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진 H. 그레인저)





52화 - 심판의 날, 다섯.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스크린에 뜬 영상이 정지한다. 방금까지만 해도 스크린에는 뱀파이어들이 폭주하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지난 몇주간 연합 아말감의 요원들의 바디캠에 찍힌 영상들이다. 이시야마가 천천히 그 앞으로 걸어나오며 연합 아말감의 지휘관들에게 설명을 시작한다.


“저보다 여러분들이 이 기술의 결과에 대해서는 더 잘 알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좀비 아포칼립스라는거 아니요?”


“그렇습니다. 뱀파이어간의 관계를 피를 통한 전염을 통한 가족관계라고 해봅시다. 그럼 선조에 해당하는 뱀파이어의 피만 있으면 그 후손들을 전부 폭주시킬 수 있습니다.”


“방법은?”


스크린이 기술적인 디테일을 담은 프리젠테이션으로 바뀐다. 프로제니터 출신인 일부 요원들은 어느정도 이해하는 듯 했다.


“원리 자체는 간단하다고 할수도 있지만, 뱀파이어에 대한… 독특한 시선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한 방식일겁니다.”


“계몽과학과 현실교란적 수단 중간 정도에 있는 기술이로군.”


프로제니터 출신인 한 감독관이 평가한다. 뱀파이어의 피를 매개로 한 일종의 생화학 병기를 만들어내는 기술. 그러나 그 절차는 계몽 과학과 광신도의 종교 의식을 묘하게 섞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뱀파이어의 피를 보존하거나 살포하는 부분은 철저하게 계몽과학적이었지만, 그 피를 ‘정제’하고 변형시키는 부분에서는 아무리 봐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절차들이 있었다. 경험적으로 보니 이렇게 된다, 정도가 한계다.


“거리 제한은?”


“선조의 세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기술의 위력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매개가 되는 피에 달려있습니다.”


유니언의 전투 아말감과 뱀파이어가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다. 이곳에 모여있는 지휘관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정도의 경험은 있었다. 어떤 뱀파이어들은 기껏해야 사람보다 빨리 달리고 힘이 더 센 정도지만, 어떤 뱀파이어들은 그림자를 조종하거나 피를 끓여 사람을 안에서부터 구워버리는 현실교란적 능력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위력은 보통 그 뱀파이어의 피가 얼마나 많은 힘을 담고 있는가에 있다. 따라서 보통 오래된 뱀파이어나, 그 직계 후손에 해당하는 뱀파이어일수록 제압하기가 힘들다.


“만약에 거리 제한이 없었다면 지금쯤 지구 전체에서 이런일이 일어나고 있을겁니다. 15세기쯤이라면 모를까, 인구 이동이 자유로운 지금이라면 그 정도는 간단하게 역검증 할 수 있죠.”


“다행이구만.”


감독관 중 한명이 손가락으로 초조하게 책상을 두드리며 말한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이로 인해 감염된 뱀파이어의 특성입니다. 뱀파이어는 인간이 죽고 나서 뱀파이어의 피가 체내에 들어가야 깨어납니다. 그 과정은 보통 꽤나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폭주한 뱀파이어에게 감염되면 시체가 바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습니다.”


그레인저 감독관과 협업 중인 요원이 발언한다.


“유니언의 감시망에 있는 뱀파이어들의 세대를 계산 해보면, 그들 중 가장 강력한 뱀파이어의 피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이 기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최대 범위는 소도시 하나 정도입니다. ”


“즉 아무리 상황이 나빠봐야 도시에 정밀 폭격을 가하는걸로 사태가 종료된다는거군.”


“조기 포착하면 몇블록 정도를 통채로 날려버리는 걸로 충분할 겁니다.”


“십만명 정도가 죽는거라면, 아포칼립스급 시나리오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죠.”


이터레이션 X 출신의 전투 아말감 요원이 코멘트한다. 사이보그인 그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을 느껴지지 않는다. 감독관들이 그의 냉정함에 고개를 흔들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뱀파이어들이 폭주하면 그냥 그 도시를 봉쇄하고 불태워버리면된다.


“되도록이면 미 대륙이나 유럽쪽이 낫겠군. 아시아쪽은 인구 밀집이 심해서 피해가 몇배는 커지겠지.”


