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 계승, 하나.
가끔 그레인저는 믿기지가 않을때가 있다. 비록 명목상으로지만, 몰레티가 자신의 지휘하에 있다는 것이 말이다. 다국적 기업의 CEO이자 오너가 누군가의 지휘를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니까. 정확히 말해서는 전CEO, 현 오너이지만.
그레인저와 몰레티의 구두 소리가 고풍스러운 갈색 대리석으로 된, 위압적으로 넓은 복도에 울린다. 심약한 사람이라면 이 광경만으로도 압도당할 지도 모른다.
“몰레티. 이 저택이 진짜 당신 건가요?”
신디케이트 소속의 요원들이 매우 부유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웬만한 정부 청사를 방불케 하는 사이즈의 저택에는 아무래도 놀랄 수 밖에 없다.
“먼지 하나까지 제겁니다.”
저택의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몰레티의 존재감은 이 복도를 꽉 채우는 듯 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저택을 관리하는 집사들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회장님.”
그의 옆으로 재빨리 남성 비서가 다가온다. 30살 정도 되어보이는 그는 몰레티의 발소리를 지우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걷고 있었다. 그가 사근사근한, 그러나 명확한 발음으로 전한다.
“전부 오셨습니다.”
“그 뒤의 스케쥴은?”
“그쪽 분들도 이미 오신 상태입니다. 동쪽 별실에 모셨습니다.”
“들?”
“예. 저도 한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일행을 한 분 데려오신 모양입니다.”
“알겠네.”
그가 말하자마자 비서가 물러선다. 두 사람이 복도의 끝에 도달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저택의 집사들이 문을 연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호가니 나무 문이 열린다. 끼이익, 하는 볼품없는 소리 대신 나무가 울리는 중후한 소리. 그 소리마저 상대를 압도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겠지. 그 안에는 대략 20명 정도되는 다양한 인종, 나이, 그리고 성별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앉아 있었다.
그가 들어서자마자 너나할것 없이 일어나는 사람들. 그것은 존경, 권위에 대한 복종, 그리고 기회에 대한 노림이었다.
“잘 왔네.”
그 중 몰레티의 실제 나이와 비슷한 나이의 몇몇 사람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는 몰레티. 그들은 이 모임의 참가자라기보다는 몰레티의 조언가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그들과 재빨리 인사를 끝마치고 몰레티가 서있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자, 그럴 것 없습니다. 모두 앉죠.”
검은색 테두리가 둘러진 테이블.
바로 이곳이, 몰레티 저택의 가문 회의실이다.
일개 국가와도 능히 대결할만한 거대한 경제력과 힘을 지닌 유력 가문이자 하나의 기업 그룹인 몰레티 가문의 유력자들이 모이는 곳. 현대 세계에서 ‘가문’이라는 단어는 곧 ‘기업’이라는 단어와 상통한다.
미래적인 유통업을 선도하는 초거대 유통기업, 스마트폰을 넘어서는 기술을 점차 확산시키려고 하고 있는 IT 기업, 몇백개의 스타트업에 영향을 미치는 벤쳐 캐피털의 오너 등 내노라할 경제인들이 이곳에 모여있다.
이들의 단 하나의 공통점은 성씨가 ‘몰레티’라는 것 뿐.
몰레티 가문은, 놀라울 정도로 개방적이다.
그들은 혈연 따위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아니, 혈연이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가문의 이름으로 봐서는 번지르르한 이탈리아 남성들이 잔뜩 있을 것 같은 ‘가문 회의’에는 검은 색부터 흰색까지 모든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마치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처럼 진출한 국가의 유력자와 결혼한 결과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들 중 일부는 양자, 또는 양녀다. 실력만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에 적응만 할 수 있다면 몰레티라는 이름을 내주는 것에 전혀 인색하지 않은 것이 이 가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가 평등하게 다음 가문의 장이 될 권리를 갖는다. 실력만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레티 가문은 매우 수구적이다.
