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 약점.




[네. 조금 있다가 들어갈게요. 근처 카페에요.]


[천천히 와요.]


하은이 문자를 보고는 핸드폰을 가방에 집어 넣는다. 모텔 근처의 카페. 평소에 커피라고는 마시지 않는 그녀가 일부러 천천히 커피를 받아들며 카페 안을 살핀다.



그럼 그렇지.



카페에 일반인으로 위장한 클론 전투 요원들이 앉아있다. 워낙 희미한 인상이라 누구도 그들에게 주목하지 않을 것이지만, 일단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면 뭔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칠 정도의 무표정, 대화의 부재, 그리고 한모금도 마시지 않아 꽉 차있는 커피잔까지. 커피를 사고 카페에 앉아있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상호작용은 어려워하는 타입의 전투 특화형 클론이다. 


하은은 파트너, 그러니까 AP-5 아말감의 감독관과 만나기 전 일부러 일찍 도착해 근처의 가게란 가게는 모조리 둘러보는 중이었다. 카페 두 곳에는 여기에 있는 것과 비슷한 타입의 클론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거리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척을 하는 좀 더 개량된 타입의 클론도 있었다. 절대 입을 열지 않을, 아니, 애초에 그럴 방법 자체를 모르는 자들로만 구성된 AP-5 감독관의 호위병력이다.


너무 많고, 모텔에 너무 가깝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텔촌’이라고 불릴만한 번화가 근처의 장소에서만 만났었다. 이들을 배치하기 위함이었을것이다. 한번 그를 위기에 몰아넣긴 했지만, 어쩌면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를 암살한다 하더라도 유니언의 세력이 멈출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우위를 점하기 위해 그 가능성을 알아보는 것은 나쁘지 않으니까.


그러나 내릴 수 있는 결론이라고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라는 것 밖에 없다.




“그래서, 찾은건 없고?”


모텔 방에서 어둠 속에 앉아있는 정우재가 전화 너머로 묻는다. 유키가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응. 나온 건 없어.”


“생각대로네.”


“생각대로야?”


“어.”


AP-5 아말감이 쫓고 있는 배신자는, 훈련 프로그램 대상자 목록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가 녹화한 패턴과 일치되는 교육용 AI의 버전을 알아내고 해당 버전이 언제 쓰였는지까지도 파악했다. 그러나 전 세계 어느 교육기관에서도 그녀의 성별, 체형, 그리고 예상 나이와 맞는 대상자의 훈련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가 탈주하는데 협력했다는거지.”


“정말? 진짜 그런걸 하는 놈들이 있어?”


유키가 언제나처럼 쾌활하게 묻는다. 


“있지.”


“그럼 걔네들도 잡아죽여야겠네?”


“그렇지. 그럼 훈련기록 쪽은 접자. 교관들 전수조사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신 수동 감시에 리소스 좀 더 분배하고, 출입국 기록이랑 국민연금 직장가입자 기록… 그리고 세금 기록도 뒤져야겠네. 분명 기록에 맞지 않는 점이 있을거야.”


“감시는 할 수 있는데… 후자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걸… 연금이라든지 세금 같은거 어려워...”


금새 시무룩해지는 유키. 


“많이 해본 프로시져니까 내가 할게. 거기서도 안 나오면 진짜 답 없지 뭐. 외국인이든가, 굴파고 산다는 얘기니까.”


아무리 배신자와 그녀를 도와준 자들이 유니언 내부의 기록을 삭제했다 하더라도 행정 시스템에 남아있는 기록이 있다. 그 기록마저 위조했다 하더라도 분명 유니언에 편입되고, 탈주한 시점에 데이터의 불연속이 있을 것이다. 행정체계가 미비한 곳이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한국이라면 비교적 손쉬운 수단Procedure이 된다.


“알았어! 그럼 빨리 끝내고 와?”


“그래, 알았다.”


통화가 끊긴다. 그가 침대에 걸터 앉은채 최근 있었던 일들을 떠올린다. 


유키의 발작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어릴적 -정확히는 유니언의 교육기관 시절부터의- 친구, 라는 유니언 내에서는 흔치 않은 관계인 두 사람. 유키는 이터레이션 X의 신세대 의체 프로젝트의 대상자 중 한명이다. 어릴 때 부터 의체였던 사람이 주기적으로 의체를 교체하며 ‘성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 프로그램. 다시 말해 기계몸이 생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전부 대체할 수 있는가에 관한 실험이었다. 대다수의 급진적인 프로그램이 그렇듯 상당수의 대상자가 실패하고 도저히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유키는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생물체로 태어나서 자란 대다수의 인간과 달리 기계를 다루는데 있어서 거의 본능이라고 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익숙하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그녀는 성공 케이스의 하나로 자리잡는 듯 했다.


