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생각나서, 옛날에 한 번 턀갤에 올렸던 거 재탕.
제목대로 3.5 고렙 플레이였음. 마스터의 자작 세계관을 썼고(이름이... 엘사리아였던가), 드래곤 퀘스트 식의 고전 JRPG 용자물 플레이를 지향하는 컨셉. 난 플레이어 중 한 명이랑 아는 사이라서 다른 사람들 허락 하에 mirc에서 하는 거 관전했었고.
당시 마스터도 플레이어들도 몇 년 이상의 경험을 쌓아 온 베테랑들이었고, 마스터와 플레이어들 간의 은근한 대립구도를 형성해서는 서로 서로 진의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며 수싸움을 하는 상태였어. 여러 모험을 거치고 레벨업을 하며 몇 번 정도는 밤새 룰북과 돈법사 홈페이지의 QNA 코너, 포럼 란을 뒤져서 알아낸 주문 콤보로 거기까진 준비 못한 마스터의 안배를 뚫고 물을 먹이는 데 성공하기도 했고, 마스터의 신중한 낚시질에 걸려 들어 좋은 마법무기를 잃어 버리고 간신히 도망치기도 했고.... 뭐 그런 비교적 평범한 '연륜이 제법 쌓인, 캐릭터들만이 아니라 마스터와 플레이어들도 제법 고레벨인' 플레이를 하는 상태ㅇㅇ 사실 나도 당시 그 플레이 관전하며 빌드 몇 개 배움. 지금이야 파해법이 다 나왔지만.
스토리도 탄력을 받아서, 배경 세계에서도 제법 악명과 세력이 있던 상당히 강한 마왕급 중간 보스를 힘들게 물리치고, 그 배후에서 암약하고 있던 대마왕급 최종 보스가 슬쩍 모습을 드러낸 타이밍이었는데, 마왕성을 탈탈 털은 캐릭터들은 거기서 봉인되어 있던 강력한 고대의 주문이 적힌 마법서적들과 희귀하고 강력한 마법 아이템을 잔뜩 발견함. 그걸 반영해서, 이번엔 마스터가 지금까지 봉인하고 있던, 강력한 옵션 룰이 잔뜩 담긴 추가 룰북(컴플릿 디바인이라거나 북 오브 익절티드 디드라거나 툼 오브 배... ...배...)을 해금해주고 있는 옵션 룰과 아이템을 마음껏 가져다 써도 된다고 했다! 물론 플레이어들은 환호했지.
그 때까지 플레이어들은 이게 지옥의 문, 마스터가 공들여서 준비한 회심의 함정카드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니기럴.
당시 파티는 이미 마왕의 공세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들이었고, 리더 격인 전사는 공주와 한참 썸을 타고 있었거든. 이 공주 NPC가 좀 특별했는데, 플레이 초반부터 꾸준하게 등장해 캐릭터들을 다방면으로 도와주기도 하고 좋은 아이템도 제공해 주고 하면서 캐릭터들은 물론 플레이어들의 호감까지도 꽤 쌓여 있었단 말야. 다음 패턴은 뭐, 뻔하지? 대마왕이 공주를 납치해갔어. 당연히 플레이어들도 이것까지는 예상하고 있었고, 새로이 얻은 강력한 아이템과 주문들의 힘을 빌려 방어를 뚫고 공주가 잡혀 있는 제단으로 향해가고 있었어.
이 와중에서도 소소하게 플레이어들은 그간 갈고 닦은 룰에 대한 지식으로 대마왕의 부하들을 유유히 격파해 갔고("원래 타임스탑 중에는 남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격주문을 쓸 수 없지. 하지만 타임스탑 중에 타임스탑의 지속 시간이 끝나고 발동되는 딜레이드 파볼을 잔뜩 깔아둔다면 어떨까!" 등등). 좀 빡세긴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해 볼만한 난이도의 전투들이 이어지고, 드디어 클라이막스에 접어 들었고 대마왕의 직속 엘리트 부하들은 데드 매직 존을 깐다거나 디스정션을 뿜뿜 쏴대거나 하며 대응해 왔어.
