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썰을 푸는 것은 제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에요. 망한 플레이도 많이 있고, 흥한 플레이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다보면 그 의미가 퇴색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가끔 왜 설정 얘기는 자주 올라오면서 플레이한 썰은 안 올라오냐는 얘기가 조금 걸리더군요. 그래서 저도 하나 정도 쓰는 건 나쁘지 않을 거 같아서 써보았어요. 그렇게 긴 내용은 아니고 빅토리아 시대 배경으로 Story 3개 정도 하고 중간에 끝낸 캠페인이었는데, 이것은 거기 참가했던 캐릭터 중 하나의 비커밍 내용이에요.
당시 이 캐릭터를 사용한 플레이어는 RPG를 거의 처음 시작한 상태에 D&D 4판만 아주 짧게 해본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불운하게도 첫 장기 캠페인으로 WoD를 하게 된 거였죠. 가여운 사람 같으니... 하지만 당시에는 저도 살짝 미친 상태에서 플레이를 강행하던 때였으므로 캐릭터는 당일에 거의 제가 제작해서 쥐어주다시피 했어요. 그리고 캐릭터가 제작되자마자 바로 비커밍 플레이를 했어요. WoD를 처음 한다는 말에 조금 부담감을 느꼈기 때문에 저도 조금 신경써서 묘사나 연출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뭐... 이제는 본격 무책임 마스터가 됐지만. 그때는 그랬어요. 플레이어가 카르밀라 같은 조용하고 신비스러운 미소녀 뱀파이어를 하고 싶어했으므로 이름은 그냥 카밀라가 됐어요. 성은 조이스였어요. 아마 플레이어가 제임스 조이스를 좋아했나봐요. 어쨌든 성이 뭔지는 별 관심 없었으므로 이름은 카밀라 E. 조이스가 됐어요. 중간 이름은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19세기 중엽(정확한 시작 년도는 기억 안 남). 당시 대도시의 대기는 결코 유아들이 들이마시기에 안전한 성격의 것이 아니었고, 많은 아이들이 10대에 이르기 전에 온갖 질병으로 병들어 죽어갔어요. 그러한 위험은 부유한 서인도회사 중진의 아버지를 두고 태어난 카밀라 E. 조이스에게도 마찬가지로 다가왔어요. 조이스의 어머니는 그를 출산하던 중 사망에 이르렀고, 죽어가는 부모의 자궁에서 태어난 탓인지 조이스는 허약한 체질로 자라났어요. 결국 조이스가 5살이 됐을 때, 딸에게 애정을 드러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양육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는 의사와 상담한 후, 당시 부유한 계층의 여러 집안이 그러했던 것처럼 조이스를 윅로(Wicklow) 지방에 있는 시골 사유지로 장기요양을 보냈어요.
조이스는 그렇게 푸르고 축축한 녹빛 들판과 울창한 숲, 안개 낀 회색빛 산으로 둘러싸인 채로 15세까지 살았어요. 그곳에서 조이스는 자신보다 2살이 더 많은 Lady's Maid인 수(핑거스미스에서 따옴)를 비롯한 몇몇 사유지 관리인들과 함께 조용한 생활을 보냈어요. 그러나 조이스가 15세가 됐을 때 아버지는 이제 조이스도 나이가 찼으니 이제는 상류층에 걸맞는 숙녀로의 교육을 받기 위해 도시로 와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어요. 처음에 조이스는 아버지와 몇 번인가 서신을 주고 받으며 낯선 사람과 환경으로 가득 찬 런던이 무서워 가고 싶지 않다는 뜻을 표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의 답장은 끊겼고, 이에 화가 난 아버지가 연락의 단절했다고 판단해 겁을 먹은 조이스는 결국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했어요. 결국 조이스는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이에 시골의 정든 사람들과 짧은 작별인사를 나누고 수와 단 둘이 도시로 떠나오게 됐어요.
