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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 사이토카인 폭풍.




사이토카인 폭풍: 인체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였을 때 면역 물질인 사이토카인이 과다하게 분비되어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현상. 사이토카인이 연쇄적으로 더 많은 사이토카인 반응을 불러와, 42도의 고열과 과도한 면역반응을 불러와 병원체를 억제하지만 인체의 심각한 손상을 야기할 수 있다.




“한푼만…”


“우리 자식 먹일 돈도 없수다.”


애처로운 구걸, 그러나 냉정하게 거절당하고 만다. 거절당한 남성이 포기하고 건물 구석으로 물러난다. 도시 전체가 홈리스로 바글거리고 있기 때문에 바람이 들지 않는 지하철 역 지상층이나 교회 정문 같은 곳은 이미 꽉 찼다. 그가 공사장 폐기물에서 주워온 가림막으로 몸을 감싼다. 불쾌한 합성섬유의 냄새가 코를 마비시키는 것 같다. 


도시 전체가 죽었다.


거리의 상점들은 속속들이 문을 닫고 있고, 사람들의 지갑은 열리지 않는다. 거기에 이번 겨울은 이례적으로 추울 것이라는 예상마저 있었다. 그가 고층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깨닫는다. ⅓ 정도가 아예 불도 켜지지 않은 상태다.


그가 한숨을 쉬며 잠을 청한다. 집 없이 처음으로 나는 겨울이다. 




21세기 초는 사상 최악의 대공황으로 막을 내렸다.


이미 불안정해지고 있었던 주식시장은 그냥 시작에 불과했다. 신기술과 고성장으로 무장한 21세기형  기업들에게 어마어마한 규제가 떨어졌다. SNS 회사들에게는 개인 정보 위반이라는 죄목이 붙었고, 바이오테크 기업에는 기술 윤리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며 성장동력이 반토막 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기존 기업들의 비리 보도가 급격히 증가했으며 세무조사의 비율 역시 증가했다. 거기에 전 세계의 미디어가 아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다수의 다국적 기업의 이미지를 깎아가고 있었다. 대다수의 주식시장이 50% 이상 폭락했고, 08년도 금융 위기는 상대가 안될정도의 변동성을 보여주며 말 그대로 바닥을 찍었다. 


그러나 문제는 경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사기업만 망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십개의 공기업 및 정부가 관여하는 프로젝트들도 재원 부족으로 모두 쓰레기통에 쳐박혔다. 무직자에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생활비 및 식량 지원을 위한 재원도 없는 판에 그런 프로젝트들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정치판은 점점 사상과 더 밝은 미래 대신 당장의 돈벌이를 걱정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다국적 기업들이 망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수익이 급감한 미디어 -정말 이상하게도 공영 방송이 먼저- 회사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 뿐만 아니라 수많은 교육기관들이 줄어드는 학생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폐쇄되었다. 



NWO와 신디케이트 간의 내전의 결과다. 신디케이트는 NWO가 운영하는 수많은 권력기관과 공공 프로젝트, 교육 기관 등의 돈줄을 끊어버리고, NWO는 신디케이트 산하의 모든 경제기구에 철퇴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마비되고, 사회구조가 무너진다. 


이터레이션 X와 프로제니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더 돈을 많이주고, 자신들을 인정해 주는 편으로 향했다. 군인들과 관리자들은 NWO와 신디케이트가 멍청한 내전을 멈추고 원래의 질서로 복귀할 것을 요구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상상하는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간헐적인 전투나 테러, 또는 제 3세계에서의 소규모 대리전은 있었지만 도시 하나를 두고 유니언의 초과학 병기들이 전진하며 시가전을 벌이는 일 같은 건 없었던 것이다. 세무조사는 있어도 계엄령은 없었다. 예산 감축은 있어도 납세 거부는 없었다. 대공황이었지만 1928년의 대공황보다 끔찍한 것은 아니었다. 잘 해봐야 그것과 비슷한 정도.


유니언이 내전을 벌인다고 해서 세계가 멸망하는 것 같은 일 따위는 없었다. 


어쨌든 둘 중에 하나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유니언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지 않거나


유니언이 세계를 멸망시키기에는, 너무 그 세계와 하나가 되어버렸거나.




“-따라서, 현실교란종들을 대중에게서 은폐하고 그 세력을 억제하는 일은 현재 상황에서는 힘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 심포지움의 회의실. 오직 NWO 소속의 요원들만으로 이루어진 이 심포지움은 패러다임 장악보다는 괴물들의 정보를 차단하고 때에 따라서는 현실에서 제거해버리는 임무를 맡고 있는 심포지움이었다. 