괜히 그들이 전투 아말감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웬만한 무기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괴물들의 약점을 분석하고 사살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처음에는 희생자도 나왔지만, 극도로 부족한 지원속에서도 그들은 그럭저럭 현재 상황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직도 미디어에는 사건의 진상이 흘러나가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지금의 분석이 사실이라면 그들의 힘으로만도 어떻겐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신디케이트와 보이드 엔지니어가 펜텍스를 무력화 시킬때까지만 이 사태를 덮어두면 되니까.


“사태 해결보다 수습이 더 문제인 셈이로구만.”


“오히려 폭격으로 가면 문제 해결이 더 쉽지.”


“말 조심 하시오.”


시니컬한 말과 진중한 말이 교차한다.


“하지만 한 가지 고려해야할 시나리오가 있어요.”


그레인저 감독관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무엇이지?”


“1999년, 차원 이상 현상 이전에 있었던 사건 기록이에요.”


그레인저의 말과 함께 스크린에 자료 화면이 지나가기 시작한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강력한 현실 교란종들간의 충돌. 이 사태를 마무리하기 위해 궤도 위성을 통한 태양광 조사, 보이드 엔지니어의 태스크포스, 거기에 다위상 중성자 폭탄까지 동원되었던 것이다.


디멘셔널 아노말리가 닥치기 직전에 있었던 일인, 이른바 악몽의 한 주Week of Nightmares라고 종종 불리기도 하는 일이었다.


“여기에 계신 감독관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당시에 관찰된 현실교란종은 뱀파이어라고 생각됩니다. 현재 유니언의 감시망에 올라와 있는 그 어떤 뱀파이어보다 강력했었죠.”


동의의 침묵. 이들중에서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요원도 있었다. 그들은 현실교란종들이 얼마나 아득하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피부로 체험했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죽이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야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보이드 엔지니어의 궤도강하 부대 하나가 강하 중에 전멸하고, 현지에 투입된 지상군 역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궤도 집광 위성이 없었다면 사태 수습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만약에 그 정도의 뱀파이어가 또 있다면, 그리고 펜텍스가 그런 뱀파이어의 피를 입수할 수 있다면…”


그레인저가 말꼬리를 흐린다.


“...문제는 훨씬 커지겠죠.”


대다수의 감독관들이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끄덕인다.


“좋소. 그럼 손이 닿는대로 스태티스티션Statistician 쪽의 도움을 구해보겠소.”


그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부족한 역량으로도 어떻게든 이 사태를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보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막고자하는 일이 얼마나 커질지, 아직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석관의 뚜껑을 옮기는 인부들. 그들은 소리하나 내지 않고 뚜껑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주위에는 플라스틱제 보호복과 화염방사기를 착용한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극도의 긴장이 느껴진다.


그들 사이에서 어색한 동작으로 걸어오는 여성.


“맘에 들어.”


“네, VP. 만족하셔서 다행입니다.”


서향이 고개를 숙여 석관 안을 들여다본다.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이 누워있다. 그녀의 능력으로 공중에 떠있는 어딘가 뒤틀린 형상의 나침반이 그 형상을 가리킨다. 너무나도 평안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시체. 석관 속에 수백, 어쩌면 수천년은 잠들어 있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라화되기는 커녕 피부가 조금 푸석해진 정도였다. 그만큼이나 이 뱀파이어가 강력한 존재라는 증거다.


현대의 밤을 걷는 그 어떤 뱀파이어라도, 이 시체의 목에 이빨을 박아넣을 욕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최초의 뱀파이어를 직접 목격했을 수도 있는 고대의 존재. 깨어나기만 하면 세계를 멸망시킬 것이라 예언된 자들Antediluvian, Methusela.


제정신인 자라면 이들의 정체를 아는 이상 절대로 이들을 건드리지조차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향, 그리고 그녀가 속한 펜텍스는 예외다.


“장치해.”


“네.”


그녀의 말에 즉시 반응하는 부하들. 그들이 신중한 표정으로 뱀파이어의 피부에 패치를 부착한다. 그들은 모두 보호복으로 몸을 꽁꽁 감싸고 있었다. 이 뱀파이어가 조금이라도 피와 살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면 깨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예 그 존재를 현실교란적인 힘으로 차단하고 있는 서향만이 예외다.


