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죽음-리플레이.
“저이, 저이. 저거 완전 양아치 같은 새끼들이야. 야를, 나서지 말게. 아무튼 기사라는 새끼들은 왜 이렇게 몸을 사리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기사의 말에 레오릭이 투덜투덜 불만을 내뱉었다.
야를 역시 나설 생각은 없었다. 말이 척후지 미끼임이 확실한 역할이었다. 괜히 나서다가 개죽음을 맞이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돈에 눈을 머는 작자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제, 제가 가겠습니다.”
“저두요.”
광장에서 야를과 대화를 나누었던 사냥꾼과 이름 모를 전사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용기를 트여 줬는지, 두어 명이 더 손을 들었다.
“좋아. 용기가 가상한 이들이로군. 종자여, 저들의 이름을 기록해 두어라.”
기사의 말에 말 옆에서 걷고 있던 종자가 무언가를 끄적였다.
“자, 척후들이여 가서 도적단이 있는지 확인하라. 나머지는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가 들리면 모두 돌진한다.”
기사의 말에 척후를 지원했던 이들이 발걸음을 뗐다. 두렵지만 황금을 위하여. 돈에 이끌리는 것은 드워프나 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황금이 생명을 살 수 있다지만, 그 황금을 사용할 수 있어야 생명도 사지. 저런 머저리 같은 놈들…….”
레오릭이 떠난 척후를 보며 혀를 찼다. 야를 역시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는 황금을 쌓아두지 않는다. 무언가를 만들고, 소모한다. 그게 올바른 삶의 방식이라 믿기에.
“끄아아아악!”
“본대!”
“빨리 와! 이 새끼들아!”
잠시 후, 척후가 사라졌던 방향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구원을 요청하는 소리였다. 야를은 그 소리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도끼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이봐! 기사 양반! 안 갈 거야?”
뒤늦게 비명을 알아차린 다른 모험가가 기사에게 말했다. 그러나 기사는 말의 배를 차는 대신, 말에서 내렸다.
기사는 약속대로 척후를 구하러 가는 대신 머물기를 택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난쟁이. 준비해라. 이거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이런 닝기리. 잘못하다가는 뒈지게 생겼네.”
툭.
레오릭이 야를의 팔을 건드리며 말했다. 야를 역시 그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기사의 행동을 주목했다.
기사는 긴장한 모험가들을 쭉 훑어보고는 짧게 말했다.
“죽여.”
기사가 말하는 순간, 병사들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야를이 움직였다.
야를은 자신의 애병 ‘이퀄라이저’를 크게 휘둘렀다. 거대한 전투 도끼가 횡으로 베어지고 그것에 얻어맞은 병사 하나가 ‘쾅!’ 뒤로 나가떨어졌다.
야를은 곧바로 나가떨어진 놈의 목을 내리쳐 잘라버리고 그것을 그대로 나머지 병사들에게 집어 던졌다.
머리가 공중에서 회전하며 피가 분수대의 물처럼 흩뿌려졌다.
이것이 신호가 되었다.
“뒈져어어어어! 이 새끼들아아아아!”
“이 씨벌놈의 새끼들!”
모험자들과 병사들이 맞붙었다. 사방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삶과 죽음이 뒤엉키는 전장은 그렇게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이봐 난쟁이, 우리 상대는 아무래도 저 녀석인 것 같은데?”
레오릭이 말했다. 도끼에 묻은 피를 털고 있는 야를은 레오릭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말 옆에 있던 기사가 검을 뽑고 야를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놈 저거 경험이 많구먼. 말을 타지 않다니.”
레오릭이 기사를 보며 중얼거렸다.
무거운 갑옷을 입었을 때 드워프 앞에서 말을 타고 싸우지 않는 것은 경험 많은 이들이나 지키는 이야기였다. 드워프의 도끼 솜씨는 말의 다리를 한 번에 자르기 충분하고, 그 때문에 낙마해 죽을 위험이 있었다. 무겁고 튼튼한 갑옷은 때로는 독이었다.
“엄호할 테니, 달려들게나.”
레오릭이 중얼중얼 주문을 외며 말했다. 야를은 그런 레오릭이 그다지 믿음직하지는 않았으나, 일단은 움직였다. 그나마 이 자리에서 목숨을 보전할 가장 확률 높은 행동이었다.
“히아아아앗!”
도끼를 들고 돌진하는 야를 앞에, 어설픈 기합을 내지르는 종자가 끼어들었다. 녀석은 울고 있었다.
