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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 R&D, R&R




“정말 흥미로운 소재야. 정말 흥미롭군.”


물론, 흥미롭다는 것은 ‘파괴의 도구로써 더할 나위없다’라는 말이다. 최소한 이시야마 아즈마의 생각으로는 그렇다. 그의 긴 인생을 따져봐도 지금 만큼이나 충만한 적이 없었다. 네판디가 좌절한다고 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겠지만 당연하게도 네판디 역시 좌절하며, 메이지인 만큼 패러독스에 시달리고, 인간인 만큼 실패한다.


그는 파괴의 도구를 길러내는데 있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자다. 인간을 개조하여 생체 병기를 만들고, 생명을 변형시켜 현대과학이 만들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손에 넣은 소재들은 시시한 것들 뿐이었다. 기껏해봐야 조금 더 튼튼한 인간 정도. 가끔은 테크노크라시의 산물이나 현실교란자들이 남긴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흔한 기회는 아니었다. 물론 일반인을 재료로 쓰더라도 일개 소총 중대 따위는 전멸시켜버릴 병기는 만들어내고도 남았지만 그로써는 불만족스러웠다.


그가 원하는 것은 소규모의 파괴가 아니다.



산업적인 규모의 파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소체가, 그것도 대규모로 생산하거나 수확할 수 있으며 균일한 성능을 보이는 소체가 필요하다. 최근 그에게 연달아 최상의 연구재료들을 손에 넣을 기회가 있었으나 놓쳐버렸다. 복제한 개체도 계몽된 사례가 있으며 네판디로 타락하기까지한 현실교란자인 노하은. 그녀와 협력해 그녀의 클론을 포획하기만 했어도.


그렇게 생각하며 그가 아쉬움을 곱씹는다.


그러나 그가 낙담하지 않고 특유의 알수 없는 쾌활함과 함께 스위치를 누른다. 동시에 그의 앞에 놓여있는, 피가 담긴 비커에 은색 액체가 세방울 떨어진다.


“캬아악!”


그러자마자 그가 내려다보고 있던 철창 감옥 안에서 괴성이 들려온다. 그 안에 갇혀있던 뱀파이어들이 일제히 발광하기 시작하며 철창을 부수고 나오려는 듯 날뛴다. 대략 열 마리 정도 되는 흡혈귀. 같은 장소에서 파티라도 벌이다 온 것인지 비슷한 복장이다. 그러나 복장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그들 모두가 비슷하다. 가족이라기 보다는, 같은 동아리, 같은 취미,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느낌. 괴성을 지르고 철창을 물어뜯는 중에서도 자세히 관찰하면 그것만은 명확하다. 이들은 모두가, 같은 피를 공유하는, 그렇기에 같은 스펙트럼에 속한 자들이다.


역시, 이번이야 말로 고무적인 실험 결과다. 반복해도 예측 범위 내에서 균일한 효과를 발휘하며 -그것은 소재가 균일하기 때문이겠지- 그 본질적인 특성으로 인해 더욱 나은 ‘원재료’를 찾아낼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효과가 증가한다. 그의 연구를 지원해주는 자들이 아주 좋아할만한 결과다. 어쨌든, 그들은 사업가니까.




그레인저는 지금까지 소피아가 이런 표정을 짓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지나치게 쾌활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진지하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긴장하고 있었다. 격리실의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가 얼어붙는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가 격리실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소령님!”


그녀가 남루한 복장의, 이시야마 아즈마의 얼굴을 한 노인을 껴안는다. 그가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알았다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쓰다듬어준다. 그의 ‘형제’가 그렇듯, 그 역시 정정하다.


“누군가 했더니만, 라이언 중위였군.”


그녀가 천천히 포옹을 푼다. 그녀의 표정은 복잡해보였다.


“세상에. 요즘 기술이 이 정도로 발달했는 줄은 몰랐구만.”


그가 그녀의 외모를 살펴보며 말한다.


