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 심판의 날, 셋.




자욱한 먼지가 가라 앉는다. 방금까지만 해도 총격전이 치열했던 복도는 무너져 있었다. 내려앉은 바닥과 박살나 파편을 흩뿌리고 있는 벽. 서향이 먼지를 헤치고 기괴한 모습으로 걸어온다. 어쩌면 아직 살아남은 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녀가 손을 뻗는다.


“...윽.”


이식받은 펜텍스제 신경망 강화장치에서부터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패러독스의 징조다. 현실교란적 능력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그녀로서는 지금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그녀의 눈에 무엇인가 들어온다. 


파편속에 묻혀있는 목걸이. 


목걸이 끝의 자물쇠 모양 장식이 즉각 모양을 바꾼다. 뒤틀린 나침반. 그녀의 마음속에 갑작스럽게 이 물건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서향의 손짓에 파편 속에 묻혀 있던 목걸이가 떠올라 그녀의 손으로 들어온다. 그녀의 손에 내려앉자마자 그것이 살짝 손바닥에서 떠올라 한쪽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한다. 


“좋은 선물이네. 이런걸 가지고 있었으니까 별 도움 없이 여길 찾아낸거네?”


그녀가 미소짓는다. 바닥에서 살짝 떠오른 그녀의 몸이 옥룡의 인도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니, 그녀의 인도에 따라 옥룡이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일지도.




“...음.”


정우재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다. 파편 속에 묻혀 있는 것일까. 아냐, 그렇다면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그가 흐린 시야로 자신이 있는 공간을 살핀다. 파편과 철근들이 서로 엮여서 빈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다. 어찌나 절묘한지 조금만 뒤틀려도 공간 전체가 무너질 것 같았다.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거의 비현실적인 광경. 조각들이 서로를 받치고 있는 무너지기 직전의 퍼즐 같다. 


“일어났어?”


익숙한 목소리.


“그거야.. 윽.”


그가 팔 한쪽에 통증을 느낀다. 파편이 박힌게 틀림 없었다. 하은이 그에게 다가온다. 그녀가 상처를 살피며 말한다. 정우재의 시야가 이제야 멀쩡해진다. 그녀의 얼굴도 여기저기 긁혀 있었다.


“응급처치는 해뒀으니까. 압박해놓은게 다지만.”


그녀가 어딘가 어색한 말투로 말한다.


“기다려봐.”


그가 옷 속으로 손을 뻗는다. 입고 있는 본인도 모를 정도의 위치에 교묘하게 살균제가 도포된 붕대가 들어 있었다. 하은이 말 없이 손을 뻗어 붕대를 가져간다. 그녀가 상처 위에 있는 옷을 찢어 만든 압박대를 들어낸다. 


“큰일이군. 이런 장소라면 통신이 될 가망이 없는데.”


그가 말한다. 하은이 붕대를 그의 상처 위에 댄다.


“그래서, 여기에 온 이유는?”


“아마 당신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유... 당길게요.”


하은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섞던 시절의 말투로 돌아간다. 그녀가 붕대를 당기며 그의 상처를 지혈한다.


“윽…”


그가 작게 신음을 흘린다. 다행스럽게도 큰 상처는 아니었다. 아마 지혈만 해두면 아까처럼은 아니어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이 공간은 너의 작품인가?”


하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일부러 말이 아니라 고갯짓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는 아닌 모양이었지만, 하은은 이 대화가 무척이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불편하다기보다는, 어색함에 가깝다. 그녀는 정우재만큼 실용주의자는 아니니까.


“무리했나본데.”


정우재가 그녀의 팔을 살핀다. 피부 위로 마치 퍼즐 조각이 기어가는 듯한 흉터가 붉다. 분명 이 공동을 만들어낸 것은 그녀의 현실교란적인 능력일 것이다. 현실 교란자들을 수없이 잡아죽인 그지만, 우습게도 이번에는 그 덕에 목숨을 구한 모양이었다.


“맘대로 뒤트는건 힘들어서.”


어미를 붙이지 않는 그녀의 말. 하은이 그에게서 약간 떨어져서 앉는다. 한쪽 무릎만 끌어 안고, 다른 쪽은 쭉 뻗는다.


“여기서 나갈 순 있나?”