지금까지 밀고 들어오다가 그런 식으로 근본적인 선에서 능력을 차단하거나 억제해 버리는 능력을 상대하게 된 캐릭터들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힘들게 격파하고 제단까지 왔어. 거기에는 묶여 있는 공주가 있었고, 그 옆에는 지금껏 몇 번 나타나서 캐릭터들을 위기에 몰아넣은 적 있는, 대마왕이 아끼는 킹왕짱 쎈 베리베리 스페셜한 골렘이 대기하고 있었고(거의 모든 주문 효과에 면역, 미칠 듯한 맷집과 다종다양한 주문 유사 능력, 마법사나 도둑 같은 좀 피통이 빈약한 캐릭터는 한 방에 빈사할 만한 파워로 떡칠한). 그리고 이번에는...
올ㅋ 앞서의 전투에서 캐릭터들을 괴롭힌 주문 사용 봉인이나 아이템 억제 효과가 없네? 플레이어들은, 피차 전력을 다해 싸워보자는 마스터의 도전장으로 이걸 받아 들였어.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고, 플레이어들은 앞서의 전투에서 억눌렸던 욕구를 마음껏 풀었어. 텔레포트해서 도망칠 수 없도록 디멘저널 앵커도 쳐놓고, 재생하지 못하도록 저주도 걸고, 버프도 퍼시스턴트 스펠로 덕지덕지 바르고, 기타 등등. 드디어 전사의 마법검(죽은 상대는 절대로 재생이나 부활할 수 없는 특수 효과가 붙어 있었다)이 골렘의 코어를 가르고, 박살나는 골렘. 그리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캐릭터들이 구출해야 했던 공주. 그리고 제단에 묶여 있던 공주의 환상이 사라지고, 환상으로 가려져 있던 대마왕이 등장함.
매력적인 NPC 공주 캐릭터를 만들어 내보내 캐릭터들만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의 호감까지 얻어낸 것도, 마왕을 쓰러뜨린 뒤 강한 주문과 아이템들을 잔뜩 얻었던 것도, 이 전투 직전 캐릭터들의 자원을 통제함으로서 욕구불만을 유도한 것도, 그래서 이번 전투에 모든 화력을 쏟아내게 한 것도, 결정적으로 전사에게 재생 및 부활을 할 수 없게 하는 마법검을 준 것도, 스토리 상 중요한 고난이도 전투에 이런 얄팍한 수단을 쓰지 않을 거라고 플레이어들이 여기게끔 한 것도 모두가 마스터의 심리적인 함정이었어. 전사는(그리고 전사의 플레이어는) 멘붕했고, 다른 플레이어들도 다들 경악했어. 그리고 대마왕은 그 틈에 캐릭터들이 골렘 속에 갇혀 있는 공주를 잔인하게 패잡는 모습을 녹화한 영상을 저 멀리 떨어진 왕궁에서 캐릭터들의 승리와 공주 구출을 기원하며 잠들었던 국왕의 꿈에 전송함>.ㅇ
플레이는 중지됐고, 이건 너무 악랄하지 않냐고 플레이어들은 마스터에게 항의했어.
마스터:"그 정도는 예상했었어야지.... 나는 룰 전혀 어긴 거 없고.... 대마왕은 교활하고 잔인하다고 간접적으로 여러번 경고했고.... 공주를 자기 손으로 죽이게 한 건 지나치다고? 글쎄 내가 강요를 했냐 뭘했냐..... 공주 마음에 든다고 한 건 너였고.... 난 거기에 반응해서 니 캐릭터랑 공주를 엮어주기 직전까지 갔을 뿐이고.... 그러게 눈 앞에 보이는 게 적인 거 같다고 무작정 때려 잡으려 들면 안 되고.... 이렇게 된 건 결국 니네들이 무모하게 행동해서고...."
