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뻘글은 호황 / 불황 이야기. 경제 이야기는 아니야. 그보다는 돈법사의 최대급 삽질 중 하나에 대한 글이 되겠다. 뭐 다 지나간 이야기니까 재미로 읽으라고.


2000년대 초 - D20 호황기

세기말에 TSR을 인수한 돈법사는 이 참에 새로운 룰을 내놓기로 함. 룰 이름은 AD&D 2판을 계승한단 뜻으로 D&D 3판으로 정했음. 그러고는 돈법사답지 않게 기본 룰 시스템을 무료로 풀기로 했고, 이게 TRPG 계에서 공개판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SRD(System Reference Document)의 시초 되겠다. 근데 이러면 돈이 안 벌리잖아? 그래서 이놈들이 이걸로 돈을 벌려고 내놓은 아이디어가 뭐였나 하면 "돈법사 공인 인증"이라고 할 수 있을 D20 트레이드마크 라이센스를 내놓은 거임. 쉽게 말해서 D&D 이름을 팔아먹고 싶다면 이 라이센스를 써라 이거였음. 싫으면 OGL 쓰고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룰" 따위로 D20을 D20으로 말하지 않던가. 하여간 이 시기에는 이게 잘 먹혀서 Wod D20, CoC D20 등 별의 별 물건들이 나옴. 일부는 사실 돈법사가 직접 냈지만 뭐 모르는 척 하자. 하여간 그래서 이 시기 TRPG 업계는 대 D20 시대.... 혹은 D20 호황(D20 Boom)을 맞이함.


2003 ~ 2008 - D20 불황기

그리고 2003년이 되었고, 돈법사는 D&D 3.5판을 내놓았음. 3판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어쩌고를 떠나 이 물건과 그 외의 돈법사 및 서드파티 업체들의 행보 덕분에 TRPG '업계'는 반쯤 망할 뻔함. 그러면 어쩌다 이렇게 됐는가 살펴보자.


3.5판과 D20 트레이드마크

3.5판은 3판과 조금 다른데, 돈법사는 "우리 신판 낼 거임" 그런 말을 거의 안 하고 그냥 3.5판을 냈음. 그런데 문제는 D20 트레이드마크 라이센스를 쓰려면 '이 부분은 돈법사 책을 보세요'라고 해야만 하는(Cannot contain rules or instructions of any kind that describe a process for creating a character or describe a process for applying the effects of Experience to a character) 그런 규정이 있었다는 거임. 그리고 돈법사는 3.5판에서 저 '책을 봐야 하는 부분' 중 일부를 갈아엎음. 설상가상으로 돈법사 놈들은 저 라이센스 받아 쓰는 책에다 '돈법사 책이 필요하다'라고 직접 적을 것도 요구했는데, 그 책은 바로 'D&D 3판 PHB'였음...그러니까 D20 트레이드마크 따서 물건 내던 놈들 중 적잖은 수가 3.5판과 안 맞는 물건이라고 쓰고 타는 쓰레기를 낸 상황이 됐음. 근데 돈법사가 이래놓고 이 문제 처리를 그다지 잘 하지도 못 함. 결국 서드 파티 업체들은 D20 트레이드마크 라이센스 대신에 좀 더 자유로운 OGL로 갈아타거나(Mutants and Masterminds 1판 -> 2판 등) 혹은 타는 쓰레기가 찍혀나온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리타이어하고 뭐 그랬음.


대 D20 시대의 질적 저하

D20이 등장한 이후, TRPG 업계는 대 D20 시대를 맞이함. 근데 이거를 잘 뜯어보면 기본 룰은 적당히 돈법사가 만들어 놓은 거 쓰고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구조잖아? 그러니까 그만큼 출판물의 질적 하락이 이루어지면서 팬들이 꽤 실망하게 됐음. 요새 갓세계물이 범람하는 그런 꼬라지를 떠올리면 될 거임. 그런데 여기에 돈법사가 위에 나온 대로 폭탄까지 터뜨리고 감 ㅎㅎ. 그러니까 FLGS / LGS(Friendly Local Gaming Store), 그러니까 책 같은 걸 사서 고객들에게 팔아주던 소매점들까지 박살나버렸음. 얘들이 출판사가 내는 물건들을 사 줬는데 D&D 판본이 바뀌어서 못 팔게 됐잖아? 얘들이 손해를 보고 책을 안 사면 출판사도 손해를 보고.... 악순환의 연속이었음.


이렇게 해서 TRPG 업계는 D20 불황(D20 Bust)이라 불리는 암흑기를 맞이하게 됐음. 이때 피를 본 회사 중 몇 곳만 예를 들면 Swords and Sorcery 라인으로 D20 서플먼트 찍던 화이트 울프라든가,자기네는 D20에 깊게 손 안 댔는데 대신 거래처가 망하는 등의 문제로 고생한 카오시움 등 꽤 많았음. 그리고 이후 2008년에 돈법사는 D&D 3.5판의 수익이 영 아니다 싶었는지 룰 외에도 라이센스 부분을 좀 더 이익이 나게.... 혹은 개악한 사탄을 내놓는다. 룰은 몰라도 라이센스는 분명히 개악이 맞으니까 4판이 아니고 사탄이야.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의를 받지 않겠다.


2008 ~ 2014 - 사탄 VS 패스파인더

2007년, 돈법사는 그동안 파이조 퍼블리싱에 내줬던 D&D 관련 잡지의 라이센스를 회수하고 다음 해 사탄을 내놓음. 사탄의 룰적인 장단점 그런 걸 떠나서 이번에도 돈법사는 거하게 돈법사했는데... 일단 사탄에서는 OGL을 적용하는 대신 게임 시스템 라이센스(Game System Licence)라고 과거의 D20 트레이드마크 라이센스를 좀 뜯어 고친 라이센스를 들이대며 OGL 포기 같은 조항까지 붙였나 그랬음. 물론 돈법사도 '3판 시절에 질적 저하를 겪었기 때문에 이러는 겁니다'라고 주장할 핑계는 충분했지. OGL의 형성에 기여한 쿡 선생도 비슷한 이유로 사이퍼 시스템의 사용에 제한을 둔다고 주장하거든.


그런데 정작 이렇게 나온 사탄은 3.5판과 좀 많이 달라서 호불호가 갈렸고.... 위에서 소개한 파이조가 이 기회를 틈타서 너희들도 잘 아는 패스파인더 1판을 냄. 결국 사탄은 패파에게 판매량 1위를 내주는 굴욕을 당함. 거기다 3판 시절부터 OGL을 바탕으로 기어나온 OSR 놈들도 틈새시장을 확보하게 되며 서드 파티 쪽에서는 진짜 본전도 못 찾을 상황이 됐음. 쉽게 말해서 돈 좀 더 벌려고 사탄의 라이센스를 빡빡하게 냈다가 기대 이하의 성과만 냈더라 이거지. 이제 왜 5판에서 GSL같은 라이센스 대신에 옛날

OGL을 다시 꺼내들었나 이해가 되지?


3줄 요약

한때 D20 시스템은 세계를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룰이었음.

근데 돈법사의 적당한 삽질로 X망해서 위세가 줄어들었음.

5판에서는 정신을 차린 결과 일단은 다시 시장을 지배 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