정우재가 다시 한번 공동을 살피지만 도저히 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확인시켜주듯 하은이 고개를 젓는다. 정우재가 다시 한번 통신을 시도해보지만 마찬가지로 먹통이다. 간간히 진동이 울린다. 밖에서 가루우, 테크노크라시, 그리고 펜텍스 측의 병력들이 뒤엉켜 싸우는 실내전 때문이다. 그 진동 때문에 이 허술한 공동이 무너져 깔려죽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는다. 잠시 VDAS의 오프라인 정보를 살피던 정우재가 말한다.


“어쩌면 부관이 눈치채고 구해줄지도 모르겠군.”


“부관?”


하은이 무심하게 묻는다. 그를 구하기 위해 그의 부관이 몸을 던졌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 손에 걸리던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다시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 네 손에 죽긴 했지만, 유키가 자기 성격을 카피해놓은 AI를 만들어놔서.”


하은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다. 


“그래도 똑같지는 않지.”


“...”


우스운 일이다. 서로가 가해자지만, 동시에 서로가 피해자다. 애초에 자신들의 잘못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유키와 그가 위험한 현장 업무에 뛰어들어야 했던 것은 유키의 전뇌 부작용 때문이었고, 하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퀸란에게 조종당하다시피하고 있었다.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이야 말로 서로의 상황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은이 무엇인가 묻기 위해 입술을 뗀다. 


“...”


그러나 무엇을 묻고 싶은지 모르겠다. 


민려도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깨어난다면, 그 다음은?


왜 그냥 그때 죽이지 않고, 그런 식으로 복수 했을까. 그 처절함이 이 세계와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을 어떤 지경으로 몰아넣었는지 알고 있는걸까?


몇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 정우재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눈빛으로도 말을 하는군.”


그가 건조하게 말하고는 다시 시선을 돌린다. 


“미안해요.”


그녀답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 그 뿐만이 아니다. 말투까지도 예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가 그 말을 듣더니 헛웃음을 짓는다.


“진짜로 미안하지 않으면 사과하지 마.”


정우재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그 사람이 비슷한 말을 했었어요.”


예전처럼 말하는 것은, 그에게 잘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옛날인 것처럼 스스로를 속여야 멀쩡하게 계속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스스로를 몰아붙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의 그녀는 행동을 위해 행동하는게 아니라, 이유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있었으니까.


“맞아요. 미안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말 하지 않으면 앞으로 못나가겠다, 그 말?”


하은이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먼지가 가득 내려 앉은 바닥을 내려다보는 그녀. 


“왜 안 쐈죠?”


“복수는 끝냈으니까.”


정우재가 다친 쪽의 팔을 움직여보며 대답한다. 의외로 고통만 있고 움직이는 것 자체는 얼마든지 가능한 모양이었다. 그가 소매 안에서 진통제를 꺼내 삼킨다.


“정말 그게 다인가요? 저도 요원으로 활동해봐서 알아요. 정말로 복수가 끝나서 개인적인 원한까지 해결했다면 오히려 그 자리에서 사살하는게 정상 아닌가요?”


“뭐, 그런 시대는 갔어.”


그가 태연한 듯 말한다.


“모르나? 괴물들과 싸우는 것보다 이제 우리끼리 싸우는 일이 더 많으니까. 괜한 일 벌이고 싶지 않아. 시대가 바뀌었어.”


자르듯 말하는 그의 대답에 하은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감정적인 것 만큼이나 그는 실용주의적이다.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나?”


그가 하은의 마음을 읽듯 찔러온다.


“...”


그녀가 간신히 대답한다.


“네.”


정우재가 깊게 한숨을 쉰다.


“어리다, 너.”


그가 상반신을 완전히 일으켜 앉으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런데 나도 그렇지. 어쨌든, 아까 그 여자는 뭐지?”


“옛날에 헤르메틱에서 전향시킨-”


쿠릉,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구조물이 얼기설기 섞인 공동이 흔들린다. 하은이 재빨리 몸을 낮춰 일어난다. 정우재도 마찬가지다. 곧이어 한쪽 벽 -그걸 벽이라고 할 수 있다면- 과 천장이 거의 들리다시피한다. 천장의 철골이 서로 부딪히며 아슬아슬하게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정우재가 언제나처럼 욕설을 내뱉는다. 구조물을 어깨와 팔로 떠받치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늑대인간이었다.


“밖으로.”