뒷 이야기가 좀 더 있다. 이걸 계기로 플레이어들과 마스터 사이에는 큰 골이 생겼지만 이후 마스터도 자기가 좀 지나쳤다고 사과했고, 그 전사의 플레이어도 멘탈을 추스려서는 그럭저럭 플레이를 속행했어. 지금까지 캐릭터들을 지원하던 왕국의 국왕과 병사들도 모두 적으로 돌아서서는 캐릭터들을 쫓고 있고 캐릭터들은 그간 정 붙인 병사들을 차마 죽이지 못해서 희생을 감수해 가며 이 과정에서 그렇게 빵빵하던 아이템과 주문 능력도 잃어 버리고 레벨도 깎이고 온갖 삽질을 다하며 대마왕에게 역습을 할 기회를 노리게 됐어(생각해 보면 이 시점에서 이미 더 이상 플레이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는 없어졌어. 보는 나까지 스트레스 받더라). 앞서의 사건의 임팩트가 컸던 데다가 다들 정신적으로 좀 피폐해져서 편집증적으로 환상과 거짓말을 탐지하는 능력과 아이템을 얻는데 투자하던 참에 자신은 대마왕에게 불만을 갖고 있다며 대마왕의 부하가 접근해 왔어. 갖고 있는 마법적 수단과 평범한 수단을 총동원해 본 결과 진실이라는 결론을 얻었는데 사실 이 놈은 대마왕에게 불만을 갖고 있으며 캐릭터들을 도우려고 하는 거 자체는 진실이되 그 뒤에는 캐릭터들의 통수를 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단 말야.
글쎄.... 이 정도는 예측하고 대비했어야 했다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그 때 플레이어들은 그거 말고도 신경써야 할 게 잔뜩 있었고, 당연히 그 부하를 의심하긴 했지만 룰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의 에너지 차원에서 그걸 일일이 경계하고 대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 그래도 막판에 결국 증거를 잡아서 대마왕과 그 놈을 함께 엮어서 물리치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이미 왕국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가 캐릭터들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막장 상황이 되었고. 결국 캐릭터들은 지키고자 했던 고향 왕국도 아꼈던 사람들도 능력도 죄다 잃어 버리고서 일부는 죽을 때까지 도망 다니고 하나는 지치고 좌절한 나머지 자살하고 예의 그 전사는 끝내 스스로 대마왕의 왕관을 쓴다는 엔딩을 맞이했음.
끝나고 나서 시발 뭐 이 따위냐고 열 받은 플레이어들이 마스터한테 따졌지만
마스터:"나도 내 딴에는 캐릭터들이 대마왕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길 진심으로 바랐고... 하지만 그 정도로 큰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큰 역경이 있어야 되는 법이고..... 난 단지 마스터로서 니네가 그 역경을 돌파하고 세상을 구하는 걸 보고 싶었고.... 그래서 그에 상응하는 역경을 줬을 뿐이고.... 결국 이렇게 끝나서 유감이긴 한데 마스터로서 클리어로 가는 길을 떠먹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니들이 예측하고 대비 못한 건 어쩔 수 없고..... 니들이 룰북 파고 홈페이지 포럼란까지 뒤져보는 그 열성을 발휘해서 시나리오 점검하고 복선들 잘 파악했다면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었을 테고... 난 아무 잘못도 없고...."
당시 난 관전자 입장일 뿐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비슷한(어쩌면 그보다 더한) 경험을 플레이어 입장에서 당한 적 있어서 나랑 상관 없는 플레이인데도 엄청나게 가슴 아팠다
보는 입장에서 저건 진짜.... 그 마스터는 개새끼라고 생각하고 절대 같이 플레이하고 싶지 않지만 그 과정은 진짜 치밀했음. 공주가 든 골렘과 싸우기 직전 캐릭터들의 능력을 통제해서 깝깝함을 유발해 놓고서는 결정적인 전투에서 그 제한을 풀어줬는데 그게 오히려 공주 끔살로 이어지게 됐으니.
