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얘기는 요즘 와서는 공연히 하기가 좀 그래요. 물론 제 팀에 들어오는 사람한테라면야 강제로 사슬에 묶어두고 세뇌를 시키겠지만, 구태여 인터넷에서까지 제가 떠들 필요는 없지요. 다른 팀에서 WoD로 팜 타이쿤을 하든 뭘 하든 제가 알 바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점점 이런 주제에는 노코멘트하고 있어요.


 하지만 WoD 하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일단 규칙서를 안 보고 오는 건 맞아요. 그런 사람들과의 대화는 대충 이런 식이에요.


상대: WoD는 규칙이 구리니까 제 마음대로 할 거에요.

나: 구리다는 데는 동의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디가 구리다고 생각해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요?

상대: 음... 그냥 구리지 않나요? 어쨌든 지금은 문제가 있어요.

나: 구체적으로 어디서 문제의식을 느꼈고, 그래서 뭘 바꾸고 싶은 건지 말을 해야죠. 그래야 뭘 하든 같이 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상대: [어디선가 주워들은 걸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 규칙서에 수록된 규칙이거나, 최소한 지침은 나온 내용들이다.]

나: 너 규칙서 다 본 적 한 번도 없지?

상대: 네.


 섀도우 복싱 같나요?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사실입니다. TRPG 5년차인 제 여자친구가 작년에 한 말이에요. 이 말 들었을 때 복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근데 사실 이 사람만 그런 게 아니에요. 뭐, 물론 어느 순간이든 "196쪽 네 번째 문단의 두 번째 문장 중 세 번째로 나오는 단어가 뭐지?"라고 물어봤을 때 바로 대답이 나오길 바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최소한 WoD를 같이 하기 위해서는 대략적으로나마 주제, 소재, 분위기 등에 대한 공통된 이미지가 필요해요. 그게 없으면 WoD가 구리고 말고를 떠나서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할 수 없어요. D&D는 뭐 규칙서 안 봐도 재밌게 잘 굴러가나요?


 어느 부분이 나한테 안 맞아서 바꿔야 한다는 걸 알기 위해서라도, 일단 규칙서를 보기는 해야 하는 거에요. 경력이 어쩌고 하는 얘기는 할 생각도 없고, 한 적도 없어요. 하지만 그와 별개로 최소한 WoD에서 1차적으로 시키는 게 뭔지는 확인을 해야지요. D&D도 공포물, 추리물, 연애물 할 수 있어요. 그런 거 하라고 나온 추가 규칙/설정집도 있었고... 그러나 "야 이런 것도 있는데 왜 D&D는 모험과 전투에 대한 얘기만 하냐?"라는 건 주객전도가 아닐까 해요.


 물론 모험과 전투 외에 여러가지도 할 수 있지만, 그건 "할 수 있는" 선택지를 열어둔 거에요. D&D의 많은 규칙상, 그리고 설정상 역량은 역시 모험과 전투에 집중됐어요. 기본 규칙서에서도 많은 부분을 모험과 전투에 할애하고 있고요. 그런데 "저는 전투는 고전파 D&D 원리주의자들이나 집착하는 거라고 생각하므로 모험과 전투가 D&D의 주를 이룰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는 그 사람이 "참고로 모험과 전투에 대한 규칙은 시대착오적인 불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다 읽지 않았습니다"라고까지 한다면, 당연히 뒤집어지는 거에요.


 뭐... 제가 제 싸움도 아닌 데 끼어들어서 누구는 비호하고 누구는 공격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바로 위에서 나온 이야기는 제가 WoD 하면서 정말 많이 겪은 일이고, 이 또한 오래된 생각입니다. 아마 이 글을 보게 될 저의 전현직 플레이어들도 좀 있을 텐데요, 너희 중에는 좀 찔려도 되는 놈들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