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돌아온 오늘의 뻘글은 "수치화되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들" 중 하나, 특히 '유사현실물'에서의 PC의 '인간 관계'에

대한 별로 재미없을 이야기임.


유사현실물의 비극 - 왜 인간 관계가 필요할까

물론 OSR이니 3.5판이니 패파 1판이니 그런 거 들고 지옥의 던전까기를 하는 빌런들이라면 이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것이며 사실 그게 맞음. 문제는 이런 것들이 필요한 룰도 있단 건데... 이를테면 유사현실물 또는 AWE 쪽 룰들이 있음.

유사현실물은 말 그대로 우리가 사는(살았던) 세계를 적당히 모방한 다음에 이상한 걸 끼얹은 물건이고 대개 PC의 '하강'이

'상승'보다 더 쉬운 구조라서 캐릭터가 망가지고 뒤틀리는 전개로 이어지기 쉬운 편임. 당연히 이런 장르의 캐릭터는 현실의

우리들처럼 주변의 다른 이들(다른 PC든 NPC든)과 인간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관계들이 캐릭터를 규정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함.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자.


<간단한 예시>

'데이비드'는 정의감에 불타는 형사로 최근 뉴욕에 전근왔고, 노형사 '윌리엄'과 한 조가 되어 며칠 전부터 기괴한 범죄를

저지르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중임. 몇 년 전에 결혼했고, 아내인 '트레이시'와의 금슬은 좋은 편인데 아직 애는 없음.


이 정도면 데이비드는 윌리엄 / 트레이시와 인간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겠지? 각각의 관계들은 CoC라면 백스토리의

'중요한 사람들' 칸에 적어넣을 사이고, 델타 그린이라면 결속(Bond) 칸에 적어 줄 것이며, 모르는 군대라면 둘이 얘한테

각각 어느 위치(구루라든가 뭐 그런 걸로 나눔)에 있나를 따진 뒤 그 관계 수준을 % 단위로 명시할 거고, V5에서는 얘들이

(비)인간 드라마의 중심인 터치스톤(Touchstone)이 될 것임. 뭐 턀갤럼들이 여기서 이름이라도 들어봤을 유사현실물들

몇 개만 대충 봐도 이렇게 대놓고 주변과의 관계를 시트 어딘가에 채워넣으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음.


그러면 왜 이렇게 할까? 그야 당연히 유사현실물은 던전만 까는 게 아니라 특정 시대 현실과 유사한 세계관에서 병맛돋는

(대개 안 웃긴 방향으로) 인간 드라마를 즐기는 걸 목표로 잡기 때문임. 여기에 각 유사현실물마다 특정 요소를 스까해

나름 목표라고 추구하는 지향점 내지는 장르 속성을 붙여서 각 룰에서 추구하는 구체적인 플레이의 목표가 완성되는 거야.

예를 들어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특히 최근 나온 V5가 "너... 혹시 괴물이니?" 라는 질문에 PC가 "으아악 아니야"라고

현실 부정을 하면서(뱀파이어는 분명히 괴물이 맞다) 광광 울부짖는 플레이를 하는 (비)인간 드라마라면 CoC는 믿어왔던

현실을 무너뜨리려는 러브크래프트적 공포와 대면하며 몸과 마음이 망가져가는 탐사자를 플레이하는 인간 드라마인 거지.

근데 그렇다면 이렇게 시트에 적으라고까지 하는 '인간 관계'는 그런 플레이 중에 어떻게 활용될까?


플레이의 진행 - 변화하는 인간 관계

당연히 플레이를 진행하면서 PC의 행동 / 또는 마스터의 결정 등에 따라 인간관계가 변화하는 방식으로 활용됨. AWE에서

세션 끝나고 인간관계 수치 변경하듯이 서서히 바뀔 수도 있고, 혹은 한 번에 급격히 바뀔 수도 있음. 다만 한 번에 그냥 싹

관계 자체를 날리는 건 플레이어 입장에서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특히 인간 관계가 특정 메카닉과 깊게 연관된 룰의 경우)

CoC의 "핵심 관계"처럼 마스터가 멋대로 손대서 "네, 외계인이 엔진을 설치한답시고 도시를 박살내고 모두 죽여버렸어요"

"그녀는 예쁘게 분할되어 냉장고 속에 들어있었습니다" 따위로 땡칠 수 없게 일종의 안전 장치를 도입하기도 함. 그래봐야

판정 몇 번 하고 못 막으면 조지는 그런 식이라 아예 손을 못 댈 건 없지만 말이야. 그러면 인간 관계의 급격한 변화 예시를

한 번 보자.


<간단한 예시>

영화를 좀 봤다고 자처한다면 이제 위의 예시의 인물들 이름을 그렇게 정한 이유를 알 거라 믿겠음.


물론 인간 관계의 상실이 곧 완전한 끝은 아님. 현실에서도 이혼이나 사별을 겪고 재혼하는 사람 많잖아? 혹은 위의 예시가

어떻게 끝났나를 생각해도 될 거임. 그런 식으로 계속 이야기는 흘러가고 인간 관계도 변하는 거야.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의

PC들은 고통을 겪고 뭐 그러겠지만 어쩌겠냐? 유사현실물들 자체가 그런 개떡같은 상황을 겪으며 뒤틀리고 망가져가면서도

살아가는 / 혹은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PC들의 인간 드라마 플레이하라고 나오는 게 대부분인데?