차원 이상 현상Dimensional Anomaly으로 인해 모든게 엉망이 되기 전까지는.


테크노크라시의 수많은 자산이 손망실 된 상태에서 실험적 프로그램의 대상들까지 일일히 챙겨줄 예산이 없었던 것이다. 제정신이 아닌 자들부터 차례차례로 블랙박스에 전뇌만 담겨 슬립 상태에 들어갔고 마침내 유키의 차례가 오게 되었다. 그녀가 통조림 신세가 되는 걸 막아준 것은 의체 관리 및 교체비용을 전액 서포트한다고 나선 정우재였다. 그가 성공하는 것이 몇년만 늦었어도 지금쯤 그녀는 어딘가의 창고에서 먼지만 덮여가고 있겠지.


“늦네.”


[천천히 와요.] 라는 자신의 메시지를 한번 들여다보고는 핸드폰을 옆에 내려놓는 그. 


그가 생각에 잠긴다.


그들에게 대적하고 있는 배신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유니언 내에서 2~3년 정도의 경험. 자신보다는 아니지만 뛰어난 근접 전투 실력. 일부 현실 교란자들과의 연결이 의심되는 상황.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그렇다면 세이프 하우스의 위치는 어떻게 알았지?



그가 한쪽 손의 손가락을 꺾는다. 우두둑, 하는 소리가 어둠속에 울려퍼진다.



여성. 얼굴도 가리고 다니고, 목소리도 내지않는다. 유니언의 추적방식을 알고 있다. 배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유니언 내부 기록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해체된 이전의 AP-5 아말감에도 그런 기록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삭제되었을지도. 유니언 내에서 누군가 그녀와 협력하는 자가 있다. 아니, 지금도 있는 건가?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단수인지, 다수인지도 알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히 그녀에게도 약점이 있다. 아니, 애초에 우위는 자신에게 있다.




“위잉-”



빠르게 돌아가는 쿨링팬의 소리. 유키는 AP-5 아말감의 메인프레임에 접속해서 추적 프로그램의 파라미터를 업데이트 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 뒤에 꽂힌 케이블이 주기적으로 빛나며 그녀의 전뇌와 메인프레임 간 데이터와 코드를 전송한다. 어쨌든 이 정도 레벨의 업무라면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들기고 있기엔 버거우니까. 그녀가 자유로운 한쪽 손으로 다른 쪽 팔을 매만진다. 자연적인 육체와는 살짝 다른 느낌의 합성피부. 느낌도 다르지만, 체취 같은 것도 없고 마찬가지로 체모도 자라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의체 안에서 성장하는 바람에 특수한 케이스가 된 그녀에게 맞춰진 의체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제품이다. 가동 파츠는 평범하지만, 두뇌를 비롯한 신경계쪽 파츠가 특수제작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적부터 그녀를 괴롭혀온 신경계 피드백 같은 것을 제대로 차단하지 못한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더 좋은 의체로 교체하는 수 밖에 없다.


정우재 감독관이 업무에 몰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유니언 내의 조직 체계는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지만 동시에 단순하다. 일을 잘하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더 많은 보상을 받고 더 강한 권한을 쥐게 된다. 그러면 21세기 들어 개발된, 프로제니터와 이터레이션 X의 협동으로 만들어진 복합형 의체로 교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질투는 나는데…”


그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약간 질투가 나긴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어쨌든, 유키와 정우재는 어릴 적, 정확히는 유니언의 교육기관에 편입되었던 유년기부터 친구였으니까. 이런 때 이해해주지 않으면 언제 이해해 주겠는가?


“에잇…”


그래도 어릴 적의 마음 여린 그를 교육기관의 다른 학생들로부터 보호해주고, 그가 인포서가 되었을 때 작전에 끼어들어서 그를 몇번이나 구해준 것은 유키였다. 만약 그의 어릴적 시절을 알게 된다면 놀랄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특히 그의 시종일관 신경질적이면서도 언제나 더 나은 성과를 추구하는 모습만을 본 사람이라면.


