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 끝내지 못한 일.
“훌륭하군.”
최근 있었던, 마데온 사의 대주주 마커스 사살건에 관한 류 국장의 소감이었다.
“감사합니다, 국장님.”
그레인저가 건조하게 대답한다. 그녀가 편하게 말하지 않는 것은 류 국장 뿐만 아니라 유니언의 상급 요원들 까지 참가한 사후강평이기 때문이다.
“그레인저 요원, 되도록이면 다음에는 아군을 속이는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NWO측의 상급 요원이 말한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신디케이트의 대변인이 반론을 제기한다.
“결국 목적은 달성되지 않았습니까? 그레인저 요원과 몰레티 요원은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혼란은 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위험 요소는 완벽하게 통제되었습니다.”
“상급 기관 및 협조를 요청하는 아말감을 속이면서까지 말입니까?”
“그건 과장입니다. 알 필요가 없는 정보는 몰라야 합니다. 그건 상위 기관에서 하위 기관으로 내려갈 때 뿐만 아니라 하위 기관에서 상위 기관으로 올라가는 정보 역시 적용되는-”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시오!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은 금융가가 아니오! 내부정보 차단은 증권사에나-”
“그만.”
류 국장의 무거운 목소리가 홀로그램 회의를 침묵에 빠트린다. 그레인저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항상 이런 식이다.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은 5개의 컨벤션으로 나뉘어져있다. NWO, 신디케이트, 이터레이션 X, 프로제니터, 그리고 보이드 엔지니어. “유니언”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그들의 사이는 절대로 친밀하다고 할 수 없다. 특히 신디케이트와 NWO 사이가 그렇다.
그들이 서로를 연구하고 깊게 파헤친 결과 나온 결과도 아니다. 마치 이웃국가의 사람들이 갖는, 이익을 위한 증오와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그런 증오 따위는 잊어버리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컨벤션끼리의 협력은 잘 되지 않지만 연합 아말감은 충분히 잘 돌아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더욱 교육받은 자들인 계몽된 요원이라고 해서 편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편견은 무지와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것이니까. 계몽된 요원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고도의 지식과 훈련에 기반하기에 오히려 대중보다 훨씬 서로에 대해 알기가 힘들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무지는 늘어만 가고, 편견 역시 그만큼 빠르게 커져간다. 소셜 컨디셔닝은 유니언 외부의 모든 적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해주지만, 동류인 자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작용은 하지 않는다.
물론 서로간의 상호작용이 간신히 이해가능한 수준에서 이뤄지는 평상시의 업무라면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냥 호사거리 정도랄까. 그러나 그레인저 같이 컨벤션 간의 충돌을 직접 목격하는 자들에게는 다른 의미다.
상급 지도부의 수준에서는 편견이 문제가 아니다.
서로의 방식이 다르고, 서로의 방식을 강요한다.
누가 옳은가, 틀린가를 주장하고 그것은 만인이 합의한 원칙이 아니라 소수 간에서만 합의한 원칙간의 충돌.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그때는 힘과 능력, 그리고 실적이 개입된다.
“그레인저 감독관, 이번 건은 절차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군. 다음부터는 주의하도록 하게.”
류 국장이 그렇게 형식적인 경고를 주고 넘어간다. 그레인저가 고개를 끄덕인다.
의심스럽다.
그레인저는 정신을 둘로 나누는 분할사고Schism 프로시져를 사용하는 중이었다. 한쪽 정신은 철저하게 사후 강평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다른 쪽 정신은 류 국장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레콘키스타 작전의 부자연스러운 종료와 AP-5 아말감의 해체. 그 생존자인 하은은 류 국장이 주도한 일련의 과정 끝에 네판디가 되었고, 그 클론에게 죽었다. 그리고 그 클론은 자신의 도움아래 유니언에서 도주했다. 그레인저 자신은 어떤 이유에선지 그 클론이 속한 아말감에서 그녀의 보호자 역할을 맡았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실패했지만, 동시에 성공한 셈이기도 했다.
류 국장은 네판디를 사냥하는 작전인 레콘키스타 작전의 중지와 본래의 하은이 네판디로 타락한 것, 둘 다와 큰 관계가 있다. 부하되는 입장으로서 함부로 추궁할 수는 없지만, 추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이미-
“-증거는 다 은닉했겠지?”
“네. 마커스의 자살로 위장되었습니다.”
그레인저의 한쪽 정신이 대답한다. 다른 쪽 정신은 여전히 류 국장에 대한 의심에 몰두해 있었다. 왜지? 왜 자신에게 관리역을 맡긴 것일까? 자신을 조종하기 쉬워서? 에이다의 ‘친구’여서? 감시 하기 쉬워서일까? 아니, 그럴리는 없다. 인정하기는 자존심 상하지만 그의 휘하에는 그레인저 자신보다 훨씬 능력이 출중한 요원이 다수 있다. 왜? 왜 자신에게 맡긴걸까? 류 국장이-
“-자네의 결정을 믿네, 그레인저 감독관.”
