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마법사 레오릭.
야를은 잘 닦인 거리를 따라 걸었다. 나인웰은 남작령이었지만 교통의 요지 중 하나였고 그럭저럭 풍족한 곳이었다. 그런 만큼 거리가 정돈되어 있었으며, 또한 사람들 역시 많았다.
보따리를 등에 메고 있는 상인들, 헤헤 웃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여인들, 가벼운 가죽 갑옷을 입은 용병들. 온갖 사람들이 뒤엉킨 거리는 제법 복잡해 보이기까지 했다.
야를은 가끔 맡아지는 분뇨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복잡한 거리에 짜증을 내기도 하며 걸었다.
‘저긴가.’
야를이 크게 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다. 드워프 특유의 넓은 시야에 분수대가 놓인 광장이 보였다. 마법적인 힘이 느껴지는 분수대는 드워프인 야를이 보더라도 퍽 잘 만든 물건 같았다.
“…러니…험…는…도적 토…….”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우렁찬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소리가 뒤섞여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야를은 그것이 도적 소굴 토벌을 위해 사람을 모집하고 있다는 기사임을 확신했다.
야를은 그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달리듯이 광장으로 이동했다. 과연 단상 위에 올라가 있는 금발의 기사가 연설하듯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도적 소굴 토벌을 함께할 용사들은 지금 이 자리 서십시오! 나인웰 남작님께서는 후한 보상을 약속할 것이며, 여러분의 이름은 공적비에 남아 대대로 칭송될 것입니다!”
야를은 기사의 말에 따라 모여 있는 사람들 앞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공적비에 남는 이름?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돈. 야를은 그것만 보고 움직였다.
‘도적 토벌 과정에서 악명이 쌓이면 더욱 좋고. 잔혹한 야를이나, 목을 베는 야를이나.’
상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일이었다.
“이보게, 난쟁이.”
야를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노인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난쟁이라는 멸칭을 좋아하는 드워프는 없었지만, 때때로 오만한 인간들은 자신들의 기준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는 했다.
야를이 대답해줄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무시하려는데, 노인의 목소리는 다시 한번 야를을 자극했다.
“이런 난쟁이 새끼가 눈깔을 잃으면서 귀까지 먹었나. 왜 불렀는데 답도 안 하고 지럴이여 지럴은?”
“뭐?”
야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뒤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로브를 입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전형적인 마법사 차림의 노인이 있었다.
“어이구 시펄, 얼굴 한 번 살벌하구만. 뭐가 이리 좆 같이 생겼나? 거, 한 번 부를 때 빨리 대답했으면 욕도 안 처먹고 좋잖아? 어?”
“이봐, 인간 노인. 대접받고 싶으면 아가리 간수 잘하는 게 좋을 거야. 도끼로 모가지를 잘라 버릴 테니까.”
“아이고, 이거 난쟁이가 협박을 다 하네. 어? 자네 나이가 몇인데 이렇게 노인을 괄시하나?”
야를은 더 이상 노인을 상대했다가는 참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기사와 병사가 잔뜩 있는 곳에서 도끼를 휘두르면 아무리 야를이라도 위험했다.
그렇기에 야를은 노인을 무시하며 다시 단상 위의 기사를 보았다.
“거, 드워프 삐졌나? 아니 나는 그냥 장난 한번 친 건데, 그렇게 삐지니까 좀 섭하구만. 저 기사 새끼가 말이 하도 많아서 그냥 적적하니 말동무나 좀 하자고 한 건데. 그게 그렇게도 마음에 안 들었나? 드워프 인정이 이렇게 메마른지는 내 처음 알았네, 그려.”
야를은 뒤쪽에서 쉴새 없이 떠드는 노인의 말에 진저리를 쳤다.
“그 입 좀 닥쳐! 정신 사나우니까.”
“에잉, 거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내 나이가 59인데 살아온 세월만큼 말 좀 많으면 어떤가?”
“나는 60년을 살았다. 그리고 과묵하지.”
“……거 우리 친구였구만.”
노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죽어도 1살 동생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투였다.
“이렇게 친구가 된 김에, 한 가지 자랑해야겠네. 이거 아닌가? 우리 딸내미가 드디어 결혼한다네.”
제멋대로 친구 선언을 한 노인의 뜬금없는 말에 야를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이야기였다.
“딸내미? 혹시 너 핸크 마을 촌장이야?”
“아이고, 이거 내가 그리 유명인사였나?”