저는 플레이어가 수에게 조금이나마 애착을 품길 원했으므로, 여행 중 수가 귀엽고, 싹싹하며, 조이스에게 충실한 모습을 보이도록 신경썼어요. 장기간의 열차 여행 중 김이 서린 열차 창문에 입김을 불며 별을 그린다거나. 시덥지 않은 이야기로 계속 말을 걸며 친구 같은 대화를 잇는다거나. 조금이라도 레이디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다가오면 씩씩하게 가로막으며 대신 일을 처리해준다거나. 어쨌든거나 그런 사소한 과정 끝에 조이스와 수는 무려 10년만에 집에 돌아왔어요.
왜인지는 몰라도 아버지가 마중할 사람을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런던의 길거리에 익숙하지 않았던 조이스와 수는 밤이 되고서야 런던 북부 하이게이트에 위치한 아버지의 저택에 도착하게 됐어요. 하지만 고용인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저택에는 으스스한 적막과 한기만 돌고 있었어요. 그러한 저택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버지와, 아버지가 "손님"이라고만 짧게 설명한 어느 낯선 남자 뿐이었지요. 아버지는 기억 속에 존재하던 것보다 어둡고 수척해 보였어요. 그리고 조이스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깜짝 놀란 것처럼 보였어요. 알고 보니 아버지는 뒤늦게 "정 네 뜻이 그렇다면 윅로에서 계속 살아도 좋다"는 서신을 보냈었는데, 운이 없게도 서신이 도착하기 전에 조이스는 이미 런던으로 출발했던 것이었어요.
어쩐지 지친 듯한 표정을 띈 아버지는 조이스와는 아주 약간의 대화만을 나누었어요. 그 후에는 조이스와 수가 사용할 방과 식사가 준비된 응접실을 안내해준 후, 사업상의 대화로 바쁘다며 서재로 올라가버렸어요. 식사를 끝낸 조이스는 기억 속의 아버지와는 너무나도 달라진 아버지의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린 탓에, 결국은 충동적인 호기심으로 서재에 다가갔어요. 서재에는 아버지만 있는 게 아니었어요. 아버지의 "손님"도 함께 있었지요. 지각 판정에 실패한 탓에 조이스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정확한 대화는 듣지 못했어요. 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열린 문 틈으로 "손님"이라는 사내가 아버지를 힐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집 주인이 자기 집 지붕 아래에서 손님에게 혼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예의에 어긋난 이상한 광경이었어요.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버지에게 뭐라고 말이라도 붙여볼까 했지만, 조이스는 풀이 죽고 창백해진 안색의 아버지가 어쩐지 더 이상 가까이 하기 힘든 존재가 되어버린 것만 같아서, 그 밤에는 끝내 아버지에게 제대로 말도 붙이지 못한 채 그대로 침실로 들어갔지요.
그러나 깊은 잠에도 들지 못한 조이스는 곧 옆 침대에서 뒤척이는 소리에 잠에서 깨게 됐어요. 눈을 뜬 조이스의 시야에 들어온 광경은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수의 위에 올라탄 채, 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들썩이는 모습이었어요. 조이스는 천천히 침대 옆에 걸어두었던 작은 등잔을 들고 그 모습을 비추었어요. 빛이 어둠을 몰아낸 순간 보인 것은 바로 공포와 충격, 그리고 황홀감에 휩싸인 채 눈을 치켜뜨고 죽어있는 수의 창백한 시체였어요. 침대 아래로 힘없이 떨어진 수의 팔을 따라서는 핏줄기가 똑똑 소리를 내고 흐르며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고, 새하얗던 침대의 매트리스는 이미 끔찍할 정도로 시뻘겋게 젖어있었지요. 그제서야 조이스는 방 안을 채운 공기 중에 만연한 비릿한 냄새가 바로 피의 악취였음을 깨달았어요.