착한 사람은 따라하지 마시오. 아니, 그냥 사람이라면 저렇게 하지 마. 메타적인 지식을 동원하는 걸로도 부족해서 아예 플레이어의 멘탈을 직접 공격했으니. 저건 이거저거 따지기 전에 인간으로서 쓰레기 짓임. 그 마스터는 '난 캐릭터들이 역경을 돌파하는 걸 보고 싶었다'고 하던데 내가 보기엔 핑계고 걍 전부터 플레이어들과 서로 서로 엿먹이던 걸로 악감정 쌓여서 보복한 거임. 진짜로 그런 의도였다면 자기 에고를 고집하기보다 플레이어들의 노력과 투자를 인정해 줬어야 해.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 때 플레이어들은 주어진 정보 내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의사결정했어. 그런 상황에서 마스터의 진의를 캐치하는 건 제3자로서 지켜보던 나도 불가능했거든,
아무런 합의도 없이 희망찬 분위기를 연출하다가 갑자기 딥다크 판타지 엔딩을 냈으니 마스터는 독단적으로 병신짓을 한 게 맞다.
너무무섭다...
진짜 끔찍하네...
항상 이런 썰 보면 궁금한데, 마스터와 플레이어가 함께 합의된 즐거움을 찾아가기 위해 TRPG하는거 아님? 플레이어는 룰치킨 짓으로 마스터를 괴롭히고, 마스터는 말도 안되는 플롯과 스토리로 플레이어를 괴롭히기 위해 플레이하는 썰 보면 이해가 안 갈때가 많아.
저 팀도 중간중간 솔직히 마음 터놓고 합의점 찾아 갔다면 저렇게 되진 않았을텐데, 슬프네. 저 사람들은 계속 TRPG 하고 있을까,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이게 아까말한 그건가 보네... 이건 마스터가 나가도 너무 나갔는데 - dc App
그리고 괜찮다면 '개인적으로 비슷한(어쩌면 그보다 더한) 경험을 플레이어 입장에서 당한 적 있어서'의 썰을 좀 풀어줄 수 있어?
끔찍한 이야기다...
와 진짜 시발새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스터가 존나 변명으로 일관하네 ;;; 그냥 병신인듯
플레이어의 호의가 비극을 부르는 결말은 좀 찝찝한데.
아조시/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rpg&no=76311&page=4&search_pos=&s_type=search_name&s_keyword=고닉
트라우마가 심했던 사건이라 전에도 턀갤에 여러 번 썰을 푼 적 있었음. 그 플레이 이후 거진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스터가 걍 자기 의도를 솔직히 까발리지 않고 '몰입감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 운운하면서 이런 저런 심리적인 스킬을 쓰는 거 보면 반사적으로 경계하게 됨... 지금 하고 있는 PBP에서도 몰입감이 깨지는 걸 감수해가면서 계속 플레이어들에게 메타적으로 조언하는 것도 그런 짓 하기 싫어서고.
음, 나는 성격이 더러워서 얼굴 맞대고 하는 TRPG에서 마스터가 저러면 소리치고 삿대질 할 것 같음. OR이면...아 짜증나겠다 진짜. 특히 다른 플레이어를 이끌고 온 알파 입장에서 결론이 이렇게 나면 진짜 열받겠네. 트라우마 생길 만 하다...
미친놈 아니냐;
마스터가 씨발 개 창년새끼네
근데 플레이어들이 왕국한테 공적취급당한거 나만 이상함? 방식이 억진데 마스터가 지 ㅈ대로 하고싶은 찐따인듯
국왕의 꿈에 전송함ㅋㅋㅋㅋㅋㅋ ㅅㅂ 걍 갑자기 신이 튀어나와서 애네 잘못한거 없음도 나올만한데 ㅋㅋ
병신찐따새끼
마스터는 연출은 잘했지만 좋은 게임을 위해 합의를 하지 않은게 문제지. 영화찍는 감독 마인드로 돌리면 본인은 만족스러울지 몰라도 플레이어에게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