심포지움 감독관이 보고를 듣고는 표정을 찌푸린다. 


“결국 선택의 문제구만.”


그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차라리 내전에서 발을 빼는 건 어떻습니까?”


“아니, 그건 안돼.”


감독관이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물론, 내전에서 발을 뺄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상부의 눈 밖에 나 그들의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지원조차 끊겨버릴 것이다. 그 뿐만 아니다. 역사적으로 전쟁이야말로 군사조직이 승승장구 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니까. 그렇다면 선택은 하나 뿐이다.


“자산을 재배치한다.”


그 말은 곧 초자연체를 감시, 견제, 사살할 예산, 장비, 인원을 빼서 내전에 투입한다는 것이다.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웬만한 위험에 맞닥뜨린게 아니라면 그 말에 동의할 요원은 없을 것이다. 같은 테크노크라시 정도는 되어야, 라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그것은 대중의 안위를 포기하고, 사상Paradigm의 대결을 선택한다는 것.


“그렇다면… 본연의 업무는 어떻게?”


“제일 자산을 덜 잡아먹고 있는게 뱀파이어들이지?”


회의실 안에 침묵이 흐른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현재… 저희측으로 포섭해올 세력이 더 없습니다만…”


“있지 않은가?”


감독관이 다시 한번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죄송합니다, 감독관님. 괴물들에 적대적인 현실교란자들도…”


“아니, 대중들이 있지 않은가?”


“예?”


“두번 말해야겠나?”


감독관이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확고해보였다.


그는 무엇도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럼… 다른 아말감과 협조해서?”


“아니. 우리 독단으로 한다. 각 국가의 정보기관, 군 방첩기관, 그리고 바티칸에 정보를 흘려라. 크로이스터들의 행동 감시도 임무에서 제외한다. 하고 싶은대로 하라지.”


“...알겠습니다.”


휘하 요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21세기가 된지도 20년이 지났다. 이쯤이면 언제까지나 유니언이 하나하나 봐줄 여유가 없어. 그들이라고 마구 정보를 공개하겠나? 우리랑 똑같을거다. 정보를 차단하고 주제넘게 나서는 놈들은 불태우겠지.”


그가 확고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이야기한다.


“...성...전을 다시 일으키는거다.”


세컨드 인퀴지션.


뱀파이어들이 두려워할 또 하나의 움직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유니언이 그들을 모조리 쓸어버려야겠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정 반대의 이유, 다시 말해 유니언이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하기에 역부족의 상황에 몰려버렸기 때문에.




“저기있다.”


젊은 에테라이트, 토니 코프랜드가 그의 ‘투시경’을 통해 테크노크라시의 컨스트럭트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를 사사건건 방해하던 테키놈들이 내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토니와 그의 동료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지금까지 머리통을 날려버리려고 해도, 이 도시를 담당하는 아말감의 경호수준이 너무 탄탄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들끼리 싸우느라 본거지도 날려먹고 임시거처에 들어가 있는 요원들의 모습이 파란색 실루엣을 통해 보여지고 있었다. 히트마크도 없고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온갖 종류의 장비도 두고온 것인지 지금은 별로 갖춘게 없어보였다. 지금이라면 확실하게 그들을 죽이고 이 도시의 주도권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준비됐지?”


“당연.”


동시에 그들이 타고 있던 트럭 우측면이 열린다. 토니와 그의 동료들이 타고 있는 메카니컬 골렘 아머가 튀어나온다. 마침 시간도 밤인데다가, 이 근처의 인적은 드물기 그지 없어서 전혀 외부인의 눈을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돌진해오는 골렘 아머에 은신처의 문이 형편없이 우그러지며 날아간다. 


토니와 그의 동료들이 큼지막한 창고를 재활용해서 만든 은신처를 둘러본다. 곳곳에 급히 옮겨온 것이 분명한 용도 불명의 디바이스, 전투 식량, 각종 서류 등이 널부러져 있었다. 바삐 움직이던 요원들이 경계하는 눈빛을 지으며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그들을 향해 무기를 겨눈다. 그러지 않는 것은 딱 한명 뿐이었다. 바로 이 아말감의 감독관Supervisor. 그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토니 코프랜드?”


“그래, 맞아. 이 수꼴 새끼들아. 오늘 부로 너희는 다 뒤졌다.”


그가 격한 목소리로 말하며 그에게 내장형 에테르-토치를 겨눈다.


