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 심판의 날, 둘.
“다시 한번만 검토해 주십시오. 이미 아포칼립스급 시나리오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감독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구 밀집 구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럴 일은 없을걸세.”
상급자가 간곡한 목소리의 의견을 말 그대로 뭉개버린다. 그러나 그는 포기 하지 않고 설득을 계속한다.
“현재 내부 감시에 쓰이는-”
‘내부 감시’란, NWO가 신디케이트의 주요 요인들에게 실시하고 있는 일련의 프로시져들이다. 상대 컨벤션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개인정보와 치부를 파헤치는 것이다. 그러나 신디케이트도 경호 부대를 고용하고 나름대로 상당한 수준의 보안 프로시져를 전사全社적으로 적용하고 있었다. 그 정도의 프로시져를 돌파하려면 마찬가지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원의 25%, 아니, 10%만 돌려도 가능할겁니다!”
“자네들의 의견은 너무 소수 의견이야. 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오기 전까지는 더 상위의 우선 순위로 올려줄 수 없네. 더구나 신디케이트가 증거를 인멸하고 있는 와중에는 더욱 그렇다네. 그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정보를 가로채는게 최우선이야.”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간신히 참아낸다.
“뱀파이어들이 현실교란적인 수단으로 대중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예전부터 있어왔네. 아니면, 1999년의 일이 다시 일어나기라도 한단 말인가?”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습니다! 총 사상자가 100명 단위를 넘어가는 중입니다. 행방불명자까지 포함하면 그 세배는 됩니다.”
연합 아말감의 대표가 간신히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말한다.
“그런 사건은 자주 있지 않은가?”
그 말 자체는 사실이다. 현실 교란종들이 일으킨 사건으로 인해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이 몰살당하는 사건은 꽤나 자주 있는 일이다. 정보 통제와 보도관제로 인해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 사건이 비슷한 규모의 사건들보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한다는 증거를 가져오지 못하면 예산 배분은 없네. 그럼 이만하지.”
화상 회의가 종료된다.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제기랄…”
그가 신음을 낸다. 화상회의실로 다른 감독관이 들어온다. 신디케이트 인포서 출신인 그의 표정 역시 어두웠다. 유니언의 내전은 NWO와 신디케이트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지만 뱀파이어 폭주에 대처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신디케이트 쪽은?”
“마찬가지야.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더군. 보이드 엔지니어와 TF를 이뤄서 펜텍스의 공장과 연구시설을 박살내고 있는 모양이야.”
“제기랄.”
그가 욕설을 내뱉는다. 전혀 좋은 소식이 아니다. 그레인저 감독관의 정보에 기초했을 때 펜텍스의 시설에 침투, 정보를 빼내 그들을 앞지르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신디케이트가 펜텍스를 제거한다는 명분 -물론, 증거 인멸도 있을것이다- 으로 그들의 시설을 휩쓸어버린다면 그것이 불가능해진다. 다른 현실교란자라면 힘으로 겨뤄볼수도 있지만 유니언을 상대로라면 그럴수도 없다. 대리전이나 법적/경제적 공방, 때로 체포 정도는 있어도 본격적인 전투는 반역자로 몰리기 딱 좋은 상황이니까.
그가 이마를 짚는다. 에르고-콜라와 각성제를 통해 144시간 정도 단 한숨도 자지 않았더니 슬슬 부작용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돌겠구만.”
[감독관님.]
[뭐지?]
[펜텍스 측에서 상당한 수준의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회의실에 스크린으로 띄워.]
두 사람 앞에 스크린이 나타나며 정보를 표시한다. 연구 시설이라고 되어있지만 정상적인 연구 시설은 아닌 듯 했다. 지난 72시간동안의 감시 데이터가 타임랩스의 형식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트럭과 중무장한 경호부대가 몇시간 간격으로 계속 출입하고 있었다.
“뭘 옮기고 있는거지?
제일 가능성이 높은건 뱀파이어들일 것이다. 뱀파이어들을 단체로 잡아서 대도시에 풀어놓고 폭주 시킬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가 이미 내부 분석에서 제기되고 있었다.
“뭘 하는지 알아보고, 아무것도 없으면 다 파괴하면 되겠지.”
“근처에 바로 투입 가능한 애들이 있으니까 보내면 되겠군.”
“상부가 정보를 넘겨주지도 않고 지원도 없으니 우리가 알아서 해야지. 제발 우리가 틀렸길 바라세.”
