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Chummer들아


지난번 글에서는 밑바닥 바로 위에 위치한 저소득층과 밑바닥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성공한 중산층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살펴봤어. 환경 오염 그 자체가 정령이 되어서 빈민가를 휩쓸고 사기업화된 경찰은 그런 광경을 방치하는 막장과 비교하면 중산층 생활은 많이 편할 거라고 느꼈을 거야.


하지만 플레이어 섀도우러너의 입장에서는 중산층도 결국 지나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어. 빌드에 따라서 중산층으로 영구적으로 생활하는 데 필요한 50만 뉴엔을 처음부터 가지고서 시작할 수 있고, 혹은 슈퍼 스타가 되어서 주 40시간만에 월 5만 뉴엔을 쓸어담는 빌드도 손쉽게 만들 수 있거든. (SR5 Core Rule Book, p. 65, 94. Run Faster, p. 145, 146, 154)


이쯤 되면 규칙서에도 적혀있는 질문을 할 때가 온 거야.

플레이어 캐릭터는 왜 섀도우러너인가? (SR5 Core Rule Book, p. 103)

명성을 찍은 캐릭터를 만들면 직업만 가져도 돈을 쓸어담을 수 있다. 왜 굳이 런을 뛰어야 하는가? (Run Faster, p. 154)

즉, PC의 과거 배경과 목표를 생각해야 한다는 거지.


물론 섀도우런은 어디까지나 게임이니까 플레이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재미야. PC의 입장에서도 심심하니까, 일상은 지겨우니까, 재밌으니까 런을 뛴다는 대답은 충분히 나올 수 있어. 오늘만 사는 플레이(핑크 모호크)를 하는 것도 섀도우런의 재미 중 하나거든.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생각하면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캐릭터도 얼마든지 플레이할 수 있어. 자신의 과거 배경(=가난, 혹은 상류 사회)에서 벗어나는 것, 과거에 잃었던 친구/가족의 복수 처럼 과거와 연관된 목표일 수 있고, 혹은 과거와 상관 없이 돈과 영향력을 얻는 것, 그리고 그 돈과 영향력을 얻을 때까지 생존하는 스릴일 수도 있어.


상류층과 호화 생활은 이 돈과 영향력을 보유한 사람이 누리는 생활 방식임과 동시에, 그런 돈과 영향력이라는 목표를 알아보기 쉽게 월간 비용으로 표시해주는 지표이기도 해. 상류층은 월 1만 뉴엔, 호화 생활은 10만 뉴엔을 요구하니까 각각 백만 뉴엔, 천만 뉴엔을 모으면 상류층이나 호화 계층으로 은퇴할 수 있다는 거야. 하류층 문서에서도 말했지만 승리 조건의 역할을 하는 거지. 그럼 제6세계에서 이런 상류층 생활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출처: Brandon Liao, Tales of the Cyber King, https://www.artstation.com/artwork/OyB88)




상류층(High) - 월 비용: 10,000(¥), 주거 등급: A, AA


"나는 21세기 디지털 보이..."


미첼은 오전 5시 하고도 1.5초가 지났을 때 눈을 떴다. 침실의 불이 켜지는 동시에 알람에서 단테의 지옥(Dante's Inferno) 클럽에서 촬영중인 라이브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의 두뇌에 장착된 네오넷제 반 윙클표 수면 제어기관(NeoNET brand Van Winkle Sleep Regulator)은 정확히 10,800초만에 매일 필요한 숙면을 취하게 해주는 고성능 바이오웨어(인공 장기)이지만, 오늘 따라 평소보다 반응 시간이 지나칠 정도로 늦어버렸다. 하지만 현재 방송중인 노래는 70년 전 쌍공년도 노래의 커버의 리믹스의 리어레인지를 샘플링한 경쟁사의 노래가 아니라 그의 부서가 저작권을 보유한 밴드의 원곡이자 그가 좋아하는 장르였기에, 사소한 실수 정도는 관대하게 넘어가주기로 하였다.