“역시 질투나…”


그녀가 입술을 씹으며 팔짱을 낀다. 어쩔 수 없지 뭐, 하는 표정으로 그녀가 다시 업무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불 켜도 돼요?”


하은이 정우재의 몸 위에서 말한다. 그가 의외라는 듯이 묻는다. 


“불이요?”


“네.”


하은이 그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한다. 그녀가 몸을 살짝 숙인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액체의 마찰음이 울린다.


“왜, 갑자기 얼굴이라도 보게요?”


“...그것보다는, 몸… 보고 싶어서.”


그녀가 조용히 말한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꾸며서.


“안될 것 없죠. 어두운 불로 킬게요.”


“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 옆의 스탠드에 놓인 불이 켜진다. 수면용의 램프라 어둡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 하은이 그와 눈을 맞춘다. 


“...잘생겼네요.”



그러나, 그 말을 하며 하은이 확신한다. 그때 본 AP-5 아말감의 감독관이 분명하다. AP-5 아말감 내의 배신자가 제공한 정보에 의하면 그의 이름은 정우재다.



“별로요.”


그가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하은이 그의 얼굴을 잠깐 살핀다. 그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또 다시 쾌락에 잠긴다.


“아…”


그녀가 신음을 내뱉는다. 정우재도 마찬가지다. 하은이 어두운 불빛 밑에서 천천히 그의 몸을 훑는다.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손에 닿는다. 중지에 반지가 끼워져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손을 잡는 그녀.



그러나 하은은 그 반지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포획되었을 때를 대비해 비상신호를 발신할 수 있는 초소형의 디바이스다. 혹시 일이 잘못되어 손이 묶인다고 하더라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으니까. 생명신호가 정지되었을 때 자동으로 신호를 발산하는 기능도 있다. 범죄자들과 원없이 싸우게 될 인포서라면 반지에서부터 입술 피어싱까지 다양한 형태로 사용하는 흔한 디바이스 중 하나다. 심지어 가격도 싸다.



“앗…”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몸을 부르르 떤다. 그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는다. 잠시 후, 그가 그녀를 안아올린다. 두 사람이 앉은 상태에서 서로를 마주본다. 또 다시 쾌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하은이 그를 껴안는다. 


“아… 아으…”


그녀의 신음. 맞잡은 손.



역시. 손가락 끝으로 그의 반지의 안쪽 면에 새겨진 미세한 패턴이 느껴진다. 일반적인 반지라면 이런 패턴 같은 것을 새겨놓았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암살하더라도 그 이후 하은 본인의 생존을 담보할 수가 없다. 그녀가 가방에 넣어놓은 탈취한 총기를 떠올린다. 그가 샤워라도 하는 동안 퍼부으면 아마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클론들이 쫓아올 것이고, 클론들에게서 도망간다 하더라도 핸드폰 기록을 통해 자신임이 특정되고 만다. VA들에게 부탁해 지워달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과연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을까. 흔적을 지우고 도망가도 잡히는 VA들은 얼마든지 있다.


더 좋은 방식은 그를 포획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불가능하다. 암살은 가능하긴 하지만, 스스로가 특정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기에 수지가 맞지 않는다. 그녀는 순교자가 되고 싶은건 아니니까. 그러나 해서 이 기회를 날려버릴 생각은 전혀 없다.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면 된다.




“원래 이렇게 하는거 좋아해요?”


정우재가 묻는다. 아직도 불빛은 희미하다. 오늘은 그녀의 부탁으로 평범한 행위를 한 그들. 파트너보다, 연인의 그것에 가까운 행위였다.


“저번처럼 잔잔한것도 좋아서.”


애매한 대답을 던지는 하은. 정우재가 살짝 웃는다. 


“그래요?”


“여자친구 만들 생각 없는 건 알아요. 그래도-”


그녀가 그를 살짝 안아준다.


“남자들 이런거 싫어하는건 알지만, 안아주고 싶어서.”


“왜요, 내일이면 죽을 것도 아닌데.”


“그래요?”


하은이 재차 묻는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급해보여요? 일 열심히 하는건 알지만, 꼭 자기만족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아닌것 같은데.”


그가 하은의 품에 안긴채 침묵을 지킨다. 순간적으로, 그의 몸에서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성격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아픈 가족이 있어서.”


“...그래요?.”


하은이 그를 더욱 꼭 안아준다.