“감사합니다.”
그레인저가 태연하게 대답한다.
증거가 없다. 심증만 있고 물증은 전혀 없는 상황. 아니, 심증도 명확하지 않다. 그가 원하는게 뭐지? 그의 위치에서라면 불가능한 일이 거의 없을텐데. 굳이 그런식으로 불편하고, 통제도 쉽지 않은 방법을 이용한 이유가 뭐지? 왜? 대체-
“-항상 기억하게, 우리의 모든 행동은 질서와 안전을 위해 이루어져야하네. 그럼 여기까지 하지.”
류 국장의 말과 함께 픽, 하는 소리가 나며 홀로그램 스크린이 작동을 중지한다.
그레인저가 긴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우스운 일이지만 오늘 그녀의 스케쥴은 정말 오랜만에 비어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오늘은 좀 잘 수 있다는 것이다. 8시간 정도. 24시간 돌아가는 아말감을 상시 지휘해야하는 전투아말감 지휘관에게는 4시간 정도의 잠도 사치다. 호르몬 요법 및 기타 약물을 이용해 부작용 없이 -알려져 있기로는 없지만- 수면 없이 2, 3주씩 보내는 일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럴 만한 시간도 없다. 아주 특별한 손님, 어쩌면 그녀의 의심에 실마리가 되어줄 수도 있을 만한 손님이 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집무실을 나선다. 그녀의 앞을 쾌활한 여성이 가로막는다.
“감독관, 어디가요! 주치의 말을 안들으면-”
“나중에요.”
그레인저가 그녀를 지나친다. 어차피 그런다고 해도 소피아가 상처를 받거나 신경을 쓸만한 사람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훨씬 쓴 약 처방해줄거에요!”
그레인저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를 본 몇몇 아말감 소속의 고용인들이 인사를 건넨다. 그레인저가 가볍게 인사하며 그들을 지나친다. MSF 아말감의 원래 멤버들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딱딱한 표정.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그녀도 대다수 전투 아말감의 지휘관들처럼 정보기관의 수장을 연상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창고.
본래라면 아말감 지휘관이 들릴만한 곳은 아니지만 그레인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들어간다. AI인 노먼이 그녀를 스캔한다.
“안녕하십니까, 감독관님.”
창고 안쪽에서 홀로그램 모습의 노먼이 나타난다. 그레인저는 노먼의 모습이 평소처럼 말끔한 차림이 아니라 양복 소매를 걷고 한쪽 팔에 재킷을 벗어 걸친채였다.
“기록 지워줘.”
“네.”
어쩌면 노먼이 류 국장이 숨겨놓은 스파이 프로그램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지워진지 오래다. 보이드 엔지니어 쪽 기술로 만들어졌기에 NWO 쪽에서 손대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물론 추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이미 에이팍을 통해 코드 검사를 마친 후였다.
그레인저가 창고 구석으로 다가간다. 어제 들어온 컨테이너. 신디케이트 측 루트를 통한 기자재 보급 컨테이너다. 그레인저가 파란색의 컨테이너 문 옆의 개방 버튼을 누른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컨테이너 문이 자동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위잉-
그 안에서 태연히 걸어나오는 여성. 몰레티 측을 통해 밀수, 아니, 밀항 한 것이다.
“승진 축하드립니다.”
하은의 원본과 달리 클론 쪽의 하은은 담담하게 말한다. 아마 원본쪽이라면 좀 더 신랄하게 말했을 것이다.
“언젠가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쪽에서 먼저 찾아올 줄은 몰랐네요.”
만약, 류 국장에 대한 자신의 의심이 사실로 드러나는 최악의 상황이 닥쳐오게 되면 내부고발을 위해 하은의 기억과 증언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은은 그 말에도 별 반응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그레인저가 한쪽 손을 허리 뒤로 가져간다. 여차하면 제압하겠다는 의미다.
“돌아온 이유가 뭐죠?”
신 같은 것은,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여행할 수록, 더욱 많은 괴물을 죽일수록 그것은 명확하다. 아니,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신에 대한 증언은 거짓이다.
성경에 나오는 악마의 속임수와 신의 구원 중, 오직 악마의 속임수만이 항구적이다.
신의 증거와 신을 설명하는 모델을 찾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찾아 헤매는 그. 제대로 교육받은 과학자처럼 그는 증거가 없으면 절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 것이다. 다른 메이지라면 이터레이션 X에서 셀레스쳘 코러스로 이적한 메이지다운 태도라고 냉소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레스쳘 코러스는 그를 불경한 자라 여기지 않는다.