그녀가 눈을 감고 손을 내민다. 그녀의 의지에 따라 패치에 연결된 아주 미세한 관을 통해 피가 밀려나온다. 평소의 파괴적인 언동과는 동떨어진 그녀의 모습. 동작 하나하나가 섬세하다. 적은 양이지만 서향의 눈길에 따라 흘러나온 피가 움직여, 작은 용기로 들어간다.


그녀가 마침내 작업을 마친다. 어느 인간, 어느 뱀파이어의 것과 같은 색의 피.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 뿐이다.


“이건 어떻게 합니까?”


“덮어둬. 계획의 최종 단계에서 어차피 써먹게 될테니까.”


혹여나 이 뱀파이어가 깨어나고 여기 있는 자들의 피를 모조리 마셔버리더라도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 테크노크라시의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을테니까. 그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러나 그들 이외의 모두에게는 불행하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석관이 덮이는 동안 서향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옥룡을 바라본다. 그것이 서서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런 걸 가지고 있으면서도 쓰지 않았단 말야?”


그녀의 새디스틱한 목소리. 그녀로서로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절대 찾아낼 수 없는 것을 찾게 해주는 궁극의 나침반. 욕망 그 자체를 채워주기 위한 도구. 그것을 왜 쓰지 않았을지 정말 모를일이다.


“자, 그럼 한번 시험해볼까. 가자.”


“알겠습니다, VP.”


서향은 자신의 역할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대체 이 세계가 멀쩡해야할 이유가 뭐란말인가? 그 어떤것도 믿을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진실이 아니다. 어쩌면 모두가 멸망하고 흡혈귀만이 떠도는 세계에서 새로운 진실이 떠오를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녀는 단지 진실이란 없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파괴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 끝에서, 우주의 질서Wyrm에 비하면 너무나 미미한 존재인 그녀를 통해 세계의 파멸이 시작되고 있었다.




바스락거림.


정우재의 감각이 즉시 깨어난다. 그러나 반사적으로 권총을 꺼내는 대신, 담담하게 말한다.


“그렇게 몰래 갈 필요는 없는데.”


하은이 돌아선다.


“눈치 못챌 줄 알았어요.”


“너보다 실력은 좋으니까.”


그건 맞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이기기는 커녕 도망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으니까. 심지어 정우재와 단독으로 싸웠을때도 혼자의 힘으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 했다. 하은이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한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돌아선다. 다시 침대로 올라온 그녀가 그에게 다가와 팔을 매만진다.


“이제 원래대로 돌아왔나?”


“네.”


감각을 건너뛰고 섭리와 직접 접촉하던 자신을 떠올린다. 이상하게도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느껴진다. 모든 것의 뒤에 나름의 질서가 있고, 자신은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을 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끝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공기의 건조함, 사각거리는 소리, 붉게 뛰는 피. 느낄 수 있음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진실보다 진실의 표현, 그리고 그 표현이 가져다 주는 마음이 좋았다.


“그럼 됐군.”


“당신은 어떻게 할건가요?”


“복귀해야지.”


하은이 살짝, 그의 손목을 다시 잡는다.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좋겠네요.”


그는 그녀의 손길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의 눈에는 감정이 아닌 이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유는?”


“...”


잠깐의 침묵. 그녀가 건조하게 대답한다.


“전 클론이에요.”


별로 놀랍지 않다는 듯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유니언에는 가짜가 많지.”


담담한 그의 대답. 오히려 그의 반응을 예상치 못한 것은 하은이었다.


“네 오리지널은 어떻게 됐지?”


“제가 죽였어요.”


“그렇군.”


하은이 고백하듯 말한다.


“우리 둘의 생각 자체는 똑같았어요. 하지만 제 오리지널은 그렇기에 이 세계가 무너져야한다고 생각했죠. 전 그냥… 미로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문만 나서면 네 세계가 무너진다, 그래서 그저 가만히 있는게 좋다...라는 건가.”


물론 그것마저 극도로 축약된 이야기다. 그는 하은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한다. 그럴 수도 없고, 자신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두 사람은 지극히 다른 사람이니까. 기껏해야 같은 곳을 보는 정도가 끝일 것이다.


