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 분열의 시대, 둘.




그레인저가 홀로그램 스크린을 쳐다본다. 스크린에는 Q-44 라고 쓰인 시설의 표지판이 떠있었다. 그 옆의 스크린에는 류 국장이 언제 이 시설을 이관했는지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 있었다. 대략 레콘키스타 작전 직후의 시점. 그 직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개발시설이었다. 네판디의 파괴공작도 보이지 않는다. 


“진.”


며칠째 그 정보에만 매달리고 있는 그레인저를 보며 에이다가 걱정하듯 말한다. 뱀파이어를 폭주시키는 연구에 관한 자료는 반정도 파괴된 시설에서 닥닥 긁어모아 소피아, 그리고 신병이 구속된 이시야마에게 맡겨두었다. 그의 잘못이 수십년 동안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고려하면, 그리고 유니언을 등지고 단독행동을 했음을 감안하면 극형에 가까운 처벌을 받아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식이 -그의 형제가 해놓은- 펜텍스의 연구를 파헤치기 위해 필수적이기에 취해진 조치다.


“에이다. 역시 여기서는 더 얻을게 없네요.”


“진, 더 파고들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에이다가 그녀를 말리듯이 말한다. 


“알면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레인저가 스크린을 거의 노려보듯이 쳐다본다. 


“정말 그럴까요?”


“저희 단독으로만 행동하기에는 너무 위험합니다.”


“에이다, 아말감 밖으로 이야기가 나가는 순간 류 국장의 귀에 들어가는건 시간 문제에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다. 고위 테크노크라트의 눈과 귀는 어디에나 있다. 단순한 감시 디바이스에서부터 고도로 조직된 스파이 조직까지 엄청난 정보망을 통해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 평생 접할 정보를 하루만에 접하고는 한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극도의 효율성으로 필요한 정보를 걸러낸다. 그 정보가 자신을 노린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정보가 부족합니다. 정보는 둘째치고, 그를 고발할 증거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손을 뻗은 곳마다 네판디와 관련이 없는 곳이 없어요.”


오리지널의 하은, 이시야마가 차지하고 있던 시설, 중지된 레콘키스타 작전. 지금까지의 정황 증거는 충분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


그레인저가 잠깐 집무실의 천장을 바라본다.


아니.


아직 하나 남아있었다.




유니언이 괴물들과 싸우는 것은 뒷골목이나 심우주 같은 공간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습성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아니면 아예 인간들의 사회에 숨어 지내야하는 괴물이라면 정말 의외의 장소에도 출몰한다. 예를 들어서, 카지노 말이다.


박수 소리. 경쾌하게 울리는 유리잔. 가볍게 던져진 카드가 부드럽게 테이블에 착지하는 마찰음. 웃음, 안타까움의 탄식, 슬롯머신의 레버가 당겨지는 소리, 신중한 표정의 사람들, 싱글벙글 웃는 사람들, 허탈한 표정으로 나서는 도박꾼들.


그 가운데 유난히 창백한 남자가 있다. 


우습지만 카지노 역시 유니언이 중요하게 여기는, 현실에 대한 전쟁의 최전방이다. 더 빠르고, 인간의 몇배는 되는 감각을 지녔다든가, 우연을 조정할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든가 하는 괴물들은 일반적인 카지노에게 있어서 최악의 고객이다. 물론 카지노를 상대로 돈을 딴다면 그냥 쫓아내면 된다. 현실교란종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일반인에게서 무상으로 활동자금을 확보하고자 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서, 이 창백한 남자처럼.


그는 들어와서 룰렛을 몇번 하고는, 곧바로 플레이어끼리 대결하는 테이블로 향한다. 그는 지난 일주일 동안 근처 카지노의 포커 테이블에서 엄청난 돈을 쓸어 모았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사람의 심리를 읽고 조정할 수 있으며, 초인적인 감각과 손놀림을 지닌 뱀파이어를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기겠는가? 몇판 지나지 않아 그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돈을 잃기 시작한다. 불평하면서도 게임을 계속 하는 그들. 열 게임에 넷, 다섯은 이 남자가 이기며 칩을 쓸어담다시피한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딜러가 교체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캐서린입니다. 서향으로 불러주셔도 됩니다.”