그의 인생은, 다른 셀레스쳘 코러스와 다를 것이 없다. 신이 그의 인생의 중심이며, 그 존재를 설파한다. 다만 설교 대신, 그 존재를 확인하고 다른 자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증거를 찾아다니는 것 뿐.
점차 쇠락해가는 현대의 종교처럼 그는 아직까지도 보편적인 신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는 종교처럼 그의 존재와 힘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거라!”
그의 말과 함께 그의 손 끝에서 불빛이 번쩍, 하고 빛난다. 그를 향해 달려들던 뱀파이어들이 불타며 바닥에 뒹군다. 신부의 손에서 재가 떨어진다. 신의 기적 같은 것은 아니다. 화학지식과 마술이라고 할법한 싸구려 트릭 몇가지를 조합한, 마른 장작 정도는 순식간에 불붙일 수 있는 속임수에 가깝다.
그의 뒤에는 그의 도움을 간곡하게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교외의 작은 공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은 모조리 피를 빨려 바닥에 쓰러진채 죽어있었다.
신부가 뱀파이어들을 노려본다. 동료가 불타는데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 대한 욕망에 휩싸여 물러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수가 너무 많다. 테크노크라시에 속해있을 때 본 통계가 있다. 뱀파이어의 수는 대충 몇만명에서 이십만에 하나 정도로 추산된다. 지금 여기에 모여있는 뱀파이어는 대충 50이 조금 안된다. 즉, 웬만한 중간 규모 도시의 뱀파이어가 다 모여있다는 말이다.
당연하지만, 말도 되지 않는다. 도시의 거머리들이 전부 모여 교회를 덮치는 일 따위는 있을수가 없다. 악마의 술수, 아니면 누군가의 수작임이 분명하다.
-퍼억.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뱀파이어의 머리가 터져나간다. 뱀파이어는 단순한 타격에 매우 잘 버텨낸다. 그러나 머리가 잘려나가시피다하고서도 활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다지 넓지 않은 복도. 민간인들이 대피해 있는 창고로 이어지는 복도다. 뱀파이어들이 공장에 침입했을때, 그는 간발의 차로 뱀파이어들을 막아설 수 있었다. 여기에 들린 것도 순전히 우연이다. 차를 타고 근처를 지나가다가, 경찰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던 것이다.
설마 이 정도의 일이 벌어지고 있을줄은 몰랐지만.
“윽!”
그가 낮은 신음을 내뱉는다. 잠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에 뱀파이어의 손톱이 그의 팔을 스친 것이다. 상처가 욱신거린다. 사람의 손톱에 스친게 아니라 짐승의 손톱에 스친 것 같다. 살이 살짝 잘려나간 자국에서 피가 흐른다. 그 냄새를 맡은 것일까.
인간성이라고는 사라지고, 피의 욕망에 삼켜진 괴물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뱀파이어들.
신부가 슬레지해머의 낡은 자루를 단단히 쥔다.
“끝내지 못한 일을 끝내기 위해서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하은이 담담하게 대답한다. 그레인저가 그녀를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낀다. 처음으로 자신의 지휘하에 둔 부하지만, 지금의 그레인저에게는 이용할 수 있는 자산과 인원이 차고 넘칠 정도다.
“끝내지 못한 일?”
“예를 들어서 이시야마가 있죠.”
“이시야마는 추적망을 벗어났어요. 그가 다시 나타날때까지는 손 놓고 있는 수 밖에요. 그 외에도 할 일이 차고 넘쳐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죠?”
“지금 당장 휘하의 강습 부대를 준비하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은이 흔들림 없이 말하며 품속에서 뭔가를 꺼낸다. 종잇조각. 그것을 건네받는 그레인저. 외딴 지역일 것이 분명한 주소가 적혀있었다.
“...이건?”
“실마리가 있는 곳이죠.”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다리 관절이 터져나간다. 바닥을 적시는 검붉은 피를 보며 신부가 스스로를 더욱 몰아붙인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 어떤 뱀파이어도 환영을 불러내거나, 뒤쪽에 대피해 있는 민간인들을 꼬여내거나 그림자를 조종한다거나 하는 술수를 부리고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짐승밖에 남지 않은 상황.
테크노크라시는 뭘 하고 있는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윽!”
한번 더 스친다. 세마리의 뱀파이어가 그에게 동시에 달려든다. 그러나 그들을 쳐내는 대신 교회 뒤쪽으로 달려들어가는 뱀파이어를 저지하기 위해 그쪽으로 또 한번 시뻘건 불을 뿌린다.
“키아악!”
괴성을 지르며 불에 타는 뱀파이어. 그러나 그 때문에 한쪽 팔에 뱀파이어 하나가 달라붙는걸 막지 못했다.
“캬악!”
“윽!”