“개소리. 네 의뢰를 봤을 뿐이다. 그런데 딸 결혼식에 가야 한다는 노인네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야를의 머릿속에 주점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지참금을 마련한다고 했는데…….’
야를의 말에 노인이 비식 웃었다. 그것도 모르는 듯한 웃음에 야를은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도적 소굴 있잖아. 거기에 약초가 자라거든.”
“약초?”
“그래. 약초. 이 위대한 마법사만 다룰 수 있는 약초 말일세. 지지고 볶으면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지. 손 안 대고 도적도 좀 해치울 겸 보상금도 받을 겸 원하던 약초도 얻을 겸 해서 여기 있는 거지.”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야를은 머릿속에 황금이 번쩍하는 기분을 느꼈다.
“약초, 그거 돈이 좀 되나?”
“글쎄, 누군가한테는 쓸데없는 풀뿌리고, 누군가한테는 황금이 될 수도 있겠지. 왜, 관심이 좀 있나?”
“…조금은. 그래서 그 약초의 이름과 생김새는 어떻지?”
야를의 말을 들은 노인은 빙글빙글 웃음을 지었다.
“내가 가르쳐 줄 것 같은가? 이 재수 없는 난쟁이 새끼야.”
“이 미친 마법사 영감탱이가!”
야를이 머릿속에서 인내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 마침 금발 기사의 연설이 끝이 났다.
“토벌단에 들어가실 모험가 여러분들은 지금 당장 옆에 있는 서류를 작성하시기 바랍니다! 토벌단의 선발대는 1시간 뒤에, 후발대는 내일 출발합니다. 부디 많은 지원 바랍니다!”
야를은 우렁차게 들려온 기사의 말에 움직임을 멈췄고,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영감탱이. 선발대로 갈 거냐, 후발대로 갈 거냐?”
“글쎄다? 후발대가 좋으려나?”
“좋아.”
야를은 재빨리 옆에 있던 기사의 종자에게 다가가 서류를 작성했다. 서류에는 똑똑히 ‘선발대’라고 적어 두었다.
야를이 서류 작성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자, 노인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분이 풀리지 않은 야를은 바닥의 돌멩이를 걷어차다가, 광장을 어정거리고 있는 한 사냥꾼을 발견했다.
검은 머리에 거친 수염을 기른 사냥꾼은 분명히 노인과 야를의 대화를 들으며 옆에서 웃고 있던 녀석이었다.
“이봐!”
야를이 자신의 활을 다듬고 있던 사냥꾼에게 물었다. 활줄을 매만지고 있던 사냥꾼은 그에 야를을 보았고, 애꾸눈의 험악한 인상을 보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왜, 왜 불렀소?”
“아까 미친 노인네랑 내가 나누던 말을 들었었지?”
“그렇소만? 그건 왜…….”
“혹시 노인네가 말하던 약초가 뭔지 아나? 형씨는 사냥꾼으로 보이는데, 그런 거 잘 알 거 아니야. 안 그래?”
“뭐 그렇긴 하오만…….”
야를이 도끼의 손잡이를 어루만지면서 물었다.
“그래서 그 약초가 뭔지 알아?”
“폴 벨리에서 서식하는 약초라면, ‘테를’인 텐데…….”
“테를? 그게 뭔데.”
“테를은 힐링 포션을 만들 때 들어가는 약초요. 생으로 씹으면 진통 효과와 해열 효과가 있소.”
“생긴 건 어떻게 생겼는데?”
“빨간 열매에 뿌리에 약효 있소. 근데 그건 왜 묻소?”
“아, 별건 아니고 그냥 좀 흥미가 있어서. 대답 고맙군.”
야를이 그렇게 뒤로 물러서려고 할 때, 사냥꾼이 야를을 붙잡았다.
“이보시오. 고맙다는 말이 끝이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야를은 주머니를 뒤져 1골드를 꺼낸 뒤 사냥꾼에게 던져 주었다. 그러자 사냥꾼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과장되게 인사를 했다.
“고맙소. 이번 토벌에 보탬이 될 거요.”
사냥꾼과의 대화를 끝낸 야를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토벌을 나설 준비를 했다. 야숙을 할 지도 모르기에 식량을 조금 구입하고, 맥주-‘드래곤 가죽’은 출입이 어려웠기에, ‘죽음이 쉬어가는 곳’이라는 주점으로 갔다.-를 한잔했다.
