다.


“제 생각이 짧았군요. 앞으로 전술적인 판단은 그쪽에 맡기겠습니다.”


생각해보면, 믿을만 한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알려주지도 않고 감독관에게 자신들을 유도했다는 것을 보면, 그는 협력이 아닌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은보다 그가 AP-5 아말감의 사정에 훨씬 밝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감독관만을 죽이는 것에 대한 하은의 예상이 맞는 모양이었다. 단번에 머리를 잘라내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그렇다면, 오히려 그녀가 AP-5 아말감의 감독관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걸 함부로 알리면 이들이 성급히 행동에 나설수도 있으니까. 


“언젠가 한번 뵐 수 있으면 좋겠군요. 그럼.”


통화가 끊어진다. 하은이 리시버를 수현에게 돌려준다.


“...아마도 서로 이용할 가치가 없으면 연락조차 안될 타입이군요.”


“그건 하은씨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까처럼 단도직입적으로 찔러오는 수현. 하은이 또 다시 쓴 미소를 지으며 끄덕인다. 그렇게 AP-5 아말감에 대항한 현실교란자들의 협력 관계가, 삐걱이고 있긴 했지만 시작되고 있었다.




AP-5 아말감의 정비실. 평소라면 조용한 가운데 정밀 기계의 소리만 나야할 곳이지만 오늘은 그 대신 사람의 비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아파! 아프다고!”


백도어가 심어지는 과정에서 그녀의 정신을 안정시키고 있는 몇가지 프로그램을 아예 날려버린 것이 분명했다. 유키의 의체는 완벽하게 기계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호르몬을 비롯한 생물학적인 메커니즘에 의하여 영향받는 모든 감정적 요소를 프로그램이 제어하고 있었다. 그것이 충돌을 일으키는 일Statistical Inevitability은 패치나 업그레이드마다 한번씩 있어왔다. 그때마다 그녀는 극도의 고통을 호소해왔다. 


그러나 오늘 같이 해킹을 당해 프로그램들이 뭉텅이로 날아가버린 것은 처음이다.


“쾅!”


그녀가 정비업무를 담당하는 클론의 목을 잡아 벽으로 던져버린다. 클론의 목이 꺾이며 그대로 즉사한다.


“아파!”


더욱 비참한 것은, 그녀의 몸에는 통각신경은 커녕 그 비슷한것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아악!”


그녀가 정비실의 벽에 온몸을 부딪힌다. 아픔을 참기위해 입술을 깨무는 것과 비슷한 행동. 그러나 통각 신경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녀의 몸에 그런 방식이 통할리가 없다. 보이스 모듈이 영향받고 있는 것인지, 그녀의 목소리가 깨지며 기계음이 섞여 들리기 시작한다.


“아프단 말이야!”


그녀의 비명.


“유키.”


정우재 감독관이 정비실 안으로 들어선다. 정비관이 말린다.


“가, 감독관님. 위험합니다. 차라리-”


“됐어.”


그의 싸늘한 말에 정비관이 입을 다문다. 정우재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선다.


“유키.”


“아파!”


그녀가 휘두른 팔에 정비 기구가 넘어지며 정우재의 바로 옆으로 쓰러진다. 깔렸으면 중상이었겠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여기 봐.”


그가 손을 내밀며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녀의 몸부림에도 그는 전혀 움츠리거나 하지 않는다. 파편이 튀어 그의 어깨에 박히지만, 마찬가지다. 유키가 그제서야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그녀가 힘없이 그를 부른다.


“가… 감독… 감독관…”


“그래. 나야.”


그의 손을 부서질듯이 잡는 유키. 그녀의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린다. 동물이 아닌, 오작동을 일으키는 기계처럼. 그녀의 몸이 쓰러진다. 정우재 감독관이 재빨리 그녀를 받아든다. 물론 의체를 받아드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는 이런 경험이 꽤나 있는 듯 능숙하다. 그녀가 쓰러지며 그의 품에 기댄다.


감독관이 손을 내젓자 정비실의 인원들이 모두 나간다. 문이 닫힌 정비실에는 마치 흐느끼는 듯한 모습의 유키 -당연하지만, 그녀의 기계 신체에는 눈물을 흘리는 기능 따위는 없다- 와 그녀를 가만히 잡아주고 있는 감독관만이 있었다.


기계의 몸으로 인간을 흉내낸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기능의 재현에는 문제가 없지만,  인간으로서 멀쩡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감정을 시뮬레이트 하는 프로그램들이 충돌을 일으켜 괴로워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통각신경에서 올라오는 환상통Permanent Paradox에 시달린다. 초인적인 정신력과 계몽된 지성으로 이를 극복하는 자들도 많지만, 말 그대로 끝없는 통계학적 불가항력에 시달려 괴물이 되는 자들도 있다.


많은 사이보그들이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유니언의 과학자들이 아예 그 문제를 없애버리는 것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어...언제까지 이래야 돼…”


그녀의 고통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단 두 개 뿐. 강제로 그녀를 슬립 모드로 전환하던가, 정신적으로 안정시켜줄 수 있는 존재, 다시 말해 정우재 감독관을 데려오는 것 뿐이다. 


“그러니까 얼른 진급해야지. 그래야 복합형 의체로 바꿔줄거 아냐.”


그가 타이르듯 말한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정말 극소수의 사람 밖에 없었다. 그가 파트너에게 보여주었던 부드러운 모습은 이런 면모의 연장선상일지도 몰랐다. 


“그… 그럼 더 나아질 수… 이런거… 안겪어도…”


“어.”


그가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말한다. 그가 미칠듯이 현실교란자들을 잡아죽이는 이유중 하나다. 아니, 어쩌면 제일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일지도 모르지.


“빨리…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오빠야…”


“오빠가 아니라 감독관이다, 감독관.”


그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정비실에 침묵이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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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사악한 현실 교란자들을 보십시요.


현실 교란자들은 모두 "불태워야" 할 것입니다.


짤방은 냉동인간이 되어있는 우리 웨더스 소령님입니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