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허 재미있는 이야기로군요.

그러니 나도 오랫만에 생각을 새로 정리할 겸 해서 이미 끝난 듯한 이야기에

불을 붙여보겠음. 뭐 안 붙겠지만 매번 그랬으니까 괜찮아.


TRPG의 정의?

RPG가 뭔지 정의하자면 아마 플레이어들이 가상의 세팅 내에서 캐릭터들의

역할을 맡아 플레이하는 게임이라고 해야할 것임. 내가 아니라 위키피디아가

정의한 거니 (A role-playing game is a game in which players assume

the roles of characters in a fictional setting.) 불만이 있으면 위키피디아를

수정하도록.


RPG를 보는 관점의 "다변화 및 확장"

원래 TRPG란 워게임을 기반으로 한 물건이었고, 따라서 인카운터 등 작중에

등장하는 난관들을 어떻게 뚫느냐에 관한 "게임적인" 요소가 중심이 되었음.

OSR / D&D 틀딱들이 떠오른다면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는

이런 흐름은 서서히 여러 갈래로 갈라짐.


3판은 판정법 등에서 "좀 더 상식적인 체계"를 지향한 동시에 플레이어들이

대가리를 굴려 판정을 안 하고 해먹으려 들던 실력겜 체제를 부정하려 했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이것도 데이터로 가능함"을 훨씬 더 많이 지향함.

여기에다가 게임적 요소에 집중하는 게 지나쳤던 사탄은 "테이블탑 와우"가

되었었고. 반대로 OSR은 3판은 싫은데 솔직히 구판 체계에는 병신스러운

부분이 있던 건 사실이니 좀 고쳐 써야겠다고 여겼던 놈들이 손을 댄 거임.


한편 인디 RPG 제작자들도 나름대로 이것저것 연구해 봤었고, 그 가운데는

The Forge라는 사이트가 있었음. 이 사이트 쪽에서 나왔었던 물건들 중에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면 버닝 휠(마우스가드의 기본 룰) / 포도밭의 개들 /

안방극장 대모험 등이 있다. The Forge는 문을 닫았지만 그 의지는 지금도

스토리게임 쪽으로 계승되고 있고 말이지. 물론 "스토리게임" 쪽에선 이런

"스토리게임"이라고 따로 분류되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지만 알 게 뭐야?


하여간 얘들은 각각 RPG를 보는 방향성과 관점이 상당히 달라진 상황이고,

이걸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OSR 계와 스토리게임 계의 싸움...이

아니라 게임 내에서의 판정에 대한 각 게임들의 관점이라고 생각함.


OSR = 대개 실패하면 X될 게 뻔하니 판정 자체를 패스하려고 몸을 비틈.

쩜오 이후의 D&D = 효율적인 빌드+@로 얻은 자원으로 문제를 해결함.

스토리게임들 = 응? 실패도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 수 있으니까 괜찮음.


그러니까 현 상황을 보면 개인적으로는 RPG라는 개념은 이제 "플스 게임",

"PC게임" 뭐 그런 분류에 도달한 상태라고 생각함. 그러니 그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RTS와 FPS를 어거지로 같은 선상에 놓고 그럴 이유는 없겠지?

그래서 나는 스토리게임은 스토리게임으로 따로 분류하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함. 물론 공용 룰 놔두고 CoC로 이상한 거 하는 건 결국 도타 오토체스

같은 거니까 이런 분류하고는 전혀 다르다고 보지만 일단은 넘어가자.


RPG와 역극 등의 차이?

그렇다면 역극같은 장르와 RPG를 분류할 수 있는 차이는 무엇일까? 아래에

다른 갤럼도 쓴 이야기지만 나는 일단 "목적성"과 "캐릭터의 위치"를 들겠음.

게임은 일단은 목표를 가지고 진행하는 거야. 캠페인의 목표 달성이라든가,

그런 거 말이지. 그리고 캐릭터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고,

때로는 소모품이기도 한 거임. 라그나들이 날뛰기는 하지만 스토리게임들도

원래는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아. 오히려 이쪽은 한 술 더 떠서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려고 "명확한 성공" 확률이 낮은 판정법을 쓴다거나

그러잖음?


보드게임과의 차이는 당연히 역할에 대한 관점 같은 걸 들 수 있을 텐데, 사실

엄청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함. 아래에는 뱅이나 뭐 그런 거 이야기 나왔는데...

좀 더 복잡한 것을 예로 들자면 지금 펀딩중인 "니알랏토텝의 가면들"이 있음.



이 캠페인은 FFG의 보드게임인 엘드리치 호러의 확장판으로도 나왔으니까

보드게임으로도 할 수 있거든? 위의 플스 게임 / PC 게임 비유로 따진다면

한 쪽은 플스판, 한 쪽은 PC판인 셈이겠지? 이러면 결국 똑같은 캠페인을

보드게임식으로 하냐, TRPG 식으로 하냐의 차이밖에 없는 상황이 되니까,

둘 사이의 차이는 결국 역할에 대한 관점 같은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3줄 요약

원래 TRPG는 역할을 플레이해 난관을 극복하는 게임에 초점을 맞추었음.

근데 점점 범위가 확대되서 이제는 아예 장르 개념 자체가 바뀌었다고 봄.

그래도 역극이나 보드게임하고는 아직 선을 그을 수 있으니 다르다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