그리고 약속된 1시간 후, 야를은 다시 광장으로 가 토벌대를 기다렸다.
“아이고, 이거 난쟁이 친구 아니야? 우리 난쟁이도 선발대로 나가는구나?”
분수대 근처에 서 있던 야를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법사 노인이 손을 흔들며 야를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 후발대로 간다고 했었는데?”
“아 그거, 생각이 바뀌었어. 시간을 끌면 우리 딸내미 결혼식이 늦어지겠더라고. 그래서 그냥 선발대로 참가했지.”
노인의 말에 야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난쟁이, 뭐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어? 왜 얼굴을 찌푸리고 지럴이여?”
“…한 번 더 난쟁이라고 부르면 이 아가리에 내 도끼를 처박아 줄 테다.”
“아이고 무서워라. 그러면 이름이라도 알려주던가.”
“야를.”
야를이 도끼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씹어 뱉었다. 그러자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는 레오릭이라고 하네. 마법사 레오릭. 핸크 마을의 촌장이지.”
“토벌대 선발대 출발하겠습니다! 보상금 수령에 문제가 없도록 서류를 꼭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토벌대가 출발했다.
***
토벌대는 폴 벨리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말을 타고 있는 기사, 그 옆을 걷는 병사, 그리고 그 뒤에 모험가들이 따랐다.
야를은 모험가 대열에서 가장 마지막에 있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옆에는 레오릭이 함께 걷고 있었다.
“야를 이보게, 내가 자꾸 들러붙는 이유가 뭔지 아나? 그냥 친근감이 들어서 그래, 친근감이. 뭐라고 할까. 우리는 동년배지 않나? 그런데 자네의 육체는 그렇게 튼실허니, 나꺼지 젊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제발 그 아가리 좀 닫으면 안 되나?”
“아가리라니? 그냥 걸어가면서 심심허니 그러는 건데, 우리가 마실 나가는 것도 아니고 풍경이야 늘 보던 산이고. 결국, 이 심심함을 달랠 수 있는 건 사람밖에 없지 않나? 아, 물론 자네는 드워프지만 말일세.”
야를은 더는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걷기로 했다. 이동의 시작부터 레오릭의 주둥이는 쉬지 않고 떠들었고, 이제는 귀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내가 어? 약초학만 20년을 수행했다네. 지금은 우리 마을 젊은이들을 수행시키고 있고. 이제 단순하게 농사를 지어먹는 시대는 끝났어. 슬슬 상품을 개발하고 그 상품을 팔아먹는 시대가 올 거란 말이지. 나는 우리 핸크 마을이 힐링 포션의 중심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네. 신전이랑 계약해서 축성된 힐링 포션만 대량으로 만들어내면, 우리 마을이 부흥할 거야.”
줄곧 레오릭의 말을 무시하고 있던 야를은 힐링 포션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가장 흥미 있고, 가장 염두에 두던 주제였다.
“너, 지금 분명히 ‘테를’을 얻으러 가는 거지?”
“으잉? 그렇지. 힐링 포션의 다른 재료야 우리 마을 근처에서 풍족한데, 유독 테를만 구하기가 어렵단 말이지? 그래서 오늘 풍족하게 뜯어갈 생각이야. 용케도 알아냈구먼?”
레오릭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알아낼 방법이야 많으니까. 그건 그렇고. 나도 그 사업에 끼워 줄 수 있나?”
“으잉? 우리 마을 사업?”
야를의 말에 레오릭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끼워 줄 수야 있지. 테를이 부족하니까, 테를을 잔뜩 구해오면 원하는 대로 매입해 주겠어. 이 테를이라는 게 사실 마법사가 아니면 제대로 다룰 수 없거든. 그래서 도통 유통이 안 된단 말이지.”
주절주절 떠들던 레오릭이 눈을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왜 갑자기 사업에 흥미가 생겼나?”
레오릭의 말에 야를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유야 당연히 하나였다.
“돈이지, 황금은 생명도 살 수 있으니까.”
“호오, 이 친구 무척이나 드워프답구먼. 뭐 좋아.”
레오릭이 막 확답을 주려고 할 때, 갑자기 기사의 말이 멈췄다.
“저 앞이 레드 스칼프의 출몰 지역이다. 척후 역할을 할 모험가는 앞으로 나오길 바란다. 이번 척후 역할을 하는 모험가는 다른 이들보다 보상이 2배 정도 더 책정될 예정이다. 용기 있는 자, 누구 없는가?”
