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룰북을 읽는다. 2. 룰북을 읽는다 3. 룰북을 읽는다.
이러면 아무도 안 보겠지?
사실 잘 쓰여진 글이 이 곳 저 곳 많지만 (어차피 누가 댓글에 던져놓겠지?) 그냥 개인적으로 정리해보는 차원에서 써봄. 어차피 무료로 배포되어있고 가장 알기 쉬운 예시는 던전월드일 것이므로 대부분의 예시는 던전월드 기반이 될 것임.
널리 알려지고 정통적인 D&D와 달리 이른바 Play by the Apocalypse Engine이라는 놈은 일종의 TRPG계의 샌드박스같은 놈임. 2판에서 정리된 국면 규칙에 의해서 더 깔끔하고 명확하게 바뀌었는데 결국 기본 골자는 "위험 요소"를 플레이어에게 들이미는 것이 이 게임의 기초이자 전부임.
위험 요소란 것은 몬스터나 적부터, 배반할 가능성이 있는 NPC, 위험한 장소 등등이 됨. 그리고 마스터는 이 게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가 이 위험 요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함. 플레이어들이 믿고 있는 친절하고 상냥한 NPC? 고성능 기계 의수? 위대한 성직자가 만들어놓은 안전한 성소? 기본적으로 모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함.
그러니 기본적으로 MC가 할 일이란 주변에 있는 요소, 사용하는 룰에 따른 장르적 요소들을 살펴보고 그것들을 하나 하나 위험요소로 바꾸고 그 위험 요소의 액션들을 사용하는 것임. 던전월드같은 판타지 활극이라면 위험한 몬스터나 악의 존재, 던전 등이 될 것이고. 아포칼립스 월드라면 황무지 그 자체나, 야만인, 위험한 집단, 자원 부족 등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스프롤이라면 위험천만한 보안장치, 기업의 협박, 믿고 있던 동료의 배신 등이 될 수 있겠지.
이런 장르적인 요소는 필연적으로 (마스터가 아주 창의적이지 않은 이상) 외부 자료 등에 의지하게 됨. 가장 간단히 쓸 수 있는 것은 룰북 등이 되겠고. 여러 가지 매체로부터 얻은 상식 등도 될 것임. 간단히 말해 극에 내보내고 싶은 멋지고 위험천만한 것들을 위험 요소로 삼는 것임.
근데 여기서 중요시해야할 점은 마스터가 생각하는 "멋지고 대적하고 싶은 상대"와, 플레이어가 생각하는 "멋지고 대적하고 싶은 상대"는 꽤 괴리감이 있는 경우가 있음. 예를 들어, 플레이어들은 좀비나 괴물 따위를 칼로 멋지게 썰어제끼는 액션 활극을 기대했지만, 마스터는 중세시대 귀족 정치극을 하고 싶었던 경우는 어떨까?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실 AWE에는 플레이어의 입력을 받아오는 장치가 있음. 의무적으로 사용되는 장치는 아니지만. "여러분들이 북쪽 탑을 향해 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하고 마스터쪽으로부터 플레이어의 입력을 받는 식임. 이걸 테이블에 질문을 되돌린다고 말하는데, 조금 나쁘게 말하면 서술자의 역할을 떠넘기는 것이기도 함. 이런 식으로 마스터들이 살짝 곤란할 때 부담을 조금 경감시킬 수도 있고, 극이 의외의 방면을 향하기도 함.
그럼 이쯤에서 질문이 하고 싶을텐데 "그런 걸 하면 마스터가 스토리의 통제권을 놓치지 않나요?" 라는 것임. 그게 바로 위험 요소 시스템의 핵심인데, 위험 요소는 이게 위험하다만 정해놓은 것이지, 언제 어디서 나오는지는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없음. 그리고 거기까지 정하지 않는 것이 좋음. 특히 위험 요소들을 플레이어들의 입력을 받아서 만들게 되면 ("저는 무시무시한 리치를 쓰러트리는 게 이 모험의 목적이에요") 자연스럽게 드라마틱한 연출이 가능해짐.
TRPG라는 게 이야기의 누적으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란 게 있기 때문에 과거에 이야기에 등장했던 요소가 다시금 주요한 방면에서 부각될 경우 생각보다 호응이 좋음. IKEA 법칙이라고 자기가 만든 것이 좋아보이는 효과도 있고.
하여튼 이 위험요소 제작과 위험요소 액션 사용하기 이 두 가지를 주로 하게 되는데, 이 액션을 플레이어에게 들이밀 때(개인적으로 이 표현이 가장 적당하다고 봄)는 반드시 주의해야할 것이 있음.
바로 반드시 약한 액션부터 시작해서 강한 액션으로 치달아야한다는 것임.
이걸더러 굉장히 느린 펀치라고 하는 사람도 있음. 아무튼 맞으면 아픔. 개인적으로는 심지가 아주 긴 폭탄을 상상하곤 함. 터지면 아픔.
