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라슈드와 나나리엘이 우거진 해바라기들의 틈 사이를 헤쳐나가자 또다시 드넓은 공터가 드러났다.
이번 공터는 앞선 두 공터와는 다르게 맑은 물도, 앉아서 쉴 곳도 없었지만 이름 모를 들꽃들이 만발해 공터를 달콤한 향기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기가 마지막인가요… 짧은듯하면서도 길었네요."
"그렇네요. 아직 초입이라 그런지 적도 예상보다 적었답니다."
지오라슈드는 감격에 젖은 눈으로 드디어 완성된 지도를 살펴봤다. 입구의 무덤, 첫 보물상자, 그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는 공터들. 우거진 숲 너머로 길이 보이긴 했지만,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 없는 짐승 길이었을 뿐.
드디어 세계수의 미궁 1층을 답파한 것이다.
나나리엘도 첫 시련을 완료함으로써 이제야 미궁 탐사의 스타트라인에 서는 것이었지만, 수많은 모험가가 그것을 실패하고 어둠에 묻히는 것을 생각하며 긴장의 끈을 풀었다.
"1층은 갈림길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일방통행이었네요."
지오라슈드의 말대로 1층의 갈림길이라고는 남궁 스미스와 만난 갈림길, 보물 상자를 찾은 장소 그리고 벌레들의 습격을 받은 장소뿐이었다.
'일방통행이라 탐색의 난이도가 낮으면서도 적의 습격은 수 번이나 있었고, 보물 상자로 모험가의 기쁨을 알려주기까지. 벌레 서식지까지 계산에 들어있었다면… 생각보다 잘 짜여진 시련이네요.'
"나나리엘씨, 뒤쪽으로."
나나리엘이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지오라슈드가 살기를 느껴 빠르게 나나리엘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잠시 후, 지오라슈드가 노려보고 있는 방향에서 날카로운 침을 가진 거대한 벌들이 튀어나왔다.
"이건… 꽃향기를 맡고 온 건가…?"
"아뇨, 애초에 여기가 녀석들의 서식지인 것 같네요."
그가 나나리엘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위로 향하니 그 끝에는 나무에 매달려있는 거대한 벌집이 있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적들을 무찌르기 위해 날아온 것일까. 지오라슈드는 생각하며 자세를 잡았다.
'수는 둘. 크기는 내 손바닥 정도. 크기가 작아서 두 마리 모두 맞는다는 보장은 없고… 일단 한 놈씩 처리해볼까….'
지오라슈드는 생각을 마치자마자 도를 고쳐잡고 전광석화처럼 벌에게 달려들어 날개를 베어냈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얇디얇은 날개가 떨어진 벌은 그대로 떨어져 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숙여요!"
이어진 나나리엘의 말에 지오라슈드가 몸을 숙임과 동시에 나나리엘의 손에서부터 전격이 터져 나와 남은 한 마리의 벌을 감전시켰다.
그러나 벌은 전격에 큰 충격을 받지 않았는지 오히려 힘차게 날갯짓하며 지오라슈드를 향해 돌진해왔다.
"조심해요! [독침]이에요!"
나나리엘의 외침에 지오라슈드는 독침을 방어구로 받아낼 생각을 버리고 몸을 던져 옆으로 피해냈다. 세계수의 미궁에 나타나는 짐승들이 가진 독은 수 초 만에 모험가를 기절시킬 정도로 강한 것을 생각해 보면 적절한 조치였다.
낙법을 취하며 한 바퀴 구르고 일어난 지오라슈드는 재빠르게 자세를 고치고 벌과 대치했다.
-아우우!
그때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벌의 뒤쪽에서 늑대가 초록빛 털을 휘날리며 뛰어 들어왔다.
늑대는 둘이 반응하기도 전에 날고 있던 벌을 기습해 할퀴어 산산조각내고는 이윽고 모험가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늑대가 황소만하다고?!"
"이름은 [숲의 사냥꾼]! 빠르게 움직여 목을 물어뜯는 녀석이에요! 약점은 화염!"
애널라이즈로 적의 정체를 빠르게 파악한 나나리엘은 시간을 벌어달라는 말과 함께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술식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에 반응해 늑대는 위협을 느낀 듯 나나리엘을 덮치기 위해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겐 안 되지!"
그러나 늑대는 진로를 예상하고 지오라슈드가 휘두른 검에 막혀 멈칫 하더니 방향을 틀어 자신을 공격한 지오라슈드를 향해 뛰어들어 그를 스치며 할퀴어나갔다.
그리고 몸을 회전해 다시 그에게 뛰어들려는 순간 하늘에서 재양이 쏟아져 내렸다.
"자 받으세요. 일월의 성술!"
이윽고 술식을 모두 외운 나나리엘이 허공에서 지팡이를 내리자 거대한 화염이 지오라슈드를 제외한 모든 것을 불태웠다.
일월의 성술.
가장 영향이 큰 천체인 태양과 달의 힘을 빌어 아침에는 적을 불태우는 힘, 밤에는 적을 얼려버리는 힘을 발휘하는 조디악의 비기.
재능있는 조디악 중에서도 소수만 사용할 수 있는 포스스킬이 일개 대학원생인 나나리엘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해치웠나!"
성술의 영향으로 자욱해진 연기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지오라슈드가 소리쳤다. 이 정도 공격을 버틸 수 있을 리 없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도를 내렸다.
-컹!