“네.”


“삶은 짧게 보면 비극, 길게 보면 희극이라고 하던데 유니언에 속했던 사람들은 보통 그 반대더군. 너도 그렇고. 클론으로 태어난거나, 네 오리지널과 싸워야 했던건 수많은 요철 중에 하나겠지. 아마 정체성 문제 같은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겠고.”


그녀의 손가락이 이불을 가로지른다. 그녀가 메마르게 말한다.


“...날개가 달려있으면 좋을텐데.”


많은 것이 담겨있는 말. 그가 그녀의 말에 뭐라 대답해줘야할까, 하고 솔직한 표정을 짓다가 픽 웃으며 묻는다.


“만들 수 있지 않아?”


농담조로 묻는 그의 말에 하은이 마른 미소를 짓는다.


“그런 건 못해요.”


“정말?”


“날 수는 있어요. 하지만 날개를 만드는건 불가능해요.”


정우재가 또 다시 솔직한 표정을 짓는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왜?”


“그야 날개는 난다는 것의 표현에 불과하니까요.”


“뭐…?”


그가 허탈하게 웃어버린다. 그러나 현실의 벼랑 끝에 선 그녀와 몸을 섞어본 그로서는 그게 무슨 말인지 피상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웃음을 그친 그가 처음으로 그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린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대답해준다.


“네 등엔 이미 날개가 달려있어. 문제는 네 발에 채워진 족쇄지.”


그것뿐.


공감도, 위로도 할 수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마디 정도를 해주는 것 뿐이다. 하은이 한참이나 그 말을 곱씹는다.


날개가 달리길 바라지 않아도 된다.


이미 달려 있으니까.


그것을 깨닫는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그녀가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침대를 벗어나 방을 나선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다. 작별의 말도, 위로의 말도, 사과의 말도. 오직 고요함만이 있을 뿐.


그래, 돌아갈 수는 없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 방에 영원히 있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그날밤 부둣가의 창고에 영원히 갇혀 있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존, 이거 보이나?”


한 국제공항. 관제탑에서 평소처럼 업무를 수행하던 한 관제사가 동료에게 묻는다. 그의 동료가 레이더 스크린을 살핀다.


“뭐야 이거?”


비행 스케쥴에 없는 미확인 기체가 접근하고 있었다.


“헬리콥터인가?”


“그렇다기엔 너무 빠른데?”


헬리콥터라기에는 너무 빠르고, 경비행기라기에는 살짝 느리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그가 즉각 통신을 보낸다.


“방위 55도, 275마일 거리에서 접근하는 기체, 즉각 응답하라.”


당연하다는 듯이 어떤 응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방위 55도, 270마일 거리에서 접근하는 기체, 식별 코드를 말하라. 송신이 되지 않을 경우 출동한 공군기에 직접 전달하도록 하라.”


그 말에 다른 관제사가 끄덕이며 말한다. 표준 절차대로 테러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공군에 연락하고 있는 것이다.


“공군에 연락 넣는 중이야.”


그들이 계속 레이더 스크린을 주시한다. 그러다 그들이 이상한 점을 알아챈다. 미확인 기체는 공항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려는 모습이었다. 항로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도심, 그것도 인구 밀집 지역으로 돌진해오는 듯한 모습. 아무리봐도 테러를 의심케 할 수 밖에 없는 그 모습에 관제사들의 손이 바빠진다.


그래서인지, 그들 중 누구도 일몰을 눈치채지 못한다.




막 어두워진 상공을 군용 헬리콥터가 최대 속도로 가로지른다.


“목표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헬리콥터 파일럿이 보고한다. 거의 최고속도로 날아가고 있는데도 따라잡기 힘들 지경이었다. 목표의 상공을 전투기들이 스쳐지나간다. 언제 요격 임무로 전환될지 모르는터라, 헬리콥터 내부에 긴장이 흐른다.


“최대한 목표 옆으로 붙여보겠다.”


“오늘 딸애 생일인데, 별일 없었으면 좋겠군.”


“저쪽은 무장도 없는 것 같은데 걱정할 필요 있겠나? 관찰 결과는?”