기사가 모험가들을 돌아봤다.
야를은 잘 닦인 거리를 따라 걸었다. 나인웰은 남작령이었지만 교통의 요지 중 하나였고 그럭저럭 풍족한 곳이었다. 그런 만큼 거리가 정돈되어 있었으며, 또한 사람들 역시 많았다.
보따리를 등에 메고 있는 상인들, 헤헤 웃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여인들, 가벼운 가죽 갑옷을 입은 용병들. 온갖 사람들이 뒤엉킨 거리는 제법 복잡해 보이기까지 했다.
야를은 가끔 맡아지는 분뇨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복잡한 거리에 짜증을 내기도 하며 걸었다.
‘저긴가.’
야를이 크게 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다. 드워프 특유의 넓은 시야에 분수대가 놓인 광장이 보였다. 마법적인 힘이 느껴지는 분수대는 드워프인 야를이 보더라도 퍽 잘 만든 물건 같았다.
“…러니…험…는…도적 토…….”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우렁찬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소리가 뒤섞여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야를은 그것이 도적 소굴 토벌을 위해 사람을 모집하고 있다는 기사임을 확신했다.
야를은 그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달리듯이 광장으로 이동했다. 과연 단상 위에 올라가 있는 금발의 기사가 연설하듯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도적 소굴 토벌을 함께할 용사들은 지금 이 자리 서십시오! 나인웰 남작님께서는 후한 보상을 약속할 것이며, 여러분의 이름은 공적비에 남아 대대로 칭송될 것입니다!”
야를은 기사의 말에 따라 모여 있는 사람들 앞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공적비에 남는 이름?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돈. 야를은 그것만 보고 움직였다.
‘도적 토벌 과정에서 악명이 쌓이면 더욱 좋고. 잔혹한 야를이나, 목을 베는 야를이나.’
상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일이었다.
“이보게, 난쟁이.”
야를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노인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난쟁이라는 멸칭을 좋아하는 드워프는 없었지만, 때때로 오만한 인간들은 자신들의 기준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는 했다.
야를이 대답해줄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무시하려는데, 노인의 목소리는 다시 한번 야를을 자극했다.
“이런 난쟁이 새끼가 눈깔을 잃으면서 귀까지 먹었나. 왜 불렀는데 답도 안 하고 지럴이여 지럴은?”
“뭐?”
야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뒤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로브를 입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전형적인 마법사 차림의 노인이 있었다.
“어이구 시펄, 얼굴 한 번 살벌하구만. 뭐가 이리 좆 같이 생겼나? 거, 한 번 부를 때 빨리 대답했으면 욕도 안 처먹고 좋잖아? 어?”
“이봐, 인간 노인. 대접받고 싶으면 아가리 간수 잘하는 게 좋을 거야. 도끼로 모가지를 잘라 버릴 테니까.”
“아이고, 이거 난쟁이가 협박을 다 하네. 어? 자네 나이가 몇인데 이렇게 노인을 괄시하나?”
야를은 더 이상 노인을 상대했다가는 참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기사와 병사가 잔뜩 있는 곳에서 도끼를 휘두르면 아무리 야를이라도 위험했다.
그렇기에 야를은 노인을 무시하며 다시 단상 위의 기사를 보았다.
“거, 드워프 삐졌나? 아니 나는 그냥 장난 한번 친 건데, 그렇게 삐지니까 좀 섭하구만. 저 기사 새끼가 말이 하도 많아서 그냥 적적하니 말동무나 좀 하자고 한 건데. 그게 그렇게도 마음에 안 들었나? 드워프 인정이 이렇게 메마른지는 내 처음 알았네, 그려.”
야를은 뒤쪽에서 쉴새 없이 떠드는 노인의 말에 진저리를 쳤다.
“그 입 좀 닥쳐! 정신 사나우니까.”
“에잉, 거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내 나이가 59인데 살아온 세월만큼 말 좀 많으면 어떤가?”
“나는 60년을 살았다. 그리고 과묵하지.”
“……거 우리 친구였구만.”
노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죽어도 1살 동생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투였다.
“이렇게 친구가 된 김에, 한 가지 자랑해야겠네. 이거 아닌가? 우리 딸내미가 드디어 결혼한다네.”
제멋대로 친구 선언을 한 노인의 뜬금없는 말에 야를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이야기였다.
“딸내미? 혹시 너 핸크 마을 촌장이야?”
“아이고, 이거 내가 그리 유명인사였나?”