현대 경제계에 있어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따위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영할 수 없다면, 소유하지 못한다. 가문의 장은 절대적인 권리를 가지고 철권으로 통치한다. 모든 가문의 일원은 다른 곳에서는 사장이자 주인이지만 데이빗 몰레티 앞에서는 단지 후계자 후보에 불과하다. 다양한 국가의 서로 다른 법망을 교차이용할 뿐만 아니라 신디케이트 내에 뿌리 박은 네트워크를 통해 그의 권리는 철저하게 보장되고, 또한 실질적으로 뒷받침된다. 몰레티 가문은 서구 세계에 존재하는 마지막 ‘재벌’이다.
그리고 그러한 권리를 물려받을 다음의 후계자는 주주회의가 아닌, 현재의 가문의 장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레지널드 프록터가 살아있을 시절 그의 옆을 보좌하던 초대 당주인 몰레티의 의지는 이렇게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구시대적인 질서를 해체하여 ‘기업’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가족을 대체하는 패러다임을 현실에 끼워넣고자 했지만, 결국 그의 뜻은 단 하나의 거대한 가문에만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의지를 잇고 있는 것은 MSF-44 아말감의 요원, 데이빗 몰레티다.
그의 의지에 따라, 그 시가 총액의 합으로 따지면 굴지의 기업들과 맞먹고도 남는 거대 기업 그룹을 누군가가 물려받게 된다. 마치 젊은 시절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 여러분들을 부른 것은, EMT사와 오디엔사의 합병에 관해서입니다. 이미 미디어에 발표된 내용을 통해 어느정도 알고 계실 겁니다. 그저… 합병에 있어서 주주인 여러분들의 협력을 부탁드리기 위해서지요.”
그러나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몰레티는 그룹을 물려줄 작업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몰레티는 합병 준비 지시를 해놓았을 뿐이지, 실제로 오디엔 사의 경영진과 만나거나 하는 일들은 EMT사의 경영진과 다른 주주들이 도맡아 하는 중이었다. 그는 EMT을 제외하고도 다른 다수의 기업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기에, 현장에 나타날만한 시간이 없었다.
아마도 두 회사의 합병은 복잡하지만 법적으로 뒷받침되는 그룹의 지배구조를 재조정하고 더욱 견고하게 짤 뿐만 아니라 그 중심이 후계자에게 몰리게 하는 일의 일환일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 중심에 들어앉은 자를 후계자로 정한다는 말이 맞겠지.
“그러면-”
몰레티가 차분한 목소리로 회의를 진행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그레인저. 물론 그녀도 여기에 구경만 하러 온 것은 아니다. 몰레티 그룹 같은 거대한 조직은 NWO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눈엣가시다. 물론 신디케이트 그 자체만큼은 아니지만. 전투 아말감이라는 수평적 기능과 NWO 소속이라는 수직적 구조가 맞물리는 그 지점에 있는 그레인저인 만큼, NWO의 눈이 될 것을 종용받은 것이다.
“-14%가-”
물론 그레인저 본인은 간섭할 의향이 전혀 없다. 그녀는 조금 심드렁한 표정으로 상석 옆자리에 앉아 MSF-44 아말감의 예산안보다도 몇백배는 큰 단위의 돈에 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처음 보네요.”
회의가 끝나고 나서 그레인저의 첫 감상. 몰레티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음? 하긴, 아말감에서의 제 모습과는 많이 다르죠.”
언제나 여유가 넘치는 그와는 달리 이곳에서의 그는 무겁기 그지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아는 몰레티는 가짜고, 이쪽의 몰레티가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별실의 손님에게 가고 있었다. 대체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디엔 사의 대주주 중 제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주주가 몰레티에게 면담을 요청한 것이다.
“그레인저, 이미 제 기록은 다 보지 않았습니까?”
그레인저가 끄덕인다. 그는 몰레티가 어떻게 저 자리에 올랐는지 안다.
그의 발 아래 짓밟힌 경쟁자들은 조그만 회사 하나를 맡아서 밀려나는 정도면 천만다행일 정도라고 할 정도. 그의 아래로 들어온 자들은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그에게 도전한 자들은 상당수가 파산했다. 그 중에는 낙담해 자살까지 한 사람도 있었고, 만약에 경쟁사의 수장이 인간이 아닌 초자연체라면 아예 죽여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총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그는 무자비한 결투사나 다름 없었다. 레드 오션이라는 말은 그에게 있어서 집과 같은 단어다. 이미 피로 물든 바다를 더욱 검붉게 물들이는 상어가 그다. 그리고 오직 그런자만이 오를 수 있는 위치가 몰레티 가의 당주이자 회장의 자리인 것이다.