코파일럿이 목표를 자세하게 관찰한다. 꽤나 멋들어진 디자인의 헬기. 군용은 아니었지만 그 속도를 보아 뭔가 특별한 목적으로 제작된게 분명했다. 심지어 창문마저 검게 칠해져 안쪽을 들여다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기종 불명. 공군 기종은 확실히 아니다. 내부에 탑승하고 있는 인원은…”


그의 말이 잠시 끊긴다.


“대기하라. 목표 기체 내부에 뭔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기체가 흔들린다. 내부에서 붉은 연기 같은 것이 새어나오고 헬기 밑에서 비슷한 색의 아주 옅은 연막이 뿌려진다.


“붉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연막탄과 비슷한 종류의… 아니, 그것과는 다른 것 같다. 화학물질?”


“본부, 알린다. 생화학 공격이 의심된다.”


동시에 격추 허가가 떨어진다. 목표를 향해 접근해오는 전투기들. 군용 통신망을 통해 전파되는 생화학 공격의 예후.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다가오는 재앙을 막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


이 도시의 프린스는 노디스트로 유명하다. 뱀파이어의 성경, 또는 불경한 종교적 서적쯤 되는 놋기Book of Nod를 신봉하는 그. 최초의 뱀파이어인 카인부터 뱀파이어들이 멸망하는 최후의 날까지 뱀파이어들이 고대적부터 남겨놓은 수많은 기록와 예언을 엮은 책이 바로 놋기다.


뱀파이어들의 사회는 명멸하고 있었다.


각국의 정보기관과 군, 종교집단이 하나가 되어 뱀파이어들을 색출하고 있음이 확실해졌다. 옛적의 뱀파이어들이 마녀사냥과 농민들의 횃불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현대의 뱀파이어들은 정보기관의 추적과 화염방사기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몇몇은 저항했지만 한번 들키면 빠져나가기는 힘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한 도시의 뱀파이어들이 통채로 연락이 끊기는 일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것은 뱀파이어들 뿐. 대체로 그런 도시들에 가스 유출 같은 큰 사고가 있었다는 뉴스가 보도되곤 했지만 진상을 밝히는 데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노스페라투들마저 ‘하수도에 쥐 한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며 진상을 밝히길 피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소문만이 무성했다.


고대의 뱀파이어들이 깨어나리라는 징조, 인간들의 사냥, 내분으로 인한 자멸 등을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확인된 것은 없었다.


그는 수많은 옛 기록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자 하고 있었다. 고대적의 석판을 탁본해온 종이, 원본인 양피지, 18세기의 뱀파이어가 써내려간 책, 심지어는 인간이 쓴 뱀파이어에 대한 시 같은 것도 좋다. 그 수많은 실마리 속에 무엇인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음.”


그가 갑자기 답답함을 느낀다. 수백년 동안 살아온 그가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가 발걸음을 옮겨 창문을 연다. 이 도시에서도 유별나게 고풍스러운 형식으로 지어진 그의 집이다. 창문을 열자, 도로와 도시가 내려다보인다. 그가-



폭발음.



상공에서 무엇인가 폭발한다. 그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하늘을 훝는다. 헬리콥터와 전투기가 도시 위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허기.



스스로에게 살짝 한심함을 느낀다. 자신과 같은 존재가 이런 중대한 시기에 허기를 느끼고 있다니. 거기에 방금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가 즉시 그의 구울을 호출하려-



-허기.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허기.



그가 가슴을 부여잡는다.



-피에 대한 갈망.



그가 허기짐에 몸부림치며 책상 위에 펼쳐진 종이들을 움켜쥔다.



-피와, 살에 대한 갈망.



그가 무릎을 꿇은채 끓어오르는 허기와 갈망을 억누르려 노력한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온몸의 핏줄 하나 하나가 불타는 듯 하다.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피와 살의 냄새를 맡는다. 가면 무도회의 전통Masquerade에 대한 존중과 두려움 따위는 순식간에 날아가버린다.


“크아악!”


그가 평소라면 절대로 내지르지 않을 야만적인 괴성을 지른다. 이성은 없어지고 오직 괴물Beast만이 그를 지배한다. 그가 방을 뛰쳐나가 제일 먼저 보이는 그의 구울 하인을 움켜쥔다.