“개소리. 네 의뢰를 봤을 뿐이다. 그런데 딸 결혼식에 가야 한다는 노인네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야를의 머릿속에 주점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지참금을 마련한다고 했는데…….’
야를의 말에 노인이 비식 웃었다. 그것도 모르는 듯한 웃음에 야를은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도적 소굴 있잖아. 거기에 약초가 자라거든.”
“약초?”
“그래. 약초. 이 위대한 마법사만 다룰 수 있는 약초 말일세. 지지고 볶으면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지. 손 안 대고 도적도 좀 해치울 겸 보상금도 받을 겸 원하던 약초도 얻을 겸 해서 여기 있는 거지.”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야를은 머릿속에 황금이 번쩍하는 기분을 느꼈다.
“약초, 그거 돈이 좀 되나?”
“글쎄, 누군가한테는 쓸데없는 풀뿌리고, 누군가한테는 황금이 될 수도 있겠지. 왜, 관심이 좀 있나?”
“…조금은. 그래서 그 약초의 이름과 생김새는 어떻지?”
야를의 말을 들은 노인은 빙글빙글 웃음을 지었다.
“내가 가르쳐 줄 것 같은가? 이 재수 없는 난쟁이 새끼야.”
“이 미친 마법사 영감탱이가!”
야를이 머릿속에서 인내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 마침 금발 기사의 연설이 끝이 났다.
“토벌단에 들어가실 모험가 여러분들은 지금 당장 옆에 있는 서류를 작성하시기 바랍니다! 토벌단의 선발대는 1시간 뒤에, 후발대는 내일 출발합니다. 부디 많은 지원 바랍니다!”
야를은 우렁차게 들려온 기사의 말에 움직임을 멈췄고,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영감탱이. 선발대로 갈 거냐, 후발대로 갈 거냐?”
“글쎄다? 후발대가 좋으려나?”
“좋아.”
야를은 재빨리 옆에 있던 기사의 종자에게 다가가 서류를 작성했다. 서류에는 똑똑히 ‘선발대’라고 적어 두었다.
야를이 서류 작성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자, 노인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분이 풀리지 않은 야를은 바닥의 돌멩이를 걷어차다가, 광장을 어정거리고 있는 한 사냥꾼을 발견했다.
검은 머리에 거친 수염을 기른 사냥꾼은 분명히 노인과 야를의 대화를 들으며 옆에서 웃고 있던 녀석이었다.
“이봐!”
야를이 자신의 활을 다듬고 있던 사냥꾼에게 물었다. 활줄을 매만지고 있던 사냥꾼은 그에 야를을 보았고, 애꾸눈의 험악한 인상을 보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왜, 왜 불렀소?”
“아까 미친 노인네랑 내가 나누던 말을 들었었지?”
“그렇소만? 그건 왜…….”
“혹시 노인네가 말하던 약초가 뭔지 아나? 형씨는 사냥꾼으로 보이는데, 그런 거 잘 알 거 아니야. 안 그래?”
“뭐 그렇긴 하오만…….”
야를이 도끼의 손잡이를 어루만지면서 물었다.
“그래서 그 약초가 뭔지 알아?”
“폴 벨리에서 서식하는 약초라면, ‘테를’인 텐데…….”
“테를? 그게 뭔데.”
“테를은 힐링 포션을 만들 때 들어가는 약초요. 생으로 씹으면 진통 효과와 해열 효과가 있소.”
“생긴 건 어떻게 생겼는데?”
“빨간 열매에 뿌리에 약효 있소. 근데 그건 왜 묻소?”
“아, 별건 아니고 그냥 좀 흥미가 있어서. 대답 고맙군.”
야를이 그렇게 뒤로 물러서려고 할 때, 사냥꾼이 야를을 붙잡았다.
“이보시오. 고맙다는 말이 끝이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야를은 주머니를 뒤져 1골드를 꺼낸 뒤 사냥꾼에게 던져 주었다. 그러자 사냥꾼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과장되게 인사를 했다.
“고맙소. 이번 토벌에 보탬이 될 거요.”
사냥꾼과의 대화를 끝낸 야를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토벌을 나설 준비를 했다. 야숙을 할 지도 모르기에 식량을 조금 구입하고, 맥주-‘드래곤 가죽’은 출입이 어려웠기에, ‘죽음이 쉬어가는 곳’이라는 주점으로 갔다.-를 한잔했다.
그리고 약속된 1시간 후, 야를은 다시 광장으로 가 토벌대를 기다렸다.