바로 그 때, 죽은 수 위로 몸을 포개고 있던 사내가 갑작스러운 빛에 놀라 조이스를 돌아보았어요. 그 얼굴은 조이스를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어요. 그것은 바로 수의 순결한 피로 입가를 적신 아버지였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던 것인지 급기야는 조이스를 향해 돌진했어요. 아버지는 딸을 바닥에 짓누르고 목에 날카로운 이빨을 파묻었지요. 한동안 딸의 피를 게걸스럽게 탐하던 아버지는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벌인 일에 분노어린 고함을 토하며 오열했지만, 이미 조이스의 의식은 극한의 쾌락 속에서 점점 흐릿해지기만 했어요. 그렇게 의식을 완전히 놓아버리기 직전, 희미한 시야 사이로 아버지의 쓰라린 음성이 들렸어요. "정말 미안하다. 이 애비가 어떻게든 널 살리마." 뭐, 이런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얼마 후 조이스는 어둠 속에서 의식을 되찾았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때는 밤이었어요. 여전히 옆의 피로 젖은 침대에는 초점 잃은 눈을 홉뜬 채 차갑게 굳어있는 수의 피투성이 시체가 누워있었어요. 조이스는 그것을 본 순간 느낌 첫 감각이 공포도, 슬픔도, 연민도 아닌, 바로 갈증이었다는 사실에 몸서리를 치나, 가까스로 그 역겨운 욕구를 참아냈어요. 왜냐하면 셀프-컨트롤 판정에 성공했었거든요... 이 알 수 없는 상황과 욕구에 겁을 먹은 조이스는 천천히 방을 나와 복도로 향했어요.
복도 너머 아버지 서재에서는 여전히 불빛이 너울거리며 복도로 스며들고 있었고, 아버지를 힐난하는 저음의 목소리가 복도를 따라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어요. 조이스는 어두운 복도를 지나 빛의 발원지로 향했지요. 아버지의 서재로 들어선 조이스는 "율법을 어겼다"며 아버지를 무서울 정도로 비난하는 "손님"을 발견했어요. 그제서야 조이스는 "손님"의 얼굴을 처음으로 확인했는데, 뭐... 대충 프란시스 코폴라의 드라큘라에 나온 게리 올드만의 루마니아 귀족 버전이었어요. 비록 아버지가 괴물 같은 짓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 광경을 본 조이스는 거의 본능적으로 낯선 남자를 가로막고 아버지를 비호했어요.
그러나 남자는 아버지에게 "네 실수가 결국 구하고자 하던 딸을 죽이는 결과로 귀결되었다"며, 조이스에게로 시선을 돌렸어요. 이에 아버지는 다시 바닥에 엎드리다시피 하며 딸을 죽이지 말 것을 간청했어요. 이 대목에서 플레이어가 최초로 제가 예상하지 못한 선언을 했는데, 무척 마음에 들고 재미있는 선언이었어요. 조이스는 본래는 소심한 성격이지만, 커리지 판정의 성공으로 용기를 내서 "왜 내가 죽어야 하나요?"라고 조용히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어요. 다만 저도 이런 질문에 대한 반응을 어느 정도로 해줘야 할지는 미리 생각해둔 바가 없었으므로 리더십 판정을 시켰어요. 그리고 성공수가 더럽게 많이 나왔기 때문에... 낯선 남자는 곧 죽을 사람이 자기가 죽을 이유는 알 권리가 있다고 수긍해서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어요.