‘성가신 놈이군.’
어설픈 갑옷에 어설픈 검. 그리고 어설픈 검 솜씨까지. 야를은 한눈에 종자는 버림패라는 것을 알았다.
함정. 혹은 행동에 제약을 주기 위한 포석. 그러나 무시할 수 없다는 게 묘수였다.
후웅!
아를은 도끼를 휘둘러 눈물이 그렁그렁한 종자의 목을 날렸다.
푸화화화악!
잘린 목에서 피가 솟구치고 순간적으로 시야를 가렸다. 야를은 그 피 분수에도 눈을 감지 않았다. 전장에서 눈을 감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짓이었다.
“야를! 오른쪽!”
야를은 레오릭의 외침에 급하게 몸을 틀었다. 옆구리 쪽으로 쭈욱 뻗는 나이틀리 소드가 보였다. 조금만 늦었으면 창자가 끊어졌을지도 모르는 일격이었다.
“이 개자식!”
야를은 욕설을 씹어 뱉으며 위에서 아래로 크게 도끼를 내리쳤다. 저 잘난 팔을 부숴버리리라. 도끼에는 그런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도끼는 기사의 팔에 닿지 못했다.
퍼억!
야를은 순간 턱이 빠개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고개가 한순간에 돌아갔다. 야를은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피로 가려진 왼쪽에서 주먹이 날아왔어.’
야를은 추가적인 공격을 피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고, 빠르게 상황을 분석했다. 처음 내지른 검은 페인트 모션. 뒤이어 날아온 주먹이 진짜임이 분명했다. 건틀릿으로 감싼 주먹은 훌륭한 무기였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똑바로 봐야 할 거 아니야!”
야를이 소리치며 도끼를 휘둘렀다. ‘콰앙!’ 기사의 흉갑을 후려치며 굉음이 울렸지만, 기사는 거뜬했다. 기사는 텅 비어버린 야를의 목덜미로 검을 내리꽂았다.
“꿰뚫어라! 마탄!”
팅!
날아온 에너지 덩어리가 기사가 휘두른 검의 궤도를 바꿨다. 검은 허공을 헛치고, 야를은 그 틈에 기사의 팔을 내려치며 빠져나왔다.
콰득!
“크아아아악!”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기사의 팔이 덜렁거렸다.
“영감탱이! 할 때는 하잖아?”
“이래 봬도 마법사야. 그런데 말이야, 이제 직접 공격하는 주문은 기대하지 말아. 준비해둔 공격 주문은 마탄이 끝이니까.”
“……쓸모없는 영감탱이.”
중얼거리듯 대화를 주고받은 야를은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기사는 덜렁거리는 팔을 대충 수습한 후 야를을 노려보고 있었다.
“죽여주마! 빌어먹을 난쟁이. 그리고 늙은이.”
“허허, 언제는 살려주려고 했던 것처럼 말하네. 예끼 이 사람아. 팔이 병신이면 말은 똑바로 해야지. 아, 설마 입도 병신인가? 그러면 내가 미안하네.”
쉬지 않고 나불대는 레오릭을 보며 야를은 고개를 저었다. 저 입은 죽어서도 물에 동동 뜰 것 같았다.
“지금 왜 이런 일을 벌인 거냐?”
야를은 레오릭의 말을 저지하며 기사에게 물었다.
“드워프. 아까 네가 재미있는 말을 하더군. 황금은 생명도 살 수 있다고 했던가?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마.”
기사가 투구 밖으로 유일하게 드러나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야를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더 깊게 캐물을 수는 없었다. 피와 살이 튀는 전장에서는 무기를 맞대는 것만이 정당한 대화였으므로.
야를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기사를 가만히 노려봤다.
‘먼저 들어가? 아니면 들어오는 걸 기다려? 무엇이 최선일까.’
야를의 머릿속에 선택할 수 있는 수십 개의 방안이 떠올랐다. 기사와 자신의 이점을 비교하고, 어떻게 싸워야 최선으로 싸울 수 있는지 검토했다. 그것은 마치 무구를 담금질하는 듯한 신중함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은 길지 않았다.
쿵!쿵!
기사가 랜스 차지를 하듯이 검을 쥐고 달려왔고, 육중한 무게에 땅이 울렸다. 야를은 공성추처럼 돌진하는 기사를 보며 도끼를 쥔 손에 힘을 줬다.
‘들어온다면 받아친다!’
콰앙!