전형적인 메이크업을 한 동양계 여성. 한때 오더 오브 헤르메스에 속해 있었던 그녀다. 그레인저, 류 국장, 그리고 하은의 작전으로 성공적으로 유니언으로 포섭된 그녀는 퀸 딜러라는 유니언 내에서도 무척 독특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샥, 샥, 샥.



카드가 순식간에 섞인다.


그녀가 아무말 없이 카드를 던진다.


첫 두판은, 모두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쉽구만."


뱀파이어의 말과 함께 또 다시 칩의 무더기에 칩들이 더해진다. 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테이블을 떠나지 않는다. 뱀파이어의 현실교란적 능력에 의해 붙잡혀 있는 것이다.


서향이 테이블을 쓱, 둘러본다. 


블랙잭과는 달리 포커로 거머리들을 거덜낼때는 두 가지의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는 거머리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테이블에 앉은 일반 시민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블랙잭과는 달리 딜러가 플레이어를 '이길'수 있는 게임이 아니니까. 한마디로 대리전을 준비 하는 것이다.


두 라운드가 지나자, 그녀는 이곳에 앉은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한다. 그 중 한명을 점찍는 그녀. 한마디로 소신있는 겁쟁이인 사람이지만 그녀의 대리인을 할 능력은 충분하다.


다시 카드를 섞는다.


샥.


샥.


그녀의 증폭된 초감각이 카드를 하나씩 집어낸다. 


하나씩 그녀의 손끝을 스치는 카드를 쌓아간다. 인간의 눈에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다. 고속 카메라로 찍어도 보이지 않을 속도로 그녀가 원하는 대로 덱을 쌓아 간다. 그녀의 현실교란적 능력은 냉전 시대 때 유니언이 개발한 일련의 교육 과정 및 기술을 통해 계몽과학적으로 인정되는 염동력으로 -물론,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변해 있었다. 비용 때문에 컨센서스 편입은 커녕 양산화조차 되지 못한 연구분야지만 이런 식으로 쓰이는 것이다. 카드에 무엇인가 수작을 부려놓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가는 수면자들이 눈치챌지도 모르니까.


대신 동체시력과 단기 기억력을 수십배로 증폭시켜, 라운드가 끝나고 카드를 모으는 순간에 어떤 카드가 몇번째 '층'에 쌓이는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염동력을 통해 손놀림을 보조해 그 덱을 원하는대로 재배열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카드를 만지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상관 없었다. 시작 순간만 기억하면 되니까. 눈동자로도 알아차릴수가 없다. 동시에 모든곳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인공 안구 덕택이다. 이식 받은 것은 반 강제였지만, 상당히 쓸모 있긴 했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잭, 10, 세 장의 카드, 다시 퀸, 10, 잭, 다시 10-



바닥에 카드가 깔린다. 거머리에겐 투페어를 던져준다. 시민에게는 트리플을 던져준다. 바닥에 깔린 카드로는 도저히 시민이 트리플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 거머리가 걸려든다.


"트리플."


시민이 담담하게 자신의 카드를 공개한다. 일반인이라면 안색이 창백해질 상황이지만 그는 그럴 수 조차 없는 몸이다.




"투 페어."


그리고 65분뒤, 거머리는 말 그대로 빈털털이가 되었다. 현실교란자 중에서도 뛰어난 축에 속하는 초감각, 날쌘 손놀림, 인간의 마음을 뒤흔드는 말. 그것은 체계적인 훈련을 통한 심리전, 자신의 대리인인 시민의 정신을 보호하는 간단한 어구의 프로시져, 마지막으로 그녀의 ‘계몽 과학적’인 손놀림 앞에 여지없이 패배하고 말았다.


"제기랄..!"


놈은 그렇게 외치며 떠난다. 먹이라도 찾으러가는 것이겠지. 


"축하합니다. 전 그럼."


그녀가 가볍게 말하고는 테이블을 떠난다. 그녀의 인공 안구는 물론 VDAS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락커 룸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그녀가 카지노에서 분을 삭히지 못한채로 떠나는 뱀파이어의 모습을 감시한다. 다행히 도보로도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다. 



또각, 또각, 또각.


라스 베가스의 어두운 거리를 걷는 그녀. 도시의 CCTV에 연결된 VDAS의 시각 정보가 뱀파이어가 바로 앞에 있는 거리의 코너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준다. 더 이상 탐지가 안되는 것을 보아 아마도 뱀파이어들이 흔히 사용하는 사냥터 같은 거겠지.


