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1층의 지도를 절반쯤 채웠을까, 지오라슈드는 막다른 길 끝에서 부자연스러운 감촉을 느꼈다.



"오, 이 땅은 왠지 부드러운데요?"



천천히 살펴보니 지오라슈드가 밟고 있는 땅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풀이 나지 않았고, 강하게 밟으면 발목께까지 들어갈 정도로 부드러웠다.



"이거… 누가 땅을 파고 제대로 안 덮은 것 같은데요? 안에 뭐가 있을지 궁금한데… ."


"왠지 일부러 처리를 안 해놓은 듯한 느낌이랍니다. 위험할지 모르니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오라슈드는 의견을 내는 나나리엘을 잠시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뭐가 있을지 궁금하군요. 제가 팔 테니 조금 떨어져 주세요."



지오라슈드는 속으로 샌님 같으니… 하고 생각하며 채비를 갖췄다. 뭔가 있으면 확실히 즐겁겠지만 없어도 손해 볼 건 없지 않은가. 칼은 땅을 파기엔 마땅찮았으므로 손을 써서 땅을 파기로 했다.


10분정도 지났을까, 지오라슈드의 손끝에 흙이 아닌 것의 감촉이 느껴졌다.



"아, 뭔가 걸렸다."


"뭐가 걸렸나요?"



주위를 경계하며 지오라슈드를 지켜보던 나나리엘이 물어왔다.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만져보자 뭔가 기다랗고… 날카로운…



"날붙이인가? 그럼 계속 파볼… 으악!"



갑자기 날붙이라고 생각한 것이 움직이며 지오라슈드의 손을 베었다!


다행히 뻣뻣한 가죽 장갑 덕분에 손가락이 잘리는 것은 피했지만, 손이 크게 베인 듯 장갑 밖으로 피가 새나오기 시작했다.


허둥거리며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에서 나오려고 한 지오라슈드였지만, 어느샌가 뒤편에서 거대하고 날카로운 턱을 가진 벌레들이 기어나와 턱을 딱, 딱, 하고 맞부딪히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제길!"


"조심하세요!"



벌레들은 지오라슈드에게 칼을 뽑을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그가 올라오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빠르게 다가와 턱을 벌려 몸통을 으득, 하는 소리와 함께 문 다음 조여왔다.


튼튼한 갑옷 덕분에 허리가 두 동강 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고통인지 지오라슈드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이럴 줄 알았지… 얼어버려라!"



그 꼴을 본 나나리엘은 지오라슈드를 구속하고 있는 벌레에게 손짓했다. 언뜻 보기에는 무의미한 손놀림 같았으나, 이윽고 벌레가 딛고 있는 바닥에서부터 냉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벌레를 얼리기 시작했다.



-키에액!


뿜어져 나오는 냉기에 뒤덮인 벌레는 고통스러워하다 지오라슈드를 놓치고 말았다!



"후… 감사합니다 나나리엘! 그럼 제 차례군요!"



드디어 해방된 지오라슈드는 바로 칼을 뽑아 전투태세를 갖췄다. 목표는 자신을 공격한 벌레.



'놈, 크기도 내 절반 정도 되겠다, 이 거리에선 절대 빗나갈 리 없지!'


"확실히 끝내주마!"



그가 적을 노려보며 자신이 들고 있는 도에 마력을 쏟아붓자 도에서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이름은 포스 스킬.


막대한 심력을 소모하며 하루 단 세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비기. 에인헤야르 중에서도 특별히 강한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 기술인 불을 뿜어내는 마검 [라그나로크]가 그의 손에서 발현되고 있었다.



"죽어라 벌레녀…석?"



불길을 머금은 검을 내밀며 힘차게 발을 내딛은 그였지만, 그 순간 땅이 푹 하고 꺼지며 지오라슈드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검이 허공을 갈랐음은 말 할 필요도 없으리라.



-키엑? 키에엑!



그 광경을 본 벌레들은 더 덤벼들면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땅속으로 사라져갔다.






벌레에게서 벗어나 얼마나 탐험을 계속했을까.



지오라슈드의 허리만큼 큰 초록 쥐, 다리 하나하나가 팔뚝만 한 거미, 눈알이 머리통만큼 거대한 개구리 등 여러 적을 베어내며 나아가던 그들은 적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빈 공터를 발견했다.


공터의 북서쪽에는 바닥이 보이는 맑고 투명한 물이 흐르고, 남쪽에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미궁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주었으며, 중앙에는 편안하게 앉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의 바위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인위적이 아닌,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처럼 보여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띠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쉼터 같네요. 물도 흐르고 있고, 목이라도 축이고 갈까요?"


"물의 투명한 걸 보니 바로 마셔도 될 것 같군요. 네, 그럽시다."



벌레에게 입은 피해가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지오라슈드는 나나리엘의 제안에 짐을 풀며 답했다.


지오라슈드는 중앙의 바위에 앉아 메디카를 사용하여 몸을 회복했고 나나리엘은 물가에서 목을 축이며 숨을 돌렸다.



"지도는 거의 다 채워졌군요. 이제 중앙 부분만 채우면 될 것 같습니다."



그의 말대로 백지였던 지도는 거의 다 완성된 상태였다. 남은 부분은 1할정도일까. 남쪽에서 들어와 동쪽으로 꺾어 남궁 스미스를 만나고, 북쪽, 서쪽, 남쪽으로 빙 돌아 남은 부분은 동쪽 부분과 가까운 중앙뿐.


저 부분을 채워 넣으면 모험가 길드의 첫 시련이 종료되는 것이다.



"아까 벌레와 싸울 때는 죄송했습니다."



그렇게 쉬는 와중, 응급 처치를 끝낸 지오라슈드가 입을 열어 나나리엘에게 사과했다.



"알면 됐어요. 앞으로는 먼저 나서다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면 된답니다. 전위가 행동할 수 없게 되면 다음은 제 차례니까요."


'벌레와의 싸움에서는 꼴사나웠지만 제가 싫어하는… 무심코 보자마자 비명을 질러버린 거미 같은 녀석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면 실력 하나는 확실하네요.'



지오라슈드는 나나리엘이 싫어하는 거미, 쥐 종류의 적이 나타났을 때 홀로 순식간에 정리했었다. 발할라의 에인헤야르라는 칭호는 노름으로 딴 것이 아니라는 듯 칼을 한번 휘둘렀지만 도의 궤도에 잔상이 남아 시간차로 적을 공격하기도 하고, 움직임이 멈춘게 아닌가 싶었지만, 순식간에 눈 앞의 적을 도륙 내기도 했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러면 충분히 쉬었으니 남은 곳으로 가볼까요!"



나나리엘과 지오라슈드는 짐을 챙기고는 마지막 지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