“아이고, 이거 난쟁이 친구 아니야? 우리 난쟁이도 선발대로 나가는구나?”
분수대 근처에 서 있던 야를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법사 노인이 손을 흔들며 야를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 후발대로 간다고 했었는데?”
“아 그거, 생각이 바뀌었어. 시간을 끌면 우리 딸내미 결혼식이 늦어지겠더라고. 그래서 그냥 선발대로 참가했지.”
노인의 말에 야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난쟁이, 뭐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어? 왜 얼굴을 찌푸리고 지럴이여?”
“…한 번 더 난쟁이라고 부르면 이 아가리에 내 도끼를 처박아 줄 테다.”
“아이고 무서워라. 그러면 이름이라도 알려주던가.”
“야를.”
야를이 도끼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씹어 뱉었다. 그러자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는 레오릭이라고 하네. 마법사 레오릭. 핸크 마을의 촌장이지.”
“토벌대 선발대 출발하겠습니다! 보상금 수령에 문제가 없도록 서류를 꼭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토벌대가 출발했다.
***
토벌대는 폴 벨리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말을 타고 있는 기사, 그 옆을 걷는 병사, 그리고 그 뒤에 모험가들이 따랐다.
야를은 모험가 대열에서 가장 마지막에 있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옆에는 레오릭이 함께 걷고 있었다.
“야를 이보게, 내가 자꾸 들러붙는 이유가 뭔지 아나? 그냥 친근감이 들어서 그래, 친근감이. 뭐라고 할까. 우리는 동년배지 않나? 그런데 자네의 육체는 그렇게 튼실허니, 나꺼지 젊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제발 그 아가리 좀 닫으면 안 되나?”
“아가리라니? 그냥 걸어가면서 심심허니 그러는 건데, 우리가 마실 나가는 것도 아니고 풍경이야 늘 보던 산이고. 결국, 이 심심함을 달랠 수 있는 건 사람밖에 없지 않나? 아, 물론 자네는 드워프지만 말일세.”
야를은 더는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걷기로 했다. 이동의 시작부터 레오릭의 주둥이는 쉬지 않고 떠들었고, 이제는 귀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내가 어? 약초학만 20년을 수행했다네. 지금은 우리 마을 젊은이들을 수행시키고 있고. 이제 단순하게 농사를 지어먹는 시대는 끝났어. 슬슬 상품을 개발하고 그 상품을 팔아먹는 시대가 올 거란 말이지. 나는 우리 핸크 마을이 힐링 포션의 중심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네. 신전이랑 계약해서 축성된 힐링 포션만 대량으로 만들어내면, 우리 마을이 부흥할 거야.”
줄곧 레오릭의 말을 무시하고 있던 야를은 힐링 포션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가장 흥미 있고, 가장 염두에 두던 주제였다.
“너, 지금 분명히 ‘테를’을 얻으러 가는 거지?”
“으잉? 그렇지. 힐링 포션의 다른 재료야 우리 마을 근처에서 풍족한데, 유독 테를만 구하기가 어렵단 말이지? 그래서 오늘 풍족하게 뜯어갈 생각이야. 용케도 알아냈구먼?”
레오릭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알아낼 방법이야 많으니까. 그건 그렇고. 나도 그 사업에 끼워 줄 수 있나?”
“으잉? 우리 마을 사업?”
야를의 말에 레오릭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끼워 줄 수야 있지. 테를이 부족하니까, 테를을 잔뜩 구해오면 원하는 대로 매입해 주겠어. 이 테를이라는 게 사실 마법사가 아니면 제대로 다룰 수 없거든. 그래서 도통 유통이 안 된단 말이지.”
주절주절 떠들던 레오릭이 눈을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왜 갑자기 사업에 흥미가 생겼나?”
레오릭의 말에 야를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유야 당연히 하나였다.
“돈이지, 황금은 생명도 살 수 있으니까.”
“호오, 이 친구 무척이나 드워프답구먼. 뭐 좋아.”
레오릭이 막 확답을 주려고 할 때, 갑자기 기사의 말이 멈췄다.
“저 앞이 레드 스칼프의 출몰 지역이다. 척후 역할을 할 모험가는 앞으로 나오길 바란다. 이번 척후 역할을 하는 모험가는 다른 이들보다 보상이 2배 정도 더 책정될 예정이다. 용기 있는 자, 누구 없는가?”
기사가 모험가들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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