그러나 전혀 두렵지 않다. 잘못된 길에서 자신을 구해낸 유니언을 위해서라면. 그녀가 허리춤에 꽂힌 권총을 꺼내든다. 뱀파이어 포획용으로 특별히 제작된 무기다.


“요원.”


그러나 코너를 돌아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뱀파이어의 머리를 밟고 서있는 여성 요원, 에이다였다.


“오랜만이에요.”


그리고 그 옆에서 인사를 건네는 또 다른 요원. 서향이 그녀의 얼굴을 모를리가 없었다. 그녀를 포섭, 아니, 그녀가 알고 있기로는 ‘회수’ 해 온 것은 그레인저니까. 그녀가 감사의 표정을 띄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레인저 요원님. 찾아가려고 했는데, 우연이군요.”


그레인저가 쓴 웃음을 짓는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다 임무니까. 그래서, 지금은 무슨 임무를 맡고 있죠?”


“...컨스트럭트로 가서 이야기 하시죠.”




컨스트럭트라기에는 너무 작다. 그냥 아지트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용 시설로는 차고 넘친다. 카지노 근처로 신속히 출퇴근 할 수 있고 뱀파이어 전용 장비가 가득하며, 심문실이나 감금 시설도 충분히 갖추어져있다.


“오더 오브 헤르메스는 제 태생적인 재능을 현실 교란적인 것으로 해석해 저를 기만했습니다. 계몽 과학적 프레임 안에서는 제 재능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훈련 할 수 있죠.”


서향이 몇가지 문서를 뒤지며 말한다. 


“그래도 냉전 시절의 기술이 도움되니 다행이네요. 그 시절 기술은 온통 음모론에나 나올법한 거라서.”


서향이 문서를 들어올린다. 그녀의 염동력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보조 디바이스나 약물에 관한 지시 사항들이 적혀있는 문서인 것이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녀가 인젝터로 피부에 약물을 주사한다. 주사한 부분의 피부 주위의 혈관이 잠깐 초록색으로 빛나다가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녀가 손을 들어올린다. 인젝터가 그녀의 손길을 따라 공중에 떠오른다. 


“약물 주입 스케줄을 맞추는게 일과죠.”


슥, 하는 소리와 함께 의료폐기물함으로 들어가는 인젝터.


“놀랍네요. 실제로 보는건 처음이에요.”


반중력 장치라던가 키네틱 프로젝터 같은 것을 통해 공중에 물체를 띄우거나 조작하는건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약물과 보조적인 디바이스의 도움을 받고 있더라도- 외부장치가 아닌 인간의 몸 자체가 그런 힘을 보여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유니언이 개발한 냉전 시대의 기술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유니언 내에서도 도시 전설처럼 전해지는 것들. 초능력, 악마를 소환하던 마녀를 유니언의 충실한 요원으로 바꿔놓는 수준의 세뇌, 공중을 나는 항공모함, 심해를 헤엄치는 수천미터짜리 생물 병기, 다중계층 수면 요원까지. 그리고 그 기술이 이어져 지금의 서향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네. 다시 복귀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기억을 잃은건 유감이에요.”


“아뇨. 괜찮습니다.”




“거짓말.”


뱀의 목소리라고 할만한 것이 속삭인다. 마치 그녀의 어깨 위에,



-악마Avatar가 앉아 있는 것 같다.



“기술 같은건 아무 상관이 없잖아? 네 능력은 그냥 내가 힘을 빌려주고 있는 거라고.”


그 목소리가 조롱하지만 서향은 태연하게 그 말을 무시한다. 원래 표준화되지 않은 유니언의 기술은 이런 종류의 부작용을 불러온다. 환청, 환상, 편두통, 갑작스런 발작 등. 그녀는 이미 주의사항을 읽어보았고, 이미 보고까지 마친 상태였다. 상부에서는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그녀는 그 목소리를 그냥 무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능력은 유니언의 기술에 기반한것이다. 오른팔에 깃든 악마 같은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니, 없어야한다. 