신음. 놈에게 물리지만 마치 마취제와도 같은 흡혈의 감각이 온몸을 습격하기 전에 몸을 비틀어 빠져나온다. 다른 한놈이 팔목을 물지만 팔목에 감아놓은 임시방편의 손목보호대를 뚫지 못한다. 그가 낡은 코트 안에서 나이프를 꺼내 팔목에 다시 한번 달려드는 뱀파이어의 얼굴 한가운데를 그어버린다. 고통을 느끼지는 못할 지언정 위협은 느끼는 뱀파이어가 괴성을 지른다. 밖에서 겁먹은 짐승, 아니면 스케빈저처럼 구경만 하고 있던 놈들도 눈을 희번덕 거리며 다가온다.
“...음.”
순간이지만, 소강상태가 된다. 창고로 들어가는 복도를 지키고 있는 것은 그뿐이다. 안에서 다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그가 여기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몇 마리의 뱀파이어에게 쫓겨다니고 있었다. 몇몇은 피를 완전히 빨려 사망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구해낼 수 있었다.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복도 위에 달린 거울로 창고를 슬쩍 훔쳐본다.
의사가 있다.
자신처럼, 이름을 좀처럼 밝히지 않으려는 의사.
그는 목을 물려 출혈이 멎지 않는 사람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손이 뜯겨나가다시피한 사람의 손목을 압박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자신과 같은 부류Mage임이 분명하다. 당장 대량출혈로 죽어야할 사람도 빈사의 상태로 살려놓고, 너무 심하게 물리거나 뱀파이어의 완력에 의해 내장출혈이 일어나고 있는 사람도 간신히 생명을 유지시켜놓고 있다.
신부가 다시 한번 슬렛지해머를 단단히 쥔다.
신의 기적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
신의 기적이라는 것은 신의 진정한 모습에 더해진 노이즈에 불과하다.
신의 행위와 존재를 관찰한 끝에 인간이 내놓은 근사값. 그 근사값에는 관측자의 기대가 담긴 ‘기적’ 같은 항목들이 들어있는 것이다. 물론 셀레스쳘 코러스의 일원 중에는 신성한 힘, 이라고 해야할 만한 힘을 다루는 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어떤 자들은 철저하게 체계화된 교리와 신학적인 원리에 따라 힘을 이끌어낸다. 다른 자들은 교리 같은 것은 몰라도 그저 기도와 믿음만으로 유령들을 쫓고 초인적인 힘을 다룬다. 너무나 많은 방법이 있기에, 그들의 방법을 매개로 하여 신을 관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언가를 관찰하는데 한번은 회색으로 칠해진 오목렌즈로, 그 다음에는 백마스킹된 소리 만으로, 그 다음에는 장갑을 낀 채 촉각만으로 관찰 할 수 밖에 없다면, 영영 제대로된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신의 증거를 관찰하여 신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근사값을 얻어낸다는 그의 생각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또 다시 뱀파이어들이 달려든다. 초자연적 힘이라고는 없는 그와, 하나 하나가 초인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괴물들. 그가 해머를 단단히 쥐고는 그에게 달려드는 놈을 내려친다.
“우웅-”
로터의 낮은 진동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반신반의한 상태로 출동한 그레인저. 그녀의 옆에는 ‘외부 컨설턴트’라는 호칭을 달게 된 하은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추적장치를 부착한 일련의 표준 전술 장비를 지급받은 상태였다.
그레인저가 급하게 먼저 출발한 에이다와 연달아 교신을 나누며 하은을 곁눈질한다. 그녀와 똑같은 얼굴을 한 오리지널에게 워낙 심하게 당한 탓인지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수송 헬기 안에서는 철저하게 소규모 소탕작전을 훈련 받은 유니언 소속의 EC들이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레인저의 신경통신망으로 파일럿의 메시지가 전해진다. 지난 몇달간 에이팍이 다시 한번 통신망을 업그레이드하고, 그레인저의 의수가 신경망과 더욱 빠르게 동조되고 있는 탓에 예전보다 훨씬 메시지가 선명하다. 좋은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감독관님. 도착 5분 전입니다.]
[전원 준비.]
그녀가 통신으로 모두에게 지시한다. 하은도 익숙한 손놀림으로 그녀의 지시에 따른다.
역시.
기적 같은 것은 없다.
관찰하고 싶어도, 아무것도 관찰되지 않는다.
“으윽!”
그가 비명을 지른다. 뱀파이어 한놈이 물어뜯는 바람에 어깨 부분의 살점이 찢겨져나간다. 살이 흉측하게 패인 부분에서 피가 솟구쳐오른다. 얼굴에 묻은 피를 정신없이 핥는 뱀파이어. 그 틈을 타서 신부가 물러난다.