미첼이 킹사이즈 침대로부터 내려와 붉은 카펫에 발을 딛자 드론들이 붕붕대며 활동을 시작했다. 커버 시트는 자동으로 다림질하듯 빳빳하게 펴졌고, 이불은 자동 제어 시스템의 로봇 팔에 의해 접혀져 빨래 담당 직원이 손수 빨래할 빌딩 지하로 배달되었다. 바닥은 압력 감지 센서를 통해 미첼의 발이 접지한 위치를 감지하고 그의 체온에 맞춰 접지한 지점을 덥혔다. 편광 유리창(교육을 못 받은 하층민은 아마 창문이라 했을 것이다.)이 그의 시선에 맞춰서 투명해지면서 그가 위치한 80층 한참 아래에 깔린 스모그와 그 위로 구름이 약간 낀 화창한 하늘을 드러냈다.

"엄마의 가상ㅎ-- 전화가 왔습니다, 웨스트마치 전무님."


노래가 꺼지면서 스위트 룸의 알림이 들렸다. 필터링 목록에서 제외되어 방으로 직접 전화를 걸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의 비서 겸 부서장이 다급함을 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하이디 켄싱턴-위플이었다. 광고 부서 출신으로 불량 제품을 최고급 명품으로 둔갑시켜 팔 수 있는 비상한 능력을 눈여겨본 미첼은 (지나치게 예민한 성미를 감수하고) 6개월 23일 전에 그녀를 부서장으로 진급시키고 자신의 프로젝트 중 하나를 내려보낸 바 있었다.


"잘 잤나, 하이디?" 그가 샤워기의 물 온도가 조절되는 동안 응답했다. 거실에서는 커피 향기가 이미 모락모락 풍기기 시작했다. 스위트 룸이 그의 혈류량 상승을 감지하고 원하는 블렌딩에 맞춰서 뽑아낸 것이었다. 하층민이라면 아마 커피 포트에 믹스 커피를 넣고 타이머를 맞췄으리라.


"안녕히 주무셨나요, 전무님." 하이디가 답변했다. "오늘 스케쥴을 전송하겠습니다. 그리고 화물 운송 부서에서 사용할 자동 인식 시스템에 대한 보고입니다. R&D 부서에서 가혹 테스트를 위해 1주일이 더 필요하다고 하던데요."


"일주일?!" 미첼이 소리쳤다. "이미 한달 전에 끝마쳐야 했을 테스트 아닌가? 부서 서열에서 세번째로 높은 놈을 자르고 네번째에서 아홉번째까지는 경비에게 먹일 설사바 부서로 전출시켜."


전화로 전해지는 싸늘한 침묵은 뜨거운 샤워물과 상쾌한 대조를 이루었다.


"전무님," 하이디가 대답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설사'바가 아니라 육체 노동자를 위한 고영양 칼로리 보충제-"


"알 게 뭐야." 미첼이 샤워물을 몸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스위트 룸의 최첨단 통신 시스템이 물 소리를 자동으로 필터링하여 목소리를 또렷하게 전달하였기에 샤워를 하면서도 업무를 정상적으로 볼 수 있었다. 하이디가 심혈을 기울인 역작을 변호하는 말을 자르고 말을 이어나갔다.


"설사처럼 생겼고 설사 맛이 나니까 설사바라고 하잖아. 달리 먹을 게 없으니까 먹을 뿐이지. 바나나 키위 패션 프루트?" 자동화 관리 시스템이 진열장에서 오늘 찰 손목 시계를 골라달라는 요청을 화면에 띄웠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나저나 불평도 안 하고 먹는 경비들은 대체 어디서 데려온 거야?"


"다른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하이디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의 모욕에도 불구하고 당황한 기색 없이 여전히 또렷했다. 미첼은 이를 놓치지 않고 기억해두었다. "유전공학 부서에서 일반적인 메타인간의 집중력 한계를 넘어서 12시간 이상 단일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개조한 실험 대상입니다."


미첼이 코웃음을 쳤다. 오늘 찰 손목 시계는 백금이었다. 그렇다면 회색 대신 짙은 색을 입어서 시계와 양복 사이의 대조를 이루는 것이 좋을 것이었다. 오늘 마침 검은 색이 잘 어울리겠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실험 대상을 화물 부서에 배치했다고?" 그가 물었다. "트럭 점검을 시킨다 그 말인가?" 양복 셔츠는 눈부신 백색에 요즘 이사회에서 유행하는 은장식이 되어있었다. 각성한 실크웜이필요한 영양분을 텔레파시로 까탈스럽게 요구하며 정성스럽게 짠 최고급 실크는 마치 햇볓 그 자체를 입은 것 처럼 가볍고 따스했다.