“그리고 그 주사랑, 네 몸속에 있는 기계들이 정말 네 능력을 도와주는 것 같아? 그건-”


그녀가 그 목소리를 억눌러버린다. 그러면서도 겉 표정은 태연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그레인저는 일종의 죄책감을 느낀다. 물론 그레인저 본인이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그녀를 포섭하는 작전을 수립한 것은 그레인저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서향이 애초부터 유니언의 요원이라고 믿게 하는 것이 고문이나 몇개월 정도 걸리는 고통스러운 세뇌보다는 낫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 보니 그 어느쪽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어쨌든 서향의 입장에서 그레인저는 자신을 안전하게 회수해온 은인이자 고위 요원이기도 하다. 


“당신의 현재 임무에 대해서 설명해 줄래요?”


“류 국장님의 명령에 따라 뱀파이어들을 포획하고 있습니다.”


그레인저와 에이다의 시선이 교차한다. 뱀파이어를 포획하고 있다, 는 말. 그들이 쫓아온 단서와 일치한다. 대량의 뱀파이어로 벌이는 실험과 그 실험을 위한 장소의 제공.


“뭔가 문제가 있군요?”


서향의 질문에 그레인저가 고개를 끄덕인다. 


“요원, 미안하지만 저희와 같이 가줘야겠어요.”


“국장님께 받은 명령이 우선합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가 휘청거린다. 언제 나타난 것인지, 하은이 그녀의 뒤에서 그녀를 기절시킨 것이다. 그녀가 쓰러지기 전에 하은이가 그녀를 받아낸다. 두 사람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하은이 반론을 예상한 듯 먼저 말을 꺼낸다.


“강제로 데려가지 않으면 먼저 류 국장에게 보고할겁니다. 통신이 안 되는 곳에 구금하죠.”

그녀의 행동은 지나질 정도로… 합리적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긴 어떻게 찾았죠?”


“유니언 만큼이나 현실 교란자들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도 훈련을 받은 몸입니다.”


나름의 방법으로 알아 냈다는 말. 하지만 그레인저의 직감이 무엇인가를 경고한다. 그녀는 알아낸게 아니다. 마치 힌트를 받고 행동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다. 그 힌트를 알려주는게 누구인가?




서향이 깨어난다. 당황하지는 않았다. ‘회수’된 자신이니 아는 것이다. 유니언의 내부에도 꼬이는 작전과 끝없는 암투가 있다. 이것도 당연히 그 중 하나겠지.


“...”


옷 안쪽에 이물감이 느껴진다. 서향이 옷깃 안쪽으로 손을 넣어 쪽지를 꺼낸다.




당신은 유니언 소속이 아닙니다.




프린트된 글자. 유니언에 대한 충성심의 시험인가. 그러나 쪽지 뒷면에 무엇인가 인쇄된 사진이 있다. 신경계 임플란트. 하나는 서향이 “회수” 되었을 때 적출 한 것. 하나는 지금 그녀에게 외과적으로 삽입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나 첫번째 임플란트는 그녀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그 밑에 무엇인가 써있다.



기밀 데이터 베이스 엑세스 코드다. 자신의 접속 권한을 훨씬 뛰어넘는.



위잉-


문이 열린다. 그레인저 감독관이 들어온다. 재빠르게 쪽지를 품속으로 숨기는 서향. 


“미안해요.”


“아뇨. 괜찮습니다. 이유가 있으시겠죠.”


“맞아요.”


그레인저가 들어온다.


“류 국장에 대한 내사가 진행되고 있어요. 당신의 증언이 필요해요. 그리고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기도 하고.”


“내사 말입니까?”


“네. 대충 반년정도 진행 됐습니다.”


물론 전부 거짓말이다. 내사가 진행되었다는 핑계 하에 그녀에게서 정보를 뽑아내기 위한 술책이다. 


“당신의 정보단말을 비롯해 신체의 제한은 전혀 없어요. 단, 류 국장에게 말하는 건 금지에요. 감시 상태가 끊기는 순간 그에게 연락한걸로 알고 있겠어요. 상부의 지시니까.”


서향은 납득한다. 유니언에 있으면서 감시당하지 않는 다는 것은 헛된 생각이다. 


“알겠습니다. 다만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텐데…”


“괜찮아요. 단지 통신과 감시가 완벽히 차단된 곳에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 데려온거니까. 지금 몇가지 조사하고, 다시 데려다드리도록 할게요. 나중에 저희가 방문해서 감시의 눈이 닿지 않는 방식으로 증언을 더 받을 수도 있고요.”


“감사합니다.”




-위잉.


문이 열린다. 그 옆에는 하은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로시 요원?”