늑대인간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하은이 그를 알아본다. 글래스워커, 김인혁이다. 그의 얼굴을 -그러니까, 크리노스 폼의- 알아본 것이 아니다. 그가 드리운 그림자, 정확히는 영혼의 흔적Spirit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밖으로 나선다. 정우재는 무기를 꺼내들고 그를 조준하며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온다. 두 사람이 나오자마자 그가 재빨리 몸을 뺀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구조물들이 무너진다. 대충 보아하니 바닥이 통채로 무너지며 지하층으로 떨어진 듯 했다. 주위에도 박살난 골조와 바닥 타일, 콘크리트 조각들이 가득했다.


“어떻게 찾았죠?”


“이걸로.”


인혁이 거대한 손 끝에 걸린 종이를 건네준다. 그들의 상황을 마치 끔찍한 동화의 삽화처럼 그려놓은, 색연필로 그린 그림. 


“...세연이는 잘 있나요?”


“그럭저럭. 구하러온건 저 뿐입니다. 다른 자들은 당신들을 무조건 공격할겁니다. 이쪽은?”


굵직한 목소리의 글래스워커와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는 하은을 보고 정우재는 약간 당황한 모양이었다. 심지어 인혁은 허리에 위버테크로 만들어진 수류탄이 달린 탄띠를 차고 등에는 거대한 -얼핏 보면 마치 이터레이션 X의 플라즈마 라이플 같은- 위버테크 라이플을 메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그가 알고 있던 늑대인간의 모습과는 괴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숨기고 대답한다.


“원수지간이지.”


인혁이 긴 숨을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루우들 사이에는 얼굴을 맞대자마자 싸우는 원수가 있고, 무를 숭상하는 사회에서 항상 그렇듯 원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돕는 꼴인 라이벌인 경우가 있다. 인혁은 후자라고 이해한 모양이었다.


“다행이군요. 조력자가 있다니.”


“뭔가 오해 한거 같은데 원래는 서로 죽이지 못해서 안달난 사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으로서는 다 같이 행동하는 수 밖에 없겠군.”


지하층에서 탈출해서 다시 TF와 합류하기 위해서는 그에게는 그런 방법 밖에 없었다. 혼자 행동했다가는 어디서 고깃덩어리로 찢겨질지 모르니까.


“하은씨, 그래서 어디로?”


“그건-”


하은이 자신의 목에 손을 짚는다.


옥룡이 없다.


“하은씨?”


“...용을 찾아야합니다.”


“세연이가 그리던 그 용 말입니까?”


“네. 그런데 찾아낼 수단이 없습니다. 아까 지하로 떨어지면서 잃어버린 것 같네요.”


옥룡이 없으면, 그 ‘용’이 무엇이든지간에 찾아낼 수단이 없다. 여기까지 와서 막다른 골목-


“어이.”


정우재가 그들의 시선을 끈다. 그가 잔해 속에서 심하게 부상을 입은 남자를 끌어낸다. 그 남자는 살아있었다. 그가 남자의 인식표를 읽는다.


“브린슨 대위… 라. 아까 명령을 내리는 걸로 봐서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어이!”


그가 브린슨의 얼굴을 손등으로 툭툭 친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는 깨어난다. 그의 시선에 늑대인간이 들어온다. 거의 반사적으로 은탄이 들어있는 자동권총을 향해 손을 뻗는 그. 그러나 누가 막을 필요조차 없었다. 그의 손은 잔해에 깔려 잘려나간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제기랄.”


그의 입가에 피가 흐른다. 브린슨의 몸에는 철근과 수류탄 파편이 잔뜩 박혀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그가 펜텍스로부터 이식 받은 각종 ‘특전’들 덕분 일 것이다.


“조져서 알아내면되지.”


정우재가 허리춤에서 나이프를 꺼낸다.


“소용없다. 말하지 않아. 그런걸로 아프지도 않고. 어차피 죽을 사람이다.”


브린슨이 담담하게 말한다. 당연하지만 늑대인간들과 싸우다보면 팔 하나, 다리 하나 정도 날아가는 건 일상이다. 그런 일 때문에 고통받고 쇼크로 즉시 사망해서야 쓸모가 없지 않은가?


“제가-”


“아니, 내가 하지. TF 요원들과 만나면 나는 바로 그들에게 합류하겠지만, 아무래도 그럴 가망은 없어보이고. 너희들을 도와야 나도 탈출 할 수 있을 것 같군.”