검과 도끼가 부딪치며 굉음이 울렸다. 불꽃이 번쩍이고 기사와 야를은 튕겨나간 검과 도끼의 궤도를 비틀며 다시 휘둘렀다.
“샘솟아라, 무너져라, 속아라! 살아 있는 환영!”
레오릭이 팔을 뻗으며 외치자 기사의 눈앞에 그림자 같은 것이 어른거렸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조잡한 환영이었다. 평소에는 장난용으로 사용하는 마법이었지만, 적재적소에 사용한 소마법은 그 어떤 대마법보다 우월했다.
한순간, 기사의 움직임이 삐그덕거렸다.
“흐아아아아아!”
야를이 기합을 외치며 온몸의 힘을 끌어 올렸다. 단단한 근육이 비틀어지며 미증유의 힘을 만들어냈다. 야를은 그 힘을 그대로 도끼에 끌어 담아 횡으로 휘둘렀다.
콰득!
다시 한번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흉갑이 찌그러지고 그 안의 피륙이 상하는 소리였다. 적어도 갈빗대 한두 개는 부러졌으리라. 야를는 손의 감촉으로 그렇게 판단했다.
“이, 빌어먹을 난쟁이!”
엄청난 고통이 있었을 텐데도, 기사는 움직였다. 검은 현란한 눈속임을 그리며 움직였고, 야를은 재빨리 도끼를 회수하며 뒤로 빠졌다. 그러면서 다음 공격을 어떻게 주고받을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야를이 머릿속으로 그리던 그림은 금세 찢어져 버렸다.
“뒈-져라!”
야를은 순간 기사의 검이 늘어났다고 착각을 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야를이 생각했던 것보다, 검은 길게 뻗어 나왔으니까.
촤악!
“커헉!”
야를이 목을 부여잡았다. 피가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베인 상처는 여인의 음부처럼 벌어져 닫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꼭 목으로 달거리 하는 것 같네.’
죽어가는 와중에도 시덥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저 노인네한테 옮은 게 분명하다. 야를은 그렇게 생각했다.
목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은 야를의 눈에 기사가 쥔 검의 손잡이가 들어왔다. 조그마한 빛을 내는 보석. 그건 야를의 계획에는 없던 물건이었다.
‘마법검이었어. 빌어먹을.’
야를은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억지로 버티며 고개를 쳐들었다.
“이런 젠장할! 야를! 자네가 쓰러지면 어떡해!”
돌진하는 기사를 보며 비명을 지르는 레오릭이 보였다. 기사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모든 주문을 소진한 마법사 하나를 죽이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마법이 없는 마법사는 그저 지팡이나 휘두르는 말라깽이에 지나지 않았다.
“크헉!”
“비, 빌어먹을…….”
레오릭의 뒤편에서는 남작의 병사들이 승기를 잡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모험가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땅에 쓰러져 흙을 씹었고, 병사들은 상처 입은 몸으로 그런 승리의 함성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레오릭의 표정이 일변했다.
“이런 씨벌! 야를. 아직 안 뒈졌지? 만일 살아난다면, 나를 좀 꼭 살려주게나.”
레오릭이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회중시계. 상황에 맞지 않는 물건이었다. 이윽고 레오릭은 회중시계를 손에 든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근처에 기사가 다가왔음에도.
‘그게 무슨 개소리야!’
레오릭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야를이 말을 하려 했지만 입에서는 힉힉거리는 소리만 났다. 성대가 잘려있었고, 피만 울컥 솟아났다.
“약속이네! 꼭 날 살려!”
중얼거리는 것을 멈춘 레오릭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정확히는 레오릭이 들고 있던 회중시계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곧장 야를에게 날아와 깃들었고,
푸욱!
레오릭은 곧 기사의 칼에 심장이 꿰뚫려 죽었다.
‘이런 씨팔. 내가 여기서 죽다니’
레오릭의 죽음을 본 야를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드워프의 강인한 체력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인간이었다면 이미 죽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눈이 침침해…….’
세상이 점점 어두워졌다.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감각은 점점 둔해졌다. 얼굴을 대고 누은 곳이 땅인지 하늘인지 점점 헷갈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이라도 전부 쓰고 오는 건데……. 맥주 마시고 싶네.’
야를은 어두워지는 세상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툭, 숨이 끊어졌다.
***
‘드래곤 가죽’은 나인웰에 위치한 허름한 술집이었다. 왁자지껄한 소리. 야를은 그곳에서 눈을 떴다.