“시체도 안남게 구워줄테니까-”


“미안한데 오늘은 너희들이랑 놀아줄 시간이 없군.”


아말감 감독관이 귀찮다는 투로 그의 말을 자른다.


“뭐?”


“자네들이 죽었다고 생각한 동료들은 우리 측에서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다네.”


토니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개소리마! 내 앞에서 몸이 터져서 죽는걸 봤단 말이야!”


“그건 자네를 제거하기 위해 만든 생체 지뢰 같은거지. 어쨌든, 오늘은 그냥 물러가주지 않겠나? 우리끼리 좀 바빠서 말야.”


그의 말에 동의라도 하듯 다른 요원들이 멀쩡하게 작업을 재개한다.


“자네들을 날려버리는 것보다 자네들의 엉터리 같은 사상에 사람들이 빠지지 않게 미디어 프로파간다를 조직하는게 몇배는 힘들고 돈이 많이 드네. 그러니까 오늘은-”


“닥쳐!”


토니의 에테르-토치가 초록색의 화염을 뿜는다.


“...”


아말감 감독관이 그 화염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얼굴은 흉측하게 녹아내린 상태였다. 한쪽 팔은 완전히 형체를 잃었고 불에 노출된 쪽의 다리는 뼈가 드러날 정도였다. 바닥에는 열로 인해 녹아내린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흥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야기를 계속한다.


“...너희는 정말 이해를 하나도 못하고 있구만. 최소한 네놈들 선배들은 총알 한발보다 30초짜리 TV 광고가 훨씬 비싸다는걸 아는데 말야.”


그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설교투로 말을 늘어놓는다.


“아무리 우리가 노력해도 너희를 뿌리뽑을 수 없다는 건 안다. 너희를 없애버리는 걸 목적으로 삼아봐야 실패할 뿐이겠지.”


토니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불타죽기 직전인데 저렇게 태평한 소리를 하고 있다니.


“뽑아봐야 계속 자라는게 잡초다. 땅 위를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게 제일 좋지.”


그가 그나마 멀쩡한 다리를 움직여 토니에게 돌아선다. 불타버린 얼굴이 흉측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설교한다. 


“그래서 너희들을 내버려두고 있는거다. 어쨌든, 잡초를 뽑는것보다 콘크리트를 까는게 훨씬 예산이 많이 드니까. 그걸 하다보면 일일히 뽑고 있을-”


“닥쳐!”


그의 모욕적인 말에 토니가 다시 한번 토치를 겨눈다. 화염이 그의 형상을 불태운다. 불꽃이 걷히고 나자 말 그대로 온 몸이 통째로 구워진 그가 옆으로 쓰러진다. 책상에 기대지만, 팔이 부스러지며 바닥으로 넘어질 뿐. 다리마저도 형상을 잃은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멀쩡히 이야기한다. 마치 발성기관만 개조해놓은 것 같았다. 토니가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공들여 만들어놓은 함정이 이렇게 날아가는구만.”


그의 말과 함께 은신처 안의 모든 요원들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널부러진다. 감독관도 마찬가지였다. 원격으로 조종되는 클론 인형. 동시에 건물 내부에 붉은 조명이 점등하고, 박살난 문 위에서부터 합금 셔터가 신속하게 내려와 건물을 봉쇄한다. 


“갇혔어!”


그러나 그 정도로 간단한 구조물이 함정일리가 없다. 그와 동시에 벽 몇군데가 열린다.


그 안에는 누가봐도 폭발물인 것이 분명한 디바이스들이 들어있었다.


“아 씨ㅂ-”




“멍청한 놈들.”


탈리아가 기가 차다는 목소리로 탄식한다. 테크노크라틱 유니언 내에서 거대한 내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명확해졌다. 동시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테크노크라시를 공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방법은 아주 다양했다. 유니언의 시설을 테러하거나 전투 아말감을 공격하는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미디어를 조작하고, 주식시장을 교란시키고, 내전에 개입한다. 


처음에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 급변하는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던 몇몇 유니언 요원들이 무력하게 사살당했고 신디케이트가 차지하고 있던 몇몇 테크 회사들이 트래디션에게 넘어갔다. 트래디션이 배후에 있는 측이 내전에서 승기를 잡았고 트래디션의 패러다임을 미디어에 노출시키는 일이 실제로 가능해졌다.


“생각이라는걸 해야지.”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시 뿐이었다.


내전이 급속도로 커지며 그들의 영향력은 더욱 축소되었다.