-그래, 약점이 있긴 있다는 거지.



하은이 생각한다. 


편집증과 완벽주의 사이를 오가는 업무 태도.


그리고 ‘가족’.



그런 생각을 마음에 담으며, 하은이 그의 체온을 느낀다. 


그를 안아주고 있는 것이 단지 수단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조금이나마 진심이 섞여 있는 것인지 그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아, 감독관!”


아말감 본부로 돌아온 그를 보며 반갑다는 듯 팔을 들어올리는 유키. 그녀가 살짝 비틀거리며 재빨리 정우재에게 달려간다. 


“신경망 조정은 아직인가보네. 아프다, 아파.”


“또 무겁다고 뭐라 하려고 그러지? 진짜 때린다?”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그와 팔짱을 끼고는 강제로 그를 끌어다가 의자에 앉힌다.


“이거봐, 이거.”


그들 앞에 놓인 널찍한 홀로그램 모니터. 그 안에서 수만줄의 코드가 흐르고 있었다. 


“음. 잘 모르겠는데?”


“나 닮은 AI야. 알파테스트 버젼까지 나왔다구?”


그녀가 버튼을 누르자 홀로그램 모니터가 그들 앞에 작은 인간형의 형체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유키와 닮은 그 형상이 손을 흔든다.


“안녕, 감독관!”


정우재가 픽, 하고 웃는다. 정말 유키와 똑같은 말투다.


“그래서, 휴식 시간에 이런거 하고 있었어? 좀 쉬지.”


“나 없으면 감독관한테 날아오는 총알은 누가 막아줘?”


“그거야 클론들이 막아주겠지.”


“그럼 추적 알고리즘이나 전술자원 최적화는 어떻게 하게?”


“다른 상용 AI 쓰면 되지.”


유키의 얼굴에 불만의 표정이 떠오른다.


“뭐야, 진짜. 난 감독관 편하게 해주려는 건데.”


“알아.”


“진짜?”


감독관이 끄덕이더니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친다.


“AI는 쓸일이 없길 바래보자. 내 주위에서 네 홀로그램이 10명씩 있는건 좀 무서우니까. 그건 그렇고 할 일 있으니까, 준비해.”


“진짜? 그치만 나 좀 상태 안 좋은데…”


“알아. 선봉으로 안세울테니까 걱정말고.”


“진짜? 도움 되는거야?”


“그럼.”


그의 대답에 유키가 눈을 반짝이며 끄덕인다.




높은 것으로 유명한 서울의 한 건물.


지상의 날씨는 아직도 살짝 쌀쌀한 정도지만 강풍이 때때로 불어오는 이곳에서는 서울의 상당 부분을 관찰 할 수 있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운전자들에게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사우론의 눈이라고 농담이 오가는 곳일 정도니까. 하은이 지상을 내려다본다. 예전에 랫킨들을 삼켜버렸던 도로의 싱크홀이 말끔하게 수리되어 있었다.


전망대는 닫은지 오래다. 하은은 아예 전망대 위쪽에 올라가 서울의 전경을 관찰하고 있었다. 관광객에게는 단순히 아름다운 불빛이 가득한 도시의 야경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하은에게는 다르다. 


도시에는 규칙이 있다. 신호등은 반드시 정해진 시간과 교통량에 맞춰서 움직여야 하며, 지하철은 오차범위 내에서 정시에 도착해야한다. 불이 난 곳이 있으면 소방차가 달려가야하며, 야근을 하는 빌딩에는 모니터든 조명이든 뭔가가 켜져있어야 한다. 교통량은 시간과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서 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규칙을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휘저을수 있는 자들이 있다. 바로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이다. 그들은 평소라면 꽉 차있어야 할 도로를 신호를 조작해 아말감의 작전 차량들이 지나갈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목격자를 차단하기 위해 인파를 계몽심리학으로 유도하여 흩어버릴 수 있다. 심지어 보이드 엔지니어의 궤도 상주 유닛의 힘을 빌리면 폭우를 일으켜 도주 경로를 차단하거나 ‘사고’를 일으키는 것도 가능하다.


“...찾았다.”


그녀가 작게 중얼거린다. 


