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고... 추석은 역시 보름달이고... 보름달이면 워울프고.... 뭐 그런 연상이 이어져서 옛날 썰 하나. 사실은 연휴에도 못 쉬고 사무실에서 시간 때워야 해서 쓰는 게 맞음 옘병...
때는 약 8년 쯤 전, 난 모종의 경험으로 인해 구쨍 워울프라면 가슴에서 울화가 치솟고 눈 앞이 흐려지며 손이 떨리는 병에 걸려 있었다. 룰북만 봐도 침울해질 지경. 그런데 그 타이밍에 마침 구쨍 뱀파이어 플을 쉬고 있던 지인이 워울프 텔링을 함 시도해볼까 하는데 생각 있냐고 옆구리 찔러 옴.
물론 난 처음엔 거절했지만 그 지인과는 관계도 좋은 편이었고, 친구도 하나 그 플레이에 낀다길래 내가 왜 워울프를 요즘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썰을 풀고는 결국 '쨍 하면서 소년만화를 찍을 수야 없으니 구르기는 하되 메타적 레벨에선 향후 전개에 대해 대강 합을 맞추고, 대신 나는 그러한 지식을 캐릭터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지 않는다'라고 텔러와 합의를 보고는 뒤늦게 캐릭터를 만듦. 그래서 만든 캐릭터가 섀도우로드 루퍼스 라가바시 여캐였음.
주)
섀도우로드:구쨍 워울프의 플레이어블 부족 중 하나. 가장 음험하고 정치적 책략에 능한 부족으로 악명이 높으며, '왕'의 부족인 실버팽에 대해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다.
루퍼스:구쨍 워울프의 태생 구분 중 하나. 워울프와 잠재적 워울프인 인간 사이에서 태어나면 호미드, 워울프 사이에서 태어나면 메티스, 늑대와 늑대 사이에서 태어나면 루퍼스라고 부른다. 호미드는 늑대로서의 본능이 약한 대신 인간 문명에 익숙하고 메티스는 기본적으로 전투 형상에 어려서부터 워울프 사회에 친숙한 대신 기형이나 정신병을 달고 태어나며 루퍼스는 날카로운 감각과 영적 능력이 있는 대신 인간 사회나 인간적 사고방식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라가바시:출신 태생과는 별개로 달이 어떤 형상일 때 태어났느냐에 따른 월령 구분 중 하나. 만월일 때 태어났는지 반달일 때 태어났는지에 등에 따라 캐릭터의 기본적인 성향과 특기 분야가 달라진다. 라가바시는 그믐달일 때 태어난 이들로, 숨는다거나 훔친다거나 뒷치기한다거나 기타 D&D로 치자면 더적스러운 분야의 능력이 뛰어나다.
부족의 성향과 태생, 그리고 월령을 조합해서 대략 '겉으로는 냉정하고 무뚝뚝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강하고, 호미드 태생들 틈에서 오래 지낸 덕에 인간의 문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지만 지식이 편향되어 있는 캐릭터'로 가닥이 잡혔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편향된 지식 때문에 쿨한 얼굴로 자각 없이 개그를 하거나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데는 능숙한데 비해 정작 남의 거짓말을 눈치채는 데는 서툴러서 잘 속는 타입'의 모에 캐릭터'가 됨.
기억나는 관련 이벤트 몇 가지(오래 전에 한 플이라 좀 왜곡되어 있을 수 있음)-
1)팩메이트 후보인 실버팽과의 첫만남에서, 졸라 화려한 로리타 룩 차림으로 등장. 벙찐 실버팽이 멍한 눈으로 쳐다보자 "오는 길에 인간 수컷 몇몇이 같이 놀자고 달라붙길래 팔을 부러뜨렸다. 인간들은 왜 이 모양이지?"라고 불평. 실버팽이 그 옷 때문이라고 가르쳐 주자(이전 셉트 멤버들이 중요한 자리에 갈 때 입어야 하는 옷이라고 속이고 입혔다는 설정) 조용히 창피해 함.
2)BSD들이 디즈니랜드에 잠입해서 놀이기구들에 베인을 씌워 오염시켰다는 징후가 파악되서 디즈니랜드에 침투해야 하는 상황. 팩의 필러독스가 티켓을 사오자 워울프인 우리가 왜 인간의 방식을 따라야 하냐,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고 츤츤거리다가 알파가 찬성하자 마지 못해 입장. 롤러코스터를 타고는 눈이 달팽이가 되서 '웜의 악은 이토록이나 강렬한 혼란을 몰고 오는구나' 같은 소리를 하며 멘붕했다가 적을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 번 더 타려고 함.