“죄송합니다 소령님… 처, 처음에는 추적하려고 했는데 결국 놓쳐서…”


“아니, 괜찮네. 이번에는 결정적인 단서가 있으니까. 그리고 다행이구만. 이번에는 나 혼자로는 안되고, 유니언의 도움이 좀 필요하겠어.”


그레인저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묻는다.


“...두 사람이 무슨 관계인지 알려주지 않겠어요?”


“아무렴. 여기서 꺼내서 커피라도 한잔 마시게 해주지 않겠소?”


그렇게 말하며 이시야마가 일어선다.




“제기랄.”


지금은 닥터 소피아 라이언이라 알려져 있는, 라이언 중위가 욕설을 내뱉으며 더러워진 메스를 던진다. 그 옆에서 한치의 차이도 없는 동작으로 수술을 집도하던 두 남성도 손을 거둔다. 그들 앞에는, 불과 몇초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살려내려고 했던 병사가 있었다. 그러나 그 병사는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식어가는 시체가 되어 있었다.


“이시야마 소령님,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합니까?”


그 -최소한 그때는 ‘그’였다- 가 묻는다. 그러나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있었다.


“포위망을 돌파하거나, 구원 부대가 올때까지.”


그리고 지독한 실용주의를 담은 똑같은 목소리가 다시 대답한다.


“다음 수술로 들어가지.”


두 남성이 거의 동시에, 거의 똑같은 동작으로 움직인다. 별다른 장비조차 없는 야전 천막. 천막 밖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신음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그들 중 10%도 살아남지 못해야할 상황이었지만 반 이상이 아직도 살아있었다. 부대가 포위당한지 오래. 전투 병력보다 부상자가 더 많은 판이다. 가벼운 부상을 입은 병사들은 총을 쥔 채 방어선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연합군이 밀리고 있는 전투. 앞으로 몇개월 이후면 전황이 호전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라이언 중위가 두 사람을 바라본다. 두 사람의 생김새나 동작이 똑같다는 것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둘 다 계몽된 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쌍둥이가 아니다.



클론.


한 생명체를 복제하는 일.



계몽된 자를 복제하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통계적으로 볼때 계몽된 자를 복제해봐야 그 열화된 버젼만 나올뿐, 계몽과학을 실천으로 옮기는 개체의 수는 일반인 중 계몽된 자가 나타나는 것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패러다임까지 동일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라이언 중위의 눈 앞에 있는 이 두 남자는 다르다. 유전적으로 구분이 불가능 할 뿐만 아니라 계몽과학의 방식과 수단, 그리고 이해의 방식 마저도 동일하다.


심지어는 누가 클론인지도 알 수 없다. 복제 당시에 기억 및 뇌의 전기적 신호가 완벽하게 동기화되었기에 누가 클론인지, 누가 원본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시간을 돌아가는 것 이외에는 아예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존재한, 가장 완벽한 의미에서의 클론이다. 문제는 그들을 클로닝해낸 기술이 사실상 우연의 산물에 가깝고 아직까지는 재현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지금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라이언 중위가 그들 옆에 놓인 꽤나 거대한 철제 케이스를 바라본다. 이시야마, 정확하게는 이시야마”들”이 개발한 일련의 약물들. 그것을 가지고 안전하게 퇴출하는 것이 그들의 작전 목표다. 하지만 상황이 이래서야 탈출은 커녕 저 케이스를 옆 텐트까지 옮기는 것도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라이언 중위와는 달리 두 이시야마는 침착했다.


“소령님. 걱정되시지도 않습니까?”


“걱정은 소용이 없네.”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한다. 연합군에 일본인이 있는 것도 이상한데, 그들이 군의관, 그것도 똑같은 얼굴을 하고 똑같은 동작에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말을 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에 누구라도 놀랄 것이다. 어쩌면 일본군에 대한 증오를 그들에게 퍼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없으면 지금 살아 있는 병사들 중 대다수는 죽어있었을 것이다. 라이언 중위는 사실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는 아직은 인턴 수준이니까.


