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당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느끼는 범위가 상당히 좁았기 때문에(상당히 박애적인 사람도 자기네 동네 바깥 사람은 다 이방인 취급했고 일반적인 도시민들은 지네 가족 빼면 다 남이었다) 수틀리면 칼뽑고 머리통을 까버리는 것이 건실한 농노의 소양이었고 결투 신청은 로마시대 검투시합보다 자주 일어났다
피부색 다른 사람들은 인간취급도 안했으며 쓰는 말이 다른 사람들은 무턱대고 너 이교도를 시전하는 수준에 사돈지간에 칼부림 벌여놓고 저녁식사하며 무용담을 늘어놓는 혼돈악의 극치가 중세의 못배운 놈들이다
오죽하면 칼질로 사람들 대가리 깨는 법 알려주는 무술사범조차도 "무술 배우는 것보다 남들에게 원한 사지 않는 것이 호신에 더 도움 될 것이다" 라는 띵언을 남겼음
물론 마녀사냥은 많이 안일어났는데(그건 근세 초기에 많이 일어남) 그거 말고도 야만과 폭력이 성행하던 시기는 맞음
걔네들 기준 선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충실하고 독실한 신자가 되는 것 뿐이지 시비붙으면 칼뽑는게 기본이었음. 중세때야 인구밀도 낮으니 적당히 돌아갔지만 르네상스 때는 칼집만 부닥쳐도 쌈질해야 했으니 검술도장이 엄청나게 늘어남
오히려 검술사범이나 용병대장 같은 험악할 것 같은 직종의 사람들이 더 인격적이고 절제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