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곧내ㅇㅇ 전에도 비슷한 글 싼 적 있긴 한데, 이번엔 좀 더 실무적인 조언 위주. 오랜만에 시간 여유가 좀 나서 글 싸봄. 룰은 겁스 던전판타지(+추가로 무예와 마법, 초상능력 룰북에 나온 옵션들 사용)였고, 거의 2년 가깝게 플레이 잘 해서 엔딩 봤었음. 차기 캠페인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 이후 마스터가 소식이 읎다...
당시 pc들 구성이 이러했다.
1)성전사. 악에 대해선 단호하되 대체로 온화하고 관대한 '정통파 D&D 팰러딘' 스러운 캐릭터. D&D로 치자면 가치관 LG.
2)검객. 여자 밝히고 게으르고 건들건들하지만 나름의 정의관이 있는 캐릭터. D&D로 치자면 가치관 CG.
3)기공사. 기계 만지는 것에 타고난 흥미와 재능을 타고났지만 효율성이나 실용성에는 별로 관심 없는 공돌이스런 캐릭터. D&D로 치자면 가치관 TN.
4)마법사. 불로불사를 추구하는, 어딘가 미묘하게 엇나갔지만 나름의 인간성이 남아 있는 캐릭터. D&D로 치자면 가치관 CN.
5)베테랑(던판 로드아웃이었던가에 실린 추가 템플릿이었던 걸로 기억. 다양한 분야에 두루 경험이 많고 세상 물정을 잘 아는 탐험가 컨셉). 이미 많은 업적을 세우고 제법 명성을 날리고 있지만 보다 큰 권력을 원하는, 교활하고 잔인한 모사 타입 캐릭터. D&D로 치자면 가치관 NE에서 LE로 전환.
5)번이 내 캐릭터였음.
캠페인의 기본 흐름은 '악마나 언데드들조차도 넘어서는, 사라진 고대 문명이 남긴 미증유의 위험에 맞서서(그 유산을 적당히 이용하기도 하면서) 세상을 구한다'는 전통적 영웅물스러운 내용이었음. 보통 저런 종류의 캠페인에서 악한 캐릭터는 트롤이 되기 쉬운데, 나는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
1. 플레이 시작하기 전에 가능한 자주 시간을 내서 마스터에게 세계관 설정에 대해 가능한 많이 물어보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만든 캐릭터들과 내 캐릭터가 어떻게 엮일지에 대해 최대한 많이 대화를 나눔
2. 상대적으로 듣보잡인 검객이나 기공사, 마법사와는 달리 이미 배경 세계에서 제법 명성이 쌓이고 기반이 잡힌 영웅이라는 걸 반영해서 사회적 명성과 재산에 주로 cp를 투입하고는(파워 레벨이 제법 높은 캠페인이었지만 그 결과 개인 전투력은 성전사나 검객보다 후달렸다. 하지만 마스터가 npc들이 내 캐릭터를 알아보고는 경의를 표한다는 식의 묘사를 자주 해주고 전투 외적으로 장면 분배를 꾸준히 해줘서 만족했음) 그러한 백그라운드를 통해 다른 pc들을 정치적, 사회적으로 서포트해주는 포지션을 잡음
3. 내 캐릭터도 속은 시커멓되 최소한 겉으로는 젠틀한 이미지를 유지함. 악행을 할 기회가 있어도 다른 pc들 앞에선 가능한 자제하고 npc와의 1대 1 상황에서만 저지른다거나, 다른 pc들도 납득할 만한 명분을 내건다는 식으로
4. 플레이 외적으로 '내 캐릭터는 악당이되 나름의 비전과 신념을 갖고 있으며, 말초적인 눈 앞의 이익만을 위해서만 행동하지 않고, 다른 pc들을 나름 진심으로 아낀다'는 걸 분명히하고, 플레이 내적으로도 속 생각을 묘사하거나 캐릭터의 시점으로 일기를 써서 팀 게시판에 올리며 남들도 내 캐릭터를 이해하기 쉽게끔 꾸준히 어필함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음. 다른 팀원들도 내 캐릭터를 좋아해줬고.