정우재가 그녀를 제지한다.


“좋아, 고문은 소용없다 그거지?”


그가 총을 꺼내 그의 복부에 연달아 세발을 쏜다.


“컥… 뭔…”


잠깐의 고통이 느껴지지만, 이내 가라 앉는다. 브린슨이 자신의 배를 흘겨본다. 붉은색의 피 대신에 투명한 신체조직들이 뭉개진채로 튀어나와 있었다.


“넌 죽을거다. 방금까지야 치료하면 낮은 확률로 살 수도 있었겠지만 이젠 확실히 죽지.”


브린슨이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거야 언제나 그렇…”


브린슨이 숨이 턱, 하고 막히는 표정을 짓는다.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너 같은 쓰레기들이 이런데까지 와서 일하면 다 이유가 있지.”


그가 마치 유도심문을 하듯 그를 추궁Arts of Desire하는 말을 던진다. 


“이렇게 절박하게 말야. 뭐지? 여자? 복수해야될 대상이 있나? 아니면-”


그가 한박자 쉬고 무겁게 묻는다.


“가족이구만.”


“이 씨발 새끼가!”


브린슨이 욕설을 뱉으며 팔을 뻗으려하지만, 이미 잘려나간 팔이 자라났을리가 없다. 간단하게 파악한 그가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그래. 네 가족을 전부 끔찍하게 죽여주지. 넌 아무것도 못할거다. 여기서 벌레처럼 뒤지는거 빼고.”


“이 개자식아! 죽여버리겠어! 죽-”


그가 피를 토해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정우재가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아니면 그 반대로 할 수도 있지.”


“뭐?”


“난 그렇게 개새끼는 아니니까. 뭐 대충 보니까 엄청난 빚을 졌던가 가족 중에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있나보지? 안 그러고서야 이런 회사에서 이 지랄을 하고 있을리는 없으니까.”


브린슨이 입 안에 흐르는 피를 뱉으며 대답한다.


“불치병이다.”


“그래? 그럼 우리가 원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면 네 가족을 케어해주마.”


“내가 그걸 어떻게 믿지?”


“믿든 안 믿는 넌 여기서 죽는다. 그러고 나면 네가 우리한테 뭔가를 알려줬다는 건 아무 상관이 없게 되겠지. 하지만 혹시 아나? 내가 진짜로 네 가족들 병원비를 다 내줄지.”


“너, 경쟁사에서 나왔나보구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미안하지만 사내 사망 보험금 같은 거에 기대지 않는게 좋아. 이 회사는 곧 없어질거다.”


브린슨이 펜텍스와 신디케이트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을리는 없지만, 대충 사정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브린슨이 입술을 깨문다. 그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자존심을 내세우기에 그의 가족은 너무 소중했다. 말 그대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심정을 떠밀듯 정우재가 다시 한번 말을 꺼낸다.


“나도 알지.”


“뭐?”


“나도 불치병에 걸린 동생이 있거든. 그쪽 병원비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쪽은 아예 몸을 새로 만들어야 되는 수준이어서. 안다.”


“...”


브린슨이 욕하듯 대답한다.


“지 잘난맛에 사는 놈들이다 그거지.”


그가 피를 뱉어낸다.


“좋아. 잘은 모르지만 놈들이 제일 엄중하게 지키고 있는 놈이 있다. 그놈에게 가는 길을 알려주마.”


정우재가 VDAS로 그의 말을 모조리 녹음한다. 그들의 목표, 그리고 브린슨의 가족까지.


“좋아, 브린슨 대위. 네 가족은 내가 확실하게 지원해주겠다. 하지만 당신은 살려줄 수 없어. 그 모양을 보아하니 펜텍스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을테니까. 적의 병사를 살려줄 의무는 없지.”


브린슨이 고개를 끄덕인다. 철저하게 이득과 손해만을 따진 말이기에 그도 납득할 수 있었다. 그가 눈을 감는다. 아직 살아있었지만, 별 의미는 없다는 듯이. 늑대인간과 두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간다. 고통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단지 신체가 기능을 잃어가며 의식이 흐려질 뿐. 너무 욕심을 부렸나, 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자Fomori에게 있어서 이런 결말은 오히려 구원에 비견할 것이리라.




“운이 좋네.”