사실 이번 싸움만을 따져봐도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어깨 부분의 부상이 제일 크긴 하지만, 팔부분에는 흉하게 베인 자국, 다리쪽에는 깊게 물린 자국이 있다. 낡은 그의 코트는 이미 검붉게 변해 있었다.
어리석은 일인 것은 알지만, 신부가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본다. 그가 지키고 있는 민간인들이 벌벌 떨고 있었다. 대다수는 저임금 여성, 아니면 고령의 노동자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경찰 지원 병력이 되었든 군이 되었든 누군가가, 그게 아니라면 테크노크라시나 유타나토스가 달려올법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오지 않는다.
다시 한번 그의 의심을 확인 시켜주는 부분이다. 누군가가…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의 간섭이 없을만한 장소를 골라서.
“크아악!”
그를 향해 달려드는 뱀파이어. 망치로 내려치는 대신 긴 자루로 균형을 무너트린다. 그 회전력을 더해 그 뒤에 자신을 물러오는 놈의 목을 옆으로 후려친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싱싱한 먹이가, 따뜻한 피가 가득하다.
“캬악!”
뱀파이어들이 몰려온다.
“윽!”
그가 신음하며 온 힘을 다해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뱀파이어를 밀쳐낸다. 고통에 가득찬 그의 얼굴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두 마리가 더. 이번에는 도저히 막을수 있을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그가 재빨리 코트 안에서 한줌의 가루와 액체가 들어있는 작은 병을 던진다.
화륵, 하는 소리와 함께 뱀파이어들의 온몸이 불타오른다. 아까와 같은 트릭이다. 계몽과학과는 거리가 먼, 테러리스트들이나 쓸법한 얄팍한 수단이지만 효과적이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의해 잠깐이나마 주춤하는 뱀파이어들. 그 사이로 그가 슬레지 해머를 넓게 휘두른다. 다시 한번 뱀파이어들이 물러난다. 공간을 확보한 그가 재빨리 단단히 발을 딛는다.
제 시간에 작동을 정지하지 않아 과열된 것이 분명한 공장의 기계들이 무거운 진동음을 내는 것이 들린다. 그의 빈틈을 노리는 짐승들.
심지어 짐승에 어울리는 옷마저 입고 있지 않다. 어떤 놈들은 파티 드레스를, 다른 놈들은 말끔한 정장을 입고있다. 누더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한 옷을 걸치고 있는 뱀파이어들도 있지만, 그들 중에서도 제일 흉측하게 생긴 놈Nosferatu들 뿐이다.
“크아악!”
가장 멀쩡한 옷을 입고 있는 놈이 제일 먼저 달려든다. 그 놈을 넘어서 도약해 신부를 덮치려는 놈도 있다. 그가 망치를 단단히 쥐고는 머리속에서 어떻게든 놈들을 막을 방법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감독관님, 목표 지점입니다.]
“이런.”
웬지 영화에나 나올법한, 각지면서도 날렵한 디자인의 수송 헬기. 그레인저가 수송기 밖으로 몸을 내밀어 공장의 입구를 내려다본다. 중소규모 도시의 외곽에 있는 공장. 여느 미주대륙의 도시가 그렇듯이 차가 없으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있었다. 이런곳에서 작전을 하면 목격자를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반면에 지원을 쉽게 받기 힘들다.
[진, 보입니까?]
앞선 헬기에 탄 에이다가 무선으로 연락해온다.
[네.]
그레인저가 대답한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텅 빈 경찰차가 있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경찰관들의 시체가 있었다. 그레인저의 신경망 통신망으로 줌인된 이미지가 전달된다. 창백해진 피부, 뜯겨나간 팔다리와 목덜미. 바닥으로 흘러나온 피는 마치 누가 닦아낸듯 희미한 자국밖에 남기고 있지 않았다.
[일단 주범은 피에 굶주린 뱀파이어 같군요.]
에이다의 의견. 그러나 그레인저가 다시 한번 건물을 관찰한다. 출입구는 누군가 폭파시킨듯 무너져 있었다. 대체 하은이 이런 장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그레인저가 고개를 돌려 하은을 쳐다본다. 그녀의 목에 열쇠와 자물쇠 모양의 장식이 달린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것을 옷 속으로 집어넣는 하은. 저런 성격에 목걸이를 하고 다닐리는 없을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공범이 더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그걸 조사할 방법이 없어요. 그것보다 뱀파이어들을 저지하는게 급해요. 노먼?]
전술망으로 AI의 차분한 음성이 들려온다.
[감독관님. 대략 40에서 50마리 정도의 뱀파이어가 감지됩니다. 창고 쪽에 30명 정도의 민간인이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문을 닫고 농성중인가?]
[아닙니다.]
교회 내부로 들어간 마이크로 드론들이 전송하는 저해상도 화면이 전술 디스플레이에 표시된다. 창고로 들어가는 복도를 한명의 남성이 막아서고 있었다. 수십의 뱀파이어와 맞서 싸우는 그 남자. 그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부상이 심각해보인다.