“브린슨 대장!”
“대장이 아니라 대위다. 옛날 말투는 버려.”
펜텍스가 운용하는 수많은 용병 부대 중 하나. 그 지휘관인 브린슨 대위가 거칠게 말하며 난장판이 된 건물을 둘러본다. 그의 발 밑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부하들을 학살하던 괴물이 사람의 모양으로 돌아와 있었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정확히는 C급 영화, 그것도 윤리의식이라고는 전혀 없이 민간인마저 학살할 수 있고, 임무 이후 받은 보수는 여자, 술, 마약에 탕진하는 타입이지만- 용맹한 용병인 그의 부하들도 이 종류의 괴물에는 치를 떨고 있었다.
하지만 건물이 박살난 것은 괴물 때문이 아니라, 폭발에 의한 것이었다. 본사Pentex에서 내려온 지침에 따라 이 건물에 있는대로 마이크로 미사일과 대전차포를 때려박은 이후 중장비를 동원해 돌입한 것이다. 사람은 물론이고 건물마저 박살날 정도의 파괴력에도 그 괴물은 아직도 그들과 싸울 힘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작전 시작 전까지만 해도 오늘 받을 보너스로 애인에게 요트를 사줄거라고 했던 부하는 반으로 찢어져있었다. 하체는 바닥에 떨어져 납작해져 있었고 상체는 처참하게 씹힌채 버려져 있었다. 먹다 남은 음식물, 사방으로 튄 체액과 대소변이 섞여 역겨운 냄새를 풍긴다. 브린슨은 그의 애인이 얼마나 속물적이고 더러운 사람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셈 치고 그의 보너스를 보내주기로 결심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욕을 내뱉는다.
“이런 니미… 이런 괴물을 잡아오라고? 그것도 상체로? 미친거 아냐?”
그리고서는 스스로의 말에 쓴 웃음을 짓는 그다. 그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들은 실제로 미친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의 아내와 두 자식이 어마어마한 병원비가 드는 희귀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는 이런 일을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괴물들의 토사물을 뒤집어쓰고 동료들과 함께 지옥 같은 장소를 구를 자신이 있었다.
“대장, 구워먹죠.”
“지랄마.”
“이히히…”
그의 부관 정도 되는 용병이 입 옆으로 흐르는 침을 닦아내며 말한다. 그의 반투명한 피부가 손등의 거친 피부 -거의 파충류 같은- 에 딸려나오며 축축한 모습으로 바닥에 떨어진다. 브린슨이 욕을 내뱉으려다가 참는다. 저건 다 회사Pentex에서 받은 ‘직원들을 위한 특전’ 때문이다. 덕분에 늑대인간들과 싸우다가 턱이 날아가거나 해도 좀 쉬기만하면 다시 멀쩡하게 돌아온다. 더 역겨운 모습으로긴 하지만. 그것이 악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자들, 포모리Fomori의 인생이다. 물론 자발적으로 떨어지는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브린슨 같이 가족을 부양하거나 빚을 져서 들어온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말로는 비슷하다. 괴물이 되거나, 시체가 되거나.
“구속구 어딨어?”
브린슨의 말에 제일 낮은 계급의 부하들이 무거운 금속제 구속구를 가져온다. 이중으로 되어 안쪽으로 가시가 뻗어있는 구속구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괴물이었던 사람, 정확히는 노인의 목에 채워진다. 비슷한 물건들이 팔다리, 심지어 몸통과 척추 근처에도 설치된다. 이 자가 다시 괴물로 변하려고 하면 이 가시들에 찔려 순식간에 벌집이 될 것이다. 가시들의 색깔도 불길하다. 청록색과 은색의 중간이라는, 아무리봐도 인공적인 색깔.
“무슨 재질이랬더라.. 프… 프.. 시팔. 기억이 안 나는구만.”
그가 혼잣말로 지껄이며 바닥에 침을 뱉는다.
“브...브린슨 대장님!”
부하가 허겁지겁 달려오며 그의 이름을 부른다.
“대위라니까, 이 멍청한 새끼야. 그래, 뭐?”
“보… 본사에서…”
그 말과 함께 성대한 현장에 불길한 분위기를 내뿜는 듯 한 인물들이 들어선다. 한명의 동양인 여성과 그 옆을 호위하는 두 명의 바디가드. 바디가드들이 이죽거리며 현장을 둘러본다. 선글라스 너머로도 그들의 멸시하는 눈빛을 느낄수 있었다.