욕박으면 상처입음...
“저이, 저이. 저거 완전 양아치 같은 새끼들이야. 야를, 나서지 말게. 아무튼 기사라는 새끼들은 왜 이렇게 몸을 사리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기사의 말에 레오릭이 투덜투덜 불만을 내뱉었다.
야를 역시 나설 생각은 없었다. 말이 척후지 미끼임이 확실한 역할이었다. 괜히 나서다가 개죽음을 맞이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돈에 눈을 머는 작자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제, 제가 가겠습니다.”
“저두요.”
광장에서 야를과 대화를 나누었던 사냥꾼과 이름 모를 전사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용기를 트여 줬는지, 두어 명이 더 손을 들었다.
“좋아. 용기가 가상한 이들이로군. 종자여, 저들의 이름을 기록해 두어라.”
기사의 말에 말 옆에서 걷고 있던 종자가 무언가를 끄적였다.
“자, 척후들이여 가서 도적단이 있는지 확인하라. 나머지는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가 들리면 모두 돌진한다.”
기사의 말에 척후를 지원했던 이들이 발걸음을 뗐다. 두렵지만 황금을 위하여. 돈에 이끌리는 것은 드워프나 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황금이 생명을 살 수 있다지만, 그 황금을 사용할 수 있어야 생명도 사지. 저런 머저리 같은 놈들…….”
레오릭이 떠난 척후를 보며 혀를 찼다. 야를 역시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는 황금을 쌓아두지 않는다. 무언가를 만들고, 소모한다. 그게 올바른 삶의 방식이라 믿기에.
“끄아아아악!”
“본대!”
“빨리 와! 이 새끼들아!”
잠시 후, 척후가 사라졌던 방향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구원을 요청하는 소리였다. 야를은 그 소리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도끼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이봐! 기사 양반! 안 갈 거야?”
뒤늦게 비명을 알아차린 다른 모험가가 기사에게 말했다. 그러나 기사는 말의 배를 차는 대신, 말에서 내렸다.
기사는 약속대로 척후를 구하러 가는 대신 머물기를 택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난쟁이. 준비해라. 이거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이런 닝기리. 잘못하다가는 뒈지게 생겼네.”
툭.
레오릭이 야를의 팔을 건드리며 말했다. 야를 역시 그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기사의 행동을 주목했다.
기사는 긴장한 모험가들을 쭉 훑어보고는 짧게 말했다.
“죽여.”
기사가 말하는 순간, 병사들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야를이 움직였다.
야를은 자신의 애병 ‘이퀄라이저’를 크게 휘둘렀다. 거대한 전투 도끼가 횡으로 베어지고 그것에 얻어맞은 병사 하나가 ‘쾅!’ 뒤로 나가떨어졌다.
야를은 곧바로 나가떨어진 놈의 목을 내리쳐 잘라버리고 그것을 그대로 나머지 병사들에게 집어 던졌다.
머리가 공중에서 회전하며 피가 분수대의 물처럼 흩뿌려졌다.
이것이 신호가 되었다.
“뒈져어어어어! 이 새끼들아아아아!”
“이 씨벌놈의 새끼들!”
모험자들과 병사들이 맞붙었다. 사방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삶과 죽음이 뒤엉키는 전장은 그렇게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이봐 난쟁이, 우리 상대는 아무래도 저 녀석인 것 같은데?”
레오릭이 말했다. 도끼에 묻은 피를 털고 있는 야를은 레오릭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말 옆에 있던 기사가 검을 뽑고 야를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놈 저거 경험이 많구먼. 말을 타지 않다니.”
레오릭이 기사를 보며 중얼거렸다.
무거운 갑옷을 입었을 때 드워프 앞에서 말을 타고 싸우지 않는 것은 경험 많은 이들이나 지키는 이야기였다. 드워프의 도끼 솜씨는 말의 다리를 한 번에 자르기 충분하고, 그 때문에 낙마해 죽을 위험이 있었다. 무겁고 튼튼한 갑옷은 때로는 독이었다.
“엄호할 테니, 달려들게나.”
레오릭이 중얼중얼 주문을 외며 말했다. 야를은 그런 레오릭이 그다지 믿음직하지는 않았으나, 일단은 움직였다. 그나마 이 자리에서 목숨을 보전할 가장 확률 높은 행동이었다.
“히아아아앗!”
도끼를 들고 돌진하는 야를 앞에, 어설픈 기합을 내지르는 종자가 끼어들었다. 녀석은 울고 있었다.