암살을 위해 뛰어들었던 트래디션의 암살자들은 전투 아말감들의 강화된 보안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평소엔 꺼내놓지 않는 수준의- 에 휩쓸려버렸다. 주식시장의 대 폭락과 경제 침체는 거대기업들의 주주보다, 작은 회사들을 소유하고 있던 트래디션의 사업가들을 먼저 몰락시켰다. 미디어에서의 영향력은 NWO의 검열과 신디케이트의 상상을 초월하는 상업적 프로파간다에 그대로 묻혀버렸던 것이다.


“...”


내전이 5, 10년 정도 계속 된다면 어떨까. 그때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까지나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행위를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애초에 그녀는 트래디션이 테크노크라시와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길 수 없어서가 아니라, 아예 싸워야할 대상을 잘못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맞서야할 대상은 현실 그 자체다.


당장 적대하고 있는 자들에게 덤벼봐야 전혀 쓸모 없는 일이다. 결국 트래디션을 쇠퇴하게 하는 것은 테크노크라시가 아니라, 그들의 패러다임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내일 테크노크라시가 전 세계에서 사라진다고 가정해도, 트래디션에게 달라질 것은 없다. 여전히 그들이 쓰는 마법은 패러독스의 철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며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전혀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눈이 없는 사람에게 그림을 보여주거나, 귀가 멀어버린 자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리아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사명이 있고 나아가야할 곳이 있다. 승천Ascension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겠지. 현실에 맞서 싸워 승리한다는 것이 승천이라 생각하는 자들도 있지만, 탈리아는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현실 그 자체를 상대해 승리하는 것은 테크노크라시 마저 불가능한 일이니까.




절망에 빠진 세계에서도 즐거워하는 자들이 있다. 기존의 체제가 그 자체의 질서만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자들이. 바로 펜텍스의 고위직들이다. 평소에는 악의와 편집증적인 음모가 가득한 그들의 회의실이었으나 오늘은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어쨌든,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는지는 몰랐군.”


“방첩부서가 아니라 마케팅 부서를 밀어줬어야 했네요.”


당연하다. 지구상에서 펜텍스라는 기업 집단을 뿌리뽑을 수 있는 유일한 조직,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에게 그 존재가 모조리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들은 이 세계의 뿌리를 휘감고 있는 곰팡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그 뿌리를 들어내는 출혈을 감행하지 않으면 자신들을 제거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의 목적을 숨겨 펜텍스를 우선순위에서 제외하는 것이 그들이 생존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성공적으로 세계를 오염시켜갔다.


아이들의 정신을 폭력적으로 물들이고, 산업단지가 어마어마한 공해로 자연을 파괴시키고, 건강을 해치는 음식을 전 세계에 공급한다. 그것이 거대한 우주적 질서Wyrm에 의해 주어진 그들의 사명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낸 것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유니언을 갈라놓았다. 이제 그들을 멈출 수 있는 세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혼란기야 말로 펜텍스 같은 회사가-



“...?”



창 밖에서 무엇인가 날아오고 있었다. 



...미사일?



만약 딱 이 고도에 있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다. 지금 보니 미사일 밑 부분이 반짝거린다. 다각도로 반짝이는 광학장비. 그 반짝임이 사라질 때마다 미사일의 모습도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밑쪽에서의 목격자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광학위장 디바이스다. 소닉붐의 흔적도 없고, 아무리 실내라지만 소음도 나지 않고 있었다. 분명히 어마어마한 예산을 때려박아 만든 테크노크라시의 하이퍼테크 병기일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2001년도 아닌데, 도시 한복판에 멀쩡히 세워진 고층 빌딩을 향해서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 방 안의 모두가 그것을 알아챈 모양 이었다. 그 중, 얼굴이 창백해지는 자들이 있다. 특히 정령과 외계의 존재들과 소통하는 자들이.


그는 모르지만 그 미사일은 현실 세계Conventional Space 뿐만 아니라, 이차원Umbra에도 그 그림자를 드리운 위상공격형 디바이스다. 폭발을 통해 현실세계의 건물을 날려버릴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응되는 다중위상공간을 전방위적으로 타격한다. 페이즈 아웃Phase Out이나, 이차원으로 도망가는 현실교란자들을 싸그리 날려버리기 위한 무기다.


물론,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제작하기도 어렵다. 특히 저 정도 크기라면.



그런데, 그게 왜 이곳으로 날아오-



그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 미사일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폭발한다. 거대한 폭발이 그의 몸을 싸그리 불태우고 가루로 만들어 버리기전 문득 어처구니 없는 가능성 하나가 그의 뇌리를 스친다.