“VP, 굳이 둘러볼 것 없이 그냥 가시죠. 이런 쓰레기들이 있는 곳에 행차하셔서 유감입니다.”
그들 중 한명이 여성에게 권한다. 그 말을 듣고 방금까지만 해도 동료가 반토막 나는걸 봐야했던 부대원 한명이 달려든다. 그의 주먹이 바디가드 중 한명을 향한다.
“뭐 이 씨발 새ㄲ-”
퍽.
아무런 예고 없이 그의 팔꿈치 아래가 터져나간다. 근육과 지방조직이 곡선을 이루며 바닥과 벽에 뿌려진다. 기분나쁜 미소를 짓는 바디가드의 얼굴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이 호위하는 여성의 근처로 흩날린 피는 마치 무언가에 막힌듯 허공에 멈추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아악!”
그가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는다. 본사에서 온 자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간다.
“...시팔.”
브린슨이 작게 중얼거린다. 가운데 있는 여성은 한눈에 보기에도 전혀 정상적인 방식으로 걷고 있지 않았다. 누군가 그녀의 팔다리를 붙잡고 움직여주는 듯한 모습. 신경쪽에 장애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본사에서 내려온 인간들은 정상적인 인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브린슨은 그냥 넘겨버린다. 부하가 더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그가 부하에게 달려가 개머리판으로 쳐서 넘어트린다.
“멍청한 새끼야! 내가 본사분들한테 제대로 하라고 했어 안했어!”
그리고 즉시 본사 사람들에게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원체 한심한 놈들이라. 브린슨 대위입니다.”
“대상은?”
흥미를 잃은 듯한 바디가드가 경멸적인 어투로 묻는다. 그의 이름은 알고싶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저쪽입니다. 이미 구속은 완료해놨습니다.”
자기들을 바보 취급하는 점은 그도 분통터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족들을 부양하며 먹고 살려면. 세 사람이 구속된 자에게 다가간다. 가운데의 여성이 그에게 손을 뻗는다.
“...이런 니미.”
브린슨이 다시 한번 작은 소리로 욕한다. 그 여성은 괴물놈들과 싸우다보면 가끔 보는 초능력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구속구와 함께 그 남성이 허공으로 들어올려진다. 그녀가 손가락을 펴서 그의 이마 사이를 가리킨다.
“끄...끄륵…”
그가 경련한다. 그의 눈이 번쩍, 하고 뜨인다. 그러나 눈을 떴다기보다는 눈꺼풀이 강제로 들어올려졌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보였다. 그의 경련이 눈에 띄게 심해진다. 브린슨이 그녀를 제지하려다가 그만둔다. 그랬다가는 자기 머리가 터져나갈지도 모르니까.
“...잭팟.”
그녀가 미소지으며 말한다.
“브린슨 대위. 55시설로 인계하게.”
다른 쪽의 바디가드가 비슷한 경멸적인 목소리로 지시한다. 세 사람은 즉시 그 자리를 떠난다. 그 모습을 보며 브린슨이 욕하듯 내뱉는다.
“대체 뭔 생각인지.”
이 자들이 이들을 가지고 뭘 하려는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야말로 이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맘이 편하기 위해서 가족을 버리는 일이니까. 그렇게 합리화하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가 없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지휘관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더 합리화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자신의 고용주가 어딘가 심각하게 잘못된 자들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으니까.
콘크리트의 정글에서 사는 김인혁에게도,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케언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자연에서는 보기 힘들정도로 거대하게 자라난 나무가 가지와 잎으로 된 천장을 떠받치고 있었다. 이파리들은 에메랄드보다도 투명하고 아름다운 녹색으로 빛난다. 그러면서도 밤하늘에서 비춰지는 달빛을 그대로 케언 안으로 들여보내 케언 안을 밝힌다. 달빛을 받는 돌기둥과 그 위에 새겨진 선조들의 위업.
거대한 케언 안에는 꽤나 많은 수의 가루우가 모여 있었다. 케언 정 중앙으로 거대한 형상이 들어선다. 작지만, 분명 위협적인 짐승의 울음이 케언 안에서 울려퍼진다. 케언 한가운데에 그 형상이 선다.