“주… 주인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피가 솟구쳐오른다. 살점이 뜯겨나가고 피로 찬 허파에서 끄르륵, 하는 소리만이 갸냘프게 날 뿐. 배불리마시다 못해 바닥과 벽 전체가 시뻘건 핏자국으로 가득차고 나서야 그가 하인을 놓아준다.


그러나 허기짐이 가시는 것은 잠시 뿐.


그가 다시 갈망에 휩싸여 폭주한다. 그의 옆에서 방금 죽어버린 구울이 새로운 뱀파이어가 되어 일어난다. 그렇게 뱀파이어의 수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다시 여덟로 늘어간다.


사람들이 가득찬 술집과 클럽은 순식간에 괴물들의 소굴로 변하고 밤거리에 그것들을 풀어놓는다. 평화로운 한 가족의 저녁은 창문을 박살내고 들어온 뱀파이어에게 무참히 찢겨진다. 지하철은 문이 열리자마자 괴물들에게 잠식 당한다. 괴물들을 피하려다 사고를 당한 차, 그리고 그 안에서 물어 뜯기는 희생자들이 순식간에 늘어간다.


거리에 비명 소리가 울려퍼진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며 프린스가 보고 있던 오래된 종이 한장을 뒤집는다. 고대의 뱀파이어들이 깨어나 그들의 자손을 잡아먹고 그들끼리마저 그리할 것이라는 내용. 뱀파이어들의 종말, 그 이름도 무겁기 그지없는 게헨나Gehenna. 그러나 우습게도 뱀파이어들의 멸종은 옛적의 뱀파이어들이 생각하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의 상업 소설 작가들이 생각할 법한 모습으로 이뤄질 모양이었다.




며칠 후.


이 도시에 한정해서라면, 이미 세상은 멸망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뱀파이어들이 폭주해 그 세를 불린지 며칠이나 됐을까. 사흘도 안되는 시간에 도시 내에 있었던 수십만의 인간 중 반은 이미 좀비나 다름없는 괴물이 되었다.


도시 곳곳에서 발생한 화재가 검은 연기를 피워올린다.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어야 할 고층 건물들에서는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도시로 들어가는 넓은 고속도로는 텅 비어있었다. 그것은 얼기설기 얽혀있는 작은 도로들도 마찬가지였다. 사고난 차량들이 도로 곳곳에서 연기를 피워올린다.


인도는 텅 비어있었다. 사람들이 없어진 것을 안 비둘기들이 길을 활보 하고 대담하게 식당까지 들어가 서서히 썩어가는 음식을 먹어치운다. 며칠 전만해도 주인과 함께 산보하던 애완견은 들개가 되어 음식물 쓰레기 통을 뒤지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핏자국이 가득하다. 물어뜯긴 살점, 아직도 권총을 쥐고 있는 잘려나간 손, 악취를 풍기는 내장. 폭주하는 뱀파이어들에게 찣겨나간 사람들의 사지. 그 주위로 흐르는 피를 핥아먹는 벌레, 쥐와 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체는 거의 없었다. 있다면, 다시 뱀파이어로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된 -갈비뼈와 목뼈 정도만 남아있는- 시체 뿐.


폭주하는 뱀파이어들은 본능에 따라 햇빛을 피해 숨어 있었다. 지하도, 메트로 터널, 고층 건물 계단참, 아파트 로비, 지하 주차장까지. 어쩌면 뱀파이어들이 도시에 사는 것은 인간들의 수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이렇게 숨을 곳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일 것이다.



기이잉-



조용한 도시 위로 한대의 비행기가 날아간다. 전 세계 그 어떤 공군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형상의 기체. 가운데가 비어있는 원형의 날개 -만약 날개라고 부를 수 있다면- 밑에서 대기권용 열핵 플라즈마 엔진이 특유의 가동음을 내며 아지랑이를 흩뿌린다. 원형의 형상을 관통하는 듯한 모습의 동체. 위에서 보면 아무런 도장도 없는 무광의 검은색이지만, 밑에서 보면 스텔스 테크로 인해 그냥 하늘만이 보일 뿐이다. 기체의 무장창이 열린다.