"손님"은 자신들이 자칭 "카이나이트(Cainite)"라는 "밤피르(Vampyr)"들이고, 사람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연명할 수 없으며, 때문에 인간의 수를 조절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가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 동족의 수를 주의깊게 제한하는 율법을 지키고 있음을 설명했어요. 낯선 손님, 스스로를 마브로예네스라는 칭한 남자는 자신이 루마니아에서 온 카이나이트로 최근 런던으로 이주해왔고, 조이스의 아버지를 자기 "자식(Childe)"으로 삼아 동족으로 만들었다고 했어요(연락이 끊긴 몇 주 사이에 포옹됐었음). 헌데 어리석게도 조이스의 아버지는 지금까지 사람을 해치기 싫다는 이유로 피에 대한 갈증을 억누르고 있었어요. 조이스가 처음 아버지를 다시 만났을 때 그의 안색이 비정상적으로 창백했고, 냉담하게 반응했던 것도, 바로 피에 대한 갈증에 심하게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던 중 아버지는 결국 어제 밤(실은 이미 하루가 지났던 것) 복도를 지나다 곤히 잠든 조이스와 수를 보고 본능에 굴복했던(프렌지 함) 것이었어요. 그렇게 아버지는 둘을 덮치고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이었어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딸을 살리기 위해 죽어가던 조이스를 엉겁결에 자신과 같은 "카이나이트"로 만들었어요. 구울로 만들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던 상황이었거든요.
하지만 마브로예네스에 따르면 조이스는 장로들의 허가를 받지 않고 만들어진 "자식"이므로, "불법적인 포옹"이 발각되기 전에 제거되어야만 한다고 했어요. 율법에서는 너무 많은 뱀파이어가 생겨나서 자신들의 존재가 인간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금하고 있다고 말이에요. 겁에 질린 조이스는 "그렇다면 반드시 나여야 하는 게 아니라 누구든 한 명의 밤피르가 죽으면 되는 것인가요?"라 물었어요. 나중에 들은 고백에 따르면, 플레이어는 사실 어떻게든 다른 뱀파이어 하나를 찾아 죽여서 머릿수를 맞추면 되지 않을까 했던 거였어요. 그러나 당연히 그렇게 될리가 없었지요. 마브로예네스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대신, 그 질문에 먼저 반응한 것은 아버지였어요.
아버지는 자신이 딸 대신 죽겠다고 간청했어요. 어차피 자신은 네오네이트가 아니라 "새끼(Fledgling)"이므로, 자기가 죽고 새 "자식"을 포옹한 셈 치면 되지 않겠냐는 거였어요. 자신이 죽을 경우 자신의 모든 재산은 딸에게 상속될 것이며, 회사의 경영은 사업상 친구들에게 위임되므로, 마브로예네스에게 해가 될 일은 없다고도 필사적으로 설명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브로예네스가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자, 아버지는 아예 마브로예네스를 협박하기 시작했어요. 아버지는 만약 딸이 죽을 경우 자신은 "딸의 복수를 제하고는"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의지를 잃을 것이라 역설했어요. 처음에 마브로예네스는 아버지에게 감히 자신에게 반항하는 것이냐고 역정을 냈어요. 하지만 결국은 아버지의 뜻이 확고한 진심임을 깨닫고는 아버지의 청을 수락했어요. 그가 아버지를 포옹한 것은 런던에서의 삶에서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만약 아버지가 자신에게 앙심을 품으면 이 모든 지원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될 뿐더러, 잠재적인 적을 만드는 일이 될 것이었지요.
단 마브로예네스가 아버지의 청을 수락한 데는 조건이 있었어요. 조이스가 유산에 대한 경제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마브로예네스 자신이 조이스의 유일한 후견인이자 재산권 행사의 대리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유서에 덧붙이라는 것이었어요. 남자의 요구에 응한 아버지는 떨리는 손 탓에 글씨를 잘못 써서 몇 번이나 유서를 새로 작성했지만, 결국 유서는 작성됐어요.