"상쾌한 하루야." 그가 혼잣말을 했다. "그러니까 자동화 점검 시스템이 실험 대상을 대체하기 전까지 일주일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예, 전무님."


"이번 분기가 끝나기... 일주일 전 맞고?" 미첼이 넥타이를 매며 걸어가는 사이 부엌 카운터에서 커피잔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그가 원하는 온도에 맞춰 완벽하게 끓여진 커피에서 가을과 잘 어울리는 육두구 향이 났다.


"예, 전무님." 하이디가 새벽 4시까지 일한 뒤에도 그의 압박 시험을 통과했으니, 그에 대한 보상으로 밤 8시에 있을 회의에 대리로 보내는 대신 일찍 퇴근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디 보자..." 미첼이 생각에 잠긴 사이 인간 집사가 아침 식사 쟁반을 대령해왔다. 뚜껑을 열자 (신선한) 사워 도우 토스트, (진짜 계란으로 만든) 스크램블드 에그, (진짜) 베이컨이 향을 모락모락 내며 드러났다. 이를 본 미첼이 영감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다른 운영 부서와 성과를 겨뤄보라고 하지." 그가 식탁에 앉으면서 말했다. 집사는 양복에 기름이 튀지 말라는 뜻에서 무릎과 목에 냅킨을 걸었다. "그리고 소위 이 '승부'에서 이기는 날에는 점심을 사주겠다고 하는 거야."


"하지만 전무님," 하이디가 평소에 볼 수 없는 그의 관대함에 걱정을 표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회식 예산이 모자랄탄데요?"


"무슨 상관이야?" 미첼이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베이컨을 썰며 말했다. "어차피 1주일 뒤에 시스템이 가동되면 다 자르면 되지."


(출처: 레딧 r/Ozurr, A Silver Bullet and Still Climbing)

상류층(High) 생활 방식은 은수저 이상의 생활 방식을 나타내. 중산층과 비교했을 때는 치안이 더욱 좋아지고 의식주가 더 고급스러워지기도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본격적으로 남에게 집안일을 시킬 수 있다는 거야. 만약 회사의 빌딩에서 제공되는 거주지라면 자동화 시스템이 일 처리를 해줄 거고, 교외에 정원이 딸린 2층집이라면 청소 서비스, 집안일 서비스, 정원사 서비스와 계약해서 집과 생활에 대한 관리를 아웃소싱할 수 있는 거지. 그 외에도 집 안에 온실이나 정원을 만들어서 환경 오염으로 인한 독성을 정화하는 사치도 부릴 수 있어.(SR5 Core Rule Book, p. 373. Run Faster, p.220~222) 즉, 중산층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라면, 상류층 생활은 몸이 최대한 편해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어.

이런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월 1만 뉴엔, 연 12만 뉴엔, 한화로 따지면 연 1억 2천만원이니까, 최소한 억대 연봉을 벌어야만 이런 생활 방식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어. 하지만 간신히 억대 연봉을 버는 사람이라면 몸을 좀 편하게 하겠다고 쉽사리 상류층 생활을 선택하지는 못할 거야. 은퇴 자금을 생각해야 하니까. 다음 10년간 일하면서 연 5만 뉴엔을 저축해서 중산층으로 은퇴하는 쪽이 더 낫겠지.

상류층 생활로부터 오는 이점을 본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시간이 돈이고 권력인 고위 간부들이야. 하층민들은 고작 1주일에 80시간만 일하고서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골골대. 이는 게임 내에서도 측정할 수 있을 정도의 신체적 피로로 나타나. (Run Faster, p. 218~219) 고위 간부들은 항상 자연 재료로 식사를 하고, 집안일을 전부 남에게 맡기고, 주변 환경도 깨끗하고, 최고급 의료 서비스를 받고, 위에서 언급된 미첼처럼 수면 조절기관(Sleep Regulator)을 이식할 돈이 있으니까, 필요하다면 하루 21시간, 주 147시간씩 아무런 물질적 불편 없이 집중해서 일할 수 있어. 여기서 중산층과 최대 주 67시간만큼의 여유 시간 차이가 발생하게 돼. (SR5 Core Rule Book, p. 461) 그리고 이런 상류 사회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매주 추가로 획득하는 67시간을 가치 창출을 위해 쓸 수 있을 정도로 교활하고 카리스마적인 동시에 워커홀릭인 인물들이야. 돈이 모든 것인 제6세계에서는 일할 수 있는 시간에서부터 양극화가 벌어지는 것이지만, 양극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실해야 상류 사회에서 살아남고 편하게 은퇴할 수 있는 거지.