위험 요소란 것은 기본적으로 위험한 것이고, 위험하다는 것은 결국 해를 끼친다는 것임. 따라서 액션은 해를 끼치는 일이 되곤 함. 던전월드의 경우엔 대부분 최종적으로는 HP를 깎는 일에 주력하겠지만, 그것보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음. 주변인이 죽어난다거나, 마을이 지도에서 지워진다거나, 세계가 멸망한다거나 하는?
근데 어떤 마스터가 이런 마스터링을 했다 치자.
"여러분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근데! 사악한 리치가 멸망의 주문을 외웠습니다!"
"60초가 지나자 세계는 멸망했습니다! 모두 100 피해를 입어주세요."
뭐냐 이 똥겜은
그런데 누구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아니, 위험 요소 만들었고(리치) 위험 요소 액션 구사했는데 (PC에게 피해 입히기)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하고.
그럼 이 마스터링의 문제는 무엇이냐, 바로 약한 액션부터 시작해서 강한 액션으로 치닫치 않았다는 것임. 실제로 저런 마스터링을 할 사람이야 없겠지만, 종종 비슷한실수를 하곤 한다. (특히 자기가 원하는 연출을 위해.) 가장 먼저 강도가 약한 액션 : 다가오는 위험의 징조를 보인다. 등으로 시작해서 대응할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함. 그리고 그 대응이 미흡하거나 실패했을 때 바로 전의 액션보다 더 강한 강도의 액션으로 점점 진행시켜나가는 것임. 이 원칙은 결국 AWE의 카운트다운, 던전월드의 흉조에 해당되는 것으로. 커다란 위험이 도래하기 전에 미리 전조를 전진시켜나가는 것을 의미함.
이 원칙의 힘으로 위험 요소는 플레이어 캐릭터의 동기가 되기도 함. 이걸 제때 처리하지 못하면 위험한 일이 벌어지겠구나. 하고. 역으로 이게 플레이어들에게 별로 먹히지 않을 수도 있음. 그럴 때도 마스터는 좀 더 적극적으로 점점 진전시켜나가면 그만임.
어? 위험한 드래곤이 있는데도 내버려둬? 나 이 마을 태운다?
그래도 내버려둬? 그럼 나 이 성도 태운다? 어? 그래도 내버려둬? 세계 멸망시킨다?
이런 암시와, 약한 액션을 취할 때는 그 결과가 알기 쉽도록 알려주는 것이 좋음. (대개의 경우 암시와 은유는 플레이어에게 통하지 않는다.) 뭔 말이냐면, 적어도 마을을 태우기 전에는 "이대로 내버려두면 마을 한 두개는 홀라탕 태워먹을지도 모르겠군요." 라고 말하고, 성을 태우기 전에는 "이대로 내버려두면 주변의 성이나 도시를 침략할지도 모릅니다."라고 서술하고, 세계를 멸망시키기 전에는 "위험한 힘을 손에 넣은 드래곤을 내버려두면 세계를 불태울 것입니다!"라고 얘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임. 직설적으로든 암시적으로든. 개인적으로는 전자를 매우 추천하는 바임.
결국 AWE라는 것은 주변을 이렇게 계속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RPG로서, 그 텐션의 조정을 해나가면서 진행하면 됨. 위험 요소를 플레이어로부터 받아 드러내고, 약한 액션으로부터 슬슬 강하게 끌어올려서 강하게 후려치고,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클라이막스를 끝내고 나면, 잠깐 긴장을 놓고 위험도 낮은 상황을 살짝 진행하면서, 다시금 위험한 상황에 대한 전조를 흘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적되는 이야기를 즐기자.
글을 써놓고 보니 맥아리가 없다.
결론은 뭐냐? 올해 D&D 정발하니 이딴 글 필요없다는 것임.
글 잘썼네. 느린펀치의 다른 내용으로, 마스터는 던월에선 특히 플레이어한테 숨기는게 없어야한다고 생각함. 자기 머릿속에서만 복선이니 비밀기믹이나 짜뒀다가 플레이어가 체크 안했다고 페널티 주는 식은 던월이랑 안맞는듯
배우신 분 글 감사합니다. 왜 던전월드가 초보자용 룰이 아닌지 알 수 있었습니다
본문의 글은 훌륭한 내용이라고 생각함. 던전월드를 잘 하기위해선 위의 내용을 기억하는게 좋음. 근데 꼭 잘 해야만 재밌는게 아니란 것도 내 의견임. 걍 친구들끼리 단발적으로 와장창 재밌게 하기엔 던전월드는 좋은 룰이다
재밌게 하는 게 잘하는 거고 재미없게 하는 게 못하는거임
느린 펀치라는건 다른 룰에서도 써먹기 좋은 강령. 충분한 경고와 그에 뒤따른 커다란 충격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마스터가 활용하는 장치에 대한 신뢰를 제공하기 때문.
나도 던전월드 뿐만이 아니라 다른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함 티알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하는것인 만큼 마스터와 PC간의 소통이 중요한데 느린펀치는 그 과정을 잘 도와줌
첫줄부터 막줄까지 명문(名文)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