마지막 조건으로 마브로예네스는 과연 이 여아가 자기 클랜의 피를 이을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하겠다고 했어요. 그가 조이스에게 지시한 것은 바로 아버지의 목을 직접 베라는 것이었어요. 당연히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적응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던 조이스는 그제서야 거세게 저항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꼭 해야만 한다고 말하며 딸의 손에 Letter-Knife를 쥐어주었어요. 그리고는 똑바로 시선이 마주치고 명령했어요. 자기 목을 베라고 말이에요. 조이스는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팔을 움직여 아버지의 목을 천천히 베기 시작했어요. 작은 손에 가녀린 팔로 쥔 작은 칼로는 아버지의 목을 벨 때까지 한참이 걸렸어요. 아버지는 천천히 목을 베이면서도, 눈가에 피눈물이 차오르며 조이스에게 미안하다는 말만을 계속 반복했어요.
하지만 문제는 그 와중에 생겨났어요. 뱀파이어의 진한 비타에(Vitae)의 향에 정신줄을 놓은 조이스가, 도미네이트의 효과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프렌지에 빠진 것이었어요. 포옹을 받은 후 한 번도 피를 채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블러드풀이 1이었거든요. 결국 조이스는 제정신을 잃고 아버지의 목을 썰다 말고 덮쳐서 피를 빨아먹기 시작했어요. 조이스는 아버지를 디아블러리하는 것으로 첫 흡혈을 끝냈고, 정신을 차린 후에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어요. 이 정신적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지 보기 위해 컨션스 판정을 한 결과 보치가 났기 때문에 조이스는 정신병을 얻었어요. 비커밍에서 정신병 얻는 건 조금 너무하지 않나 싶어서 받을 건지 말 건지 물어봤는데, 받겠다더군요. 이 시점에서 저는 "음, 이 플레이어 좋은 WoD 플레이어가 되겠군"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사실은 아니었어요.
아버지를 다 쳐먹은 후에야 정신을 차린 조이스는 전신에 힘이 빠진 채, 반쯤은 광기에 차서, 피눈물이 차오르는 눈으로 마브로예네스에게 소리쳤어요. "네가 우리 아빠를 죽였어!"라고요. 하지만 마브로예네스 남자는 쉰, 그러나 소름끼칠 정도로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어요. "아니. 이제는 내가 네 아버지란다, 내 아이야."
그 후에 벌어진 일들은 비커밍 에필로그에 가까웠어요. 플레이어는 조이스가 자살을 시도했을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조이스가 생각할 수 있는 자살법은 목을 메달거나, 강에 뛰어들거나, 빠르게 달리는 마차에 몸을 내던지는 것 따위였어요. 그리고 매번 죽지 못하고 돌아왔지요. 태양광이나 불에 몸을 노출시킬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태양광과 불에 조금씩 몸을 대본 후 조이스는 그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너무 무서웠거든요. 내면에서 새로이 자라난 뱀파이어의 본능, 야수성(Beast)은 조이스가 태양과 불 가까이 다가갈 수 없게 만들었어요. 의지가 박약했던 조이스는 그 본원적인 공포감을 극복할 수 없었고, 태양과 불을 이용한 자해는 차마 시도할 수도 없었지요.
그렇게 자꾸 자해나 벌이던 조이스를 지켜보던 그랜드 사이어 마브로예네스는 결국 아버지의 개인적 유서를 보여줬어요. 이것은 조이스가 포옹되기 전, 아버지가 마브로예네스에게 강제로 포옹된 직후에 쓰인 것이었어요. 거기에는 아버지가 조이스에게 품었던 애정, 기대, 희망이 담겨 있었어요.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되든, 어디로 가든, 언제까지나 딸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유언이 쓰여있었지요. 이것을 본 조이스는 자신이 죽으면 아버지의 희생이 헛되이 될 것이고, 이 세상에 남은 아버지가 존재했었다는 흔적도 모두 사라지리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결국 조이스는 계속해서 살아가고자 마음 먹었고, 언젠가는 아버지와 자신의 운명을 파탄으로 몰고간 저 외국에서 온 괴물, 마브로예네스에게 복수를 하기로 다짐했지요. 아버지처럼 흡혈을 거부하던 조이스가 마음을 다잡고 처음으로 닭을 잡아 피를 빨아먹으며... 비커밍은 끝이 났어요.