“걱정마십시오. 저는 공과 사 뿐만 아니라 공과 공 사이도 제대로 구분할 수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오디엔사의 최대주주의 성씨는 좀 웃기군요. 나탈리아 블라코비츠라니, 무슨-”
동쪽의 별실로 들어서는 두 사람. 그 안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손님을 본 몰레티의 말이 끊긴다. 별실의 소파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쪽은 노년기에 접어든 것이 보이는 백인 여성, 다른 한쪽은 20대 초중반의 라티노-코카시안 혼혈의 여성, 아마도 손녀인 듯 했다. 노년기의 여성이 일어나 몰레티에게 다가온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힘차다.
“데이빗. 잘 지냈어요?”
자신의 눈이 잘못된것은 아닌지 의심하던 그가 묻는다. 그러나 틀림 없었다. 젊은 시절의 그가 ‘울프맨’으로 활동할 때 그를 돕던 조수, 안나다.
“...안나?”
“오랜만이에요.”
힘찰 뿐만 아니라, 아마 이 저택 안에서 제일 그를 격조 없이 대하는 듯한 말투. 그러나 몰레티는 전혀 불쾌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에게 다가가 오랜 친구에게 하듯 그녀를 껴안는다.
“세상에. 안나.”
방금까지만 해도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을 위압하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순수하게 기쁨으로 가득찬다. 그의 얼굴은 진심으로 기뻐보였다. 안나도 마찬가지였다.
“몰레티, 하나도 안 늙었네요.”
60대인 그의 본래 나이에서 ‘동안’이라는 변명으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외모를 지닌 몰레티와 달리 안나는 세월을 그대로 겪은 모양이었다. 심지어 흰머리도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엄마와 아들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레인저 감독관?”
트래디션에 속한 메이지와 즉각 적대하지 않는 상황. 엄연히 전투 아말감 소속인 만큼 감독관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레인저가 끄덕인다.
“이게 얼마만이지? 20년?”
“30년 4개월 25일 6시간 4분 32초, 33초, 34초…”
안나가 웃으며 시간을 읊는다.
“오디엔 사의 주주가 안나인지는 꿈에도 몰랐군. 이… ‘블라코비치’라는 가명은 네가 지은건가?”
“암요. 이름은 바꾼지 오래니까요.”
“아니, 그래도 블라코비치라니, 러시아 성으로 가명을 정하는건 너무하지 않나?”
두 사람이 뭐가 즐거운지 웃는다.
“그래서, 뛰쳐나간게 괜한 일은 아니었나보군.”
“당연하죠. 언제까지 저희들이 정부 정보망 해킹이나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안나의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이라는 아이템이 이미 패러다임에 받아들여진 이상 누가 그 주도권을 쥘 것이냐, 가 중요한 화두가 된다. VA라고는 하지만 안나는 몰레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IT 사업가에 훨씬 가까웠다.
“이런, 이렇게 되면 합병을 할 때 좀 마음에 걸리겠는데?”
물론 빈말이다. 오디엔이 트래디션의 영향하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오디엔이 거부하더라도 거의 준 강제로 합병할 의사가 있다. 아무리 어릴적의 파트너라도 그의 우선순위는 확실하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저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그건 무슨말이지?”
“저는 곧 은퇴할거에요. 그리고 나면 대주주는 이쪽이 될거고.”
안나 옆에 서서는 정중하게 인사하는 젊은 여성.
“안녕하십니까, 할아버지.”
뜻밖의 말. 백인-히스패닉 혼혈인 듯한 그녀가 몰레티 앞에 다가선다. 그레인저가 놀라움의 표정을 간신히 숨긴다. 몰레티에게 숨겨둔 자식이 있었단 말인가?
“...안나, 이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데.”
몰레티가 그녀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묻는다.
“이쪽에 물어보셔야죠.”