옥룡이 서향을 인도한 곳은, 제일 마지막으로 잡아온 ‘괴물’이었다. 그녀가 지체하지 않고 즉시 장비를 작동시킨다. 여기까지 잡아온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는 괴물의 종류까지는 판별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본사에서 제공한 장비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으… 으윽… 으…”


구속 장치에 매달려 있는 남성이 신음한다. 그의 이마에 꽂혀있는 금속바늘이 번쩍거린다.


“아.. 으아… 안 돼... “


필사적으로 중얼거리는 그.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장치는 작동을 계속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서향의 힘이 그의 의식 속에 스며들어온다. 그의 정신적인 방어를 흩어놓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갈취해간다. 


“저항하지마, 늙은이. 당신들이 지키고 있는건 우리들이 잘 써먹어 줄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서향이 기기의 출력을 올린다. 본사의 어르신들이 아주 기뻐하실 만한 일이었다.




“그런 식으로 말할 줄은 몰랐네요.”


간간히 충격과 진동이 전해지는 지하통로에서 하은이 말한다.


“뭐?”


“당신들이 일하는 방법은 알지만-”


“진짜로 해줄거다.”


그가 무기를 점검하며 말한다. 꽤나 기묘한 광경이었다. 신디케이트의 요원, 현실교란자, 그리고 무기를 들고 있는 늑대인간이 같이 있는 모습은.


“한두 번정도는 사기를 쳐도 괜찮지만, 결국 거래는 거래다. 너희들이나 하는 소리 같지만 결국 다 자기한테 돌아오기 마련이거든. 그리고 아무리 우리가 핀치 상황이어도, 한두명 정도 케어해줄 예산은 충분해.”


그가 잘라말한다. 자신이 가진 생각의 근본Paradigm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두 사람을 제지하듯 인혁이 울부짖는 듯한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잡담은 그만, 이 앞입니다. 뭔가 준비할 거라도?”


두 사람이 고개를 흔든다. 준비할 시간보다는, 신속한 행동이 더 중요했다. 


“내가 현실교란자와 늑대인간과 함께하고 있다니 정말 끔찍한 악몽이군.”


그의 냉소적인 말이 끝나자마자 인혁이 단단히 잠겨진 철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그의 괴력에 문짝이 찌그러지며 열린다. 그가 그 안으로 들어선다. 그 광경을 보건대 생체 실험이 자행된 것이 분명한 장소다. 그 한가운데 서향이 서있었다. 그녀의 앞에서 구속 장치에 묶인채 고통에 떨고 있는 한 남성.


“용처럼 보이진 않는데.”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정우재가 즉시 그녀를 향해 권총을 겨눈다. 


“살아있었어?”


서향이 한쪽 손만을 올려놓은채로 기괴한 모습으로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묻는다. 


“웜의 수족이로군.”


인혁이 거대한 라이플을 들어올리며 위협적으로 말한다. 정우재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젓지만, 어쨌든 중화기를 쓸 수 있는 늑대인간이 자신들의 편에 서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난 볼장 다 봤으니까. 그럼 알아서.”


그녀가 신경쓰지 않는다는 투로 말하고서는 물러선다.


“어딜-”


그러나 그들이 달려들기도 전에 어두운 방의 구석구석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낌새가 난다.


“웜의 수족들이 현실세계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무슨 소린지 사람말로 좀 해주면 안되겠나?”


정우재의 말에 인혁이 위협적으로 대꾸한다.


“우리 셋으로는 상대도 안될 정도로 많은 괴물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가 뒤를 돌아본다.


“뒤쪽도 마찬가지.”


“그냥 혼자 탈출하는게 나을 것 그랬구만.”


그가 조용하게 말하며 무장을 점검한다. 하은이 꽤나 큰 방을 둘러본다.


“뭔가 이상한데요.”


“뭐가 말입니까?”


어둠속에서 스며나온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괴물들의 형상이 걸어나온다. 온 몸이 문드러진채 질퍽거리며 걷는 네 다리의 괴물, 상반신 전체가 흉측한 이빨이 튀어나온 입으로 변해 있는 인간, 네 명의 사람이 등을 맞대고 서로 뭉개져 마치 거미를 떠올리게 하는 괴생명체. 말 그대로 악몽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괴물들이 서서히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여긴 독방이에요.”


그녀의 말이 맞다. 이곳에 펜텍스가 가둬두고 있는 것은 한명 뿐이다. 포로나 실험대상을 닭장 같은 공간에 처박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일텐데. 


