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자체가, 설정상으로는 테크노크라시의 산물이잖아.

우리의 사상도, 정치도, 종교도, 경제도, 모든 것이.

즉, 우리의 가치관이.



그러니까, 우리에게 테크노크라시의 정의에 대한 반론을 묻고,

'자, 반론 없지! 그러니까 테크노크라시가 최고시다!' 하고 확인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음.

우리가 어떤 현실정치/사회 문제를 논하든, 그걸 설계해 놓은 게 테크노크라시인걸.



극렬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중에서는, 민주주의나 양성평등에 대해서,

'그것은 미국의 법도다, 우리는 우리 법도대로 하겠다' 라고 하잖아?

물론 이게 우리 기준으로는 이뭐병스럽긴 한데, 이 사람들은 이걸 진지하게 믿는다는 걸 생각해 보자고.

그니까, 이 사람들은 무엇이 더 '좋다'는 것의 가치관 자체가 다르단 말야.

그 쪽이 우리의 윤리로 어떻게 판단되건 간에, 그 사람들은 이것이 '옳다'고 믿는다고.



기본적으로, 메이지의 트레디션, 좀 더 근본적으로 파고들어보자면,

그 트레디션들의 모티브가 되는 당대의 포스트모던 문화조류들도 이것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함.

우리의 산업화가, 문명이, 과학 기술이 과연 옳았나? 만들어 놓은 건 핵폭탄 더미와 전쟁 부채뿐인데?

그런 회의감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게 포스트모던 사조이고,

그 포스트모던 사조에서 탐구하던 것이 대안적 가치관, 대안적 사고관인 거고,

그 대안들을 묘사하기 위해서 오컬트와 도시전설 설정들을 붙인 게 메이지의 트레디션들이지.



물론 이 사조들은 망했음. 우드스탁의 순수함은 더럽혀졌고, 락은 죽었으며,

돈을 위해 작곡된 음악들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히피들과 386세대들은 이제 전부 꼰대가 되었지.

이런 사조의 현실적 실패에 대해서 논하는 건, 분명 철학적으로는 의미 있을 거임.



하지만, 누군가 그 시대의 낭만을 좀 논해보고 싶다고,

엿같이 만들어진 세상을 좀 갈아엎어보자고 들고 일어선 깨어 있는 자들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 '에엥 그것들 죄다 망했어' 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별로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해, 테크노크라시가 너무나 '옳기에',

나는 트레디션을, 메이지를, 포스트모던의 낭만을 찬양한다.


최소한 RPG 세상에서는, '조금 나은 대안'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편이 좋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