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불이 붙었길래 기름을 부으러 왔더니 어둑이가 한 번 꺼서 대단히 실망했음.

그러니까 다른 이야기라도 해 보자. 사실 했던 말 반복하고 정리하는 거니까 안 봐도 괜찮음.


순수주의(Purist)란 무엇일까?

쉽게 말하면 빡겜하는 크툴루인데...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몇 년 전에 Dark Hue Studio라는 제작사에서는 CoC 7판 / 검슈 호환 서플먼트인 Harlem Unbound라는 물건을 냈다. 제목 그대로 1920년대 할렘을 배경으로 하는 크툴루 신화물이고, 이 책의 저자는 크툴루 컨피덴셜에 실린 워싱턴 배경 시나리오의 저자인 크리스 스피비다. 당연히 흑인임. 그래서 크리스 스피비는 이 책에서 이 책의 주요 소재인 당시 인종차별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반영하는 플레이 방법들에 대해서 가이드를 제시한다.


인종차별에 대해선 블랙페이싱(백인이 얼굴 검게 칠하고 흑인 흉내를 내는 거, 당시엔 나름 유행함) / N-Word 등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몇 가지 제시함. 중요한 것은 이게 근본적으로 플레이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갑분싸할 것들을 하지 말라는 거지 흑인을 차별하는 모습을 플레이 내에서 보여주지 말란 게 아니란 거임. 1850년대의 농장주를 예로 들면서 이 양반이 자기 흑인 노예들에게 유색인종 / 노예 등 플레이어들이 좀 덜 갑분싸할 표현을 쓰면서도 채찍으로 노예를 때리거나 흑인 탐사자들 앞에서 사냥개를 풀고 내쫓거나 그런 악행을 하게 하면서 충분히 인종차별자임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함. 그리고 인종차별 요소들을 게임 내에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예를 든다.


통과자 - 인종 긴장 보정(인종이 다르면 판정에 패널티가 들어감)을 적용하지 않음.

할렘 주민 - 인종 긴장 보정을 적용하고, 경찰이 흑인에게는 "좀 많이" 적대적이 됨.

순수주의자 - 그냥 이 책에 나온 온갖 차별 등을 전부 다 적용함.


이쯤 되면 CoC에서 말하는 순수주의(Purist) 시나리오가 대체 어떤 건지 알겠지? 비디오 게임으로 예를 들면 프롬이 내는 그런 것들 떠올리면 됨. 다크 소울이라든가 세키로라든가 그런 하드한 거. 당연히 양놈들에겐 원래 이런 물건들이 주력이었고, 갑분싸할 사람은 딴 거 찾아보라고 하고 뭐 그랬다. 델타 그린에 대한 해외 리뷰에서 이런 장르적 특성을 설명한 표현이 "채식주의자에게 고기를 먹이긴 그렇다"였던가 그 반대 방향의 비유였던가 하여간 봤을 때는 꽤 인상적이었음. 하여간 원래 이랬음.


그런데 요새는 옆동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이런 것들을 보면 마치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것들 보는 것 마냥 발작하는 사람도 많은 듯하지만 내가 알 게 뭐야. 소관타(소중한 관계 타이만)니 뭐니 하는 것도 결국 그런 "빻은"것들은 하기가 싫고 다른 것을 하고 싶으니까 나오는 거겠지. 마치 환불의 심판자 군다에게 대판 깨지고 환불하거나 베데스다 게임 사고는 모드 떡칠하는 것처럼 말야. 내 관점에서는 그럼. 그런데 그걸 왜 굳이 CoC라는 틀에 묶인 상태로 하려 드는 지는 전혀 모르겠다만. 차라리 그냥 아무거나 해도 되고 한글화되어있는 다른 룰인 겁스로 그런 걸 한다면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펄프는.... 펄프 크툴루 서플먼트까지는 그렇다치는데, 내는 캠페인마다 진짜로 약을 잔뜩 빨고 달리고 있는 물건들이 나와서 국내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음. 일단 다음에는 사인족이 안 나오는 물건이 나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듬.


순수주의에 대한 반발? - 묘하게 과대화되는 러브크래프트의 그림자

뭐 이렇게 발작하면서 순수주의 스타일을 기피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긴 한데, 많이 묘한 것은 이런 시나리오들이 사실 러브크래프트의 원전보다 묘사나 전개에 있어서 한 술 더 뜨는 게 많지만 아무튼 이런 "빻음"은 거의 러브크래프트 책임이 되는 거. 러브크래프트 작품을 읽고 졸라 고어하다고 생각한 적 있는 사람? 사실 시나리오들 대부분은 그냥 카오시움, 펠그레인 프레스 등의 상상력이 미쳐 돌아간 것임. 물론 러브크래프트가 인종차별을 했고 당시에는 그게 일상이었으니까 그 부분의 묘사는 어느 정도 열외라고 봐도 되겠지만.


그나마 카오시움은 7판 룰북에서는 좀 사리는 척 했었는데 이후 낸 것들을 보면 사실 페이크고 "야 이런 X같은 것들 나오는데 우리는 경고했으니(혹은 안 했고) 나머지는 너희들이 적당히 알아서 해 ^^"스타일로 일관하는 중임...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다 '러브크래프트식 빻음'의 산물로 해석되는 것을 가끔씩 보게 될 경우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기분이 묘함. 이게 만물러브크래프트 기원설까지는 안 발전할 게 다행이다만.그러니까 러브크래프트가 빻았다고 까도 최소한 쵸-쵸는 어거스트 덜레스가 창작한 신화생물이고 작중에서도 평범한 동양인과는 아주 별개로 간주되었던 비인간적인 존재라는 것 정도는 알고 깠으면 좋겠다.


3줄 요약

전에 썼던 글 재탕

안 읽어도 괜찮음

지워지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