포위 당한 상태에서 사상자만 늘어가는 상황.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진창, 시도때도 없이 내리는 비, 덥고 습한 불쾌한 기후, 소독만 할 수 있어도 감사할 지경인 의료기구, 시체에 몰려드는 벌레, 부패해가는 썩은 살점, 떨어져가는 약품, 바닥나기 일보 직전인 탄약. 2차 대전에 있었을법한 그런 흔한 이야기, 아마도 배드 엔딩일 그 이야기 가운데 세 사람이 있었다.




“이야기 도중에 죄송합니다, 감독관님.”


노먼의 언제나와 같은 침착한 합성 보이스가 들려온다. MSF 아말감 컨스트럭트의 응접실이라고 불러야할 법한 장소. 물론 겉모습만 그럴 뿐 실제로는 감마 클래스 차폐 회의실이다. 고도의 현실교란적 조치나 계몽과학이 아니면 염탐하기 극도로 어려운 차폐시설. MSF-44 아말감의 창설 당시 멤버들, 그리고 소피아와 이시야마까지 그곳에 앉아있었다. 차폐시설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그들은 마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는 손자들 같은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지?”


“네. 이전 사건에서 발견된 뱀파이어들의 대략적인 신상 정보를 모두 추합했습니다.”


노먼이 홀로스크린을 통해 사살당한 뱀파이어들의 신상정보를 띄운다. 생포는 소수밖에 하지 못했지만, 전투 요원들의 바디캠을 통해 안면인식 정보 정도는 얻을 수 있었다.


“대략 2, 3그룹 정도로 나뉩니다.”


“나눈 기준은?”


“그룹마다 다릅니다. 대체적으로 지역으로 나눌 수 있지만, 지역보다는 취미, 재산, 사회적 위치 등의 요소 중 한 두가지 정도가 비슷한 경우입니다.”


“아는게 있나요?”


그레인저가 하은에게 묻는다.


하은과 아말감의 나머지 멤버간에는 이상한 거리감이 있었다. 그레인저 -그리고 그녀의 의견에 따르는 에이다- 는 유니언에 대한 위기감, 그리고 호기심으로 인해 그녀가 아말감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하고 있었다. 몰레티는 개인적인 호감, 에이팍의 경우는 명령에 의해서 그렇다. 소피아의 경우는 아예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하은은 이미 죽은 것으로 되어있으니,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될 일이 없다. 그녀의 신분도 외부 컨설턴트로 되어있으니.


하은은 고개를 젓는다. 대신, 몰레티가 단언하듯 대답한다.


“같은 혈통일겁니다.”


“그 말은?”


“같은 선조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습게도 이 자리에서 뱀파이어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은 현장경험이 제일 적은 몰레티다. 그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괴물이 뱀파이어였으니, 그리고 그가 사라진 후의 뱀파이어 사회가 무너지는 모습을 낱낱히 관찰했으니 그럴법도 했다.


“프로제니터의 의견과는 달리… 음, 닥터 소피아에게는 죄송하지만, 뱀파이어는 생물학적인 질병과는 거리가 멉니다. 물론 인간이 뱀파이어가 되는 과정은 전염성 질병과 가깝지만, 대다수의 경우 이미 존재하는 뱀파이어가 새로운 뱀파이어를 택할때는… 일종의 취향이 개입됩니다.”


몰레티가 홀로스크린을 살피며 말을 이어간다.


“자신과 비슷한 변태 살인마, 유사한 예술적 취향, 자신의 자식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의 경제적 수완 등이 대표적인 항목이죠. 다시 말해서 뱀파이어는 일종의 밈 바이러스에 가깝습니다. 이걸 보건대, 이들은 아마도 같은 ‘조상’을 두고 있었을 겁니다.”


“노먼, 확인을.”