“수호천사라도 있는것 같네.”
[진. 서두르지 않으면.]
에이다가 재촉한다.
[노먼. 정문 말고 다른 출입구는 없나?]
[후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입할 수 있는 창문은 두개 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사람이 들어가기는 힘든 크기입니다. 들여보낼 수 있는 것은 무선장비 뿐입니다.]
산 넘어 산이군, 하고 생각한다. 지금 그들이 가진 전투형 드론은 뱀파이어 수십을 처리하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
[벽을 폭파 하면?]
[표준 전술 패키지에 포함된 폭발물로는 건물 붕괴가 예상됩니다.]
그레인저가 생각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가 별다른 생각을 하기도 전에, 공장의 지붕에 이변이 일어난다.
“...음.”
신음.
그가 드디어 무릎을 꿇는다. 그의 앞에는 열구 정도의 뱀파이어가 쓰러져 있었다. 파괴되었다기 보다는 그냥 무력화된 정도다. 아마 몇분내에 다시 일어나겠지. 이마에서 피가 철철 흘러, 왼쪽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린다. 그의 피맛을 본 뱀파이어들이 더욱 광분하고 있었다.
다시 일어나려 하지만, 일어날 수가 없다. 고통 때문이 아니다. 이미 고통은 아드레날린으로 인해 사라진지 오래. 내려다보니 한쪽 무릎이 아예 파열되어 있다. 피가 아니라 살점과 시뻘건 근육이 보일 정도.
“...”
그가 숨을 깊게 몰아쉰다.
어쩌면, 살아있는 자가 신의 흔적을 관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불가능한 일일지도.
슬렛지 해머를 지팡이 삼아 일어서서는 벽에 몸을 기댄다.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뱀파이어. 그가 죽을 힘을 다해 해머를 휘두른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명치를 맞고는 뒤로 날려간다. 하지만 파열음과 함께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귀를 울린다.
“...”
슬렛지 해머의 머리 부분이 부러졌다. 이제 그가 가진 무기라고는 망치 자루 하나 뿐이다. 그나마 끝은 매우 날카롭게 잘려나가 있었다. 이 정도가 기적의 최대치인가, 하고 조소하는 그. 또 다시 달려드는 괴물. 그가 아무렇게나 내지른 망치 자루가 놈의 가슴에 꽂히자 놈은 그대로 움직임을 정지해버린다. 뿌득, 하고 나무 자루 끝이 부러지며 뱀파이어가 바닥에 널부러진다. 심장에 말뚝을 꽂으면 마비된다는 전설 역시 진짜인 모양이다. 그가 또 다시 조소한다.
신의 존재는 커녕, 이런 일이 왜 일어나고있는지도 알지 못한채 죽는 것이 자신의 운명인가.
그가 무너진다. 다른 한쪽 다리마저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뱀파이어들이 천천히 다가와 그를 둘러싼다. 광분해있다하더라도, 이 지경까지 처해서야 쓰러진 그를 경계하는 것이다. 오히려 짐승이 되었기에 그런 행동에 더욱 철저할지도 몰랐다. 그가 자신이 한쪽 팔 밖에 쓰지 못하고 있음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다른 쪽 팔은 뱀파이어의 손톱에 난도질 당해 엄청난 출혈을 일으키고 있었고, 거기에 뼈까지 부분골절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이 정도 상태라면 타박상 같은 것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아예 반응을 하지 않는 자신의 팔을 보며 그가 허탈해한다.
미안합니다, 하고 그가 창고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마른 입술은 움직이지조차 않는다. 저 사람들은 이제 곧 학살 당할 것이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뱀파이어들을 바라보는 그. 아마 그 사람들 전에, 자신의 피가 모조리 빨려나가겠지. 고통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마비되어 있는 것은 다행이다. 아마도 목을 물거나 하는 대신에, 살점을 찢어 발기고, 거기서 흐르는 피를 마시는 추악-
일어나라.
환청.
이제는 환청까지 들리는 모양이다. 이 정도로 무리했으니 그렇게 되는 것도 당연하지. 어쩌면 이제 주마등이라고 부르는-
일어나라.
무엇인가에 홀린듯,
그가 일어선다.
망가진 무릎이 삐걱거리고, 근육이 비명지르며 고통을 내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어선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일터인데도.
그 지팡이를 네 손에 들라.
