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RPG를 시작한 초보 플레이어들이 종종 하는 실수는 '자신만의 특별한 캐릭터'를 만드는 데 너무 집착하는 거다.
특별한 캐릭터가 나쁜 건 아니다. 실제로 모든 PC에게 '한 가지 특별한 것'이란 요소를 덧붙이게 하는 룰북(13시대)도 있고, 플레이어 캐릭터(이하 PC)는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특별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특별함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본인이 생각한 특별한 요소를 덕지덕지 붙인 PC나 상식에서 과하게 벗어난 캐릭터가 나오면 문제가 되기 시작하는데, 이게 RPG의 근본적인 요소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RPG는 Role-Playing Game, 역할 '연기 놀이'다.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상대 배우와 합을 맞추는 것이듯이, RPG의 주된 재미 또한 PL들이 서로 합을 맞추고 주고 받는 데에서 온다.
(코미디는 잘 주고받는 연기의 표본이다)
서로 주고받기를 잘 하려면 뭐가 중요하냐면
1. 각 플레이어가 본인의 PC에 충실해야 하고
2. 참가자(마스터+모든 플레이어) 간에 심상 공유가 잘 이뤄져야 한다.
PC에 충실한다는 건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깊게 이해한다는 거다.
이 캐릭터라면 이 상황에선 이렇게 행동하겠지, 이런 말을 들으면 이렇게 대답하겠지. 이게 자연스럽게 되면 행동에 막힘이 없어진다.
자기 PC를 잘 이해했으면 다음엔? 각자가 이해한 걸 서로 공유해야 된다.
투명성 착각(illusion of transparency)라는 개념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걸 상대도 알 거라는 착각. 물론 실제론 그렇지 않다.
RPG를 하다보면 종종 플레이어간에 말이 어긋나거나 캐릭터 간 행동이 묘하게 안 맞물리는 때가 있는데, 심상 공유가 잘 안 될 때 벌어지는 일이다.
내가 이렇게 말/행동하면 쟤가 이렇게 반응하겠지, 이런 행동을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겠구나.... 이게 잘 되면 상호작용이 매끄럽게 되고, 이야기가 물 흐르듯이 진행된다.
그런데 위에 말한 '특별한 요소를 덕지덕지 붙인 캐릭터/상식에서 과하게 벗어난 캐릭터'는 이게 힘들다.
플레이어도 사람이다 보니까 표현력과 연기력에 한계가 있다.
연기천재라면 모를까 대다수의 사람은 전형적인 캐릭터 연기도 어려워하는 실상이다. 그런데 초보자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특별한 요소들을 풍부하고 흥미롭게 표현할 수 있을까? 90%는 못 한다.
거기서 그 요소들을 표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캐릭터/NPC를 깎아내리거나 도구처럼 이용하며 자캐딸을 치게 되면 소위 말하는 라그나 - 불쾌한 플레이어/트롤러가 되버린다.
설사 본인은 잘 이해했다고 해도, 만든 본인도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를 다른 사람이 잘 이해할 리가. 제대로 이해를 못 하니 당연히 합 맞추기도 힘들다. 이런 상태에서 플을 진행하면?
플레이어들은 각자 캐릭터의 입을 빌려 설정이나 과거를 나불거리고, 상호작용도 제대로 안 이뤄지는 집단적 독백 상태가 되는 거다.
(집단적 독백의 예시)
애니 캐릭터같은 걸 들고 오면 저런 상태가 되기 쉬운데, 모르는 사람은 '~가 누군데 씹덕새끼야' 이런 반응을 보이기 십상이고, 설령 알아도 그 캐릭터가 플레이 내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냐는 별개라 그렇다. 반지의 제왕에서 미소녀 여고생 닌자가 호에엣 거리면 보는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이 들겠냐......
RPG는 PC들이 주인공인 이야기이며, 철저하게 그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떤 멋진 대사나 굉장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 자체로 특별한 인물이란 거다. 그렇기 때문에 과하게 특별함에 집착해서는 되려 극의 집중도를 분산시키고 어그러트리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고로, 특별한 요소가 덕지덕지 붙여져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보다, 전형적인 모습에 한 가지 특별한 요소를 붙여서 개성을 살리는 게 본인에게나 주변에게나 훨씬 좋을 수 있다... 는 게 결론.
세 줄 요약
1. 특별한 캐릭터에 집착하지 말고
2. 본인이 잘 연기할 수 있고
3. 같이 하는 사람도 잘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를 하자
좋은글추 - dc App
자캐딸치는 짹짹이들한테 보여주고 싶네
막짤추. 설명만큼 짤이 훅 와닿네
그래선지 오히려 평범한 캐릭터가 낫더라. 적당하게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