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인맥 운운하는 어그로는 무시하고, 또 다른 현업 기획자 입장에서 저 얘길 한 이유 적어본다.


0. 전제


기획자가 하고 싶다면 우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볼 것.


'게임은 만들어보고 싶은데 코딩도 안되고 미술 쪽 재능도 없으니 일단 기획 쪽으로 들어오려는 건 아닌가?'


개인적으로 가장 기피하고 싶은 유형(이지만 의외로 이런 기획자들이 많다. 특히 경력이 긴 사람들 중에서)이고, 내가 면접을 본다면 절대로 뽑지 않음.



1. 기획자의 포트폴리오란?


프로그래머나 아트 쪽 직군과는 다르게 기획자는 자신의 실력을 직접 드러내는 결과물이 사실상 없다. 신입이면 말할 것도 없고, 경력이라고 해도 작업했던 기획서 몇 개? 그런 거 들고 가서 보여줘봐야 좋은 소리 듣기 힘듬. 특히 전 프로젝트에서 작업했던 거 들고 오는 사람들 있는데...엄밀히 말하면 기획서도 해당 프로젝트에 소속된 작업물이므로 외부에 유출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럼 기획 직군은 뭘 포트폴리오로 준비해야 할까? 조금만 검색해보면 금방 알겠지만 보통 역기획서를 작성해서 제출하게 된다. 이 때 자신이 노리는 프로젝트가 명백하게 있는 경우 해당 프로젝트와 같은 플랫폼, 같은 장르의 다른 유명 게임을 분석하는 게 일반적이지. 그런데 이 경우에는 대부분 경력직을 뽑지 신입을 뽑지 않는다. 특히나 큰 회사들은 더더욱. 신입들은 공채를 통해 입사하는 것이 보편적이며, 이 경우 내가 어느 프로젝트에 들어갈 지는 회사 사정 및 TO 관련 내부 힘겨루기에 따라 결정될 뿐, 입사자의 의향은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아.


이 경우에 티알 관련 규칙을 분석하는 기획서는, 잘 쓸 자신이 있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포트폴리오가 된다. 또한, 잘 작성된 역기획서는 면접 시 주요 질문 소재가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면접 준비를 일정 부분 하는 효과도 있다.



2. 잘 쓴 역기획서란?


이것도 검색해보면 여기 저기 조언이 많지만, 결국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원 기획자가 재미를 구현하기 위해 어떤 생각을 했으며, 그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고자 했는지, 그 방식이 보편적인지 아니면 독창적인지, 그래서 그 방식이 적합한지 아닌지를 스스로의 틀에 녹여 내어 재구성하는 것. 간단히 말해서 쟤가 이러면 재미있겠지? 하고 만들었는데 내가 볼 땐 이런 것 같아. 라는 말을 논리적으로 구성한다고 생각하면 됨.



3. 티알은 그냥 취미일 뿐인가?


글쎄, RPG 장르를 만들 생각이 없다면... 혹은 밸런스 쪽은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그게 아니라 정말 좋은 기획자가 되고 싶다면 행복회로 개소리로 치부해선 안된다. 기획자는 언제나 재미를 규칙화 할 줄 알아야 해. 번뜩이는 재능러가 아니라면 결국 경험을 쌓고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는 작업을 반복해야 할 필요가 있어. 이 지점에 티알이나 보드 게임은 기획자를 꿈꾸는 사람 입장에선 꿀단지라고 볼 수 있지. 전 세계의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날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거든. 물론 게임을 단순히 즐기는 건 도움이 안되고, 항상 역기획서를 쓴다는 생각으로 규칙을 곱씹어봐야 함.



4. 결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규칙을 통해 재미를 찾는 물건들은 모두 기획에 도움이 된다. 티알도 예외는 아니야. 오히려 어지간한 PC/콘솔 게임보다 훨씬 양질의 소재이지.


그런데 당장 기획자가 되겠다는 놈이 티알 좀 했다고 도움이 될 거라는 것도 착각이니까 헛소리하진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