싫으면 그냥 다른 룰 해. 안 이런 룰도 찾아보면 많음.


토대 쌓기 - 그럴듯한 이야기 꾸미기

현실의 인간 관계는 어느 날 뿅하고 솟아나지 않음. 예를 들어서 소중한 연인이라면 최소한 100일은 됐을 거고 뭐 그렇겠지?

그러니까 PC의 인간 관계도 사실 뿅하고 내 머릿속에서 튀어나왔지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게 좋음. 그렇게 꾸미려면

적당한 배경 이야기와 디테일한 묘사를 붙일 필요가 있고. 적당히 꾸며내면 이야기가 그럴싸해 보이거든. 예를 들어 '사실은

아내 뱃속에 아기가 있었다' 뭐 그런 설정을 덧붙인다거나 그런 거지.


<간단한 예시>

' 주인공'은 대위기에 빠졌음. 적들에게 심문을 받는 상태고 재수없으면 자기 정체를 아는 놈이 깨어나 폭로할 상황에 처함.

그래서 이 상황에서 주인공은 주변 사물을 보면서 온갖 뻥을 치면서 자기를 호구로 위장해서 무사히 위기를 탈출하고 사라짐.

심문자는 주인공이 빠져나간 직후까지 그게 뻥인줄 전혀 모르고 있었음.


이 정도면 충분히 진짜같은 뻥이지? PC의 인간 관계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로 그 관계에 얽힌 적당한 설정을 만들고 쓰는 게

훨씬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고 보면 됨. 물론 그런 설정들을 미리 다 처음부터 생각해둬야 할 필요는 없고, 위에서

카이저 소제가 그랬듯이 필요할 때 일단 즉흥적으로 지어낸 다음에 적어서 정리해 두고 보는 방법도 괜찮아. 특히 AWE에서

캐릭터 만들 때, 혹은 그 이후에 '마스터가 캐릭터에 대해 이거저거 물어보라'고 하는 게 이렇게 즉흥적으로 떠올리는 방식의

대표적 사례임. 대신에 이렇게 즉흥적으로 적어낼 때 하나 주의할 점은 기존에 내놓았던 설정과 충돌하지 않게 신경을 써야

한다는 거임. 안 그러면 너의 PC는 동시에 여러 사람과 결혼을 했다거나 뭐 그런 막장 드라마급 배경 설정을 가질 수 있음.

또한 그렇게 뭔가를 정했으면 '왜 / 어떻게"를 붙이고 각 설정을 잘 연결해서 정리를 해 줘야 함. 이게 잘 안 되면 네 캐릭터는

성격파탄자 내지는 행동 조절에 문제가 있는 캐릭터로 보이게 될 여지가 있음. 그나마 이럴 가능성은 위쪽보단 좀 낮기는 함.


물론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저런 것들이 '네가 플레이를 시작하기 전에' 어느 정도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임. 특히 인간 드라마

비중이 큰 룰 / 상황일 수록 이게 더 중요해짐. 예를 들어서 CoC 단편 플용 캐릭터는 그냥 던전까기 캐릭터 짜듯이 들이대면

되고 죽으면 시트 찢으면 되거든? 근데 캠페인을 하면 얘가 공포와 대면하면서 어떻게 사그라들며 주변 인물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그런 걸 생각할 필요가 늘어남. 대놓고 '인간 시절의 평범한 일상'과 '그걸 때려치우게 되는 충격과 공포의 경험'을

설정하고 그 이후의 삶을 다루는 걸 전제로 출발해야 하는 V5 같은 룰이라면 이런 설정의 비중은 말할 것도 없겠지?


그러면 '상상력이 부족해.... 아무 것도 안 떠오르는데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야...'라는 사람이 나올 텐데(뉴비면 대개 더

그럴테고) 그럴 경우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마스터를 붙잡고 늘어지면서 도와달라고 비는.... 그런 건 아니고 뭔가 모티브를

따올 만한 미디어를 참조하면서 캐릭터를 완성하는 것임. 소설이라든가 영화라든가 만화라든가 그런 물건들 말이지. 내가

계속 영화나 그런 걸 예시로 가져오는 이유도 그런 거고. 물론 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Hoxy 설정을 못 짜겠는 것입니까

Uneducated?" 라고 놀리지 말고, 그 사람도 나름대로 뭔가 생각하는 것을 좀 더 구체화하고 싶은데 잘 안 되서 고통스러운

걸테니 도와주도록 하자. 물론 그런 거 전혀 생각 안 하고 그냥 피도 눈물도 없는 터미네이터를 만들어 적당히 플레이하려는

놈은 어차피 이런 장르 하다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현실에 질려서 나가떨어지게 되어 있으니 패스하고. 컷하는 거려나?

 

그리고 한동안 빼먹었던 건데 이 글은 당연히 할 조던 / 카일 레이너 / Se7en / 유주얼 서스펙트 / 포켓몬스터 오루알사 /

소녀전선 / 배틀필드 V / 케장 등과 관계가 없다. 알겠지?


3줄 요약

유사현실물의 인간 관계 등은 플레이에서 나름 중요한 요소임.

이것들이 점차 변화하며 PC의 이야기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임. 

따라서 신경을 써서 내용을 정하고 그럴듯하게 꾸미는 게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