그리고 플레이어는 너무도 서럽게 울었어요. 왜 자기한테, 그리고 자기 캐릭터 아버지에게 부조리한 고통을 주었냐는 것이었어요. 저는 몹시 당황했어요. 제가 잘못한 건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캐릭터에 몰입을 안 해서 저를 짜증나게 한 플레이어들은 많았지만, 그렇다고 비커밍 끝나고 우는 사람은 처음이었거든요. 사실 아직도 이게 울 만큼 억울하거나 비극적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결국 이 플레이어는 흑화했어요. 캐릭터에 몰입하면 자기가 너무 괴로워진다면서 아예 캐릭터와 자신의 감정선을 의식적으로 분리하기 시작한 거였어요. 그래서 RP가 존나 딱딱하고 재미없고 메타적으로 변모했어요. 캠페인은 약 4~5개월? 정도를 하고 중간에 끝냈어요. 원래는 1년짜리로 예정한 캠페인이었어요.
그 후부터는 WoD 할 때도 플레이어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조심하게 됐습니다. 이야기 끝.
P.S. 그랜드 사이어는 오르데아 리그 출신의 올드 클랜 쯔미쉬이고, 투르크한테 땅 뺏긴 후 망명한 것이었다고 한다.
4판 숭배자가 또... 확실히 어느 정도까지 플레이에서 압박해도 되는가는 친분관계와 취향 파악을 다 하고 나서 감을 잡게 되네요. 저도 잘 아는 오랜 친구하고 플레이할때 일부러 그의 성향을 파악해서 감정선을 건드려 본 적이 있고, 그 덕분에 "VtM이 퍼스널 호러 게임이라는데 이번에 체감했다" 같은 긍정적 평가를 얻은 적도, 뉴비를 조금 심하게 압박해서 소식이 끊긴 적도 있어요. 사실 실패 비율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이런 플레이 기록 보면 '오오. 나도 뱀프하고 싶다'라고 해서 설정은 파는데 왜 저리 쓰거나 하려고만 하면 고개 숙여지는가 ㄷㄷ 워울프나 메이지는 거시사회를 다루면 되지만 뱀프는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을 다뤄야해서 호불호보다도 관점 문제로 많이 갈리는 듯.
플레이어가 캐릭터 손으로 직접 아버지를 죽이는 비극을 겪는 걸 바란 게 아니라면 나도 이런 플레이를 감정적 고문이라고 여길 것 같은데...일반론이라 하나마나한 얘기 같지만 몰입이 강한 상태에서 어떤 형태든 플레이어 캐릭터가 비극을 겪는 건 항상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야 한다고 본다.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결정적인 장면이 있기 전에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Y/N' 하고 뜸을 들일만한 장치 같은 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Y면 고 하는 거고 N이면 수위를 좀 낮춘다든가 간접적으로만 묘사를 한다든가.
물론 나는 WoD알못인데다 이 플레이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갔는지 모르니까 헛소리 하는 걸수도 있는데 그 점은 양해를 부탁.
ㅜ 좀 슬픈데
이입 잘하는 사람이면, 이럴수도 있을거라고 봅니다
나 옛날에 연극하다가 이입 너무 해서 멘붕한적 있는데, 그때랑 비슷함
<적당한 이입은 플레이어의 멘탈과 리얼리티를 보장해줍니다>
딱히 누구의 잘못이었다기 보다는 플레이어와 진행자의 성향이 안 맞아서 결국은 망한 것 같음. 플레이가 망하는건 드문 일도, 대단한 일도 아니지.
사전 고지와 합의의 중요성.
텍-섹 하다보면 저런일이 많지.
그리고 이 플레이어는 우리 와이프가 되서 8년째 WoD를 하고 있는 저주를 받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