“알겠습니다, 감독관님.”


노먼이 홀로 스크린의 정보들을 재배치하기 시작한다. 각 그룹에 나뉜 뱀파이어들이 재배치되기 시작한다. 그들의 나이, 뱀파이어로 변한것으로 판단되는 시점, 그들 사이에서 오간 편지, 텍스트 메시지 및 메신저 내용, 전화의 수신 및 송신 비율을 통해 판단되는 각 뱀파이어 사이의 사회적 관계 등이 표시되기 시작한다. ‘어린’ 뱀파이어들은 그 윗 세대와 금방 정렬되지만 한단계, 두단계 올라갈수록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느려진다.


“그럼, 얘기를 계속해볼까요.”


이시야마가 차를 마시며 말한다.




이시야마가 부상병들을 내려다본다.


전선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50명 정도. 적의 병력은 그 열배는 된다. 적에게도 부상자는 있지만 이곳은 적지 깊숙한 곳이다. 탄약, 식량, 구호물자, 의료품 등 거의 모든 보급품이 떨어졌다. 그가 부상자들을 둘러본다. 당장 내일 지원군이 오더라도 이 중 90%는 제대로된 시설로 옮겨지기 전에 사망할 것이다.


그의 형제가 그의 곁으로 다가온다.


“나도 동의하네.”


“역시 그래야겠지.”


두 사람은 질문 조차 말하지 않고 서로의 의견이 같다는 것을 확인한다. 라이언 중위가 다가와서는 그들에게 묻는다.


“소령님, 죄송하지만 무슨 결정을?”


“만약에 방어선이 돌파되면, 즉시 약품을 모두 폐기할 것이네.”


라이언 중위가 텐트 안의 크레이트를 바라본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의 손에 넘어가면 안되는 것이 틀림 없었다. 특히 주축국의 배후에 네판디가 있다는 주장을 고려하면 더욱 그랬다.


“소각이 제일 좋겠지.”


“그렇지.”


두 사람이 얘기하고는 말없이 텐트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라이언 중위가 그들에게 묻는다.


“혹시 저게 어떤 약품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강화약물이지. 매우 기능적으로 유연하며, 대량 생산이 쉬운. 아마 우리가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있다면 앞으로의 전쟁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걸세.”


“그럼 왜 여기서 사용하지 않죠?”


라이언 중위의 물음에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한다.


“미완성이니까.”


“알겠습니다.”


그가 힘없이 대답한다.




그레인저가 이시야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뱀파이어들이 모두 같은 혈통이라는 가정하에- 완성된 3개의 계보도를 주시한다. 물론 군데군데 빈 곳도 있고, 단서가 없어서 버려진 몇몇 뱀파이어도 있지만 얼추 괜찮은 그림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계보도의 꼭대기로 예상되는 자들이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서 두, 세번째 정도에 해당하는 자들만 발견되었을 뿐이다.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뱀파이어들을 보낸걸까, 라고 생각해보지만 그렇다기에는 숫자가 봐서는 너무 많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시야마가 이야기를 계속한다.




“...”


이시야마가 일어난다.


새벽.


그가 이상함을 느낀다.


그의 형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라면 새벽에 일어난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비슷하게 깨는 것이 보통이다. 해가 뜰때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새벽의 축축한 습기가 기분 나쁘게 발치를 휘감아간다. 그가 간이형 침대에서 내려와 군화를 신는다. 그의 형제는 깊은 잠에 빠져 있는지 지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그가 내는 소리에도 전혀 깰 기색이 없었다.


그가 텐트 밖으로 나선다. 반달이 막 채워져가는 달. 그 빛만이 그들의 주둔지를 비춰주고 있었다. 아마 저 너머에서는 병사들이 공포에 떨며 어둠속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개개별의 전투력은 강할지언정, 물자가 없는 상황에서라면 수가 많은 편이 유리하니까. 그가 부상자 텐트로 다가간다. 의무병도 격무로 인해 텐트 한구석에서 쓰러져 잠든 상태였다. 그가 부상병들을 살핀다. 입구에서 제일 가까운 부상병에게 다가가는 그.