그리고 그 순간 자욱한 안개 속에서 늑대가 세차게 뛰쳐나왔다.
늑대는 지오라슈드를 지나쳐 나나리엘에게 빠르게 뛰어오며 거대한 아가리를 벌려 그녀의 목을 물어뜯으려 하고 있었다.
'아. 이렇게 죽는 건가.'
"조심하게나!"
그리고 순간, 나나리엘의 눈앞에 방패를 든 병사, 남궁 스미스가 뛰어 들어오며 방패로 늑대를 쳐내 균형을 무너뜨렸다!
"패링의 맛이 어떠냐!"
"숨통을 끊어주마! 라그나로크!"
그 순간만을 기다린 듯 지오라슈드는 늑대에게 뛰어들며 핏빛 기운이 서린 검에 다시금 화염의 마력을 불어넣고는 크게 휘둘러 늑대의 목을 분리시켰다!
그리고 찰나의 시간 후 늑대의 거체는 목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쿵 소리와 함께 함께 땅으로 무너져내렸다.
"끝난… 건가요?"
"네. 끝났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얼어붙어 있던 나나리엘이 중얼거리자 남궁 스미스가 작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쪽에는 지름길이 있거든요. 늑대의 울음소리를 듣고 급하게 달려왔습니다."
스미스는 공터의 한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대로 나나리엘이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통로가 나 있었다.
"그보다 이상하군요. 늑대는 원래 이곳보다 더 밑에서 나오는 녀석인데 1층에서 나오다니…."
스미스의 말로는 늑대는 원래 2계층이라고 부르는 깊숙한 곳에서 나타나는 녀석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막 미궁 탐사를 시작한 길드에는 격퇴가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해 시간을 벌기 위해 달려왔다며, 그들이 늑대를 격퇴한 것에 놀랐다고 말하였다.
"저희는 그럼 지도를 그린 것을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지오라슈드와 나나리엘은 지름길을 통해 빠르게 마을로 돌아왔다.
"음, 훌륭한 지도다."
모험가 길드장 피데스는 지오라슈드와 나나리엘이 그린 지도를 천천히 살펴보고 말했다.
시원한 물이 흐르는 물, 넥타르가 담겨있던 보물상자, 그리고 많은 모험가가 찾지 못하는 입구와 깊숙한 곳이 연결된 지름길까지.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지도였다.
"그럼 통과입니까?"
"좋다. 합격점을 넘어 만점을 달성한 길드는 3년 전 알파 길드 이후로 처음이군. 급조된 2인이라고 얕봤던 것을 사과하지. 길드 이름은 무엇으로 할 건가?"
"아틀라스로 정했답니다.
나나리엘과 지오라슈드는 마을 돌아오며 상의한 이름을 말했다.
신화시대를 넘어 태곳적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하늘을 떠받치는 거인. 세계를 양 어깨에 지고 최후에는 산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거인의 이름이었다.
길드장은 좋은 이름이라고 말하고는 지도를 돌려주며 선언했다.
"오늘 신속의 달 7일로써 아틀라스 길드를 정식 길드로 승격시킨다!"
"오, 하루 만에 지도를 완성하실 줄은 몰랐는데요!"
"저에게는 그 정도 시련따위, 반나절이면 충분하답니다."
"마지막에 놀라서 쓰러진 건 누구였더라~"
"조용히 하세요! 벌레한테 죽을 뻔했으면서!"
늦은 밤 미치광이의 술집. 시원한 술과 맛 좋은 음식과 함께 수많은 모험가가 모여 자신들의 무용담을 펼치며 떠들고 있었다.
술집 주인은 첫 시련은 보통은 일주일은 걸리며 5인조 길드도 포기하는 길드가 많다며 놀라워하고 지오라슈드는 한 손에 맥주잔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키며 나나리엘을 놀리고 있었다.
"그보다 1층에서 늑대라니… 처음 있는 일이네요."
"그런가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런 건 머리 쓰는 사람들이 생각할 일이라고. 우리처럼 몸 쓰는 사람들은 미궁을 탐험하면서 본 것을 알리기만 하면 그만이야!"
"어머, 저도 일단은 머리 쓰는 사람이랍니다?"
술집주인은 1층에 늑대가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기고, 지오라슈드는 나나리엘과 상당히 친해졌는지 어울리지도 않는 존댓말을 집어치우고 나나리엘과 웃고 떠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마셨을까. 갑자기 지오라슈드가 눈빛을 바꾸며 말했다.
"그런데 나나리엘, 미궁에 한번 가보니까 어때?"
"무슨 의미인가요?"
나나리엘은 지오라슈드가 진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미궁을 너무 얕본 것 같아."
그렇게 운을 띄운 지오라슈드가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둘이서 도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둘 다 생명을 위협받았다고. 아무래도 적의 공격을 막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역할과 전투 중에 다친 상처를 회복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감이에요. 미궁이 무섭다는 것은 오늘 뼈저리게 느꼈답니다."
나나리엘은 늑대에게 목을 물릴뻔한 일을 떠올리며 몸을 떨며 말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술집 주인이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사람 찾는건 저한테 맡겨주시지요! 전도유망한 방패 역과 치료사가 들어오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소개료는 조금 받겠지만요."
"쩨쩨하게 그러기야! 무료로 해달라고!"
"에이, 저도 먹고살아야죠!"
다만, 확실한 실력을 갖춘 녀석으로 소개해준다며 술집주인은 크게 웃었다.
그렇게 오늘도 밤이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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