‘성가신 놈이군.’
어설픈 갑옷에 어설픈 검. 그리고 어설픈 검 솜씨까지. 야를은 한눈에 종자는 버림패라는 것을 알았다.
함정. 혹은 행동에 제약을 주기 위한 포석. 그러나 무시할 수 없다는 게 묘수였다.
후웅!
아를은 도끼를 휘둘러 눈물이 그렁그렁한 종자의 목을 날렸다.
푸화화화악!
잘린 목에서 피가 솟구치고 순간적으로 시야를 가렸다. 야를은 그 피 분수에도 눈을 감지 않았다. 전장에서 눈을 감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짓이었다.
“야를! 오른쪽!”
야를은 레오릭의 외침에 급하게 몸을 틀었다. 옆구리 쪽으로 쭈욱 뻗는 나이틀리 소드가 보였다. 조금만 늦었으면 창자가 끊어졌을지도 모르는 일격이었다.
“이 개자식!”
야를은 욕설을 씹어 뱉으며 위에서 아래로 크게 도끼를 내리쳤다. 저 잘난 팔을 부숴버리리라. 도끼에는 그런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도끼는 기사의 팔에 닿지 못했다.
퍼억!
야를은 순간 턱이 빠개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고개가 한순간에 돌아갔다. 야를은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피로 가려진 왼쪽에서 주먹이 날아왔어.’
야를은 추가적인 공격을 피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고, 빠르게 상황을 분석했다. 처음 내지른 검은 페인트 모션. 뒤이어 날아온 주먹이 진짜임이 분명했다. 건틀릿으로 감싼 주먹은 훌륭한 무기였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똑바로 봐야 할 거 아니야!”
야를이 소리치며 도끼를 휘둘렀다. ‘콰앙!’ 기사의 흉갑을 후려치며 굉음이 울렸지만, 기사는 거뜬했다. 기사는 텅 비어버린 야를의 목덜미로 검을 내리꽂았다.
“꿰뚫어라! 마탄!”
팅!
날아온 에너지 덩어리가 기사가 휘두른 검의 궤도를 바꿨다. 검은 허공을 헛치고, 야를은 그 틈에 기사의 팔을 내려치며 빠져나왔다.
콰득!
“크아아아악!”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기사의 팔이 덜렁거렸다.
“영감탱이! 할 때는 하잖아?”
“이래 봬도 마법사야. 그런데 말이야, 이제 직접 공격하는 주문은 기대하지 말아. 준비해둔 공격 주문은 마탄이 끝이니까.”
“……쓸모없는 영감탱이.”
중얼거리듯 대화를 주고받은 야를은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기사는 덜렁거리는 팔을 대충 수습한 후 야를을 노려보고 있었다.
“죽여주마! 빌어먹을 난쟁이. 그리고 늙은이.”
“허허, 언제는 살려주려고 했던 것처럼 말하네. 예끼 이 사람아. 팔이 병신이면 말은 똑바로 해야지. 아, 설마 입도 병신인가? 그러면 내가 미안하네.”
쉬지 않고 나불대는 레오릭을 보며 야를은 고개를 저었다. 저 입은 죽어서도 물에 동동 뜰 것 같았다.
“지금 왜 이런 일을 벌인 거냐?”
야를은 레오릭의 말을 저지하며 기사에게 물었다.
“드워프. 아까 네가 재미있는 말을 하더군. 황금은 생명도 살 수 있다고 했던가?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마.”
기사가 투구 밖으로 유일하게 드러나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야를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더 깊게 캐물을 수는 없었다. 피와 살이 튀는 전장에서는 무기를 맞대는 것만이 정당한 대화였으므로.
야를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기사를 가만히 노려봤다.
‘먼저 들어가? 아니면 들어오는 걸 기다려? 무엇이 최선일까.’
야를의 머릿속에 선택할 수 있는 수십 개의 방안이 떠올랐다. 기사와 자신의 이점을 비교하고, 어떻게 싸워야 최선으로 싸울 수 있는지 검토했다. 그것은 마치 무구를 담금질하는 듯한 신중함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은 길지 않았다.
쿵!쿵!
기사가 랜스 차지를 하듯이 검을 쥐고 달려왔고, 육중한 무게에 땅이 울렸다. 야를은 공성추처럼 돌진하는 기사를 보며 도끼를 쥔 손에 힘을 줬다.
‘들어온다면 받아친다!’
콰앙!