“...”


죽어있었다.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죽을 것이라고 예측은 했었다. 20% 정도였지만 생존할 것이라 생각되어 일단 최선을 다해 살려놓기는 했지만 예측대로다. 그의 몸은 식어 있었다. 의무병에게 지시해서 텐트 밖으로-


어떻게 해야하지.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떠오르는 생각.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들의 끝은 명확했다. 아마도 내일이나 내일 모레 정도면 주둔지 전체가 몰살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니, 그럴 수는 없다.


그럴 수는 없어.


왜냐하면…



그가 부상병들을 둘러본다. 부상병의 수가 멀쩡한 자들의 수를 넘어선 시점에서 이 부대는 전멸이나 다름없고, 임무는 실패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최후의 수단을 동원하지 않는다.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는 둘째치고-



나의 형제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이 그를 가로막는다.




그리고 나의 형제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잠깐, 그렇다면, 그것은 나도 동의하-




그것은, 나도, 내가 동의할, 내가-



그가 돌아선다. 그가 텐트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


총성.


세상에, 지금까지 자고 있었다니.


라이언 중위가 텐트에서 뛰쳐나간다. 공격받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총성의 규모로 보아 마지막 습격이 분명했다. 부상자를 한명이라도 더 대피시켜야 한다. 그가 부상자 텐트로 뛰어가 천막을 젖힌다.


아무도 없다. 누워있는 자들은 아예 죽어있는 병사들뿐.


“이시야마 소령님!”


그가 뛰쳐나가 이시야마 소령을 찾는다. 혹시나 해서 텐트를 다시 들여다-


“!”


그들이 지키고 있던 크레이트가 모조리 열려있다. 몇몇 샘플을 제외하고는 전부 사라진 상태다. 중위가 다시 텐트를 뛰쳐나온다. 때마침 구름이 걷히며 달빛이 주둔지를 비춘다. 주둔지의 유일한 장점인 낮은 언덕 위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제서야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낀다. 총성은 주둔지 내부가 아니라 훨씬 멀리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가 언덕을 순식간에 뛰어 올라간다. 그러나 그가 말을 걸기도 전에 멀리서 벌어지는 광경에 시선을 빼앗긴다. 세 사람이 끔찍한 광경을 지켜본다.


방어선을 떠나 일본군을 몰아붙이는 병사들. 마치 좀비처럼 움직이는 그들. 본능으로만 남아 있는 은엄폐와 사격술을 제외하면 지성이라고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들에게는 정글의 습기와 더위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언덕 위에서 그들이 일본군의 기지를 휩쓸어 보이는 것이 보인다.


몸의 회복이나 자신의 생명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한 움직임. 신체 내에 남은 모든 에너지를 끌어다가 쓰는 동안 간신히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던 장기들이 서서히 기능을 잃는다. 파열된 내장이 봉합된 상처 밖으로 흘러나오고, 간신히 나아가고 있었던 상처에 병균들이 침투한다. 미미하게나마 회복되고 있었던 상처들이 마치 시간이 가속되듯 급격하게 상태가 악화된다.


그러나 병사들은 멀쩡하게 움직인다.


고통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 총알을 맞아도 팔이나 다리가 아닌 몸통이라면 잠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날 뿐. 본능적으로 뿌려대는 눈먼 총알이지만, 어차피 전장의 총알이란 다 그런 마당이라 별다를 것도 없다.


병사들을 생각하는 의술이 아니라, 극한의 실용만을 추구하는 기술. 계몽과학보다는 오히려 흑마술에 가까운 무엇인가.