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나 스스로도 내 캐릭터를 통해 다른 pc들의 관심사나 개인사에 신경을 쓰며 대체로 평등하게 상호작용하고자 하는 등의 노력을 한 덕도 있지만, 다른 팀원들도 대체로 자기 캐릭터만 어필하려고 한다거나 하지 않고 다른 pc가 활약할 만한 장면에선 적당히 양보하거나 다들 납득할 수 있는 전개를 위해 플레이 도중에도 논의를 꾸준히 하는 걸 게을리하지 않는 등 성숙한 사람들이었다는 덕도 컸다(안 그런 사람도 있었지만 그 사람조차도 발전이 없지는 않았고). 좋은 팀을 만났었음. 그래서 캐악당인 내 캐릭터가 성전사까지 끼어 있는 대체로 정의로운 성향의 파티 리더였음에도 불구하고 큰 잡음 없이 길게 잘 플레이했다. 도중에 pc들 간의 마찰도 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pc간의 마찰이었을 뿐 플레이어들끼리는 이걸 어떻게 풀지 객관적인 관점을 갖고 계속 이야기를 했었고. 악한 캐릭터는 이전에도 몇 번 해봤는데 그 때는 운도 좀 따라줘서... 그 캠페인을 할 때 가장 흥했었다. 한 번은 플레이 도중에 내가 개인사정으로 팀에서 빠질 위기에 처했는데, 마스터가 "다른 분이 빠지면 구멍이 크긴 하지만 어떻게든 메꿀 수 있음. 하지만 지금 한참 정치권과 엮이고 있는데 그 쪽 떡밥을 대부분 먹은 님 캐릭터가 빠지면 플레이 자체가 멈춰 버려요. 이 플레이 자체가 님 캐릭터가 동료를 모집하는 걸로 시작하기도 했고"이라고 말하더라. 결국 플레이 속행하게 됐는데 RPG 인생 18년 동안 제일 뿌듯한 순간 중 하나였어.
요약하자면... 악당 캐릭터를 스무스하게 잘 굴리기 위해 개인적으로 신경써야 할 것은(팀원빨도 어느 정도 따라줘야 하지만 이건 개인 레벨에서 어쩔 수 없는 문제고)
1)플레이 외적으로, 남들 캐릭터에게도 관심을 갖고 서로 어떤 식으로 얽힐지 아이디어를 짜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교환할 것
2)단발적인 악행을 저지르는 것 자체에 집착하지 말 것(특히 다른 pc들을 통수치지 마라. 이거 중요).
3)나름의 신념과 목적의식을 갖고 있으며 그 실행수단으로서의 악행에 주저함이 없는(즉, 목표 달성에 딱히 유리하지 않다면 굳이 악행을 골라서 하지는 않는) 캐릭터나 아니면 파티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잔인하거나 야비한 행동을 뒤에서 슬쩍 저지르는 타입의 캐릭터가 다른 pc들과 잘 섞인다
4)팀원들이 '다른 악행은 괜찮은데 강간은 NG' '다른 악행은 괜찮은데 식인은 NG' 같은 이야기를 하면 그냥 하지 말 것. 니 캐릭터가 악당인 만큼, 너 자신은 더욱 남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객관적인 안목을 갖고 있어야 한다.
5)악행을 저질렀을 때 은폐를 어떻게 할지, 은폐할 수 없을 경우 정당화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다른 PC나 마스터에게 떠넘길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야 한다. 도덕적으로는 문제시될 수 있어도 법적으로는 괜찮은 범주 내에서 악행을 한다거나, 아니면 좀 속이고 이용하고 괴롭혀도 적당히 실드가 될 만한, 악독한 범죄자 같은 NPC 상대로 악행을 한다거나, 그냥 남들이 안 보는 데서 한다거나.
대충 이 정도인 듯.
좋은 글이긴한데 가독성 에퉷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