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디앤디 월드 설정 같으면, 방대한 세계 설정 자료가 있고 이걸 마스터가 적당히 소화해서 플레이어한테 설명해주든가 아니면 장편 플레이를 하면서 플레이에 녹여내고 그러면서 캐릭터 설정이랑 아우러지게 해야 했음. ("어. 엘프 캐릭터에요? 이 세계에선 엘프는 어느어느 출신이 있는데, 어디는 어떻고...") 공식 설정을 익히는 것 자체도 부담이고, 참가자 사이에도 정보 편차가 있을 수 밖에 없음. 자작 설정이라도 비슷하게 이걸 플레이어에게 어떻게, 어디까지 전달할지가 문제고.


13시대의 표상 룰은 "배경세계 설정을 어떻게 공유할까"라는 문제에 대한 참신한 해답이라고 본다. (이게 유일하고 가장 좋은 답이란 건 아니다. 하지만 전에 없던 답인 건 분명하지.)

용 제국 설정은 사실 표상이 거의 전부나 다름 없으니까. 판타지 세계의 대표적인 클리셰를 표상을 통해 반영하고, 이를 PC 설정이랑 직접 연결짓기 좋게 만든 거고. 더 나아가서 표상 관계를 바탕으로 플레이어가 세계 설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고 ("제 캐릭터는 황제의 13번째 사생아에요."). 세계 설정을 같이 만들도록 유도하는 것 자체가 13시대의 디자인 목표고 표상 룰은 그런 목표를 이루는데 적절한 도구임.

물론 세계 설정을 같이 만드는 방식 자체가 싫다면, 처음부터 안 맞을 테고.

플레이 중에 사용되는 표상 판정 룰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함. 룰의 작동만 놓고 따지면, PC 개개인이 갖는 표상 관계가 "랜덤하게" 플레이에 개입해 도움을 주거나 변화를 일으키게 되고, 그 랜덤성/즉흥성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음. 반면에 이 랜덤 요소가 이야기 흐름을 새롭게 뒤트는 변수로서 유용하다고 느끼는 팀도 있을테고. 진행 중에 애드립으로 끼어드는 요소인 만큼, 효과를 일일히 지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본다 (한편 즉석에서 표상관계 반영하는게 까다롭다면, 앞 세션에서 표상 굴림을 먼저 하고 맞춰서 시나리오를 준비해두는 것도 가능하고. 룰북에 나오는 거지만).


여튼 디앤디랑 비교하면 마스터 중심 -> 팀 중심, 시나리오 중심 -> 애드립 중심 으로 비중을 살짝 옮기는 변화이고, 이 방향 자체를 싫어할 순 있지만, 이런 변화를 원하는 팀에게는 좋은 룰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룰이란 건, "뚜렷한 디자인 목표를 갖고 그걸 제대로 달성한 룰"이라고 본다. 아무리 매니악한 소수를 위한 룰이라도, 그 목적에 맞게만 잘 만들어졌다면 좋은 룰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