어쩌면,


전세계 주식시장이 반토막 나고, 경제 대공황이 몰아치고, 정치적 불안이 증가하고, 테러가 빈번해지며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하고, 군사기술이 다시 한번 급속도로 발달하며 전쟁이 벌어지는 세계에서라면,


대낮에 고층 건물 한 층이 통채로 폭발하는건 꽤나 있을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게 미사일에 의한 것이라 할 지라도.


어쩌면,


극도의 혼란기야 말로 자신들의 치부를 대놓고 제거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그것을 알아차린 각 컨벤션의 일부 아말감들이, 정적과 상부의 견제를 무시하고 과격한 행동에 나선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전, 펜텍스 고위 이사진의 회의장이 말 그대로 증발해버린다. 그리고 그 생각마저 공허한 입자가 되어 허공에 흩뿌려진다.




그 모든 일들의 시작이 된 그곳, 지금은 과거가 된 언젠가. 그레인저가 하은이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 대는 모습을 본다.


이제는 하은에게 있어 더 이상 추구해야할 것이 없다. 그녀는 인간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안다. 테크노크라시를 무너트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결과일 뿐이다. 그녀가 맞닥뜨렸던 문제들, 남겨두었던 조각들, 숨겨져있는 힌트들. 그것들을 끼워맞춘 결과.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맞춰졌다.


이제는 나아갈 곳이 없다. 그리고 추구하고 싶은 것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갑자기 희미한 상실감이 떠오른다.


무엇을 지금 잃어서가 아니라, 예전에 느꼈던 상실감이 다시 떠오른 것이다. 그 상실감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 동기가 없이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충족감이 있는 것이 아니다. 


너무 무의미하게 달려왔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달려오다보니 도착한 곳이 여기인 것이다.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을 탓해봐야 달라질 것은 없다. 결국 닥친 상황에서 선택한 것은 자신이니까.


“그럼 안녕히.”


그녀가 서서히 트리거에 힘을 준다.


“멍청한 소리하지 마라.”


동시에 희끄무레한 조명 사이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거침없이 걸어나오는 남성. 경량형의 외골격과 장갑차 정도는 일격에 격파할 수 있는 고화력의 디바이스. 한눈에 봐도 군인인 것이 명확한 남성. 


그의 얼굴을 본 하은이 그녀답지 않게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상관 얼굴도 잊어버린건 아니겠지?”


“소령...님?”


“거참, 말해줘도 못 알아듣는구만. 이젠 소령이 아니라니까?”


확실히 그가 그렇게 말했었다. 그것도 오래 전이지만. 하은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평소의 그녀처럼 묻는다. 


“설마 절 말리시려는 건 아니겠죠.”


“정확히 그건 아니지만, 이걸 보면 좀 생각이 바뀔거다.”


그렇게 말하며 그가 뭔가를 던진다. 하은이 자연스럽게 공중에서 그것을 잡는다. 노란색 단추가 달린 빨간색 손전등 모양의 디바이스.


“이건…”


알고 있다.


그녀가 처음으로 웨더스 소령을 만난날 무의식적으로 짜낸 프로시져, 아니, 마법Magick의 수단Instrument가 된 물건이다. 산화 작용을 중지시켜 불을 꺼버리는 기괴한 개념의 소화기.


“이건 왜?”


그러나 하은이 즉시 그의 뜻을 알아차린다. 


불을 끄는 기계. 


생명체가 있을때는 쓰면 안되지만, 그 효과만은 확실하다. 생명체가 없다면 거리낌 없이-



“그렇다.”


하은이 시선을 돌린다.


그곳에는 언제나 그렇듯 예고 없이 나타난 교관The Man의 형상이 서있었다.


“찾아야 할 것이 있을 것이다. 네 목적과, 우리의 목적은 일치한다.”


“...”


교관의 목소리가 언제나처럼 무겁게 그녀의 귓전에 울린다. 언제나처럼의 딱딱한 말투. 교관이 담담하게 말한다.


“우리가, 네 여정을 가호해주겠다.”



그 말과 함께 하은이 웨더스에게 묻는다.


“그녀는 어디있죠?”


“걱정마라.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으니.”


보관, 이라는 말이 하은의 마음에 무겁게 내려 앉는다. 웨더스가 그레인저에게 다가가서는 외골격의 벨트에 꽂혀 있는 인젝터를 그녀에게 주사한다. 인젝터 안에 들어있던 회복 목적의 나노머신이 그녀를 빠르게 안정시킨다.


