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아쉬운데 체념하고 끌려다니는 느낌.
아래는 그냥 똥글이니 흘려 읽어라.
컴퓨터 게임이나 아니메, TRPG 모두 초창기에는 외국어에 익숙한 대학생이 들여왔고 이들의 특징은 한국에서 사회 계층적으로 중~중상층이었다는 것.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주요 인물들이 그랬다는거지. 지적이고, PC하며, 경제적으로 부자는 아니더라도 크게 부족하지는 않았던 그런 사람들이었어.

이러한 1세대 오타쿠들은 여러 편견을 겪기도 하였는데 그 반발로 자신의 취미를 저속한 무엇을 넘어 일종의 하이 아트로 끌어 올리려는 시도를 종종 했던 것 같다. 그 유명한 이진경씨가 철학과 굴뚝청소부에서 들뢰즈를 설명하면서 공각기동대를 끌어온거나 2010년대 초 한창 인터넷에서 어그로를 끌었던 껍질인간이 crpg의 역사를 지맘대로 다시 쓰면서 컴퓨터 게임을 고-급한 사무계층의 취미로 정의한 것 처럼. 껍질인간의 경우 지금도 블로그가 남아있으니 궁금한 사람은 껍질인간으로 구글 검색을 해보면 된다. 또 올해 성균관대 등에서 게임x인문학 강의를 연 것을 보면 이런 시도는 여전히 현재 진행중인 것 같아. 난 좀 회의적이지만.

TRPG도 디앤디나 wod 모두 원한다면 매우 지적으로 흘러갈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런 플레이를 지향했던 팀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걸 일본식의 뉴 아카데미적 좆문가식 행세라고 깔 수는 있을지언정 최소한 말초적 신경자극 이상의 무언가를 게임에서 느끼고자 했던거지. 읽고 쓰기도 연습하고, 연기도 고민해보고, 인문학적 지식도 함양하고.

사실 오타쿠들에게는 스노비즘이 내재적으로 장착되어 있어서(나쁘다는거 전혀 아님), 언제나 자기는 남들보다 더 하이한 문화를 즐기고 있다는걸 은근슬쩍 타인에게 내비치고 싶어한다. 뭐.. 발더스 보다는 토먼트가 낫다 이런식이야. 유치하지만 귀엽게 봐줄 수 있는거지. 여기서 쿨타임 차면 까이는 \'그 룰\'도 마찬가지라고 봐. 어찌보면 누군가에게는 똑같이 똥 세팅으로 보일 수 있는 마게는 그렇게 까이지 않잖아. 룰북도 두껍고 분위기도 지적이니까.

그런데 이런 문화는 수년 전부터 임종을 맞이하게 된 것 같아. 정확히 말하면 CRPG, TRPG, 아니메를 하이한 문화로 향유하고자 하는 유저들은 남아있는데 그 물적토대인 힙스터적 컨텐츠의 생산이 끝으로 치달은거지. 요새 게임 회사들이나 아니메 회사는 예전 서브컬처에서 날리던 인재들을 다 흡수해서 퀄리티에서 소규모나 동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어마어마한 물품들을 만들어내고 있어. 반면에 인디 게임들은 동력을 잃는 중이고. 인디 게임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토먼트 누메네라나 정통 RPG를 표방하는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2편이 혹평받고 있는걸 생각해봐.

컴퓨터 게임도 그런데 이미 예전에 컴퓨터 게임에 의해 잠식된 TRPG의 운명은.. 이번에 디앤디 5판이 나온다고 해서 이런 추세가 바꿜 것 같지는 않다. TRPG의 후속 세대인 CRPG 마저 점차 중세 시절의 패트론-예술가 관계로 돌아가고 있고, TRPG 이미 예전부터 텀블벅 후원에 의존하고 있던 자생력 제로의 산업이잖아. 그냥 가만히 앉아서 언젠가 끝날 산업을 지켜봐야하는지, 갈아타야 하는지 참 애매하누나. 귀여운 케릭이 잔뜩 나오는 페그오도 좋지만 허세일지언정 조금 지적으로 흥분되는 게임이 나올 수 있는 가끔은 하고프다. 특히 그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지금, TRPG나 CRPG 모두 언제 전락할지 모르는 지금은 더더욱 그래. 과연 몇 년 후에는 어떻게 되어있을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