일어선 그를 보고 뱀파이어들이 비명같은 괴성을 지른다. 이번에야말로 한꺼번에 덤벼 그를 잡아먹으려 하는 것이다. 그가 아직까지 간신히 움직이는 한쪽 팔을 움직여 이제는 지팡이가 된 망치 자루를 앞으로 내민다. 자신이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생각도, 의심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그의 귓가에 점점 더 커지는 고장난 기계들의 진동음과, 그 고장으로 인해 기계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린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그가 부들거리는 팔로 간신히 나무 자루를 머리 위로 들어올린다. 빈사상태가 된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먼 곳에서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그의 손을 인도하는 따뜻함과 동시에 아무것도 돕지않는 차가움이 동시에 담긴 목소리.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함과 관찰은 꿈에도 꿀 수 없을 극소의 시간에 울려퍼지는 목소리가.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그 목소리와 함께, 그가 마지막 남은 힘으로 자루를 바닥에 내려친다.
-우지직.
동시에 콘크리트 바닥이 갈라진다. 약화된 건물 벽을 따라 금이 생기고, 벽이 갈라진다. 순식간에 통로의 천장이 양쪽으로 나뉘며 통로의 천장, 그리고 건물의 천장에 마치 크레바스 같은 널찍한 틈이 생겨난다. 그 위로,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이 보인다.
“...”
그가 다시 쓰러진다.
그 목소리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할만한 정신조차 없다. 그가 내려친 곳을 중심으로 천장까지 구멍이 뚫려 있는 모양새. 성경에 나오는, 홍해의 기적과 같은 모습. 그러나 거기에 삼켜진 뱀파이어는 없다. 잔해도 없기에 깔린 뱀파이어도 없다. 창고로 들어가는 길이 막힌 것도 아니다.
결국 그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런가.
혹시 이게 신의 기적, 아니, 신의 조롱인가? 하긴, 신이 선하다고 믿는 것도 인간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또 하나의 오차항일지도 모르지. 그가 간신히 그 틈을 올려다본다. 찢겨서 죽는다면 조롱의 흔적이라도 보면서 죽는 것이 자신에게 허락된 복수일 것이다.
“...?”
갑자기 눈 앞이 밝아진다. 새까만 밤하늘은 사라지고 밝은 불빛이 내려온다. 뱀파이어들 한가운데로 비춰지는 불빛. 지독한 절망과 고통의 현장에서, 신의 조롱인지 기적인지 모를 법한 건물의 틈 사이로 내려오는 광휘.
무엇인가 그 틈으로 날아들어온다. 사람의 형상을 한 무엇인가.
흐려져가는 그의 시야. 그의 시야가 암전되기 직전까지, 그의 의식이 꺼지기 전까지 그는 끝까지 그 형상을 눈에 담고 있었다. 그의 몸이 털썩, 하고 바닥에 쓰러진다.
그리고 그의 앞에, 내려오는 누군가. 그러나 아마도 그가 바랬을, 불타는 검을 가진 천사나 불경을 처벌하는 빛나는 존재, 하다 못해 신의 옆자리에서 노래부르는 광대 조차 아니다.
“펑!”
대신 착지와 함께 드래곤브레스 탄이 대구경 연발 산탄총에서 발사된다. 에이다가 조종하는 블랙 수트 클론들이 차례차례 착지하며 뱀파이어들에게 불과 납을 끼얹는다. 광포함으로 달려드는 뱀파이어들이 클론 하나를 덮쳐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이내 방검복으로 무장한 요원들이 확보된 공간에 착지한다. 그들이 든 무기에서 뿜어져나오는 푸른 플라즈마 화염이 뱀파이어들과, 그들이 찢어발기고 있는 클론들 까지 한꺼번에 불태운다. 화염을 피해 달려드는 뱀파이어들 앞에 순식간에 전동식 진압방패가 펼쳐진다. 새까만 경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방패의 하단에서 금속 말뚝이 튀어나오며 바닥에 박힌다. 그대로 고정된 방패에 달려드는 뱀파이어들이 튕겨나간다. 그 사이로 또다시 푸른 불꽃이 토해진다. 그레인저의 지휘에 따라 나란히 나열된 방패들이 창고로 들어가는 길을 완벽히 차단한다.
“키야약!”
그 중 하나가 방패를 뛰어넘어 돌진해오지만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요원들의 근접 병장기에 순식간에 썰려나가며 무력화 된다.
그레인저가 그 모습을 드론을 통해 관찰한다. 침투한 이상 제압은 쉬웠다.
[복도를 지키고 있었던 남성의 신변을 확보하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레인저가 그렇게 지시하며 하은에게 묻는다.
“이걸로 됐나요?”
“네. 제압이 끝난 다음에 직접 제가 찾겠습니다.”
하은이 대답한다. 그녀는 현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오히려 스스로의 생각에 몰두해 있는 표정. 그레인저가 꺼림칙함이 더해가는 것을 느끼며 지시를 계속한다.
“...”
“가만히 있어주십시오.”