몰레티가 그녀에게 돌아선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다. 그 광경은 손녀와 할아버지의 첫 만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임원 면접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름은?”
“로라 몰레티입니다.”
“안나, 내 성을 붙여준건가?”
“난 우리 아들한테 붙여줬지요. 로라에게 그 성을 붙여준건 우리 아들이고.”
그레인저의 생각에 쐐기를 박는 안나의 말. 개인의 프라이버시라고 해도, 상속권이 있는 직계존속의 존재를 다른 조직도 아니고 신디케이트 내에서 숨기다니.
“녀석은 뭘 하고 지내지?”
“뭘 하긴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지.”
“거기에 10대에 사고까지 친 모양인데. 나이를 계산해보면 말야.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겠구만.”
안나가 웃음기 있는 얼굴로 끄덕인다. 몰레티가 그녀의 말을 들으며 골치가 아파오는 것을 느낀다. 야심없이 평범하게 산다고 해서 자신의 아들을 비난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여기까지 찾아왔다면, 그녀의 목적은 젊은 시절의 자신과 똑같은 목적인 셈이다.
그녀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다. 관련 업계 종사자가 들으면 바로 알 만한 기술들의 도입, AR, VR 관련 생태계 조성 경험 및 관련 연구 실적까지 있다. 중,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까지 조기졸업을 한 것은 물론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압축된 삶을 살고 있다고 해야할까. 2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오디엔 사 쪽에서 큰 잡음이 들려오지 않는 것으로보아 능력이 있는 것은 확실해보였다. 찾아본적은 없지만 메이저급 저널에 몇번 기사도 실렸을 것이다.
그러나, 몰레티가 뭔가 탐탁치 않은 듯 묻는다.
“그래서?”
“네?”
로라가 허를 찔린 듯 되묻는다.
“그것 뿐인가? 네가 이룬 업적은 대다수가 네 할머니의 업적에 기반한거지, 네 업적이 아니야. 백번 양보해서 네가 이룬 일들을 감안하더라도 지금 몰레티 그룹이 필요한건 사업 역량 같은게 아니다. 오히려 지배 역량 쪽이지.”
로라는 대답하지 못한다.
“몰레티-”
조금 심하지 않은가, 싶어서 그레인저가 제지하려하지만 몰레티가 손을 내젓는다.
“그레인저. 만약에 그녀가 이 자리에 오디엔의 최대주주, 그리고 가문의 승계 후보로서 온거라면 셀링 포인트를 한참 잘못 짚은 겁니다.”
그레인저가 납득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해보면 그레인저 자신이 개입할 일도 아니다. 몰레티가 로라에게 돌아선다.
“...뭐, 오디엔의 사업이 지난 몇년간 크게 확장된건 칭찬해줄 일이다만. 네 할머니를 따라하기만 해서는 한참 멀었다.”
그레인저가 안나를 곁눈질한다. 그녀의 희미한 표정 변화를 읽어낸다. 일반인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수준이지만 그녀는 분명히 몰레티를 말리고 싶어하는 듯 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는 그러지 않고 있었다. 반면 로라는 처음 받아보는 대우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간신히 표정을 관리하고는 있었지만 그 뿐.
“그래, 어쨌든 합병건에 대해서 이야기하러 온거겠지.”
“네.”
‘할아버지’라는 호칭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녀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젊고 유능한 사업가일지 몰라도, 여기에서는 그저 후보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레인저는 일단 참관인의 자격으로 앉아있긴 했지만,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의 불균형하고 불편한 대화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저녁.
그레인저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저택의 손님용 방에서 드레스로 갈아입는 중이었다. 속옷만 입은 그녀가 자신의 배를 내려다본다. 하은의 오리지널에게 찔린 상처 부위가, 희미한 금속성의 색으로 칠해져 있는 듯 했다. 출혈을 막기 위해 의수가 내뿜은 나노머신의 흔적이다. 상처가 깊었던데다가 인질로 잡혀있느라 장시간 치료받지 못했던 탓에 나노머신이 아예 그곳에서 증식하여 상처를 막았던 것이다.
“...”