검과 도끼가 부딪치며 굉음이 울렸다. 불꽃이 번쩍이고 기사와 야를은 튕겨나간 검과 도끼의 궤도를 비틀며 다시 휘둘렀다.
“샘솟아라, 무너져라, 속아라! 살아 있는 환영!”
레오릭이 팔을 뻗으며 외치자 기사의 눈앞에 그림자 같은 것이 어른거렸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조잡한 환영이었다. 평소에는 장난용으로 사용하는 마법이었지만, 적재적소에 사용한 소마법은 그 어떤 대마법보다 우월했다.
한순간, 기사의 움직임이 삐그덕거렸다.
“흐아아아아아!”
야를이 기합을 외치며 온몸의 힘을 끌어 올렸다. 단단한 근육이 비틀어지며 미증유의 힘을 만들어냈다. 야를은 그 힘을 그대로 도끼에 끌어 담아 횡으로 휘둘렀다.
콰득!
다시 한번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흉갑이 찌그러지고 그 안의 피륙이 상하는 소리였다. 적어도 갈빗대 한두 개는 부러졌으리라. 야를는 손의 감촉으로 그렇게 판단했다.
“이, 빌어먹을 난쟁이!”
엄청난 고통이 있었을 텐데도, 기사는 움직였다. 검은 현란한 눈속임을 그리며 움직였고, 야를은 재빨리 도끼를 회수하며 뒤로 빠졌다. 그러면서 다음 공격을 어떻게 주고받을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야를이 머릿속으로 그리던 그림은 금세 찢어져 버렸다.
“뒈-져라!”
야를은 순간 기사의 검이 늘어났다고 착각을 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야를이 생각했던 것보다, 검은 길게 뻗어 나왔으니까.
촤악!
“커헉!”
야를이 목을 부여잡았다. 피가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베인 상처는 여인의 음부처럼 벌어져 닫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꼭 목으로 달거리 하는 것 같네.’
죽어가는 와중에도 시덥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저 노인네한테 옮은 게 분명하다. 야를은 그렇게 생각했다.
목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은 야를의 눈에 기사가 쥔 검의 손잡이가 들어왔다. 조그마한 빛을 내는 보석. 그건 야를의 계획에는 없던 물건이었다.
‘마법검이었어. 빌어먹을.’
야를은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억지로 버티며 고개를 쳐들었다.
“이런 젠장할! 야를! 자네가 쓰러지면 어떡해!”
돌진하는 기사를 보며 비명을 지르는 레오릭이 보였다. 기사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모든 주문을 소진한 마법사 하나를 죽이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마법이 없는 마법사는 그저 지팡이나 휘두르는 말라깽이에 지나지 않았다.
“크헉!”
“비, 빌어먹을…….”
레오릭의 뒤편에서는 남작의 병사들이 승기를 잡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모험가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땅에 쓰러져 흙을 씹었고, 병사들은 상처 입은 몸으로 그런 승리의 함성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레오릭의 표정이 일변했다.
“이런 씨벌! 야를. 아직 안 뒈졌지? 만일 살아난다면, 나를 좀 꼭 살려주게나.”
레오릭이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회중시계. 상황에 맞지 않는 물건이었다. 이윽고 레오릭은 회중시계를 손에 든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근처에 기사가 다가왔음에도.
‘그게 무슨 개소리야!’
레오릭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야를이 말을 하려 했지만 입에서는 힉힉거리는 소리만 났다. 성대가 잘려있었고, 피만 울컥 솟아났다.
“약속이네! 꼭 날 살려!”
중얼거리는 것을 멈춘 레오릭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정확히는 레오릭이 들고 있던 회중시계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곧장 야를에게 날아와 깃들었고,
푸욱!
레오릭은 곧 기사의 칼에 심장이 꿰뚫려 죽었다.
‘이런 씨팔. 내가 여기서 죽다니’
레오릭의 죽음을 본 야를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드워프의 강인한 체력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인간이었다면 이미 죽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눈이 침침해…….’
세상이 점점 어두워졌다.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감각은 점점 둔해졌다. 얼굴을 대고 누은 곳이 땅인지 하늘인지 점점 헷갈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이라도 전부 쓰고 오는 건데……. 맥주 마시고 싶네.’
야를은 어두워지는 세상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툭, 숨이 끊어졌다.
***
‘드래곤 가죽’은 나인웰에 위치한 허름한 술집이었다. 왁자지껄한 소리. 야를은 그곳에서 눈을 떴다.
욕박으면 상처입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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