그들이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할때 도시의 규칙이 어그러진다. 컨센서스의 가능성 하에서지만 현실의 흐름에 파문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그들의 의지를 투영할 수 없는 것이다. 분명 이 시간대에 막혀야할 도로가 막히지 않고, 무려 30분이나 시간이 더 걸려서 돌아가야하는 도로들이 막히고 있었다. 그리고 원래의 도로 사이를 검은 점들이 질주한다. 하은이 망원경의 배율을 조절한다. 그들은 누군가를 쫓고 있었다. 아마도 괴물이나 마법사 같은 부류겠지. 


여기에서라면… 지금 이 시간에 택시를 타면 25분 정도의 거리인가.




쌀쌀하다.


하은이 저격소총을 겨눈다. 관측수가 없기에 보통의 저격소총만을 가지고는 절대 쉬운 환경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그녀에게는 세이프하우스에서 탈취한 저격소총이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저격수 단독으로 임무 수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무기다. 


“4배.”


그녀의 말과 함께 자동으로 배율이 조절된다. 


스코프 안에 보이는 것은 감독관과 그 옆에 서있는 부관. 부관의 움직임이 조금 어색해보인다. 그때의 해킹 때문이겠지.


건물 사이. 방해물은 없다. 


몇번 정도 이들을 쫓아다녔을까.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온 것이다.



임무에 대한 편집증적인 완벽주의. 적을 쫓고 처치한다는 목적에 대한 몰두. 그것의 그의 약점이다. 의외로, 잡아죽이는데는 능하지만 그 가운데 본인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부관이 어색한 움직임으로 다시 움직인다. 하은이 트리거에 손을 얹는다.



아니면, 부관을 믿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그녀가 정우재가 말한 ‘가족’이라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의체였던 시절 고장에 시달렸던 하은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볼때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그의 약점이다. 



누군가를 막기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수단을 제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기를 없애는 것이다. 



“8배. 자동 배율 조정.”


줌 인. 하은이 정우재의 머리에 조준선을 놓는다. 저격소총에는 기계에 명중하면 회로를 싸그리 불태워버리는 전자기탄이 장전되어 있었다. 물론 맨몸의 사람이 맞으면 죽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를 제거 하면, 수단이 제거된다. 


만약 부관이 그를 지키기 위해 방패가 되면 동기가 제거된다. 



전자의 경우 장기적으로는 AP-5 아말감을 막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새로운 감독관이 부임하기전, 그녀의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일종의 저항조직을 만들 시간을 벌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역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AP-5 아말감에 -정확히는 그 감독관이지만- 심리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러니까, 해야한다.



하은이 트리거를 당긴다.



쉬익-



특수탄에서만 나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발사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명중이다. 스코프가 자동으로 줌아웃 되고 그 한가운데에서 부관이 방패가 되어 정우재에게 맞아야할 총탄을 막아내는 것이 보인다. 시퍼런 일렁임. 동시에 부관의 기계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에 널부러진다.


성공인가.


하은이 다시 줌인한다. 감독관의 표정. 그는 웃고 있었다.




“...잡았다.”


“감독관! 위치 잡았어!”


유키의 통신과 함께 순식간에 전술망에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된다. 총탄의 궤적을 역추적하면 저격 포인트를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배신자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지만, 그녀의 약점은 명확하다. 유키가 신기해하며 덧붙인다.


“진짜 감독관 예상대로네?”



첫 번째 약점은 그녀가 유니언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 동네 저격 포인트야 뻔하지 뭐.”


오늘 나와있는 유키는 그냥 의체에 ‘방패’ 역할만 할 수 있게 프로그래밍해놓은 더미다. 동작이 이상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녀의 본체는 아말감 본부에서 마이크로 드론을 수십개 띄워놓고 저격 포인트들을 전부 감시하는 중이었다.


유니언 출신이기에, 예측 가능하다. 만약 애초부터 현실교란자였다면 유리창 너머의 이면세계에 숨어있다가 저격을 한다든지 하는 괴상한 짓을 시도했겠지만 그녀는 다르다. 정말 궁지에 몰리지 않는 이상 아는 방법부터 시도하게 되어 있다.



두 번째 약점은 그녀만의 방식이라고 해야할까.



정우재 감독관이 NWO 심리분석관 출신은 아니지만 그녀가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활로를 찾아내는 방법은 기가막히다는 사실은 알아챈 상태였다. 뱀파이어를 데리고 도망갈때나, 감시망을 피해다닐 때의 실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하지만 그렇기에, 조금만 활로를 열어주거나 힌트를 주면 그 방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오늘 테스트 해봤는데, 정말 예상대로였다. 일부러 저격 포인트를 내준 것도 그 때문이다. 임무도 당연히 가짜다. 돌파구를 찾아내는 것에 능하지만 일단 찾아내고 나면 그 방법이 틀린 것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웬만해서는 틀려본적이 없을테니까.