철컹, 하는 금속성의 소리와 함께 다섯개의 폭탄이 차례로 떨어진다. 테크노크라시에서도 정말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쓰지 않는, 최악의 파괴 병기중 하나. 내부에서 푸른 연무를 뿜어내는 은색의 캐니스터가 빙글빙글 돌며 지상으로 낙하한다.


조용한 도시에 떨어지는 다섯개의 점.



그 점은, 곧 섬광의 선이 된다. 섬광의 선은 화염의 면이 되고, 그것은 다시 파괴 그 자체로 화한다.



도시 한가운데서부터 뻗어나가는 충격파가 고층 빌딩을 무너트린다. 빌딩이 바닥을 치기도 전에 엄청난 규모의 불길에 휩쓸려 삽시간에 통채로 기화되어 버린다. 불길은 맨홀 뚜껑을 녹이고 지하로 뻗어나가 하수마저 순식간에 증발시키고 지반을 유리화 시킨다. 뱀파이어들이 숨어있을 모든 곳을 업화가 덮친다. 비명 지르기도 전에 새까만 재로 불타버리는 엄청난 수의 뱀파이어. 화염의 실타래가 도시 곳곳을 휩쓸고 삽시간에 도시 위로 치솟는다. 그제서야 폭발이 만들어낸 파편과 먼지들이 도시 위로 치솟는다. 버섯구름이라기보다는, 마치 십자가를 닮은 듯한 그 모습.


그 밑에는 모든 생명과 뱀파이어들이 싸그리 불타버린, 화염에 휩싸인 도시의 흔적만이 있을 뿐이다.




폭격.


도시 하나가 말 그대로 증발하는 모습.


그 장면이 연합 아말감의 지휘 통제실에 그대로 전달된다.


“...상부가 싸고 빠른 해결책을 선택했군.”


감독관 중 한명이 말한다. 몇몇이 탄식한다. 거의 백만명 정도의 생명이 일주일도 되지 않아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 일을 막기위해 모인 그들이지만, 막상 그들이 막을 수 없었던 것은 뱀파이어나 펜텍스가 아니라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이었다.


이 방에 있는 누구도 그 결정을 막을 수 없었다. 이들은 소도시 하나 정도는 봉쇄하거나 대도시에 정밀 폭격 정도는 지시할 수 있다. 그러나 대도시를 소각해버리는 -그리하여 타임 테이블을 어긋나게 하는 것은- 것은 그들의 권한을 한참이나 벗어난 일이다. 그렇기에 상부의 결정을 알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어 있었다.


내전에 시달리는 유니언의 상층부 중 일부가 독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선을 돌리면 누가 등을 찌를지 모르니까. 그리고 그들과 내전을 벌이는 라이벌들은 그 결정을 묵인한다. 한데 뭉친 그들이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이해관계로 인해 더욱 편리하고 값싼 선택을 한것이다.


그레인저가 그 영상을 보며 깨닫는다.


세계를 파괴하는 것은 뱀파이어가 아니다. 지금의 뱀파이어 사태는 마치 치사율이 100%인 전염병과 같다. 10명중 1명 밖에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인류를 멸망시킬수는 없으리라. 마찬가지로 뱀파이어는 아마존의 밀림을 불태울 수도 없고, 바다를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방사능 구덩이로 만들 수도 없다.


그것은 다른 괴물들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생명의 영혼을 집어 삼키거나 지진을 일으킬 수는 있다. 그러나 세계를 파괴하고 현실 그 자체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하지만 유니언은 그 모든 것을 동시에 할 수 있다.


도시 하나를 소각 하는 사태가 몇번 반복되고 나면 유니언에게는 그 어떤 선택지도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극단주의자가 득세하고, 온건파는 무능 하다는 비난을 들으며 밀려날 것이다.


이런 스케일의 일은 절대로 통계학적 불가항력을 피해갈 수 없다.


전지구적인 생태계 오염부터 전인류의 정신적 발작까지, 어떤 것이 될지 모른다. 어쩌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재앙이 겹칠 수도 있다. 아니, 그쪽의 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하다.


이 세계가 파괴된다면, 그것은 오직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에 의한 것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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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이며, 그 이외의 선택지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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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은 진 H. 그레인저 = 헤르미온느입니다. (전작 헤르미온느 크로니클에서 이어지는 것)