“요원이 아닙니다.”


그녀가 잘라 말한다. 하은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한다. 어깨보다 약간 아래의 옷깃. 그녀가 쪽지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더니 손을 뗀다. 하은이 한다기에는 조금 어색한 동작이지만,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서향이 즉시 눈치챈다.


그 쪽지를 준 것은 하은이다.


하은은 더 이상 유니언의 요원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는 외부인의 자격으로 있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의심이 솟구쳐오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을 납치하는 일에 투입된 하은이 그런 쪽지를 준데다가,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공식적으로 유니언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왜? 어째서?




“보셨습니까? 눈동자의 움직임. 순간적인 신체 반응. 의심이 시작되었습니다.”


퀸란의 조언이 시작된다.


“정말 다행입니다. 냉전 시대의 엑세스 코드를 제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지는 몰랐네요.”


뭐가 어찌됐든, 하은은 퀸란의 수단에 대해서는 신뢰하고 있었다. 퀸란은 신뢰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의 정신적 자산은 과연 음모 그 자체인 인간의 것이라 할만 했다. 그가 가진 자신은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그녀는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녀가 큰 일을 벌일수록 좋죠. 그럴수록 그레인저 감독관에게는 더 큰 증거가 주어지고 더 큰 의심을 가지게 될겁니다.”


하은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려다 만다. 



그리고, 그레인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오… 조심하십시오, 요원. 조심하지 않아도 상관 없지만 늙은이 취급 당하기는 싫거든요. 항상 참고하셔야 합니다. 불꽃놀이는 쇼일 뿐입니다. 불꽃놀이의 그림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중요하죠.”


세 사람이 복도를 걸어간다. 제일 앞서나가는 그레인저 뒤로 서향이 걷는다. 그녀가 정보 단말을 꺼내 무언가 검색한다. 아까의 엑세스 코드다.


임플란트 정보가 단말 화면에 출력된다. 


“...”


그녀에게 지금 이식된 임플란트는 텔레키네시스를 조정하는 종류가 아니라, 억제하는 종류다. 그녀에게서 ‘적출한’ 것으로 되어있는 임플란트는 아예 모양만 있는, 더미 임플란트다.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다.


텔레키네시스를 유니언의 기술로 조정한 것이 아니라,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트래디션에 자신을 침투시키기 위해 그 형태를 따라하게 해줄 기술의 임플란트가 아니라, 그냥 아무 기능도 없는 더미 임플란트였던 것이다.


어떻게 된 거지?


의심이 솟구쳐오른다.


정말인가?


그렇다면, 왜 억누르고 있는거지?




“이게…”


“뭐죠?”


그레인저가 고개를 돌리지만 그 전에 서향이 스크린을 옆으로 넘긴다. 카지노 스케쥴이 화면에 뜬다. 


“아닙니다. 스케쥴이 조금-”


그들이 격납고로 가는 통로로 향한다. 문이 열린다.


“위잉-”


문 앞에는 그들 중 누구도 보고 싶지 않던 얼굴이 있었다.


무표정한, 인종을 특정할 수 없는 인종의 얼굴. 양복 밑으로 드러나는 단련된 몸. 선글라스 너머로도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남자.


“류 국-”


그가 손에 들린 작은 스위치를 누른다. 동시에 파직, 하는 소리가 들리며 서향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그녀의 안구에서 작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몸이 발작한다. 


“요원!”


“설마 인공안구가 진짜 눈의 역할만 할 거라고 생각한건 아니겠지.”


당연하다. 전향해온 자에게 그런 걸 이식했다면 시각 정보를 통해 그녀를 감시하고 있을 것인데, 하필 그 가능성을 놓쳐버렸다. 감시가 끊긴 이상,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신경계에 이식된 인공안구와 임플란트를 쇼트시키면 신경계 자체가 말 그대로 마비된다. 영구적으로.


“성공적인 포섭 작전을 이렇게 실패시키다니. 그레인저 감독관, 실망스럽군.”




역시.


맞는 말이었구나.


서향이 흐려져가는 정신 속에서 그들의 말을 듣는다. 하은의 말이 맞았던 모양이다. 이제는 자신이 믿던 것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조차 없다.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 정말 그녀는 유니언의 요원이었다가 회수된걸까? 아니면 정말 가능성 넘치는 헤르메틱이었던 걸까? 아니면-



“내 말이 맞지?”