3)NPC 글래스워커의 초대로 고급 호텔로 간 PC들. 카드키를 쓸 줄 몰라서 당황하다가 다른 팩메이트들이 하는 걸 어깨 너머로 훔쳐 보고는 간신히 따라해서 통과함(다른 루퍼스 PC 하나는 카드키 개념 자체가 없어서 "크르르 뭥미 이거"하며 덥석 깨물었다가 망가뜨림).
4)디너 자리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잘못된 테이블 매너를 다른 루퍼스 PC에게 가르쳐 줌("나이프로 이렇게 고기를 잘라서, 손으로 집어 먹으면 된다. 쉽지? 인간 방식도 별 것 없어.")
5)그날 밤, 독실에 투숙했다가 샤워를 하러 들어갔는데 별 생각 없이 바닥에서 씻었다가 배수구가 없어서 밤새 욕조로 물을 퍼냄
6)다른 나라에 사는 이전 팩메이트에게 급하게 통화할 일이 생겨서, 아무렇지도 않게 핸드폰을 빌려서는 "위성전화 되지?"하고 확인한 것까지는 인간 문명을 잘 아는 거 같았는데.... 사용법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버벅거림. 간신히 문자 보내는 법만 기억해 냈는데 쌍자음을 못 침
주)
베인:타락한 정령들. 타락한 워울프 부족인 블랙 스파이럴 댄서와 더불어 워울프 플레이를 하면 가장 자주 만나는 주적이다(베인이 인간이나 짐승에 씌이면 포모리라는 괴물이 된다).
알파:한 워울프 무리(보통 월령 별로 하나씩 해서 총 다섯으로 구성된다)의 리더이며 주요 의사 결정권자. 내 캐릭터는 알파를 선출할 때 실버팽에게 열폭하는 섀도우로드답게 기를 쓰고 덤볐지만 간발의 차이로 패해서(사실은 플레이어가 주사위를 잘못 굴려서) 실버팽에게 알파 자리를 넘겨줘야 했다. 이후에도 틈만 나면 츤츤거렸다....
글래스워커:구쨍 워울프의 플레이어블 부족 중 하나. 가장 현대화되어 있으며 인간과 인간 사회에 친숙한 두 워울프 부족 중 하나기도 하다. 하지만 자연과 거리가 멀고 총과 폭탄을 비롯한 인간의 무기와 장비를 즐겨 쓰기 때문에 다른 워울프 부족들은 꺼림칙하게 여긴다.
플레이하는 내내 팩의 실버팽에게 그렇게 츤츤거리더니 결국 엔딩에서는 자기 고향에서 벌어진 사건을 해결하러 러시아로 간다는 실버팽에게 "실버팽이 판단을 그르치지 않도록 곁에서 감시하는 게 우리 부족의 역할이다"라고 얼굴 붉히면서 간접고백하고는 쫓아감. 하지만 사일런트 스트라이더 갤리어드가 눈치 없는 척하면서 재미삼아 둘을 쫓아가서 엔딩 이후에도 둘의 연애사는 험난할 듯. ....그래봤자 결국은 아포칼립스가 와서 다 죽었겠지 뭐ㅇㅇ
주)
사일런트 스트라이더:구쨍 워울프의 플레이어블 부족 하나. 이집트 출신인데 고향이 털리는 바람에 영원히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늘 떠돌아 다녀야 한다. 워울프 사회에서는 주로 전령 역할을 맡는다.
갤리어드:월령 구분 중 하나. 철월일 때 태어난 이들로, 노래와 이야기를 암기한다거나 남을 설득한다거나 하는 분야의 능력이 뛰어나다.
십덕스런 개그 이벤트 위주로 써서 그렇지 플레이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쨍답게 꽤 진중하고 어두웠음. 실버팽은 BSD가 된 숙부와 만나 타락할 뻔하고 내 캐릭터도 과거사 관련해 안 좋게 얽혀서 고생하고 팩의 필러독스는 아예 노골적으로 타락 떡밥이 나왔고... 등등. 그래도 전체적으로 즐겁게 잘 플레이했고, 지금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 플레이 덕에 난 겨우 트라우마에서 좀 벗어나서는 다시 워울프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됐음.
.......그래도 피안나 부족 호미드 아룬은 두 번 다시 안 할 거다 히밤.......
1번 완전 교과서적이네
웜의 악은 이토록 강렬한 혼란을 몰고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