순식간에 하은을 향해 클로킹 상태에 들어가 있던 자폭 드론들이 달려들기 시작한다. 드론들의 저해상도 시각 센서가 전술망으로 그녀의 영상을 전송한다. 황급히 저격 소총을 수거해 옥상 출구로 달려가는 그녀. 그러나 탈출할 곳은 없다. 이미 건물에 대기 하고 있던 클론 요원들이 그녀를 추적하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고 있을 것이다.


드론들이 쇄도한다. 그녀가 문을 연다. 그 안에는 계단이 아니라 저해상도 화면에서 보기에도 뭔가 이질적인 광경이 있었다.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든 현실교란적인 수법. 예전에도 본 적이 있는 모습이다.


그녀의 동작에는 아주 살짝, 망설임이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가 마치 빨려들어가듯이 그 안으로 사라진다. 자폭 드론 중 하나가 닫히는 문에 들이받지만 문에 검은 자국을 남길 뿐. 그 뒤를 따라 찌그러진 문을 안쪽에서 박차고 클론 요원들이 옥상으로 들이닥치지만 아무도 없다.


“흥. 이번도 마찬가지네.”


그 모습을 VDAS로 지켜보고 있던 정우재 감독관이 비웃듯 중얼거린다. 전술망을 통해 유키의 짜증내는 음성이 들려온다.


“또야? 이렇게 놓치기만 해도 되는거야?”


“좀 기다려. 쉬운 상대는 아니니까.”


어차피 시간 문제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마지막 약점이 있다. 현실교란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




“우욱-”


하은이 세면대에 구토한다. 음식물이 아닌, 피만이 토해진다. 그녀가 헐떡거리며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는다. 


여지없이 그녀를 덮쳐온 패러독스.


속이 뒤집어지다 못해 누군가 내장을 갈갈이 찢어놓는 듯한 느낌이다. 


“욱-”


세면대까지 일어설 시간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토하는 그녀. 마른 바닥에 붉은 액체가 퍼진다. 숨을 쉬기가 힘들다. 분명히 성공할거라 생각했는데. 실패했고, 속았다. 그 와중에 우습게도 이번에는 집 근처가 아니라 아예 집까지 바로 오는데 성공했다. 정말, 우스운 일이다.


다시 한번 각혈. 아직 그녀의 어깨에 걸려있던 저격소총 케이스가 바닥에 떨어진다. 검은색 케이스 위로 붉은 덩어리들이 퍼진다. 하은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손바닥에 마치 피로 그린듯한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마치 조각 퍼즐을 연상시키는 무늬. 그 무늬가 손바닥을 타고 올라와 그녀의 손목까지 퍼진다.


“...하아… 하아…”


속이 간신히 진정된다.


이번에도 너무 위험했다.


혼자서는 안된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늘 VA들이 그녀와 함께 있었다고 해서 큰 도움이 되었을까, 하면 그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약점 역시 이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통 속에서도 하은이 생각을 정리한다. 그의 약점을 파고들지 않으면 안된다.


어떻게하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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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람 입장에서의 이야기.


사실 정우재는 하은에게 있어서 일종의 안티테제격으로 설정된 케릭터입니다. 하은의 말투를 잘 보면 글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러니까 글로 쓰면 멀쩡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쓰면 말한다기 보다는 글을 읽는 느낌을 주는 말투라는 이미지를 주도록 쓰고 있습니다. (내적 설정으로 보면 하은이는 국제적인(?) 임무를 수행하면서 한국어 실력이 줄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죠) 하지만 정우재는 "답 없네" 라던지 욕을 한다던지 현실에서의 한국어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생각으로 쓰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약점도 반대입니다.


정우재의 약점은 차가운 인상의 요원들... 즉 테크노크라시의 악당보다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닐 수 있는, 다시 말해 인간적인 약점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하은의 약점은 오히려 사람보다는 기계의 약점에 가깝게 설정해놓았습니다. 현실 교란자는 하은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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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테키MC가 또 급해진다..


짤은 오늘도 홍콩에서 사악한 펜텍스 놈들과 싸우고 있는 김인혁입니다 퍼리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