그 모습을 세 사람이 넋놓고 바라본다. 어느 쪽일지 모를 이시야마가 다른 쪽의 멱살을 잡는다. 라이언 중위로서는 누가 약물을 사용한 것인지, 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형제여! 대체 왜인가! 왜!”


그러나 그 자리에 있는 자들 중,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했다. 어차피 죽어야할, 살려낼 수 없을 몇십의 생명을 바쳐 또 다른 몇십의 생명을 살려냈다는 것을.


그러나 나중에 돌아보건대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했다. 결국 이 순간은 네판디의 탄생으로, 그리고 그로 인해 수백, 수천이 더 죽어갈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힘을 남용한 당신의 형제를 지금까지 쫓아다니고 있다 그런 말입니까?”


에이다가 그의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듯 묻는다. 이시야마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늙은이의 쓸데없는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라이언 중위와 저만 아는 이야기인데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들어주셨군요. 기다리는 동안의 지루함을 덜어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가 완성된, 대략 4~5단계 정도로 이루어진 계보도를 가리킨다. 그레인저가 우려하던 대로다. 바디캠의 영상은 물론이고 돌입전의 내부 스캔 결과와도 숫자가 맞지 않는다. 계보도의 ‘꼭대기’, 다시 말해 모든 뱀파이어들의 선조들이 되는 자가 없다. 모두가 그걸 눈치챈 듯 했다.


“놈들의 내부적인 실험일까요?”


“제일 위에 있는 놈들이 실험을 했다기에는 두 그룹이 너무 다르고, 무엇보다 수가 너무 많습니다. 자기 밑의 수하들을 전부 투입하진 않을겁니다. 놈들은 신중한 생물이니까요.”


몰레티가 반론을 제기한다.


“오히려 외부의 세력이 놈들을 모조리 납치했다고 보는게 좋겠죠.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이 계보도가 의미하는 겁니다. 그 세력은 조상뻘 되는 뱀파이어의 피로 자손들을 폭주시킬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거니까요.”


“그게 가능해요?”


그레인저가 소피아를 쳐다보지만 그녀가 고개를 흔든다.


“최소한 학계에서 인정된 바는 없어요. 뱀파이어의 피가 현실교란적인 구속력을 발휘하는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는 아니에요. 트래디션 측도 비슷할걸요.”


“좋아요. 일단은 그런 수단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있다고 상정-”


“집단이 아니라 개인입니다.”


이시야마가 끼어든다.


“개인?”


“그의 기술을 얕보면 안됩니다. 그는 계몽과학의 산물 뿐만 아니라, 현실교란적인 요소를 사용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뱀파이어까지 포함해서?”


“네.”


“하지만 뱀파이어를 개인 레벨에서 그렇게 긁-“


에이다가 말을 멈춘다. 논리적 결론은 하나뿐이다.


“그의 연구를 지원해주는 조직이 있다, 그거군..”


“맞습니다. 그들이 누군지도 알고 있죠.”


“어떻게?”


“저희 두 사람의 기술력은 비슷합니다. 제가 제 형제를 쫓아다녔으니, 절 포착하는게 더 쉬웠겠죠.”


“어떤 조직이죠?”


그렇게 물으며 그레인저가 하은을 쳐다본다. 대체 그녀가 어떻게 그를 찾아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웬지 그녀가 무언가를 더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뿐만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그녀 혼자 이 정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리가 없다. 분명 하은을 돕는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게 합리적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이시야마가 명함을 책상에 내려놓는다. 그 명함에 선명하게 찍힌 은색 글씨.



PENTEX - R&D SPEC-D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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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트렌드 및 현실 교란적인 요소를 포함한 정보에 근거한 "종말 예측 방법론"에 따르면, 다음 5년 이내로 전세계적 영향을 미칠 대재앙이 닥칠 확률이 75.367%입니다. 소수의 요원들만이 이러한 예측에 대비하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이를 헛소리로 치부합니다.


- Guide to Techn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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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요.


금년 중순 정도를 완결로 목표로 해서 연재 재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