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동쪽 나라에서 건너 온 편지입니다. 밥을 먹고 부른 배를 끄기 위해 해변가를 걷다가 우연히 와인병을 발견했습니다. 그 안에는 종이가 들어있었는데, 되게 어릴 적 보던 만화에서나 볼 법한 그런 방식이라 저도 모르게 실소해버렸습니다. 

그 안에 종이는 왜 넣은 걸까? 조난당한 사람들마냥 자기들을 구해달라는 글을 적은 걸까? 아니면 자국을 집어 삼키려는 대공들의 으시으시한 음모를 고발하고 싶은 걸까? 뭐,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법이겠죠. 저는 호기심에 병을 집어들어 종이를 펼쳐보기로 했습니다.

병을 따려고 보니 특이하게도 코르크마개가 아닌 흙과 풀들로 막혀있었습니다. 또, 손톱같은 것도 박혀있었으며 손톱에는 다홍빛 붉은 자국이 남아있더군요. 보자마자 누군가가 다급히 이걸 보냈을 거라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습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생각해보자면, 뜯겨나간듯 손톱에 달려있는 살점 때문이었겠네요. 이미 다 썩어 검게 문들어졌지만 말이에요.

어떻게 열어볼까 고민하다가 그냥 근처에 돌 덩어리에다 내던졌습니다. 쨍, 소리와 함께 종이는 밖으로 빠져나왔고, 어서좀 자기를 읽어달라는 듯, 제 발 다치지 말라는 듯. 녀석은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타고 제 앞까지 날아와 차분히 내려앉았습니다.

종이를 집기 위해 허리를 굽혀 손을 뻗었습니다. 종이에 손이 닿으려는 그 순간에 저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절대로 그 종이를 건드리지 말라는 직감이 저를 급히 멈춰세운 것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어젯밤 읽고 잤던 괴물이 나오는 동화 탓일까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괴물도, 괴물이 나오던 동화의 한 쪽도 아닙니다. 와인병 안에 담겨져 파도를 타고 이곳까지 밀려온 짠내 머금은 종이 한 장. 결코 제가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잠시 멈췄던 몸을 다시 움직여 종이를 들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제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종이에 적힌 내용을 차근차근 세세하게 읽어내려갔습니다. 읽는 건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마치 오랜 시간이 지나간 것마냥 날이 어두워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닷괭이들이 지 새끼 찾아 울어재끼며 날아다니고, 검은 구름은 기묘하게도 흰색으로 밝게 빛나는 번개를 내리쳤습니다.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폭풍소리와 함께 저는 제가 왜 그곳에 서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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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래, 나는 황제가 수도의 신민들을 몰살하려고 한다는 내용이 적힌 서신을 원로들에게 전하기 위해 가던 중이었어. 그런데 내가 왜 여기 서있는 거지? 어서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안 돼. 그들이 쫓아오고 있어.

자비우스는 뛰고 또 뛰었다. 비때문에 땅이 질척해진 탓에 가다가 신발이 진흙탕에 빠져버리기도 하고, 미끄러져 바닥에 얼굴을 박기도 하며 달려나갔다. 이미 며칠이고 이 서신을 전하기 위해 달려왔다. 서신은 이미 젖을대로 젖어 잉크는 다 번졌다. 하지만, 서신에 찍혀있는 인장만큼은 그가 제국수도회 소속이라는 것을 증명하였기에 그가 가져가기만 한다면 원로들이 그의 말을 믿어줄 터였다. 그렇기에 그는 이곳 저곳 찢어져 넝마가 된 옷을 입고, 기고 구르다보니 생긴 상처 투성이 몸을 이끌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제국군 소속 검은 비밀회 녀석들에겐 잡힐 수 없었다.

그가 얼마나 더 달렸을까, 발은 부르터 피를 쏟아내고, 심장은 터질것마냥 쿵쿵 뛰고 있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가득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수십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기에. 자신만이 그들을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먹구름은 바닷바람을 타며 그에게로 몰려왔다. 이 진흙탕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해치고 달려오는 건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그닥 거리는 말발굽 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지면을 타고 그에게까지 울렸다. 그 소리에 맞춰 땅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녀석들은 비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멀리 있는 건지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그에게 소리쳐왔다. "자비우스! 네놈도 그리 멀리 가지 못 하는구나! 그만 포기하고 새 시대를 맞이해라!"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아마도 황제가 하사한 은총일 것이었다. 신이 되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이 하사한 자비롭지만 추한 선물. 자비우스는 곧 자기가 잡힌다는 걸 알고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달렸다. 이 서신을 전할 방법만을 생각하며.

그가 검은 비밀회에게 붙잡혀 해변가에 끌려갔다. 녀석들은 그곳에서 자비우스를 죽이고 사체에 돌을 묶고 바다 속으로 떠밀어 숨길 생각이었다. 자비우스의 처형은 수도사인 그를 배려해서 수도회 법에 따라 진행됐다. 평생을 금욕에 시달려온 그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 와인 한 병. 검은 비밀회 집행관은 자비우스의 다리를 돌과 엮어두곤 마차에서 와인을 한 병 꺼내 자비우스에게 건네줬다. "오, 정말 기쁘지 아니할 수가 없겠군.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게 될 술이 '제국의 황금종'이라니." 그는 와인병을 입에 문 채로 천천히 마셨다. 옆사람들의 눈짓에 집행관은 와인병을 물고있는 자비우스의 목을 찔렀고, 칼을 빼내기 위해 그의 가슴을 발로 차내어 밀었습니다. 자비우스는 그대로 물살에 휩쓸렸습니다. 그는 팔로 허우적거리며 살아남기위해 발버둥 치며 바닥을 붙잡아보지만, 잔 모래만이 그의 손바닥 안에 쥐어져 남고 그는 자꾸만 끌려갑니다. 피가 자꾸만 빠져나와 곧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직감합니다. 그는 서신을 떠올립니다. 물고있던 와인병을 뱉어내곤 그곳에 서신을 구겨 집어넣었습니다. 손에 쥔 모래와 잔풀을 우겨넣어 입구를 막아버리곤, 밀봉하기 위해 세게 누르다보니 손톱이 부러져나가며 주변 살점도 조금씩 뜯겨나갔습니다. 자비우스는 고통에 소리지르며 물에 가라앉았고, 그를 끌고가던 파도는 가라앉은 자비우스를 대신해 떠다니는 와인병을 가져갑니다. 자비우스는 기도합니다. 부디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누군가 자신의 비통함을 풀어주길. 그리곤 일곱 번째 자비우스는 눈을 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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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동쪽 나라에서 건너 온 편지입니다. 밥을 먹고 부른 배를 끄기 위해 해변가를 걷다가 우연히 와인병을 발견했습니다. 그 안에는 종이가 들어있었는데, 되게 어릴 적 보던 만화에서나 볼 법한 그런 방식이라 저도 모르게 실소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