그녀의 악마가 속삭인다. 


“다 거짓말이라니까.”


그녀의 정신이 몸부림친다.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 지금까지 어떤 것들을 봐왔는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어떻게 타자를 해석했는지. 자신을 정의하는 것을 그러모으기 위해 몸부림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레인저. 요원임을 상기시켜준다는 작전은 네 아이디어였다.”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뭘 숨기려는거지?”




류 국장의 애매한 말이 눈에서, 아니, 텅 빈 안구에서 피를 흘리는 서향의 귓가에 울린다. 그녀의 질문에는 그 어떤 것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네 믿음은 전부 주입된거야. 네 스승이 가르쳐주는대로 믿었고, 그 다음에는 유니언의 요원들이 가르쳐주는대로 믿었지. 바보아냐?”


악마의 독설. 


환청이 아니다.


신경계가 죽어가는 마당에 또렷이 들린다면 의학적인 증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제 알았어?”


손발을 움직이려한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다. 그 정도가 아니라 목 아래로는 아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운동 신경계 전체가 쇼크로 인해 파괴된 것이다. 전신마비. 이대로는 프로제니터나 Q Division의 실험재료가 되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잘 아네.”


그녀의 어깨위에 무엇인가 올라앉아있는 것 같은 감각. 그 감각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애초에 몸으로 느끼는 감각이 아니니까.


“당연하지. 살아 있기만 하면 자기 자신의 생각은 들을 수 있잖아?”


너 같은건 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불 성설이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으니까. 


“받아들여.”


그 목소리가 명령한다.


아니.


서향 자신이 스스로에게 명령하는 걸까.


어차피 선택지는 없다.


만약에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면, 정말로 믿을 수 없게 만들어주는 수밖에.




“그리고 이쪽은… 꽤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군.”


류 국장이 하은을 쳐다본다.


그레인저의 속이 뒤틀리는 것 같다.


들켰다.


완벽히.


그녀가 재빨리 신경통신망으로 보안 체계를 뒤진다. 류 국장이 들어왔다는 기록은 없다. 어떻게 들어온거지. 아니, 애초에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건 아닐까?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파괴된 의체가 설마 정말로 디코이였을 줄은 몰랐군.”


그러나 대화가 더 진행되기도 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서향이 바닥에서 일어난다.



그녀의 움직임은 이상하기 그지 없다. 한쪽팔은 전신 마비된 사람처럼 늘어져 있었지만 그들을 비난하듯 가리키는 다른 쪽 팔은 마치 실에 매달린 듯 괴상한 각도로 뻗어있었다. 양쪽 다리도 그렇다. 왼쪽 다리는 살짝 무릎이 굽혀진채로 질질 끌리듯이 움직이고 있었고, 오른쪽은 간신히 어색하게나마 보통의 사람 처럼 걷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알아차린다. 그녀는 몸의 근육이 아닌, 자신의 현실 교란적인 능력을 이용해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깨진 인공 안구에서 은색 액체가 흘러내린다. 희무레해진 그녀의 다른 쪽 눈동자가 그들을 응시한다.


“요원. 잠깐-”


그레인저가 그녀를 진정시키려 한다. 그것도 그럴것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몇 안되는 단서니까. 


“필요 없어.”


그녀가 날카롭게 말한다. 류 국장이 말 없이 권총을 꺼내 그녀를 향해 겨눈다. 총성이 울린다. 그러나 벽에 총알이 부딪히거나, 서향이 탄에 맞고 쓰러지는 일은 없었다. 대신 공중에 뒤틀린 납탄만이 괴상한 모습으로 떠있었다.


“당신들도 거짓말이고, 당신들의 말도 거짓말이고, 생각해보니까 내 생각과 믿음도 거짓말이야.”


그녀가 흉측한 몰골로, 소름끼치는 자세로 걸어온다. 실이 부분 부분 끊어진 마리오네트. 대학생이 졸업 프로젝트로 만든 엉성한 보행 미니어쳐 같은 모습이라 생각하면 우습고, 그 움직임에 인간의 근육의 힘이 전혀 쓰이지 않고 오직 현실교란적인 힘만이 쓰인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려울 광경.


“너 빼고는, 믿을만한 게 없네.”


그녀가 오른팔에 깃든 그녀의 악마Avatar를 불러낸다. 