두 발로 선 거대한 도마뱀. 파충류의 초록 비늘이 달빛 아래서 빛난다. 머리 위의 비늘은 비늘이라기 보단 뿔 같은 모습이었다. 길다란 꼬리가 흔들리며 땅을 훝는다.
“용맹한 가이아의 전사들이여.”
파충류를 친족으로 삼는 변신족, 모콜레. 제일 오래된 변신족들 중 하나이자, 가이아의 기억을 지키는 이들. 그 수명만큼이나 오래된 기억들을 신비한 방법을 통해 공유하고 지킨다. 그러나 그들은 공룡의 멸종, 그리고 가루우가 일으킨 분노의 전쟁으로 인해 그 수가 극도로 줄어든 상태였다. 가루우의 행위로 인해 이들 사이에는 수천년은 된 적대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그 만큼 사안이 중대하다는 이야기다.
“옛적부터 내려온 원수관계를 청산할 때요. 거머리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폭주하고 있고, 인간들이 우리들을 사냥하고 있소.”
케언 내가 잠깐 술렁인다. 몇몇 가루우들이 보고한 바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펜텍스가 모콜레를 사냥하고 있다는 정보. 그것도 모콜레가 직접 가루우에게 올 정도라면 그 정도가 심각한 것이 틀림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오. 우리는 이것이 아포칼립스의 전조라고 생각하오. 가루-”
“이런 헛소리를 듣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의 말을 우렁찬 외침이 끊어버린다.
“도마뱀 놈들이 죽어나가는건 아무 상관 없어! 펜텍스 놈들의 시선이 다른 곳에 팔려있을때 수족을 잘라내는게 최선이다! 사실로 확인 되었다면 행동에 나설 뿐이다!”
거대한 울음소리들이 울려퍼지며 그 말에 동의한다. 모콜레와 가루우의 평화협정은 순식간에 가루우들이 복수를 성토하는 장으로 변한다. 모콜레의 사신이 경계하는 표정을 지으며 케언을 둘러본다.
“펜텍스 놈들의 방어가 약해진건 이미 기정 사실이 아닌가? 놈들은 자기들끼리 치고 박느라 우리를 막아낼 수 없을거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신디케이트가 펜텍스의 지부를 소탕하는 것은 가루우에게 그저 내전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라면 가루우가 펜텍스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가루우들의 웜의 수족에게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의 피해를 준 지가 대체 몇십년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을지경이었다. 용맹한 가루우들이 펜텍스의 말단을 공격해봐야 가루우 측의 희생만 늘어갈 뿐이었다. 죽은 전사는 아무리 명예롭고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해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펜텍스는 공장 하나가 박살나도 다시 지으면 된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다르다. 그들이 입힌 타격을 복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전사들이여, 다시 한번 생각을-”
“가이아의 섭리를 휘려는 오만한 자들과 웜의 음모가 결부된 결과다! 다시 생각할 이유도 시간도 없어!”
모콜레의 목소리를 찍어누르는 거대한 분노의 물결. 가루우들의 분노란 그런 것이다. 이들의 분노의 휩쓸리면 그 어떤 것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가 올바른 방향을 향했던 경우가 얼마나 될까.
“다시 한-”
그의 외침은 완전히 묻혀버린다. 늑대인간들만의 성전이, 분노에 가득찬 복수의 성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은이 자신의 손에 놓여진 목걸이를 본다. 자물쇠 모양의 장식. 목걸이를 늘어뜨린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그녀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시 장식을 잡고 손바닥 위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갈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녀를 깨울 피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일까. 어쩌면 없을지도 모른다. 수백년, 어쩌면 수천년 전에 사라졌을지도 모르지.
아냐, 그래서는 안된다.
항상 답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그 반대다.
“스스로는 절대 알아낼 수 없는…”
그녀가 다시 한번 묻는다. 찾을 수 없다면, 찾을 수 있는 사람, 아니, 어떤 존재라도 좋으니 찾게 해달라고. 옥룡이 즉각 반응한다. 그것이 순식간에 나침반 모양으로 변하더니 터미널 하나를 가리킨다. 하은이 터미널을 켠다. 그러자 옥룡이 이번에는 자이로스코프처럼 그 형상을 바꾼다. 그 안의 회전자에는 홈이 여러 개 뚫려있었다.
“...”