그녀가 배를 문지른다. 촉각은 있지만 어딘가 불편하다. 자기가 아닌 무엇인가가 끼워넣어진 느낌. 그녀의 배에 자리잡은 나노머신은 이제 세포나 다름 없었다. 혈액은 물론 주위에 있는 세포까지 재료로 삼아 자가증식하고, 그녀의 몸을 서서히 갉아먹어들어가는 암세포Paradox Flaw. 그러나 그녀를 죽이지는 않는다. 단지 그녀를 서서히 순수한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바꿔갈 뿐. 소피아는 그것을 보며 매우 흥미로워 했지만 그레인저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한숨을 쉬며 드레스를 입는 그녀. 별로 화려하지도 않고 주목받지 않을법한 검은색의 드레스다. 그녀가 방을 나서 저택의 홀로 내려간다. 오늘은 회의에 이은 파티가 있는 날이다. 몰레티 가문이 주축이 되는 친목 도모 목적의 파티. EMT과 오디엔 사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M&A 과정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에만 관심이 있는 금융인, 얼굴도장이라도 찍어놓으려는 관련업계 종사자, 심지어 유니언 소속의 요원 몇몇도 있는 자리지만, 그레인저가 딱히 할일은 없다. 다만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안나와 유니언 소속의 요원들과의 접촉이 없게 미리 협조를 해놓았다.
그녀가 홀으로 내려가다가 창문 밖으로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그것은 무척이나 이상한 광경이었다.
파티장 너머의 발코니에서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 모습. 자세히 보니, 몰레티와 안나였다.
몰레티와 안나가 서로를 비난하듯 소리지르고 있었다. 그레인저가 안경에 내장된 VDAS를 통해 그들의 모습에 줌인한다. 거리가 먼데다가 계속해서 서로를 가리키며 소리지르는 통에 도저히 입모양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녀가 파티장을 내려다본다. 처음에는 무슨일인가 하고 구경하던 사람들이었지만, 이내 EMT과 오디엔 사의 최대주주인 두 사람이 서로에게 격한 모습으로 소리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데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파티를 즐기던 일부 미디어 관계자들이 재빨리 사진을 찍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이런 정보야 말로 그들에게는 횡재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화려해야할 파티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몰레티는 보이지 않았고 파티장의 사람들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로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지만, 최대주주간의 불화로 인해 EMT-오디엔 양 사간의 합병에는 상당한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M&A 딜은 물론이고 승계 작업마저 모조리 수정되어야 할 수도 있다.
아예 보이지 않는 몰레티는 물론이고 안나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그녀에게 접근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물론, 이 모든 일에 별 상관이 없는 그레인저는 예외다. 아직도 두 사람이 싸운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안나에게 그레인저가 다가온다. 뭐라고 말할까 하다가, 그녀가 농담조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당신이 울프맨의 조수인가요?”
안나가 씁쓸하게 웃는다. 그녀가 끄덕인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다. 트래디션에게도 생명 연장의 수단이 차고 넘칠텐데, 안나는 별로 그런 것에 집착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렴요. 아가씨는?”
“아가씨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늙었네요. 조금 있으면 40살이니까요.”
안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몰레티는 비지니스 목적에서의 노화 방지라면, 그레인저는 전투 자산으로 더 오래 쓰이기 위해 수명 연장 및 노화 방지 처치를 받고 있다. 젊어보이는 것은 거기에 딸려오는 덤이다.
“그래서, 데이빗과는 어쩌다 엮였어요?”
“그 반대죠. 제가 엮어 넣은거지.”
한쪽 눈썹을 치켜뜨는 안나. 그레인저가 난간에 기대며 대답한다.
“뭐, 일단은 제가 몰레티의 상관이라고 해둘게요. 제 2의 인생을 살아 보라고 꾀어냈죠.”
안나가 웃는다.
“세상에. 나는 왜 그 사람도 은퇴하나 했네요. 설마 저 잡아가려고 온건 아니겠죠?”
그레인저가 고개를 젓는다.
“어쩌다 싸우셨어요?”
안나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있었던게지요.”
“두 분 다 많이 변하셨나요?”
“변해요?”
안나가 샴페인을 살짝 들이키고는 대답한다.