신부가 간신히 눈을 굴려 주위 상황을 본다. 헬기의 로터 소리가 들린다. 응급차 같은 시설 안에 누워있는 자신. 자신을 치료하는 사람을 곁눈질한다. 그는 몇개나 되는 수혈팩을 매달고 있었다. 클론 특유의 무감정하고 효율적인 동작. 거기에 이런 상황에 저정도 수의 수혈팩을 가지고 다닐, 아니, 그런 수혈팩이 필요할 만큼의 부상자가 발생할만한 상황에 대비하는 조직이라면-
“오랜만입니다.”
그의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건다.
“그때 만났던 분이군요.”
외딴 섬에서 소환 의식을 저지 했을 때 만난 하은과 신부. 하은이 그랬듯, 신부도 즉시 하은의 목소리를 기억해낸다.
“그때 말씀하신대로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소환 의식을 막는다고 제물을 사살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잊기 힘들죠. 승진은 하셨습니까?”
“외부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고 해두죠.”
그가 희미하게 웃는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것이다.
“어쨌든, 제가 본 것은 기적이 아니었군요.”
“아직도 신의 정확한 모델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군요. 모델에서 노이즈를 제거하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이 쉽지 않을겁니다.”
‘정확한 모델’, ‘노이즈’, 같은 단어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하은. 서로에게 잊기 힘든 인상을 남긴 모양이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진다.
“건물 틈으로 들어온건 당신들이었군요.”
“그럼 천사라도 날아올줄 알았나요?”
“날개 달린 원숭이였어도 기쁘게 죽었을겁니다.”
우습게도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기적 같은 것을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그건 무슨 말입니까?”
하은이 온몸에 붕대가 감긴 그의 몸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당신 몸 상태는 세 번정도 죽었어도 모자랄만큼 심각해요. 사지의 근육 손상, 일부는 절단. 탈구, 부분 골절 같은건 세기도 힘드네요. 뇌진탕, 일부 장기 파열, 한쪽 눈은 실명 위기. 더 읊어드릴까요?”
“이 정도로 다치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많습니다.”
“많지는 않죠. 하지만 무엇보다 당신이 만든 천장의 균열이 없었으면 민간인들이 학살 당하는 건 막을 수 없었을 겁니다. 따로 기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그가 대답하지 않는다.
“물론 원래 약화되어 있던 건물이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AI의 분석에 따르면, 미처 정지시키지 않은 기계들이 과진동을 일으키며 건물의 구조를 심각하게 약화시켰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까.”
“네. 치료는 걱정 할 필요 없습니다. 이 아말감의 지휘관은… 매우 관대한 분이니까요. 그럼.”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난다. 하은이 자리를 뜬다. 그녀를 밖에서 기다리는 그레인저.
“그래서 실마리라는게 저 사람인가요?”
“아닙니다.”
하은이 냉정하게 말하며 그녀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두 사람이 의사에게 다가간다. 그는 MSF 아말감이 도착한 시점에서도 창고에서 계속 민간인들을 돌보고 있었고, 지금도 그랬다. 사실상 죽은거나 다름 없었던 신부를 살려낸 것도 그다. 혹시 유니언에 속한자가 아닐까 했지만 그렇지는 않은 듯 했다. 유니언의 의료절차에 익숙한게 아니라, 오히려 전투 현장에서의 의료절차에 익숙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거기, 의사분.”
그가 하은을 돌아본다. 마스크를 눈 바로 아래까지 올려 쓴 그의 온 몸에는 현장에서 뒤집어쓴 민간인들과 신부의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철컥.”
하은이 지급받은 권총을 꺼내 그의 이마에 들이댄다.
“마스크 벗으세요.”
그가 잠시 망설이지만, 이내 순순히 마스크를 벗는다.
“!”
그레인저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찬가지로 권총을 꺼내든다. 그 모습을 본 전투 요원들이 즉시 달려와 그를 둘러싼다.
“제 얼굴을 보고 그렇게 반응하시는 걸 보니 정체를 숨겨봐야 소용 없겠군요.”
그가 나긋나긋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저는 이시야마 아즈마입니다.”
그 말에 그레인저가 든 권총이 즉시 그의 이마를 노린다.
“...당신들이 쫓고 있는 사람의 이름과 같겠죠. 저는 그의 형이자, 동생입니다. 그의 클론이자, 그의 원본이기도 하죠.”
==
끝의 시작!
사실상 탈갤오는 이유
아니,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신에 대한 증언은 거짓이다. 맥락상 이 부분 오타같음
것보다 화면 전환 존나 잘 쓰네 부럽다
오 드디어 나왔다! 신부 올만이네
ㅇㅁㅇ!
나도 분할사고 쓰고싶다 - dc App
신부 오랜만이네 근데 불 붙이는 재주가 전부인가.. 마딜 근딜 다 올린 부작용 - dc App
이시야마가 그 이시야마가 아니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