하은의 침묵에 대답하듯 그것이 회전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홈이었던 것이, 빠른 회전과 함께 눈속임의 무늬를 이룬다. 여러개의 구멍이 하나의 직선이 된다. 어느 항목을 찾아야 할지 가리키는 듯 했다. 하은이 옥룡의 인도에 따라 하나씩 정보를 캐내기 시작한다.
“대기는 보너스도 안나오고 재미도 없단 말야.”
브린슨의 부하들이 툴툴거리며 연구 시설의 입구를 지키며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괴물을 인계한 이후 그 시설의 경비를 맡고 있었다.
“시팔… 여기 갇혀있으니까 여자랑-”
우웅-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이 뚫리며 무너진다. 브린슨의 부하들이 정신을 차리기도전에 벽을 뚫고 들어온 장갑차의 옆문이 열린다.
“이런 씨-”
욕설이 끝나기도 전에 바닥에 널부러진 그들의 이마가 정확한 사격으로 꿰뚫린다. 그들이 바닥에 널부러지고 먼지가 걷힌다. 장갑차의 전면에 덧붙여진 충각이 찌그러진채로 흉한 모습을 드러낸다. 장갑차의 전면을 박차고 하드수트가 튀어나온다. 헬멧이 열리고 그 안에서 웨더스 소령의 얼굴이 나타난다.
“그래서, 여긴가?”
“네.”
펜텍스의 한 연구 시설. 옥룡이 가리킨 곳은 이곳이었다. 엄청난 경비 수준인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만으로 뚫는 것도 쉽지 않았다. 며칠간 관찰한 결과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 뿐이었다. 잠입하면 들켰을 경우 두 사람만으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웨더스 소령이 하드수트를 입은채로 정면 돌파하는 것이 제일 가능성이 높다.
“정말 하는 작전마다 자살적이구만.”
웨더스가 맘에도 없는 불평을 하며 장갑차 안에서 장비를 챙긴다.
“죄송합니다.”
웨더스가 하은에게 코트를 던진다. 보통의 소재보다 살짝 무겁다.
“방탄이다. 입어 둬.”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것도.”
웨더스가 얼마 안되는 장비 창고에서 닥닥 긁어온 장비들을 넘겨준다. 고화력의 총기 같은 것은 애초에 하은의 스타일이 아니다. 작은 소도구, 튀어나오는 칼날, 프리미움 나이프 같은 것이 그녀의 스타일에 더 맞다.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웨더스가 대답 하기도 전에 연구 시설 전체에 알람이 울린다.
“좀 반응이 느린데?”
“들켰군요.”
“별 기대도 안했다. 내 스타일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며 웨더스가 하드수트의 동력을 100%로 끌어올린다. 방열판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구치고 그가 든 중기관총의 총구가 정면을 향한다. 백팩에 장착한 유탄 발사기, 플라즈마 런처, 허리 춤에 장착된 범용 런처와 손등에 장착된 히트 클로까지.
“가라, 신입. 뒤는 내가 지켜주지.”
하은이 주저하지 않고 뛰어나간다.
“대장님!”
“대장이 아니라 대위다. 상황은?”
작은 연구시설이라 경비용으로 급조된 통제실은 엉망이었다. 기껏해야 CCTV 정도만 믿을만 했고, 부하들의 위치 파악 같은건 일일히 손으로 해야할 지경이었다.
“서, 서쪽에 웬 장갑차가…”
“아 씨팔. 닥치고 CCTV 화면이나 보여줘봐.”
그가 부하의 어깨를 잡고 거칠게 밀어내며 자신이 CCTV 패널을 조작한다. 10개는 넘는 화면들이 동시에 움직인다. 그가 5초정도 CCTV 화면들을 쳐다보더니 말한다.
“중화기 꺼내와. 괴물 새끼들 중에 가죽 두꺼운 새끼들 때려잡는걸로.”
“네… 네!”
그의 험악한 말에 압도된 부하가 재빨리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다. CCTV로 보이는건 본사에서도 테스트용으로나 쓰는 외골격의 강화된 버전이 틀림 없었다. 다시 말해 걸어다니는 탱크다. 그럼 대책은 뻔하다. 대전차무기로 격파한다.
“그리ㄱ-”
“브린슨 대장.”
일순간 경비실이 조용해진다. 경비실 안으로 본사의 요원이 들어온다. 그때 본, 괴상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여자다.
“네, VP.”
서향, 이라는 그녀의 본명 따위는 알리가 없다. 호칭이 생각나지 않아 그때 넘겨들은 타이틀로 부르는 브린슨. 아차, 싶었지만 그녀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했다.
