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엄청 운이 좋은것같아 13시대 배경으로 roll20이란걸로 플레이를 했어


사실 trpg하는 사람들한테 선입견이 좀 있어. 왜냐면 전에 팀 구한다고 해서 가봤는데 생긴건 그렇다 쳐도 겉으로는 엄청 지적인척 하는데 일단 오프라인에서 소개를 이름이 아닌 닉네임으로 했던 것, 이야기하는건 전부 알아듣지도 못할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이야기.. 거기까진 괜찮은데 서로간에 대화하는걸 보니 인성이 너무 안좋은게 보였던 경험이 있었거든.. 그날 마침 사람들이 덜 모여서 시트도 안 만들고 플레이도 안 들어갔기 때문에 나오려면 지금이구나 해서 사정이 생겨서 참가가 힘들 것 같다 이야기하고 그냥 한동안 발을 끊었어.


근데 이건 뭐 내가 처음에 살짝 이야기하긴 했는데 일본문화 별로 안 좋아하고 관심있는건 서양냄새 나는 정통 판타지를 해보고 싶었다는걸 크게 강조하지 않고 시켜주니 참석해야지 라고 성급히 결정한 내 잘못도 있으니 한번 나가고 안하겠다고 한게 내 잘못이 더 크다.


근데 관심이라는게 쉽게 사라지는게 아니잖아? 그래서 여럿이 모이는 장소에서라면 이상한 애들도 주변 의식을 하겠지 싶어서 깔깔고블린에 초보자 플레이 등록하구.. 그 전에 어떻게 굴러가는지나 실제 플레이 해봐야겠다 생각해서 아무리 이상한 사람들이랑 하더라도 한번 플레이하면 끝일 단편을 orpg로 해봐야겠다 생각하고 하나 참가했어.


긴장하면서 플레이를 시작했는데 되게 배경이나 묘사가 정교한거야. 마스터가 초보라는데 진행하는 맵이 큰건 아니었는데 스토리가 간단한 추리물이지만 그렇다고 한눈에 뻔히 보이는 내용도 아니었고.. 플레이어들이 직접 묻고 돌아다니며 복선들을 얻어 풀어나가는 스타일에 음악이나 지도도 무료 템플릿이라고는 하는데 정말 고급지게 깔아줬어. 구석구석 조우 이벤트도 꽉꽉 채워넣어두고.. 엄청 신경써서 진행한다는 느낌이 있더라구. 마무리하고 준비했던 것들을 맵 열어서 소개해주는데 엔딩을 보고도 준비한 컨텐츠의 반정도 플레이했더라구..


단편이었는데 3일동안 20시간을 진행했거든. 다들 타자도 느리고 dm도 실수를 약간 해서 진행이 좀 늘어진 것도 있지만 저렇게 오랜 시간을 플레이했는데 워낙 준비한게 많아서 반이나 날아가 버린거야. 내가 만약 그렇게 게임을 구성했으면 어떻게든 플레이어를 유도해서 써먹어 보고 싶었을 텐데 그런 티를 전혀 안 냈다는게 처음 만나보는 마스터지만 나도 창작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입장에서 이런 사람 다시 만나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게다가 같이 했던 플레이어 두명도 경험이 많진 않아서 처음엔 rp에 어색함이 보이긴 했는데(사실 전투에 더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 둘 다) rp 할때는 묘사도 간결하면서 설정에 맞게 캐릭터성 다 살려주고, 서로 대화량 배려해주는게 느껴졌고..


너무 재밌어서 연말에 친구들이랑 술한잔 하기로 했던것도 빠지고 흠뻑 빠져서 플레이 해버렸네. 물론 일본느낌 잔뜩 머금은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못됐다는건 아니야. 내가 그런 주장을 할 자격도 없고! 다만 그저.. 내가 원하던 취향에 딱 맞는 게임판을 만들어준 마스터, 내가 원하던 취향에 딱 맞는 성향의 플레이어들을 첫 rpg 게임에서 만났다는게 좋았다는 이야기야. 주말에 깔깔고블린 가서 주사위도 사고 룰북도 좀 더 사보려고.


요약하자면 TRPG 정말 건전하고 좋은 취미인 것 같다. 한국에서 좀 더 흥해서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이 판에 들어왔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