“...오늘이라도 당장 울프맨 수트를 고치는 조수 역할로 돌아가도 좋을텐데.”
그녀가 쓸쓸하게 말한다.
“왜 헤어지셨나요? 아들까지 있으면서. 저는 두 분에게 자식이 있는지조차 몰랐는데요.”
“...그 사람이 저 자리에 어떻게 올랐는지 이야기 안해줬어요?”
그레인저가 고개를 끄덕인다.
“거기까지 이야기하시면 짐작할 수 있겠네요.”
짧은 시간동안 벌써 그녀, 정확히는 나탈리아 블라코비츠라는 괴상한 가명을 쓰는 여성 사업가에 대한 조사를 마친 그레인저는 안나가 그와는 정 반대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경쟁대신, 언제나 블루오션을 택한다. 다른 회사들이 그녀가 개척한 신영역에 덤벼들면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그곳을 떠난다. 그렇게 몇번이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IT 및 컨텐츠 산업에 있어서 혁명적인 영역을 계속하여 만들어나갔다. 컴퓨팅 서비스, 머신러닝 알고리즘 및 일반 AI 연구, AR/VR 기술 등 그녀의 영역은 무척이나 넓고도 다양했으며 현실의 것을 넘어선 프로토타입Magick보다는 수면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만한 기술을 개발하는데 능했다. 소사이티 오브 에테르, 버추얼 어뎁트, 그리고 신디케이트를 섞은 것 같은 별종이라고 할까.
“아들은 그렇게 키우기 싫어서 제가 데리고 떠났죠. 하지만 손녀딸은 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네요. 심지어 테크노크라시에 대해서 들었을 때도 자기 할아버지랑 똑같은 반응을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싸우셨나요?”
안나는 대답하지 않고 일어난다. 쓸쓸한 밤바람이 그녀의 드레스 소매를 나풀거리게한다.
“그럼 다음에 봐요, 그레인저 감독관.”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죠?”
“우리들 사이에서 당신 이름은 유명한데요? 다짜고짜 총부터 쏘지 않는 요원이 몇이나 된다고.”
그녀가 코너를 돌아 사라진다.
다음날.
몰레티와 안나의 싸움은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몰레티 그룹의 신산업을 주도하는 EMT 사와 안나가 최대주주로 있는 오디엔의 합병은 사실상 불발이 된 것으로 여겨졌다. 시너지에 대한 기대로 잔뜩 주가가 올랐던 양 사의 주가는 폭락했다. 그리고 그 결과 거대한 이득을 본 것은, EMT사의 경쟁사인 마데온 사, 그리고 그 대주주인-
“마커스 님.”
“들었다.”
“네, 축하드립니다.”
유럽 쪽의 뱀파이어 프린스 중 한명인, 마커스 베커다. 마데온 사는 경쟁사인 오디엔이 합병을 거치고 나면 경쟁에서 밀리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그때문에 꾸준히 하락세였던 마데온사의 주가는 순식간에 반등한 상황. 벤트루 중에서도 테크 펌에 관심이 많은 별종인 그를 모시는 구울 중 한명이 그의 옆에서 공손하게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되었다면 좀 더 몰아 붙여야하지 않겠나?”
그가 백금발의 머리를 쓸어올리며 여유있게 말한다. 마데온 사는 아주 ‘공격’적인 경영으로 유명하다. 생산직들을 쥐어짜듯 하여 단가를 낮추는 것은 예사다. 가족이나 사적 관계를 남용하여 경쟁사의 연구원들을 채오고 기술을 훔쳐온다던가 하는 혐의를 받았지만 한번도 처벌받은 적은 없었다. 심지어 일부 범죄조직과 연루되어 있다는 소문까지 있었으나, 실적과 제품의 품질만은 확실했다. 시장에서는 합병이 없다면 아마도 몇년 내에 마데온이 오디엔을 눌러버릴 것이라는 평가가 대세였다.
블랙 기업에 가까운 회사였지만 신디케이트의 처리 우선순위에서는 한참이나 밑에 있었고, 마커스가 -유니언의 손이 닿지 않는- 용병기업을 고용하고 있었기에 도시에서는 처리가 까다로운 존재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쓰레기들을 고용해놓았습니다. 저희로 이어질 일도 없을 겁니다.”