“적은?”
“두 명 입니다. 중무장한 인원이 하나, 경무장한 인원이 하나입니다.”
그가 군대식 말투로 보고한다.
“보여줘.”
그가 즉시 패널을 조작한다. 그녀의 시선이 CCTV에 고정된다. 정확히는 화면에 보이는 한 여성에게.
“...도로시.”
“네?”
서향의 말에 되묻는 브린슨. 그녀가 대답하려다가, 갑자기 눈을 감는다.
“...VP?”
“손님이 있네. 그것도 꽤 많이.”
브린슨이 불안한 느낌을 억누르며 부하에게 지시한다.
“외부 카메라 전부 모니터로 돌려.”
“네!”
동시에 CCTV 화면이 외부 감시 카메라로 -지금 생각해보면 연구 시설에 이 정도의 CCTV가 있는 것도 이상하다- 돌려진다. 도로 저편에서 다수의 차량들이 다가온다. 대다수는 새까만 밴이다. 반 정도는 군용의, 나머지 반은 사설 경호 부대에서나 쓸 법한 것들이다.
숫자를 보건대, 저 안에 타고 있는게 그냥 평범하게 무장한 군인이라고 해도 브린슨의 부대로 막을 수 없는 숫자다.
“VP, 죄송하지만 시설에서 탈출하셔야-”
“손님 무리가 하나 더 있네.”
그녀가 그렇게 말한다. 꺼림칙한 느낌이 방 안을 짓누른다. 그녀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지시한다.
“브린슨 대위, 일부 인원만 지상에 남기고 나머지는 지하의 구금 시설에 배치하도록.”
“알겠습니다.”
브린슨이 끄덕이며 다시 한번 탈출을 권유한다.
“VP, 시설에서 탈출하시는걸 권해드립니다.”
“아니, 난 해야할 일이 있어서.”
꺼림칙한 느낌이 더욱 커진다. 브린슨이 그 느낌을 억누르고 부하들을 재배치시키기 시작한다.
“탕!”
경무장의 경비의 머리가 꿰뚫리며 쓰러진다. 그 뒤에서 좀 더 큰 체구의 남성이 나타난다.
“탕! 탕!”
그러나 이번에는 반응이 없다. 몸통에 맞았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유전적으로 변형된 인간이거나, 아니면 사이버네틱스를 이식 받은 모양이었다. 하은이 엄폐물에 몸을 숨기자마자 그가 든 경기관총에서 총탄이 퍼부어진다.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가 하은의 귓전을 울린다.
위잉-
그러나 그 소리를 뒤덮어버리듯 하은의 머리 위에서 진동음이 들린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공간이 밝게 빛나고 그녀의 머리 위로 뭔가가 스쳐지나간다. 뜨거운 열이 느껴진다.
“나와라.”
소령의 말에 하은이 엄폐물에서 몸을 드러낸다. 그녀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던 자의 상반신은 녹아서 사라져 있었다. 웨더스 소령의 하드수트가 들고 있는 플라즈마 캐논이 열을 뿜어낸다.
“가자.”
“소령님.”
깨져나간 창문 밖으로 보이는 광경. 신디케이트가 운용하는 사설 용병단의 무장밴과 보이드엔지니어 지상근무반이 운용하는 중장갑 차량들이 보인다. 신디케이트-보이드 엔지니어 연합 TF가 당당히 들이닥치고 있는 듯 했다. 동시에 차원 왜곡을 알리는 센서가 작동한다. EDE가 됐든 다른 괴물이 됐든 뭔가가 또 이곳에 차원을 찢고 침투하려는 것이다. 곧 이 시설은 전쟁터가 될 것이다.
“우리한테는 행운이긴한데 개판이군. 빨리 움직이자.”
“네.”
두 사람이 더욱 신속하게 움직인다.
너무 쉽다, 라는게 TF 요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이 시설을 지키고 있는 경비 부대는 기껏해봐야 일반 군부대 수준조차 되지 않았다. 인포서 요원들이 경무장한 경비부대를 박살내 놓다가 임시 진지를 가설해놓은 곳에 들어서면 경량 하드수트를 착용한 보이드 엔지니어 지상 근무반이 투입된다. 지금까지는 사상자가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전원 경계를 늦추지 말도록.”