“...여럿이서 가둬두면 곤란하다 그거지.”


“아니면 한명만 가둬놓기도 벅찬건지도 모르죠.”


그녀가 지체하지 않고 구속 장치에 매달린 자에게 다가간다. 두 사람의 제지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걸 풀 때까지 막아줘요.”


정우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뭘로 풀게?”


“이거요. 저 이런 건 잘 풀어서.”


그녀가 머리핀을 꺼낸다. 


“뭐?”


그러나 반론을 제기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가 한숨을 쉬며 위협적인 표정으로 괴물들을 노려보는 인혁에게 말한다.


“좋아, 괴물 아저씨. 당신 실력 좀 볼까?”


“크아아!”


동시에 그들에게 괴물들이 달려든다. 인혁이 든 중기관총이 불을 뿜는다. 위버의 힘으로 축복받은 철갑소이탄이 괴물들의 다리에 박히며 터져나간다. 균형을 잃은 괴물들이 엎어진다. 정우재가 나노팩의 설정을 조율한다. 얇은 니들러탄 대신, 대구경의 제압용 충격탄이 발사되며 괴물들의 관절 부위에 박힌다.


“크아악!”


팔이 넷 달린 거대한 포모리가 인혁을 덮친다. 네개의 팔이 두개씩 그의 양 손에 잡힌다. 어찌나 강력한지 그가 힘에서 밀린다. 한쪽 무릎을 꿇고는 버티는 그. 정우재가 그의 등을 타고 오른다. 


“퍼엉!”


그의 나노피스톨이 산탄을 뿜어낸다. 포모리의 얼굴이 형편없이 망가진다. 인혁의 팔이 휘청거리는 포모리의 가슴을 그대로 뚫어버린다. 등이 파열하며 내장이 바닥에 흩뿌려진다. 


“뒤!”


탈렌 수류탄이 하늘을 난다. 공중에서 터진 수류탄 안에서 평범한 파편 대신 흑요석 조각들이 사방으로 뿌려진다. 파편이 박힌 웜의 하수인들의 가죽이 파열하고, 분노에 가득찬 비명이 울려 퍼진다. 그 와중에 하은에게 달려드는 괴물. 가늘고 긴 팔 다섯개가 마치 사마귀의 앞다리처럼 그녀를 덮친다.


“합!”


정우재가 뛰어든다. 그의 발차기가 정확히 관절 부위에 적중하며 팔 두개를 꺾어버린다. 하나는 

나노 피스톨로, 또 하나는 나이프로 깔끔하게 잘라낸다. 하은의 얼굴 근처까지 온 괴물의 손. 그가 나이프를 투척한다. 괴물의 비명과 함께 프리미움 합금으로 된 나이프의 날이 손을 관통해 바닥에 꽂아버린다. 하은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머리핀으로 구속장치의 잠금 장치를 하나씩 풀어낸다.


“...너희는?”


정신을 차린 것인지, 묶여 있는 남성이 하은에게 묻는다.


“구출부대요.”


그녀가 간결하게 말하며 작업에 집중한다. 그가 하은, 정우재, 그리고 인혁을 본다. 


“위버의 의지에 따르는 아이들이구나… 너는…”


그가 놀라움의 표정을 짓는다.


“위버의 총애를 받는… 어떻게 인간이…?”


하은이 마지막 잠금장치를 풀어낸다. 흉악한 구속장치에서 드디어 풀려난 그가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분명 단련된 몸이었지만, 고문과도 같은 실험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했다. 


“으...음…”


그가 낮은 목소리로 신음한다. 그 모습을 본 인혁이 즉시 그들에게 달려온다. 정우재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끼리는 못 막아.”


그가 짧게 말하며 다시 한번 견제사격을 가한다. 인화성 탄이 불타오르며 괴물들의 진격을 막지만 잠깐 뿐이다. 쓰러져 있는 남성을 본 인혁이 말한다. 그는 남성이 어떤 자인지 알아본 듯 했다.


“당신 같은 존재가 왜 여기에?”


“...나도 알고 싶다네.”


그가 힘겹게 말한다. 인혁이 남은 수류탄을 투척한 이후 그에게 손을 뻗어 어깨에 얹는다. 갑자기 바닥의 전력 콘센트에서 전기가 파지직 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의 한쪽 손으로 흐른다. 허공에서 번쩍거리는 전기의 흐름. 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일어나 가라, 우리 어머니와 네 믿음이 너를 완전케 하였느니라.”