섀도우러너에게도 이런 생활 방식은 상당히 매력적이야. 휴식 기간동안 주 147시간을 비전투 업무에 활용할 수 있다는 건 상당히 큰 이점이거든. 각종 자료 조사 과정에서 걸리는 시간은 보통 시간 단위로 측정하기 때문에, 수면 시간 5시간을 아끼면 매일 조사 체크를 추가로 하나 더 완료할 수 있을만큼 시간을 벌게 돼. 그 외에도 무기를 수리하거나, 수제 총알을 만드는데도 이런 추가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 (SR5 Core Rule Book, p. 145~146, 241) 계속 강조하지만 페이스도 옷을 상류 사회에 맞게 입고 관리할 수 있으니까 존슨씨와 만나서 협상하거나 고위 관리로부터 정보를 캐낼 때도 도움이 돼. (Run Faster, p. 217)

중산층에서는 다른 중산층 사이에 섞여들어가는 노력이 어느정도 필요했지만, 상류층에서는 섞여들어가는 데 필요한 비용이 월 비용에 포함되어있다고 명시되어있어. 상류 사회에 맞는 옷을 구매하고 관리하는 비용이 포함되어있기도 하고, 위에서 말한 고위 간부 중에서는 대기업 간부 뿐 아니라 범죄 집단(삼합회, 야쿠자, 러시아 마피아 등)의 중책도 포함되어있으니까 돈을 세탁하고 주변 경찰에 뇌물을 주는 데 필요한 비용도 포함되어있다고 간주하는 거야. (SR5 Core Rule Book, p. 369) 그러렇다고 동료들까지 펑크 옷차림에 대놓고 총을 휘두르고 다니게 하지는 않는 게 좋아. 상류층 거주 구역에서 걸린 112 전화 한통이면 몇분 안에 SWAT가 쳐들어올테니까. (Run Faster, p. 220)

상류층 생활을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류층에서 머무르는 것 이상의 목표를 지니고 있어. 까놓고 말하자면 그 목표는 대부분 돈과 권력이야. 그 돈과 권력이 결실을 맺었을 때 누릴 수 있는 생활 방식은 바로 아래에 설명될 호화 생활이지.





호화 생활(Luxury) - 월 비용: 100,000(¥), 주거 등급: AAA


플리는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는 고블린 메탈 밴드인 크루시블(KRUSIBYL)의 리드 싱어이자, 1미터의 키로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작은 거인이었다. 그의 음악은 전 세계 수백만명의 팬들에게 닿았고 노래 가사는 차별받는 오크와 트롤에게 사이다와도 같았다. 존재감은 곧 인맥이 되었고, 목소리는 황금을 낳았으며, 조그마한 몸은 키가 2배 이상 큰 메타인간 여성 팬을 이불과 베개로 삼았다.


하지만 플리 니커트위스터(본명은 베르트람 샤를마뉴 모건이었지만, 메탈 가수에게는 지나치게 게이같은 이름이었다.)는 오늘만큼은 자신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인맥, 부와 영향력으로부터 찾지 못했다. 어째서 그의 사이버 코(Olfactory Sensors)로부터 한정판 유전자 조작 리프위즈거 41-S 견종이 자신의 얼굴을 햝고 있다는 신호가 전송되고 있는가. 분명 그의 기억으로는 리프위즈거 41-S를 입양한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플리는 코를 햝으려는 개를 뿌리치고 납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열었다. 캘리포니아 자유국의 해는 어제만해도 무대였던 장소의 폐허에서 타는 모닥불 연기에 반쯤 가려져있었다. 쏴아 하는 파도 소리에 자신이 해변가에 있었음이 기억났다. 값비싼 앰프, 스피커 세트, 그리고 커스텀 시그니처 기타는 모두 산산조각난 채 모래에 파묻혀있었다. 저 멀리 모래 언덕에서 또다른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해변까지 타고 온 투어 버스였을 것이다.