“그레인저 경, 일단 이걸로 될겁니다.”


“소령, 자초지종을…”


“이곳에 오래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까지 왔다면, 그레인저 경도 진상을 파악하는데 오래걸리지 않겠죠.”


“...아뇨, 소령.”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 여기에서 일어난 일은 아무도 알아선 안되겠죠. 이제는 우리들이... 알아내서는 안되는 비밀이 되가고 있는거네요.”


그레인저가 간신히 한 팔을 들어서 소령의 어깨에 힘없이 얹는다. 그녀가 하은을 돌아본다. 


“...가세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의식을 잃은 것인지 고개를 떨군다. 소령이 일어선다. 


“가지. 버터내실거다.”


“어떻게?”


하은이 묻는다.


“세상에. 예전에는 좀 애 같은 구석이 있더니 싹 사라졌구만.”


그가 허탈하다는 듯이 말한다. 


“백 사장, 들리나?”


그가 구형 무전기에 대고 말한다. 지직, 하는 소음이 들린다.


“백 사장, 차는 준비해 놨겠지?”


“...치직… 네. 어서… 치직… 서비스 터널로…”


“백 사장님도?”


“거참, 말도 엄청나게 짧아졌구만. 가지.”


“...네.”


그렇게 의식을 잃은 그레인저를 두고 두 사람이 사라진다. 오직 오랜 죄수들만이 그 광경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궁지에 몰린건 우리로군.”


펜텍스의 고위 이사들, 정확하게는 살아남은 고위 이사들의 회의. 그들을 말 그대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예전에는 신디케이트가 멍청하게도 인포서만을 보내왔을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한번은 그들의 머리를 잘라내 신디케이트 고위 임원의 사무실에 ‘배달’을 한 적도 있었던 것이다. 이차원의 존재를 상대할 줄 모르는 그들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인포서들이 아니라 EDE와 싸우기 위한 장비를 잔뜩 들고 들이닥치는 보이드 엔지니어 팀에게 그들은 말 그대로 박살이 나고 있었다. 쓰렛널의 위험을 막기 위해 내전에 상관없이 계속 재원이 필요한 보이드 엔지니어와 펜텍스를 이 기회에 없애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신디케이트의 필요가 맞닿은 결과다. 신디케이트는 예전처럼 보이드 엔지니어에게 자금을 지원한다. 그 대신 보이드 엔지니어는 펜텍스를 궁지에 몰 수 있는 병력을 제공한다. 정령 및 외계의 존재와 싸울 줄 전혀 모르는 인포서들은 호러 영화의 한가운데 떨어진 주인공들 처럼 무력하게 살해당할 뿐이지만 보이드 엔지니어들은 그들마저도 파괴하고 추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각 회사간 관계를 숨기는 작업에 착수하겠습니다. 해외 기반 자회사부터-”


“아니. 이미 늦었다.”


무거운 목소리가 회의장에 떨어진다.


“그럼? 포기하고 도망갑니까?”


“...뱀파이어의 폭주를 유발시키는 그 프로젝트 연구 결과는 다 남아있겠지?”


“네. 재료 확보만 남았죠.”


“우리가 비밀리에 확보하고 있는 몇몇 뱀파이어들이 있네.”


당연한 일이다. 펜텍스의 고위직에는 뱀파이어들도 자리잡고 있으니까. 대도시의 가부장에 -경제적 위치 뿐만 아니라 ‘혈연’의 의미에서도- 해당하는 뱀파이어들의 신변을 즉시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이라면 현대 뱀파이어들의 눈에는 전설에 가까운, 수백년 전에 잠에 든 뱀파이어들의 휴식 장소마저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뱀파이어들, 정확히는 그런 뱀파이어의 피를 찾아낼 수록 그들이 폭주시킬 수 있는 뱀파이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


“아니, 그걸 지금까지 숨겼습니까?”


“그건 나중에 따지도록 하지. 리스트를 넘겨주도록 하겠네. 연구해서 뭐에다 쓰겠나?”


“...”


그 자리에 앉은 자들이 무거움을 느낀다. 이제, 펜텍스는 더 이상 회사가 아니게 된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발악과 함께, 현실 그 자체를 파괴하는 테러리스트Reality Terrorist로 추락해버릴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현실 그 자체도 그들과 함께 추락해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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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부터 심판의 날 스토리 아크가 시작됩니다.


분량은 5~10화정도. 그리고 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