하은과 정우재는 알턱이 없지만, 어머니의 손길Mother’s Touch라 불리는 가루우의 기프트다. 전기가 그의 몸을 타고 흐른다. 그의 심장을 지나며 전기가 부드러운 흰색의 에너지 흐름으로 변한다. 그 흐름이 남자의 몸을 타고 흐르며 그의 몸을 점점 회복시킨다.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빨리!”


정우재가 마지막 나노팩 탄을 소모하며 외친다. 그로서도 도저히 저 괴물들과 근접전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에 화답하듯 그 남자가 일어선다. 그의 노쇠한, 그러나 단련된 몸.


“고맙구나, 위버의 아이들아. 너희들이 보호한 둥지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보여주마.”


비유적인 말. 그러나 그가 더 이상 말은 필요 없다는 듯이 나선다. 


“캬악!”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괴물. 그 남자보다 세배, 아니, 네배는 거대한 몸집이다. 누가 말릴새도 없이 그가 그 괴물과 대치한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양 팔이 괴물의 양 손을 붙잡는다. 놀랍게도 그는 전혀 밀리지 않는다. 


순식간에 그의 몸집이 부풀어오른다.


얇은 인간의 피부는 거칠고 녹색과 황색이 덮은 비늘로 변해간다. 단련된 근육은 터질듯이 부풀며 비늘 안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빨은 날카롭게 변하고 목은 공룡을 닮아가는 듯 길어진다. 얼굴은 악어와 공룡을 동시에 연상케 하는 형상으로 변한다. 눈동자는 세로로 길어지고 머리카락은 날카로운 가시와 뿔로 굳어진다. 악어, 공룡, 그리고 상상속의 용을 섞어놓은 듯한 모습.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크기였다. 몸통은 버스만했고, 팔과 다리는 웬만한 가루우 만큼이나 굵었다. 만약 브린슨 대위가 펜텍스가 제공한 미사일과 중화기 -건물 한채는 가루로 만들고도 남을 정도의 양-를 있는대로 쏟아붓지 않았다면, 그리고 특별하게 제작된 금-은 합금탄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이런 형상의 괴물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용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집채만한 형상이 포효한다. 포모리들이 공포를 느낀 것인지 멈칫한다. 거대하게 벌려진 아가리에서 강산성의 점액이 뿜어진다. 점액을 뒤집어쓴 포모리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작은 녀석은 뒷발에 밟히고 좀 더 큰 녀석은 손에 잡혀 반으로 찢어져버린다. 


괴성을 지르며 한 놈이 등에 달라붙지만 꼬리에 강타당해 바닥으로 떨어지고 짓밟혀버린다. 압도적인 위력으로 포모리들을 하나하나 처치하는 그. 불리한 것을 깨달았는지 포모리들이 다시 어둠 속으로 숨어버린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방. 그의 모습이 서서히 작아진다. 비늘이 인간의 피부로 돌아오고 긴 목은 서서히 짧아진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던 파괴적인 형상은 온데간데 없고 다시 평범한 인간의 형상이 있을 뿐이었다. 


“모콜레를 펜텍스가 잡아간다는 이야기가 정말이었군…”


인혁이 손에 든 중화기를 내리며 말한다. 변신족 중에서도 유달리 거대하고 강력한, 파충류와 용의 변신족, 모콜레.


“그렇다네. 금과 은으로 된 무기로 우리를 잡아들이고 있는 모양이더군.”


그가 안타깝다는 듯 말한다. 


“당신은 뭘 하는 존재죠?”


하은이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우리는 가이아의 기억을 수호하는 자들이라네. 가이아께서 또 다른 알을 낳으실 때, 옛 둥지로 가는 길을 인도하고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일이지.”


그의 비유적인 말은 알아듣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가지는 명확했다. 


바로 그가 예언에 나오는 용이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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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초강력 모콜레! 외치던 갤러가 있었는데 아직 보고 있을라나 모르겠음


원래 계획에는 신디케이트-프로제니터-가루우 연합아말감 같은게 있었는데 분량 문제로 싹 잘려버려서 여기에서나마 아쉽게 짤막하게 써봄 ㅎㅎ. 아마도 4, 5화 정도 남지 않았을까여


읽어주셔서 ㄳ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