다른 밴드원을 찾던 플리의 충혈된 눈에 트롤 세명이 들어갈만한 술통 더미와 오크 두명이 묻혀있을 하얀 가루 더미가 들어왔다. 술통 더미는 마치 고장난 에어컨처럼 쌕쌕대는 소리를 내면서 위아래로 들썩였다. 하얀 가루 더미는 분명 플리가 쟁여놓은 노바코크(Novacoke, 즉 코카인)임이 분명했다. 평소 소중하게 모셔왔던 노바코크까지 꺼낼 정도면 어제 분명 한 턱 낼 기분이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주변은 모래가 가득한 백사장이었지만 플리는 이상하게도 물에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조그만 몸이 튜브에 의지해 떠있었다. 액체는 아마존에서 공수해온 진품 마혈수(Sangre del Diablo, 용혈수의 육식 돌연변이) 목재로 짜여진 핫 터브에 담겨있었다. 믿음직한 사이버 코로부터 액체의 총 부피는 약 500리터이고 알코올 도수는 40%, 그 외에 라임, 향나무와 오이 향이 난다는 신호를 받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가 역시 소중하게 모셔왔던 양의 3배가 넘었을 뿐 아니라, 백사장에 오기 전에 진작에 다 마셔버렸으니까.

원래 핫 터브는 투어 버스에 장착되었어야 했지만, 저 멀리서 나는 연기가 투어 버스라고 가정한다면 이 곳에 핫 터브가 있는 쪽이 백배 더 나았다. 누가 옮겼는지 몰라도 우선 순위를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그니처 기타는 다시 만들어달라고 할 수 있었지만 마혈수는 돈만으로는 쉽사리 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에 둥둥 떠있던 플리는 핫 터브의 모서리에 감긴 오리칼쿰 사슬에 손이 닿았다. 터브 아래로 늘어진 사슬의 끝부분은 백사장의 고운 모래더미 안에 묻혀있었다.건너편에서 모래와 뒤섞이고 있는 소중한 노바코크 더미가 생각났다.


플리는 튜브에서 굴러나오다가 핫 터브의 모서리 밖으로 넘어가 모래 위로 엎어졌다. 그 소리에 모래더미가 흔들리더니 나체 여성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랐지만 볼륨감이 있는 오크가 숙취와 플리에 대한 걱정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위에서부터 그를 내려다봤다. 오리칼쿰 사슬은 그녀의 목에 달린 초커에 달려있었다. 나가 가죽에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초커는 고룡 슈워르츠코프(Schwartzkopf)가 주최한 파티에 크루시블이 공연해준 댓가로 하수인들을 시켜 정성들여 만든 공예품이었다. 슈워르츠코프는 덩클잔의 기일을 기리고 싶었을 뿐이라 영 재미없는 파티이기는 했지만.


"거기 있었네!" 그가 기쁜 목소리로 인사했다. "서퍼 다크블러드 본레이븐, 깜짝 놀랄뻔했잖니!"


서퍼가 플리를 구름처럼 폭신한 가슴에 끌어안았다. 싸구려 양산형과는 다른 커스텀 유방 임플란트를 장착해준 보람이 있었다. 에이전트가 알려준 본명은 샬린 허버트였지만, 그런 재미 없는 이름을 왜 써야 하겠는가?


"주인님보다 먼저 잠들어서 죄송합니다." 그녀가 훈련받은대로 순종적으로 대답했다. "용서해주시겠어요?"


"이번에는." 플리가 관대하게 대답했다. 컴링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제 때 주인을 편안하게 해주었으므로 초커에 내장된 전기 충격기까지 작동시킬 필요는 없어보였다.


"나머지 자식들은 어디- 잠깐, 먼저 물어야 할 게 있어. 왜 리프위즈거 41-S가 계속 산책 시켜달라고 조르는 거지?"


아무래도 전기 충격기를 작동시켜야 할 것 같았다. 서퍼가 평소답지 않게 정신이 팔린 듯 했다. 이런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알려줬어야 할 사안이었다. 모래에 파묻힌 것 까지는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인님에 대한 봉사를 허투로 할 사유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서퍼가 플리를 안고 술통 더미를 향해 옮기면서 말했다. "조건을 들어줄 때 까지 잠시 빌리겠다고 하셨는데요."

"조건?" 그가 찡그리며 물었다. "대체 무슨 조건을- 아, 사이렌 소리다. 망할."