“드디어 믿네? 어떻게 해줄까?”


“데려다 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에게?”


“믿을 수 없는 사람들 천지니까… 어차피 믿을 수 없으면, 비슷한 사람들한테 데려다줘.”


“원하시는대로. 그런데, 진짜 그냥 가게?”


서향이 씩, 하고 웃는다. 그녀가 손을 뻗는다. 그 끝에는 류 국장이 있었다.


“쐐애액!”


충격파 같은 것이 뻗어나간다. 류 국장이 서있던 곳이 박살난다. 문과 벽이 우그러지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튕겨나간다. 그러나 공간의 왜곡을 절묘하게 피해낸 그가 전혀 당황하지 않은채로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며 그녀에게 돌진해온다.


“탕!”


총탄이 날아온다. 또 다시 공중에서 막힌다. 그 찰나의 틈을 타 그의 몸이 그녀에게 쇄도한다. 서향의 현실교란적인 능력이 공간을 비튼다. 그러나 정말 간발의 차로 그가 그 왜곡을 피해낸다. 피해낸게 아니라, 원래부터 그곳으로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있던 공간을 발로 후려치는 그.


“콰직!”


그러나 서향의 주위가 왜곡되며 그녀의 모습이 아예 사라져버린다. 복도의 벽, 그것도 강화 콘크리크로 된 벽이 그의 발차기로 박살난다. 거의 관성을 무시하듯, 아니, 간단하게 무시해버리고는 반대편으로 전력으로 질주하는 류 국장. 마치 서향이 어디에 나타날지 아는 듯, 그가 일렁거리는 빈 공간을 내려친다.




하은이 그 광경을 눈에 담는다. 


어디선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인간의 몸으로 거의 불가능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류 국장이라하더라도, 인간의 한계에 접근할지언정 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관성을 무시한다. 회전한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무시한 것이다. 맨손은 커녕 무기를 써도 박살낼 수 없는 강화 콘크리트가 박살났다. 웬지 저 상태라면 총알마저 빗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냐, 


본게 아니야.



보기만 한게 아니라-




“아악!”


서향의 비명이 울려퍼진다. 물질 공간으로 다시 나타나는 그녀가 류 국장의 발에 차여 바닥에 내팽겨쳐진다. 나이프가 날아간다. 하나는 공중에서 막힌다. 그러나 그 뒤에 날아오는 것은 막지 못한다.


“악!”


다시 한번 비명. 그녀의 어깨에 박힌 칼날. 그녀가 류 국장을 쏘아본다. 


“...”


그리고 간단하게, 그녀가 사라져버린다. 그와 함께 소란은 순식간에 정리된다. 류 국장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똑바로 서서 수트의 깃을 정리한다.


“류 국장. 감사부에 고발하겠어.”


“고발?”


그레인저가 대답한다.


“레콘키스타, 노하은 요원의 오리지널, 이시야마 및 네판디와 결탁이 의심되는 조직에게 조력 제공, 그리고 캐서린 요원까지. 네가 건드리는 건 뭐든지 네판디로 이어지는 모양이야. 그렇지?”


그녀의 말에 그는 대답하지 않고 돌아선다.


“하극상이로군.”


그의 모습이 문 너머로 사라진다.


“...”


그레인저가 그 모습을 쳐다본다. 이제 더 이상 돌아갈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인과 증거가 없다. 방금의 증거는 사라졌고, 하은의 증언은 신빙성이 없다.



“이런, 안타깝군요. 저분이 더 큰 일을 만들어주길 바랬는데. 역시… 유니언의 고위 요원들의 눈치는 여전하군요. 훌륭하다고 평가해야겠네요.”



퀸란이 안타깝다는 듯 말한다. 그러나 그 뒤로 또 다른 조언이 이어진다.



“하지만 저희에게는 패가 하나 더 있죠.”



하은이 그레인저에게 다가간다.


“확보하기엔 좀 위험하지만, 증거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렇게, 그녀가 속삭이듯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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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은 20화 "개종"에서 나왔던, OOH 였다가 포섭세뇌된 캐릭터입니다.


원래 서향(캐서린)은 일종의 라이벌 격으로 설정된 중요한 캐릭터였는데, 다 쓰다가는 완결을 못낼것 같아 마구 컷 시켰습니다... 이름은 중국인 지인에게서 따왔습니다.


격주 연재를 유지하기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