보이드 엔지니어 쪽의 합동 지휘관이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지상 쪽 시설은 반 정도 소탕했습니다. 다른 쪽 건물이 문제군요.”
“무슨 문제가 있지?”
“안으로 들여 보낸 드론을 비롯한 예비 감시 자산이 전부 연결이 끊겼습니다.”
“해병대가 앞장선다.”
그 말을 들은 지휘관이 즉시 지시한다. 펜텍스가 운영하는 시설 중에는 현실교란적인 공간으로 가득찬 시설들이 몇 있었다. 신디케이트 요원들로만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런 시설들 안에는 현실교란적인 술책과 계몽과학의 중간에 위치한 무언가로 인해 왜곡된 공간, 괴물, 습격해오는 광기의 형상 같은 것들이 휘몰아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쿵,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하드수트들이 전진한다. 그들이 다른 쪽 건물로 이어지는 통로를 지나선다. 마치 탱크를 엄호하는 보병들처럼 신디케이트 인포서들이 하드수트의 사각을 보호한다.
“돌입.”
지시와 함께 하드수트들이 몸을 날려 단단히 닫혀있는 철문을 박살내고 돌입한다.
“...?”
그 안의 광경은 그들이 예상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거대한 몸집의 늑대인간들이 경비부대를 말 그대로 도륙해버린 현장. 나름대로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경비부대는 말 그대로 고깃조각이 되어 있었다. 몇마리 정도가 아니라 최소 30 정도는 되보이는 수의 늑대인간들. 그들의 손에 인간의 내장, 반으로 구겨진 총기, 찢어진 방탄복 같은 것이 걸려있었다. 바닥에는 피와 내장이 흥건했다. 자세히 보면, 유니언이 투입한 감시 자산들이 모조리 박살나 있는 것이 보인다. 외형을 보건대 이들은 펜텍스와 일하는 뒤틀린 종Black Spiral Dancer도 아니다. 정말 순수하게 펜텍스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인 것이다.
유니언이 펜텍스에 적응하는 것 처럼 펜텍스 역시 유니언에 적응하고 있었다. 펜텍스에게는 -비록 그 방향을 정해주는 것은 힘들지라도-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 가루우가 있다.
즉각 늑대인간들이 반응한다. 신디케이트-보이드 엔지니어의 합동 TF들이 즉각 그들에게 사격을 시작한다. 신디케이트 측 민간 요원들은 계몽된 자가 아닌 이상 쉽게 찢겨 나가지만, 그들도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즉각 건물 밖으로 후퇴해 무장밴을 호출해 중화기 전을 시작하는 그들. 그들이 물러난 자리에서 보이드 엔지니어의 하드 수트 운용 요원들이 늑대인간과 힘싸움을 시작한다.
플라즈마 탄이 허공을 날고, 늑대인간들의 날카로운 손톱이 살을 찢어발긴다.
양측의 잔꾀는 통하지 않는다. 신디케이트 인포서들이 보유한, 기업간 첩보전 및 현실교란자들을 생포하기 위한 장비는 아무 쓸모가 없다. 대신 그들이 쓰기 꺼려하는,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총알을 토해내는 토마스 III 개인 무장 시스템이나 묠니르 나노피스톨만이 유효하다. 방탄 차량을 뚫을 정도의 충격력이 있어야 괴물들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이다.
“크아악!”
괴성과 함께 늑대인간의 손톱이 하드수트의 한쪽 팔을 그대로 관통한다. 동시에 하드수트의 어깨에 장착된 플라즈마 캐논이 늑대인간의 한쪽 무릎을 날려버린다. 어디선가 날아온 저격탄에 늑대인간의 머리가 날아가버린다. 그의 시선 끝에서 그를 도운 저격수의 몸이 늑대인간에 의해 두동강 나는 것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그러나 거기에 신경쓸 틈도 없이 경보음이 울린다.
“삐익- 차원이상 경고!”
동시에 하드수트의 자동 방어 시스템이 그의 옆에서 옆길걷기Stepping Sideways로 튀어나오는 늑대인간의 양 다리를 향해 초고열의 화염을 뿜어낸다. 그러나 화염을 뚫고 돌진하는 늑대인간이 하드수트 위에 올라타 헬멧을 무자비하게 강타하기 시작한다. 그런 광경이 건물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한번의 대화만 있어도 되련만, 그들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대화는 피와 철의 대화 뿐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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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ㄱ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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