“뭐, 어떻게 되나 보지. 죽이지 못해도 가뜩이나 꼬인 상황에 더 흔들어놓을 수 있을테니 말이야.”
로라 몰레티는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밤 늦게 일을 끝마치고 주차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능력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은지 오래였고 그녀가 도전한 사업분야는 투자자들이 줄을 설 정도로 전부 승승장구하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할아버지 앞에서 한줌의 인정도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그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거대 기업 그룹을 운영하는 것과 신사업을 벌이는 것은 서로 다른 영역이니까. 어쩌면 그녀가 너무 객기를 부린 건지도 모른다. 몰레티를 만난지 며칠 되었지만, 그때 받은 충격에 일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거기에 자신의 할머니인 안나는 M&A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 했기에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역시-
“...?”
안나가 멈춰선다. 자신과 자신의 차 사이에 덩치 큰 네명의 괴한이 서 있었다.
“다.. 당신들 누구에요?”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지 않는다. 제일 덩치 큰 사내가 칼을 뽑아들고 그녀에게 달려든다. 그녀가 비명지른다.
머리속에 할머니의 조언이 스치고 지나간다.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고.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 칼이 날아든다.
“으아악!”
그러나 비명을 지르는 것은 로라가 아니라 괴한이었다. 그 칼이 로라에게 닿는일은 없었다. 대신, 끈적하고 뜨거운 피가 그녀를 적신다. 칼을 들고있는 손이 그대로 허공을 날아 로라의 얼굴 옆을 스쳐지나가 뒤에 떨어진다. 로라의 앞에서 마치 액션 영화의 한장면이 펼쳐지는 듯 했다. 그녀보다 작은 체구의 여성이 순식간에 로라를 습격한 자들을 하나하나 처치한다. 기관단총은 쏘아지기도 전에 손에서 튕겨나가고, 그녀보다 훨씬 체구가 큰 괴한의 턱이 칼에 맞아 통채로 날아간다. 괴한들이 휘두르는 주먹은 번번히 빗나갈 뿐이었다.
“커억!”
마지막으로 남은 괴한의 목을 피아노줄로 뒤에서 조르는 여성. 그와 등을 맞댄 상태에서 온 몸으로 당겨 조이는 것이라 풀어낼 방법이 없다. 곧이어 그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진다. 괴한들을 쓰러트린 그녀가 거침없이 로라에게 다가온다. 로라보다도 작은 동양계의 여성. 그녀가 정석적인 발음의 영어로 묻는다.
“로라 몰레티, 맞습니까?”
로라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가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듯 말한다.
“당신과 거래할게 있습니다. 마데온 사의 대주주, 마커스를 죽여주죠.”
“...뭐라구요?”
그러나 그 다음 말이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그 대신, 당신의 할아버지를 보게 해줬으면 좋겠네요.”
==
인수.
합병.
시너지.
테크노크라시.
==
와 말머리 창작~
jk롤링이 해리포터가 TF물임을 공인함에 따라 트렌드에 맞춰서 TF 내용 끼워넣어봄
그런트렌드맞추지마...
1화는 어디서 봄?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rpg&no=61579&exception_mode=recommend&search_pos=-65087&s_type=search_all&s_keyword=NHE
크로니클&page=1
NHE 크로니클 로 검색하면 아마 전회 다 나올거임 1화 보려면 2번 다음검색해야함
ㄱㅅㄱㅅ
하은이 목적이 뭔진 모르겠지만 신디케이트 추
쉐도우런 팬픽 써줘여
뱀파이어 추
마커스는 유니언에 대해 알고 있음?
모르니까 저렇게 나대겠지?
TF가 먼지 모르지만 떡밥이 더 많아지네여
세컨드 인퀴지션 넣어라
선생님들..
세컨드 인퀴지션 꼭! 넣어라
저저번화의 휘발유 끼얹기로는 충분치 않았단 말입니까..
세컨드 인퀴!!
스카이넷 넣어라
세컨드 인퀴지션 넣어라
그레인저가 뭘로 변해가는 것일지 ㄷㄷ - dc App
아침 드라마 몰레티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