사이버아이(Cybereyes)에서 지평선 근처에서 다가오는 순찰차량의 확대 영상이 표시되었다. 플리는 그와 동료들이라면 잘 타일러보낼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협상에 실패한다면 서퍼가 대신 나설 것이었다. 서퍼는 하버드에서 MBA를 끝마쳤고 그녀의 여동생은 일류 유전공학자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사소한 일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있었다. 바로 림프위즈거를 납치해 주인으로 삼겠다는 충동이었다.

아마도 핫 터브에 가득 든 진은 몸값이었던 모양이다.



호화 생활(Luxury)은 말 그대로 호화 생활이야. 더 이상 돈이라는 개념에 구속받지 않는 상위 0.1%의 생활상을 나타내. 현실로 치자면 자가용 헬기와 제트기로 출장을 다니는 다국적 기업의 경영권자, 혹은 할리우드의 슈퍼스타 정도 되는 위치지. 연봉 억대인 사람이 함부로 상류층 생활에 합류하지 않는 것 처럼, 월 비용 10만 뉴엔, 1년 120만 뉴엔, 한화로 연 10억원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지출할 수 있는 정도여야만 제대로 누릴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어. 멀리 볼 것도 없이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 웨인이 일부러 모델 2명을 끼고 다니던 모습을 상상하면 될 거야.

상류층 생활 방식과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이 단계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경호가 붙기 시작한다는 거야. 보디가드는 접이식 방탄 방패를 들고 방탄 차량을 몰면서 물리적인 암살을 막아내고, 마법사는 유체 이탈을 통해 경쟁자가 정령이나 마법사 암살자를 막아내는지를 감시해. (SR5 Core Rule Book, p. 368) 특히 주문을 시전하거나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진짜 마법사(Magician)는 러너로 고용하는 비용도 비싸지만 전속으로 고용할 때도 연봉이 억단위로 깨지는데, 유체 이탈은 마법 6짜리 숙련된 마법사라고 해도 12시간 이상 연속적으로 하게 되면 몸과 영혼의 연결이 끊어져서 죽어버리기 때문에, 24시간 마법적인 보호를 받으려면 이런 값비싼 마법사를 최소한 3교대로 굴릴 필요가 있어.(SR5 Core Rule Book, p. 276-277, 312-313) 그래서 월 10만 뉴엔이라는 비용의 상당부분은 사치 그 자체라기보다는 상류층 이상의 생활과 경호 비용이 포함된 것이라고 봐야 해. 실제 사치로 깨지는 돈은 그 이상이라는 소리지.

섀도우런 본편 내에서 묘사되는 호화 생활 계층의 인물 성격은 거의 두가지로 양분되고 있어. AAA급 메가콥에서 이름을 날리는 경영권자이거나, 아니면 위 단편에서 묘사된 것 처럼 벼락부자가 되어서 사치와 향락에 파묻히는 거야. 전자의 사치는 경쟁자를 자극해서 이득을 보기 위한 기싸움이고, 후자는 단순히 즐기기 위한 사치이거나 사치에 중독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Run Faster, p. 153-154) 러너가 이런 묘사를 접하는 건 보통 상류 사회에 침투하는 고난이도 런을 할 때 일테니까 더 자세한 건 시나리오를 참조하거나 GM에게 묘사해달라고 하자.

첫번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섀도우러너의 입장에서 승리 조건 중 하나는 바로 호화 생활을 영구적으로 누릴 수 있는 1천만 뉴엔을 모으는 것이야. 하지만 일반적인 런의 보수는 어려운 런이라고 해도 약 2만 뉴엔 정도니까(일반적인 커뮤니티 보상), 비용까지 감안하면 일반적인 러너는 천만은 고사하고 상류층으로 은퇴할 1백만 뉴엔을 모으기 전에 죽을 확률이 높아. 그래서 캠페인을 장식할 제일 마지막런에서 성공 보수를 수백만 뉴엔 단위로 나눠주고 캐릭터를 은퇴시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 만약 이후에도 은퇴하지 않고 런을 뛴다고 하면 보수가 수십만~백만 뉴엔 단위이고 AAA 메가콥을 위해 직접 일하는, 말하자면 D&D의 에픽 레벨과 유사한 플레이가 될 거야.


지금까지 생활 방식 편을 잘 봐줘서 고맙고, 지금은 직장을 옮기느라 바쁘지만 기분이 내키면 비슷하게 주제 정리 글 아니면 LC에서 굴리는 리플레이를 올려볼게. 그럼 다음에 볼 때까지 사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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