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플레이가 병맛이었다는 점을 확실히 해 두겠다.


아니, 근데 룰을 아는 사람이 PL 5인 중 한 명(나머지는 룰북도 안 읽어온 듯...)인데 솔직히 정상참작 좀.

그래도 어떻게 개드립만으로 플레이가 이어진다는 게 던월의 대단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체감하는 거지만,

병맛 플레이가 플레이하는 동안에는 더 재미있어.(...)



일단 캐릭터메이킹 레벨에서 시간이 없었기에, 무기는 대충 되는대로, 장비의 경우는 '팀에서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일단 없는 상태에서 적당히 임기응변으로 처리하려고 했고,

돈에 대해서는... 내 개드립 본능+이걸 룰대로 할 시간이 없다는 사정 때문에, 이렇게 정했다.


"모두 지갑을 여세요.

지갑에 있는 돈이 지금 여러분 캐릭터의 소지금입니다.(...)"



...근데 마법사 PL이 지갑에서, 30만원을 꺼냈다.(여기는 대학교 동아리입니다.)



이걸로 엄청 간단하게, 각 플레이어들은 마법사가 모은 탐사대에 고용된 처지라는 설정이 확립.

덤으로,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라는 질문에, 음유시인(PL은 동아리 유일의 철덕)이 '광화문역 앞'이라고 답하길래,

이걸 어떻게든 주워먹기 위해서 탁상예능 아포칼립스 월드편을 조금 파쿠리 쳐서,

'어쩌다 보니 대충 망한,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 '광화문역'이라는 던전을 탐사하는 파티'라는 걸로 수습.


덤으로 음유시인은 이 고대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시설에 엄청나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성기사는 이 유적에 뭔가 사악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계시 때문에 파견을 왔다는 설정이 붙었다.



그리고 나서 뭐, 다리가 6개인 강아지 같은 걸 시험적으로 출현시켜서 전투에 대해 감 잡아주고.

(이 때 얻었던 '명함 비슷한 고대의 물품, 마법의 문을 열 때 쓰인다'는 맥거핀이 되었다.)

'고대의 성수가 담겨 있는 거대한 상자'를 뜯어보려다가 집게 비스무리한 것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덤으로 여기서 '성수=탄산수, 이제는 신에게 기도해서 만드는 것만 가능'이란 설정도 확립)


그러다가, 불길한 곡조와 함께 아래에서 지저인들(?)이 도착해서 위로 올라오고,

미행 실패로 인해 교전 발생, 네 명의 '기이한 화살을 쏘는 막대'로 무장한 지저인들과 싸웠다.

사실 진지하게 돌리면 노잼이었을 전투였는데, 다이스 굴리는 긴장감으로 어떻게든 되더라.

내 묘사에 대한 호응도 괜찮았고, NPC들 피해 다이스가 빵빵하게 나오다 보니.

근데 성기사 탱킹 진짜 세더라... 마법사/사제/음유시인은 툭 치니 반피 까이던데.



그렇게 해서, 지저인 한 명을 사냥꾼의 파트너 동물인 뱀의 독으로 마비시키고(사실 룰에 그런 거 없지만, 뭐)

나머지를 전부 끔살시킨 다음, 휴식 후에 대화를 시도.

음유시인이 얘내들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지 지식 더듬기를 해 보았으나, 단어만 드문드문 알아들을 수 있어

들을 수 있는 단어라고는 '어머니, 성교, 똥, 개, 음경' 정도밖에 없었다 한다.



그런데 시트 만들 때, 내가 인간 사제 PL에게 '외국어 화자가 나올 수도 있으니 '마음의 대화' 들어도 되고'라고 했는데

정확히 그 용도로 쓰일 수 있게 되어서, 어떻게든 대화가 가능해짐.

그 '마법의 막대'의 용도를 물어보길래, 밸런스를 위해 '지문 인식으로밖에 쓸 수 없다'고 해 놨더니만,

죽은 지저인들의 손을 잘라가자는 아이디어가 나와서 '야, 이게 던전월드의 묘미지' 하고 생각했다.

음유시인의 진솔한 대화까지 사용한 협상 끝에, "나를 풀어주면 비밀을 알고 싶지 않은 놈들에겐 내 동료들이 보상을 할 것이고,

비밀을 끝까지 파고들 자는 나를 따라온다면, 우리의 동료가 될 것이다"는 걸로 협상 완료.


그리고 성기사만이 지저인을 따라 사라지고(메타적으로는 지하철 타고 떠난 거지만, PC들은 모르지),

나머지 사람들은 대장(마법사)의 뜻대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던전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옴.

당연한 이야기지만, 포로와 성기사는 사라지고 금괴 몇 개만 그 자리에 남아있던 걸로 끝.



...그리고 시계를 보니 두 시간 정도밖에 안 지나 있었길래 깜놀했다.

사실 적어도 두 시간 반은 지났다고 생각해서 슬슬 끝내도 되겠지... 싶어서 끝냈는데, 플레이타임 너무 짧잖아.

뭐, 그래도 진짜 지하철을 타야 할 사람도 있었으니 여기서 다음 이야기를 바로 이을 수도 없고(대충 10시 15분 정도) 해서,

걍 여기서 마무리 짓고, 다음 플레이를 기약하기로 했음.

원래 당일치기 세션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떡밥이 너무 쌓임+시간이 애매함 문제로 다음에 이어서 할 거 같다.




그래서, 사실 내용만 봐도 알겠지만, PL 5인 중 4인이 처음 접함+마스터가 왕초보, 인데도

대충 드립을 던져 가면서 플레이하면 웃고 즐길 수는 있다는 게 던월의 최고 장점이라는 걸 새삼 실감한다.

아래에 김사장님께서 아포엔진 쓰는 룰에선 개연성을 신경쓰지 말고 막 던지라고 그랬지?

그러면 이야기 전체가 어떻게 돌아갈지는 몰라도, 하여간 재미는 보장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덤으로, 그 와중에서 이야기의 '축'을 어떻게 만들어가면 될지를 생각하는 것이 던월 마스터링의 재미고.


지금 성기사가 지저인들을 따라감+내가 성기사가 모시는 신 RP를 하면서 떡밥을 쫙쫙 깔아둠,

여기에 성기사 이름이 '켈투자드'(...)인 덕분에, 그 거대한 떡밥을 어떻게 연출하면 될지 감이 완벽히 잡혔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수많은 파편화된 설정(...)들이 이야기에 덕지덕지 돌아다니게 되지만...



그게 뭐 어때서?

RPG는 재미있으라고 하는 거지, 어떤 근사한 예술작품을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


나는 이렇게 노는 게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